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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

① 교회는 말씀, 인격을 종합하는 곳

 교회가 가야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를 찾아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래 가지신 창조이상은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가야할 목적지는 그 나라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149-48, 1986.11.02)

 앞으로 교회시대는 지나갑니다. 인류가 바라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타락권내에서 복귀의 운명 길을 갈 때 필요한 것이지, 새로운 때를 맞게 되면 교회시대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교회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를 개혁하고, 사회 확청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나라와 민족, 또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류가 하지 못하는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지금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28-222, 1970.01.11)

 교회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인연의 본거지입니다. 그런고로 탕감조건을 성립시키는 매개체요, 말씀과 인격과 심정을 종합하는 곳이 됩니다.

 교회는 천지를 연결하는 지성소입니다. 교회는 세계로 가는 문호이며, 모든 사람들이 상부상조의 인연을 갖게 하며, 국가 존망의 영적 지주가 됩니다. 교회는 영적 생활의 원천으로써 매일 매일 생활의 힘을 보급해 줍니다.

 가정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하고, 사회에 충성하기 전에 교회에 충성해야 원칙입니다. 교회가 주체요 가정과 사회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에 서느냐?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의 자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대상은 동서남북 사방에 있어서 360도 회전이 되어야 하지만, 주체는 중심 딱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권내의 자리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중심이 둘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이 왔다갔다하면 망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25-126, 1969.09.30)

 기독교인들은 전지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천번 만번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오기가 무섭게 싸움을 합니다. 교회란 죄 지은 후에 회개하는 회개당이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왜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한 번 지은 죄는 용서하지 못하시느냐는 말입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또, 사탄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면 회개했을 것입니다. 천번 만번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19-161, 1968.01.01)

 교회가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고 둘에서 넷으로 갈라지고, 이렇게 세 번만 갈라지면 하나님은 떠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 모입니다. 은혜 있는 사람은 가정적으로 모입니다. 교회에 안 갑니다. 가정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렇게 되나 안되나 두고 보라구요. (9-266, 1960.06.05)

 통일교회의 목적이 뭐냐? 인류를 대해 가지고 하나님하고 메시아하고 지구성에서 춤을 추고 사탄까지도 다 복받게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길이니 얼마나 위대해요? 그곳까지 가자는 게 통일교회입니다. 자, 말을 들어 보니까 통일교회가 어떻고, 이단이고, 무슨 사교고 하지만, 우리는 콧방귀도 안 뀝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길 가는데 동네 개가 짖더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80-285, 1975.11.02)

 끝날인 이 시대에 통일교회가 하여야 할 사명은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뇨?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뇨? 인류의 사정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뇨? 인간들의 심정이 무엇이뇨?'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온 교회입니다. 그런 세계를 가르쳐 줄 수 있고, 천 사람 만 사람 다 교육시킨다고 하게 되면, 이 이념권내의 세계는 통일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습니다.
(151-209, 1962.12.15)

② 교회는 가정의 연장이다

 '나는 누구 때문에 교회에 간다.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 때문에 교회에 간다. 혹은 사랑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교회에 간다.' 하는 자들은 다 못 넘어 갑니다. 누구 때문에 가느냐 하면, 하나님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사랑으로 찾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8-162, 1959.12.06)

 공적인 교회는 자기의 집보다 더 귀합니다. (15-271, 1965.10.24)

 교회를 통해 천국은 연결됩니다. 가정은 교회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고로 교회는 가정이 승리할 기반이며, 가법(家法)을 결실시키는 곳이며, 인격을 인정받는 곳이며, 천국생활의 훈련장이 됩니다.

