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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육신 갖고 체휼 가능한 영계

① 영계와 때

 지금 우리가 어느 단계까지 왔느냐 하면, 영계와 육계를 세계적 무대에서 연결시킬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영계와 육계가 세계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자리는 조용한 자리가 아니라 세계가 요동하는 자리, 하늘땅이 요동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은 못하게 하고, 하늘은 하려고 하고, 둘이 악착같이 싸움을 해서 이김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그게 언제냐 하면, 워싱턴대회 때입니다.
  1976년을 기점으로 사탄세계가 하나님에 대해서 참소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직접 하나님을 참소하지 못합니다. 영계에 간 선조들을 참소하면 했지, 하나님을 참소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계의 모든 영인들을 동원해 지상에 있는 사탄세력을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사탄이 하던 이상의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고, 공자가 나타나고, 석가모니가 나타나고, 마호메트가 나타나고, 자기 조상이 나타나서 통일교회를 안 믿으면 전부 다 영적으로 제재를 하고, 영적으로 벌을 주면서 들이몬다는 것입니다.
  영계가 지금까지 갈라졌던 것을 전부 다 수습하고, 오늘날 세계가 갈라진 것을 전부 다 심정적으로 묶어가는, 초민족적 기준을 중심삼고 여기에 세계적 대표를 모아 심정적으로 하나 만드는 이런 운동을 하기 때문에 영계도 하나되어 접선을 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빛을 발하여 세계적인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서양의 영계와 동양의 영계가 서로 달랐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서 하나로 묶을 수 있었느냐? 하나의 사랑으로 묶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동?서양의 사람들을 통일교회 합동결혼식을 통하여 민족으로 묶어 놓고 종족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 기준, 가정적 기준, 종족적 기준, 민족적 기준, 국가적 기준, 세계적 기준을 다 닦아 놓았습니다. 천국, 영계는 완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91-162, 1977.02.06)

② 앞으로의 시대

 요즘 통일교회에 새로 들어온 식구들을 보면 영적으로 선생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불원한 장래에 일국의 왕이 될 수도 있고, 일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미국 같은 나라에는 혼자 다니면서 중얼중얼 말을 하는 사람이 자꾸 많아질 것입니다. 앞으로 영계가 전부 지구상으로 습격해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걸 누가 총지휘하겠느냐? 이건 선생님의 책임입니다.
(67-77, 1973.05.20)

 여러분은 앞으로 얼렁뚱땅해서는 선생님 앞에 절대 못 나타날 때가 옵니다. 그때 가서는 선생님이 영계의 문을 열어젖힐 것입니다. 문 앞에 와 있다가 그런 자가 나타나면 '이 녀석, 뭘 하러 왔어?'하면서 문전에서 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문적인 면을 중심삼고 세계를 요리할 때로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 예수님 때와 마찬가지의 그런 사람들이 세계에 있습니다. 복귀시대이니만큼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면 아직은 안 되겠기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지 않지만 선생님 대신 별의별 일을 다 할 사람들이 세계에는 많습니다. 공중을 나는 사람도 있고, 물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고, 천리만리를 순식간에 가는 사람이 지금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래 안 가서 선생님이 그런 사람들을 저 히말라야 산맥에서 불러오고, 도의 세계에서 불러올 때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는데 세계가 통일되겠느냐, 안 되겠느냐? 하나님의 전권이 평면화돼 재창조역사에 이상적인 사랑에 화답하지 못하는 일체의 모든 요건은 전부 다 파탄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보는 금후에 있어서 초감각시대의 세계관입니다. 사랑만이 초감각시대의 세계관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초감각세계에서 사랑하게 되면 그저 붙들고 안 놓으려고 합니다. 신경선을 넘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만이 그것을 평면적으로 환영할 수 있는 세계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그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무엇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얘기를 안 하니까 선생님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지만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냐 하면 실체 몸으로 영계를 완전히 지배할 때입니다. 선생님이 영계의 내용을 가지고, 진리와 몸을 가졌기 때문에 사탄도 굴복해야 되고, 천사세계도 완전히 굴복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 도통한 사람이라든가, 기독교에 도통한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영통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이 죽으라면 죽을 수 있어야 실체 완성권이 이루어져 지상천국을 개문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가 됐다고 생각할 때, 일할 때가 있겠느냐? 그때 선생님의 생각을 알고 나면 여러분이 기가 막힐 것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되었나? 어쩌면 내가 저렇게 했나?'그럴 때가 옵니다. 농담이 아니고 공갈 협박이 아닙니다. 그런 때가 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60-194, 1972.08.17)

