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선명 선생은 가정교육을 어떻게 했을까
최초의 7년간 어머니를 키우는 시기였습니다. 천적인 가문이나 가법에 의한 교육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날이 샌 다음에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지만 잘 때에는 계속적으로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머니는 모르겠지만 그와 같이 하여, 타락의 결과 잃어버렸던 딸의 기준과 그 상대기준과 하나님 앞에 참부모의 기준, 이 셋을 실체에서 복귀한 것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누구든지 가야 할 길입니다. (22-205, 1969.02.04)
선생님은 지금까지 많은 자식을 거느려야 하는 어머니에게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교육했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울 때는 눈물이 나오고 괴로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물이 나오려 하고 괴롭더라도 자식이 엄마 아빠에게 눈물을 흘리며 호소할 때는 씻은 듯이 괴로웠던 일들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오냐’ 하면서 어제 날 기뻐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지 못하면 자식을 교육할 자격이 없습니다. (23-180, 1969.05.18)
선생님이 어머니를 교육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가 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고 인류가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어머니가 되라는 것입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누가 찾아오더라도 그 사람 이상의 실적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그를 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3-101, 1970.08.09)
종교활동을 위해 내가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많이 씁니다. 굶으면서라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 기분 좋아요, 나빠요? 선생님이 굶으면서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기분 좋아요? 선생님이 굶다가 죽어도 좋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선생님을 협조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것은 다 세계적입니다. 선생님은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번에 성진이가 일본에 갈 때도 “그 나라에 가서 다른 것은 하지 마라. 이것 이것을 하라. 너는 일본 국민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네가 잘해서 아버지 위신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가장 중요한 첫째 문제는 대 교회 문제이고, 둘째는 대국가 문제이며, 셋째는 선생님의 아들이라는 문제이며, 넷째는 남녀 문제인데, 이 문제를 중심삼고 자기 영광을 위해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육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34-197, 1970.09.06)
어머니는 정말 나를 사랑한 분이었습니다. 내 앞에 와서는 언제나 눈치만 봅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용서가 없거든요. 조여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불효 중의 불효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입장에서 보게 될 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천법과 천도를 아는 가치적인 어머니를 보고자 하는데 그 꼴이 뭐냐는 것입니다. 용서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공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에 어머니라 할지라도 모르는 한 아녀자로서, 한 여자로서 충고하는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입니까? “아이구, 어머니 나 살려줘요. 어떻게 해주세요” 하는 이런 사람이 효자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렇게 했다면 오늘날 통일교회 문 선생이 이렇게는 못 되었을 것입니다. (38-264, 1971.01.08)
여러분의 아내는 3시대의 여성상을 대표한 하나의 열매로서 오늘 내 목전에 나타난 거룩한 존재이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은 반대입니다. 딸로서 키우는 것입니다. 딸로 키운 다음에 아내로 키워 어머니로 교육해 어머니 이름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반대지요? 선생님 연령으로 보면 어머니는 딸 같은 나이지요? 어머니가 딸 같지 아내 같고 어머니 같다고 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연령이 웬만하면 덮어놓고 ‘어머니’라고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에게 쓰는 말이 엄마입니다, 엄마, 아무개 엄마라고 하지 않아요. 엄마라고 해요. 그것이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알겠어요? 밖에 나갔다 들어와서 아내를 찾을 때 “아무개 엄마” 하고 찾잖아요? 선생님은 ‘엄마’ 하는 것입니다. (47-218, 1971.08.28)
가정을 책임진 여러분들이여, 아내를 사랑한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머니를 보고 교육하는 게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늘 앞에 빚을 지지 말고, 하늘 앞에 빚을 지우게 되면 우리 아들딸들이 부모를 대해 원수시하지 못할 거다. 불효하려야 못 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하늘 앞에 빚지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육입니다. 빚을 지는 날에는 자식이 들이칩니다. 자식이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빚을 지지 않고 하늘 앞에 빚을 지우는 날에는 자식도 그 앞에 굴복합니다. 천도를 따라가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그 앞에는 사탄도 못 나서는 것입니다. (68-154, 1973.07.29)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들이 아담가정의 울타리가 되어 키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천사장을 기르기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고달팠습니다. 역적 천사장이 아니라 하늘의 충신 천사장으로 길러서, 우리 자녀들을 위해 천 번 만 번 목숨을 바쳐 죽더라도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교육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 나왔습니다.
선생님 가정하고 여러분 가정하고 하나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36가정인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선생님에게서 전통을 이어받았으니 여러분과 믿음의 아들딸과 효진님을 비롯한 선생님 아들딸에게 교육하는 것입니다. 교육해야 됩니다. 울타리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걸 확실하게 알아야겠습니다. (120-338, 1982.10.20)
아직까지 자녀들을 대해서 내가 교육을 못 해봤어요. 붙들고 밤을 새워 가면서 내정이 통하는 교육을 못 해봤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교인들은 몇백 번이고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저 아들딸들은 내가 죽더라도, 지그재그로 엇갈리는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바른 길을 찾아 들어온다고 나는 철석같이 믿습니다. 왜? 하늘 대도의 길이기 때문에. 아무리 빗물이 산골짜기에 고여 흐르더라도 큰 강을 통해서 대해를 찾아들게 마련입니다.
