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은 원인되는 존재가 아니다
① 본래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인간
본래 우리 인간은 자의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 부모면 부모 자신들이 이러이러한 아들딸을 낳겠다는 계획 아래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부모의 요구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섭리를 중심삼고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근원을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 인간은 섭리의 기원과 일치되고, 그 기원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역사와 관계를 맺는 중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하나의 생명체로 이 땅 위에 보내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에 있는 나 자신,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하나의 개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34-155, 1970.09.06)
인간 자체가, 자기가 태어난 것이나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기원이 어디냐? 이 대우주 원칙 앞에 인간을 주장할 수 있는 기원은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우리 인간은 태어난 결과적 존재인데, 결과적 존재가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정신 빠진 녀석들입니다. 전부 다 미치광이라는 것입니다. (83-191, 1976.02.08)
태어나기를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었고,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하는 문제, 그 결론은 간단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아무 것도 아닌 모양의 나 같은 존재는 있으나 없으나다'하고 생각하지요? 그러지 말아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데는 부모 앞에 자식이 잘났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야 못났든 잘났든 사랑하는 것입니다. 병신자식을 둔 부모의 가슴이 더 아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지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은 여러분이 잘나고 못난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본성에 사랑의 그 바탕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왜 지음을 받았고 우주는 왜 창조되었느냐 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이상을 완성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0-44, 1983.12.11)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지었고, 하나님이 나를 왜 지었어요? 사랑 때문입니다. 나는 왜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나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가정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사회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국가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세계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97-266, 1978.03.19)
나라는 것은 부모에게서 무엇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느냐? 생명의 연결체로서 태어났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력의 가치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력은 사랑에 의해서, 그 생명력과 사랑은 우주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서의 어떤 목적, 대우주목적의 협조체로서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생명력을 중심삼은 결합에 의해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110-72, 1980.11.09)
우리가 태어나길 왜 태어났다구요? 무엇 때문에 태어났다구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여기서 '꽝!' 하면 하나님의 머리에 '띵!' 하고 통할 수 있는 그 사랑이다 이겁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가지고 못에다 '빵!' 던지면 파문이 못 가장자리로 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우주 가운데 사랑을 '팡!' 던지면 온 우주에 파문이 일 것이다 이겁니다. 그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103-254, 1979.03.04)
하나님은 누구냐? 창조주다. 창조주는 누구냐? 종교세계에서 개념을 잡기를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러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무슨 아버지예요? 어떻게 된 아버지예요? 이게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빌려 온 아버지예요, 이웃 동네 아버지예요, 뭐 양아버지예요, 무슨 부모예요? 그렇지 않으면 처갓집 부모예요, 시집 부모예요? 아버지라는 말은 다양합니다. 근본을 해결 못하고는 아무리 환경이 확대된 그 세계에서 해결하려 했댔자 그것은 해결이 안 나는 것입니다. 천만 년을 가도 해결이 안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느껴져요? 나보다도, 내가 있기 전에 더 확실한 것이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나보다 먼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게 될 때는, 내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고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올바른 정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제쳐 버리고 내가 있다고 하는 주장은 어리석은 주장입니다. (188-190, 1989.02.26)
인간은 제1의 원인적 존재가 아닙니다. 제2의 결과적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있음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근본에 들어가서 우주의 근본되는 하나님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맨 최초로 해결지어 놓아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어머니 이상, 아버지 이상, 조상 조상 해서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되지요? 이런 논리를 추구한다면 나를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을 결정지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다, 그는 내 아버지다, 그 아버지는 어떠한 아버지다 하는 것을.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188-190, 1989.02.26)
본연의 출발점을 바로 잡아라, 바로 찾아라 이겁니다. 인간은 결과적 존재이므로 원인의 기점에 갖다 맞춰라 이겁니다. 원인의 기점을 맞추되, 그 기점이 맹목적 기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이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도 지정의의 모든 양심적 작용의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기도 원인적 내용 이상의 동기여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한번 출발한 것이 그릇되었다면 영원히 시정할 수 없습니다. (172-32, 1988.01.03)
② 인간이 태어난 본연의 목적
하나님은 우주의 제일 원인이시며 삼라만상의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그 목적은 바로 사랑의 구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근원이시지만, 아무리 전능한 하나님이실지라도 혼자서는 결코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며 그 대상으로부터 자발적인 사랑을 돌려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대상으로서 최고의 피조물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숙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참사랑의 관계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근본원리인 것입니다. (166-131, 1987.06.01)
잘사는 것도 중요하고 무엇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는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효의 도리를 해야 됩니다.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충의 도리를 해야 됩니다. 종적인 하늘부모 앞에 성인 이상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태어난 본래의 목적입니다. 또, 그러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58-231, 1972.06.11)
인생이 참되게 갈 길이 어디냐? 인간이 어디서 태어났느냐? 사랑에서 태어났고, 인생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사랑의 길을 가야 되고, 어떻게 죽어야 되느냐?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소우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공인하고, 모든 사람이 공인하고,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 가운데서 태어나고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그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83-164, 1976.02.08)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즉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나는 아들입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12-104, 1962.12.16)