 '얼굴이 잘 생기고 젊은 사람이라야 전도한다.' 천만에요. 교회라는 것은 가정의 연장입니다. 가정의 연장이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아주머니가 있어야 되고, 아저씨가 있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있어야 되고…. 교회에 전부 다 젊은 사람만 있다면 이것은 병폐입니다. 이걸 빨리 시정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윗사람을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나님 대신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부모이고, 자기와 아들딸까지 4단계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 나, 이렇게 되면 단계로 보면 3단계라는 것입니다.
  이 운명권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살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자기 부부, 아들딸, 이것이 3단계를 줄을 넷 그어야 세 단계가 나오지요? 그러니까 7수 기준이기 때문에 이것을 묶지 않고는 3단계가 안 나온다는 겁니다. 이걸 묶지 않으면 전부 다 제멋대로 엇갈리는데…. 3단계가 나오려면 이걸 묶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70-149, 1974.02.09)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하나님을 대신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내적인 교회생활에서 하나님의 공인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교회에 대한 관념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교회에 모여 집회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공적 집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기 때문에 뜻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희박해지는 겁니다.
  내적으로 자기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외적 기준도 확실치 않다는 겁니다.
(22-36, 1969.01.19)

 어떤 사람을 보면 교회생활은 잘 하는데 사회생활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또 사회생활은 잘 하는데 교회생활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생활은 잘 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은 열매를 갖출 수 있는 요인과 그 내용이 없습니다.
  교회생활은 잘 하지만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과, 사회생활은 잘 하지만 교회생활을 못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더 나으냐 할 때, 교회생활 잘 하는 사람이 낫습니다.
  결실의 요인을 갖춘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움직여 나갈 수 있지만, 결실의 요인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결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36-20, 1970.11.08)

 여러분은 혈통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 세워야만 합니다. 이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하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는 것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3-40, 1957.09.15)

 가정과 교회와 사회의 삼각권(三角圈)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은 가정을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교회를 중심한 생각이 강합니까? 아니면 사회를 중심하고 자기 출세하기 위한 생각이 강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것이 더 강한 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협조해 주고 동정해 주겠습니까? 교회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대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42-169, 1971.03.04)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조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집단적인 교회생활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전체적인 이념이나 제도를 통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관문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9-8, 1960.03.13)

 여러분이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살아온 사회생활 전체와 교회를 중심삼고 생활한 전체를 놓고 볼 때, 어느 것이 내적이냐 하면 교회생활이 내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내적 생활의 가치기준을 세워 나왔느냐? 혹자는 뜻을 중심삼고 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뜻이 될 것이다.'라며 자기 멋대로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겠어요? (22-38, 1969.01.19)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밥을 먹고 가더라도 웃으면서 보내라는 겁니다. 절대 먹는 것 가지고 인색하게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통일교인이 아닌데 와서 밥을 먹는다고 해서 누가 밥을 먹느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팔도강산의 그 누구도, 통일교인은 물론이요 통일교인이 아닌 누구라도 여기에 와서 밥을 먹고 갔을 것이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7-329, 1971.01.01)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애기이고, 제일 싫어하는 것은 다 죽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극과 극입니다. 하늘의 운동이 뭐냐 하면, 극과 극을 포섭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냐는 겁니다. 애들과 하나되려고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와서 놀다가 밥을 먹고도 가고, 이래 놓으면 그곳은 흥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친구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러분한테 미쳐 가지고 밤잠을 안 자고, 자기집 좋은 뜨락, 청마루, 고래등 같은 집을 남겨 놓고 교회 대청마루에 와서 자겠다고 하게 되면 그곳, 그 단체, 그 사람이 있는 곳은 흥청흥청 흥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60-158, 1972.08.17)

 할머니가 찾아와서 '여기 교회장 있소?' 할 때, 바라보면서 '없어요, 없어!' 하면 벌받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장 어디 갔어요?' 할 때 '왜 그래요, 할머니? 나이 많은 할머니는 필요 없어요.' 이래 보라구요. 하나님이 볼 때에 '그놈의 자식, 너는 어디서 나왔어?' 이렇게 걸린다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나이 많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를 잘 봉양해야 효자입니다.
(56-38, 197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