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주의 근본은 사랑이다
① 우주의 중심은 사랑이다
이 우주 전체, 하늘나라 전체의 중심축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근본이요, 혈통의 근본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사랑의 축을 따라서 운동을 합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그냥 하지 않습니다. 운동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고 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위치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과 관계를 맺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실적으로 존속하고 싶은 것이 모든 운동하는 것의 목적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작용이라는 것은 그냥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08-79, 1990.11.17)
우주의 근본은 사랑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사랑이 중심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절대적인 하나님도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싶은 이상향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복종하는 곳에 완전한 행복이 있으며, 완전한 해방이 있는 곳에 완전한 행복이 있습니다. (198-237, 1990.02.03)
우주의 근본의 동기가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이겠느냐? 남자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동기는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시작이요, 끝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진대, 그 가운데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거 왜 그럴까요? 그걸 풀지 못했습니다. (185-157, 1989.01.08)
왜 참사랑을 해야 하느냐? 우주의 근본이 참사랑의 원칙에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통하면 우주의 모든 전체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론적입니다. 그래서 하나가 위라면 하나는 아래고, 하나가 오른쪽이라면 하나는 왼쪽이 되는 것입니다. 광물세계?식물세계?동물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서로 주려고 하는 그런 세계가 기원이 되어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로 주려고 하면서 존재하는 것이 우주입니다.
이런 논리에서, 보다 차원 높은 큰 존재에 전부 다 흡수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 존속의 원천은 어디냐? 보다 높은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자 하는 운동권 내에서 작용하는 것이 우주적인 존재입니다. (128-291, 1983.09.11)
우주가 존속하는 원칙은 이상적인 근본의 사랑과 접속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요, 종적 횡적 모든 구형적인 전체 방향성의 운동권 내에 소속한 속성이었더라 이겁니다. 그러면 그 부모 앞에 여러분은 어때야 합니까? 거기에 보답해야 됩니다. 상대가 돼야지요? 하나되려면 부모와 같이 상대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참사랑의 상대가 될 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없이는 완전히 통일할 수 없습니다. (288-89, 1997.11.16)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은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요, 몸과 마찬가지의 실체를 상징형으로 그림자와 같이 보내준 것이 이 우주만상입니다. 이 우주만상은 무엇을 표방하고 지었느냐 하면, 하나님 자체를 표방하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상적이나, 상징적인 위치에 있을 뿐이지, 그 근본 주체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153-119, 1963.11.15)
우주의 근본이 어디에서 시작했느냐? 진화론도 아니요, 창조론도 아닙니다. 진화보다 먼저 창조의 개념이 있기 전에 수놈과 암놈이 있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 수놈과 암놈은 왜 생겼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이것이 공식입니다. (280-60, 1996.11.01)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훌륭한 사랑의 파트너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사랑의 상대가 여러분보다 잘나기를 바라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주체와 대상으로 완전히 하나되어 있는 것인데, 그것이 창조의 근본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둘이 완성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해방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자리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뒹굴고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얼마나 즐거운 세계이겠습니까? (276-123, 1996.02.11)
집을 지을 때는 수평이 맞아야 되고 수직이 맞아야 됩니다. 안 맞으면 다 넘어지지요?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근본문제에 들어간다 이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하늘 보좌에서 '아이구! 나 사랑 좋다.' 하고 노래합니까? 문총재 혼자 춤추고 이렇게 땀을 흘리면 미친 사람 아니예요? 손수건 하나 보면서 춤을 춘다고 해도 미친 것이 아닙니다. 요것 10분의 1, 100분의 1 되는 요만큼 되는 것을 보고 춤을 추고 웃고 하더라도 그건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창조는 상대가치의 절대기준에 해당하는 가치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179-229, 1988.08.12)
아담과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이 결혼시켜 줌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해와의 몸 가운데 성상과 형상,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이 들어가 우리의 마음 자리에 창조주요, 아버지 몸 자리에 창조물이 됨으로써 아버지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참사랑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참사랑을 중심삼고 형상이 이루어지고 가정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모르면 우주의 근본을 모르는 것입니다. (286-16, 1997.07.01)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돈을 가지고 세계의 제일 대표자가 되겠다, 권력을 가지고 제일 대표자가 되겠다, 지식을 가지고 제일 대표자가 되겠다는 등의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주의 근본되는 하나님으로부터 관계되어 있는 모든 물건들은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대표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바라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79-33, 1988.07.03)
여러분, 사랑 좋다고 그러지요? 사랑 찾아 가잖아요? 어떻게 찾아가는 것이 우주의 근본되는 그 공식에 맞는 사랑의 직선길, 지름길이냐 이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184-58, 1988.11.13)
이 우주의 근본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절대자입니다. 그러나 힘이 있습니다. 힘이 근본이 아닙니다. 지식이 근본이 아닙니다. 그러면 돈? 이건 저세계에서 보면 퇴폐적인 뭐라고 할까? 폐물을 주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폐품 수집 다니는 사람들이 돈 모으겠다는 사람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돈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돈 안 씁니다. (191-18, 1989.06.24)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백 퍼센트 투입했습니다. 그러면 왜 투입했느냐, 지혜의 왕인데? 완전히 투입해서 하나님은 영(零)의 자리, 무(無)가 되고 저기는 120이 되니, 기압으로 말하면 여기는 저기압 중의 저기압인 진공상태가 되고, 저쪽은 고기압이 되니 휘익 순환작용이 일어나 자동적인 발전원칙, 자동적인 운동원칙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자꾸 밀어넣으면 이쪽으로 해서 감싸지요? 자기를 포위하는 그런 놀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본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런 원칙에 의해서 이렇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196-320, 1990.01.12)
근본은 개인입니다. 개인에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종족도 전부 다 말입니다. 근본은 아무리 작게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각도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90각도. 그래서 이것을 종대로 해서 참사랑, 참사랑, 참사랑, 참사랑, 참사랑 이렇게 되어서 지구성 전체가 참사랑으로 하나되며, 우주든 어느 곳이든 참사랑으로 꽉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든지 '좋아! 당신은 나와 닮았다!' 하게 되며, 어느 곳에 가도 종적으로나 횡적으로나 똑같게 되는 것입니다. (207-58, 1990.10.28)
인간은 역사를 통해서 우주를 넘어가더라도 사랑을 필요로 하고, 낮이나 밤이나 어디를 가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죽어서나 언제든지 사랑의 관념을 떠날 수 없게 된 존재입니다. 왜 그러냐?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지금이라도 창조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사랑이 없으면 행사할 수 없습니다. 발전소와 같은 그런 사랑의 원동력을 중심삼고 전부 가는 것입니다. (133-64, 1984.07.08)
