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간본성의 참된 생활
① 마음에 동화된 생활을 해야
자기의 제일 가까운 선생이 누구냐 하면 자기 마음입니다. 제일 친한 친구보다도 귀한 것이 자기 마음이고, 어머니 아버지보다도 더 귀한 것이 자기 마음입니다. 마음한테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 자리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불교로 말하면 자성을 맑혀야 된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가 말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란 내가 나한테 물어보면 나에게 하나님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133-178, 1984.07.10)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희생하려고 합니다. 양보하려고 합니다. 주고도 또 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돈이 100억이 있어 길가에 나가서 전부 다 나눠주었다 해도 세계 인류를 못 도와주었기 때문에 돈이 더 있으면 더 나눠주고 싶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일을 했더라도 마음한테 물으면 '더해야 되지!' 이렇게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133-180, 1984.07.10)
자기 마음을 맑혀야 됩니다. 마음을 맑혀야 됩니다. 마음이 선생보다 나은 것입니다. 마음은 영원한 내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사(邪)된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공리에 속한, 공적 자리에 선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133-178, 1984.07.10)
어떤 사람을 척 보면 그 사람이 어떻다는 걸 마음은 대번에 압니다. 벌써 그걸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가까운 선생이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라 이겁니다.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요, 천주의 주인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내 일생의 주인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슬프게 하는 건 내 일생의 주인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길을 가야 됩니다. (133-180, 1984.07.10)
마음하고 즐기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으로 보게 되면 외로운 자리 같지만 마음하고 친구 되는 시간입니다. 마음하고 앉아서 명상이라도 해보라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남모르는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133-181, 1984.07.10)
② 심신일체 이루어야 완성인간
통일교회에서는 심신일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일체화시키느냐 하면 바로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 만든다는 것입니다. 관념과 실제에 대한 문제도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배후가 있습니다. 그것을 해명해 들어가면 바로 이 길이 정당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건 체휼해 보면 증명되는 것입니다. (227-12, 1992.02.10)
양심이 바르다, 행동이 바르다, 심신일체권을 이루고 있다 할 때,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말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행동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심신일체권의 결착점은 어디냐? '우선 90도가 되라. 90도가 되는 데는 모든 세상 가운데 수평으로서 중심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세워라. 서양에 가더라도, 동양에 가더라도 연결될 수 있는 표준적인 인간이 되어라. 그래서 역사적으로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보더라도 그것은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된다.' 이게 결론입니다. (205-49, 1990.07.07)
인간의 귀중한 가치를 만점으로 만드는 것은 참사랑과 일체가 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심신일체는 양심과 육신이 공명권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소리굽쇠의 주파수가 같을 때, 하나를 땡 치면 그 반대의 소리굽쇠가 울립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참사랑으로 양심을 치면 육신이 울리는 것입니다. 참사랑으로 육신을 땡 치면 양심이 공명권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 한가운데 들어가면 가르쳐야 될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223-355, 1991.11.20)
통일교회의 용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심신일체권(心身一體圈)을 이루어야 됩니다. 이 생애 동안에 심신일체권을 어떻게 이루느냐?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사랑을 생각하고 이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천운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완성한 자기 자신을 지향하는 거기에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연결되는 것이지, 그냥 그대로의 기준에 있어서는 새로운 희망의 천국에 연결되는 길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205-45, 1990.07.07)
심신일체를 어떻게 이루느냐? 역사를 통해서 심신이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다고 하면, 그런 하나님은 인간의 적입니다. 자기가 그런 입장에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 가지고, 하나님께 '하나님 자체의 마음과 몸이 인간 같이 싸웁니까?'라고 물어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사람 있어요? 하나님도 인간과 같이 양심과 육신이, 심신 일체되지 않고 싸우고 있느냐고 물어 보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십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경지에 도달한 적이 없으니까 모를지 모르지만, 통일교회 교주로서는 그런 경지를 언제든지 연결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심신일체가 되어 있습니다. (223-349, 1991.11.20)
종교생활은 몸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3년 내지 5년 이내에 습관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 불편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때는 심신일체를 아무리 바라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제1 목표는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통일권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리 세계를 뛰어다녔다 하더라도 자기와 관계를 가질 길은 절대 없는 것입니다. (222-340, 1991.11.07)
인간의 몸은 사탄의 혈통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양심은 아담과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 성장할 때까지 있었던 하나님의 양심의 기준까지 성장해야 됩니다. 그건 신념입니다. 그것과 반대되는 사랑의 힘에 의해, 이 양심 이상의 힘으로 인해 사탄에게 속아 버렸습니다. 양심도 육신의 방향에 따라야 했던 것입니다. 양심 쪽에 더 힘을 줘야 됩니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주게 되면, 육신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양심이 육신보다 약하면 현재의 상태보다 더 밑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금식이라든가 냉수 목욕을 하고 희생과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그래요? 이 길 가고 있어요? 죽더라도 희생과 봉사를 하겠다고 맹세합니까? 그래서 죽을 각오를 하고 반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갈 길, 그것은 굴복의 길입니다. 심신이 싸우는 그 이상의 굴복의 길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는 심신일체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222-333, 1991.11.07)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오래됐다고 해서 죄를 묻어 두면 안 됩니다. 그것을 청산지어야 됩니다. 수속을 밟아 청산해야 됩니다. 내 생애의 모든 것을 백지화시켜서, 거기에서 새로이 부활되어 에덴동산에서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았던 몸 마음이 완전히 참사랑과 하나될 수 있는 본연적인 나라고 자각할 수 있는 남성 여성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알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고향에 못 갑니다.
