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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희생과 봉사 그리고 공적인 것을 위한 교육

뜻을 위하다가 상처를 입은 것은 후일까지 자신에게 교육이 되고 후손에게도 훌륭한 교육이 됩니다. (27-297, 1969.12.22)

여러분이 초등학교 선생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어린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항상 그들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자기들 마음대로만 하려고 하는 어린이를 훈련 또는 교육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생으로서, 그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려워도 참고, 관찰하고, 그리고 그를 도우려고 해야 됩니다.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선생님이 형님, 누나, 부모보다도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을 느낀다면 그 선생은 참으로 자격 있는 사람이요, 훌륭한 선생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어린이의 이러한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은 것이 우리가 생명들을 교육하려고 하는 데에도, 우리가 하고 있는 영원 불멸의 교육 훈련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그 생명들을 데려와서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얼마나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할까요? 그 생명들에 대한 우리의 봉사,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이 역사적인 과업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탁월한 종교지도자들은 선생님이 말씀하고 있는 이러한 봉사와 희생의 방법을 제외하고는 이 세계나 생명들을 지도할 다른 길이 없습니다.
(52-272, 1972.01.09)

하나님이 타락한 우리 인간을 교육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어떤 길일 것이냐? 인간이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는 입장에 못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가까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무엇이냐 생각할 때, 마음으로 찾아오는 길—당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시 구원하고, 인간을 다시 사랑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면 그 하나님이 가르치는 도리가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남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그런 도리일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철칙이요, 멋진 교육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희생한다는 것은 멋진 교육입니다.
성경에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 가운데 어디를 찾아보나 그와 같은 것을 표준하고 가르쳐 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신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69-44, 1973.09.09)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미국을 위해서 희생하라!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 하는 교육을 해왔습니다. 내가 미국에 와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재산 전부 털어놓고 이 놀음을 합니다. 미국 때문에 한국 사람을 고생시키고, 일본 사람을 고생시키고, 구라파 사람까지 전부 고생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고생 안 할래요? 그건 망해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을 더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구라파 사람보다도, 일본 사람보다도, 한국 사람보다도 더 고생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랑 받고 전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106-74, 1979.12.09)

몸뚱이가 하자는 것의 180도 반대의 길을 가라 하는 것이 종교의 주류 교육입니다. 그래서 “봉사해라. 희생해라. 교만하지 말라” 합니다. 아래로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머리 들지 말고 아래로 내려가라는 거예요. 그러니 사탄은 지옥밖에 갈 데가 없습니다. (251-117, 1993.10.17)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합니까? 영생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려면 공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내 아들딸로만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계인을 위한 제물적인 아들딸로서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을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는 이 지구성의 인류를 대표한 어머니의 입장에서 인류를 대표한 어린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마음으로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에게만 예쁘다고 젖을 먹일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내 자식 같다는 심정으로 대하는 어머니가 되어 보십시오.
그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기들은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장에는 안 되더라도 1대, 2대를 거쳐 나가는 동안 반드시 그 후손 가운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물이 탄생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31-168, 1970.05.24)

사적인 것은 악에 속하는 것이요, 공적인 것은 선에 속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적인 역사는 사탄의 역사요, 망하는 역사입니다. 공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요, 선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교육을 할 때도 그런 관념으로 해야 합니다. 눈으로 볼 때도 사적으로 보느냐, 공적으로 보느냐? 코로 냄새를 맡게 될 때에도 사적으로 맡느냐, 공적으로 맡느냐? 귀로 듣게 될 때에도 사적으로 듣느냐, 공적으로 듣느냐? 일할 때에도 사적으로 하느냐, 공적으로 하느냐? 걸을 때에도 사적으로 걷느냐, 공적으로 걷느냐? 이 기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36-68, 1970.11.15)

여러분이 받고 있는 교육 중에 참된 교육이 뭐냐? 진짜 교육, 참된 교육은 남을 위해서 죽으라고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그 이상 최고의 교육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망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흥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흥하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참되면 흥합니다. 왜 흥하느냐? 전부가 그 사람 편이 되어 주니까, 전부를 위해 주겠다고 하니까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것은 왜 망하느냐? 전부가 뜯어 가려고 하고 깎아 내리려고 하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로 해서 설치게 되면 오래 못 갑니다. 반면에 남을 위주로 해서 나가게 될 때는 오래가게 되어 있습니다. 선악의 기원은 여기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
(37-133, 1970.12.23)

여러분,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아들을 주면 나는 이런 아들을 만들고 내가 뜻을 위해 다하지 못한 것을 소원성취하기 위해 대를 이어 아버지 위업을 성사시키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그렇게 교육하고 그렇게 길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의 땀과 눈물과 피의 희생에 비례하는 축복이 여러분의 아들딸에게 있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기뻐하는 생활보다도 공적인 일을 위해서 슬퍼하는 생활을, 자기를 위해서 좋은 생활을 하는 것보다도 공적인 일을 위해서 고통을 받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아들딸은 몇십 배, 몇백 배 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90-116, 1976.12.21)

지금까지 이 레버런 문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가르치기를 “너는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되라” 했습니다. 이게 선언입니다. “너는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되라” 이게 통일교회 교육의 제1조입니다.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되라! 그 다음에는 뭐냐? “교회의 신자 중 어느 누구보다, 어떤 종교의 신자보다 제일 높은 자리에 서라!”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113-111, 1981.05.01)

가문에서 훌륭한 어버이 교육의 교훈은 뭐냐? “너는 이 동네를 위하여 희생하고 동네를 위하여 본되게 살아야 돼,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래야 합니다. 그렇게 훈시하는 부모는 선한 부모입니다.
교육이 있기 전에 사랑이 있습니다. 처음 창조물이 존재하기 전에 그 원칙적 기반이 사랑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본질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물질도 그렇고, 물질을 규합해 인체가 된 사람도 물질의 그릇 속에 담겨 있는 사랑,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에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본심이 그렇다는 겁니다.
(147-297, 1986.10.01)

교육이념을 어떻게 세우느냐? 미국만을 위하는 교육은 뒤떨어집니다. 국경을 넘어 세계의 모든 사람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교육을 해야 됩니다. “세계는 하나다” 하고, “공부하는 것도 전부 세계를 위해서 한다” 해야 됩니다. 어차피 세계는 하나 안 되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가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교육하는 내용을 두고 볼 때 종교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상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세계적입니다.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상적인 내용과 종교적인 내용을 겸한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국가라 하더라도 세계를 위한 교육이념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세계 인류 앞에 설 수 없게 됩니다.
(207-65, 199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