③ 영적 체험도 필요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제가 이 얼굴로는 그냥 못 돌아가겠습니다. 그냥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못 돌아갑니다. 죽기보다도 더 비참합니다.' 그러한 기도를 하고 다닙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영적체험을 많이 하면 부활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에 앞서서 늘 그런 심정으로 나서게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하고 가르치는 모든 말 앞에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말 뒤에 서는 것이 아니라 말 앞에 하나님의 심정이 앞서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겸손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할 수 없이 뒤로 가야 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의 심정이 앞에 있는 것을 느낍니다. 그게 뭐냐? 나를 자꾸 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가면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도 다 교육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무엇인지 모르게 전부 가르쳐 줍니다. 그래도 자기가 말하는 소리니까 자기 귀에도 들립니다. 자기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신기합니다. 그 경지에 이르면 말하면서 제스처를 해도 참 자연스럽습니다. 어떤 표정을 하더라도 그것이 다 자연스럽습니다. 어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면서 일을 해야 생명의 운동이 벌어집니다.
(96-167, 1978.01.03)

 영적세계를 체험한다는 것은 4차원의 세계를 통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럴 때에 몇천 년 전에 왔다갔던 선지선열들도 오늘의 나와 인연을 맺어, 대화도 하고 의논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실제 생활적인 시간권 내에서 내가 경험하고 또한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4-223, 1958.05.04)

