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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다에는 배울 것이 많다

① 바다처럼 천하를 품고 살아야

 바다에 다녀 보면 참 배울 것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변합니다. 세상에서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라고 했지만, 바다는 조석변이 아니라 시시변(時時變)입니다. 시간마다 변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아무리 날이 좋다 하더라도 어느 골목에 가게 되면 물결이 좋지만, 어느 골목에 가게 되면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큰 바람은 아니지만 전부 다릅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물이 있고 산이 있으면 산이 높고 낮음에 따라 기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다는 천태만상의 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63-18, 1994.08.16)

 선생님은 자연을 좋아합니다. 바다를 좋아합니다. 바다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물방울들이 전부 다이아몬드 구슬입니다. 요것이 반짝반짝하면서 '문총재 것이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진 가치를 가진 것이 물이다.' 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왜 물이 자랑하느냐? '나 없으면 천하에 생명이 형성되지 않는다. 내가 있기 때문에 깊고 낮은 것을 수평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다가 얼마나 울툭불툭한지 알아요? 그렇지만 물이 수평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얼마나 기분 좋아요? 기분 좋고, 보기도 천년만년 싫지 않게끔 파란빛을 냅니다. 파란빛은 위로의 색깔입니다.
  왜 하나님이 파란빛을 만들었느냐? 이건 암만 봐도 피로하지 않습니다. 위로의 색깔입니다. 만물이 다 그렇습니다. 공중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습니다. 그거 얼마나 이상적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게 되면 전부가, 인간도 친구가 되겠지만 자연계가 다 친구입니다. 한번 그 성격을 알아 놓으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격은 천태만상입니다. 오늘은 요랬다가 내일은 변해 갑니다. 그래서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이라 하는 말이 있지 않아요?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합니다. 그거 무엇에 써먹어요? 그러니 동물만도 못한 것입니다.
(177-274, 1988.05.20)

 바다는 천하를 품고 삽니다. 한 곳에 모여 구름이 되어 가지고 산을 덮으면서 친구가 되고, 비를 높은 데서 뿌리니까 사방으로 펴지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이 물입니다. 물은 쉬지 않습니다. 천년만년 움직이는데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문총재는 바다를 사랑합니다. 자연은 속임수가 없습니다. 높으면 높고 낮으면 낮습니다. 높은데 있으면 이의 없이 공급해 줍니다. 문총재가 그걸 배워 가지고 이의 없이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이국땅에 가더라도 나보다 못 살면 내 창고를 열고 내 쌀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전부 나눠주는 것입니다. 수평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물에서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물을 좋아합니다. (300-141, 1999.03.02)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풀도 푸르고 다 푸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거 질식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옐로우(yellow;노랑)라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금방 싫증이 날 것입니다. 또 딴 색을 갖다놔도 얼마 안 가서 싫증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린(green;푸른색)은 위로의 색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언제나 푸른 것입니다. 그럼 사람은 왜 그린을 좋아하느냐? 존재 세계는 그린과 더불어 조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흙에는 그린 칼라가 많다고 보는 것입니다. 흙은 주로 그린 칼라와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흙으로 지은 나 자신은 그린 칼라를 좋아한다, 그게 이론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공중도 푸르고 바다도 푸른 것입니다.
  전부 사람을 중심삼고 이 그린 칼라와 조화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119-168, 1982.07.18)

