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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탐구심 강했던 어린 시절

고향은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교육의 재료를 80퍼센트 이상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은 고향과 인연을 끊어 버릴 수 없습니다. (187-290, 1989.02.12)

선생님이 태어난 고향 땅, 옛날에 내가 자라던 그 뜰, 내가 놀던 그 동네에서 그것들을 실제 교재로 삼아 교육하고 싶습니다. 그 산하에서 뛰놀던 그때 그 시절을, 여러분이 죽기 전에 직접 선생님을 통해서 설명을 듣게 될 때에 선생님의 역사를 확실히 아는 여러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0-172, 1971.11.06)

북한 정주 땅, 선생님이 태어나 자란 그곳에 가서 선생님이 어릴 때 마시던 물을 마셔 보고, 선생님이 뛰놀던 동산에 올라가 거닐어 보고, 여러분의 아들딸이 그 자리에서 거룩한 찬양의 소리를 높여 하나님 앞에 축배를 드리게 될 때, 선생님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지 못했고 선생님을 받들지 못했던 것을 해원성사하고 탕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태어난 고향 땅, 그 동네에서 그것들을 실제 교재로 삼아 교육하고 싶습니다. 그 산하에서 그때 그 시절을 여러분이 생전에 직접 선생님을 통해서 설명을 듣게 될 때 선생님의 역사를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차피 이 스승의 고향 산천을 찾아가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고향 산하의 모든 동식물, 자연계는 내적인 인간, 풍요함을 키우는 데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의 산천을 그리워하고 자연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릴 적부터 산을 보고서는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일까? 저 산에 뭐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였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이십 리 안팎에 있는 것을 훤히 알았습니다.
(43-173, 1971.04.29)

어린 시절 활동 범위가 크고 넓었습니다. 정주 일대에 거의 안 가 본 데가 없습니다. 높은 산꼭대기에는 모두 다녔습니다. 그 너머까지도 가 봐야 했어요. 그래야 아침 햇빛에 보이는 저 속에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 머리에 들어옵니다. 그런 모든 곳이 선생님이 신앙적인 정서를 길렀던 고향 산천입니다. 고향 물이요, 고향 나무요, 고향 땅이요, 고향 봄바람이요, 지난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 산에 다니면서 꽃이라는 꽃은 직접 만져 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모르는 꽃이 없어요. 자연을 너무 좋아하여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해가 지도록 어울려 돌아다니다가 피곤해서 자다 보니 밤 12시 되어 어머니 아버지가 와서 데리고 갈 때가 많았어요. 자연을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221-71, 1991.10.23)

우리 집에 가면 큰 밤나무가 있어요. 한 2백 년 된 밤나무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내가 원숭이 띠라서 그런지 나무에 잘 올라 다녔습니다. 그렇게 다니면서 조그만 나무 지팡이를 하나 만들어 그걸로 톡톡 밤송이를 따면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141-33, 1986.02.16)

산에 보이는 모든 것, 그 휘하에 날아다니는 모든 새는 다 내가 감정하고서야 날아다니게 합니다. 처음 보는 예쁜 철새가 오게 되면, 요놈의 새가 수놈은 어떻게 생겼고, 암놈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그걸 알 수 있는 책자가 있어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철새를 찾아가 연구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을 밥을 안 먹고 기다립니다. (162-213, 1987.04.12)

한번은 까치가 알을 낳는데 매일같이 그것이 궁금한 겁니다. 그것을 확실히 알기까지 밤잠을 못 잡니다. 저녁에 올라가 보고 또 새벽부터 까치가 나오기 전에 쓱 올라가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오르내리니까 까치와 친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죽겠다고 깍깍거리며 야단을 치더니 매일같이 올라와도 지장이 없으니까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새끼에게 무엇을 잡아 먹이고 무엇을 하는가를 전부 관찰했습니다. (51-264, 1971.11.28)