④ 영적 체휼의 과정

 우리가 신앙의 주체되는 하나님을 흠모하는 그런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호합니다. 그러면 그 자체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되느냐?
  주체가 확정돼 있지만 내가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관으로 알 듯이 그렇다 하는 것을 확정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디서부터 살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주체로부터 살필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는 살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로부터 살펴야 됩니다.
  나라는 존재는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있는데 몸을 중심삼고는 이것을 살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중심삼고 살펴야 됩니다.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간들을 볼 때 그 마음 자체가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이 전부 다 같으냐? 그 바탕은 같을지 모르지만 마음 자체는 소성(素性)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전부 다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우리 얼굴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도수를 그릴 수 있는 평형선과 수직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도수를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늘이 주체라면 그 주체 앞에 내가 대상적인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주체되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대상으로서 감응할 수 있는 바탕을 반드시 주었기 때문에 평면적인 마음 바탕의 기준 앞에 수직으로 향하는 그러한 방향이 있어야 됩니다.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평선을 보게 된다면, 이건 평면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이 수직으로 서게 되면 이 수직선의 기준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영점기준을 어떻게 맞추느냐 이겁니다. 이쪽으로 가면 반드시 반대가 되기 때문에 그 영점을 맞추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발전소에 가보면 미터기가 많이 있습니다. 미터기에 영점기준과 같은 것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중심으로 모든 가감의 조정을 해서 그 방향이라든가 힘이라든가 양의 비준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영점기준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점기준은 어떤 자리냐?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 같은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참선하는 사람들이 무아경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것도 역시 그런 경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어떤 영적 기준에 접근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준이 되면 반드시 자기의 수평선 기준이 반응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도 보면 마음의 문이 있습니다. 심문(心門)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문이 언제나 한 면으로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자체가 돌고 있기 때문에 그 문도 이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을 통하지 않고는 플러스를 중심삼고 마이너스 입장에서 관계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심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해 보면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새벽 한 시에 기도하는 것과 세 시에 기도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건 여러분이 체험해 보면 압니다. 신비스런 깊은 경지에 들어가서 기도해 보면, 기도하는 시간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느끼는 것과 낮에 느끼는 것과 저녁에 느끼는 것과 밤에 느끼는 것이 모두 다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마음 상태에서도 느끼는 그 기준이 우리가 육체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에 따라 느끼는 감도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세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데도 어떤 시간에 잘 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건 뭐냐 하면 하나님과의 감응의 도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잘 된다 하는 거기를 점점 들어가게 되면 문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 문과 인간의 마음 문이 딱 맞아서 어느 기준까지만 맞추어 돌아가는 날에는 하나님이 느끼는 것을 체휼하는 길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음을 닦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벌어진 종교도 있지만 사탄의 뜻을 중심삼고 벌어진 종교도 있습니다. 이것들이 전부 다 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려 가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도 선한 마음이 있음과 동시에 악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이 '아! 나는 선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마음 자체도 선하지 않습니다. 타락의 결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기 때문에 악한 마음권, 악한 사탄권에 감염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선한 권 내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천태만상의 차이로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마음 문을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생활에서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마음 문이 열리는 때를 알아서 하늘의 마음 문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언제나 준비해야 됩니다. 언제나 수시로 찾아 맞추는 생활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심도를 가려 가면서 마음 문을 열게 하고, 그러면서 하늘이 향하는 문과 어떻게 일치화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이 상대적 입장에 서면 무슨 현상이 벌어지느냐?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입체적인 느낌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인지 모르게 온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겨울과 같은 기분만 느꼈는데 가을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고, 가을과 같은 기분만이 아니라 여름과 같은 기분도 느껴지고 봄과 같은 기분도 느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 우주는 돌고 있습니다. 마음도 돕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면서 춘하추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 세계도 돌면서 그와 같이 변화하는 감도를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일 년을 두고 보면 춘하추동이지만, 일 년을 축소한 것이 하루인데 하루에도 춘하추동이 있습니다. 아침은 봄에 해당하는 것이요, 낮은 여름에 해당하는 것이요, 저녁은 가을에 해당하는 것이요, 밤은 겨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춘하추동 계절적 형태가 하루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봄에 해당하는 아침에도 그렇습니다. 거기에서도 봄과 같은 것을 느끼고, 여름과 같은 것을 느끼고, 가을과 같은 것을 느끼고, 겨울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큰 것은 큰 것을 중심삼고 단위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작은 것도 상대적인 그 단위의 형태를 각자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느껴지는 느낌이 언제나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계절을 따라서 자기가 봄이다 하는 것을 알면 좋지만 모른다는 것입니다. 겨울이다 하는 걸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많은 체험을 통해서, 많은 기도생활을 통해서 '아! 지금 때가 어떤 때에 처해 있구나'를 가릴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느냐? 우리말에 암시(暗示)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길을 무심코 쓱 가는데 어떤 좋은 집 담벽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가는 걸 보았을 때, 새는 날아갔지만 퍼뜩 새가 날아가는 그 자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 있어서 그런 형태가 전개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암시적 조건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히 말하는데 무엇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이 단계를 지나가게 되면 어떠한 형태가 벌어지느냐? 몽시(夢示) 같은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꿈 가운데 일어나는 일인데 꿈도 깊은 잠 가운데서의 꿈이 아닙니다. 바울도 비몽사몽간에 3층천을 체험했습니다.
  그런 걸 무심코 흘려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걸 종합해 어떤 방향의 인연을 나에게 연결시키기 위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과학적인 면에서 데이터를 내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잊을 수 없는 몽시 같은 것은 100퍼센트 적중하게 됩니다. 그런 체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몽사몽간에 어떠한 사람이면 사람, 물건이면 물건이 인연되었는데 그것이 사실 가운데서 실체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꿈 가운데서 누구하고 노래를 하고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꿈 가운데 노래가 아니고 옆에서 누가 부르는 노래가 그 노래였다, 이런 사실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영적 차원에 있어서 마음 상태가 공명(共鳴)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음차(音叉:소리굽쇠)라는 것이 있습니다. 공명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을 지극히 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느냐? 공중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러느냐? 마음이 아직까지 존재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몸한테 끌려다니는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존재성을 확립해 또 다른 하나의 주체다 하는 그런 인격적인 차원의 자리가 형성되면 그것은 반드시 다릅니다.
