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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說敎

1. 아버님의 설교

선생님은 설교를 위하여 준비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산 체험으로 사실을 말할 때는 모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날 뜻을 위해 고생한 것에 대하여 내가 왜 그랬던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주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서 고생했으면 민족이 남아 있는 한 그 고생의 기준도 살아 남습니다. (16-346, 1966.10.14)

선생님은 설교하기 전에 설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보다 식구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아버지! 이들을 이끌어 올려야 되겠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 하고 정성을 모은 다음 마음의 명령대로 설교한다. 심정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 심정의 골짜기 길은 고통스럽고 처참한 길이다. 스승을 요구하되 지식의 스승을 요구하지 말고 심정의 스승을 요구해야 한다. 심정의 골짜기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눈물이요, '자기'는 없어진다. (9-81, 1960.04.12)

선생님은 단에 나설 때는 특별히 기도를 하는 거예요. 어떤 때는 단에 나설 때까지 설교 제목도 없을 때가 있어요. 준비도 안 하고 성경을 읽고 나서 기도 가운데 제목을 잡을 때가 많다구요. 그건 뭘 보고? 사람을 보고. 척 벌써 사람을 보면 '아, 저건 무슨 타입이구나' 하고…. 자기하고 비교하는 거예요. '아, 내가 저럴 때는 어떤 사정이었다' 하고 마음이…. 자기를 두고 설교하는 것 같거든요. 자기 경로를 통해 가지고 하늘이 그때 동정한 은사를 중심삼고…. 그 사람이 감동을 받고 있으면 청중이 전부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청중과 나와는, 식구와 나와는 동체(同體)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못난 사람이 말을 해도 배울 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특성을 가진 진리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말을 흘러가는 말로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듣게 되면 거기에 내가 설교 재료로 쓸 수 있는 것이 풍부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해야 됩니다.
(160-197, 1969.05.12)

내가 한국에서 설교할 때는 이 등에 전부 다 땀이 뱄어요. 와이셔츠나 내복은 완전히 젖고, 이 머리에서는 땀방울이 다 떨어졌다구요. 요즈음 여기에서는 통역을 쓰니까 그렇지요. 통역을 쓰니까 그렇지.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그렇기 때문에 정성껏 들어 주고, 정성껏 말해 주라 이겁니다. 여러분들 그래요? 한사람의 할머니 말을 열두 시간에서 스무 시간까지 들어 주라는 거예요. 밤을 새우면서 들어 주는 거예요. 다 들어 주고 했으니 이젠 내 말을 들어라 이거예요. (96-308, 1978.02.13)

선생님은 옛날부터 자면서도 설교했다구요. 자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주일학교에 다닐 때에도 말이예요, 자면서 설교하는 거예요. 대웅변으로…. 그러니까 혼자서 하는 그 설교 소리에 내가 깨는 거예요. 그때 벌써 많은 사람들을 하늘을 대표해서 지도할 것임을 내가 알았다구요. 내가 교회를 지나가게 되면 점심을 먹더라도 괜히 들어가 먹고 싶거든요. 제일 단상에 올라가서 먹고 싶다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벌써 사다리를 놓고 올라갈 줄 안다 이거예요. 마음이 벌써 다 안다는 것입니다. (120-325, 1982.10.20)

전부 다 복귀하는 거예요. 노동자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구요. 노동자에서부터 복귀해 올라가는 거예요. 최고의 영광의 자리에서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별수없다구요. 최하에 들어가서 다시 추어 올라와야 돼요. 옷을 입을 때, 이렇게 정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정장을 할 수 가 없었어요. 노동자가 정장을 하나요? 설교할 때 양복을 입고서 설교한게 아마 1970년이 넘어서였을 것입니다. 그때는 양복도 안 입었다구요. 노동복을 입고 설교한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식구들은 그런 거 처음 알지 모릅니다. 선생님이 식탁에 앉아 가지고 밥먹기 시작한 것이 아니예요. 주먹밥에서부터…. 복귀예요. 탕감복귀입니다. 무슨 스푼이니 포크니 그런 거 필요 없다구요. 그런 것 다 탕감복귀해야 돼요. (161-76, 1987.01.02)

손탁박사 질문 : 문목사님은 대중에게 하는 말과 추종자들에게 사적(私的)으로 가르치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즉 사석(私席)에서는 제자들에게 좀더 다르고 강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요?
나는 결코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역사상의 모든 예언자들은 대담하게 계시의 내용을 밝혔으며, 나도 그렇게 합니다. 사실 양키 스타디움 집회나 워싱턴 모뉴먼트 집회 뿐 아니라 신도들에게 하는 대중 설교에서 (당신처럼 누구라도 들으러올 수 있음) 나는 자주 허심탄회하게 말합니다. 때로는 강경한 어조로 설교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설교가 기억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외교관들처럼 원만하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나는 또한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가들처럼 얘기하지도 않습니다. 역사가 나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현재의 인기를 쫓아다니지 않습니다. 내게는 오늘날 미국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느냐 못 얻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지시한대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의 필요성에 의해서나 또한 듣는 이의 수준에 맞춰 말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나는 어떤 일들을 신도들에게나 심지어 지도자들에게까지도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뭔가 비밀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통일원리를 이해하는 정도엔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개종자들에게는 영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딱딱한 음식 대신에 우유를 먹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교회 운동은 비밀로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과거의 기록이 그러한 점을 훌륭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난 몇년간 무엇을 했으며, 통일교회가 한국, 미국, 일본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우리가 해온 일은 국가나 인류, 즉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첫번째 사명은 진리를 전파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심정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정부를 전복시킨다거나 은행을 털려고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91-126, 1977.02.03)