여러분은 고향집을 찾아가야 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본연적 부모가 계시고, 본연의 우리 집이 있고, 황족권 생활을 중심삼고 만국을 처리할 수 있는 장자권 국가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곳이니, 그곳이 새로운 내 고향집입니다. 자기가 난 그 고향이 아니라 새로운 내 고향집, 본연의 집을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고향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이 심신일체가 돼 가지고 통일권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33-168, 1992.08.01)
암만 잘못했더라도 '하나님, 나 이렇게 잘못했어요!' 이렇게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본연의 마음이 이렇고, 애비의 마음이 이렇고, 스승의 마음이 이렇고, 나라의 백성의 마음이 이렇게 되어야 할 것이 아니오? 이러한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시키려고 충효하는 내 마음이 변치 않을 것이오. 그런 마음을 긍휼히 보시사 오늘 되어진 그 마음 앞에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겠지요?' 이러면 하나님이 '음음'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방법도 알아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149-37, 1986.11.01)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사시는 곳은 도대체 어디겠어요? 하나님은 가장 가치 있는 사랑에 정착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남자 여자의 두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 있겠어요? 하나님은 일체화되고 변하지 않는, 통일된 사랑의 가장 밑바닥에 수직으로 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뭔가 하면 남자 여자가 하나된, 그게 중심점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신비한 기도의 경계, 영적 체험권에 들어가서 '하나님!' 하면 뱃속에서 '왜 부르느냐? 여기 있다, 여기!'라고 대답합니다. '여기'라는 것은 자기의 마음 가운데입니다. 심신일체가 된 사랑의 중심점, 수직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점을 수직이라고 보면, 이것은 영점이라는 것입니다. (224-148, 1991.11.24)
심신일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우주의 힘이 보호해 주는 몸 마음이 되면 부모도 우주의 인연을 가진 부모, 형제도 그런 인연을 가진 형제입니다. 모두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민족, 나라가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멋진 결론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넘어서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그런 일체권을 이루게 되면 거기서도 통합니다. 어디에도 통하는 것입니다. 축구를 할 때 볼이 굴러가다가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 표면 전체가 합할 수 있는 데는 수직선을 통합니다. 그래서 구형체를 이상적인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표면의 어떤 곳에서도 그 수직선이 안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신일체권, 90각도가 되면 어디든지 다 맞습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 할 것 없이 어디든지 다 맞는 것입니다. (205-53, 1990.07.07)
③ 마음이 곧 스승이요, 가까운 하나님
마음은 누구냐? 내 주인입니다. 내 선생입니다. 마음은 누구냐 할 때, 마음을 닮은 몸뚱이를 낳았으니 내 몸뚱이의 근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어머니 아버지 대신입니다. 마음은 부모 대신이요, 스승 대신이요, 그 다음에는 주인 대신입니다. (222-157, 1991.11.03)
여러분의 마음은 스승이 필요 없습니다. 마음은 제2의 하나님입니다. 스승을 따라가지 말고, 통일교회 선생님을 모시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때요?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혼자인데, 쥐새끼 소리도 안 들리고 파리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한데,'아이구, 나 요런 것을 좀 해야 되겠다. 좋은 일을 해야 되겠다.'고 하면 마음이 '좋아! 좋아! 어서 해라! 하지만, 나쁜 생각하면 마음이 '이놈!'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알아요, 몰라요? 알지요.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잘 아는 것입니다. (138-124, 1986.01.19)
마음의 가치, 내게서 마음이 얼마나 비싼 것인가를 생각해 봤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뚱이가 잘못된 곳에 가려고 하면 언제든지 충고를 하고 이러면 안 된다고 다 제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언제나 마음을 공격하고 무시하고 밟아치우고 제멋대로라는 것입니다. 핍박을 당하면서라도 죽을 때까지 나에게 있어서의 전우와 같이, 스승과 같이 주체적 사명을 감당하기에 희생을 치러 나가는 것이 우리의 몸에 달려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느냐 하는 것입니다. (217-91, 1991.05.04)