선생님이 언젠가 길을 가다가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가긴 어딜 가. 내 아들네 집에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가시면 무엇을 하십니까?'하고 다시 물으니 '주는 밥을 먹고 어쩌다 닭 잡아주면 닭도 맛있게 먹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러면 먹고 나서 무엇을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먹고 나면 별거 없지.' 이런 식의 대답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보내서야 되겠습니까? (19-289, 1968.03.10)
가게의 장부를 정리할 때에도 수입이 얼마이고, 지출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결산을 합니다. 이렇게 장부를 정리하는 데에도 수지결산을 철저히 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은 어떠합니까? 일생 동안 산 것을 수지결산 해 보았습니까? 적자입니까, 흑자입니까? 적자라면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는 자리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살려고 허덕이는 것은 적자 인생이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절대성을 중심삼고 심정의 세계에 있어서 흑자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19-289, 1968.03.10)
인간은 누구를 위해 사느냐? '나를 위해 살지.'하면 그것은 낙방입니다. 자기를 위해 산다는 사람 앞에 가정이 있을 수 있어요? 소망의 가정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가 있을 수 있어요? 나라는 안 나옵니다. 거기에 세계가 있을 수 있어요?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가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천지의 공약은 '이 개인주의 악당이여 물러가라!' 하고 제지하는 것입니다. 개인을 위주하는데 거기에 가정이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에 어떤 이상적인 나라가 들어갈 수 있어요? 송곳 끝같이 좁은 데를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57-66, 1972.05.28)
여러분은 사랑을 알아야 됩니다. 모든 것이 이동하는 목적, 존재하는 목적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서 움직이고, 사랑을 찾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이 철칙을 여러분은 언제나 갖고 있어야 됩니다. 새들이 서로 좋아하고 짹짹거리며 날아다니는 것도 사랑 때문이며, 지남철의 플러스 마이너스가 서로 합하는 것도 사랑으로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전부 다 누구를 만나고 하는 것도 하나되기 위해서입니다. (67-159, 1973.06.01)
③ 사랑 때문에 산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사람이 어디로부터,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나님 중심한) 때문에, 사랑으로 말미암아 태어났으니 사랑의 길을 찾아서 사랑의 목적지로 가는 것입니다. 이러면 순환법 도상에서 영원히 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개념이기 때문에 사랑을 찾아서 이 중심에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에서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125-65, 1983.03.06)
내가 일생동안 사는 것은 나 때문에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 목적 때문에 이동하고 살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멋져요?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힘드는 일이 있고, 눈물이 있고, 혹은 비참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비참이 아니요, 비통이 아니요, 슬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원칙을 알아야 합니다. (67-159, 1973.06.01)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절대적인 참사랑, 참사랑을 위해서 살자! 여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지갑에 있는 손수건도 사랑을 위해서 있다, 내가 일하는 것도, 땀을 흘리는 것도 사랑을 위해, 참사랑을 위해서 한다 이겁니다. 내가 말하는 것도 참사랑을 위하고, 먹는 것도 참사랑을 위하고, 노는 것도 참사랑을 위하고, 전부 다 그러는 것입니다. (107-205, 1980.05.01)
인간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되느냐? 개인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가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국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늘땅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합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목적이 최후에 남을 것인가? 개인을 위주하는 것은 흘러가는 것이요, 가정을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단체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나라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세계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맨 나중까지 남을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신(神)과 인간(人間)이 합동해서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그런 목적만이 인간 역사의 최후에까지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41-323, 1971.02.18)
여러분의 마음이 최후에 안착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을 찾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해도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은 안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최후의 종착점은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만사가 허사입니다. (24-17, 1969.06.22)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늘의 중심이 되는 그분과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분과 만나는데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사는데 어떤 자리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과는 중심의 자리에서 만나고 중심의 자리에서 살자는 것인데, 그 중심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천운을 따라가서 하나님과 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24-17, 1969.06.22)
인간이 최후에 도달하고 싶은 것은 최고 되시는 분의 사랑의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인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65-46, 1972.11.13)
본래 인간의 특권은 누구를 막론하고 천상왕국세계에 있어서 황태자로 태어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공주로 태어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의 권위였습니다. (68-326, 1973.08.05)
심정을 통하게 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문화의 배경이나 역사적인 환경, 혹은 시대의 위치 여하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떠한 것들로도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하늘의 목적과 땅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을 아는 데에 있어서만이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15-83, 1965.09.29)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해서 그것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이념에 대한 새로운 가치 혹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 가치관이 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출발하게 될 때, 그 가치관은 인간을 중심삼은 가치관과는 모체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을 중심삼고 세워져 있는 가치관과 다른 것입니다. (44-227, 1971.05.23)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 확실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그 가치관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세계로 돌아가자, 이상세계로 돌아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세계도 없는 것이요, 행복의 세계도 없는 것이요, 영원한 세계도 없는 것이요, 사랑의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그 모든 행복의 요인,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요건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워하고, 이것을 찾아 나온 것이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종교라는 기관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68-138, 1973.07.29)
우리 통일교회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함과 더불어 참부모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그 기준이 어디가 종착점이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영원한 사랑을 지닐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 하나님이 허락한 자리에서 상대이상을 묶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 멋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서 관계를 갖고 출발할 수 있는 것은 부자의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졌으니, 몰락되었으니 그것을 표준하여 다시 꿰매지 않으면 안 됩니다. (68-138, 1973.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