선생님은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곤충을 참 많이 잡아 보았습니다. 안 잡아 본 곤충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 안 잡아 온 동물, 짐승이 없습니다. 호랑이는 잡아 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살쾡이로부터 너구리, 토끼, 다 잡아 보았습니다. 흥미진진합니다. 그것들이 혼자 사는 줄 알았는데 다 짝이 있었습니다. 전부 쌍쌍입니다. (140-296, 1986.02.14)

눈이 오면 몇십 리 되는 동산을 밤에 지팡이 끌고 다니면서 족제비 사냥을 하고 낮에는 토끼 사냥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동네 개라도 짖게 해서 따라오게 한 뒤 한 고개를 넘어 “야 저 뒤에 가서 몽둥이로 후려갈겨라” 해서 개몰이를 했습니다. (202-296, 1990.05.25)

바다를 배우기 위해 방학 같은 때에 매일같이 바다로 나갑니다. 구정물 냄새 나는 못에서 감탕밭이나 게 구멍 등 별의별 곳을 다 뒤진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낚시질하는 거지요. 뱀장어 같은 것을 잡는 데는 선생님이 챔피언입니다. (144-294, 1986.04.26)

손님이 오든지 해서 뱀장어 찜이 먹고 싶다 하면 30분, 한 시간이면 됩니다. 선생님이 뛰기도 잘 뛰거든요. 시오리 길을 달려 어느 못에 가서 한 15분이면 뱀장어 댓 마리씩 잡아옵니다. (214-124, 1991.02.01)

우리가 양봉도 많이 했지만 아카시아 꿀은 참 맛있습니다. 이 아카시아 꽃에 벌이 앉아서 머리를 처박고 먹을 때는 앞뒷발을 버티고 꽁무니는 아래에다 받치고 빨아댑니다. 그럴 때 핀셋으로 꽁무니를 잡아당기면 꽁무니가 떨어지더라도 안 놓습니다. 얼마나 지독해요? 몸뚱이가 떨어지도록 당기는 녀석도 지독하지만 그 맛을 알고 못 놓는 게 더 지독하다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 ‘야! 이거 나도 이렇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86-303, 1989.02.06)

무엇을 모르고는 못 살아요. 동네에서 할아버지가 죽었으면 무슨 병으로 죽었느냐고 물어봅니다. 왜 죽었는지 몰라서 궁금하면 반드시 장사 지내고 있는 데 찾아가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돌아가셨느냐고…. 그러니 동네 일을 훤하게 아는 것입니다. (164-312, 1987.05.17)

만사에 흥미진진해했습니다. 어느 동네에 가서 똥 푸는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남들은 다 냄새가 나서 코를 막는데, ‘할아버지 코는 어떻게 생겼기에 냄새를 못 맡을까? 할아버지 코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게 궁금합니다. 그래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50-297, 1971.11.08)

어머니가 사과나 참외를 주더라도 어머니에게 “이 참외 어디서 났습니까?” 하고 여쭈어 봅니다. 그러면 어머님은 “어디서 나긴 어디서 나? 형님이 사왔지” 하십니다. 그러면 “어느 밭에서 사왔어요? 밭에서 살 때 할머니가 땄어요, 아저씨가 땄어요, 아니면 형님 뻘 되는 사람이 땄어요, 누나 뻘 되는 사람이 땄어요?” 하고 또 여쭤 보는 겁니다. 그거 아주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33-279, 1970.08.21)

학창시절 나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해 도망간 선생님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물리학에 나오는 공식이나 정의를 누가 내렸소? 나 못 믿겠소. 내가 알게끔 설명해 주시오” 하고 질문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203-329, 1990.06.28)

내가 전부 다 검증하기 전에는 믿지를 않았어요. 학교에서 수학 선생님이 공식을 가르쳐 주면 그것을 중심삼고 학교 선생을 몰아칩니다. 누가 이렇게 공식을 만들었느냐는 거예요. 내가 만들기 전에 만들어서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 내가 만들어야 할 텐데…. 그러니 들추고 헤치고, 파고 또 파는 놀음을 했습니다. 적당히 하지 않습니다. (162-277, 1987.04.17)

