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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탕감과 봉사와 헌신 생활

① 탕감길을 가야 한다

 통일교인들은 탕감의 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복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 나는 복귀하는 것은 좋지만 탕감은 싫어!' 이런 말은 없습니다. 어떤 것이 먼저예요? 복귀가 먼저예요, 탕감이 먼저예요? 여러분은 복귀를 좋아하고 탕감은 싫어 하지만 하나님은 반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입니까? 하나님 편이예요, 사탄 편입니까? 이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복귀를 좋아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복귀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겁니다. 탕감을 통과한 후에 복귀됩니다. (116-127, 1981.12.27)

 탕감이라는 말을 알면 모두가 제일 좋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이 없으면 복도 없습니다. 통일교회에 무한한 황금덩이가 뭐냐 하면 탕감입니다. 탕감은 죽음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낱말입니다. (1978.2.26) (97-71, 1978.02.26)

 책임분담과 탕감은 하나는 오른쪽 입장이고 하나는 왼쪽 입장인데, 하나는 오른다리와 같고 하나는 왼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양다리와 같은 책임분담과 탕감복귀를 연결해 놓지 않고는 전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탕감 싫지요? 하나님도 섭리도 다 싫지요? 오늘부터는 새로이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자는 것을 잊어버리더라도 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걸 잊어버리더라도, 이걸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걸 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레버런 문도 이걸 통하지 않으면 안 되고, 전세계도 이것을 통하지 않으면 못 간다는 겁니다. 안 통한다는 겁니다. 모두 그냥 통과하고 싶지요? 박사나 교수 자리를 그냥 해먹을 수 있어요? 그 코스를 거쳐서 박사가 돼야 박사를 해먹지, 그냥 해먹을 수 있어요? 거치지 않으면 그건 가짜입니다.
(124-106, 1983.01.30)

 탕감조건은 자기 자신이 세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세워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은 주관권을 잃은 것을 의미합니다. 복귀를 위해서는 남들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확고한 주체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남들은 어떤 길을 가든지 내 갈 길은 바쁩니다. 옆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밤에 잠잘 시간이 없습니다. 자리잡고 편히 앉아서 밥을 먹을 여유도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절박한 심정을 갖지 않고서는 복귀의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22-211, 1969.02.04)

 병난 사람이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약이 써서 먹기 싫더라도 먹어야 됩니다. 우리가 약을 살펴보면 좋은 약은 맛이 씁니다. 쓴 것이 진짜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은 쓴 약을 먹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복귀될 수가 없습니다. (92-254, 1977.04.18)

 천국은 하나님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모시고 그를 통해 사랑의 인연을 맺고 사는 곳입니다. 이 근본을 바로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원섭리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게 되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92-255, 1977.04.18)

 구원의 길은 탕감하여 복귀하는 길입니다. 탕감이란 타락한 경로를 따라서 거슬러 가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167-98, 1987.06.30)

② 봉사와 헌신

 참사랑의 길은 어떻게 닦을 수 있는 것이냐? 헌신, 봉사, 그리고 희생을 통해 닦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재창조 코스임을 뜻하는 겁니다. 재창조 코스에서 여러분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그런 탕감의 길이 봉사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희생의 길을 통해야 합니다. 우리가 탕감의 길을 걸어 가야만이 하나님 편에 설 수가 있습니다. 탕감의 기대 위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탕감의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146-294, 1986.07.20)

 어느 쪽이 주체이고 어느 쪽이 대상이냐? 누가 따라가야 할 자리에 있고 누가 이끌고 가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냐? 하나님은 그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게 하나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내려다보니 항상 둘이 싸우고 있는데, '어느 것이 내 편이 될 것이냐?' 하면 이미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음, 허허허…' 하십니다. '내 편이 되는 사람은 항상 희생하고 헌신 봉사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이다. 그런 편에 서 있는 쪽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쪽이며, 나는 그 무리를 선택할 것이다' 하십니다. 항상 중심은 희생하고 봉사하는 겁니다. (147-98, 1986.08.31)

 통일교회는 위해서 가는 길을 취해라, 위해서 살라, 위해 태어났다 하는 천리(天理)를 가르치는 곳입니다. (133-16, 1984.07.01)

 천국 가는 공식은 간단합니다. 하늘과 땅을 사랑하였다는 조건만 있으면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 고생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진정으로 일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11-70, 1961.01.22)

