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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법도 안에서의 전지전능이다

①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하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게 된 동기가 뭐냐? 근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습니다. 돈 때문도 아닙니다. 지식 때문도 아니며 알고 싶어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무슨 권력 때문도 아닙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그분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지혜의 왕이고 능력의 왕이고 황금의 왕입니다. 다이아몬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에게는 다이아몬드가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있는데 그것이 필요합니까? 없어야 필요한 것입니다. 또 지식이라는 것 역시 이 우주의 모든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운동하고 작동하는 하나의 구성체를 전부 컨트롤 할 수 있는 법리, 법도를 만드신 그 지식에 비하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 봤자 자연계의 법칙 하나 찾아서 그것 가지고 박사 됐다고 야단하고 큰소리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술도 그렇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딴 데 있는 게 아니고 다 자연에서 배워 온 것입니다. 전부 자연에서 배워 온 것이지, 자연에 없는 것은 없습니다.
(182-121, 1988.10.16)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힘이 뭐 필요해요?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주체이신데, 안 그래요? 힘의 대왕이시니까 힘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역사에 제아무리 영웅 호걸이 잘났다 하더라도, 역사에 있어서 대국들을 치리하던 모든 군왕, 제왕들이 흘러갔는데, 그들은 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춤추다 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돈도 지식도 필요없습니다. (176-165, 1988.05.09)

 하나님 자신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무소부재하십니다. 그에게는 모르는 것이 없고, 능치 않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갖춘 주체로서 절대적인 자리에 계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체라고 하더라도 주체 자체가 주체가 되는 동시에 상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사람에게는 동쪽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동쪽이 있으면 서쪽이 필요하고 동서가 있으면 남북이 필요하고 남북이 있으면 전후 상하가 필요해 가지고 하나의 구형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구형을 표준으로 해서 움직입니다. (201-12, 1990.02.28)

 저 별나라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다이아몬드 별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지었다면 다이아몬드 별 하나만 만들어 놨겠어요? (49-294, 1971.10.17)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뭐예요? 학자, 유명한 학자? 유명한 학자도 별거 없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연구하고 뭐 어떻다 해도 하나님이 만든 모든 자연계의 어떤 공식이라든가 원칙을 발표했을 뿐이지 그것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학자도 안 좋아합니다. 그 다음에 대통령?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하나님이 좋아하겠어요? 세계 대통령? 우주 대통령 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이신데 뭐가 필요해요? 권력도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뭐예요? 돈이요?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141-247, 1986.02.26)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성이 나서 한번 이 땅을 치시면 옥살박살 다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고 세계의 잘났다는 사람들도 한번 소리치면 국물도 없이 다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그분에게 권력이 필요해요? 하나님 앞에는 권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거 다 졸개새끼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누가 좋아하느냐 하면 악마가 좋아합니다. (210-18, 1990.11.30)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했을까요? ‘힘을 자랑하느라고, 전지전능성을 자랑하기 위해서 한번 만들어 봤지!' 하면 그게 멋져요? 그럴 때 힘에 의해 생겨난 물건들이 ‘하나님 고맙소. 힘으로 쳐갈겨 만들어 줘서!' 이러면서 고맙다고 하겠어요? 하나님이 지혜가 많아서 너를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 많아서 너를 이렇게 만들었지` 할 때, 기분이 좋아요? 능력이나 지혜로 만들었으면 내게 기쁨이 뭐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지 내 능력이야? 하나님의 지혜지 내 지혜야? 나를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나인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175-150, 1988.04.16)

 오늘날 기독교에서 뭐 ‘하나님 아버지,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는데,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지, 무원칙적 기반 위에서 전지전능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법을 세워 놓았으면, 영원하신 분이 제정한 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자기가 세워 놓은 것을 마음대로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순응하고 넘어가려는 그 하나님의 권위, 그게 놀라운 것입니다. 공의를 세우는 데 있어서는, 다 천리의 원칙에 부합될 수 있는 공법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절대 하나님이 먼저 밟고 넘어간 후에 만민이 따라가게 되어 있고, 우주가 따라가게 되어 있지, 그것을 제2로 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인간 창조의 이상적 기준이 있습니다. (162-184, 1987.04.12)

