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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

① 죽음은 인생 필연의 길

 한 7,80년 살았으면 됐지, 죽어 버리면 그만이다.'라고 하면서 죽는 것을 끝장으로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역사 노정을 통해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을 것인가, 더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뜻을 품은 사람일수록 '인생이 무엇이냐? 인간은 왜 왔다가 나그네같이 가느냐?' 하며, '인생은 고해'니 '초로(草露)의 인생'이니 하는 말을 하였지만, 영생할 수만 있다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9-229, 1971.01.15)

 가는 걸음을 붙잡아 놓고, 움직이는 마음과 기울어지는 심정을 막아 놓고 '너는 어디로 가느냐?' 이것을 물어 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 나오는 사람들이 성현 현철이요, 혹은 수많은 도주(道主)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왔지만 이날까지 '내 몸은 이러한 곳으로 갔으며, 내 마음과 내 심정, 내 생명과 내 이념은 이런 곳을 향하여 달렸노라. 그러니 온 천하에 있는 모든 만민, 혹은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물은 이곳으로 가라!'고 자신있게 명령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8-194, 1959.12.20)

 여러분, 여기서 영원히 살래요, 무형의 사랑의 실체가 된 곳에서 영원히 살래요? 하나님이 무한한 창조세계를 보여 주고 싶다 할 때, 여러분은 이 몸뚱이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영인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망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의 중심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상대적 존재를 필요로 한다면, 인간을 데려다 자기가 창조한 영원한 그 모든 이상권을 전부 다 보여주고 싶고, 주고 싶을 것입니다. (111-112, 1981.02.01)

 하나밖에 없는 옷을 입었는데, 이걸 누가 벗기려고 하면 죽어도 안 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춘하추동 사시사철의 옷을 떡 해 놓고, 지금은 봄인데 겨울옷을 입었으면 '이건 겨울옷이야, 벗어.' 이제 봄옷을 입은 사람한테는 여름옷을 갖다 놓고 벗으라고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몰랐다는 겁니다. 인간의 죽음문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대체할 수 있는, 보다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200-91, 1990.02.24)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지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개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6-44, 1959.03.22)

 여러분 모두 다 영계에 가야 됩니다. 그것이 한 나라예요, 두 나라예요?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에서 생활하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을 생각해 봤어요? 물세계의 고기는 물의 세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물이 절대적인 생명입니다.
  강물에 사는 고기가 강물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닷물에도 왔다갔다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담수의 고기는 해수와 접하는 그 물을 맛보지 않고는 새끼를 못 칩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다에 사는 것은 반드시 담수에 와서 맛을 보아야 새끼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두 세계를 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몸 마음도 그렇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해야 됩니다.
(210-128, 1990.12.17)

 죽음의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가게 될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 여러분이 죽음에 봉착하는 순간 그 죽음을 넘어 설 수 있는 소망이 없다면 거기에서 마지막입니다. (6-53, 1959.03.22)

 우리 한국말 중에 나이가 많아서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안 계시느냐고 물으면 '돌아가셨다'고 하지요? 어디로 돌아갔느냐? 영계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본래 무형의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본연의 고향이 무형의 세계입니다.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세계를 거쳐 땅 위에서 번성을 해 가지고 살다가 그 다음에는 다시 무형의 세계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무형의 아버지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유형의 아버지의 몸을 빌려서 태어나서 살다가 유형세계의 몸은 벗어 놓고 본연의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 영계에 가는 것입니다.
(242-166, 1993.01.01)

 인간은 남자 여자가 모두 오관(五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머리에 사관(四官)이 있습니다. 눈?코?입?귀?손?이래서 오관이지요?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머리에 있습니다. 이 머리에 있는 사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영계를 상징합니다. 육체와는 별개의 세계지요? 그 머리는 마음대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왜 돌아가느냐 하면 사방을 보기 위해서, 사방을 듣기 위해서, 사방의 냄새를 맡기 위해서, 사방으로 말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머리가 안 돌아간다면 어떻게 돼요? 그 불편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될 겁니다. (228-125, 1992.03.27)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이 지상에 살게 될 때, 제3세계인 본연의 세계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세계에 가서 살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세계에 있어서 호흡기관과 같은 것을 준비해야 됩니다. 이 육신을 터뜨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기가 전부 다 아기집을 터뜨리고 파괴시키고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산고의 고통을 받지요? 마찬가지로 제2산고의 고통이 죽음입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되느냐? 물 안에서 공기와 모든 것을 맞출 수 있는 숨의 기관을 준비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육신 세상에서 준비할 것은 영계에 가 가지고 사랑 기관을 중심삼고 호흡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몸뚱이를 전부 터뜨리고 나가게 된다면 사랑 기관을 중심삼고 호흡해 가지고 제한적 환경에 살던 것을 넘어 무제한으로 자유분방한 인간으로서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274-104, 1995.10.29)

 나도 하나님 닮고 싶고, 하나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닮게 하고 싶다는 관념을 갖는 것은 필연적인 겁니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을 닮고 싶고, 하나님은 나를 데려가고 싶은 이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닮을 수 있는 체(體)를 입고 태어나야 된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태어나는 날을 하나님도 고대할 것이고, 인간도 고대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 그런 몸뚱이로 태어나는 날, 그거 필요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나요, 환영하지 말아야 되나요? 죽는 데는 뭣 때문에 죽을 것이냐 할 때에 '하나님의 참사랑을 위해서 죽겠다'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내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다 이겁니다.
(116-172, 1982.01.01)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구, 죽는다!' 하고 야단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걸 보고 껄껄 웃겠어요, '우-' 하겠어요? 인간세계에서는 울고불고 하는 걸 하나님이 볼 때 슬퍼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제한된 사랑권 내에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을 수 있는 순간이 제2의 출생의 순간인 죽음길을 통하는 그 순간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육신이 죽는 날을 기뻐하겠어요, 제2의 무한 확대 세계의 사랑을 위해서 활동할 아들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기뻐하겠어요?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여러분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116-172, 1982.01.01)

 하나님의 아들로 진짜 태어나는 날에는…. 저 무한한 별 가운데 다이아몬드 별 세계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그거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다이아몬드 갖고 싶지요? 금만으로 된 별이 없다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거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부자겠어요? 생각해 봤어요? 무한한 이 우주를 순식간에 왕래할 수 있습니다. 그거 관심 있어요? 진짜 관심 있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라!' 하는 그 법도를 지켜야만 됩니다. 그래야 그게 가능하지, 내 맘대로 해서는 가능하지 않다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라!' 하는 것을 지킬 수 있어요? 사람은 이중으로 돼 있기 때문에 마음이 주체이고 몸뚱이는 상대니 몸과 마음이 하나되라! 맞아요, 틀려요?
(116-174, 1982.01.01)