사랑도 물론 하나님이 만들 수 있다고 보지만 그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은 혼자 못 합니다. 둘이 소유해야 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혼자 못 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이, 측정 원기가 뭐냐? 우주만상 존재세계, 영원세계에 측정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원기,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근본 문제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건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영향을 안 받습니다. 안 받아야 됩니다. (137-235, 1986.01.03)
왜 사랑의 줄에 매여 살게 되어 있느냐? 하나님도 좋아하고 우주도 좋아하고 이 세계도 화합할 수 있는 사랑줄에 인간이 매여 살게끔 되어 있는데, 그런 사랑줄에 안 매여 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없는데 생활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근본이 틀렸는데 결과가 행복할 수 있습니까? 역사는 이런 관계로 돼 있습니다. (138-265, 1986.01.24)
몸과 마음이 하나된 그 자리에 들어가면, 그 자리는 석가모니가 경험한 자리입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그 경지에 들어갑니다. 그 가운데 들어가면, 사랑의 구형 내의 모든 힘은 이 중심을 통하지 않고는 작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은 작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모든 작용은 이것을 기본으로 삼고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중심삼은 축이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곧 핵심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간끼리 엮어진 사랑, 가정을 중심삼은 사랑, 가정을 중심삼고 확대된 종족, 민족, 국가의 사랑, 혹은 성인이 가르쳐 준 사랑을 가지고는 그 근본을 깨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41-113, 1986.02.19)
우주 근본에 있어서 생명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이렇게 볼 때, 그걸 따지고 들어가면 생명이 먼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인데,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이 존속하는 데는 어떤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무슨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은 평화의 기반 위에서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평화의 기반 설정은 무엇이 하느냐? 생명이 하느냐, 다른 무엇이 하느냐? 그것이 또 문제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이 높고 낮음을 초월하고, 공통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질서적 단계를 초월한 그 무엇입니다. 그것이 뭐냐? 참된 사랑입니다. (1988.02.07)
여러분, 세포 번식이라는 것 알지요? 이거 하나를 똑 따더라도 그 자리에 다시 눈이 나오고, 코가 나오고, 다 나오는 것입니다. 머리카락도 나오고, 발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모든 것이 다 똑같이 그렇습니다. 참사랑과 연결된 세포는 우주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참사랑이 그래야 되느냐? 참사랑은 원인인 동시에 결과이고, 근본인 동시에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216-288, 1991.04.14)
사랑은 우주로부터 시작해서 어떠한 존재든지 인연을 갖지 않은 존재가 없습니다. 미물인 풀 한 포기도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산다는 것입니다. 광물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을 중심삼고 생겨나서 다 사랑 때문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289-129, 1998.01.01)
참사랑으로 이룩된 심정권은 아무리 작아도 우주와 연결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파장은 만상과 영계까지 파급되는 것입니다. 영계를 포함한 천주는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참사랑의 원리 아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종횡, 전후적 참사랑 관계는 인간 상호간의 이상적 참사랑 관계의 근본이요, 그 완성은 4대 심정권을 이룬 이상가정에서만 이룩됩니다. (260-128, 1994.05.01)
사랑의 본질은 뭐냐? 어떤 사랑이냐? 사랑이 무슨 사랑이에요? 오늘날 미국에 만연되어 있는 프리섹스, 하룻밤 사랑이 사랑입니까? 그것은 근본의 사랑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면 근본의 사랑, 참사랑은 어떤 것이냐? 사랑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입니다. 이 우주가 생겨나기를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하면,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는 '내가 처음과 나중이다. 시작과 끝이다.' 했는데, 그게 뭐냐? 이게 사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255-56, 1994.03.05)
왜 위해 살아야 되느냐?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그것을 원치 않는데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랑의 줄이 매여 있습니다. 사랑의 줄이 만물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줄이 내 몸을 묶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전부가 손을 벌리고 어서어서 감아 달라고 합니다. 빨리 빨리 크자 이겁니다. 사랑의 우주를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의 우주도 우주지만, 그건 파트너 세계지만 사랑의 근본이 하나님까지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278-142, 1996.05.05)
하나님이 매양 기쁘겠어요? 여러분은 매양 기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을 가졌을 때는 슬픔도 그 사랑으로 다 소화되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사랑의 절대 권한이 이 우주의 어떤 개별적 권력이라든가 지식이라든가 무엇을 가지고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그 이상의 것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의 욕구였더라 이겁니다. 그게 어디서 왔습니까? 근본에서 왔습니다. 그 근본의 어디서?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하나님도 그런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거기서 온 것입니다. (200-197, 1990.02.25)
처음부터 우리 인간이 요즈음의 공산주의같이 투쟁 개념에서 시작했겠느냐, 융합 개념에서 시작했겠느냐? 어떤 것입니까?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투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화와 융합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통해서 서로 조화되고 융합해 내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주의 근본은, 본성이라는 것은 조화도 되고 융합되는 내용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24-111, 1983.02.01)
모든 우주 가운데에서 빚쟁이가 되지 않고, 빚을 지우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뭐냐? 그러면 내 근본이 없느냐? 아닙니다. 마음에 얼마든지 갖고 있습니다. '미안해', '고마워!' 할 수 있는 마음, 물을 보고 산야를 바라보고 들을 바라보고, 삼천리 강산, 더 나아가서는 대지구성을 바라보고 '고마워!' 할 수 있는 마음, 하나님 앞에 고맙게 생각하고 환경에 고맙게 생각하고, 불평하지 않고 모시고 살 수 있는 이런 주인의 마음을 가져라 이겁니다. 참된 주인은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198-150, 1990.01.28)
② 인간은 만우주의 사랑의 중심
㉮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었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라 이겁니다.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하나로 단단히 묶어 줄 수 있는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입니다.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8-223, 1971.09.19)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가치의 대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피조만물 가운데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란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말입니다.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삼고 그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줘 봐야 하나님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68-134, 1973.07.29)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왜 지음 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지음받았다 이겁니다. 이것이 인간의 특권입니다. (132-244, 1984.06.20)
