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헌금은 법도에 맞게 드려야 한다
① 십일조 드리는 법
공금에 대해 엄격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자기 총수입에서 십(十)의 일조(一條)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됩니다. (11-218, 1961.08.26)
십일조는 소유하고 있는 물질 중에 십분(十分)의 일(一)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전체를 바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전체를 바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정성들여 바침으로써 남은 아홉도 거룩한 물건으로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바치며 사는 사람은 절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창고가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31-239, 1970.06.04)
정성들여 십일조만 해보면 절대 굶어죽지 않습니다. 그 후손이 물질에 대한 궁핍을 당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십일조 드리기 위해 정성을 들여라,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적당히 하면 되겠거니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제물은 내 생명 대신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귀한 것을 바쳐야 됩니다. (63-338, 1972.10.22)
탕감을 하기 위해 물건을 조건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늘 앞에 바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9수는 타락세계의 수(數)요, 10수는 이것을 벗는 수요, 하늘세계의 수입니다. (10-217, 1960.10.14)
레위 족속이 치리(治理)하는 교회 제단 앞에 열한 지파는 전부 다 십일조를 바쳐야 됩니다. 앞으로 십일조 안 바치면 교인이 아닙니다. 원래는 십(十)의 삼조(三條)를 바쳐야 됩니다. 하나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하나는 세계를 위해서, 하나는 교회를 위해서…. 십의 삼조를 바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는데 생활의 십일조를 내는 것은 절대적입니다. 그걸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침범하면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9는 삼삼은 구(3×3=9), 이것을 사탄이 지금까지 지배했다는 겁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이 땅 위에 이 9수를 하늘앞에 맡겨 연결시킴으로써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0수를 찾아 놓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9수를 끌고 들어가면 이 9수권(九數圈) 내의 모든 소유권을 사탄세계에서 분리해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말이 나왔다는 겁니다. (150-218, 1961.04.15)
복귀도상을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는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삼조까지 할 각오를 해야 됩니다. 하나는 나라에 바치고, 하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복귀과정에서는 안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하늘나라에 바쳐야 됩니다. 십의 일조라는 것은 하늘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효성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150-218, 1961.04.15)
여러분이 헌금할 때 뭘 사먹다 남은 돈으로 헌금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돈은 더러움을 탄 것입니다. 또, 시장에 가서 뭘 사다가 남은 돈으로 헌금을 하게 되어도 하나님은 거기에 같이하시지 않습니다. (48-86, 1971.09.05)
제물은 남이 남긴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은 더러움을 탄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곳에는 못 가게 하는 겁니다. (30-133, 1970.03.21)
앞으로의 모든 물건은 최후로 세계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하나님의 것이요, 세계적인 참부모의 것이 되고, 세계적인 참자녀의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물건을 그런 물질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철저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23-336, 1969.06.15)
자기가 쓰는 데서 얼마 헌금해 가지고 그것으로 교회를 지탱한다는 것은 지극히 좋은 것 같지만 나쁜 겁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은 자기 생활보다, 자기 전체보다도 먼저 해야 될 텐데, 그거 몇 퍼센트 바친다는 그 관념으로 인해 자기 생활이 위주요, 하나님이 다음 단계에 서는 것이 상습화 되기 쉽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둘째가 되고 맨 꼴래미로 가 버립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96-101, 1978.01.02)
여러분이 헌금을 하게 될 때는…. 아이들이 주일날 아침에 교회에 갈 때 '엄마, 아빠, 나 연보, 연보!' 하게 되면 뭐 얼마짜리 주면서 '야야, 연보다. 주일학교 연보 해라!' 이래요. 하나님이 거지예요? 교회 목사가 거렁뱅입니까? 그런 목사, 그런 교회는 안됩니다.