 하나님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생각하기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언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이럴지도 모르지만 천만에요. 천지의 모든 존재물들은 법칙, 대원칙에 의해서 작용합니다. 제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이 원칙을 파괴하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도 헌법을 위주하여 제정한 모든 법, 입법을 통해 제정한 법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야단 아니예요? (166-99, 1987.05.30)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하나님이 사랑을 하고 싶으면 만들면 되지 왜 사랑을 못 만들었느냐? 그건 마음대로 만들었다가는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 만드니까, 그건 못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이구, 하나님은 전지전능한데 못 만들다니….' 그러면 이원론이나 다신론으로 결론이 떨어질 텐데…. 하지만 의심하면 그렇습니다. (173-211, 1988.02.18)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유일무이하시고, 그 다음에 영원불변하다고 하는데, 절대적이어서 뭘 하는 거예요? 유일해서 뭘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유일한 것과 우리가 무슨 관계가 있어요? 큰 문제입니다. 전지전능하면 뭘 해요?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영원불변하면 뭘 해요? 하나님 자신에게는 좋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하등의 관계가 없다면 그건 헛된 것입니다. 필요없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신앙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전부 가려 주어야 됩니다. (223-261, 1991.11.12)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전권자이시고, 무소부재합니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나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입니다. ‘아, 전권이 있으니 나를 지배하기에 좋겠구만, 무소부재하니 어디서든지 나를 감찰하기에 좋겠구만, 모르는 것이 없으니 나를 다 세밀히 분석하고 꼼짝못하게 만들겠구만.' 하나님이 나를 전지전능으로 지배만 하신다면 좋을 거 있어요? (130-209, 1984.01.22)

 하나님은 천지를 무엇으로 주관하느냐? 법으로 주관하는데, 그 법도 사랑으로 치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치리의 방향을 후원하기 위해 우주의 법도 존속합니다. 하나님이 인간 창조를 한 이유는 사랑이 그리워서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될 텐데 무엇 때문에?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21-103, 1982.10.24)

② 사랑만이 절대 기준이다

 하나님이 한 가지 꼼짝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요? 전지전능하시지만 한가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 같아 보여요? 금을 못 만들겠어요, 다이아몬드를 못 만들겠어요? 아, 힘이 없나? 전지전능하신 그 분이 한 가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사랑입니다, 사랑. 선생님 마음에도 사랑이 있겠어요? 있다고 봐요? 여러분의 마음에도 사랑이 있어요? 있기는 있습니다. 있기는 있는데 자기 혼자 ‘내 사랑, 나혼자 내 사랑, 내 사랑!' 이러고 있으면 미친놈이 됩니다. (142-269, 1986.03.13)

 하나님 혼자 사랑을 이룰 수 있어요? 전지전능하시고 유일무이하신 하나님 혼자서 ‘아이고, 기분 좋구나!`' 그러겠어요? 그러면 하나님도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레버런 문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혼자서 ‘아이구 좋아라! 아이구, 내 사랑이야!' 그러면 저거 미친 녀석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렇지만 상대되는 종이 짜박지 하나라도, 이런 손수건을 중심삼고라도 ‘사랑하는 그대 손수건!' 이러면 누가 욕을 해요? 우주를 대신하여 등장할 수 있는 상대적 가치와 권위가 사랑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142-31, 1986.03.03)

 아무리 절대자 하나님이라 해도 혼자서는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에서만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사랑만은 하나님 혼자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의 소성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의 자극과 사랑의 신호는 상대를 통해서만이 재현되는 것이지 자체만으로써는 현현할 수 없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138-245, 1986.01.24)

 과부 홀아비를 불쌍하다고 하는데 왜 불쌍하다고 해요? 사랑이 그 속에 있지만 발동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이라 해도 상대가 없을 때는 사랑이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천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를 중심삼고 상대하고 싶어 하느냐? 아담과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의 작용을 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130-21, 1983.12.11)

 하나님이 사랑을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이 무슨 사랑이냐? 참사랑입니다. 그런데 참사랑이란, 어떤 것이 참사랑이에요? 참사랑이란 사랑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얘기하느냐? 그 뿌리를 하나님에게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거 이상한 말이지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참사랑의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에게 뿌리를 심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77-269, 1988.05.20)

 하나님이 천지를 누구 때문에 창조했느냐? 하나님 자신 때문에 했느냐, 상대적인 창조물 때문에 했느냐? 하나님은 물론 자기를 위해 지었다고 볼 수 있지만 상대를 중요시하는 데 모든 창조의 기준을 두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상대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 인간입니다. 인간을 중심삼고, 모든 인간의 행복을 중심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야 뭐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닙니까? (109-268, 1980.11.02)

 하나님은 절대적이요, 또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사랑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뭐예요? 하나님이 전지전능 못하지 않느냐? ‘하나님, 당신은 전능하지 못하지 않소?'하면 ‘나는 전능하기는 하지만 사랑에는 전능하지 못하다.' 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그래요? (98-38, 1978.04.08)