2. 설교준비와 심령

1) 설교준비는 책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참 불쌍합니다. 고독한 사람입니다. 인간하고 의논해 가지고 생명의 복음을 받겠다고 책을 보면 그것은 참고는 되지만, 인공적인 잎은 되지만 원칙적인 잎은 못 됩니다. 책을 보는 것도 그 사람이 느낀 사상적인 감촉, 새로운 감촉을 중심삼아 가지고 반응적인 느낌을 얻는데 조금도 도움이 못 됩니다.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지도자는 고독한 사람이라구요. 그걸 여러분들은 모르지요? 그래야 된다구요. 그래야 돼요. 선생님도 혼자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기 있을 때에 청평을 멀다 않고 매일 다니는 것도 그것 때문이라구요. 추울 때, 혹은 햇볕이 내리쬐는 때, 혹은 바람 불 때가 전부 다르다구요. 새로운 맛, 마음 가운데 느껴지는 새로운 은혜의 분위기, 하나님을 통해 오는 새로운 그 감촉이 필요하기 때문에…. 밥을 못 먹었으면 못 먹었지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거라구요. 사람들을 대하면서 받은 그 느낌을 이겨 나가야…. 사람 대하는 것을 시덥잖게 해서는 안 된다구요. 의무적인 과정에서는 부활의 역사가 안 일어납니다. 재미가 나야 돼요. 밤 가는 것도 모르고 밤을 새고, 천국이 이곳밖에 없다 하는 곳에서만 천국 갈 수 있는 가치가 발견됩니다. 그렇잖아요? 나무도 완전히 밀착돼야 접붙여지지 않느냐 말이예요. 그렇지요?
(75-173, 1975.01.02)

영적 지도자는 그런 체휼적 무엇이 없어 가지고는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책을 봐 가지고 설교 준비하고, 책을 봐 가지고 하늘이 …. 그 책가운데 하나님이 있나요? 그렇지 않다구요. 하나님은 신령한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신령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되겠어요.
체휼적인 신앙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식구라면 대개 체휼하게 됩니다. 반드시 체험을 한다는 거예요. 어떤 일까지 벌어지느냐 하면 말이예요, 여러분의 현실적 생활권 내에 다 벌어지는 거예요. 진정 뜻을 위해서 있는 정성을 다 들이면 하늘이 같이해 주는 거예요?
(76-146, 1975.02.02)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직접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설교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훈련도 필요합니다. 내가 유명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루에 열번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장소에 따라 전부 다 내용이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준비해 가지고 하나요? 그럴 때의 마음은 완전히 제물로서의 자각을 하는 거예요, 제물의 자각. '나'라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 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소유관념도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바쳐지는 자리인 것입니다. (60-341, 1972.08.18)

'설교는 주일날만 하는 것이다' 해 가지고는, 주일날만 되면 '성경은 어디를 볼까? 찬송가 나오너라, 성가 나오너라' (웃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말라구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중심삼고, 산 재료를 중심삼고, 성경에서 그와 같은 역사를 빼 가지고 그 사람의 일과 성경의 내용을 대조해 가면서 재미있게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듣는 사람이 자기 일을 말하니까 홀딱 반하는 거라구요. 좋아하는 거예요. 이렇게 해 나가는 겁니다. 알겠어요? 책 보고 하려고 생각지 마세요. 사람에게서 책도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책의 원본이란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46-288, 1971.08.17)