인간의 주인은 바로 자신의 양심입니다. 이 양심이 얼마나 여러분을 위해서 충고를 했으며, 밤이나 낮이나 나쁜 생각을 할 때는 '야 이놈!'하고 지치지 않고 끌고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려고 얼마나 안달했습니까? 이처럼 마음은 참된 주인의 모습을 지니고 나를 보호하려는 데도 배반한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우주로부터 귀한 스승으로 점지하여 받은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이 선생님을 여지없이 천대한 이 몸뚱이, 또 내 본연의 사랑의 마음을 이어줄 수 있게 한 부모 대신 보내 준 양심을 여지없이 유린한 이 몸뚱이, 이렇게 마음의 원수가 된 이 몸뚱이를 여러분은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201-353, 1990.04.30)
이제 우리가 누구의 말을 들을 때는 지나갔습니다. 어떤 진리보다도, 천만 배 훌륭한 스승의 말보다도 내 마음의 말을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어 그 마음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나도 알 수 없는 무한대의 무엇이 나옵니다. 그것이 창조의 내용입니다. (7-201, 1959.09.06)
양심이 몸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당했습니다. 일생 동안 유린당하는 양심의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요? 밤이나 낮이나 나를 관리하기에 피곤한 것이 양심입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몸이 나쁜 행동을 하려 하면 막는 것입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 아니냐. 내 말 좀 들어야 될 것 아니냐?' 고 합니다. 자기 앞에 제일 가까운, 부모 대신 하나님 대신 스승 대신의 존재가 양심입니다. 마음 자체에게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몸뚱이에게는 교육이 절대 필요합니다. (214-282, 1991.02.03)
여러분의 몸 마음을 중심삼고 볼 때 마음이 얼마나 불쌍해요? 마음은 하나님 대신입니다. 마음은 열조, 선조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스승을 대표하고, 마음은 나랏님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 마음을 얼마나 멸시하고 천대했어요? 우주의 중심으로서 참된 부모의 자리에 있고, 참된 스승의 자리에 있고, 참된 주인의 자리에 있는, 참사랑을 가진 주체로 계시는 분의 대신으로 있는 그 마음이 이 땅 위에 있어서 나 하나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희생했어요? 그렇게 희생하면서도 불평해요? 그저 천대받고 끌려다니면서도, 죽은 줄 알았는데 나쁜 생각을 가지고 새벽에 도둑질이라도 하게 되면 '야, 이놈의 자식아!' 하고 또다시 살아서 충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을 얼마나 농락했어요? 마음은 부모 대신이요, 마음은 스승 대신이요, 마음은 주인 대신입니다. 마음세계에는 공판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제3자, 증인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209-154, 1990.11.28)
내 자신에게 위대한 스승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마음은 위대한 어머니 아버지 대신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마음을 거슬러 훈시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음이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훈계할 때는 복종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런 모든 질서적 환경에 있어서 기원이 될 수 있는 도의적인 결론이 안 나와 있습니다. 그런 공식이 안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잡아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중인격을 좋아해요? 마음은 선생 대신, 부모 대신, 하나님 대신입니다. 마음을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없습니다. (207-266, 1990.11.11)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신 속에 가장 소중한 스승을 일생동안 내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승을 잘못 대우하고 짓밟고 남용합니다. 그 스승이 바로 인간의 양심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우리 자신에도 도움이 되도록 말을 하며 우리를 참사랑과 연결시켜 주고자 합니다. 부모와 같이 우리의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선하고 비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속에는 또한 양심의 소리에 항상 거역하는 반란자가 있습니다. 그 반란자는 바로 육체인 것입니다. (201-208, 1990.04.09)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하는 것이 도의 길을 개척하던 때의 표어였습니다.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세상만사와 어떤 연관을 갖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고 그랬습니다. (201-154, 1990.03.30)
귀중한 3대 손님입니다. 주인이 될 수 있고, 스승이 될 수 있고, 부모가 될 수 있는 이분을 내 몸이 천년만년 모시고도 부족하다 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에 비로소 여기에 천운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몸을 위하고 싶어하지만 몸뚱이는 마음을 위하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201-154, 1990.03.30)