 하나님 혼자서는 하나님 노릇 못 합니다. 그게 무슨 재미예요? 먹을 것이 걱정이에요? 잘 것이 걱정이에요? 입을 것이 걱정이에요? 뭐 든지 마음대로 공급받을 수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공중을 돈댔자 한 시간 돌고 나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고 아무리 잘났다고 뻐기는 하나님이라도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별 수 없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귀하다고 하는 것을 창조해 두고 가 보는 재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61-116, 1987.01.11)

 하나님이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절대자인데 그가 무엇이 그리워서 창조를 했느냐 이겁니다. 그분은 황금도 필요하지 않고, 지식도 필요하지 않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갖추지 않은 것이 없는 분인데, 무엇이 필요해서 사람을 지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근본 동기가 무엇이냐? 권력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소유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이 없었겠느냐? 사랑의 기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역시 혼자 있어 서는 사랑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창조의 동기, 알파적 기원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149-149, 1986.11.21)

 하나님에게 무슨 사랑이 필요하냐? 하나님도 사랑을 갖고 있지만 상대가 있어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 갖고 있어요? 그런데 혼자서 ‘아이고 좋다! 아이고 내 사랑이야!' 그러는게 좋아요?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타나야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원칙입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랑의 상대가 없게 될 때에는 고독한 하나님이요, 슬픈 하나님인 것입니다. (94-262, 1977.10.01)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하시고, 아무리 절대자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명사, 혹은 좋다라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 설정되는 말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춘 자리에 있어야 좋고 행복하다는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혼자 가만히 있다고 한다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음악가가 혼자 노래를 불렀다고 합시다. 그게 행복해요?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좋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5-20, 1972.11.13)

 하나님 자신을 존재하게 한 기원이 뭐냐? 무엇에서 생겼겠느냐?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한 기원이 뭐냐? 전지전능이에요? 절대적 권한이에요? 절대적 권한이 있으면 뭘 해? 혼자 있는데. 혼자 있는 양반이 절대적 권한이 있어서 뭘 해? 아무도 없는데. 혼자 절대자 되어 있으면 지식이 있어서는 뭘 해?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위하라는 사랑이 아니고 위하려고 하는 사랑입니다. (128-263, 1991.08.19)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참사랑 앞에는 꼼짝못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참사랑의 자리에서는 꼼짝못합니다. 아내를 진짜 사랑한다 할 때는 아내 앞에 경배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경배하고도 남습니다.
  우주 가운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참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내가 어디서 왔노? 그거 없다고 생각할 때는 사지가 다 마비됩니다. 사실 없다고 생각할 때는 큰일납니다.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좋으니까 대통령인들 할 수 없이 궁둥이를 하늘로 하고 ‘임이여, 사랑하소서! 사랑하나이다!' 합니다. 그럴 때 뭐 조그마한 여자가 앉아서 볼 때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211-83, 1991.12.29)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사랑을 혼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전지전능하니까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할 지 모르지만 그러면 문제가 큽니다. 사랑의 대상이 필요없다는 논리에 봉착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절대적인 중심존재로서 자기 스스로의 사랑, 하나님적 사랑에 대한 자극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사랑의 상대가 필요한 것입니다. (208-233, 1990.11.20)

 하나님 자신도 상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혼자는 못 이룹니다. 내가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아이고. 오늘 참 좋구만.' 이렇게 열렬히 말한다면 미쳤다고 할 것 아니예요? 그러나 상대가 있어서 열렬히 말해도 그것이 사리에 맞고 환경 여건에 부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혼자 ‘좋아, 좋아! 아이고, 내 사랑 좋아!' 하고 춤추면 그게 뭐예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로는 안 됩니다. 상대를 세워 놓아야만 자극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41-106, 1986.02.19)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과 상대가 되는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불멸하고 자존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닌 그 무엇을 바라고 계시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께도 절대 필요한 것으로 참사랑입니다.