사람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창조세계라는 것은 실체를 중심삼은 사랑의 표시가 형상으로 나타나고, 형상의 표시가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실체가 기뻐하면 그 형상되는 존재가 기뻐하면 상징적인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무엇이 하느냐? 사랑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166-48, 1987.05.28)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唯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만물 중에 인간이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중심이냐? 사랑을 중심삼고입니다. 지식이라든가,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고,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찾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못 갖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를 통해서 나타나고 이루어지게 되어 있지, 혼자서는 하나님이라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272-275, 1995.10.08)
하나님이 천지를 누구를 위해 지었느냐? 하나님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대상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만물지중(萬物之衆)에 유인(惟人)이 최귀(最貴)라 했습니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적 내용을 분석해 볼 때, 속성에는 상속권이 있고 동위권, 동참권이 있기 때문에 사랑에 접하면 아무리 높은 하나님,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 아무리 우주적인 하나님이라고 해도 사랑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179-148, 1988.08.01)
오늘날 통일교회의 가르침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전권의 하나님이라도 사랑은 상대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사랑의 상대권을 갖춰야 합니다. 그 상대가 아담 해와입니다. (121-173, 1982.10.24)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고 절대자고 전지전능한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명사는, 혹은 좋다는 형용사는 혼자서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서 행복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가가 있어서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행복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좋다!'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5-20, 1972.11.13)
㉯ 인간성장의 길은 하나님 자신의 전개과정
인간 창조란 하나님 자신이 커 온 것을 실제로 재차 전개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흥미를 느끼고, 자극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가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내적인 소성을 전부 실제 형상으로 전개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뼛속 깊은 데까지 짜내서 투입하는 것입니다. (225-198, 1992.01.20)
인간의 완성은 어디에 있느냐? 남자면 남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고, 여자면 여자 자체로 완성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다 반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하나된 사랑을 중심삼고만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완성하는 데는 누가 절대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절대 필요한데, 하나님은 종적으로 절대 필요합니다.
아담이 완성되려면 종횡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종횡의 사랑의 인연을 갖지 않으면 회전운동, 구형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횡적으로 아담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해와입니다. 마찬가지로 해와에게도 절대 필요한 것이 아담입니다. (145-319, 1986.06.01)
아담 해와를 두고 하나님이 사랑한 것이 뭐냐? 아담 해와가 아들딸로 자라 왔다는 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자라 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도 아기와 같은 때가 있었고, 형제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부와 같은 때가 있었고, 부모와 같은 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창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입니다. 무형의 하나님이 그렇게 커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같이, 부부같이, 또 아들딸같이 그렇게 창조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254-274, 1994.02.15)
아담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떤 단계로부터 지었는가? 아담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의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장성기가 있었고,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리의 도리입니다. (225-198, 1992.01.20)
아담 해와에게 유아기가 있었는데, 그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는가? 무형의 하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 올 수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아기가 태어나 자라서 성숙해 가지고 결혼할 수 있는 자리까지, 부모가 될 수 있는 자리까지 어떻게 나가느냐? 하나님이 청년기?장년기?노년기와 같은 과정을 거쳐온 사실을, 하나님이 자라던 무형의 과정을 실체로 보기 위한 존재가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형성되어야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논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는 종적이고, 하나는 횡적이니, 종횡일신(縱橫一身)의 이론을 취할 수 있습니다. (225-198, 1992.01.20)
사랑하는 부부, 아담 해와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형 실체가 성상 형상으로서 사랑을 가지고 하나되어 창조하고 부모 입장에 선 것과 같습니다. 제1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제2 창조주로 만든 아담 해와가, 실체의 제2 하나님의 입장에 선 아담 해와가 다시 아들딸을 갖고 낳음으로써 부모 입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 자녀를 통해 실체 아담 해와의 유아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 등 하나님의 지나간 과거를 또다시 실체로서 전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만지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녀는 제2의 자기 자신입니다. (258-240, 1994.03.20)
결혼한 부부의 자리는 엄청난 자리입니다. 역사시대에 인류가 소망하던 자녀로서의 희망봉이 꽃피는 자리요, 형제로서 꽃피는 자리요, 부부로서 꽃피는 자리입니다. 이래 가지고 부부로서 사랑했던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딸을 낳은 거기서부터 아담 해와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실체적 창조주의 입장이 되어 나를 중심삼고 평면적 창조주의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은 것입니다. 제3 창조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 대신 실체 부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이 자녀를 양육하던 것을 내 실체로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커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녀시대?형제시대?부부시대?부모시대로 발전해 나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과거사를 중심삼고 자기 아들딸을 낳아 키우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아기시대의 제1 창조주, 무형의 창조주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제2 창조주, 볼 수 있는 창조주의 자리에서 아기를 키우고 형제로 키워서 부부를 이루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아들딸로서, 형제로서 키워 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형의 내적인 모든 요구의 실상을 실체적으로 아담 해와를 통해서 평면도상에서 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딸입니다. (263-148, 1994.08.21)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역사적 내정적인 원칙을 중심삼고 존재의 기원으로부터 지금까지 성장한 과정을 실체적으로 전개해 나오는 과정이 아담 해와 창조과정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아주 작은 세포가 합해져서 큰 세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기가 열 달 동안에 자라는 과정을 거쳐 나가면서 남자 여자의 형태로 갈라져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생명 유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논리에 대해 해석할 방법이 없습니다. 유전적 내용을 어떻게 전개시키느냐 하는 논리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본질적인 무형의 형태와 유형적인 형태의 본질이, 일체적 내용의 인연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전개될 것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 앞에 상대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적 성상은 외적 형상과 모든 근원적인 면에서 영합도 되고, 통할 수 있는 내연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이 실체를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내적인 모든 존재가 표현되어서 나타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나타난 실체라는 것입니다. 무형의 실체가 유형의 실체로 전개되느니만큼 거기에 모든 전부를 투입해야 됩니다. (225-198, 1992.01.20)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가는 대상을 만들려고 할 때 누구를 닮게 만들겠습니까? 하나님 닮게 만듭니다. 그 하나님을 닮게 만든다면, 하나님 가운데 있는 것처럼, 남자 성품이 있어야 되고 여자 성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닮았는데 자기 본성상에서부터 전부 다 빼내서 보이지 않는 성상, 보이지 않는 생각의 형태를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170-167, 1987.11.15)