 하나님의 한이 뭐냐? 참아들딸을 심정적 완성자로 교육하지 못했고, 형제적 심정을 교육 못했고, 부부의 심정을 교육 못한 것입니다. 이 땅 위에 부부가 이래야 된다는 그 심정적 기준에서 교육을 못했고, 부부가 되어 어머니가 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교육을 못했다 이겁니다. 이것이 인생의 교본이었는데, 그 교본을 전부 다 잃어버리고 제멋대로 사는 인간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영계에 갈 때는 지옥가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데 있어서도 한 곳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서도 방랑하는 별의별 패가 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습해야 할 것이 아담과 해와인데, 모르고 타락했으니 완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섭리를 누가 주도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주도하고, 복귀섭리도 하나님이 주도해야 하고, 재창조섭리도 하나님이 주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28-268, 1992.07.05)

② 죽음은 3세계를 연결하는 과정

 우리 인간의 일생은 복중시대 10개월, 육신시대 1백년, 그리고 영혼시대 천년만년을 영원히 살아갑니다. 우리 얼굴을 보면 입?코?눈 3단계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3시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입은 물질세계인 복중시대를 상징하고, 코는 사람세계인 지상시대를, 눈은 영계의 천상시대를 나타냅니다. (298-304, 1999.01.17)

 여러분, 사람은 맨 처음 태어날 때 제일 깊은 물 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복중시대는 수중시대입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물 가운데 둥둥 떠 있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어머니의 뱃속시대에는 숨이 막혀서 살기 힘들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기는 태집이 우주입니다. 그곳이 수중이지만 아기에게는 그 세계가 자유천지인 것입니다. 물 속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물을 들이마시고 내 보내는 놀음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위해서 복중의 어린애들은 호스를 배에다 연결하고 사는 것입니다. (299-69, 1999.02.04)

 사람은 3세계, 소생-장성-완성시대를 거칩니다. 복중 물세계, 그 다음 지상 지구성 세계, 그 다음에는 천상 공중세계에서 삽니다. 다시 말하면 복중 물시대, 지상에 태어나서 사는 100년 땅시대, 그 다음에 날아다니는 공중시대, 이렇게 3시대를 거칩니다.
  복중에 있을 때는 바깥 세계로 나가려고 하겠어요, 여기 붙어 있겠다고 하겠어요? 그래 요만한 구멍으로 내가 빠져나가야 된다면 '우-'하겠어요, '아이구 좋다!' 하겠어요? '그러려면 네가 있는 집이 다 파괴되고, 네가 살던 곳의 영양 가치와 모든 것이 깨져 나가고, 네 머리도 늘어나야 되고, 몸뚱이도 늘어나야 되는데 그래도 좋아?' 할 때 전부가 '노'하겠어요, '예스'하겠어요? 나오기 전 시간까지, 어머니는 죽겠다고 힘을 주고 자식이 태어나는 그 시간까지 '노, 노, 노' 하다가 왈칵…. 몰아내니까 나갑니다. 그러면 한 세계는 왕창 없어지고 한 세계에서 다시 '훅훅' 숨을 쉬게 된다는 겁니다.
(116-174, 1982.01.01)

 이 지구성이 어머니 배입니다. 이거 확실히 알라는 것입니다. 복중시대에는 무엇으로 먹고 숨을 쉬어요? 입으로 숨쉬고, 코로 숨쉬어요? 어디로 숨을 쉬어요? 먹기도 배꼽으로 먹고, 숨도 배꼽으로 쉬지요? 그러면 배꼽으로 다 하니까 먹을 입도 필요 없고, 숨 쉴 코도 필요 없습니다. 볼 수 있는 오관이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그거 필요 없는데 왜 달려 있어요?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왜 있어요? 밖에 나가면 사용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295-321, 1998.09.24)

 복중시대에는 오관을 써요? 오관이 필요 없지요? 소변도 안 보고, 똥도 안 싸고, 전부 다 죽어있습니다. 열 달씩 그렇게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잖아요? 오줌이나 똥이 참사랑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겁니다. 오줌 똥 자체가 사람보다 먼저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아담이 나온 다음에 그걸 시작하지, 먼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것이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297-12, 1998.11.15)

 인간을 보면 복중시대에는 물을 마셔야 됩니다. 그래, 인간의 4분의 3은 물입니다. 인간세계는 공기 세계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 가운데 있을 때는 눈?귀?코 오관이 필요 없지요? 물에서 오관이 필요 없으니까 눈을 감고 꼼짝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중에서 10개월 자랄 때 코로 숨쉬어 봤어요? 코로 숨쉬었다가는 죽어 버립니다. 완전히 절벽강산입니다. (302-166, 1999.06.13)

 그런데 코가 왜 필요하냐? 차기 세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점차적으로 호흡기로 들어간다면 이 모든 걸 파괴하고 나와야 됩니다. 그저 이것도 끊어 버려야 되고, 어머니의 자궁이니 뭐 물집 다 파괴하고 나와야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자궁과 물주머니, 그 환경이 다 파괴되는 것입니다. 죽는 겁니다. 수중 세계에 파괴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302-166, 1999.06.13)

 배꼽에 탯줄 달린 것을 다시 써야 되겠어요, 뚝 잘라 버려야 되겠어요? 잘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 남의 생명줄인데 사람과 사람의 생명줄을 끊어 버려? 왜 그 생명줄을 끊어 버려?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걸 볼 때에 아기는 죽겠다고 '앙앙' 울지만 하나님이 볼 때는 웃겠어요, 울겠어요? 딱 마찬가지입니다. 공기의 세상에서 지금 영인체가 몸뚱이에 붙어 가지고 태아처럼 육신을 빨아먹다가 육신이 다 늙어서 차 버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육신이 '아이구 안 죽겠다. 안 죽겠다!' 할 때에 하나님이 보면 스마일 하겠어요, '아이고'하며 동정하겠어요, '이놈의 간나야, 이 자식아' 하겠어요?
  아기가 태어나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 앞에 사랑의 대상이 되어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지상세계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을 같이할 수 있는 지상세계에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무한한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부모되신 영원한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영계에 태어나야 하는 겁니다.
(116-174, 1982.01.01)

 지상에서 사랑을 호흡하는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산 것입니다. 복중에서 호흡을 할 때는 미래 공기세계의 파이프를 장치하여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지만 다 배꼽 줄에 연결된 태를 파괴시키고 죽어서 나오게 될 때는 새로운 차원, 높은 차원으로 얼마나 변화하느냐? 높은 차원에서 공급받는 것입니다. 공기를 공급받고 나온다는 겁니다. 여기서 나와 가지고는 또 무엇으로 발전시키느냐? 사랑입니다. 사랑의 요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밥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밥 먹는 것은 죽어 가는 겁니다. 물 마시고 다 이렇게 사는 것은 전부 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위해 이 기간에 무엇을 채워야 되느냐? 이 기간에는 새로운 사랑의 인격을 형성해야 됩니다. (139-214, 1986.01.31)

 복중에서 공기세계로 연결시켜 나올 때는 복중세계에서 살던 모든 탯줄과 물주머니를 다 파괴시키고 나와야 됩니다. 그 기관, 복중의 배꼽줄과 태는 파괴되어 죽는 겁니다. 죽음과 동시에 무엇이 나오느냐? 이 우주, 지구성 어머니한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입으로 원소를 보급 받아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139-212, 1986.01.31)