2) 영적인 실력을 구비해야 한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구요. 교회에서 제일 어려운 것을 내가 한다 이거예요. 언제나 그런 배포를 갖고, 언제나 주위를 돌아보지 말고 옆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거라구요.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게 되면 여러분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나, 무슨 말인지? 「예」
여러분, 제일 어려운 것이 영적 책임자의 입장이라구요. 그러니 기도해야 되고, 식구들과 밤을 새워 가면서 의논해야 되고…. 진리를 토론 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 쭉 계속되는 그곳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동네방네의 반대를 받을지언정….
지금도 선생님은 어디에 가든지 내가 옛날 1960년대와 같이 그런 기분으로 돌아가면 그런 바람이 분다구요. 내가 딱 가서 하게 되면 그 환경이 대번에 휙 달라진다구요. 그런 뭐가 있다구요. 여러분도 그런 기준을 갖기 위해서 기도를 하라는 거예요. 영적인 실력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니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 시간을 많이 못 갖게 되면 내 심정의 안테나는 언제나 그것에 사무쳐야 된다구요, 안테나는. 24시간 언제나 그곳을 향해 가지고, 언제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기준을 언제나 가지고 생활하게 되면, 기도 시간 많이 안 가져도 된다는 거예요. 보는 것도 그것 중심삼고 보고, 느끼는 것도 그것 중심삼고 느끼려고 하고, 말하는 것도 그것 중심삼고 말하려고 하고…. 그러면 설교 준비 안 해도 설교 제목은 얼마든지 있고, 설교 내용은 얼마든지 있는 거라구요. 너희들은 안 그렇지? 뚝 끊어 놨다가, '아, 그 꼭지가 어디 갔어?' 언제나 꼭지를 찾으러 다닌다구요. 아, 거 어디 갔나….
전기줄과 마찬가지인데 말이예요. 그 꼭지를 잃어버려 가지고 아이쿠! 하나님 어디로 갔나. 이제 알아보자 해 가지고, 설교하게 될 때 '아이고, 하나님!' 그래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언제든지 나에게는 줄의 끄트머리가 있어야 돼요. 척 대하면 푸찌직! 플러스 마이너스를 대면 여기에 아주 스파크가 일어날 수 있게끔….
선생님은 벌써 어느 집에 썩 들어가면, 이 집이 정성들인 집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구요, 얘기는 안 하지만. 벌써 다 안다구요. 가만히 있으면 세포가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걸 안다구요. 알겠어요? 쓱 들어가게 되면 정성들인 곳이다 하는 것을 대번에 안다구요. 교회에 가 보면 안다구요. 그런 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니 뭣이니 따라 나오면서 지금까지 죽지 않고, 망하지 않고 남아 나오지, 그게 없어 가지고 남아날 것 같아요? 너희들 같으면 다 망했을 거라구. 얘기를 안 한다구요, 선생님이. 어머니한테도 전혀 어떤 얘기 안 한다구요. 어떤 때는 실수를 해 가지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 터인데' 하면 '당신 어떻게 아우', 글쎄 그거 두고보라구', '야…' 가만 보면 뭐 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가끔 그런 게 탄로가 날 때가 있다구요. 좀처럼 얘기 안 한다구요. 전부 다 그것을 이치에 맞을 수 있는 것으로 말하지 않으면 사된 사람이 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무당, 박수 같은 사람이다' 소문나면 되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래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된다구요. 차라리 그거보다는 모르는 것같이 해 가지고 진리로써…. 다 그 사람은 어떤지를 모른다구요. 얘기는 하지만 왜 그런지 모른다구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안다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안 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르침 받아야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은 기도를 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런 것은 선생님을 따라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남이 받았다는 얘기는 참 잘 들어준다구요. '그랬던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같이 해 가지고 말이예요. 그러니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선생으로 알지요. 그건 그래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그 한 사람을 개척하기 위해서 그러한 현상까지 일으키기 위해서는 참 어려운 것이라구요. 영계에서부터 그 사람까지 다리를 놓으려면 다리가 얼마나 폭발됐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잘리고 잘리고 역사시대에 몇 대를 거쳐 가지고 그런 다리를 놓아 올 때까지 얼마나 수고 했느냐 이거예요. 내가 그걸 아니까, 전문가니까 그걸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밤을 새워 가면서 들어주는 거라구요.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끼리끼리 다 알아 줘야지요. 안 그래요?
여러분도 그러한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려면 기도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전도 나갔다가 어스름 길을 쓱 돌아 들어올 때, 하염없는 눈물도 흘리고 돌아올 때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부족하였더냐, 오늘…. 하나님 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으러 나갔던 내 발걸음이 공수로 돌아오게 될 때는, 내 정성이 부족하였다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거예요. 나를 대신 내세워서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아들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냐. 논두렁에 서 가지고도 대성통곡 할 줄도 알고, 나무를 붙안고 뒤넘이치면서 자기의 위치와 입장도 잊어버려 가지고 기도할 줄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시간이 많아야 된다구요. 지도자라면 못해도 최하 사흘에 한번씩은 그러한 느낌을 가져야 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70-169, 1974.02.09)

밤에 잘 때는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아버지여! 내일 갈 길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일어나자 마자 내 생각하는 방향을 정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척 일어나면 '어디로 가야 되겠다' 하는 감이 들어온다구요. 아니나 다를까 가 보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적 심정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생각이 자꾸 맞는다구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맞아요. 생각지도 않은 가운데서, 동기가 내가 아닌 데서 생각이 떠오를 때는 반드시 두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보면 계시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한 면을 여러분이 발전시켜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60-340, 1972.08.18)

3) 심령적 생활이 필요

맨 처음에 들어와서 좋아하던 그 마음, 맨 처음에 들어올 때 결심하던 그 마음, 그것이 언제나 더 강해지고 더 빛나야 된다는 거예요. 자, 이 말씀을 가졌으면 '세계를 틀림없이 하나 만든다!' 하는 자신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내가 말하면 전부 다 뚫고 나가고, 그렇게 되는 환경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는 사람이…. 자, 그런 환경에 있으면 여기에 오는 사람마다 머리를 들지 못한다구요. 암만 교만한 사람이 와도 말이예요, 뭣인지 모르게 영적인 압력이 눌러대는 거예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이 교회에 뭐 있나?' 이렇게 왔으면 이상하게 몸이 꼼짝못하게 되고, 겸손한 마음이 있으면 이곳이 우리 살 집같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기도를 해야 된다구요, 기도. 혼자서 조용한 곳에 가서 달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모든 그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심령적 생활이, 기도 생활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선생님도. 내가 바다에 나가는 것도, 배리타운을 자주 나가는 것도 그 심정을 체휼하기 위해서 전부 다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밥먹는 것보다 더 귀하다구요. 혼자 자다가도 일어나서 앉아 밤을 새우는 일이 있고….
자, 그래서 뜻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통곡을 할 수 있는 마음, 사랑하는 애인을 그리워하는 거와 같은 마음과 애인이 왔다가 영원히 이별을 할 때와 그 서글픈 마음이 언제나 남아 있어야 된다구요. 그런 것을 느끼기 때문에 세상의 사랑하는 사람도 다 버리고 그렇게 갈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지금 선생님의 말을 듣는 데는 그 말만 듣지 심정에는 울려지지 않지 않느냐 이거예요. 왜, 왜 그래요? 체험이 없기 때문에. 선생님은 벌써 어느 신령한 목사가 단에서 설교를 하게 되면 '아, 저거 하늘이 주는 말이구나' 하는 걸 대번에 안다구요.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여러분은.
(94-151, 1977.09.01)