하나님과 인간이 박자가 맞아서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박자 앞에, 모든 것이 자기 모양대로 음률을 맞출 수 있고, 자기 모양대로 전부 다 상징적으로 형상적으로 춤을 추고 이럴 수 있는 기쁨의 세계가 본연의 동산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도 '아하, 내가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이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잔치를 하는 잔칫날에 동참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그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피조세계의 지극히 작은 만물이 바랄 수 있는 소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166-46, 1987.05.28)
아무리 진리라 해도 진리의 핵심이 뭐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본질적 사랑은 종적인 곳에 있는 것이요, 진리적 사랑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보아 하나님을 알지니,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형상이니 아담 해와를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는 겁니다. 왜? 아담 해와는 종적인 참사랑의 대상적 주체이기 때문에, 이를 둘 다 완전히 딱, 남자 여자의 사랑을 동서남북을 통해서 세계의 축을 갖다 맞추게 될 때는, 하나님과 영계가 통하고 만세계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179-290, 1988.08.14)
㉰ 인간은 피조만물의 중심
하나님은 누구 닮았다구요? 우리 닮았습니다, 남자 여자. 여러분 마음이 보이지 않지요? 마음 보고 싶소, 안 보고 싶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적인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체(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체가 없습니다. 아담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아 체가 지금까지 없다 이겁니다. 마음 같은 우주에 마음 같은 주인, 마음 같은 스승, 혹은 관리자, 마음 같은 부모로 계십니다. (197-44, 1990.01.07)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지을 수 있는 토대입니다. 관계되고 연결될 수 있는 토대입니다. 동물도 그렇고 광물도 그렇습니다. 광물세계에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식물세계에도 전부 암술과 수술이 있고, 동물세계에도 암놈과 수놈이 있습니다. 전부 다리를 놓아 모든 것이 결집되어 창조된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의 내적 형상과 외적 형상입니다. 그것을 실체화시켜 남자와 여자 성상을, 그 모든 형상을 부여해 상징적이고 형상적이며 실체적으로 다 드러내 가지고, 다리를 놓게끔 해서 전부 다 연결되게, 관계를 맺도록 한 것입니다. (144-236, 1986.04.25)
하나님이 피조물의 중심인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요, 지식 때문도 아니요,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혼자 사랑받겠다는 입장이 되면 사랑해 줄 수 있는 아무런 존재가 없습니다. 결론이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필시 이 세계에 자기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자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볼 때, 피조세계에 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배포 큰 존재가 누구냐? 온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여건을 갖춘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는 우주의 주인이다. 우주에서 제일이다.'라고 할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합니다. (148-308, 1986.10.26)
하나님은 기쁨을 더하고 기쁨의 자극을 연속시키기 위하여 만물을 지었습니다. 순간적인 기쁨을 느끼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피조물을 대할 적마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기쁨의 자극과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최고의 심정을 기울여 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5일 간 만물을 지은 후, 6일 째 되는 날에 기쁜 심정으로 인간을 지었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본따 지은 우리 인류의 조상은 지극히 아름다운 존재요, 지극히 귀한 존재요, 지극히 자랑스러운 존재요, 지극히 기쁜 존재요, 지극히 영광스러운 존재요, 지극히 사랑하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9-194, 1960.05.22)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기 때문에 지식도 필요 없고, 능력도 권력도 필요 없고, 금전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입니다. 그 대상은 피조만물 가운데서 가장 귀하고 가장 영장이 되는, 사람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왜 사람을 좋아하는가? 하나님도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혼자서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112-291, 1981.04.25)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모든 체에 상징적으로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눈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눈은 얼굴 가운데서 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관찰합니다. 그 다음에 코는 아담 해와를 상징합니다. 이게 중심입니다. 그 다음에는 입은 만물입니다.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 팔 삼십이(4×8〓32), 서른 두 개의 이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을 중심삼고 4수를 중심삼고, 그 다음에 귀는 사방을 상징합니다. 이 목 위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정보처가 있습니다. (201-83, 1990.03.04)
여러분의 생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타락하지 않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럼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께서 이성성상의 주체이신 만큼 자기의 이성성상을 전개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우주를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이요,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일반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한 분이니까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 한 분이라는 개념 가운데는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140-123, 1986.02.09)
만일에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한몸이 되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이어받아, 하나님이 창조 후 기뻐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54-64, 1972.03.11)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도,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상하관계와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버지, 아버지가 앉으신 자리를 나에게 한번 주세요. 나도 아버지의 자리에 앉고 싶어요.' 하는 욕망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네 이놈, 안 된다!' 하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서 그래라, 어서 그래라!' 하시면서 그 자리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인간에게 주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고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54-89, 1972.03.20)
심신일체가 되면, 우주의 힘이 보호해 줍니다. 우주의 힘이 보호해 주는 몸 마음이 되면, 부모도 우주의 인연을 가진 부모, 형제도 그런 인연을 가진 형제, 이렇게 모두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민족, 나라가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멋진 결론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넘어서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그런 일체권을 이루면 거기서도 통합니다. 어디에도 통하는 것입니다.