 바다가 잔잔할 때는 신비스럽습니다. 매혹적인 신비의 여왕같이 미녀가 되어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바다는 은빛으로도 보이지만 비취색으로도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천태만상입니다. 거기에 살랑 바람이 불면 그 물결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뭐라고 할까요? 무희가 아무리 춤을 잘 추더라도 거기에 따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 댄서를 보려면 조그만 스테이지(Stage;무대)에서 구경하는데 그건 너무나 좁습니다. 반면에 바다의 스테이지는 무한입니다. 바다의 무대가 얼마나 넓습니까? 미녀와 같은, 무희와 같은 성질이 있는가 하면, 한번 성나면 광야에서 달려드는 호랑이나 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바다입니다. 그걸 생각해 보십시오. 몇십 미터의 물결이 몰려 오고 몰려 갈 때에는 갈매기가 우는 것은 상대도 안 되는 것입니다. '네가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네가 아무리 훌륭한 희극 배우라도 웅장한 내 기세 앞에는 당하지 못한다!' 이겁니다. 위세가 당당합니다.
  고요할 때 쾌속 보트가 기분 좋게 쓱 달렸지만 여기에서는 오금을 못 쓰는 겁니다. 꼬리를 젓고 대가리를 젓고 이러는 것입니다. 물결을 타고, 물결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어 있지 자기 기세가 없습니다.
(128-249, 1983.08.28)

 자연의 힘은 위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은 교만할 수 없습니다. 바다에는 그런 위대함이 있습니다. 바다 문을 젖히고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무진장의 어족이 있습니다. 황금빛으로부터 금빛, 푸른 빛, 없는 색깔이 없을 정도로 많은 어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육지와 바다 속을 비교하면 어디가 더 아름다울까요? 육지도 아름답지요? 그렇지만 육지에는 꽃과 나비밖에 더 있어요? 그 다음에 아름다운 새가 있고, 그렇지만 그런 것은 단조롭습니다. 꽃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다에 있는 호화찬란한 색깔을 지닌 아름다운 모든 수족들은 춤을 추면서 활동합니다. 그래 어디가 아름다워요? 육지가 아름다워요, 바다가 아름다워요? 바다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왜 물이라는 걸 만들어 놨을까요? 하나님이 감상하기 위한 특별장치가 물이다 이런 말도 할 수 있습니다. 딱 숨겨 두고 공개하지 않았다 이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육지보다 바다에 더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또,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육지보다 바다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이상가정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구성의 역사 이래 땅 위에 나타난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관을 갖고 있는 바다 세계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바다를 생각하는 사람이, 미래상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128-249, 1983.08.28)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앉아 있을 때는 한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거기서 산보를 할 수 있습니까? 요만한데서 움직이고 거기서 요리를 해야 합니다. 거기서 극장 구경을 할 수 있어요, 친구가 있어 놀러 갈 수 있어요? 조용히 해야 하니까 음악도 못 듣습니다. 그러니까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하고 하늘하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되는 거기에 나 혼자 있으면 참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왜 자꾸 바다에 나가느냐? 영적으로, 모든 면에 이익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정신이 산만해 가지고 세계선교사라든가, 교회문제 등 전체를 생각해야 될 것을 몇 분의 일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다에 나가면 전체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바다가 상당히 좋습니다. 그래서 '낚시도'라는 말이 나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79-270, 1975.09.01)

 고요한 바다에서 한 쌍이 사랑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바다가 '이놈들아, 나 죽겠다!'고 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고기떼가 와서 꼬리를 치고 구경하면서 좋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만물들이 그런 사랑을 바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제발, 와 주소! 해 주소!' 해 가지고 그곳에 와서 사랑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헤아릴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인이 흰 눈이 쌓인 꼭대기에 가서 사랑을 하면 '우리 주인 양반이 이렇게 아름답게 사랑하고 있구만!' 하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235-277, 1992.10.11)

② 바다 생활은 굉장하고 신기해

 태평양을 중심삼고 '흑조(黑潮)'는 4천 마일을 돕니다. 1년에 4천 마일을 돕니다. 그 도는 힘에 의해서 오대양(五大洋)이 도는 것입니다. 만일 흑조가 없다고 한다면 바다가 돌지를 않습니다. 이 흑조로 말미암아 대서양과 태평양은 오대양과 통하는 것입니다. (227-129, 1992.02.11)

 이런 환경여건을 통해서 오대양이 전부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297-209, 1998.11.20)