 매미가 날기 전에 애벌레로 있을 때, 나 애벌레로 살겠소. 아이고 껍데기 벗는 것 싫소!' 그러다가도 벗어버리면 후루루룩 날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애벌레에서 매미가 될 때에 그거 벗고 싶겠어요? '아이고, 육지고 뭣이고 공기고 뭣이고 다 싫어!' 하겠어요, '나 좋아. 어서 벗게 해 다오.' 하겠나 말입니다. 날려고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잠자리도 처음에는 유충이 되어 가지고 물속에서 헤엄치고 다니다가 땅 위에 올라와 가지고 한 동안 기어 다닙니다. 그 다음에는 훌훌 천하를 자기 무대로 삼고 날아다니는 겁니다. 곤충류 가운데는 3단계 세계를 거치는 것이 많습니다.
  곤충 중에는 날개 없는 곤충이 없습니다. 대개 날개가 있지요? 곤충도 이와 같이 물에서, 육지에서, 공중에서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이 지상에서만 살면 되겠어요?
(116-176, 1982.01.01)

 여러분들도 이게 싫다고 하지만, 죽어서 벗고 나면 '휘익-' 하는 겁니다. 그거 싫어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3단계 세계를 거치는 것이 똑같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있어서, 제2출생의 복된 관문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49-286, 1971.10.17)

 곤충도 날고, 새 새끼도 날아다닐 수 있는데 사람이 날아다닐 줄 모르겠어요? 바람이 불면 식물의 씨도 날아다닙니다. 민들레 씨 말입니다. 그건 자연히 날게 돼 있습니다. 날아 다니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새도 날고, 곤충도 날고, 식물 씨도 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못 날아요? 그렇다면 하나님보고 가만히 있겠어요? '하나님, 다 나는데 나는 왜 날게 못 했소?' 하고 항의하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이 '야야야! 가만히 있거라. 너희들 몇십 년 지나면 그렇게 될 텐데 기다려라!' 할 때 '아 그래요. 그럼 그렇지!' 하는 건 괜찮다는 겁니다. 그럼 그때까지 뭘 해야 하느냐? 그때 그 세계에 가서 맞게끔 여기서 훈련해야 하는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 보고 좋아해야 하나님을 좋아하고, 신랑하고 좋아해야 저나라 가 가지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그러는 겁니다. 훈련장이 지상세계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걸 바라는데 죽지 않고 가능해요? 죽지 않고 가능한가 말입니다. 이 몸뚱이 벗지 않고 가능해요? 몸뚱이 벗어야 되겠어요, 안 벗어야 되겠어요? (116-176, 1982.01.01)

 사람은 물 세계에서 한번 살아 봤고, 땅 세계에서 한번 살아 봤지요? 그러면 공중세계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겠어요, 안 살아 보고 싶겠어요? 여러분이 복중에서 태어날 때 '난 육지 세상에 나가 입으로 꿀도 먹고, 떡도 먹고, 밥도 먹고, 쇠고기도 먹고 다 먹는다.'고 생각해 봤어요?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아이구 여기를 벗어나면 죽는다면서 배꼽으로 숨쉬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답답해요? 지금 그걸 생각하면 질식할 정돕니다. 그런데도 뱃속에서 밖으로 나갈까봐 '아이고, 안 나가면 좋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 나가야 되겠다고 하겠지만 때가 되면 다 터져 나가는 것입니다. 양수가 확 터져 나오는 그곳을 따라 밖으로 나오면 순산이 되는 것입니다. 잘 태어나는 겁니다. (49-286, 1971.10.17)

 지상시대에는 '우주 어머니, 만물 어머니'입니다. 이게 땅입니다. 지구성이 어머니인 것입니다. 원소들을 여러분들에게 공급해 주지요? 다른 단계의 원소를 공급해 주는 어머니인 것입니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자라게 될 때에는 복중에서 호흡을 하는데 무엇으로 호흡해요? 배꼽 줄로 호흡하지요? 이것이 어머니의 몸과 연결된 호스입니다. 잘 알아두어야 됩니다. 그렇지만 제2세계, 공기세계에 연결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복중에서 살다가 차 버리고 나오면 파괴입니다. 그때는 울음과 동시에 무엇에 연결되느냐 하면, 숨구멍, 콧구멍으로 숨을 쉬게 되어 있는 공기세계에 연결되는 겁니다. 공기세계에 연결되어 가지고 콧구멍이 절대 보급로입니다. (139-212, 1986.01.31)

 물은 복중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다음 코는 공기시대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공기시대입니다. 그 다음에는 눈시대입니다. 태양시대, 햇빛시대입니다. 사랑은 빛이라고 말합니다. 밝아진다고 했지요? 빛의 세계입니다.
  인생은 3시대를 거쳐 산다는 것입니다. 잠자리도 물에서 살다가, 땅에 와서 살다가, 껍데기를 벗고 날아다니면서 벌레를 잡아먹지요? 3시대를 거칩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중시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는 자기의 살던 살림살이를 부둥켜안고 나와요, 다 파괴시켜 가지고 잘라버리고 나와요? 하나라도 달고 나오면 큰일납니다.
  탯줄로 먹기도 하고 숨도 쉬었는데, 그것을 잘라 버리면 죽지요? 그렇지만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가지고는 그것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무자비하게 잘라 버려야 됩니다. 다 파괴시키고 나오는 것입니다.
(229-37, 1999.02.01)

 죽는 것은 무엇이냐? 지상 생활은 공기 중에서 태 안에서처럼 헤엄치고 다니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기 보자기 안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는 것은 무엇이냐? 죽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제3의 인생으로 출생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죽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 좋지요? (49-286, 1971.10.17)

 이 몸뚱이가 이제 무엇을 해야 되느냐? 복중에서 탯줄로 숨쉴 때와 마찬가지로 공기 파이프인 콧구멍을 준비해 가지고 터져 나올 때에 바꿔서 숨쉬는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해야 할 것은 사랑을 체휼하는 일입니다. 사랑이라는 공기를 들이마셔야 됩니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사랑의 공기를 들이마셔야 됩니다. 사랑의 공기를 공급받아 가지고 다 거쳐가야 됩니다.
  한 가정에 아기로 태어났다가 사인 커브와 마찬가지로 올라갔으면 다 꺼져 가는 겁니다. 아기로 태어났다가 커 가지고, 그 다음에는 분해되어 가는 것입니다. 아기로 태어났다가 아기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는 제2복중세계를 차 버리고 제3사랑의 호흡기관에 연결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형제의 사랑을 차 버리고 대우주의 하나님 본체에 화한 사랑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영계는 사랑의 공기입니다. 사랑의 공기로 꽉 찼 차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이 지상세계에서 사랑의 숨을 쉴 수 있는 파이프 장치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계의 체험이 필요하고 영적 사랑을 느낄 수 있어 가지고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139-212, 1986.01.31)

