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문선명 선생이 하늘로부터 받은 교육
내가 수난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이 나 이상 수고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 한마디의 불평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가중된 십자가가 앞을 가로막는 일이 천만 번 있더라도, 그 이상으로 수고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수난의 길도 평탄한 길처럼 넘을 수 있었고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을 따르는 여러분 앞에 내가 힘의 모체는 되지 못할지 언정, 여러분의 힘을 깎아 먹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 하늘의 도리임을 알고, 하늘로부터 교육을 받은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스승으로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수고하시고 나를 위로하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 위로와 힘의 모체가 되기 위해서 밤낮으로 책임을 다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3-256, 1971.05.01)
기성교회 다니던 습관적인 그런 관념을 가지고는 통일교회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아요. 통일교회를 믿고 자기 이익이나 보겠다는 사람은 여기 드나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나라에 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사상입니다. 문 선생 사랑하는 것을 내가 원치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좋아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교육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자신이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다. (49-302, 1971.10.17)
선생님이 지금까지 교육받고 살아 나온 것은…. 요즈음에는 내가 어느 정도의 고개를 넘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누울 때는 반드시 오른쪽으로 눕는다든가 왼쪽으로 눕는다든가 해서 새우잠을 잤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처럼 꼬부리고 잠을 잤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다리를 구부리고 자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서는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일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죄송합니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감정적으로 다른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얼마나 가까우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생활권 내에서 지내왔습니다. (50-289, 1971.11.08)
삼천만 민족의 비소(誹笑)가 크면 클수록 그 슬픔이 삼천만 이상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나와 인연을 맺고 나를 버리지 않는 아버지의 자리에서 삼천만의 심정 이상의 심정으로서 대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감옥에 들어가서도 슬픈 얼굴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쇠사슬에 매여 끌려가며 뭇사람들의 조롱을 받을 때도 “오냐, 비난 비소해라. 내가 교육이 안 되어 있어서, 배울 것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배웠습니다. (51-239, 1971.11.28)
나는 돈이 있어도 좋은 집을 짓거나 내 일신의 행락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을 위해 돈 쓸 곳이 있으면 빚을 지고서라도 쓴다는 신념을 갖고 나왔습니다. 왜냐? 세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남겨야 할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생활 가운데서 그러한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여러분을 교육할 수 있는 교재를 남길 수 없습니다. 그 교재를 남겨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슬퍼도 슬픈 표정을 지을 수 없고, 억울해도 억울함을 나타낼 수 없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개척자의 사명을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32-273, 1970.07.19)
이제부터 선생님의 노정은 여러분들이 필생을 통해서 세워 가야 할 전통의 족보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43-341, 1971.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