 아무리 강물이 크다 하더라도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가 아무리 넓게 흐른다 해도 흑조(黑潮)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흑조라는 것 알아요? 흑조라는 것은 태평양 지역을 중심삼고 4천 마일을 원형을 그리면서 도는 물줄기를 말합니다. 힘차게 도는 물줄기로 말미암아 오대양의 모든 물줄기가 살아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타고 돌 수 있어야만 바닷물의 자격을 갖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220-201, 1991.10.19)

 강이 아무리 많고 크다 하더라도 크고 작은 강은 어차피 대해(大海)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대해에 들어가게 되면 전부 섞이게 마련입니다. 5대양을 중심삼고 보면 태평양에는 흑조(黑潮)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4천 마일을 돌고 있습니다. 물론 달의 인력(引力)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이렇게 도는 흑조가 있기 때문에 5대양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다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이나 무엇이든 전부 들어오면 그걸 전부 섞어 가지고 하나의 모습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바다의 목적입니다.
  아무리 큰 강물이 담수(淡水)를 계속적으로 몇만 년 투입하더라도 그것을 전부 흡수하고 남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바다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바다는 얼마든지 들어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자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210-200, 1990.12.23)

 일본의 구름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구름과 하나될 때 '미국 구름 나 싫다!' 이래요? 일본의 물이 흑조(黑潮)를 통해서 태평양에 갔는데 미국의 물이 올 때 '어구구구!'` 그래요? 태평양에는 4천 마일의 흑조가 흐르는 것입니다. 거기에 선진국 후진국이 있습니까? 나라간 경계선이 있습니까? 그런데 인간 세계는 이게 뭐예요? 자연운동에 반대하는 것은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268-26, 1995.02.07)

 사랑의 세계는 어디에 가든지 다 통합니다. 태평양 물이 생각할 때 '나는 태평양 물이야. 아시아 물은 전부 오염됐기 때문에 나 싫어!' 그래요? 물이 어디서 흘러나오든 전부 꿰차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쁜 것이 있으면 그걸 섞어 가지고 빨리 해소시켜 같은 길을 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평양 물은 아무리 공해가 심하더라도, 인류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전히 푸를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시련을 받고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바닷물이 푸른 빛을 점령당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권위와 사랑의 내용과 사랑의 힘은 언제나 푸를 것입니다.
(214-273, 1991.02.03)

 통일교회는 세계 주류의 물줄기가 되고 태평양의 흑조와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태평양에서 4,500마일의 흑조가 돌아 가지고 오대양의 물이 돌게 됩니다. 세계의 생명력을 전부 우주에서 발발시키기 위해서는 깊은 곳을 돌아가서 움직일 수 있는 원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더러운 세상을 깨끗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275-32, 1995.10.30)

 태풍이 불어올 때 얼마나 물결이 밉고, 바람이 무서운지 알아요? 그렇지만 저 바람도 자기 사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바람이 안 불면, 바다에 물결이 없으면 고기가 못 삽니다. 바람 부는 것은 바다에 산소공급을 위한 것입니다. 파도라는 것이 산소공급을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결이 대로(大怒)하고 있더라도, 암만 바람이 불어와도 그 맛을 보면서 '네 맛을 잃지 않았구나!' 그래야 됩니다. 바다는 짠맛을 갖고 있습니다. 나도 레버런 문 맛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물결이 밉지 않고, 몰아치는 파도가 밉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철학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육지에서만 산 사람은 저나라에 가서 이상적 활동하는 데 상당히 지장이 많을 것입니다. 영계에 가면 고래도 타고, 고기들과 같이 헤엄칠 수 있는데 바다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걸 못 하는 것입니다.
(119-252, 1982.09.13)

 바다에 나가 보면 태풍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 물결이 참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무섭더라도 사랑의 힘이 돛을 달고 갈 때에는 그것도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110-102, 1982.11.09)