나 자신이 생활의 맨 밑창까지 파고 들어가서 현실의 모든 것들을 관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서서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어느 한 때 지녀 보았느냐? 우리가 하루 24시간 동안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얼마나 뜻을 중심삼고 일해 나왔으며, 나 자신이 뜻을 대하면서 얼마나 그 가치를 느끼면서 추진하여 나왔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이 과연 몇 시간이나 될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 모든 이목구비 등 감각기관을 통해 가지고 느껴지는 감각, 즉 직관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믿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개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은 잘 못 느끼지만, 은혜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늘 보는 만물이 옛날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보아도 새롭고, 저녁에 보아도 새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서서히 물결쳐 올 때는 신비스러움을 입체적으로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무한한 가치를 느끼면서 자기의 고귀성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30-134, 1970.03.21)

4) 역사적 산 재료가 많아야 한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인상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강도와 함께 쇠고랑을 차고 흥남감옥으로 이송되어 갈 때, 산골짜기에 접어들어 개울길을 따라 걷던 그때가 참으로 새롭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굽이굽이 산골짜기의 길을 걸어가던 그때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상적입니다. 그 걸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하던 걸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날마다 가야 할 나의 길은 어디일 것이냐? 형(刑)을 마치고 나가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주 궁금하다는 거예요. 감옥 생활을 어떻게 해 나가느냐? 어렵지만 나는 간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새로운 자아를 각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에게 남아진 것은 그러한 것밖에 없습니다.
한때는 함흥에서 굴을 뚫는 일을 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픈 가운데 일을 하니 곡괭이를 움켜쥔 손이 올라가지 않고 정신마저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다!'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때의 밥! 그 밥을 먹기 위해 곡괭이를 땅에 박고 돌아서는 그 순간의 기분, 선생님에게 그와 같은 산 역사의 재료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생도 그러한 것에 비길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비참했던 사연들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청사에 길이 빛낼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직한 보화를 끌어모을 수 있는 그날까지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수난의 사실을 세계 만민 앞에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다른 내용으로 한 시간을 설교하는 것보다 이 내용으로 10분만 이야기하면 통곡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좋은 설교 내용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걱정하지 말고 30세 전까지는 고생을 하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33세까지 고생하다가 죽음길을 갔어요. 선생님이 말하는 통일교회의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빌려서 가진 복입니다.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것을 깨닫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깨닫는 데서만이 새로운 날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으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여기에 어머님이 같이 앉아 있지만, 선생님이 여러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어머님이 제일 진지하게 말씀을 듣다보니 결국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가를 안다는 거예요. 결론은 자신을 두고 하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을 많이 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신을 많이 교육해야 됩니다.
(30-152, 1970.03.21)

3. 설교의 실제

1) 제목의 선정

대중집회 때의 설교는 자기가 짜 가지고 나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허락하는 그 밑에서 내가 그 의미를 받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설교입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설교단에 나갈 때에 당당한 기세로 나가는 사람은 전부 다 하늘의 지도자가 아니예요. 형장에 나가는 기분과 같이, 제물과 같은 기분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판정에 있어서 판사가 형을 내릴 때 그 순간은 초긴장하는 순간이지요? 그런 체험을 못해 본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단에 서는 것은 그 이상의 자리예요. 단에 선다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옛날에는 법궤 앞이 무서웠지요?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그런 체험을 못해 본 사람은 집에 들어가 살림살이를 해도 자나깨나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분위기에 어떻게 적응하느냐, 생활에 어떻게 적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56-31, 1972.05.10)

설교를 할 때도 여러분이 절대 제목을 정하고 나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원래는 기도해 가지고 기도 가운데 제목을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준비한 제목 가지고는 절대 감동 못 시켜요. 여러분이 언제든지 준비해서는…. 남을 울리려면 내가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눈물을 흘려야 돼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천태만상의 사람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한국의 실정으로부터 쭉 생각해 가지고 오늘 찾아오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겠다…. 그걸 두고 눈물을 흘리고 단에 나서야 청중을 눈물 흘리게 하는 은혜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편지라도 자기가 눈물 흘리고 쓴 편지라야 상대방을 울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주체적인 동기가…. 그렇지 않고 상대방이 그렇게 된다는 건 거짓말이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단에 설 때는 그 단이 심판정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요전보다 더 잘하기를 바랐지만 못할 때는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은혜를 못 주고 설교를 한 시간 하고 왔으면 세 시간 회개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설교를 잘못 해 가지고 은혜 못 주고 그럴 때는 3배 이상 회개해야 돼요. 한 생명을 위해서 생명의 물을 주어야 되고 가꿔 주어야 될 텐데, 여기에 있어서 물을 준 것이 아니라 물을 빼앗고 땅을 뒤집어 놓고 왔다면 그 책임을 져야 돼요.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오늘의 말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은혜를 베풀어야 된다는 거예요.
(160-195, 1969.05.12)