시험 전날 공부한 것이 틀림없이 적중합니다. 선생님이 강의한 것 가운데 시험에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것, 두 번째로 높은 것, 세 번째로 높은 것을 쭉 빼서 보고 그 외에는 안 봅니다. 그것만 동그라미 칩니다. ‘내가 테스트하면 이렇게 할 것이다’ 하고 심리적으로 분석해서 준비하면 틀림없이 70퍼센트 이상 맞는다는 것입니다. 1, 2, 3, 4, 5, 6… 하는 선생님의 암호가 있어요. 보통사람은 봐도 모릅니다. 시험 때는 한 장에 숫자만 ‘딱 딱 딱’ 해서 적어 놓으면 자면서 쓰더라도 70점 이상 받습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머리에 남지 않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것이 보통이지요. (229-116, 1992.04.11)

씨름을 하더라도 안 져요. 축구 같은 것도 잘 합니다. 이런 체격을 하고 있어도 빠릅니다. 젊었을 때에는 철봉도 하고 말입니다, 여러 가지 운동으로 단련을 해 두었습니다. 지금도 남들이 모르는 운동을 합니다. 운동을 선생님이 개발했어요. (192-151, 1989.07.03)

6개월 동안 골방에 들어가서 ‘기역 니은’부터 발음 연습을 다시 했습니다. 발음을 전부 파악할 때까지 훈련을 했어요. 그래서 말이 빨라졌습니다. 말투도 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25-336, 1969.10.12)

선생님이 옛날 청소년 시절에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내가 하숙하던 집주인이 당시 차를 운전하는 등 잘사는 강원도 어느 집안 맏아들입니다. 지금부터 30년 전 운전사라면 아주 난 사람입니다. 그 양반은 팔도강산 안 돌아다닌 데가 없었어요. 민요라면 모르는 게 없었고, 레코드판 수백 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 아줌마를 내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작전을 했습니다. 매일같이 저녁에는 밥상을 들어다 주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무슨 심부름을 시키면 해주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작전계획대로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며칠 이내에 홀딱 반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가 사위를 삼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삶아 놓은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그리하여 그 레코드판을 우리에게 다 갖다 줍니다. 몇 장씩 갖다 놓고…. 주인이 와서 봐도 탄로가 안 납니다. 판을 다 듣고 나서는 매번 바꿔 몇 장씩 가져다가 전부 듣는 것입니다. “나는 며칠 이내에 다 듣는다”고 작정하고 24시간 내내 틀어 놓고 지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효자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드리면서 노래합니다. 청춘 남녀들이 서로 좋아하는 심정을 노래하면 그 경지에 들어갑니다. 복귀를 책임지고 선두에 서서 가는 사람으로서 소원성취를 어떻게든 해내야 될 것 아닙니까? 이것이 전부 다 도(道)입니다. 도의 경지라는 거예요. 옆에 있는 사람은 압니다. 이렇게 해서 밤을 새우는 것입니다. 잘 때는 아예 조그맣게 틀어 놓고 이불을 쓰고 듣습니다. 내가 이렇게 극성맞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든지 하면 누구한테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46-297, 1971.08.17)

고등학교 때는 씨름 챔피언이었습니다. 뜀뛰기라든가, 무슨 운동이든 못 하는 게 없어요. 복싱까지 했으니까요. 못된 사람이 ‘떡’ 하면, ‘훅’ 굴리면 굴러갑니다. 그런 훈련까지 했습니다. 그건 왜 그랬느냐? 싸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혁명을 해야 되겠다, 세상을 한 번 바로잡고 천리(天理)에 부합되는 평화의 세계를 만들어 보겠다는 소신을 가진 이상 거기에는 몸이 건강하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85-18, 197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