 바다는 그냥 있으면 안 됩니다. 물은 움직이면 안 죽습니다. 그릇에라도 물을 떠놓고 움직여만 주면 영원히 안 죽습니다. 운동하면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원양어업 하는 배는 한번 출항하면, 1년 6개월, 2년 치의 물을 한꺼번에 싣고 나가지만 바닷물에 출렁거리기 때문에 그 물은 몇백 년 두고 먹더라도 썩지 않습니다. 움직이면 썩지 않고 정지하면 썩습니다. 그러니 물이 참 특수하지요? 물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296-200, 1998.11.09)

 원양어로작업을 하려면 식수를 배에 가득 싣고 갑니다. 1년 반 동안 그 물을 먹어야 합니다. 짠물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은 움직이면 몇십 년이 지나도 썩지를 않습니다. 물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도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291-88, 1998.03.05)

 물이 왜 흐르느냐? 수평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흐르는 것입니다. 물은 흘러서 어디를 찾아가느냐? 수평선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바다로 가야 됩니다. 수평을 찾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263-91, 1994.08.21)

 물은 언제나 수평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특징입니다. 바다는 아무리 파도가 크게 일더라도 수평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평선을 보게 될 때 뒹굴고 싶은 것입니다. '야, 한번 뒹굴어 보자!' 이겁니다. 그럴 수 없으니까 배를 타고 뒹군다 이겁니다. 그런 생각 해 봤어요? 수평선에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나가자빠지더라도 머리나 발이 먼저 맞지 않습니다. 수평으로 딱 맞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수평선입니다. 인간에게는 수평선이 필요합니다. (263-90, 1994.08.21)

 공기나 물은 사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기는 진공만 생기면 세계의 공기를 동원해 가지고 싹 메워버립니다. 바다의 물도 웅덩이가 생기면 싹 밀어버리고 수평을 취하는 것입니다. 공기도 물도 사랑도 언제나 수평이 사는 방법입니다. (264-316, 1994.11.20)

 우리가 바다에 나가면 물을 봅니다. 물은 순환합니다. 물이 있는 곳에서는 아침에 안개가 낍니다. 수증기가 돼 가지고, 이게 저기압이기 때문에 올라가지를 못합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모인 것이 안개입니다. 이 물이 안개가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증발해 가지고 구름이 되어서 세계를 도는 것입니다. 바다에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야단입니다. 생물이 존속할 수 없습니다. 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263-78, 1994.08.21)

 여러분이 알다시피 선생님은 시간만 있으면 바다에 나갔습니다. 바다에 나가서 부대낍니다. 부대끼지만, 그것이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큰 싸움을 하기 위한 시련이고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잠도 안자고 참 피로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기 스스로 그러한 표준을 정해 가지고 이 평행선에서 딴 데로 기울어지지 않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73-270, 1974.09.29)

 공기도 움직이고, 물도 천년만년 움직이잖아요? 천년만년 움직이는데, 같은 공식입니다. 바다를 보십시오. 물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그렇지만 한번도 피곤하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그것이 존속할 수 있는 공식이라는 것입니다. (207-18, 1990.10.21)

 바다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의 영역이 제한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창조주가 있다면 육지를 알고 바다를 잘 알아서 바다의 신비성을 생각하고 육지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지, 한 면만 가지고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은 지극히 이론적인 말입니다. (128-256, 1983.08.28)

 바다나 육지나 모두가 사람 하나를 교육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창조주의 고마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128-259, 1983.08.28)

 바다를 봐도 그 바다를 그저 바다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준 선물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재창조하는 과정으로서 모든 것을 재감관(再感觀)한다는 사실, 여기서 위대한 혁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대한 승리의 기치가 여기서 싹터 오르는 것입니다. (112-306, 1981.04.25)

