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牧會者와 祈禱
1. 목회자의 기도
1)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
인간이 타락되지 않았으면 구주도 필요없고, 종교와 기도도 필요없습니다. 구주가 필요하고 종교와 기도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은 타락의 선물이란 것을 알아야 됩니다. (1974.03.09)
기도는 왜 해야 된다구요? 종적인 심정권에 대해 내가 횡적으로 90각도의 자리-90각도의 자리에 서야 돼요. 이게 틀리면 안 돼요-에 서가지고 종적인 자극을 받음으로써, 그 충격이 크면 클수록 이 기준에 따라 자기 구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요렇게 되면 이와 같은 구형이 되는 거예요. 백 퍼센트의 주고받는 원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성을 안 들이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왔다갔다하면 안 돼요. 그런 입장에서 딱 기도하는 거예요.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모셨습니까? 내가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 가정적 대표입니까, 사회적 대표입니까, 종족적 대표입니까, 민족적 대표입니까, 국가적 대표입니까?'하는 거예요. 그건 대번에 아는 거예요. 내 눈물이 어디까지 흘러 퍼지느냐 이거예요. 이게 공식이라구요. 타락한 인간이 하늘 부모를 모시는데 있어서 눈물이 없어 가지고는, 회개하지 않고는 안 돼요. 청산짓지 않고는 그 환경이 재창조가 안 돼요. 잃어버렸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나라를 생각할 때 눈물이 쏟아지고, 세계를 생각할 때 통곡이 벌어져요? 문제는 거기에 있다구요. 하늘이 그러고 있는데, 주체가 그러고 있는데 횡적 기준이 그 동위권에 서야지요. 동참권에 서야지요. 상속권에 서야지요. 일체가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예요. (171-19, 1987.12.05)
자신을 갖고 책임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자신이 없다구요. 선생님도 내가 자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구요. 자신에 앞서서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이 찾아가는 그 사람을 좋아해야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척 바라보면 그 심정을 어떻게 갖고 나서느냐 그게 문제였다구요. 그 심정만 통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 없다구요. 안 되는 것이 없다구요. 좋아하는 사람을 좋게 할 수 있고, 슬픈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배고플 때 밥만큼 하나님을 좋아했어요? 그렇게 좋아해야 된다구요. 배고플 때도 밥을 붙들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배고플 때 밥을 주먹에 쥐고도, 아, 사랑하는 식구를 부를 수 있고,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염려할 수 있고, 이래야 된다구요. 그렇게 돼 보라구요. 밥을 굶겠다고 해보라는 거예요. 만약에 그렇게 돼 가지고 밥을 굶게 되면 그 동네가 쑥새통(쑥대밭) 이 되는 거라구요. 꺾여 나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밥 굶는 법이 없다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이 아직까지 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구요. '내가 돈을 벌어서 살아야지' 그래 본 적이 없다구요. 그렇다고 밥이 없나요? 어디 가든지 밥은 기다리고 있다구요. 그렇지요? 영국 가든지, 어디 가든지….