2) 설교시 가져야 할 마음 자세

여러분이 주일날 설교할 때는 심각할 것이라구요. 내가 여러분들 같으면 밤잠을 못 잔다구요.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어요? 그것은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주사를 놓는 것입니다. 강장제 주사를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식구들에게 일주일 동안의 약을 주고 강장제 주사를 놓아야 되는 거예요.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에게 주사할 때 심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그런 입장에서 지도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단에 나설 때는 형장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래요, 선생님 자신도. 내가 많은 사람들을 지도해 봤고, 미국에서 지금 대중에게 소문은 나고 있지만 말이예요. 낯선 사람을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첫번 출발할 때와 마지막 도착할 때가 마찬가지예요. 더 하면 더 하지…. 더 힘들다는 거예요. 강의를 하면 할수록 같은 것을 하면 그저 입에서 술술 나가 가지고 그냥 해 버린다구요. 그러면 안 된다구요. 자주 하면 더 어렵다는 거예요. 더 어렵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청중들이 감동을 받는 거예요. 새것이니까, 언제나 새것이니까.
그래 아침밥을 먹을 때는 새밥 먹지요? 헌밥 같아요, 새밥 같아요?「새밥입니다」 새밥 같지요? 「예」 새맛이 나야 된다구요. 마찬가지로 새것을 줘야 된다구요. 그래 여러분들이 원리강의할 때도 새것을 해야돼요. 영적인 면에서 새로운 무엇, 그 뭐야 보양제라 할까, 그런 것을 공급해 가지고, 거기에 가미시켜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미료를 쳐서 신맛이라도 내고, 그렇지 않으면 짠맛이라도 내고, 그렇지 않으면 쓴맛이라도 내 가지고.
(75-172, 1975.01.02)

여러분들이 주일날 설교를 하는 데 있어서도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을 느끼는 거와 같은 자리에서 설교해야 합니다. 정신을 전부 다 거기에 집중해야 된다구요. 설교 단상에 설 때는 해산부가 산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야 된다구요. 선생님도 그런 체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경지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구요. 그 경지에 가면 준비가 필요없어요. 설교 내용이 문제가 아니고 말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런 심정이 돼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요전에 소련 사람들이 줄타는 것 봤지요, 줄타는 것? 딱 그 기분일 거라구요. 줄타는 여자가 느끼는 기분 말이예요. 그런 경지예요, 단상에 설 때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 자신도 그렇게 느끼는데…. 여러분들이 설교하는 것은 쉽지요? 여러분들이 눈물을 흘리고 준비하면 청중을 울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단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목이 메요, 목이. 그런 심정으로 단에 서라는 거예요. 얘기를 하다가 억제를 못 하면 통곡해야 됩니다. 망신 불구하고 통곡할 수 있는 심정 이 끓어오른다구요. 뜨거운 죽을 먹게 해주려면 뜨거운 죽을 퍼다 줘야 뜨거움을 느끼지요. 마찬가지라구요. 설교 준비라든가 그런 것을 할 때는 자기가 잘못해 가지고는 캄캄하다구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도 전부 다 가려 먹어야 되고, 부부생활도 가려서 해야 됩니다.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설교하는 시간이 어떤 사람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느냐 지옥에 들어가게 하느냐 하는 경계선이 된다구요.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대하여 궁금했는데 한번 가 보자' 하고 워싱턴 교회에 왔는데 '그 설교가 뭐야?' 그렇게 되면 그 한 사람을 완전히 모가지 자르는 거라구요. 공판정에 선 판사가 선고하는 그 시간보다 더 심각한 자리가 설교하는 자리라구요.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이 그런 운명에 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더욱이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온 사람을 맡아 가지고 있다가 그 한 사람을 떨어뜨렸다, 자신에게 배당된 한 사람을 떨어뜨렸다, 그거 생각해 봤어요?
책임자들이 그 책임을 소홀히 해서,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싫다고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이 없게끔 노력해야 됩니다. 책임자가 힘들다구요. 자기 정체를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그 자리는 지극히 무섭고 두려운 자리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설교하면서 그것을 느껴야 됩니다. 준비 못 한 설교를 해가지고 은혜를 못 줄 때는, 안간힘을 다해 가지고 안 되게 될 때는 돌아 들어와서 그저 대성통곡하는 시간들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부끄러운 거예요.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96-160, 1978.01.03)

3) 설교시 주의해야 할 것

정성이란 한꺼번에 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할 때에도 대중을 앞에 놓고 설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을 놓고 설교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면 그것이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장이나 지역장들이 교회를 발전 시키지 못한 이유는 뿌리도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설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흡수될 수 있는 터전이 없으니 전도가 될 게 뭘니까? 지구장 자신도 자기의 발판은 자기가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지시를 했을 때 지구장들이 생명을 걸고 움직이는 본을 보여야 일반 식구들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42-155, 1971.03.04)

