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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필연지도(人生必然之道)

① 영생과 거리가 먼 몸

 지구도 숨을 쉬고 운동을 합니다. 여러분 세포도 숨을 쉽니다. 여러분은 지상에서 영원히 살래요, 무형의 사랑의 실체가 된 곳에서 영원히 살래요? 무형의 사랑의 실체가 된 세계에서 영원히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고 싶다 할 때, 여러분의 몸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인체가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의 중심이 하나님이므로, 하나님은 상대적 존재인 인간에게 자기가 창조한 영원한 모든 이상권을 전부 주고 싶을 것입니다.
(111-111, 1981.02.01)

② 대부분의 생애들

 지금 우리는 알든 모르든 어느 곳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시간에도 가고 있는 것이요, 쉬고 있는 시간에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나뿐만 아니고 이 민족 혹은 이 세계, 더 나아가 하늘과 땅까지도 어떠한 곳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생을 거친 후에 나는 어떠한 곳으로 갈 것인가? 이것이 인간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종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도 역사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동원돼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도 이런 운세에 사로잡혀 이끌려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가야 할 내 자신이라 할진대, 이 몸은 어디로 가려고 하고, 이 마음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또, 이 생명은 어디를 향하여 기울어지고 있으며, 내 심정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내 소원 혹은 소망과 이념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차피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죽는 날, 이 몸은 흙에 묻힘으로써 끝날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묻히는 그날 이 마음도, 이 생명도, 이 심정도, 이 이념도, 혹은 소원까지도 같이 묻혀 버리고 말 것인가? 여기에 내용과 해결점과 확실한 목적관을 제시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는 걸음을 붙잡아 놓고, 움직이는 마음과 기울어지는 심정을 막아 놓고 '너는 어디로 가느냐?' 이것을 물어보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 나오는 사람들이 성현 현철이요 수많은 도주(道主)들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왔지만 지금까지 '내 몸은 이러한 곳으로 갔으며, 내 마음과 내 심정, 내 생명과 내 이념은 이런 곳을 향하여 달렸노라. 그러니 온 천하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물은 이곳으로 가라!'고 자신있게 명령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8-194, 1959.12.20)

 종교는 사적인 욕망에서 출발된 이 세상이 망하기를 소원합니다. 공적인 세계, 하나로 통일된 평화의 세계를 수천 년 전부터 고대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자기 부부가 재미있게 사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것은, 이 역사적 거리를 단축시켜 세계와 연결시키고, 천주와 연결시켜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해방된 가정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절대적인 가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명동거리를 지나다 보면 젊은 남자 여자들이 깨가 쏟아집니다. 그거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겁니까? 한 번밖에 없는 청춘시대를 즐기기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좋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즐기는 데 주인이 누구냐? 이게 심각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언제까지 즐길 수 있느냐? 20대부터 즐겨 60, 70, 80살이 지나가게 되면 즐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교회식은 다릅니다. 먹는 것도 무엇 때문에 먹습니까? 세계를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를 없애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보는 것도 악한 세계를 소탕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악의 편이 되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악을 소탕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걷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전부 다 세상과 다릅니다.
(36-71, 1970.11.15)

 만일 사람을 며칠 동안 있다가 없어질 그런 존재로 창조했다면 하나님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히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귀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일진대, 하나님이 영원하다면 인간도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은 영원한 세상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80년 살았으면 됐지. 죽어 버리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나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역사노정을 통해 생각을 깊게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을 것인가, 더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뜻을 품은 사람일수록 '인생이 무엇이냐? 인간은 왜 왔다가 나그네같이 가느냐?' 하며, '인생은 고해'니 '초로(草露)의 인생'이니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생할 수 있다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9-228, 1971.01.15)

③ 죽음은 인생필연지도

 여러분은 언젠가는 영계에 가야 합니다. 틀림없이 영계에 가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찾아오는데, 김포공항에 내린다고 해서 대한민국에 다 온 게 아닙니다. 김포공항에서 어디로 가느냐? 전라남도로 갈 것이냐, 경상남도로 갈 거냐, 평안도로 갈 것이냐? 평안도에 가서 또 어디로 갈 거냐? 군을 찾아가야 됩니다. 또 군에서도 어디로 갈 것이냐? 면을 찾아가야 됩니다. 면에 가서 또 어디로 찾아갈 것이냐? 리(里)입니다. 리에서도 어느 반을 찾아가야 됩니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거처를 확정짓지 못한 인간들이 출세해서 뭘 하느냐?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영계에서 호출 명령을 하게 되면 문선생님도 오늘 잘났다 하더라도 내일 저녁에 데려가면 가는 거지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큰소리 해야 가는 겁니다. 내가 큰소리 하면서 가는 데는 올바른 말을 하고 가는 것입니다. 나라가 갈 길을 제시해야 되고, 세계가 갈 길을 제시해야 됩니다. 잘못 해먹다가는 죽습니다.
(177-41, 1988.05.15)

④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생명의 기원이 뭐냐? 내가 아닙니다. 생명의 기원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되고, 목적도 나를 초월한 것이어야 됩니다. 내 생명은 부모나 사회나 민족, 국가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절대자인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동기를 절대적인 입장에 있는 초월적인 동기와 결부시켜야 합니다. 시대적인 인연이라든가, 환경적인 인연, 혹은 사회적인 여건에 결부시켜서는 안 됩니다. 초월적인 원인에 결부시키고, 초월적인 목적에 결부시켜야 비약하고 초월하고 탈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초월적인 동기에 결부시켜야 합니다. 내 생명의 출발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초월적인 동기에 결부시키게 되면 죽더라도 초월적인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것입니다.
(36-63, 1970.11.15)

 인간이 몇천, 몇백 년 사는 게 아닙니다. 100년 정도 살다 다 죽습니다. 수많은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많은 우리 조상들이 죽어 갔지만 전체에 좋을 수 있는 것, 전체의 이익을 생각했다면, 100년 살던 것이 1천 년이 지나가더라도 그대로 남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 중심삼고 나오다가 전부 다 망했습니다. 전체를 망쳐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인생살이를 해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자기 중심삼은 모든 측정방향을 어떻게 전체 측정방향으로 대체하느냐, 자기 제일주의를 강조하던 것을 전체에 이익 될 수 있는 것으로 어떻게 투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주의, 자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생행로의 출발을 뒤집어야 합니다. 뒤집는 데는 그냥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뒤집으면 안 됩니다.
  하나밖에 없는 옷을 입었는데, 이걸 누가 벗기려고 하면 죽어도 안 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춘하추동 옷을 해놓고, 봄에 겨울옷을 입었으면 봄옷을 갖다놓고 '이건 겨울옷이야, 벗어' 하고, 여름에 봄옷을 입었으면 여름옷을 갖다놓고 벗으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몰랐습니다. 대체할 수 있는 보다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200-90, 1990.02.24)

 이 땅 위에는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고, 친척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는 그런 인연을 맺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영계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영계에서는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모두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위치가 전부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사람이 밑에 올 수도 없고, 밑에 있는 사람이 위에 가기도 어렵습니다. 본래는 지상에서 완성해야 영계에 갈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한번 저세상에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습니다.
  생애(生涯)의 노정은 너무 짧습니다. 일생은 너무 짧은 것입니다.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고 하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시간으로는 여덟 시간도 안 됩니다. 영원한 세계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여덟 시간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참사랑의 속도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빠릅니다.
(205-65, 1990.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