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종류의 책을
내 북마크

아직 북마크가 없습니다.

7. 인생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수와의 영적 만남

소년시대부터 인생의 여러 가지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죽은 후에 우리의 생명은 그대로 계속되는 것일까?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혹은 무력한 존재이신가?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왜 인류세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이 지구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이 존재하는가?

과거사를 돌아볼 때, 이것이 추억의 한 말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때에는 참 심각했어요. 자기 생애의 미래를 걸어 놓고 어떻게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담판하는 시기였습니다. 이것이 인간만의 결정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적 노정을 취할 수 있는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신앙 길에서 고심하던 모든 추억이 생생합니다. (211-135, 1990.12.30)

선생님은 16세 때에 비상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부활절 아침 오랜 시간 눈물어린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생님에게 나타나셔서 많은 계시와 교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오하고 놀라운 사실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께서 슬퍼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지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때 체험한 이 사실을 말로써 다 표현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홀연히 펼쳐졌고, 선생님은 자유로이 그 영적인 세계에 있는 성자들과 통신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땅 고요한 산중에서 선생님은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에 계시된 진리의 내용이 지금 통일원리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예수님을 보았을 때, 웃으면서 “아이구. 좋아!” 해요? 그런 예수님을 만나 봤어요? 선생님도 못 만나 봤습니다. 언제나 심각하고 침울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하늘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120-119, 1982.10.05)

내가 이 길을 나설 때는 나이가 여러분보다 어릴 때입니다. 스무 살 전에, 그때에 이 길을 출발했습니다. 그때는 천진난만한 시대였습니다. 좋은 그 무엇이 있으면 전부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또 동네에 색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알아보고 싶고,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주 강한 때였습니다.
그런 시절에 하늘의 뜻을 알고 천적인 대명을 받들고 나서는 그날부터 이 엄청나고 큰 사명을 이룰 수 있는 나 자신이 못 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받들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할 스스로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56-106, 1966.01.09)

내가 이 길을 나설 때는 청년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을 때는 그 큰 책임을 어떻게 다 해내느냐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였습니다. 나는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목적하는 길로 가겠다고 하는 힘이 누구보다도 강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려운 길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품고 가는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 당장의 행복을 위해 미래를 꿈같이 버리는 사람입니다. 선생님도 옛날에 젊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겠나요, 안 했겠나요? 청춘 시대는 한 번밖에 없는데…. 어떤 길을 택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택해야 할 길을 택했습니다. 높은 차원에 비례해 그 인격의 가치라든가 인간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16-142, 1966.01.09)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표에 따라 나를 선택하여 서품(敍品)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 직접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그러한 사명이 나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에 숱한 사연을 남기면서 지금까지 역사의 고비 길을 넘고 넘어 해결 짓지 못한 채 문전까지 하나님이 찾아왔습니다. 레버런 문이 소년일 때 문전까지 찾아오셔서 통고했는데, 그때가 이 뜻을 알고 출발한 때였습니다. (120-281, 1982.10.17)

거리를 지나가다 우연히 누구 말을 듣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한테 감동받아서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전도해서 이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 동기의 출발점이 어디냐? 하나님입니다. (20-314, 1968.07.14)

내가 이 길을 나설 때에도 “하나님 있습니까?” 하고 끝까지 캐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알고 출발했습니다. 다음은 “하나님, 소원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서 하나님의 소원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님, 내가 필요합니까?” 하고 여쭈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필요합니까?” 하고 따졌습니다.
10대를 지나고 20대를 향하면서 신앙 노정에서 여러 가지 고민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에 가 봐야겠다. 일본을 거쳐 미국을 갔다 와야겠다. 현지에 가서 약소민족이 서러움을 당하고 핍박받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체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알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내정으로부터 사정, 하나님이 가야 할 목적지까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기독교 성경으로부터 모든 경서들을 탐구해 봤어요.
(13-198, 1964.03.15)

선생님이 초라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부터였습니다. 여하튼 그 후로부터 9년 동안 선생님은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차례 영계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점차적으로 하나님이 놀랄 만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길고 긴 밤이 지나가고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진리 안에서 영광스러운 새로운 문화의 서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받은 이 계시는 오늘날 ‘원리’라고 부르고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이 원리를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기도할 때는 등이 구부러지고 무릎에 굳은살이 박힐 정도로 해야 합니다. 선생님의 무릎에는 옛날 기도하면서 생긴 굳은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기도는 마룻바닥에서 해야 됩니다. 눈물도 흘려야 합니다. 선생님은 기도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흘린 사람입니다. (25-332, 1969.10.12)

인생의 갈 길을 해결 못 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늘 눈이 붉어져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햇빛을 못 볼 정도였어요. 그런 놀음을 하면서 이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143-331, 1986.03.21)

선생님은 한창 때는 18시간 17시간, 보통 12시간 기도했습니다, 엎드려서. 점심을 안 먹어요.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못 살아요. 사방이 꽉 막혀 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기도를 해야 하늘 구멍이 보입니다. 그런 시련 과정을 거쳐 원리를 찾아낸 것입니다. (199-190, 1990.02.16)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는 말이 있잖아요? 하나님을 위해서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워 사무친 경지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땅이라면 하루에 천 번도 왔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땅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선생님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괜히 그렇게 정이 가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동삼(冬三)에 솜바지저고리를 전부 다 눈물로 적실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칼을 꽂아 놓고 담판기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60-208, 197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