축구를 할 때 볼이 굴러가다가 멈추면 어떻게 돼요? 그 표면 전체가 합할 수 있는 데는 수직선을 통합니다. 그래서 구형체를 이상적인 존재라고 합니다. 표면의 어떤 곳에서도 그 수직선이 안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다 좋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심신일체권, 90각도가 되면 어디든지 다 맞습니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 미래의 사람 할 것 없이 어디든지 다 맞는 것입니다. (205-53, 1990.07.07)
본성이 가는 길을 가면, 우주가 하나로 벌어집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자기 마음과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서는 마음과 말을 합니다. 뭘 하려고 생각하면 벌써 답변이 나옵니다. 그런 경지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갈 길을 모르겠어요? 벌써 갈 길이 확실해서 우주의 모든 작용의 힘들이 돕게 됩니다. 손을 끌고 시험장에 들어가면 벌써 모든 것이 협조합니다. 그래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20-313, 1982.10.20)
우리가 자연을 보고 '아, 나는 사계절 필요 없다. 나는 봄만 필요하지,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은 싫다.'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한테 물어 보면 '난 사계절을 다 좋아한다.'고 답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싫더라도 여름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고,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하나님은 흰눈이 세계적으로 쌓인 것을 보고 좋아할 때 '아, 나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133-28, 1984.07.01)
하나님 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홍수가 나고 벼락이 칠 때는 '아이구, 저거 나는 싫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허허, 저거 키스하고 결혼하는구만!'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싫다는 사람들에게 '하하하하, 네 이 녀석들아! 못된 녀석들아!' 한다는 것입니다. (133-28, 1984.07.01)
지혜의 왕이시고 전체의 중심이신 하나님이 참다운 사랑이나 참다운 이상이나 참다운 행복이나 참다운 평화의 기원을 주체와 대상, 이 양자 사이의 어디에 두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가 계신 반면 대상이 있는데, 주체를 위하는 길과, 대상을 위하는 길, 이 두 길 가운데 이상의 요건을 어디에다 두느냐 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이상, 참된 사랑, 참된 평화에 있어서 주체를 중심으로 하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대상을 중심으로 하여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은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운다면, 하나님이 그러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떠한 대상을 지닐 수 있는 입장에 선다면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립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75-318, 1975.01.16)
하나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된 인간은 위해서 사는 존재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된 평화, 참된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천지 창조의 근본이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몰랐습니다. (75-318, 1975.01.16)
남자와 여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를 위해 태어났고, 여자는 여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 태어났습니다.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자기를 주장합니다. '나'라는 이 사상을 깨뜨려 버려야 됩니다. 이것만 깨뜨려 버리면 통일의 세계는 벌어집니다. (61-265, 1972.09.01)
자기의 가치를 자기에게서 추구하기보다는 상대에게서, 즉 상대적 기준에서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탐구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심정의 터전은 상대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59-200, 1972.07.16)
조화라는 것은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재미라는 것도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행복 또한 혼자 벌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절대자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이 있어야 됩니다. 절대자 앞에는 절대적인 상대자가 있어야 되고, 절대적인 주체 앞에는 절대적인 대상이 있어야 행복이니, 조화니, 기쁨이니, 춤이니, 노래니 하는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38-155, 1971.01.03)
오늘날 기성교인들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본래부터 영광 중의 영광의 주체요, 행복 중의 행복의 주체요, 모든 사랑과 생명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합니다.
하나님도 절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대상을 갖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상대적인 존재를 만들어야 됩니다. (38-157, 1971.01.03)
③ 피조세계는 인간을 위한 사랑의 박물관
㉮ 피조세계를 지으신 뜻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사랑의 이상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교재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구조입니다.