③ 바다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변동이 많은 데서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러면 육지보다도 바다가 더 낫습니다. 바다에는 바람도 불고 잔잔하기도 하고 풍랑이 몇 번씩 일고 변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육지 여행보다도 바다여행이 좋습니다. 이 땅은 다녀도 아침의 생각 그냥 그대로 변동이 없습니다.
  육지야 아무리 다녀도 손 안 대고 점잖게 갈 수 있지만, 바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간다고 하는데,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합니다. 변화하는 데에는 참으로 자극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잔잔하게 될 때는 육지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잔잔합니다. 어떤 때는 그 바닷물이 유리 같은 기분이 날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만지고 싶고, 너무나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가 변화무쌍하지만 '나는 간다' 이런 일념으로 전진해 갑니다. 그런 자극이 없어 가지고는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79-270, 1975.09.01)

 바다 밑바닥을 보면, 고래 같은 것도 있지만 할리벗(halibut:넙치) 같은 고기가 있고, 캣피시(cat fish;메기)처럼 생긴 고기가 바닥에 붙어살고 있습니다. 이 캣피시같은 물고기는 몸뚱이보다 대가리도 크고 입도 큽니다. 이게 뭘 하는 것이냐? 그게 큰 물건들, 썩을 것이 흘러 들어오면 그걸 뜯어먹는 것입니다. 왕창 삼켜 버리고 뜯어먹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자라면 벌레들을 빨아들여 먹습니다. 이렇게 정화작업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청소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판타날에 서식하는 물고기가 3천6백 종입니다. 3천6백 종의 고기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먹는 음식이 전부 다릅니다. 그런 것들이 전부 섞여서 바다의 청소작업을 쉬지 않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그 자체가 청소작업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사는 것은 자기 목적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정리하면서, 주변을 깨끗이 하면서 서로 도우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자연 협조체제입니다. 그것들이 바닷물을 맑히는 놀음을 하더라 이겁니다. 바다가 짜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고기들이 있어 가지고 더러운 것도 먹고 그래야 됩니다. 고기 똥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그걸 또 먹는 것들이 있습니다.
(293-283, 1998.06.07)

 바다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고기만이 아닙니다. 물새들도 그렇습니다. 기러기로부터 갈매기 같은 물새들이 쉬지 않고 탐색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바다 표면이 아니라 중간에 떠내려가는 게 있으면 물에 들어가서 찾아 가지고 다 먹고사는 것입니다. 또, 바람이 '야 구름아, 지금 저기 말라죽을 듯이 더운 데가 있으니 가자.' 이래 가지고 찬 바다공기가 가는 것입니다. 그 바람이 구름을 태우고 지나가면서 물을 뿌려 주는 겁니다.
  이 우주가 어떻게 공동 협조체제가 돼 있나 생각해 보라구요. 바람이 없으면 어떻겠어요? 큰일나지요? 여러분이 먹는 밥이니 빵이니 뭣이니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수증기가 바다로부터 공중으로 올라가서 바람을 타고, 한여름 더운 태양빛을 타고 찾아가 비를 뿌리면 그 물의 수분을 빨아들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땅의 수분, 공기의 수분이 합해 가지고 밥이면 밥이 되고, 빵이면 빵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거 생각해 보면 얼마나 수고했느냐 이겁니다. 그게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거기에 우주가 움직입니다. 우주가 움직이고 협조해 가지고 빵이 된 것입니다. 그 빵 한 조각이 간단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293-285, 1998.06.07)

 바다에서 제일 짠 곳이 깊은 데일 것 같아요, 얕은 데일 것 같아요? 깊은 곳입니다. 왜? 소금물은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깊은 데일수록 더욱 짭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의 최고 궁중은 어디 있겠느냐? 짠물로 비유하자면, 제일 밑바닥에 있습니다. 거기에 왕궁이 있습니다. 맨 아래 끝으로 가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개념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국 맨 최고의 자리가 제일 깊은 바다, 제일 짠물 가운데 밑창에 있는데, 반대로 제일 깨끗한 사람은 꼭대기에 있다 이겁니다. 제일 양심적이며, 보다 세계를 위하고, 보다 전체를 위하고, 보다 높은 마음을 가지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244-178, 1993.02.07)