여러분들이 언제나 주의해야 할 것은, 선생님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통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여러분이 설교하는 데 있어서 제일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은사를 베풀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이 시간에 무엇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려고 하고, 상대적으로 심정적 기준을 선생님과 일치시키기 위해 내 마음을 끌어올려서 선생님 마음을 어떻게 대신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전국의 여러분이 선생님 앞에 상대적 입장에서 움직이게 되면 천운은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60-342, 1972.08.18)

4) 설교는 항상 새로운 자극을 주어야 한다

일반 교역자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지역이나 지구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 식구들이 '오! 지역장이 원리강의 하는구만, 그 말 끝난 다음에는 이 말이 나오지' 하고 전부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강의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그러한 방법으로 강의를 했지만, 지금은 거기에 가지를 달아 새로운 해설과 내용을 첨가해서 강의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면에서는 심령적 발전을 하는 데 필요한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의 분위기에 맞추어 필요한 강의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3년 동안 목회를 했으면 자극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해주어야 식구들에게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감을 느끼지 못한 식구는 주일날 예배에 참석을 잘 안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강의를 너무나 소홀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서라도 보충해야 돼요. 그래도 안 되면 생명을 걸고서라도 담판을 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길을 가더라도 새로운 것을 찾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간다 하더라도 그냥 가지 말라는 거예요. 교회에 갈 때도 항상 새로운 입장과 환경에 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는 데도 직선 코스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가야 하지만 북쪽으로 가 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또, 그런 실감이 안 나거든 집안 살림살이를 전부 다 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수개월이 되어도 그냥 그대로 놔두지 말라는 겁니다. 거꾸로 뒤바꾸어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생각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0-126, 1970.03.21)

여러분이 설교를 할 때, 그 제목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들이 알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원리강의를 할 때도 옛날식으로 하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 사계절에 따라 변화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라고 해서 기분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데도 유난히 우울한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 햇살도 밝고 상쾌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우울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결되느냐? 갑자기 이것을 변동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없거든 더 우울한 자리로 찾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반대적일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든가, 혹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새로운 자극을 일으켜서 보충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해결 방안을 세워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활을 조절해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뭇 인간들의 심령을 지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역자는 설교에 대한 것을 보충하고, 특히 교인들에게 필요하고 도움될 수 있는 것을 언제든지 공급해 주어야 됩니다.
(30-128, 1970.03.21)

5) 설교는 은혜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은 책을 보면서, 요렇게 책을 보면서 강의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다구요, 여유가. 딱 잡아 넣게 되면, 입만 열리면 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감동을,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자기 감동이 추진력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콱 밀어 줘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강의도 때에 따라서는 추운 방이라도 땀을 흘리면서 하고…. 그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때로는 책상도 두들기고, 전체가…. 어떤 감동을 받아 가지고 눈물이 날락말락 할 때는 확 찔러 가지고 눈물을 쑥 흘리게 해야 된다구요. 요리를 해야 된다구요. 그럴 때는 설교자가 눈물만 흘리게 되면 대번에 전부 다 주룩주룩 흘리게 되는 거예요. 설교하는 사람이 몇몇 사람들과 같이 눈물을 흘리며 설교를 하게 되면 전체가 휙 돌아가는 거예요. 전부 눈물 바다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들 대해서, '얼마나 고충을 받았고, 얼마나 어려움을 느꼈으면 내 말을 듣고 저러는가' 해야 돼요. 그런 걸 보면 참 동정이 간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같은 심정이 되어 가지고 여기서 한 생명이 부활한다는 기쁨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릴 때, 내가 먼저 눈물을 흘리면 쭉-전부 다…. 그게 필요하다구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나면 아무리 강도 새끼라도 반대를 못 한다는 겁니다. 그게 필요하다구요.
화덕이면 화덕이 뜨거워야 저기까지 뜨거워지지요. 또 여름이라면, 여기가 차야 저기가 차지지요. 결국을 책임자가 문제입니다. 책임자는 언제든지 강의하러 나갈 때는 '아버님, 저 강의하러 나갑니다'하고 혼자말로라도…. 이것이 습관화되어야 됩니다. 오늘 내가 말해 가지고 한생명이라도 상처를 입고 떨어지는 사람이 없기를, 오지 않았던 것만 못하게끔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자기가 강의한 것이 잘 되었으면 고맙게 생각하고 전부 다 보고하는 거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해야 돼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강의할 때는, 자기가 다 아는 것이라도 반드시 원리책을 붙들고 기도하는 마음 갖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고 나가라구요.
여러분, 설교라든가 대중 앞에 나설 때는 심각한 자리에 서는 거라구요. 책을 읽게 되면 하나님이 거기에 감동되는 어떤 어구를 주든가, 반드시 그런 것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렇게 훈련을 해야 된다구요. 또, 여러분이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든가 혹은 마음에 불쾌한 일이 있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싹 씻어 버려야 됩니다. 집에서 뭐 여편네가 아프고 뭐 애기가 어떻고, 어떻게 좋지 않은 편지가 왔어도 단에 나설 적만은 완전히 씻어 버려야 된다구요.
(67-25, 1973.05.18)