여러분이 그러한 책임자로서 본질적인 이 원리적 궤도를 어떻게 가야 되느냐 하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니 기도를 해야 돼요, 기도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느냐? 또, 식구를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내가 식구와 더불어 얼마나 관계를 맺느냐? 이것이 둥그래지게끔…. 그걸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구요. 기도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루에 밥먹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한 시간 반은 되나요? 한 시간 반, 한 시간 반은 되지요? 「예」 평균 하루에 한 시간 반을 밥을 먹고 살거든. 영적인 그 일은 밥먹는 시간보다도 더 많이 투입해야 된다 이거예요. 더 많이 투입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건 선생님이 지금까지 다년간 신앙생활에서 알게 된 거예요. (70-166, 1974.02.09)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할 길은 어차피 헤쳐 나가야 할 길인 것을 생각할수록 이것은 우리의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975.05.05)
여러분이 하루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적을 알고, 보이는 적을 가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19-146, 1968.01.01)
기도라는 것은 목적의 완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입니다. (9-196, 1960.05.22)
2) 기도의 내용과 순서
기도를 할 때는 먼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하고, 다음에는 통일 교회를 위해서, 그다음에는 대를 이을 후손들을 위해서 해야 됩니다. (21-272, 1968.11.24)
여러분이 기도할 때는 맨 처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편안한 자리에 계신 줄 알아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운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오 주님, 나 천국 보내 주소서' 하고 있습니다. (14-67, 1964.05.03)
오늘날 여러분은 자기들이 아들딸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천성에 있는, 지금까지 수고한 역사적인 선조들을 위해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잘살기를 바라기 전에 이 땅 위에 인류가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춤추기 전에 먼저 탄식권 내에 있는 만민을 바라보고 염려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뻐도 기쁨의 표정을 취하지 못하고 즐거워도 즐거운 행위를 취하지 못했던 예수의 사정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4-124, 1958.03.23)
자기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복받으면 하나님을 버립니다. 복받은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좀 살게 되면 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 드리겠다는 관점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1983.05.01)
신앙자는 보다 큰 것을 위하여 공적인 기도를 해야 한다. (28-267, 1970.02.08)
불쌍한 민족을 붙들고 우는 자는 민족의 복을 받을 것이요, 불쌍한 교단을 붙들고 우는 자는 교단의 복을 받을 것이요, 불쌍한 세계를 붙들고 우는 자는 세계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4-165, 1958.04.06)
여러분이 영적인 체험이 있는 사람은 기도할 때에 자기를 위한 기도는 맨 나중에 하게 됩니다.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기도하게 되면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느냐 하면 먼저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 아니예요? 주인을 만나는 순간 주인의 복을 빌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는 예수님을 위하여 기도할 줄 알아야 역사적인 심정을 압니다. 그다음에는 천지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계의 훌륭한 뜻을 대신하여 싸워 나온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도해 줘야 합니다. 타락 이후 아담 해와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걸음걸음을 나가면서 '그들에 맺혀진 한을 해원하는 제물이 내가 되게 하시옵소서' 하고 이것이 다 끝난 후에 사랑하는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다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정상적인 신앙노정을 간다 할진대 세계를 붙들고 울고, 하늘땅을 붙들고 울고, 민족을 붙들고 울고, 교회를 붙들고 울고, 자기 스스로를 붙들고 울고 맨 나중에는 나에게 책임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7-328, 1959.10.18)
3) 기도에 대한 응답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힘을 받아요,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벌어진다는 전망을 다 가르쳐 준다구요. '어떠한 일은 어떻게 하고 어떤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 준다구요. 그걸 알아야 여러분들이 큰일을 할 수 있다구요. 기도로써만이 그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기도가 밥먹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선생님도 복잡하고 그런 일보다도….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취미로 삼고 있어요. 고요한 밤을 선생님이 참 좋아해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얘기를 안 하지, 선생님에게 그런게 없겠어요? 여러분들에게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요. 그런 생활의 풍부한 저변기반을 닦을 수 있는 것도 기도 이외에 길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세계, 그 자리에서 사랑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사랑을 체험할 수 있지, 보통 자리에서는 힘들다구요. 그러한 터 위에서 자기 자체가 힘을 보강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여러분의 신앙길을 여러분 자신이 갈 수 있지, 언제나 이렇게 선생님이 이끌어 줘 가지고 가게 되면 선생님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러한 이면의 생활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내 할 일은 내가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 된다구요. 밤이나 낮이나 전체를 위해서 기도해야 그것이 산 기도가 되는 거예요. 그래야 몇 년마다 자기가 원하는 기도가 달라지고 제목이 달라지면서 발전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지금 때가 어떤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면의 생활을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통해서 갖춰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여러분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래 어떻게 기도했어요?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104-111, 1979.04.15)