  기도를 해서 차원이 높아지게 되면 마음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공명(共鳴)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원 높은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서 말하는 것을 내가 듣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로 발전해 나갑니다. 맨 첫 단계에서는 암시와 같은 사실들이 여러분의 생활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자는 이런 막대한 자료를 수집해야 됩니다.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언제나 배고픈 자의 심정이 돼야 됩니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갖다 줄 것이냐? 그렇게 찾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결국 그 자체는 뭐냐? 내가 언제나 주체가 되든가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확정적인 주체요, 확정적인 대상의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고, 대상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대번에 압니다. 내가 누굴 전도할 사람이 있으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괜히 그저 마음이 좋아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걸 심파(心波)라고 합니다. 마음의 파장이 있습니다. 고기 장사하는 사람은 푸주 냄새가 나고, 천(옷감) 장사하는 사람은 천 냄새가 납니다. 여러분 몸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냄새가 납니다. 그 마음의 냄새를 맡는 형태가 벌어집니다.
  우리 몸에는 촉각 같은 것이 있어 전부 접선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전파 같은 것을 발사해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하는 사람의 태도는 전부 다 나와 더불어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타락이 모든 관계를 잃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관계, 본연의 인간에 대한 관계, 신에 대한 관계를 전부 절단해 버린 것이 타락입니다. 절단된 관계의 세계를 우리가 다시 접속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내 자체가 접속시킬 수 있는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 작용을 해야만 관계가 개척되지, 접속시키고자 하는 태도를 갖지 않으면 개척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전부 다 무엇을 찾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아침에 기도하고 나면 '아, 오늘 좋은 일이 있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으니까 그냥 좋은 일이 나타나겠지!' 이게 아닙니다. 그걸 찾아야 됩니다. 이러한 생활태도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돼야 됩니다. 그러므로 체휼과 실천이라는 것은 생명의 인연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비몽사몽간에 이런 사실이 벌어집니다.
  그 단계가 높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계시(啓示)라든가 지시라든가 이런 것이 벌어집니다. 계시라는 것을 우리가 분석해야 됩니다. 지시라는 것은 직접 가르쳐 주는 것이지만, 계시는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건 반드시 해석을 해야 됩니다. 무엇을 가르쳐 주는 데는 음성으로 들려 주기도 하지만 환상으로도 보여 줍니다. 좋은 봄날을 맞이하여 사슴 한 쌍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 이런 환상은 지극히 행복스러운 소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런 것이 우연한 사실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밭을 계발하기 위한 하늘의 역사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우리 마음의 밭이라는 것이 유리판같이 평평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울뚝불뚝하다는 것입니다. 형은 수평 같은 면을 가졌지만 그 자체는 울뚝불뚝하다는 것입니다. 울뚝불뚝한 여기에 하늘의 감도가 반사되어 오게 되면 빛의 굴절과 마찬가지로 들어오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반사돼 나갑니다. 그러니 전부 다릅니다. 부분 부분을 계발하려니 그런 역사를 합니다.
  계시의 단계를 지나게 되면 묵시(?示) 단계입니다. 하루 종일 영계에 들어가서 체험을 한다든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까지 연결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활적인 감정권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체휼적인 신앙을 안 가지고는 위대한 하늘 뜻의 결과 세계를 우리의 생활장, 생활무대에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을 갖지 않는 신앙자는 믿을 수 없습니다. 체휼적인 신앙이 고귀하기 때문에 계발해 나가야 됩니다.
  우리 식구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역사(役事)를 합니다. 역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힘이 전기작용과 마찬가지로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체험을 해봤으면 알겠지만, 고압에 접한 것과 같이 우리 의식보다 강한 힘이 들어옵니다. 초자연적인, 초인적인 감정이 찾아들게 되면, 우리 몸이 타락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반발하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신성과는 반발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 앞에 어떤 신의 성품이 강력하게 들어와도 자연적으로 순화되는 입장이 못 됩니다. 이것이 들어오는 데는 플러스 마이너스와 같이, 음파도 강약으로 전파되어 나가는 것과 같이 반드시 그 힘도 한꺼번에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강하게 들어왔다 약하게 들어왔다 이러면서 개척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거기에 진동이 벌어지고, 자기의 의식이 없어지고 영적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것이 역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를 자꾸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이 몸이, 육성(肉性)이라는 것이 타락성이 순화되어 자연히 100퍼센트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현상이 없어도 역사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 하늘이 가르쳐 주는 것을 다 받으면서도 감쪽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과정을 거쳐 순화되는 자리까지 올라가야 됩니다. 그 과정에서 계시라든가 지시라든가 하는 과정을 여러분이 거쳐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체휼 단계에 들어가면 여러분의 마음이 명령합니다. 누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말을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내가 좋은 말로 그 사람을 위해서 말해야 할 텐데 책망의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가끔 벌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잘못하다가는 미치광이로 취급받기 쉽기 때문에 그것을 조정할 줄 모르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체휼적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마음으로 느낀 것을, 체휼한 것으로 실험을 통한 체험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은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체휼과 실천,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개 우리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지성적인 사람으로 진리로써 뭘 탐구해 이치에 맞으면 인정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면 부정하는 타입의 사람, 또 다른 하나는 이치보다는 감으로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지적이다, 영적이다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내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외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이요, 지적인 사람은 외적인 면에서부터 느껴 내적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나가는 종류요, 하나는 들어오는 종류입니다. 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성적인 사람은 대개 기도를 싫어합니다. 그걸 생각하면 미신 같고, 믿을 수 없고, 자기 자체가 부정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이건 지성적인 사람입니다. 이론을 따져 가지고 무엇을 찾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 동시에 나면서부터 '하나님' 하는 말이 아주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설명하기 전에 그저 좋습니다.'아버지' 하게 되면 밥을 안 먹더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 영적인 운동에 있어서 혁명적인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지성적인 사람은 못 합니다. 대개 신앙세계에서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은 지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미욱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느끼는 대로 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했으니 하는 것입니다. 하다 보니 그것이 실천하는 환경에 백중하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이로 말미암아 위대한 인물로 등장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지성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하늘의 영적 벼락을 한 번 맞고 나서 돌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외적으로 탐구하는 것보다는 내적으로 폭발적인 길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전부를 부정하고 존중시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새로운 기독교 혁명의 기수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종교적인 심령세계에서 지도자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사람은 두 종류가 있는데, 나는 어떠한 타입의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대개 영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크지만 진리면에서는 크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굵지만 뾰쪽해지면 시종여일(給終如一)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히 못 가는 것입니다. 어느 때에는 반드시 굴러떨어집니다. 또 진리는 크지만 영적인 면이 작다면 영원히 못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조정하는 생활을 우리는 해야 됩니다.
  기도와 진리,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평형을 만들어 화(和)하는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계와 육계를 조정해야 됩니다. 영적세계의 중앙에 서야 되고, 진리세계의 중앙에 서서 조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인간이 되지 않고는 완전한 자리가 될 수 없습니다.
(76-125, 1975.02.02)