 우리들은 어느 땐가 육신을 벗고 영계로 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해야 됩니다. 또한 선한 자아를 영원한 세계에 제2의 나로 세우기 위해서는 고생을 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교를 잘 받아야만 건강하고 선한 아기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상세계에서의 생활은 복중에서의 생활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고,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본받으며 자라야 됩니다. 자라서 또 생명을 걸고 사랑을 가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14-17, 1964.04.19)

③ 죽음은 더 좋은 세계로 옮겨가는 것

 인간이 자기 중심삼고 볼 때는 소망을 가진 듯하나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생의 본으로 알고 죽어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을 찾아 그 소망을 즐기면서 갈 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6-45, 1959.03.22)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야 돼요? 영계입니다. 그것은 뭘 말해요? 사후의 세계라고 말하지만,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 사후의 세계가 될 수 없느냐? 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참된 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는 지금 여기가 영계입니다. 영계 육계, 두 세계가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위대하다는 겁니다.
(144-199, 1986.04.24)

 여러분의 제1의 부모는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지만, 제2의 부모는 지구입니다. 여러분은 땅으로부터 몸뚱이가 클 수 있게끔 모든 요소를 공급받는 겁니다. 땅이 몸뚱이의 제2의 부모입니다. 제2부모를 거쳐서 제3부모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제3부모에게로 가는 데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3부모에게 돌아가려면 본래의 부모였던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됩니다. (138-98, 1986.01.19)

 여러분이 '70이 되더라도 나는 이렇게 간다.'하는 걸 한번 생각해 봤습니까? '나이 80이 되고 죽는 순간에도 나는 이렇게 간다.' 하는 걸 생각해 봤어요? 죽는 자리에서도 '나는 이렇게 역사를 밝혔고, 지금까지 이 세대에 이런 일을 했다,'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증거물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말로만 하면 안 됩니다. 말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그를 붙들고 눈물 흘리며 '그렇고 말고, 그렇고 말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73-116, 1974.08.16)

 인생의 갈 길은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을 고비를 거쳐서라도, 죽어서라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찾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갈 길입니다. (39-210, 1971.01.10)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중심삼고 10년, 20년, 30년, 70년, 일생 동안 가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크면 클수록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다짐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그 목적을 능가할 수 있는 내적인 결의를 계속하지 않는 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31-149, 1971.05.24)

 마음의 종착점, 즉 욕망의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더 귀한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만 점령하면 하나님은 안 계셔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그의 것이 될 때, 비로소 안팎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상하의 등급이 없는 이상의 본국(本國)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눕게 되면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을 위해서 있지 않은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오늘날 인간이 갈 천상세계, 즉 천국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그 곳은 사랑으로 충만된 곳입니다.
(39-210, 1971.01.10)

 통일교회 선생님은 죽되 어떤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민족과 대한민국까지 몽땅 안고, 세계를 위하여 죽을 것입니다. 한민족이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해서 죽고자 할 때는 세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이 있겠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34-192, 1970.09.06)

 할아버지 할머니도, 천년만년 후대의 후손도,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도 영생으로 가는 그 공식적 노정은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위해서 살던 사람들만이 패스할 수 있는 정문이 있고, 거기에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거기에 패스할 수 있는 자격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선생님이 부탁하는 것임을 잘 알기를 바랍니다. (203-193, 1990.06.24)

④ 죽음은 새 차원으로의 승화(昇華)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사람이 죽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통일교회는 죽음을 슬픔으로 맞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199-353, 1990.02.21)

 여러분들도 육신을 벗고 죽는 것이 싫다고 하겠지만 막상 죽어서 육신을 벗고 나면 우리는 영인체로서 제2출생의 복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휙- 하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297-261, 1998.12.19)

 우리는 처음에 어머니 태 속에 있었습니다. 그 태가 우리를 기르던 보자기입니다. 그 보자기 속에서 나올 때 전부 다 차서 끊어 버리고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인체에 대해 육신은 보자기와 같기 때문에 이걸 끊어 버리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국 물의 세계, 육지의 세계, 공중 빛의 세계를 거쳐 영원한 참사랑의 세계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298-311, 1999.01.17)

 통일교회는 죽은 후에 장사(葬事)도 그렇게 안 합니다. 승화식(昇華式)입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어디 있어요? 천하에 무서운 것이 어디에 있어요? 죄악된 세계, 혼란된 세계에 있어서 자주적인 중심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천지의 도수를 맞추어서 하나님의 사랑권 내의 수직의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 수직의 자리에 들어가느냐? 그 자리에는 그림자가 없습니다. 수직의 자리에 그림자가 있어요? 모든 것이 완성입니다. 그 다음에 이게 돌게 되기 때문에 도는 환경 전체가 수직화 됩니다. (198-124, 1990.01.25)

 자기의 죽음의 한날을 갈 때에 내가 어떻게 90각도로 천상에 도약하여 승화되어 올라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45도로 가다가는 거기에 못 미칩니다. 오로지 90각도로 올라가야만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하기 때문에 90각도 외에는 없습니다. 수직밖에 없습니다. (215-109, 1991.02.06)

 통일교회에서는 죽어서 장사하는 것을 승화식이라 합니다. 죽은 사람을 붙들고 우는 것을 보면 죽은 영이 탄식한다는 겁니다.'이렇게 무지해 가지고 내 갈 길을 밧줄로 당겨서 못 가게 만들어 놓는다.' 하는 겁니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승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히 비상천 한다는 겁니다. 사랑의 힘을 가지고 밀어주어야 됩니다. 잡아당기지 말고 밀어주어야 됩니다. (199-130, 1990.02.16)

 승화식이 뭐예요? 변화해서 한 단계 올라간다는 겁니다. (196-55, 1989.12.24)

 오늘날 인간이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던 겁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닙니다. 슬픔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차원이 낮은 세계에서 차원 높은 세계로 사랑의 다리를 통해서 이동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는 죽음을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차원 높이 승화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건 사랑에서만이 가능합니다. (136-316, 1986.01.05)

 하나님이 누구 때문에 계시는가?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사랑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 세우기 위해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무엇 중심삼고? 참사랑을 중심삼고. 참사랑은 위하고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그렇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습니다. 영생문제를 알기 때문에 교수대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서운 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죽음을 승화(昇華)라고 하고, 그 식을 승화식(昇華式)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영계에 가 있는 아내와 얘기하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런 세계를 지금 이 세상이 모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것을 돈주고 살 수 있습니까?
(209-160, 1990.11.28)

 승화식은 우리 흥진이가 갈 적부터 생긴 것입니다. 그때 성립된 것입니다. 병원에서 산소 마스크를 하고 있는 걸 선생님이 떼어야 했습니다. 영계 갈 길을 전부 정리해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타락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흥진이가 요전에 와 가지고 역사하면서도 아버님에게 진 빚은 갚을 길이 없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참부모의 가정에서 자라던 청소년으로서 영계에 간 것은 처음입니다. 흥진이가 감으로써 영계의 재림주와 마찬가지로 영계의 메시아로 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높은 데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225-136, 1992.01.05)