③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절대복종이다

 하나님도 사랑을 좋아하시니까 사랑에 미칠 수 있을까요? 천지를 지으신 전지전능하신 훌륭한 하나님이 사랑에 미칠 수 있어요?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가 집 안에서는 조그마한 할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적도 있습니다. 그건 무슨 코에 걸려서 그러느냐? 사랑의 코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137-84, 1985.12.24)

 능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겠느냐? 하나님은 인간들보다 낫기 때문에 사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이론적으로 가장 타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뭐냐? 영원 전부터 영원히 위하는 사랑을 갖고 계시고, 그러한 사랑을 하려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90-86, 1976.12.19)

 여러분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들이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되고 싶으냐? 돈이에요? 하나님이 ‘내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큰 권력을 중심삼고 부자의 관계가 돼야지.' 그래요? 지식? 그건 다 곁다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중심삼고, 그 사랑과 나는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만이 제일이다.' 그래야 됩니다. 이 사랑을 완전히 점령하는 날에는 천하에 아무리 권능이 많은 하나님이라도 ‘음, 음' 그런다는 것입니다. (69-181, 1973.11.12)

 제 아무리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절대복종하라고 명령할 수 있어요? 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하니 나처럼 너희들도 참사랑에 복종해라!' 이래야 아버지 되는 하나님으로서 당당한 하나님이 되지, 하나님은 지키지 않고 ‘야! 아들딸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해라!' 하면 그게 말이 돼요?
  참사랑의 자리에 있는 하나님이 독재자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내가 참사랑에 영원히 절대복종 하듯이 아들과 딸도 참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복종할지어다!' 할 때, 아들딸이 ‘아멘-!'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아버지는 제 맘대로 하고 우리만 복종하라고 해? 푸-!'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벌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도 참사랑에는 절대복종한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211-84, 1990.12.29)

 아무리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도 참사랑 앞에는 절대복종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그 말이 듣기 좋아요, 듣기 나빠요? 그 참사랑은 동쪽에서 들으면 좋고 서쪽에서 들으면 나쁠까요? 서쪽에서 들어도 좋고 남쪽에서 들어도 좋고 북쪽에서 들어도 좋고, 위에서 들어도 좋고 아래서 들어도 좋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사시장철 넘어가서, 청년시대와 노년시대를 넘어서 참사랑은 영원히 듣기에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211-75, 1990.12.29)

 절대적인 힘을 주장하는 하나님도 사랑이 정착할 수 있는 자리, 사랑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좋아하는 것입니다. 절대 좋아하는데 얼마만큼 좋아하느냐? 절대적 전지전능 무소부재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 복종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라고 그러지요? 그러면 아버지 자신이 사랑을 중심삼고 살지 않으면서 아들딸에게 ‘얘들아, 너희들은 사랑에 절대 복종하고 살아라.' 하는 말을 할 수 있어요? 근원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도 사랑에 절대 복종하며 살 때 ‘내가 이렇게 사니 너희들도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7-261, 1990.11.11)

 절대적인 하나님도 ‘아이고 내가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나도 절대적인 그 무엇에 순종하고 살면 좋겠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위하라고 하는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위하라는 사랑을 해서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201-115, 1990.03.27)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고 했으니까 전지성을 중심삼고? 지식을 중심삼고? 아닙니다. 그러면 뭣 중심삼고? 힘 가지고? 힘 가지고도 안됩니다. 아무리 봄이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꽃필 수 있는 환경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아무리 여름이 힘이 있다 하더라도 무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시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가을을 맞게 되면 그게 전부 시들해지는 것입니다. 가을이 아무리 결실의 시기라 하더라도 겨울을 극복 못하는 것입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태양을 언제나 중심에 모시고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춘하추동을 극복할 수 있지, 그 외에는 못합니다. 그 말이 뭐냐 하면 아들딸, 누나, 동생, 형제끼리 싸우고 있는 판국에 부모의 전통 되시는 하나님이 거기에 들어가 중심이 되어서 ‘이렇게 해라!' 할 때, 통일이 안 되겠어요? 통일 안된다고 하는 녀석은 미친 녀석이지.
(221-190, 1991.10.24)

 오늘날 현대신학이 망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니 그분은 사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어요, 우리 사모님 없이?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는 녀석은 미친 녀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혼자 사랑할 수 있어요? (209-81, 1990.11.27)

 하나님이 전지전능한데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한 것이 또 있어서 그 둘이 사랑하게 되면, 그 세계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밸런스가 안 맞고 도리어 도망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둘 가운데 걸려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옆으로 빠져 버립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로 가고 강한 것은 약한 것에게로 들어가야 딱 가운데 끼어서 꼼짝못하는 것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을, 강한 것은 약한 것을 원합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죽어 버려라 이겁니다. 여자 같은 남자를 사랑하겠다는 여자는 죽어 버려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여자 손을 만지면 기분 좋아요? 여자끼리 손을 잡으면 기분 좋아요? 부드러운 여자 손이 부드러운 손을 잡으면 그거 얼마나 기분 나빠요? 두 부드러운 손의 느낌이 얼마나 기분 나빠요? 그건 죽기보다 더 싫습니다. 그러니까 죽어버리라는 것입니다.
(167-300, 1987.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