설교는 우선 자기가 감동을 받아야 한다. 자기의 기도가 자기를 감동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는 동정받는 입장에서 해야 한다. 나를 통해 생명의 인연을 맺어야 할 사람들의 불쌍함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동정을 받는 입장에 서야 한다. (11-276, 1962.01.01)

그 자리는 엄숙한 자리라는 거예요. 제물 앞에 선 제객들은 머리를 숙여야 되는 것이 천법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 제단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 오늘 이 제단 앞에 나는 정열과 모든 힘과 모든 노력을 다 바친다 하게 될 때는, 자기의 일생에 없는 성심성의를 다해 가지고 입을 열게 될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물은 심각한 자리에서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에 없는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쳐진 이몸, 당신의 소용대로 사용하시옵소서' 하며 제물된 심정을 갖고 나서면 하나님은 언제나 같이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장소에 필요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속죄를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에 해당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벌써 아는 거라구요. 입을 열면 아는 거라구요.
그런 생활을 하게 된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여러분이 가는 곳이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여러분들이 정성을 들여 기도해 가지고 한 말, 자신이 감동되는 마음을 가지고 한 그 설교에 감명받은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없으면 안 된다구요. 은혜받은 사람이 세 사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같이하면 그 열 배 이상 몇백 배 더 되는 거예요. 성경에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한다고 나오지요? 그렇게 배가로 벌어져 나가는 거라구요. 그것이 수는 그렇다 하더라도 과학적인 것입니다. 데이터에 기록해서 틀림없는 비중으로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해 나가더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인연이 되어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얼마나 협조해 주느냐는 것이 문제예요. 심각한 자리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60-341, 1972.08.18)

은혜를 받았다면 돌아와 가지고는 반드시 하늘 앞에 찬양해야 된다는 거예요. 생활이 그렇게 습관이 돼야 돼요. 처음에 이렇게 해왔는데 언제 제목을 정해 가지고 해먹느냐 이거예요. 말하는 가운데서 세상만사가 전부 다 설교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자기가 고생한 것이 있으면 내가 어느때 이렇게 했다는 걸 설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는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인생 수련을 많이 해야 돼요. 불쌍한 노동자로부터 거지, 혹은 고급관리, 혹은 권세권 내에 있는 자리까지 한때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런 상황을 중심삼고 그런 때에 공적 입장에서 어느 한때 슬펐던 사실, 그런 걸 놓고 자기가 체험한 얘기가 실감이 나는 거예요.
사실을 얘기해야 청중도 감화를 받는 거예요. 남에게 말을 들은 것은 절대 감명을 못 줘요. 사실을 얘기해야 되는 거예요. 흔히 원리강의를 할 때에도 남의 말을 하지요? 원리가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전부 다 남의 말을 한다구요. 그렇지만 원리가 내 원리가 되어야 돼요. 그러려면 복귀원리를 강의할 때도 아담가정 얘기를 할 때는 자기가 아담이 되어야 되고 해와가 된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강의를 해야 돼요. 노아 할아버지로부터 아브라함, 이삭 등 전부 다 자기가 그 입장이 되어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돼요. 복귀원리를 중심삼고 하늘이 이것을 엮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고, 이 복귀노정을 찾기 위해서 선생님이 얼마나 수고했겠나를 생각해 보라구요. 눈물이 흐르게 되어 있다구요. 눈물 없이는 절대 생명이 몰리지 않아요.
눈물과 땀이 없으면 절대 안 돼요. 그건 철칙이예요. 설교할 때는 반드시 땀을 흘려야 돼요. 뒷골에 땀이 흘러야 된다는 거예요, 암만 정성을 들였다 해도. 이제부터는 설교를 열심히 하라구요. 지금까지는 지역장으로서 설교도 안 하고 건달패들이었지요? 앞으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전부 다 인사조치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160-196, 1969.05.12)

6) 설교 시간

문제는 이제 많은 사람이 몰려오면 누가 요리해야 되겠느냐 하는 겁니다. 내가 요리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자, 이거 원고를 써 가지고 15분 동안 이야기를 하느냐, 원고 없이 이야기를 하느냐? 원고 없이 이야기하면 또 잘 한다구요. 그런데 원고를 가지고 하려면 지장이 참 많다구요. 환경을 봐 가지고 30분에 해먹을 것 같으면 30분에 해먹고 말이예요. 밥이 다 된 위에 약밥을 만들려면 거기에는 꿀물도 풀어 주고, 설탕물도 풀어 주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을 하려면 시간이 가더라도 입 벌리고 '맛있다. 맛있다' 하게 되면 시간을 더 연장해야 된다구요.
공식적인 시간만 딱 했다가 한 구석에 불이 활활 붙었는데 그만두면 안 되거든요. 완전히 휘발유를 뿌려 가지고 불을 붙여 놓고 '후-' 하고 바람까지 불게끔 해 놓고 그만두어야 할 텐데…. 그러려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열 시간도 좋은데…. 열 시간까지 해도 안가고 떠나지 못 하게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그렇게라도 하라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문선생의 일생 동안, 50평생의 한을 풀 수 있다면…. 한 시간에 녹여대는 것보다도 열 시간 동안에 한 시간에 녹여낼 수 있는 열 배를 녹여내는 놀음을 한다면 어떤 것을 원해요? 「열 배」그건 누구나 다 원할 거라구요.
(78-227, 1975.05.25)