나의 몸을 바쳐서라도 하나님 앞에 승리의 일점(一點)을 더하겠다고 하는 입장에서 기도를 올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책임지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용인한 길을 걸어오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있는 그 장소까지 오시려면 많은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같은 비참한 입장에 서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은 직접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외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활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내 자신이 희생하는 입장이나, 상심한 입장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참된 마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입장에 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시인하시게 되고 또 동정하시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심정으로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8-268, 1967.06.12)
4) 아버님의 기도의 경지
선생님은 설교하기 전에 설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보다도 식구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아버지! 이들을 이끌어 올려야 되겠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것입니까, 저것입니까?' 하고 정성을 모은 다음 마음의 명령대로 설교한다. (9-81, 1960.04.12)
선생님은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도 주면 주었지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앞으로 책임자들은 자기가 지고 있는 책임에 대해 심정적인 조건이라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절대 발전할 수 없습니다. (16-309, 1966.07.31)
선생님이 한참 기도할 때는 통일교회 전체 사람들은 선생님한테 홀딱 반해 가지고 뭐 시장 가도 뛰어갔다가 오고 말이예요, 그런 거예요. 시장 간다고 하는 사람이 전부 다 교회 오고, 남자고 여자고 다 정신이 흘려 버린 거지요. 내가 그렇게 한 게 아니예요. 사랑이 그런 거예요, 사랑이. 보면 괜히 좋다구요. 뭐 없으면 그저 버선짝 팔아다가라도 갖다 드리고 싶고 말이예요, 주고도 또 주고, 또 주고, 또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러겠어요? 사랑이 그래요. 주고 주고 주고 나면 줄것이 자꾸 생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방으로 주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겨난다는 거예요. 높은 자리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121-231, 1982.10.27)
여러분은 사모의 심정, 흠모의 심정을 지닌 식구들을 얼마나 만났어요? 선생님은 그런 사람을 수두룩하게 만났어요. 땅 끝에서 찾아와 가지고 선생님께 경배하잖아요! 그건 왜? 선생님이 땅 끝까지 사랑의 심정적 줄을 던졌기 때문에, 벌써 전기를 통해 봤기 때문에 방향을 안다는 거예요. 너희들은 얼마나 졸장부였어, 이 녀석들아? 뭐 선생님이 칭찬할 줄 알고 왔지? 칭찬받으러 왔어, 책망받으러 왔어? 「책망받으러 왔습니다」 책망도 아닙니다. 사실 설명만 듣기 위해서 왔어요. 사실이 그렇잖아요?
선생님은 이 길을 닦기 위해서 앉아 가지고 솜 바지 저고리가 전부다 젖어 물이 흐르도록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흘린 거예요. 하루에 열일곱 시간 스무 시간까지 기도를 했어요. 그렇게 살았어요. 그렇게 찾은 길입니다. 그걸 임자네들이 그렇게 무가치하게 상속받을 수 있어요? 동화적 심정권이 한 기준에 연결돼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그렇게 다른 박자로 놀아나요?
그러니까 통일교회의 전통을 모르고 살았다는 거예요. 통일교회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무가치한 이 존재들….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역사에 한 번밖에 없는 거예요. 다시 만날 수 있어요?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봐요?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없습니다」 역사 이래에 처음 생겨난 거예요. 여러분이 이 시대에 있어서 선생님을 만났다는 사실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사실이예요. 귀한 보화를 함부로 취급하지 않았느냐 이거예요. 그가 제창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가 가는 길이 어디냐 이거예요. 처한 환경이나 세계를 대해 무엇인가를 느끼고, 날아가는 새도 나를 위해서 뭔가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심정권이 그래야 돼요. 모두에게 동참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너와 내가 화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급은 다르지만, 위라고 높은 것이 아니고 아래라고 낮은 것이 아니예요. 동화할 수 있는 가치의 내용으로 하늘이 공인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내용은 심정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는 공인 안 되는 것입니다. (171-31, 1987.12.05)
여러분은 기도할 때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선생님이 맨 처음 이 길을 출발할 때, 1944년, 1945년입니다. 그때는 상도동 교회에서 교인들을 지도했습니다. 그때 교회의 기도하는 장소인 마루가 마르지 않았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마루가…. 눈물을 흘려야 돼요. 이렇게 되니, 그 교회는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하늘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뜻을 위해 가는 데에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도 모르게 하염없는 서글픈 심정에 잠기고, 하늘에 반영되는 심정이 언제나 연결되어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것을 갖고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말이예요.
