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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이 무엇이냐

① 지금까지 인생문제는 미로

 내가 왜 왔으며, 내가 왜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느냐? 태어난 것을 여러분 스스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태어나기는 했으되 무슨 동기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나를 낳게 한 동기와 목적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나기는 났으되 내가 나고자 해서 난 것이 아니요, 살기는 살되 내가 살고자 해서 사는 것이 아니요, 죽기는 죽되 내가 죽고자 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들어 무엇을 자랑할 것이냐? 자기 자신이 나고 싶어 나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의 그 무엇을 갖고 살지도 못하고, 죽음의 길을 피할 수도 없는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자랑해 보아야 처량할 뿐입니다. 났으니 살아야 할 운명이요, 또 그렇게 살다 가야 할 운명입니다.
(7-178, 1959.09.06)

 오늘날까지 철학은 역사시대를 통해 인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 왔습니다. 참된 인간의 가치, 인간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으며 인간 자체로부터 승리하여 만우주에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완성격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수많은 철인들이 나와 고심하면서 별의별 주장을 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에 와서 인간을 통해 사상체계를 세워 놓았던 모든 주의, 주장들이 이미 실험을 필하였고, 또 이미 낙제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다 탈락해 버렸습니다. (141-125, 1986.02.20)

 왜 인간이 이렇게 어영부영 살면서 죽기를 싫어하고, '왜 살아야 돼? 근원이 어떻게 돼서?' 하는 등의 의문이 많습니다. 그 모든 의문은 인간의 철학 서적을 통해서는 해결 못합니다. 철학이라는 건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길을 개발한 것입니다. 종교는 뭐냐? 하나님을 알아 더불어 사는 생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186-12, 1989.01.24)

 인생을 이렇게 살다 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동기가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으니 목적도 나만의 것이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사는 데 있어서 행복한 자리를 싫어하는 자가 어디 있으며, 호화찬란한 자리에서 살고 싶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나입니다. 그렇지만 또 자신을 자랑하고 싶고, 마음대로 살고 싶고, 마음대로 남아지고 싶은 나입니다. 이런 심정의 교차점을 지닌 나라는 것입니다. (7-178, 1959.09.06)

 여러분들이 한 80살 살았다고 했을 때, 그 가운데 밤에 자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40년으로 줄어듭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자는 것도 사는 건가요? 자는 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자는 것은 죽은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가운데 살겠다고 허덕이는 시간은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거기에서 밥 먹는 시간을 한 시간씩 빼 버리고 나면 어때요? 밥 먹는 데도 한 시간은 잡아야 됩니다. 또 그 가운데 친구 잔칫날, 이웃 동네 어른의 환갑날, 누구 죽은 날, 장사지내는 날, 병들어 누워 있는 날, 별의별 날을 다 제하고 나면 일생에서 산다고 하는 날이 절반이나 될 것 같아요? 요전에 계산해 보니까 산다고 하는 날이 7년이 나옵니다. 그 7년 가운데 진정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 며칠 나오느냐 말입니다.
(49-336, 1971.10.24)

 일생이라는 건 빠릅니다. 철들어 세상 물정 알고 이렇고 저렇고 하다 보면 사십이 넘고 오십이 넘어 뭐 10년은 잠깐입니다. 10년이면 육십 잠깐이고, 육십 되면 칠십 잠깐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뭐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188-38, 1989.02.16)

 자기 운을 100만큼 타고 난 사람이 120만큼 살다 가면 그 후손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운은 고무줄과 같아서 조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80만큼 살다 간다면 20만큼의 복을 남겨, 그 운세를 후손 앞에 상속해 주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78-333, 1975.06.10)

 운명은 변경할 수 있지만 숙명은 변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변할 수 있어요? 자기 아버지의 아들딸로 태어난 것이 변할 수 있어요? 그 나라의 주권이 아무리 강하고, 그 나라의 관습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아버지의 아들딸은 변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복귀의 길은 숙명적인 길입니다. (172-55, 1988.01.07)

 출발을 잘못하면 난데없는 곳으로 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가 대해(大海)를 항해하더라도 출발한 항구에서부터 나침반을 중심삼고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하여 방향성을 그려 놓고야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출발한 항구가 어디냐? 모르고 있습니다. 나침반을 가지고 피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를 그려 갈 수 있는 방향성이 어디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꼬불꼬불 제멋대로 왔다갔다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제아무리 한다고 해봤자 인간으로 끝나는 겁니다. (172-28, 1988.01.03)

②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생을 거친 후에 나는 어떠한 곳으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종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철학도 역사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원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도 이런 운세에 사로잡혀 이끌려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가야 할 내 자신이라 할진대, 이 몸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이 마음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또 이 생명은 어디를 향해 기울어지고 있으며 내 심정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내 소원 혹은 소망과 이념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차피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가 죽는 날 이 몸은 흙에 묻힘으로써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묻히는 그날 이 마음도, 이 생명도, 이 심정도, 이 이념도, 혹은 소원까지도 같이 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인가? 여기에 확실한 내용과 확실한 해결점과 확실한 목적관을 세워 놓지 않는 한, 이는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8-194, 1959.12.20)

 매미 알이 매미가 되기 위해서는 굼벵이시대, 유충시대가 있습니다. 유충시대에는 물 구덩이에 살고 혹은 땅 구덩이에 있는 구멍 속에 산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가야 할 길은 그게 아닙니다.
  대공(大空)을 날 수 있는 길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날기 위해서는 아무리 땅 구멍을 파고 들어가거나 물에서 헤엄을 치고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되는데, 그게 절대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유충시대에서 성충시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유충시대에 날 수 있는 만반의 체제가 준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대되는 요소인 껍데기를 벗고 정비할 수 있는 한때를 반드시 거쳐야 됩니다. 허물을 벗어야 됩니다. 물 속에서 살 때는 넓적해야 되고, 물 위에 떠 다니기에 필요한 모양이 적격이겠지만, 공중에서 날게 될 때에는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맞게끔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 됩니다.
(120-222, 1982.10.17)

 우리는 무엇을 중심삼고 태어났으며, 무엇을 중심삼고 가야 될 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가야 될 것이냐? 이것은 하나님을 빼놓고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빼놓고는 동기 없는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동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거두어질 수 없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건물을 지을 때는 설계자가 설계한 설계도에 따라 건축을 하게 됩니다. 설계의 원본도 없이 지어진 건축물은 설계자가 목적한 건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1-100, 1968.11.17)

 가을 절기가 왔다는 사실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겨울은 생명이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노정입니다. 생명을 가지지 못한 것은 다 여기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주입하라는 것입니다. 새 생명은 새로운 사랑을 중심삼은 새로운 주의와 사상, 그리고 새로운 인생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우주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겨울 절기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겨울 절기를 통과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게 되면 그걸 통과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가면 갈수록 봄날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봄날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35-68, 197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