⑤ 영적 감각의 발전 방법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을 대하지 못하게 담을 막아 놓더라도 그 담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집니다.
  선생님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영계에서 그 간격을 메워 줍니다. 선생님이 흥남감옥에 있을 때도 말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말 없이 전도했습니다. 영계가 동원되어 협조해 주었습니다. 안 해주면 큰일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더라도 이와 같이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에 이름난 곳은 다 가 봤습니다.
  오늘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세 번째 만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며'아버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이런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는데 어떤 사람입니까?'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기도한 그 기준과 딱 맞아떨어진다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함으로써 여러분의 영적 촉감이 발달됩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나서면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무한정으로 통합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런 사람을 대하게 되면'아이쿠!' 하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과 영계에서 가르쳐 준 영감이 실제의 사실로 들어맞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체험을 쌓아 올라가야 됩니다.
(30-150, 1970.03.21)

⑥ 군림(실체역사)

 영과 육은 본래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되어 있지, 거짓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의 기원을 찾지 않고는 이것이 하나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여러분이 넘어 하늘의 축복을 바라고 가야 됩니다.
  외로운 자리에 갈수록 왜 하늘이 가까이 계시느냐? 세상의 사랑을 잊고 하늘의 사랑권 내에 들어가니 하늘이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하늘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서 관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주관권 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도 여러분이 모르기 때문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직접주관을 받는 권내에서 살아야 됩니다.
(91-183, 1977.02.06)

 여러분은 선생님하고 어떤 인연이 있느냐? 기도 가운데 혹은 꿈 가운데에 선생님을 매일 보아야 됩니다. 세계의 통일교인은 그런 체험을 다 해야 됩니다. 영계에 대해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눈을 뜨고도 선생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역사 이래 세계에 처음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점점 강해져야 됩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한테 간섭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생활권을 선생님이 간섭하면서 전부 다 지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라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신이 나서 움직이면 그 세계에 들어갑니다. 선생님이 제일 어려운 것, 하지 못할 것을 시켰지만 선생님보다 더 기쁘게 하겠다고 하면, 그 세계에 대번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바치고 그 자리를 나서면 대번에 선생님이 지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91-173, 1977.02.06)

 우리 통일교인들은 기도나 몽시 가운데서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직접 받아야 됩니다. 우리 식구들 가운데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선생님의 지시를 직접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 때 이상으로 실감나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산다는 입장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예수님 때보다 더한 일이 종종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세계가 통일교회와 하나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망권을 지나가려면 결사적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데에는 한 순간만 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해야 합니다. 이런 자유로운 시대에 그러한 체험을 하지 못하고 직접 모시면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본래 그런 기준과 경험이 있어서 그런 내용에 전부 다 결부되어 있어야 합니다. 원래는 선생님과 영적으로 접붙여 하나되어야만 축복대상자로서 축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1-330, 1970.06.07)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어디에 있느냐? 기도 가운데서 음성을 들어 보면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라. 선생님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려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잠을 안 자고 그러다 보면 영계가 열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휼이 없으면 안 됩니다. (76-152, 1975.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