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간의 가치는 위대하다
①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적 가치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짚고 천년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팎 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깊은 골짜기의 자리에 하나로써 단단히 묶어줄 수 있는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 자리입니다.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48-224, 1971.09.19)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대상 가치의 존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피조만물 가운데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란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삼고 그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줘 봐야 하나님 혼자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68-134, 1973.07.29)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 때문에 지었습니다. 인간은 왜 지음 받았느냐? 사랑 때문에 지음 받았습니다. 인간이 만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지음 받았다 이겁니다. 이게 인간의 특권입니다. (132-245, 1984.06.20)
사람이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을 원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중심삼은 이상의 창조세계라는 것은 실체를 중심삼은 사랑의 표시가 형상으로 나타나고, 형상의 표시가 상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원리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그 실체가 기뻐하면 그 형상되는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하고, 형상되는 존재가 기뻐하면 상징적인 것도 자동적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무엇이 하느냐? 사랑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166-48, 1987.05.28)
하나님이 사랑을 찾아가는 대상을 만들려고 할 때 누구를 닮게 만들겠어요? 하나님 닮게 만들어요? 그 하나님을 닮게 만든다면, 하나님 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남자 성품이 있어야 되고 여자 성품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를 닮았는데 자기 본성상에서부터 전부 다 빼내가지고 보이지 않는 성상, 보이지 않는 생각의 형태를 실체로 전개시킨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170-167, 1987.11.15)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의 모든 체(體)에 상징적으로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눈은 누구를 닮았다구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얼굴 가운데서 보게 되면 눈은 깊은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걸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코는 아담과 해와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심입니다. 그 다음에 입은 만물입니다. 횡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팔 삼십이(4×8=32), 서른 두 개의 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을 중심삼고 4수를 중심삼고, 그 다음에 귀는 사방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 목 위는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의 정보처가 있는 것이다 이겁니다. (201-83, 1990.03.04)
얼굴은 천지창조의 주인이 자기의 형상을 다 집어넣어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의 성품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 눈은 뭘 상징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생물이 생겨날 때 눈이 먼저 생겨나는 것입니다. 천지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기에 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눈은 하나님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비록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양심적인 사람인지, 비양심적인 사람인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39-247, 1971.01.15)
아무리 진리라 해도 진리의 핵심이 뭐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본질적 사랑은 종적인 곳에 있는 것이요, 진리적 사랑은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을 보아 하나님을 알지니,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형상이니 아담과 해와를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종적인 참의 사랑의 대상적 주체이기 때문에, 이들 둘, 남자 여자의 사랑을 동서남북을 통해서 세계의 축을 갖다 맞추게 될 때는 하나님과 영계가 통하고 만세계가 다 통한다는 것입니다. (179-290, 1988.08.14)
여러분은 주체와 하나되어야 되고 대상과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면 번식이 벌어집니다. 주고받으면 반드시 번식이 벌어집니다. 그 번식될 수 있는 자리는 기쁜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지요? 각자일 때는 주체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합해야 가정의 주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둘이 합하면 주체가 되지 않으려 해도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42-115, 1971.02.28)
인간들 스스로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을 재현시킬 수 있는 운동,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운동,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그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다 이겁니다. 사랑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중간이면 안 됩니다. 끝에 가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날 수 있는 진정한 마음, 하나님과 하나되겠다는 그 마음의 본성이 절대적이요, 그것으로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첫째되는 계명입니다. (149-237, 1986.11.23)
하나님과 인간이 박자가 맞아서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박자 앞에 모든 것이 자기 모양대로 음률을 맞출 수 있고, 자기 모양대로 전부 다 상징적으로 형상적으로 춤을 추고 다 이럴 수 있는 그런 기쁨의 표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만물도 '아하, 내가 태어난 보람이 있구나!'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사랑의 잔치를 하는 잔칫날에 동참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그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피조세계의 지극히 작은 만물이 바랄 수 있는 소원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166-46, 1987.05.28)
이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딸을 지을 수 있는 토대라는 것입니다. 관계되고 연결될 수 있는 토대라는 것입니다. 동물도 그렇고 광물도 그렇습니다. 광물세계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습니다. 식물세계도 암술 수술이 있고, 동물세계도 암놈 수놈이 있습니다. 전부 다리를 놓아 가지고 모든 것이 결집되어 창조된 최고의 걸작품이 인간의 내적 형상과 외적 형상입니다. (144-236, 1986.04.25)
그러면 하나님이 왜 밤과 낮을 지었느냐? 매일같이 해가 있으면 아침이 무슨 자극이 있어요? 광명한 아침이다, 빛나는 아침이다 할 때 광명하기는 뭐가 광명하고 빛나기는 뭐가 빛나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자극을 위해서, 사랑이라는 과제를 놓고 자극적인 상징과 형상으로 엮어지면서 조화될 수 있는 박자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124-85, 1983.01.30)