 주류에서 흐르는 깨끗한 물이 공해로 찌든 물을 바라보게 될 때, '나는 너와 섞이는 것이 싫다!' 하면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의 경우는 그렇습니다.
  자연의 조화와 총합관계라고 하는 것은 기이한 것입니다. 물의 성질은 더러운 것이 있어도, 자기의 본질이 더러워지더라도 그것을 포용하고 자기 주변의 것까지 흡수해서 이것을 동일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흐르고 흘러서 더러운 것이 가라앉고 깨끗한 것이 떠서 흘러가는 동안에 맑은 물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218-292, 1991.08.22)

 바다의 물결이 아무리 흐르더라도 고기는 잠을 잡니다. 물은 흐르는데 고기의 지느러미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가면서 한 자리에 서서 운동하지만 몸뚱이는 자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지요? 여러분의 모든 핏줄들은 운동하지만 자기는 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기의 생명이 그 박자를 맞추는 것은 피가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주인이 누가 되고 높은 것이 누가 되느냐? 보다 투입하는 사람, 보다 위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220-282, 1991.10.20)

 아무리 험악한 바다 물결이 친다 하더라도 그 흐름은 반드시 주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류에 방향을 맞추어 나옴으로 말미암아 전세계가 반대하고 핍박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주류를 중심삼고 완전한 주체로서 주류적인 입장에 서면 주체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보호하기 때문에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249-164, 1993.10.10)

 여러분은 수영하면서도 '아이, 목말라. 콜라, 맥콜 가져와!' 그래요? 물에 들어가 있으면 하루종일 물을 한 잔도 안 먹어도 됩니다. 거기 들어가 있으면 세포가 물을 먹습니다. 선생님이 요전에 16시간 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줌 마려워서 어떻게 참아?' 하겠지만 오줌으로 나갈 것이 다 땀으로 나갑니다. 더워서 수증기로 나오기 때문에 땀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에 종일 들어가 있어도 물 같은 것은 가지고 갈 필요 없습니다. 목마르면 거기서 한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고래처럼 수영을 해 보세요. 그때도 목말라요? 모래사장에 엎드려 있으니까 더워서 물먹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물이 귀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공기! 물 가는 데는 공기도 갑니다. 바다 속에도 공기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217-206, 1991.06.01)

 세계의 바다는 언제나 움직입니다. 바람이 움직이고 다 이런 것은 그것이 번창하고 살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태풍이 불고 물결이 수십 미터 일어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바다에 공기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고기들이 어떻게 살아요? 이런 걸 생각할 때 '야, 태풍이 부니까 바다 밑의 고기들이 기분 좋아하겠구나. 나는 어렵지만 고기가 좋아하니 좋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262-289, 1994.08.01)

 생명의 조상과 같은 것이 물입니다. 그래, 하나님 대신 물을 사랑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다를 사랑해야 합니다. 경치 좋은 데는 물이 없으면 안 되고, 수림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물의 조화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물을 사랑하자 이겁니다. 물을 사랑하는 것은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이건 원천적인 생각입니다. 물을 사랑하는 데 호수 물을 사랑해요, 바닷물을 사랑해요? 매일같이 바다에 나가야 되겠어요, 안 나가야 되겠어요?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이는데 배를 타면 피가 출렁출렁하기 때문에 피가 썩을 수 없습니다. 전부 정화됩니다. 사실입니다. 항상 배 타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262-289, 1994.08.01)

 나는 월급 안 받습니다. 나는 내 힘으로 벌어먹고 삽니다. 지금도 어디에 가든지, 헬리콥터로 아프리카 오지에 갖다 내려놓더라도, 사람은 없고 동물만 살더라도 나는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산에 가면 산에서 먹고사는 것을 배웠고, 바다에 가면 바다에서 먹고사는 것을 다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거지굴에 가서도 이 놀음해서 천국을 이룹니다. 여러분이 따라다니지 않아도 거지 패들을 통해서도 뜻을 이룰 수 있게 훈련을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지금 거지굴로 가라고 하면 가나요, 안 가나요? 그러자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109-152, 1980.11.01)