 영계에 가는 것이 슬픈 게 아닙니다. 해방의 나팔 소리와 함께 천국 깃발을 들고,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백전백승해 가지고, 천하에 금의환향하는 깃발을 들고 민족과 인류의 환성을 받으며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는 환고향 길입니다. 슬픈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울지 않습니다. 그걸 뭐라고 그래요? 승화식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흥진군이 감으로 말미암아 이 사망의 담을, 죽음의 담을 헐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승화식이라는 겁니다. (227-260, 1992.02.17)

 죽음이 낙담이나 낙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약을 하는 겁니다. 승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겁니다. 죽음은 이런 자연 순환법도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더 좋은 세계에 옮겨 주기 위한 하나의 절차인 것입니다. (196-270, 1990.01.02)

 사랑으로 모든 사망권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사망권을 이기느니라!' 이게 창조원리입니다. 그래서 애승일을 선포했습니다. 이제 흥진군이 그렇게 영계에 감으로 말미암아 우리 통일가의 모든 아들딸들은 승화식을 하게 되면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나라에 가는 배를 타게 되더라도 의인들이 전부 모시러 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이고 대혁명적인 차원이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242-278, 1993.01.02)

 애승일(愛勝日)이란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흥진이가 돌아간 이후부터 떠나 보낼 때까지 눈물을 한 방울도 안 흘렸습니다. 사망권을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사망을 이겼다는 이런 팻말을 세우지 않고는 승화식(昇華式)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승화식이란 말은 흥진군으로부터 나왔지요? 그렇지요? 그 애승일이라는 것의 그 애승이 뭐냐? 사망을 이기는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어머니도 몸부림을 치고 배밀이하며 통곡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머니가 눈물 흘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일 이내에 이 식을 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을 이겼노라고 선포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는 승화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망을 넘어 기쁨을 향해서 가는 겁니다. 승화식을 거쳐가는 사람들은 영계의 모든 골짜기를 휘익 넘어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가서도 중간에 머물지만 말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승화식이란 것은 흥진군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212-96, 1991.01.02)

 통일교회에서 사람이 죽으면 승화식을 하지요? 그것은 도약해서 별개의 세계로 이동하는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성을 질러야 되는 겁니다. 죽어서 가는 사람은 영계를 잘 봅니다. 울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 겁니다. 이것은 즐거운 곳으로 이동해 가는 겁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눈이 전부 다 엉망진창이 되어 몰랐다는 겁니다. (255-294, 1994.03.11)

 치매가 오는 것도 세상적으로 양심 자체가 마비되어 육체와 하나되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양심이 마비되어서 지옥의 영인체와 대화하면서 치매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건 선한 영인을 통해 천국의 이상을 기억시켜 가지고 점차 정화하여 승화, 승천하도록 해 줘야 합니다. (258-136, 1994.03.17)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을 때 호적지에 신고를 하지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의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의 나라가 있으면 우리도 태어나고, 결혼하고, 승화할 때 등록을 해야 합니다. 저나라에 가면 여러분은 미국 사람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어디서 왔어?''미국에서 왔다.''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하면서 그곳의 문지기가 물어 볼 것입니다. '어디서 왔어?''참부모를 모시던 지상천국에서 왔다.'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겁니다. 이거 사실입니다. 컨셉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278-36, 1996.04.28)

⑤ 죽음 앞에서의 자세

 사람들이 죽을 때에 먼저 누구를 부릅니까? 하나님을 부릅니다. 최고 어려운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는 최고 진실입니다. 죽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죽는 자에게는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죽음의 도리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칙에 가까운 자리에서 그 원칙만 붙들고 죽게 되면, 회생할 수 있는 길이 뚫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죽을 자리에 가서는 '아이고 하나님!'하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훈 중에 진실한 교훈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는 그래도 옳은 말을 하고 죽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잘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옳은 말 중의 옳은 말입니다.
(26-297, 1969.11.10)

 죽을 때도 사위기대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위기대를 갖추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죽음 길도 올바로 가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 난 후에도 영혼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원칙을 아는 여러분은 죽을 때 누구를 붙들고 죽겠습니까? 하나님, 그 다음에는 참부모입니다. 태어날 때도 그분을 통해서 태어나고 죽을 때도 그분을 통해서 죽어야 영계에서도 영원히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나서 그분을 통해 결말 짓는 것입니다. 전부 다 이 원칙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 효의 도리요, 충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효와 충의 도리를 다한 사람이 인생 행로에 있어서 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 가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생살이는 이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26-297, 1969.11.10)

 여러분이 죽을 때 무엇을 중심삼고 죽겠습니까? 사랑을 모두 잊어버리고 죽겠습니까, 꼭 끌어안고 죽겠습니까? 사랑 중에서도 누구의 사랑을 붙들고 죽겠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먼저 붙들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부부의 사랑과 자녀의 사랑을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사위기대 원칙에 부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6-297, 1969.11.10)

 앞으로 여러분의 자식에게 무슨 유언을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무슨 유언을 할 것이냐? 부모가 하지 않고 자식에게 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부모는 자식을 이용해 먹겠다는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먼저 실천하고 나서 죽기 전에 아들딸에게 '나는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게 살았으니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라'하고 유언을 하면, 그 유언은 하나님이 영원히 지켜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을 때에 후손들에게 그렇게 유언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26-300, 1969.11.10)

 보편적으로 사람은 역사를 두고, 영생을 중심삼고 십 년, 백 년뿐만 아니라 천년만년, 억천만 년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동물과 마찬가지인데, 그걸 남겨서 뭘 해요? 요즈음에는 종교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아, 명예를 남겨야 되겠다.' 하는데 그 명예를 남겨서 뭘 해요?
  미국의 애국자가 되어서 기념관에 가 있어도 미국이 망하게 될 때는 기념관이 다 깨질 텐데 말입니다. 미국 국민들이나 압니다. 이름을 남겨서 뭘 하느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망하고 흥하는 역사시대에 아무리 남겼댔자 그 좋다는 것도 나쁘게 취급받는 겁니다. 그렇지만, 모든 주권자는 한 백 년도 못 살고 다 죽고, 나라도 몇백 년, 몇천 년 못 가서 망하지만 영원히 죽지도 않고 망하지 않는 분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분이 있다면 이름, 명예를 남긴 것을 그 분 앞에 전부 다 맡기고 의탁하고 싶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생각 안 해 봤어요?
(103-16, 1979.01.28)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죽어야 됩니다. 하늘나라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도 크지요?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하늘나라에서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죽느냐. 죽는 데도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시시하게 한국적인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국적인 것 가지고는 암만 죽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 천상천하를 통과한 하나님의 심정의 나라를 중심삼은 최고의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하늘나라 복판에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가 제일입니다. 그러면 세계가 전부 반대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도망가면 되겠어요? 아닙니다. 턱 버티어 가지고 천하가 다 깃발을 들고 환영하는 자리에서 죽어야 합니다. (34-185, 1970.09.06)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죽음의 길 앞에서 후퇴한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비웃고 죽음을 늠름히 넘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의 길을 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죽음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넘고 나면 나는 하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마음으로 동경하던 세계 그 본향을 향해 기쁨으로 달음질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6-53, 1959.03.22)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인간이 슬퍼하는 죽음의 고개도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건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음을 앞에 놓고 세상만사를 원망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뻐하고 하늘 앞에 서서 자기의 죽음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늘은 이러한 소망의 아들딸들을 찾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서 하늘의 기쁨을 느낀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늘을 대하여 울부짖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하늘이 그 울부짖음에 응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6-54, 1959.03.22)