광물도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하고, 원자도 양자와 전자가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작용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존속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인간을 중심삼고 그 중심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창조된 세계라는 것입니다. (137-59, 1985.12.18)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그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 시조를 에덴동산에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실 때는 하나님의 어떠한 희롱거리로 지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취미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을 지어 만물을 대표하는 중심으로 세우게 될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20-205, 1968.06.09)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온갖 정성을 다 들이시고, 또한 심혈과 당신의 생명의 핵심을 다 기울여 지으셨으며, 사랑과 애정을 몽땅 퍼부어 지으셨습니다. 어떠한 힘 가지고도 떼려야 뗄 수 없고, 갈라지려야 갈라질 수 없는 인연 가운데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인간이기에 그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에게는 비로소 평화가 깃들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정과 행복은 그 인간을 통하여만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20-207, 1968.06.09)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요,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골수 중의 골수를 몽땅 부어 지은 인간이기에, 이런 인간이 하나님을 끌면 안 끌려 오실 수 없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끌으시면 안 끌려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연 가운데서 내용과 목적이 일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지어 놓은 인간을 보고 하나님이 찬양할 수 있는 어떠한 말씀이나 시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어떤 시인이나 문인도 표현하지 못하는 최고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은 하나님도 아니요, 만물도 아니요, 오직 만물을 대표한 인간입니다. (20-207, 1968.06.09)
우주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분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관념이 성립됩니다. 우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실감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머리도 이렇게 쓰다듬어 주곤 합니다. 옷도 뭐가 묻으면 그저 텁니다. 그거 왜 그러는 것입니까? 내 것이니까. 나와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관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마음이 하나되고, 몸이 하나되고, 만물이 하나되고, 이런 통일의 세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86-174, 1976.03.28)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몇억 광년입니다. 빛이 1초 동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데, 30만 킬로미터란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입니다. 우주는 그 거리를 1초 동안에 달리는 빛이 1년 걸려서 가는 거리를 천문학에서는 1광년이라 합니다. 그런 광년을 단위로 삼아 출발한 빛이 몇억 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도달하지 못할 만큼 큽니다. (127-213, 1983.05.08)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지금까지 100억 광년 저세계의 별까지 발견했는데, 이제는 뭐 150억 광년 저세계의 별도 볼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 이상의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 하면, 대략 잡아서 210억 광년입니다. 이것은 원리적 수입니다.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빛이 여기서 출발해 가지고, 그것이 하루 걸리는 것을 1광일, 한달이면 1광월, 이렇게 출발해서 1초 동안에 3억 미터, 빛의 속도가 3억 미터 갑니다. 거리로 말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거리입니다. 일곱 바퀴 반이나 되는 거리입니다. 딱 하면 벌써 일곱 바퀴 반을 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빠른 빛이 하루 걸려도 허리가 구부러지고, 생각이 둔해 가지고 '나 모르겠다' 할텐데 백 년이 아닌 백의 몇만 배인 1억 광년. 출발해 가지고 1억 년, 아직 가고 있는데 사람이 백 살 산다면 백만 사람이 죽어갑니다. 1억 년에 말입니다. 1억 광년이니까 백 사람이 나서 계속해서 백 년을 살다 죽어가기를 백만 사람이 죽을 그때에 가 가지고도 또 가는 것입니다.
그럼 210억 광년 하면 얼마입니까? 그 사람들이 살고 죽고 또 살고, 백 살까지 살고, 백 살까지 살고 이렇게 2억 백만 명이 살아서 그만큼 가는데 또 계속 간다는 것입니다. 그 먼 거리가 직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게 둥글둥글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라는 것입니다. (181-195, 1988.10.03)
㉯ 만물세계는 인간을 위한 사랑의 교재
참사랑의 기준을 놓고 보면, 아담 해와는 쌍쌍제도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자연동산을 보면서 배우고 성장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자라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은 만물을 지어 놓은 것을 보면 다 알게 되어 있었습니다. 만물이 바로 하나님의 박물관입니다. 아담 해와를 교육하는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새도 수놈과 암놈, 나비도 수놈과 암놈, 전부가 쌍쌍으로 태어나 좋아하면서 새끼를 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숙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한 플러스적 왕자가 남자요, 마이너스를 대표한 사랑의 왕녀가 여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는 생각하기를 '저 남자가 바로 나에게 필요한 남자구나!' 하고 믿게 되고, 남자 역시 여자를 대해서 '정말 나에게 필요한 여자구나!' 하는 것입니다. (201-161, 1990.03.30)
참사랑의 기준을 놓고 보면 아담 해와는 쌍쌍제도로 만들어 놓은 사랑의 자연동산을 보면서 배우고 성장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새도 수놈과 암놈, 나비도 수놈과 암놈, 전부가 쌍쌍으로 되어 좋아하면서 새끼를 치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인간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201-356, 1990.04.30)
소년시대에서 자라서 청소년시대로 가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돼 가지고 여기서부터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애기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엄마, 이게 뭐예요?' '아빠, 이게 뭐예요?' 이렇게 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남자는 남자에 대해서 전부 알고 보니까, 세상만사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야 동물세계도 쌍쌍이 있고, 곤충세계도 쌍쌍이 있고, 아이구 전부가 그렇구만! 꽃세계도 그렇고, 광물세계도 그렇고.' 그거 전부 다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 주체와 대상이 되고,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는구나! 알고 보니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렇게 이렇게 찾아 가야 되는구나! 아이고, 이것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219-31, 1991.08.25)
아담 해와는 자라나면서 세상을 배워 나갑니다. 두 아들딸이 크면서 가만 보니까 세상은 쌍쌍제도로 만들어 놓은 박물관입니다. 사랑의 박물관. 이걸 보면서 배우는 겁니다. '야! 저들이 저렇게 좋아하네. 파리도 수놈 암놈, 나비도 수놈 암놈, 전부 다 쌍쌍이 놀아나네. 그러고는, 좋아하고는 새끼를 치네!' 그거 배웠겠어요, 안 배웠겠어요? (200-246, 1990.02.25)