 자기들 보따리 안고서 편안히 앉아 먹고살겠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개척자였습니다. 개척해서 내가 선두에 섰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회사에서 배를 만들어 가지고 선장이 없으면 내가 전부 데리고 바다로 나가는 것입니다. '바람아 불어오너라. 파도야 쳐라. 사나이 가는 길을 막을쏘냐. 하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후대에 생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식량문제는 여기서 해결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거 멋진 사나이지요? 나는 그런 사나이를 좋아합니다. 거기에서 앞으로 살아 남을 산 영화가 나올 것이고, 역사의 소용돌이가 거기서 풀릴 것입니다.
  수수께끼라도 그 이상의 수수께끼가 없는 놀음이 아니냐 이겁니다. 희비극이 교체되는, 멋진 사내들이 동경해서 가야 할 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점핑할 수 있고 여기서부터 세계를 넘어갈 수 있는 기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바다에 나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돋구어 줄 수 있습니다. 내일의 바다의 세계에 대한 꿈을 그릴 수 있는 원천이, 샘이 여기서 폭발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109-152, 1980.11.01)

 내가 그렇게 열심히 바다로 나가는데 그 마음을 잊어버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마음이 계속돼야 합니다. 정성이라는 것은 천년만년 계속해야 됩니다. 바다에 나가서 정성 들이는 것을 편안히 앉아서 하면 탕감 할 수 있는 조건이 안 서는 것입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도 내일이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온 강들의 물이 대서양으로 모이고, 대서양은 태평양으로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굶어 죽는 사람들을 구해 줄 때까지 그 정성을 들이면 나는 죽더라도 그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279-308, 1996.09.22)

 얼굴이 까만 허드슨 강의 어부 같은 남자, 천년을 기다리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남자인데 설마 그런 분이 이런 일을 한다고는 생각 안 하지요? 왜 그런 일을 하느냐? 2천만의 굶어 죽는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땀을 흘린 허드슨 강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대양 육대주를 통해서 숨을 쉬며 생각하는 그 보이지 않는 파동, 전파 같은 것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고기세계를 통하여 미래의 인류해방의 길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땅과 바다가 있으면 굶어 죽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굶어 죽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47-21, 1993.04.21)

 하나님이 절대사랑 때문에 창조한 물건들을 볼 때 재미있습니다. 미래의 복지 천국을 중심한 가정에서 생활필수요건을 갖추기에 충분하도록 다 만들어 놓았으니 얼마나 재미를 느끼겠느냐 이겁니다. 흐르는 물을 봐도 천지의 기능을 위한 것입니다. 바다에서 수증기 되어 가지고 순환하면서 만물을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전부 협동권 내에서 상충이 아니라 전체가 협력해 가지고 인간의 이상을 완성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활적인 무대로써 하나님의 아들딸을 이 땅 위에서 길러서 천국으로 이양하자는 것입니다.
(284-47, 1997.04.15)

 밤이 자나가게 되면 아침이 오는 것과 같이 반대의 세계가 됐습니다. 통일교회에는 봄이 오고, 사탄 세계에는 저녁, 밤을 향해 지나가는 때가 왔습니다. 그래, 사탄세계는 소망이 없습니다.
  깜깜한 무소망, 절망의 세계이고, 통일교회는 절망인 줄 알고 보니 여명시대를 지나 새로운 아침이 옴으로 말미암아 선명(鮮明)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문선명 진리의 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름 한 번 좋습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이 선(鮮)자는 고기 어(魚)자와 양 양(羊)이니까 육지와 바다를 통일하는 것입니다.
  명(明)은 공중의 해와 달, 공중을 표시했습니다. 문(文)자는 빨리 쓰면 이렇게 아비부(父)자가 됩니다. 아비 부 자와 사촌이 돼 있습니다. 진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아버지라는, 참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면 제일 가까운 자리에 붙어 있습니다. 내가 그것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배우는 것입니다.
(261-64, 199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