 뜻을 위해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뜻을 위해 죽어야 할 자리에서는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죽기 전에는 내 것이지만, 죽은 후에는 하나님 것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혈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기 전까지는 우리의 생명 전부는 사탄 편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과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을 두고 볼 때 어느 것이 강합니까? 죽음보다 생명이 더 강합니까?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까? 사탄세계에서는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뜻을 알고 난 후에는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기 싫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34-47, 1970.08.29)

 유효원 협회장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선생님을 만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나왔는데 끝을 어떻게 맺을 것이냐?'하고 내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유 협회장은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는 어차피 죽어야 됩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한 시대를 지내지 않고는 다른 시대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34-47, 1970.08.29)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께서 영원히 가질 수 있는 생명을 죽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세계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받은 생명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뜻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역설 같지만 타락과 복귀의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귀의 정상적인 논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는 어땠는가? 나는 생명을 내 놓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느냐를 생각했습니다.
(34-47, 1970.08.29)

 나의 생애에 뭘 할 것이냐? 사랑의 무덤을 남기고 가자, 이겁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사랑의 무덤을 남기고 가자!' 사랑의 무덤 가운데에서 살면 한이 없다 이겁니다. 무덤 같은 데서 아무리 지긋지긋하게 살더라도, 사랑 가운데에서 살면 한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랑의 무덤을 남기고 가자!' 그러면 인생살이는 영원을 두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살다가 죽을 때는 하나님이 축복해 줄 것이고, 영계에서는 하나님이 아들딸을 데리고 환영 나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가락지를 못 낀 손이라면 하늘나라의 다이아몬드를 끼워 줄 것이고, 옷을 못 입었다면 하늘나라의 황족들이 입는 최고의 옷을 입혀 줄 것입니다.
  나의 일생은 뭘 남기는 거라구요? 사랑의 무덤입니다. 그렇게 알고,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 한번 그렇게 살아보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다 들었구만.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같이할 것입니다.
(97-169, 1978.03.12)

⑥ 축복으로 영생의 길이 열린다

㉮ 제일 중요한 것은 영생문제

 사람은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의 삶의 길을 바라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하게 되면 하루하루 사는 것을 말하고, '생애'하게 되면 일생의 삶, 일생을 두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영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일생이 아니요,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생을 하기 위해서는 생애노정을 그 영생에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해야 하는 것이 생애의 책임입니다.
(197-186, 1990.01.14)

 여러분들은 얼마나 살 것 같아요? 전부 다 '칠, 팔십은 다 살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요? 그 전에 죽는다고 생각 안 해요? 여러분들은 욕심쟁이입니다. 내가 일생을 사는데 팔십에 죽거나 백 세에 가서 죽을 거라고 절대 믿는다 해도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밥 먹다가 죽을지 알아요? 오늘 저녁에 신발 벗고 들어와서 잠 자다가 죽을지 알아요?
  여러분의 생각에는 '아, 내가 젊었으니까 이제부터 적어도 사십 년, 오십 년은 산다.' 그런 욕심을 다 갖고 있지요? 하나님한테 보증받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일 년 이내에 죽을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짧은 기간에 준비를 다 해야 됩니다.
  이 관념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잡아야 행복합니다. 짧게 잡을수록 손해 안 본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에 참되게 준비하는 그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겁니다.
(102-122, 1978.11.27)

 밤에 잠자리에 들어갈 때 벗어 놓은 신발을 다음날 아침에 다시 신을 자신이 있는가? 아무리 바쁘다고 하여도 영생 문제 이상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영생문제를 결정짓는다는 심각한 느낌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10-249, 1960.10.21)

 신앙길이라는 것이 지금 살고 있는 인생살이, 육신 생활의 준비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의 생활을 위한 준비라는 것이 틀림없다는 신념만 가지게 되면, 그건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40이 넘고 50이 넘을 수록 죽을 날이 가까워 오기 때문에, 영생 개념이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희박해지지만, 영생 개념만 집어넣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이념만이 앞으로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악한 환경, 혼란된 변화가 얼마나 빈번해요? 빈번히 변하는 환경을 뚫고 넘어가고, 어떤 곳에서 희비극이 부딪쳐 오더라도 영생 개념만 철저하면, 모든 것이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1992.4.15)
(230-22, 1992.04.15)

 하나님이 사람을 어떠한 존재로 지었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자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요즘 인간의 한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돼요? 몇 푼 돼요, 몇 푼? 그런 무가치한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선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 사랑의 상대권을 갖추어 남자를 지었고 여자를 지었다는 놀라운 사실. 그게 좋다는 것입니다. (142-143, 1986.03.08)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적인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아 났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해야 되고, 영생해야 그 걸작품의 존재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이겁니다. (159-281, 1968.05.19)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이 최고의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내 것이며, 또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 자신도 되니, 우주는 누구의 것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10년이나 100년쯤 같이 지낸 후에 집어던지게끔 지었겠어요,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겠어요?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으면 그만이면 좋겠어요, 영생해야 되겠어요? 영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 절대자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39-342, 1971.01.16)

 하나님이 영생하시는 절대자라면 그분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도 영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고로 영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인 하나님은 영생하는 가치를 지닌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함께 있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으면 그 아내의 손수건을 갖고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지요? 네루 같은 양반은 자기 아내가 젊어서 죽었는데, 그 아내가 장미를 좋아한다고 해서 일생 동안 장미꽃을 차고 다니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지극히 귀한 아들딸들 지을 때 백년쯤 산 다음 망하게 지으셨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39-342, 1971.01.16)

 사람은 사랑에서 나서 사랑에서 커 가지고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주체되시는 그분이 영원, 불변, 유일하니까 그 앞에 대상적 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겁니다. 영생이라는 이론이 여기에서 발발하는 겁니다. 생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42-143, 1986.03.08)

 사랑 때문에 인간을 지었다 할 때는 영원하신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 영생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에 일치된 인간 자체는 영생을 갖는다는 것은 자연적인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하려면 그 참사랑권 내에 살아야 합니다. (211-272, 1990.12.30)

 '우리는 영원할 수 있다!' 영생을 바란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 '사랑이다!'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환경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 왜 변하지 않느냐? 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의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주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은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157-267, 1967.04.10)