천지를 쌍쌍제도로 만든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이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그 이상으로, 너는 새보다도 더 행복하게, 곤충보다도 더 행복하게, 너는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더 행복하게 살아라 이겁니다. (200-57, 1990.02.23)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쌍쌍제도로 되어 있고, 쌍쌍제도로 되어 있는 이 환경은 인간을 위한 이상적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물세계가 작용을 하는 것도 쌍을 찾아 하는 것입니다. 또 초목도 쌍을 찾아 운동하고 번식합니다. 새도 그렇고, 곤충 가운데 베짱이도 그렇습니다. 베짱이도 노래하지요? (199-309, 1990.02.21)
하나님이 만물세계를 쌍쌍제도로 지었기 때문에 남성 여성을 중심삼고 거기에 모든 요소를 전부 품고 있습니다. 자연은 뭐냐?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수 있게끔 사랑을 교시하기 위해 지은 박물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노래할 때 무슨 노래를 한다 하더라도 죄가 아닙니다. 타락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문제로 인해서 가정이 파탄되고 천리원칙이 전부 깨져 나가니 죄지, 천리원칙 기반 위에서 서로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진정 사랑한다. 영원히 사랑한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단짝이다.'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이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쌍쌍제도로 만들어진 이 우주는 사랑의 하나님이 창조한 박물관입니다.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국립박물관에 있는 골동품같이 죽어 있는, 주인 없는 기념물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기념물입니다. (195-136, 1989.11.07)
참된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을 통해서 지은 모든 물건은 다 이상적 사랑의 조건을 갖출 수 있게끔 전부 주체와 대상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은 페어 시스템,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석도 부처끼리 돼 있습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서로 당기잖아요? 그런 말 처음 듣지요? 실험실 선생이 아주 폭군이 되어 자기에게 맞지 않는 원소를 암만 갖다 들이대더라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하라' 해도 안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맞으면 '붙지 말고 하나되지 말라!'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부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77-271, 1988.05.20)
미물인 곤충도 사랑을 중심삼고 페어 시스템(쌍쌍제도)으로 돼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에. 급이 낮으면 낮은 급 나름대로 사랑을 중심삼고 번식해 가지고 이 인간과 이 우주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이상을 완성할 수 있게끔 모든 체제에 기어가 맞물려 돌아가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293-308, 1998.06.07)
에덴동산에 전개되어 있는 모든 전부가 쌍쌍제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담도 자연히 그걸 보고 '야! 나도 수놈 같은 남자인데, 나도 수놈같이 생겼는데 암놈 같은 것이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보니 '해와다!' 이래 가지고 둘이 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수놈과 암놈이 저렇게 하면 새끼를 낳누만!'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시집가기는 싫지만 아기는 좋아하는 여자가 많습니다. (288-304, 1998.01.01)
에덴동산의 모든 것이 쌍쌍제도로 됐기 때문에 동물들이 새끼를 치고 '암컷과 수컷이 즐거운 환경을 만들고 있구나!' 이래 가지고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과 해와도 '둘이 만나야겠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옛날 아담과 해와가 자랄 때 얼마나 복잡합니까? 남자는 와일드해서 산에 올라가고 뛰어다니는데, 여자는 매일 앉아서 구경하고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르지만 이런 환경에서 배워 가지고 자연적으로 상대를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278-280, 1996.05.26)
알고 보니 세상이 쌍쌍제도인데, 아담 해와도 혼자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동물세계의 사슴도 소도 전부 수놈과 암놈이 있어서 서로 좋아하고 새끼 치는 것을 다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해와도 동물세계의 곤충으로부터 새와 벌과 꽃까지도 그 놀음을 하고 있으니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안다는 것입니다. (246-58, 1993.03.23)
여러분 부부는 쌍태로 태어난 오누이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서는 동생 하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친구도 없고 외동딸입니다. 에덴동산에 여자 하나밖에 없고, 남자 하나밖에 없으니까, 틀림없이 아담이 해와와 친구해 줘야 됩니다. 오빠와 누이동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 가지고 만물의 모든 쌍쌍제도가 어떻게 번식하고 자란다는 것을 알고, 세상만사를 다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역사의 전통을 남기기 위해서 이렇게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 가지고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 때문에, 인류 때문에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243-177, 1993.01.03)
아담 해와가 태어났을 때는 상대로, 자식으로 되어 있었지만 형제지연인 가운데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상대가 없지요? 여자는 여자 혼자 교육받고 남자 완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교육받을 재료는 천지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쌍쌍제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는 그걸 보고 '저렇게 커야 되는 구나!' 하는 것을 알고, 여자도 그걸 보고 '저렇게 커야 되는 구나!' 하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교재를 박물관같이 모든 자연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은 모두 쌍쌍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28-268, 1992.07.05)
종적인 기준에는 상대성이 옮겨져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종적인 기준에는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딸이 커야 됩니다. 성숙해야 됩니다. 만물세계를 보면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도 마찬가지요, 식물세계도 마찬가지요, 동물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세계도 남녀가 전부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자연세계라는 것은 사랑의 박물관, 급은 낮지만 쌍쌍제도로 된 사랑의 박물관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박물관을 왜 만들었습니까? 누구 때문에 만들었느냐 이겁니다. 사람들 때문에 만들고, 하나님 때문에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의 모든 사랑의 느낌, 광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동물세계의 사랑의 느낌이란 것을 다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238-29, 1992.11.19)
남자와 여자가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이때까지는 상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로서 여자를 얻어야 됩니다. 전부 쌍쌍제도로 새끼치고 사는 것을 보는 겁니다. 봄이면 소도 그러고, 돼지도 그러고, 개도 그러고, 고양이도 그러고, 쥐도 그러고, 메뚜기도 그러는 것을 다 보는 것입니다. '아 그렇게 되는 거구나! 혼자는 안 되는구나!' 이렇게 눈이 뜨이는 것을 눈이 밝아진다고 합니다. 그 방향이 지금까지 이렇게 45도 해서 '아이구, 내가 필요한 건 아담이구나!' 하고 '내가 필요한 건 해와구나!' 하는 것입니다. (229-321, 1992.04.13)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쌍쌍제도로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는 사랑을 핵으로 한 박물관입니다. 쌍쌍 박물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가 둘이 서로 좋아하면서 열심히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먹이는 것을 보면서 배워야 됩니다. '내 새끼를 위해서 그 이상 몇백 배 해야지.' 이래야 합니다. 벌레들도 암수 두 마리가 전부 사랑하고 새끼 치는 것입니다. 그들도 자기 생명을 걸고 새끼들을 기르려고 합니다. 그것이 교육입니다. (229-287, 1992.04.13)