여러분의 생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타락하지 않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럼 타락하지 않은 선한 부모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나님께서 이성성상의 주체이신 만큼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성성상을 전개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우주를 짓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남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이요, 해와는 하나님의 여성적 성품을 전개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일반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한 분이니까 그렇게 말하겠지만, 그 한 분이라는 개념 가운데는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140-123, 1986.02.09)
② 인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만일에 인간조상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한몸이 되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이어받아 하나님이 창조 후 기뻐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54-64, 1972.03.11)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의 아들딸인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들이 다 장성하여 성전이 완숙하게 지어지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 속에 들어와 계시겠다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다 장성한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례식을 올리면 하나님과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 되고 우리 인간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어서 구원받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데, 본연의 인류의 참된 조상의 자리에 나아가는 그분들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54-139, 1972.03.22)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더라도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는 상하관계와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버지, 아버지가 앉으신 그 자리를 나에게 한번 주세요. 나도 아버지의 자리에 앉고 싶어요!' 하는 욕망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네 이놈, 안 된다!' 하게 되면 다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서 그래라, 어서 그래라!' 하시면서 그 자리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까지 인간에게 주고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임재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고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54-89, 1972.03.20)
성경에는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해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위대한 말입니다. 제아무리 큰 하나님이라 해도 그 하나님과 내가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사랑의 대상권이 되면, 그 사랑의 대상권과 하나되면 우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원칙기반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은 세계, 영계?무형세계?실체세계, 이 전부, 즉 우주의 상속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137-67, 1985.12.18)
아담은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있지요? 너희들의 몸이 성전이 되는 것을 모르느냐고 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우리 마음에 본연의 사랑이 싹트는 그 자리를 지성소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이 우주적인 사랑의 성전을 짓고 사랑의 힘을 뻗어 가지고 사랑의 꽃을 피우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지어 가정과 세계에 번식하라고 축복해 준 목적이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21-113, 1982.10.24)
제일 거룩한 곳이 어디냐? 지성소가 어디냐 할 땐 예루살렘의 성전이 지성소가 아닙니다. 인간이 지은 그곳이 지성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랑이 거할 수 있는 곳이 최고의 지성소입니다. 이 지성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큽니까? (136-310, 1985.12.29)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것은 실체 하나님의 몸으로 지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더라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고 말했습니다. 성전이 뭐예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몸이요, 해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부인이었다 이겁니다. 이렇게 됐더라면 그 자식은 하나님의 핏줄을 갖고 태어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혈족이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135-313, 1985.12.15)
완성단계에 이른 인간이 영계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아담은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과 고린도전서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나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성전이요, 집입니다. 하나님과 어떻게 닮아지느냐? 책임분담 완성단계에 이르러 하나님이 임하여 하나되게 되면,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명의 결탁, 일체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이 동화되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가정, 부부를 이룬다는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일체, 동화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사랑의 힘은 하나님과 동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30-21, 1983.12.11)
인간이 완성하여 성년이 되면 그때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들어와서 사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함과 동시에 아담이 좋아하는 격동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최고의 신성한 성전입니다. 거룩할 성(聖)자입니다. 그래서 참사랑 가운데는 어디나 하나님이 들어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참사랑을 좋아하느냐? 참사랑만 만나면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성년이 되어 사랑할 때 아담과 해와의 몸은 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이 그 속에 들어와서 최고의 신성한 성전을 이루는 거룩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128-325, 1983.10.02)
해와가 누구냐 하면 아담의 아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실체입니다. 네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마음에 임재해 있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이 두 아버지가 하나되는 겁니다. 합일(合一)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영적 세계, 무형의 세계와 유형의 세계의 합일의 기점이 아담의 본성적 기준입니다. 그 본성적 기준은 무엇이냐? 돈보따리, 욕심보따리가 아닙니다. 순수한 사춘기를 통해서 모든 세포 기능이 총동원돼 가지고 하나의 촉각으로, 안테나로 나타난 그 기준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거기에 임함으로써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120-70, 1982.10.03)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는 말이 있지요?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여러분이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어디 있소? 하면 답변이 참 멋있습니다. '여기 있다! 왜 그렇게 야단이야.' 그런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밥을 못 먹었나? 밤에 왜 이렇게 야단이야?' 하신다는 겁니다. '어디 있어요?' 하고 물으면 '어디 있긴 어디 있어? 저 깊은 마음 뒷면에 서 있지! 네 마음속에 있지!' 하신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디 있다고 했어요? 마음속에 있습니다. (224-214, 199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