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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①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인연 가운데 표준이 되는 인연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부자의 인연입니다. 이 인연에서 비롯된 심정은 어떠한 존재의 권한에 의해서도 굽혀질 수 없는 영원하고 불변하고 유일한 것입니다.
  또 이 심정의 권한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권한을 가지고 나타나게 될 때 모든 존재물은 그 앞에 머리 숙일 수 밖에 없으며, 이 심정의 권한을 가지고 움직일 때 만천하는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주의 철칙입니다.
(7-105, 1959.07.26)

 하나님이 창조 당시 이상으로 삼고 바랐던 참된 사랑, 위대한 사랑을 중심삼고 인간과의 사랑관계를 맺어 하나될 수 있는 신인애일체(神人愛一體)의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들은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을 염려할 것 없이 그냥 그대로 천국으로 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75-54, 1995.10.31)

 아버지와 아들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어디냐? 사랑이 교차되는 중심, 생명이 교차되는 중심, 이상이 교차되는 그런 중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이 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면 하나님도 사랑이요 나도 사랑이요, 하나님도 생명이요 나도 생명이요, 하나님도 이상이요 나도 이상이 된다 이겁니다. 그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최초의 인연과 최초의 통일의 장소가 부자관계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아니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69-78, 1973.10.20)

 여러분, 부자일신(父子一身)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까? 그것은 사랑을 빼 놓으면 안 됩니다.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연결돼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해요. 부자일신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연결되어야 됩니다.
(197-234, 1990.01.19)

 말로서 맺어지는 부자의 관계, 예약만으로 맺어지는 부자의 관계는 필요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하고 뼈살이 녹아나는 고통 속에서도 참고 승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2-234, 1957.06.02)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그 최고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바로 아들의 자리요, 딸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천정(天情)이 있고, 우리 인간에게는 인정(人情)이 있습니다. 이 인정과 천정이 서로 합할 수 있는 귀결점이 되는 자리는 절대자인 하나님도 원하고 인간도 원하는 단 하나의 자리, 즉 한 부모를 중심으로 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39-9, 1971.01.09)

 본래는 아담 해와가 서로 최고로 기쁜 가운데서 최고의 생명력이 발휘되고, 최고의 힘이 합하고, 전체의 이상력까지 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사랑의 꽃이 피어야 됩니다. 그래서 꽃과 같이 피어 가지고 그 향기가 온 천하를 덮고도 남을 수 있고, 하나님이 그 꽃을 바라보고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스스로 거기에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나님은 꿈꿨던 것입니다. (104-44, 1979.03.28)

 아담과 하나님이 하나되어 서로 사랑이 넘치게 될 때, 아담은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담이 사랑으로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될 때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거(居)하십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聖殿)인 것과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54-139, 1972.03.22)

 하나님은 여러분과 가까이 계시고, 누구보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염려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는 육친의 사랑이 제일 큰 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보다 더 크고 깊으며, 세상의 그 어떤 인간적인 사랑보다도 깊고 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어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의 서러움을 내가 알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을 체휼하는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어 하나님을 모신 천국을 소유한다면, 그 천국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2-234, 1957.06.02)

 부자일신이라는 사랑의 논리권 내에서는, 아버지의 것은 아들의 소유가 되는 겁니다. 남편의 것은 아내의 소유가 되는 겁니다. 사랑을 중심삼고는 상속권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서 인연을 맺은 아들딸이 되었다면,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몸도 내 몸이요, 사랑도 내 사랑인 동시에 지으신 모든 것도 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천하를 점령하겠다는 본성의 욕심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분배해 준, 우주를 소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의 권한을 이어 주기 위한 선물이었더라 이겁니다.
(199-346, 1990.02.21)

② 일체된 생활을 해야 한다

 모든 종교에서는 보는 것을 함부로 보지 말고, 듣는 것을 함부로 듣지 말고, 말하는 것이나 대하는 것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전부 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지, 자기 중심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66-231, 1973.05.13)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신 자로서 기쁠 때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습니까? 여러분이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서 느끼는 고마움 이상 하나님을 모셔드렸습니까? 여러분은 좋은 것을 먹을 때나 입을 때, 그리고 슬플 때나 어려울 때에도 항상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될 수 있는 사연들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17-291, 1967.02.15)

