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참된 인간이 가는 길
①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
본성의 마음이 가는 길을 가면 우주가 하나로 벌어집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자기 마음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는 마음과 말을 합니다. 뭘 하려고 생각하면 벌써 답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갈 길을 모르겠어요? 벌써 갈 길이 확실해서 우주의 모든 작용의 힘들이 돕는다는 것입니다. 손을 끌고 시험장에 들어가게 되면 벌써 모든 것이 협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0-313, 1982.10.20)
위대한 힘의 배경을 갖고 살 수 있는 인간이 참된 인간입니다. 참된 인간은 그렇게 무한한 힘의 백그라운드(background:배경)가 있어 가지고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무한히 밀어 준다는 것입니다. 방향이 틀리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통일교회는 껄렁껄렁한 통일교회가 아닙니다. 깊고 높은 배경, 위대한 힘의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노력을 중심삼고 이런 경지를 연결지어서 올라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여러분들이 갈 방향감각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건 자기가 해야 됩니다.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것입니다. (120-313, 1982.10.20)
자기가 갈 길을 찾아가야 됩니다. 돈만 가지면 다 되느냐? 그게 아닙니다. 돈이 필요할 때가 있고, 또 사람으로서 자기가 가야 할, 다른 길을 가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갈 길은 자기가 결정해야 됩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 깊은 속에서 본래 자기가 타고난 본질과 더불어 화합해 가지고 미래의 목적을 지향할 수 있는, 하늘이 있으면 하늘이 그 방향을 제시하게끔 해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야 됩니다. (120-298, 1982.10.20)
자석은 지구의 인력을 능가한 작용으로 나타나게끔 되어 있는데, 그와 같은 작용은 무엇으로 가능하냐? 지구 중력 이하의 작용으로서 그 작용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양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면 벌써 자기가 태어난 배경을 딱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판정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을 감각하고 판정하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앞으로 큰 일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120-301, 1982.10.20)
우리가 자연을 보고 '아, 나는 4계절 필요 없다. 나는 봄만 필요하지,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은 싫어!' 하겠지만, 하나님한테 물어 보면 '난 4계절을 다 좋아한다.'고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싫더라도 여름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고,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하나님은 흰눈이 세계적으로 쌓인 걸 볼 때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 나도 좋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133-29, 1984.07.01)
하나님 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홍수가 나고 벼락이 치고 할 때는 '아이구, 저거 나는 싫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허, 저거 키스하고 결혼하는구만!'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싫다는 사람들한테 '하하하하, 네 이 녀석들아! 못된 녀석들아!' 한다는 겁니다. (133-29, 1984.07.01)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 가운데에서도 오색인종을 다 사랑해야 됩니다. '어, 나는 백인들만 좋아' 하나님이 그럴까요? 그러면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백인들은 전부 다 흰옷만 입어야 됩니다. 색깔 있는 옷은 전부 다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검정 옷은 왜 입어요? 색깔이 있는 옷은 왜 입어요? 그게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방에 들어가면 울긋불긋한 게 다 있는데, 피아노 같은 것도 전부 다 시꺼먼데 왜 갖다 놓았어요? 흑판 같은 것도 왜 갖다 놓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밤도 없어야 됩니다. 새카만 밤도 없어야 됩니다. 왜 그래요? 백인 중심이예요? 백인 위주가 뭐예요, 그게? 망할 길입니다. 그게 몇 해나 갈 것 같아요? 얼마나 갈 것 같아요? 겨울이 암만 길더라도 석 달밖에 못 갑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여러분은 모든 4계절을 다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백인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133-29, 1984.07.01)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전부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뿐만 아니라 왔다 간 과거-현재-미래의 인류를 사랑해 주는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에 간 영인들끼리 해방해 주는 운동을 하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진리의 길을 가야 되고, 생명의 길을 가야 되고, 사랑의 길을 가야 됩니다.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위하는 기반이 없으면 모든 것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자연히 주체가 됩니다. 참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33-30, 1984.07.01)
여러분들 자신이 내가 어떤 길을 가야 되는지를 알고 가야 된다 이겁니다. 방향을 딱 정했으면 그걸 중심삼고 있는 정력을 다 투입하는 것입니다. 피곤해 가지고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귀가 듣지 못할 정도로 모든 걸 투입해야 합니다. (120-315, 1982.10.20)
통일교회에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내가 뭘해야 되는지 벌써 알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자기 생각을 중심삼고 행동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배에 있던 쥐새끼도 파도가 심하게 치면 배가 파손될 걸 알고 벌써 줄을 타고 배가 떠나기 전에 다 부둣가로 나갑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걸 모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갈 길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미도 장마가 질 걸 다 알잖아요? 개미가 행렬을 짓고 이사하는 걸 봤는데 개미들은 다 알더라는 겁니다. 쓸데없는 공상이나 하고 다 그러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의 분야를 모른다는 사실은 심각한 것입니다. 심각하게 중요한 일생문제를 하늘과 더불어 타협해야 됩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환경적 여건에 적응해야 됩니다. 그걸 누가 해야 돼요? 그것은 어차피 자기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120-298, 1982.10.20)