이처럼 마음은 참된 주인의 모습을 지니고 나를 보호하려는데도 배반한 이 몸뚱이, 우주로부터 점지해 받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스승인 데도 불구하고 이 선생님을 여지없이 천대한 이 몸뚱이, 또 내 본연의 사랑의 마음을 이을 수 있게끔 부모 대신 보내진 양심을 여지없이 유린한 이 몸뚱이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원수가 된 이 몸뚱이를 여러분은 사랑합니까? 아닙니다. 몸 마음의 싸움을 말리기 전엔 천국이 없는 겁니다. 어느 성인도 이런 것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201-154, 1990.03.30)
음과 양, 성상과 형상이라는 플러스 마이너스는 상대적이지 상충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는 마음의 소리도 있고 몸의 소리도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태어나야 할 남자나 여자의 마음과 몸이 어떻게 되어서 갈라졌느냐 이겁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서의 표준상인 몸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전체 세계에 동화될 수 있고 하나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갈라졌느냐 이겁니다. 몸과 마음이 갈라진 것이 마음대로 되었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이고, 이상이니 통일이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의 기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195-304, 1989.12.17)
하나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여러분의 주인이지요? 밤에 그저 나쁜 짓 하려 해도 나타나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고, 언제든지 나타나 주인 노릇하고 어디에서든지 어머니같이, 스승같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놈의 몸뚱이가 원수입니다. (201-74, 1990.03.01)
하나님은 누구 닮았다구요? 남자, 여자, 우리 닮았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보이지 않지요? 마음 보고 싶소, 안 보고 싶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입장에서 보게 되면, 하나님도 체(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체가 없습니다. 아담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체가 지금까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 같은 우주에 마음 같은 주인, 마음 같은 스승, 혹은 관리자, 마음 같은 부모로 있습니다. (197-44, 1990.01.07)
여러분, 몸과 마음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기도할 때 몸과 마음이 가책하는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할 때는 혼자는 안 됩니다. 동서남북을 갖춰야 됩니다. 자기의 제일 가까운 사람, 부모 앞에 통고해야 됩니다. 스승 앞에 통고해야 됩니다. 그 다음 자기 아들딸한테, 자기 제자한테 통고해야 됩니다. '나에게 이런 이런 일이 있는데 용서받을까?' 이래서 합심해서 후원할 수 있는 이런 길을 가야 됩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84-301, 1989.01.01)
몸과 마음이 언제 통일될 수 있느냐? 그거 생각 안 했지요?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생동안 몸과 마음이 싸움을 하는데 이 싸움을 말릴 자가 누구냐? 이게 문제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못 말립니다. 임금도 못 말리고, 스승도 못 말립니다. 성인도 못 말립니다. 이 몸과 마음의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주인이 어디 있느뇨? 심각히 찾아봤어요? 그것이 참사랑이라는 겁니다. (184-211, 1989.01.01)
마음은 여러분의 파수꾼이 되어 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여러분을 지켜 주고, 여러분을 쉬지 못하게 자꾸 '선한 일을 해라. 선한 일을 해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피로하겠어요? 난 그날부터, 의식을 생각할 수 있고 사회환경에 있어서 모든 제도를 분석할 수 있는 지능적 기원이 생기는 그날부터 일생을 따라다니면서, 자기 스승도 못 따라가고 어머니 아버지도 못 따라 주지만 난 그날부터 죽을 때까지 영원히 양심은 나에 대해서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닮아라, 성인 닮아라, 애국자 닮아라, 효자 닮아라. 그와 마찬가지로 닮기를 바라는 것인데 '몸뚱이 너는 나를 닮아라!' 한다는 것입니다. (179-311, 1988.08.14)
여러분의 몸과 마음의 통일도 참사랑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몸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또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스승 중의 스승이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이 당신을 대신해서 파송해 준 내 중심입니다. 종적인 나입니다. (226-60, 1992.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