 영생, 나는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영생과 참사랑을 나는 여기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내가 여기서 하는 모든 일들, 공장에서 일하고 하는 전부가 영생을 연장시킬 수 있는 재료들이라는 것입니다.
  '영생을 훈련하고 영생을 키우는 이러한 훈련 재료를 생산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영생과 참사랑은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영원히 필요한 것입니다.
(216-127, 1991.02.09)

 자기의 몸 마음의 완성이라는 것은 참사랑에게 속하는 것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한의 근본, 원인으로부터 과정, 그것으로부터 이상의 결실을 맺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에 의해서,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영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존하는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영존하는 거예요? 영생은 사랑에 의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환경을 이루는 데는 사랑의 환경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실체권을 갖는 데는 사랑을 중심삼고 실체적인 체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218-134, 1991.07.14)

 어떻게 영생하느냐 물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뭐 예수를 믿으면 영생해? 믿으면 구원받아?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창조원칙의 본질적 원칙으로 볼 때에,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히 살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 사랑권 내에 들어가 있으면 영계나 지상에 살게 될 때에 자기가 어디 가서 살 것인지 다 보고 사는 겁니다.
(215-53, 1991.02.06)

㉯ 사랑에서 영생개념이 나온다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냐 막연하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유일?영원?불변한 것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가진 사람은 절대적인 행복자요, 유일적인 행복자요, 영원적인 행복자요, 불변적인 행복자입니다. 거기에 비로소 영원한 자유가 있고, 절대적인 자유가 있고, 불변의 자유, 유일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도 절대?유일?불변?영원한 것이 있는 것이다 이겁니다. 거기에 연결됨으로 말미암아 영생은 자동적인 결론이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279-73, 1996.07.24)

 사랑을 가졌으면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자도 고단치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만나서 시공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사랑하는 상대가 올 때는 밤이 되면 자야 되겠어요?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남으로 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영생 개념이 나옵니다. 영원한 사랑의 힘이 계속하는 한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사랑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의 영생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277-22, 1996.03.17)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이라 할 때, 그 사랑 앞에 절대적인 상대가 돼서 하나되게 될 때는 하나님이 영존하는 한 인간도 영생한다는 논리가 이론적으로 결정 나는 것입니다. 그걸 몰랐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상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걸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혼자 살아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262-137, 1994.07.23)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절대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절대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이 상대주권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으로 부정을 못 하니까 내가 찾아진 자리를 절대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절대 안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고,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니 그런 사랑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이 논리적인, 이론적인 상대권으로 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진 사람은 땅에서부터, 지상세계에서부터 천상세계까지 영생하는 법입니다. 이 이론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세계에는 참사랑 관계가 없으니 지옥 가는 것입니다. (272-63, 1995.08.30)

 사랑은 영원성을 갖고 있는 겁니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겁니다. 참사랑은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에 영원히 떨어지고 싶지 않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에 영생이 있는 겁니다. 따로 떨어지는 데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위대한 것이다 이겁니다. 사랑은 불변하는 것이다, 영원한 것이다 이겁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혈통관계를 맺게 될 때는 인간은 영생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변치 않는 사랑의 주체인데 그 주체와 하나되었으니, 하나님이 변치 않고 하나님이 영원하니, 그 사랑과 하나되어 가지고 일체 된 그 대상도 불변하고 영원하다는 것은 이론적입니다.
(289-133, 1998.01.01)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한히 투입하고 희생하면, 참사랑이 배후에 있는 한 자식은 그 참사랑에 무한히 감사하게 되는 것이고, 부모는 큰 기쁨으로 그 희생의 자리를 메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희생적인 참사랑의 힘을 주고받는 작용을 발전시켜 참가정에서, 그리고 참세계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화의 관계를 맺게 합니다. 이러한 곳에서 영생의 이상세계가 현현하는 것입니다. (288-199, 1997.11.28)

 이 우주는 작은 데서 커 나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상대를 얻어서 무한 운동을 함으로서 생성되어 나왔다 이겁니다. 이 공간에 존재하는 관성에 의해 무한히 운동해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상대적 기준을 중심삼고 이 태양계면 태양계에 있어서 갖추어 가지고 딱 성숙한 자리에 들어가 무한 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과 해와도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히 위하는 사랑으로 하나되게 되면, 무한 운동을 함으로써 영원, 영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직선에는 영원이 없습니다. 영생권이 없습니다. 회전하는 데서 영원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전해 가면서 점점 커 가는 것이 역사 발전 현상입니다. 그 중심은 하나입니다.
(261-151, 1994.06.09)

 우주의 대원칙 기원과 화합할 수 있으면 영존(永存)할 수 있는 것이요, 그렇지 않는 것은 영멸(永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존하니까 그 대상, 위할 수 있는 대상은 영존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도 영생 논리는 자동적인 결론입니다. 깨끗해요? (260-254, 1994.05.19)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절대적 하나님의, 주체적 하나님의 대상의 자리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참사랑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생명의 중심이며, 그 하나님의 이상은 더 영원한 것이며, 그 이상의 중심이 바로 참사랑의 이상입니다. 그 사랑의 상대가 나입니다. 그러한 영원한 자리에 어떻게 나가느냐? 영원한 파트너의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예요! 그것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나 동참할 수 있고, 어디 가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전 재산을 다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생의 자리, 그 심정까지도 다 상속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하나님의 피조만물에 함께 하는 그 마음, 하나님이 모든 이의 마음에 머물고 싶은 마음까지 다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해요? 그 고귀한 가치를 발견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숭엄하고 고귀한 자리입니다. 놀라운 은사라는 것입니다.
(216-115, 1991.03.09)

 대기가 백 퍼센트 절대 저기압권이 되면 고기압권이 생겨 가지고 자동적으로 순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지혜의 왕입니다. 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느냐? 자동적으로 순환원리를 통해서 영원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논리가 논리적으로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작은 데서 큰 것으로 해 가지고 큰 것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안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204-107, 1990.07.01)

 하나님이 절대적인 사랑의 파트너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가 세울 것이냐 할 때에,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창조주의 영원한 사랑의 파트너, 창조주의 사랑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게 될 때 그 사랑과 하나된 사랑의 파트너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적인 산물입니다. 영원한 영생은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고,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218-211, 1991.07.29)

 이제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사랑의 자리에 동참한 것입니다. 바깥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이 영생 개념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으니 죽어서 영계에 가 보라는 것입니다. 일순간에 비약하는 것입니다. 이 제한된 지구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한된 곳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지만, 저세계는 차원이 높은 세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궁무진합니다. (216-115, 1991.03.09)

 영생, 나는 영생한다. 하나님 중심한 참사랑이 나와 연결되고, 하나님 중심한 참생명이 나와 연결되고, 하나님 중심한 참혈통이 나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이 확실해요. 나는 영생한다, 하나님처럼 참사랑 중심삼고. 하나님이 이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책임분담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 역시 성공한 것입니다. (216-115, 1991.03.09)