사람은 침착하면 마음 깊은 거기에 마음이 가라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마음이 잘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까지 내 마음이 들어가야 됩니다. 거기서 자고 깨게 될 때에는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잡생각을 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면 모든 것이 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120-306, 1982.10.20)
선생님도 기도합니다. 정성을 들입니다. 언제나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정성은 언제 한 번 들여 가지고 써먹는 게 아닙니다. 칼은 언제나 갈아야 됩니다. 칼을 한 번 쓰고 안 갈면 어떻게 되겠어요? 언제나 갈아야 됩니다. 한 번 격해 가지고 화를 냈으면 언제나 갈아 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조용히 마음의 자리를 잡아 놔야 됩니다. (120-306, 1982.10.20)
심정의 세계의 중앙에 가면 내려갔다 올라갔다 운동하게 됩니다. 자동적으로 운동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숨을 쉰다는 것입니다. 지구도 숨쉰다는 걸 알아요? 지구도 1미터 가까이 숨을 쉽니다. 이러면서 조정하고 있습니다. 원형으로 구부러진 것을 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도 중앙은 전부 다 축을 중심삼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것입니다. (120-306, 1982.10.20)
모든 존재물은 타원형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심정의 중심 복판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서 무한한 힘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90각도만 만들면 무한한 힘을 90각도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를 닦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 세상의 모든 면에서 깊은 심령세계를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살아가는데 추진력을 무한히 보급 받을 수 있는 하나의 원천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120-308, 1982.10.20)
선생님도 선생님 자신이 지금 갖고 있는 힘보다도 더 큰 세계적인 일을 할 때는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더 큰 힘이 필요할 때에는 그걸 어디서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못 가져올 때에는 그걸 어디서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못 가져올 때에는 후퇴해야 되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필요하고,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가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는 암만 끌어내도 끝이 없습니다. 물질의 세계도 끝이 나고, 지식의 세계도 끝이 나고, 권력의 세계도 전부 다 붕괴될 수 있지만, 심정의 세계는 무한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세계를 중심삼고 움직여야 됩니다. (120-306, 1982.10.20)
하나님은 독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위해 투입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 앞에 있는 것은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년만년 하나님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천리의 우주의 존재세계 앞에 자기 스스로의 존재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위하는 데 있어서 동서양을 통할 수 있고, 고금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 같은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양 서양을 극복할 수 있고, 과거-현재-미래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극복할 수 있으니 언제나 발전할 수 있다, 동서양을 극복하니 동서양을 통일할 수 있다 이겁니다. 이건 사랑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187-89, 1989.01.06)
자기 주장할 때는 자기 파괴, 상대 파괴, 하나님 파괴, 완전히 분리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통일적 이론을 발굴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가 이상을 찾아가는 최후에는, 궁극에 가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종적인 통일을 요구하는데, 그 종적 기준이 어서 오라고 당겨 줄 수 있는 놀음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위해야 됩니다. 위하는 데서 완전히 통일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87-89, 1989.01.06)
어떻게 통일이 되느냐? 선생님이 어떻게 통일하느냐? 무엇으로? 주먹으로, 힘으로, 돈으로, 권력으로, 지식으로? 사랑을 중심삼은 위하는 자리에서 만사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하지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위해 가는데 있어서 악마의 세계가 하늘나라로 재창조되어 나간다는 결론입니다. 그거 이론적입니다. (182-134, 1988.10.16)
② 참된 인간의 갈 길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작용하자는 것은 악을 가져오지만, 전체를 위해 작용하자는 것은 발전을 가져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전체를 위해서 가는 데는 모든 것이 문을 연다는 것입니다. 개인도 문을 열고, 가정도 문을 열고, 종족도 문을 열고, 민족도 문을 열고, 세계도 문을 열고, 하늘나라도 문을 열고, 사랑의 길이나 모든 길이 문을 열고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길이 무엇일 것이냐? 이걸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러한 관점에서 위해서 가는 길을 취해라, 위해서 살라, 위해 태어났다 하는 천리(天理)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133-16, 1984.07.01)
참된 인생이 가는 길은 뭐냐? 하나의 공리로 세워야 할 것은 위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원칙이니까 만고불변입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없기 때문에 위해 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공자님이나 예수님이나 석가모니나 마호메트 같은 모든 성자라는 사람 앞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당신들 어떻게 생각하오?'하면, '그게 옳습니다!' 하겠어요, '그게 옳지 않습니다.' 하겠어요? 옳다고 합니다. 그게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것이 인생살이, 인간이 사는 데 있어서 참된 모습으로 살 수 있는 하나의 법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참된 길이 있는 것입니다. (133-16, 1984.07.01)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륜도덕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중심삼고는 나라를 넘지 못합니다. 나라를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천주사상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38-260, 1970.01.08)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이 무엇을 소개했느냐 하면, 인간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신을 소개했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을 보면 신을 숭상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신을 빼놓고 성인이 된 사람 있어요? (39-316, 1971.01.16)