철부지였을 때는 그 강 줄기, 지류와 같아서 아버지는 남쪽으로 흐르는데 북쪽으로 흐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때가 되어서 일생 행로를 걸어가다 보면, 강을 따라 대해로 가게 될 때는 정상적인 코스를 따라 대해에 들어와 아버지의 모든 대도를 이어받을 수 있는 때가 온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것입니다. 기다리지요.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성진이가 7년 만에 아버지라고 찾아왔을 때 “네가 성진이구나” 하며 내 손을 내밀어서 손목을 잡아 보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돼지도 개도 자기 새끼가 있으면 품는 법인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목석보다 못한 남자, 무정한 남자, 정이 없는 남자…. 그 어머니가 나를 대해서 인사하기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소? 남모르는 이 길, 몰이해의 길을 가기에, 뜻을 위해서 그렇게 수난 길을 가기에 얼마나 힘들었소? 그동안 내게 고생스러웠던 그 일들은 고생이 아니었소. 나를 핍박하는 사람도 없고, 나의 길을 가로막는 사람도 없었소. 그렇지만 당신은 핍박하는 사람도 많고 가로막는 사람도 많은데 죽지 않고 몰려 쫓겨나지 않고 살아왔으니 감사할 뿐이오” 이렇게 인사를 먼저 하고 난 후에 그 어머니 입으로 아들에게 “훌륭한 아버지, 내가 가르쳐 준, 교육하던 이상의 아버지가 왔다. 인사해라”고 할 수 있는 아내를 바랐습니다. 그럴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랐던 것입니다. (127-291, 1983.05.15)
내가 통일교회 교인들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고, 통일교회의 앞날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충고도 하고 교육도 했지만, 우리 아들딸을 대해서는 눈물이 뭐야? 한 시간도 깊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못 가졌던 내 자신이 부모의 입장에서는 안되었지만, 큰 것을 위해서 충성하고 더 큰 것을 위해 가라고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서는 그 길을 못 가면서 가르친다면 그건 가짜입니다. 천벌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45-243, 1986.05.11)
지금까지 축복받은 가정들이 어디로 가느냐? 가정으로 가는 사람은 흘러갑니다. 선생님도 결혼한 것은, 결혼한 목적은 가정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내가 어머니를 교육하고 있지만, 가정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천주복귀의 사명을 하기 위해 가는 것입니다. 눈을 뜨면 그 일을 위해서 맹세하고, 눈물을 흘리면 그 일을 붙안고 눈물 흘리며 가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탕감노정에서, 앞으로의 역사 앞에서 부모로서 남겨 줘야 할 선물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은 생활철학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157-308, 1967.10.16)
선생님도 집에서 어머니 대해 교육을 합니다. 어머니를 교육할 때, 아무리 성이 났더라도 30분 이내에, 3분 이내에 그걸 용서해 줄 수 있는 정신이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훈계하는 경우에 아기들이 볼 때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나도 그런 것입니다. 아기들이 척 들어오면 아무리 누가 뭐래도 “그거 언제 그랬나”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면으로 아주 훈련을 많이 쌓았습니다. 잠깐이라도 한번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게 필요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마이너스가 많은 것입니다. 그늘진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벌써 잊어버리면, 내가 “다 끝났다” 하게 되면 다시는….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가정에서 하루에 되어지는 일이, 더욱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주위 사방이 엉클어진 인연 가운데 살기 때문에 이것이 매일의 시간권 내에서 변화무쌍하다는 겁니다. 이 가운데서 보조를 맞추어 지고 가야 할 책임이 주부면 주부에게도 있고 남편이면 남편에게도 있는데, 부인이 그저 이렇게 얼굴을 쥐고 해서는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손해입니다. (158-234, 1967.12.27)
선생님은 어머니한테 “절대 복종해야 돼. 해와 대신으로 선 당신은 무슨 한, 어떤 괴로움이 있더라도 괴롭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괴로우면 혀를 깨물어, 입술을 깨물어!” 하면서 아무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면서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와라! 한발짝만 벗어나도 당한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교육입니다. “어차피 나는 세계의 십자가를 지고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싸움터로 나가는 남자다.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해와, 어머니다” 했습니다. (234-84, 1992.08.04)
선생님이 선생님의 아들딸 3명을 제물로 바치더라도 선생님의 아들딸을 먼저 사랑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접목될 수 없습니다. 모든 아이들의 주체가 선생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렇게 교육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선생님과 똑같이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철저한 사상, 뜻을 대한 사상을 아들딸 앞에 교육해야 됩니다. 생사의 경계선을 넘어가더라도 자신의 결의는 변할 수 없습니다. (252-182, 199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