 선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희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생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라!'하는 것이 이익보는 게 아니라 희생입니다. 자기 투입입니다. 투입하는 데는 극단에 달할 수 있는 그 기준까지 투입하라는 겁니다. 생명까지도 바치라는 겁니다. (78-61, 1975.05.04)

 통일교회 주류 사상이 무엇이냐? 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위해 존재하는 날에는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세계를 위해 살 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77-302, 1975.04.25)

 손님 대접 많이 하고 외부 사람에게 신세 많이 지워준 사람이 있는 자리는 사탄이 넘어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37-329, 1971.01.01)

 여러분을 희생시키고 여러분을 고생시켜서 이 사랑에 공헌할 수 있는 공헌자를 만드는 것은, 세계를 대표한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는데 공헌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인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 운동을 지금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만들고 인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목적입니다. 인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82-53, 1975.12.31)

 세계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거지와 같은 모습이라도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교회 무리는 빵떡을 먹든, 보리떡을 먹든, 물을 마시면서도 '아 오늘 아침 냉차가 진수성찬보다 맛있군!' 하며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도 '감사합니다' 하게 되면 천하가 운다는 겁니다. 천하를 위해 그런 입장에 서면 주체가 없으니까 천하가 자기보다 더 낮은 것이기 때문에 천하가 달라붙는 것입니다. (61-223, 1972.08.31)

 옛날에는 소를 붙들고 '이랴낄낄' 해 가지고 논 갈 때 기분 나쁠 때가 많잖습니까. 소 궁둥이를 갈기며 '이놈의 소야, 너 왜 이래? 내가 있는 정성을 다 해서 요 한 때를 써 먹으려고 길렀는데 이거 왜 말을 안 들어?' 하면서 회초리로 사정없이 갈기고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야, 겨우내 잘 쉬던 너를 인사도 하지 않고 봄날에 끌어내어 가지고 잘 먹이지도 않고 일 시켜서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소보다 더 참는 마음을 갖고 '철버억 철버억' 하면 도리어 하늘이 보게 될 때 그 사람을 더 가까이 한다는 겁니다.
  약삭빠르게 싹싹하고 임시 처변을 잘하는 것보다도 순정을 가지고 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복된 마음을 갖고 복된 생활을 해야만 복이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127-89, 1983.05.05)

 세계는 보다 더 큰 섭리를 위해 탕감의 목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한다고 생각하게 될 때, 자기 일족이 아사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그것을 알고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한 날에 있어 어떠한 십자가의 길이 오더라도 그 십자가상에서 기도하고, 누구보다도 고생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해야 될 것입니다. 투입하고 투입하며 잊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229-237, 1992.04.12)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폭발적이고도 자극적인 힘을 가지고 뜻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가고자 하는 여력이 있습니까? 그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같이 하신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반면에 그런 힘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32-21, 1970.06.14)

 역사 이래 하나님의 뜻을 따르던 수많은 종교들은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놀음을 했습니다. '희생 봉사하라!' 이게 왜 그런지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겁니다. 그것은 본연의 세계가 위할 수 있는 본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그 곳에 갈 수 있는 훈련과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 봉사를 강요한 것은 역사시대에 하나님이 역사과정을 통해 섭리해 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임을 여기에서 공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공인할 수 있습니다.
(77-270, 1975.04.14)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고 인류와 더불어 자기 생명을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하늘에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로되, 자체를 위주한 사랑과 자체의 가치를 자랑하는 생명력으로서 끝난다면 자신에게서 이미 하나님은 이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갈 길은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주한 한계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32-21, 1970.06.14)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탄의 작전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맞고 빼앗아 나오는 길이 아벨이 가는 길입니다. 사탄은 먼저 치기에 이긴 것 같지만 나중에는 가지고 있는 자기의 선한 것까지 플러스시켜 가지고 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편이라는 것은 상대를 쳐서 점령했더라도 흥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가운데 있는 선한 것까지 빼앗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찰떡을 쳐 가지고 넘겨 주었다가 그것을 찾아올 때에는 찰떡에 보숭이(고물)가루를 묻혀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때에는 악이 성해 선을 치는 자리에 서지만 그런다고 하늘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56-85, 1972.05.14)

 한 순간 한 순간 필사의 결의를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오신 이 한 때를 무의미하게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은 천년사를 두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니, 이것을 놓치면 큰일납니다.
  이 세상을 모두 잃어버리고 찾았던 것을 다 놓치더라도 이것만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이 없어지더라도 이것만은 남기고 가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이며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26-141, 1969.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