헌금은 자기 재산의 핵(核)을 드려야 됩니다. 자기 금고의 제일 깊은 곳에 넣어두고 정성들여 준비해야 됩니다. 추수하는 가을이 되어 모든 곳간에 곡식을 거둬 들일 때도 십일조를 따로 쌓아 둬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일년동안 아들딸 일가가 합해 가지고, 정성을 들여서 사랑의 마음을 겸해 가지고 제물로 바쳐야 되는 겁니다. (166-71, 1987.05.28)
제물 드렸다가 제물 찾아가는 법은 없는 겁니다. 찾아가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더 높은 데를 위해, 그 책임자가 더 높은 데를 위해 쓰면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낮은 데를 위해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안 써도 된다 그말입니다. (125-188, 1983.03.20)
우주를 창조하고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거지한테나 던져 주는 그런 돈 가지고 좋아하면서 ' 아, 복받을 패들이여! 너희들은 사랑스런 종교인이다.' 하고 내세울 수 있어요? 사탄 앞에 위신이 서겠느냐 말입니다. 연보대를 돌리면서 돈내라고 합니다. 그건 간판 붙은 거지나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96-101, 1978.01.02)
여러분이 선생님에게 헌금을 하고 그러지만 선생님은 그 돈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안 받는 주의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모으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 그것을 내가 알고 그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은 주체적인 입장에 서지 않고는 못 받는 것입니다. 마음 자세가 그렇기 때문에 주고 나서도 또 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에게 깃드는 것입니다. (51-276, 1971.11.28)
정성들인 헌금이나 예물을 대할 때 그 가치를 모르고 대하다가는 정성들인 예물에게 심판당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군왕도 자기 처신을 잘못하다가는, 즉 정성들인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정성드리는 사람을 잘못 대하다가는 하늘의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정성 드리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8-143, 1967.06.04)
사적인 물질을 공적인 물질보다 더 중요시하는 사람은 천도에 위배되는 사람입니다. 사적인 자기의 인격을 공적 인격보다 더 중요시하는 자리는 뜻에 위배되는 자리입니다. (51-291, 1971.11.28)
기성교회에서 헌금하는 걸 뭐라 그러나요? 거 뭐 주머니 가지고 다니지요? 우리 교회도 헌금을 그렇게 받아? 뭐 무슨 조리대 가지고 받아? 나갈 때 다 저 문 앞 헌금함에 모아 놓는 겁니다. 정성들이고 은혜받고 가는 대가로서 감사헌금 하게 말입니다. 안낼 사람들은 돌아가고…. 그 시시한 돈 받아 가지고, 그것 하늘이 원치 않습니다. 정성어린 돈, 어머니 아버지 주머니에 있던 돈 그냥 못합니다. 전부 다 자기 몸에 3일 이상 지녀 가지고 성별하고 헌금해야 됩니다. 점심 한끼 값도 못 되는 것을 어디에 헌금을 해요? 자기 생명 재산을 전부 털어넣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 (166-319, 1987.06.14)
맨 처음 것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숫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숫것이 없는 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습관을 그렇게 해 나가야 됩니다. (30-133, 1970.03.21)
십일조는 제일 정성들인 숫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물입니다. 제물을 드리는데는 숫것을 드려야 합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면 어떤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되겠어요? 미운 아들? 소망이 없는 아들? 그런 아들은 제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아들이어야 합니다. 왜 그러냐? 제물은 '나' 대신이기 때문입니다. (48-85, 1971.09.05)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물건, 혹은 자기 소유의 재산은 자신이 잠시 관리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관리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잘 관리해서 봉헌해 드려야 할 이 만물은 참부모의 품을 거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것임과 동시에 참부모의 것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23-334, 1969.06.15)
복귀노정의 원칙적인 기준으로 볼 때, 만물은 먼저 인류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이 인간 앞에 내려주신 축복의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인간 시조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하지 않은 선(善)의 부모의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3-330, 1969.06.15)
타락은 자기 것을 만들려 하고 자기가 소유하려고 한 데에서 연유됩니다. 하나님과 메시아가 오시는데 이와 같이 했다가는 반드시 사탄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도리를 통해야 하는데, 언제나 번번히 타락한 세계의 그러한 고질된 사연이 남아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유를 하나님을 위해 쓰자고 할 때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꿈에도 내가 벌어들인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107-207, 1980.05.01)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은 나의 것이다.' 하는 이것이 우리의 주류사상입니다. 먼저는 물질 축복시대를 거쳐 인간 축복시대가 오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심정 축복시대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12-55, 1962.10.07)
지금까지 인간이 복귀되는데 만물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모릅니다. 또한 만물과 인간이 하나되지 못하면 아버지 앞에 갈 수 없습니다. (23-326, 1969.06.15)
② 생활에도 십일조가 있다
교회의 십일조 생활도 식구가 열 가정이 있으면 인도자 한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천민권(天民權)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열 사람이 살면 하늘 사람 한 사람을 부양(扶養)하여야 합니다.