7) 설교의 어려움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하기 힘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와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한 3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 3백 여 명의 사람들 앞에 나와서 얘기를 하면 모든 사람이 주목합니다. 갑은 갑대로 을을 을대로 병은 병대로, 혹은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등 자기들 나름대로 전부가 듣고 비판이나 판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은 참 힘들다는거예요.
또, 젊은 사람들만 중심삼고 얘기하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실례가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극적인 얘기를 해야 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차분한 내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조용한 얘기를 해주어야 하니까 박자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노래를 부르더라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또 배운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안 배운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부인들을 중심삼고 얘기를 하더라도 부인들 중에서 어떤 층을 중심삼고 얘기를 할 것이냐가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할 때 '그랬습니까, 저랬습니까'라고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야, 그렇지! 그렇지!'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청중에 대해서 실례가 된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나이 많은 분들에게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얘기한 것이니 좀 과한 게 있더라도 이해해 주셔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겁니다.
기관차가 달릴 때 시시한 것이 앞에 있으면 막 밀고 나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기 앞에 서서 얘기할 때도 무엇을 해결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 있으면 말씀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뭐 이것 보고 저것 보고 하다가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아셔야 합니다. 또 부녀자들은 내가 남자들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졸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39-149, 1971.01.10)

설교할 때에 은혜받는 사람과 은혜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간격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문제다.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은혜받은 사람을 동원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의 터를 닦아 주도록 해야 한다. 즉, 은혜받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

4. 아버님 말씀을 중심삼고 설교하라

여러분들은 내 여명 앞에, 빛나는 아침의 태양 자체는 못 되더라도 태양 빛이 밝은 것을 따라서 올 수 있는 빛을 발했기 때문에 방향성은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자주적인 권한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 낮의 행사를 해야지, 이놈의 자식들, 내가 밤인지 낮인지 알게 뭐야? 낮이 되면 고단하다는 거야. 자, 그래서 과거를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의 과거를 알아야 돼요. 과거를 알려면 선생님의 설교집을 읽으라구요.
밤이나 낮이나, 내가 일할 때에 고단해 가지고 끄떡거렸으면 놀 때에 취해서 노는 그 이상 책을 보면 눈물이 흘러요. 이놈의 자식들, 말로는 뭐 설교하겠다고? 이놈의 자식들, 설교할 무슨 말이 있어? 들어볼 게 뭐 있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네 놈의 자식들 말이 뭐야? 지금까지 자기 감정이 합한 그 말을 누가 들어요? 나는 그거 싫어요. 원리를 통해서 해야 돼요. 200권이 넘는 그 책에 수많은 제목이 있는데 그 제목을 소화해 가지고 눈물과 더불어 거기에 내용과 나는 하나되었다는 입장을 선포해야 돼요. '가인 아벨 기준을 중심삼고, 여기에 스승이 와서, 부모님이 와서 군림하시고 이것을 주도하여 이 집회를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이래야 돼요. 말씀 중심이 어디 있어요? 여러분들이 말씀 중심이예요?
역사를 거쳐온 말씀을 중심삼고, 세워 놓은 그 말씀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이 거기에 상대역이 되어 가지고 마음과 몸이 하나로 화하는 자리에 있어서, 선생님 사상과 여러분들 마음이 하나되는 그 자리에서 가인 아벨이 하나되어 가지고 뭉치게 될 때, 거기에는 하늘 나라의 부모가 오고 영계가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자주적인 기반이 생긴다는 원리적 공식을 알아야 된다 그 말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181-282, 1988.10.03)

원리공부 하느냐? 선생님 말씀집(설교집)을 다 읽어야 한다. 선생님 설교집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 자기 말하면 안 된다. 그걸 모르면 복귀 섭리는 모른다. 60년대까지는 예수님 중심한 섭리였다. (1988.10.21)

통일세계를 향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말이예요, 통일어로 선생님 설교집 낭독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선생님 설교집이 어디 있나? 이게 선생님 설교집인데 74권입니다. 74권까지 나왔다구요.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원어로 읽지 않으면 어떡하겠어요? 원어예요, 오리지날 언어.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이 설교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일생 동안 설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서 문답하게 될 때 '난 보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했소' 그러겠어요? 영어로 아예 번역을 안 시킬 것입니다. 여기에 한자를 집어넣으면 참좋을 거라구요. 이거 안 읽고 가면 큰일납니다. 지도자들이 이걸 안 읽으면 큰일나는 거예요. 후대에 각자 집에 선생님이 들어가 있겠어요, 말씀집이 들어가 있겠어요? 생각해 봐요, 어떤 거예요? 선생님의 말씀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주의인 두익사상을 빨리 체계화시켜야 합니다. 대학가라든가 지성인 세계에서 말할 때는 언제나 레버런 문의 사상이라기보다 가디즘(Godism;하나님주의), 헤드윙(Headwing;두익사상) 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빨리빨리 손을 써 조정해야 돼요. 카프(CARP)는 대학가에서 매일같이 가디즘과 두익사상을 외치라구요. 그래도 교수가 그걸 모르게 되면 위신이 안 서게 돼요. 학생들이 대번에 질문을 하거든요. 몰랐다가는 큰일납니다. 알겠어요?
(173-76, 1988.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