하늘이 같이하는지 안 하는지 생각하면 대번에 아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습니다. 누가 말을 하게 될 때, 뜻 있는 말을 하게 된다면 마음이 쓱 끌려갑니다. 그것을 알게 마련이예요. (56-58, 1972.05.10)
선생님은 하나님 앞에 솜바지 저고리가 다 젖도록 기도한 적이 몇 번인지 모르고, 칼을 가지고 뱃가죽을 찌르며 맹세한 적인 몇 번인지 모르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을 굳게 다짐한 적이 몇천만 번인지 모른다. (19-19, 1967.11.05)
여러분은 지금 지상천국의 주인들입니까? 정신차려 기도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옛날에 기도할 때 마루가 말라본 적이 없어요. 3년 동안 마루가 마르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지만 구덕살(굳은살)이 배겼어요. 하늘은 세상 놀음과 같지 않으며 심각한 최고의 자리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1974.02.09)
여러분, 선생님은 1957년, 그때 처음으로 우리가 120곳을 선정해 가지고 전도하러 나갔는데, 그전까지는 기도실에 들어가서 밤잠을 안 잤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새벽 두 시가 보통이고 세 시 네시까지 안 잤습니다. 평균 두 시간 잤습니다. 언제나 정성을 들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기반을 닦을 수 없다구요. 세계적인 기반을 닦고 국가에 하나의 초석을 놓으려면 정성을 들여 가지고 많은 사람이 내 손발이 될 수 있어야 됩니다. (56-48, 1972.05.10)
5) 식구를 위한 목회자의 기도
목회자는 사흘에 한 번씩이라도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흥남 감옥에서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몇몇 식구들을 위한 기도는 밥 먹을 때부터 잠 잘 때까지 매번 안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설령 떨어져 나간 사람일지라도 그를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와서 떨어져 나간 것을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며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하여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인사를 하며 떠나는 그 비참한 정경은 동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떠나갔어도 그 사람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그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그 계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의 토대만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 있는 사람을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절대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한 식구가 떨어져 나가면 그 사람과 성격도 비슷하고 말하는 것도 비슷하고 걸음걸이까지도 비슷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신기할 정도로 떨어져 나간 그 사람과 너무도 닮은 사람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나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정성들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느누구를 만나더라도 만난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하늘을 중심삼고 만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인연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라 버리거나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그 사람과 맺었던 인연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천국을 위하여 들인 정성의 기준이 하늘이 공인할 수 있고,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만 되어 있으면 사람이 없어도 세계적으로 수확을 거둬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손해 안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의 정성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선생님은 과거에 삼천만 민족을 앞에 놓고 이마를 땅에 대고 피눈물나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과 여러분의 정성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날에는 삼천만 민족은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운세는 하나의 주체자를 중심삼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42-158, 1971.03.04)
정성을 들일 때에는 여러 사람을 놓고 들이는 것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사람을 늘고 정성들이는 것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정성들이는 것은 판연히 다릅니다. 동서남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가 있으면 하나의 대상을 결정 지어 가지고 그 대상을 중심삼고 금을 그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방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 사방이 그려질 때까지는 대상과 절대적인 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둥근 원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도들 가운데 과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원리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전도하려 하지 말고 한 사람부터 전도할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1대상이 있어야 제2대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42-162, 1971.03.04)
기도단의 기본조직 형태는 부인들 4명씩 3개 반 12명을 한 조로 하되 여기에 남자들도 상대적으로 같은 수의 기도조를 조직하여 24명이 열심히 기도하면 큰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1970.04.23)