또, 성인들은 인륜의 도리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천륜의 도리를 겸하여 가르쳐 준 것입니다. (33-291, 39-316) (33-291, 1970.08.21)
가정에서 부모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효자요, 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 뭐예요? 하나님과 세계와 우주를 사랑하는 성자(聖子)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될 거예요? 성자가 될 거예요, 효자 효녀가 될 거예요? 그러려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마음에 가져야 됩니다. (129-99, 1983.10.01)
하나님은 짧은 생애를 살다 가는 인간 앞에 제일 좋은 표어, 제일 좋은 과제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과제로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을 표어로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 누구도 되지 못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날에는 성인완성은 물론이요, 충신완성도 물론이요, 효자완성도 물론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정에서도 승리한 자리에 서는 것이요, 국가적 기반에서도 승리한 자가 되는 것이요, 세계적 기반에서도 승리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100-157, 1978.10.09)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위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위인 앞에는 원수가 있지만 성인 앞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위인은 자기 민족만 사랑한 사람이지만 성인은 인류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위인이 하나님 앞에 나서게 될 때 '너는 네 민족은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내가 찾는 세계인류를 사랑하지 못했지 않느냐'고 하면 나갈 수 없지만, 성인의 도리를 따라간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직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거라구요? 위인 만들자는 거예요, 성인 만들자는 거예요? (38-263, 1971.01.08)
우주를 만든 하나님은, 우주의 법도를 세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온 우주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위해 사는 대표적인 자리에 선 분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려면 위해 살아야 됩니다. 그분은 지식의 대왕이지만 지식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능력의 대왕이지만 능력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대한, 돈에 대한, 물질에 대한 주인이요 대왕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해서 오면 전부가 올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133-16, 1984.07.01)
③ 위하는 법도를 세운 이유
우리가 생각하기를,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말은 혼자로서는 성립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리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하더라도 그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과 행복과 평화는 홀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성사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성사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행복과 평화를 완결지을 수 있는 대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혼자 사랑해서는 무엇하며, 하나님 혼자서 이상해서는 뭣합니까? 반드시 상대적인 인간을 통하지 않고는 이러한 요건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75-315, 1975.01.16)
지혜의 왕이시고 전체의 중심이신 하나님이 참다운 사랑이나, 참다운 이상이나, 참다운 행복이나, 참다운 평화의 기원을 주체와 대상, 이 양자 사이의 어디에 두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가 계신 반면 대상이 있는데, 주체를 위하는 길과 대상을 위하는 길, 이 두 길 가운데 이상의 요건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이상, 참된 사랑, 참된 평화에 있어서 주체를 중심으로 하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대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은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운다면, 하나님이 그러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떠한 대상을 지닐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립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75-318, 1975.01.16)
하나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된 인간은 위해서 사는 존재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평화, 참된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지창조의 근본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몰랐습니다. (75-318, 1975.01.16)
남자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은데도 자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 나'라는 이 사상을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이것만 깨뜨려 버리면 통일의 세계는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61-266, 1972.09.01)
자기의 가치를 자기에게서 추구하기보다는 상대에게서, 즉 상대적 기준에서 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탐구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심정의 터전은 상대권을 가졌기 때문에 가나 오나 그는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59-200, 1972.07.16)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우선 여러분들에게 묻겠는데, 만일 여러분들을 위해서 누군가가 진정으로 생명을 다하고 희생을 다하면서 100퍼센트 은사를 베푼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의 본심이 그 은사를 갚는데 50퍼센트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50퍼센트만 갚고 싶습니까, 아니면 있는 대로 다 갚고 싶습니까? 우리의 본심이 어떻게 작용해요? 누구나 더 갚고 싶어하는 것이 본심입니다.