아담과 해와가 성숙함에 따라 여기서 횡적으로 돌아서 아담이 자기 상대인 줄 알고, 해와가 자기 상대인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외향적으로 나가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사냥도 하고, 어디 가든지 잡아 쥐어야 합니다. 해와는 어떻습니까? 해와는 근본 성격이 다릅니다. 이러면서 커 가지고 여자로서 알 것, 남자로서 알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만사 전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동물세계나 다 쌍쌍제도로 되어 있지요? 그걸 배우는 것입니다. 커 나오면서 가만히 보니까, 무엇을 보나 전부 다 상대적입니다. 그러니 자기도 모르게 배우는 것입니다. (225-201, 1992.01.20)
사랑을 누가 가르쳐 주느냐? 자연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동산에 뛰는 동물을 보니 수놈과 암놈, 나비를 봐도 수놈과 암놈, 전부 쌍쌍제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꽃이 피면 아름다운 동산에는 새가 지지배배 지저귀고 말입니다. 새가 왜 지저귀는 거예요? 수놈새 암놈새가 지저귀는 것은 무엇 때문이에요? 무엇을 부르기 위한 거예요? 새가 지저귀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배고파서 부르는 것이고, 하나는 사랑 때문에 부르는 것이고, 하나는 새끼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 세 가지 이유입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208-251, 1990.11.20)
표준적인 아담과 해와의 상대권에 서기 위해서 자기들도 그 형태로 준비되어야 하니까, 이 우주 창조물은 페어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쌍쌍제도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큰 플러스이고, 만물은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작은 플러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상대적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인간과 만물이 같습니다. 인간과 만물이 공통된 절대적 주체권을 중심삼은 기준에서 평면을 잡으면 하나님이 수직으로 임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230-252, 1992.05.08)
참새가 짹짹거리며 깨워 주는 것이 자기가 깨는 것보다 얼마나 멋져요? 얼마나 시적입니까? 여러분은 자기가 노래하는 것이 좋아요, 노래 듣는 것이 좋아요? 그건 또 얼마나 시적입니까? 자기가 짹짹 짹짹 하는 것보다도 제 삼자가 짹짹짹, 자기가 깨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깨워 주고 말입니다. 그렇게 조화의 음률에 따라 소리를 달리하면서 깨워 줄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새도 내 친구입니다. 무엇이 친구되게 합니까? 쌍쌍제도를 두고 볼 때 그게 내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쌍쌍입니다. 친구라고 생각할 때 그 얼마나 시적입니까? (177-271, 1988.05.20)
세상이 다 쌍쌍제도로써 모든 것이 번식하게 돼 있는 것을 볼 때, 아담과 해와도 성숙되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숙되기 전에는 아담과 해와는 그걸 몰랐습니다. 아담과 해와 둘이 사는데, 이 둘의 성격을 보면 아담은 남성적이고 외향적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뛰쳐나가서 산에 가서 토끼를 잡고 싶고, 꿩을 잡고 싶고, 노루를 잡고 싶고, 뱀을 잡아서 배를 가르고 싶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인이 되어 관리하려면, 전부 관리할 수 있는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산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동물은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고, 물에는 무슨 물고기가 있는지 다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자니까 주인이 되려면 무엇이든 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262-74, 1994.07.23)
하나님이 재미를 느끼면서 창조했습니다. 그거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쌍쌍제도를 만들어 놓으니까 세포까지도 짝짝이 되어 좋아하고 이러는 걸 볼 때 얼마나 재미있었겠어요? 사진 찍은 것만 해도 잘 나오면 붙들고 좋다고 하는데, 실물이 말하고 춤추고 하는데 얼마나 좋겠나 말입니다. (283-102, 1997.04.08)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이 지어 놓고 품어 길러 가는 데 있어서 종인 천사장을 지어서 그들을 보호하고 기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이 결혼시켜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성숙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갈라져 태어나서 남자는 남자로서 자라고 여자는 여자로서 커 가는 것입니다. 커서 성숙한 남자와 여자가 되어 세상을 가만히 보니 광물세계나 동물세계나 식물세계나 다 상대이상, 쌍쌍제도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아! 동물들도 둘이 하나되어서 저렇게 새끼치고 행복하게 사는구만. 야, 에미는 새끼들을 기르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보호하는구만.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하는구만!' 이렇게 다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아담 해와의 이상적 발달을 위한 전시적 박물관이라는 것입니다. (262-74, 1994.07.23)
참사랑권의 깊은 경지에 들어가면 만물과 통합니다. 바위도 통하고 만물과도 통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세계는 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 쌍쌍제도로 된 것은 하나님에게 속할 수 있는 사랑과 인연되어 하나되기 위한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은 공명(共鳴)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참사랑권 내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영계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이 땅에서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되고, 또 나라를 어떻게 섬겨야 된다는 것 등의 모든 것을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는 길은 함부로 가게 안 되어 있습니다. 공식이 있습니다. 사랑이 가는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이 가는 길은 두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가는 참사랑의 길이나 하늘세계, 하나님으로서 찾아오는 참사랑의 길은 언제나 한 길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올 때는 인간은 올라가고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에서 만나야 되느냐? 여기에서밖에 만날 수 없습니다. 최고로 장성한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같은 자리입니다. 이 둘이 합하려면 어디에서 만나야 되느냐? 이 자리에서 만나야 됩니다. 이 자리밖에 없습니다. 이 점에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238-31, 1992.11.19)
사랑이론을 말하다 보니 그것이 풀리지 않는 이론이 없습니다. 지식 중의 왕지식입니다. 사랑을 찾아보니 이 모든 피조세계가 쌍쌍제도로 된 것을 알았습니다. 광물세계도 플러스이온과 마이너스이온으로 돼 있지요? 쌍쌍입니다. 그거 뭣 때문에 쌍쌍입니까? 그 급에 해당하는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 때문에 그렇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번식이 벌어집니다.
동물세계도 다 수놈과 암놈, 사람도 여자와 남자입니다. 그거 왜 생겨났어요? 여자 때문에 사랑이 생겨난 것도 아니요, 남자 때문에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 때문에 생겨났다!' 이렇게 돼야 됩니다. 그 명제를 부정하는 요사스러운 것들은 지옥의 족속들이요, 파괴의 족속들입니다. (221-257, 199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