십일조는 모든 면에 있습니다. 학교도 열 교실 중에 한 교실은 불쌍한 자녀들을 위한 무료 봉사의 교실로 써야 되는 겁니다. 앞으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시간까지도 십일조 해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무슨 물질만이 아닙니다. 만일에 가족이 열 사람 있으면 한 사람을 내 놓아야 됩니다. 그런 기준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 식구는 십일조 못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 못하는 사람은 식구가 아닙니다. 이건 의무적입니다. 천적인 의무란 말입니다. (150-218, 1961.04.15)
주일은 십일조의 날이니 나의 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명령대로 복종할 날인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내 것으로 쓰고자 하는 것이 죄입니다. 내 자식 중의 하나를 하늘 앞에 바쳐야 하며, 그럴 수 없으면 남의 자식이라도 공부를 시켜 하늘 앞에 드려야 합니다.
국수 한 그릇을 먹더라도 혼자 먹어서는 안 됩니다. 하늘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자로서 혼자 먹기 미안하거든, '동반해 계신 아버지 앞에 나 혼자 먹을 수밖에 없으니 민망합니다' 하며, 아버지가 같이 참여하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반드시 부모를 먼저 대접하는 입장에 세워 놓고 살아가야 된다 이겁니다. 옷을 사 입어도 혼자 못 사입습니다. 그런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150-218, 1961.04.15)
③ 탕감기금
타락인간이 부모를 죽인 죄, 자녀를 죽인 죄, 만물을 잃어버린 죄를 어떻게 탕감할 것인가. 유다가 예수님의 몸을 팔아 나그네의 묘지를 샀습니다. 고로 탕감기금으로 성도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야 됩니다. 원래는 본부를 사야 합니다.
열두 제자가 팔았기 때문에 4년에 12,000원을 헌금해야 합니다. 탕감기금은 돈 중에도 제일 귀한 돈을 바쳐야 합니다. 이 기금 헌납은 아버지와 형(아벨)을 죽인 죄를 피 대신 탕감기금(기본적인 돈)으로 대신하는 것이고,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와 형의 피값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 기금에 더 보태어 성전(聖殿)을 지어야 합니다. (1964.5.12. 본부교회) (14-69, 1964.05.12)
탕감기금은 정성을 들여서 갚아야 합니다. 탕감기금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입을 것을 입지 않고 정성을 들여, 남의 손을 거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내야 합니다. 이 탕감기금을 전통으로 하여, 우리의 후손들도 전부 이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하게 되면 국가의 운세는 넘어갑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천길 만길 속에 샘이 끓고 있어 구멍만 뚫으면 폭발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가운데 이러한 거룩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제관(祭官)으로서의 책임을 지고서 제물을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14-97, 1964.06.14)
한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참아버지로 오신 예수님을 이 지상에서 몰아낸 입장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는 사방 팔방으로 완전히 막혀 버렸습니다.
이것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4년간 3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예수님을 팔아먹은 그 실체 값으로 하나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4년간이라는 것은 동서남북에 맞먹으며, 한국에서는 1년에 3천원 씩 4년간에 걸쳐 낸다는 조건으로 1만 2천 원을 헌금합니다. (1966.2.2. 동경교회) (22-188, 1969.02.02)
우리는 하늘과 땅의 원한을 풀고 이 땅에 막혀 있는 성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자리를 닦아 나오며 희생한 도인들을 중심한 본부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이 탕감기금은 세계적인 탕감을 하는 것입니다. 탕감기금은 피와 땀을 흘리며 정성을 모은 것으로 내야 합니다. 은행에 저금했던 것을 찾아서 내면 안 됩니다. (14-97, 1964.06.14)
주님은 역사의 탕감조건을 세우고 피흘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의 원한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한을 못 풀었으니 이것을 풀도록 하기 위한 조건이 탕감기금입니다. 부모는 승리하였으나 자녀들이 침범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승리하신 부모의 기반 위에 부모를 팔았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합니다. 탕감기금을 납입해야 비약적 발전이 옵니다. 자녀가 아무리 부모를 맞이했고 하늘 땅을 가졌다 하더라도 참부모가 흘린 피의 한을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1964.6.14. 대구교회) (14-97, 1964.06.14)
식구들은 탕감기금을 솔선해서 납부해야 합니다. 눈물과 땀과 피의 한을 탕감할 조건을 세워 승리해야 또 새로운 섭리가 있게 됩니다. 민족적인 기반 위에 국가적인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한국 민족이 가장 불쌍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가장 비참한 위치에 있어야 주지 않고 탕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14-73, 1964.05.23)
탕감기금은 돈 중에서 제일 귀한 돈입니다. 이 기금에 일화가 많아야 합니다. 비참한 일이 많아야 합니다. (14-69, 1964.05.12)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던 피값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샀습니다. 고로 탕감기금으로 성도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야 됩니다. 원래는 본부를 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