주는 대로 진정 사랑하는 가운데서 준 것을 안다면 100퍼센트 이상을 돌려보낸다는 것입니다. 100퍼센트가 110퍼센트로 돌아오고 그 110퍼센트 돌아온 것은 또 그쪽에서 진정으로 주었기 때문에 120퍼센트로 갚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영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발전과 번창이 생기는 것입니다. (73-326, 1974.08.10)
이상과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은 이런 것이 자기의 것으로 자기에게 나타나는 줄 아는 것, 이것이 큰 오해라는 겁니다. 사랑과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대상에게서 옵니다. 대상에게서 오기 때문에 위하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왕 되신 하나님은 이런 모든 결과를 아시기 때문에 그런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3-326, 1974.08.10)
영원이라는 개념, 이것은 자기를 위하는 데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운동하는 것을 보더라도 밀어 주고 끌어 주는 상대적 방향이 크면 클수록 빨리 도는 것입니다.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위해서 존재하는 법도를 세운 것은 영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세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75-322, 1975.01.16)
우리들 가운데 남에게 주관(主管)받는 것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더욱이 식자층에 있는 고명한 분에게서 이런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이제까지의 인간들이 위해서 존재하는 그 앞에 주관받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영계의 조직을 보면 천지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주 만유의 존재 가운데 위해 존재하는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그 분에게 지배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천년만년 지배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이상적 통일권이 여기에 성립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해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5-322, 1975.01.16)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생명보다도 귀한 사랑과 이상을 찾으려면 대상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이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고귀한 사랑과 이상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대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히 그 고귀한 사랑과 이상을 받아들이려니 가장 위하는 자리가 아니고는 안 되므로 하나님은 위해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75-322, 1975.01.16)
사랑은 혼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나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대상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내가 머리를 숙이고 대상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위하여 살라!' 고 하는 천리가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귀한 것이 나에게로 찾아오는데, 그것을 받으려니 높이고 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하는 철학'을 이루어야 사랑받는 것입니다. (143-277, 1986.03.20)
참사랑은 주고 잊어버리고 또 주는 사랑입니다. 거짓사랑은 주고 보태서 장사하는 사랑이요, 주었으니 너는 그 이상 갚아라, 하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사탄 사랑입니다. (138-172, 1986.01.21)
우리의 본향(本鄕)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이요, 위해서 나고,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어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 본향(本鄕)의 이상적 구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본향에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역사과정에 수많은 종교를 세워 가지고 훈련시켜 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종교가 온유 겸손해야 되며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유는 영계에 돌아가야 할 인간들에게 영계의 법도가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지상생활 과정에서 그 영계에 알맞도록 훈련시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보다 차원 높은 희생을 강조하고 봉사를 강조하게 되는 것은, 평소의 생활을 통해 그 세계에 일치시키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75-320, 1975.01.16)
흔히 세상에서 말하기를, 아! 인생이 무엇이냐고 하는데 인생관(人生觀), 국가관(國家觀), 세계관(世界觀)의 확립, 그 다음엔 우주관(宇宙觀)에 대한 확립, 더 나아가서는 신관(神觀)의 확립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계통적 단계와 질서를 어디에다 둘 것이며, 그 차원적 계열(次元的 系列)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위해 존재한다는 이 원칙에 입각해서 보게 될 때에 가장 가치 있는 인생관은 내가 전 인류를 위해 있고, 전세계를 위해 있고, 국가를 위해 있고, 사회를 위해 있고, 가정을 위해 있고, 아내를 위해 있고, 자녀를 위해 있다는 입장에서 행복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이상의 인생관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75-324, 197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