 하나님도 숨을 쉽니다. 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주의 박자를 맞추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에 영생이 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호흡권 내에 들어가서 휙 넘어가는 것입니다. (201-191, 1990.04.01)

 하나님의 섭리가 살아서 지상 역사와 더불어 움직이는 것은, 영원한 길을 닦기 위한 것이다 하는 것으로 딱 들어가게 되면, 신앙화시키기 쉽다 이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착륙시킬 수 있는, 지상기반에서 신앙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애매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적 한계성을 확실히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착륙할 수 있는 신앙기반이 확정된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시는 것을 내가 지상에서 협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저 영계가 우리 현재 실제생활과 관계를 갖게 되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할 수 있다는 개념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상생활은 영생할 준비를 하는 생활입니다. 직결된다 이겁니다. 그것이 연결 안 되어 가지고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198-7, 1990.01.20)

㉰ 축복과 영생

 타락인간은 혈통을 전환해야 됩니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부자의 관계인데, 이러한 모든 것이 미지의 사실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풀리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다 이겁니다. 혈통전환도 개인권, 가정권, 민족권, 국가권, 세계권 전부 다 해야 됩니다. 이것은 메시아가 와야 되는 겁니다. 부모가 나오지 않으면 혈통이 전환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개인이 책임져야 됩니다. 개인이 전부 다 이런 일을 해서 넘어 가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아는 메시아가 와 가지고 대신 해 주는 것입니다.
(161-147, 1987.01.18)

 여러분은 새로운 핏줄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이어 받으려니 메시아가 아버지로 와서 사탄세계를 이긴, 사탄이 간섭할 수 없는 초세계적인 기반에서 해와를 모시고 탕감복귀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부부의 인연을 중심삼은 가정을 중심한 아들딸을 세워 횡적으로 접붙이는 놀음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 축복을 해주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다릅니다. 통일교회는 핏줄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했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탄세계에서 반대해 봐라 이겁니다. 반대하다가는 손해배상을 물게 되는 것입니다. (1987.10.4 본부교회)
(169-37, 1987.10.04)

 우리 인간은 혈통적으로 사탄의 핏줄을 받았으니 그 자체로서는 하늘 앞에 돌아갈 수 없는 겁니다. 그러니 메시아는 절대 혈통복귀를 해 가지고 사탄이 더럽힌 핏줄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걸 전환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반드시 와야 되는 겁니다. 메시아가 오지 않고는 혈통복귀가 안 되는 겁니다. 혈통을 복귀해야 됩니다. (1988.1.7 본부교회) (172-53, 1988.01.07)

 끝날에는 무슨 시대가 오느냐? 동족상간 관계가 벌어집니다. 근친상간 관계가 벌어집니다. 동족이나 근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느냐? 예수님의 아버지가 누구라구요? 사가랴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전부 다 성신으로 잉태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무정란을 알아요? 무정란이 뭐예요? 계란은 마찬가지인데 씨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무정란입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생이 없습니다. (274-256, 1995.11.03)

 참부모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뿌리 되는 그릇된 혈통을 바로 잡아야 되고, 그릇된 생명을 돌이켜 놓아야 되고, 그릇된 사랑의 길을 바로 열어야 됩니다. 성경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그런 역설적인 논리가 왜 나와야 되느냐? 사탄세계는 죽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169-39, 1987.10.04)

 혈통적 전환은 누가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이 일을 하기 위해 눈물겨운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기준이 있기에 여러분은 아무 공로 없이 축복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잇게 되었습니다.
  전환의 승리권을 세우는 데는 수천 년에 이르는 하나님의 노고와, 실체를 중심으로 한 선생님의 고난의 생애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선 곳이 바로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입니다. 축복이란 접목하는 것이며, 접목함으로써 혈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35-178, 1970.10.13)

 그래, 참사랑을 중심삼은 종적인 부모와 횡적인 부모가 합덕해야만 거기에 사랑의 정착지, 생명의 기원지, 혈통의 인연지가 교착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태어난 아들딸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영생할 수 있는 존재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황족적 계대를 이을 수 있는 황족이 되는 것입니다. (245-94, 1993.02.28)

 사랑에 동거하면 영생이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절대 불변의 하나님이요, 영세(永世)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상대자인 인간도 영생한다고 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결론입니다. 아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247-223, 1993.05.09)

 여러분들 축복받을 때 혈통전환식을 했지요? 그걸 내 생명보다 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하나의 예식이라고 해서 그저 일반 종교의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었던 사람 앞에 회생(回生)하는 주사약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독 주사라는 것입니다. (216-109, 1991.03.09)

 혈통을 전환하는 것은 메시아가 할런지 모르나, 전환하도록 행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한 기준이 이룩되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죽느냐 사느냐의 경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40일 단식기도라든가, 피를 토하는 죽음의 경지에 가야 혈통 전환이 가능합니다. (35-160, 1970.10.13)

 먼저는 부모를 진심으로 그리워해야 됩니다. 내 생명의 동기도 부모요, 내 소망의 일체도 부모요, 내 모든 이상과 행복의 근원도 부모라고 하는 기준을 갖고 부모를 모시지 않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모셔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참부모와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아들, 딸이다.'라는 신념을 자신의 존재의식을 초월할 수 있는 정도로 굳게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30-237, 1970.03.23)

 에덴동산에서 결혼을 잘못한 것이 타락이니, 이제 참부모가 바르게 결혼시켜 줌으로써 다시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거짓 부모가 저질러 놓은 일을 참부모가 청산함으로 지옥을 철폐하고 수백, 수천억의 영계의 조상들마저 축복 결혼시켜 주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지상의 후손들의 가정기반을 통해 영계의 조상과 지상의 후손이 종적으로 하나로 합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가정기반을 기점으로 동양과 서양이 서로 연결됩니다. (300-222, 1999.03.14)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얼마만큼 사랑해야 되느냐? 근본문제로 돌아가는 겁니다. 사탄세계의 사랑의 흔적이 있는, 그 사랑이 물든 자리에서 사랑하면 안 됩니다. 그 이상이라야 됩니다. 그건 무엇이냐? 여러분이 사탄세계에서 태어난 어머니, 아버지, 처자,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기는 '네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나에게 합당치 않고 네 에미나 애비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나에게 합당치 않다.'고 한 겁니다. 전부 그런 결론을 내린 겁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끌고 가는 힘을 누르고 넘어가려니 십자가입니다. 여기에서 비통한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1988.6.1 본부교회)
(178-97, 1988.06.01)

 영계에 가면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그림자가 없는, 영원한 아침의 햇빛이 넘치는 겁니다. 하얀빛이 너무 밝아 가지고 보라색 빛으로 변하는 겁니다. 은빛 금빛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전기의 빛이 뭐냐 하면, 사랑 빛입니다.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가 하나 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전깃불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도 하나되어 가지고 번개와 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사랑의 빛입니다. 그것이 영생의 본질입니다. 그 마지막 목적점에 도달해야 합니다. (292-265, 1998.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