 나의 의식과 직관과 감각기관 일체까지도 아버지의 것이요, 내가 느끼고 의식하는 전체가 아버지의 것이라는 관(觀)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심정을 통해 움직이는 하늘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294, 1960.02.14)

 인간은 누구라도 심정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자식된 인간은 바로 심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55-163, 1972.05.07)

 우리가 말을 하고, 보고, 느끼고, 또 감정적으로 체감(體感)하는 일체(一切)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연된 것이어야 합니다. (53-239, 1972.02.29)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겁니다. 말을 해도 그렇고, 행동을 해도 그렇고, 자나 깨나 모시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이런 컨셉(concept;개념)만 가지면 24시간 사탄이 침범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161-231, 1987.02.15)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첫마디 말을 하늘 앞에 바치고, 집을 나설 때도 첫걸음을 오른발로 내디디며, 하늘 앞에 바쳐야 합니다. 평소의 습관이 이렇게 된다면, 여러분의 생활은 시의생활(侍義生活)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원칙적인 기준에서 생활태도를 취해 나가야 합니다. (17-296, 1967.02.15)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느끼는 모든 감각, 동작이 하나의 목적을 중심삼아 언제나 직선상에 귀일(歸一) 될 수 있어야 됩니다. 그점을 상실하게 되면 뜻과 나와는 관계맺을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57-231, 1972.06.04)

 천국은 모시는 생활을 한 것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그 천국은 어떠한 자가 가는 곳인가? 주를 믿고 복을 받기 위해 복을 앞세워 나가는 자가 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모시기 위해 심정적으로 준비하는 생활을 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준비하는 기간에 죽는다 해도 모심의 생활을 남기고 기쁘게 갈 수 있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거기에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8-304, 1960.02.14)

 이제는 삼합(三合;하나님, 참부모, 여러분)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보조를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달려 있기에, 삼자가 일치되는 점에서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점에 생명의 부활권이 있습니다. 그점이 하나되고 참부모와 여러분이 하나되어 일치될 수 있는 연결점입니다. 거기서 일심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뜻과 일치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31-321, 1970.06.07)

 하루 24시간의 생활권내에서 내가 보고 듣고 했던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해 보고 들은 것이냐?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보고 들어야 되고 느끼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천상세계의 생활과 연결시켜 생활해야 합니다. (35-284, 1970.10.25)

 매일같이 그리워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그리워하든 항상 그리움에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밤 12시만 되면 '야야! 자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밤과 낮이 없습니다. 심정의 인연을 안고 나올 때는 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293, 1967.02.15)

 본래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된 후에는 나 중심삼고 살고, 나 중심삼고 생각하고, 나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걸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생각이 되고 하나님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원칙이라는 겁니다. (92-166, 1977.04.03)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과 인연 맺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들였느냐 하는 것이 자신의 재산입니다. (50-288, 1971.11.08)

 여러분들은 눈물의 골짜기에서 아버지를 부를 때 응답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눈물짓는 자리에서 '아버지' 할 때 '오냐 내가 여기 있으니 참아라', 피 땀 흘리는 고통이 사무치는 자리에서 '아버지여!' 할 때 '내가 참았으니 너도 참아라' 하시고, 죽음이 닥쳐오는 그 순간에도 '내가 있으니 안심해라'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돼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얼마나 아버지를 모셨으며, 얼마나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했으며, 얼마나 아버지와 더불어 살았느냐 하는 게 문제가 되지, 영광의 자리에서는 아버지를 아무리 불러봐야 문제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아버지께서 영광의 날을 보시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1-102, 1961.02.12)

 '아이고, 나 배고파! 아이고, 밥 밥 밥!' 이러는데 그거 누구를 위해서 먹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위해 먹겠다고 그래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위해 먹는 것이라 하느냐? 내가 하나님의 완전한 성전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성전인 '내가 배고프면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밥을 먹자고 하신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면 그 밥은 거룩한 밥이라는 겁니다. 밥이 밥님이 되는 겁니다.
(92-166, 1977.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