그 한 생명을 위해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전도가 됩니다. 그렇게 하여 한 달에 한 사람씩 전도한다면 우리가 만 명이라면 일년이 지나면 몇 명이 되겠습니까? 12만이 됩니다. 2년이면 120만이 되고, 3년이면 1,200만이 됩니다. 이렇게 매년 10배씩 식구가 늘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복귀는 문제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한 달에 한 사람을 목표해서 총진군을 해야 합니다. (22-341, 1969.05.11)
세 사람을 놓고 정성들이면 한 사람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때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은 일년 열두 달 계획을 세우세요. 어느 달은 제1후보 누구, 제2후보 누구, 제3후보 누구, 이렇게 짜는데 여기에는 엄마 아빠도 들어 있고, 누나 동생도 다 들어 있습니다. 동생같으면 '이 녀석아, 가자' 그럴 수 있습니다. 뭐 사정을 봐 줄 것이 뭐 있습니까? 살살 얼러서 안 되거든 때려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22-344, 1969.05.11)
중요한 문제는 기도를 하라는 거예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해방하겠다고 하니 나한테 부탁해야지요. 인류가 나한테 부탁해야지요'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생각이 필요해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가진 관습을 전부 정리해 가지고…. (128-174, 1983.06.12)
6) 중심을 향한 기도
지역장은 본부를 위해 새로이 정성들이며 기도해야 합니다. 60년대 보다 70년대는 더 나아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 더 나아야 되겠습니다. (29-78, 1970.02.24)
앞으로 선생님의 계획에 여러분이 기도하기 바랍니다. (70-104, 1974.02.09)
여러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또 얼마나 보고 싶어했습니까?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고 진정으로 기도하고 진정으로 사모하였다면, 그것은 이 몸뚱이 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23-51, 1969.05.11)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가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24-28, 1969.06.22)
2. 통일교회의 기도
1)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
통일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어이쿠, 참무모가 뭐야? 뭔데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 참부모의 뜻이 뭔지 알아요? 참부모란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천세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조상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세워진 인류의 조상이 타락했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 또한 새로운 조상을 중심삼고 섭리하기 때문에 새로운 조상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치가 딱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는 통하지 않기에, 예수님과 성신을 통해야 합니다. 즉, 예수는 아버지 신이고 성신은 어머니 신이니 타락한 인간들은 누구나 그런 부모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신이기 때문에 어머니 신이 없어 가지고는 완전한 구주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사실을 모르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복을 빌면 되겠습니까? 모두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처럼 속고 있는 세계의 10억이 넘는 기독인들을 재교육시켜야 됩니다. (20-268, 1968.07.07)
예수님이 최고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라를 갖기 전에 먼저 무엇을 가져야 되겠어요? 자식을 갖기 전에 무엇을 가져야 되겠어요? 부인을 먼저 맞이해야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딸로 만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의 자격으로 왔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기성교회와는 달라요. 신부가 없는, 외짝인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에서는 참 멋진 기도를 하지요?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참대왕마마 중전마마 이름으로 기도 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하면 선생님 부부가 좋아요, 외짝이 좋아요? 그래 어떤 것이 좋아요? 쌍이 좋아요, 외짝이 좋아요? 「쌍이 좋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어야 되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어야 됩니다.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고 태어났어요? 생각해 보세요. 태어날 때 큰일났다고 걱정했어요? 벌써 그건 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임자네들은 꿈도 안 꾸어 보고, 그걸 알게 되어 있어요? 그걸 내가 풀었다구요.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41-226, 1971.02.16)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그 참사랑이 뭐고, 참부모가 뭐냐? 그 말을 선생님과 어머니만을 두고 생각지 마십시오.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세계를 품고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을 넘어서 만민을 진실하게 하나같이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라는 경지의 참부모 기준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33-141, 1970.08.11)
여러분들 마음대로 천국 가면 좋겠지요? 여러분들 마음대로 천국 갈수 있으면 좋겠지요? 들락날락했으면 좋겠지요? 여러분들은 기도를 왜 해요? 기도할 때, 왜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기도할 자격도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기도하지요? 그건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악세계, 사탄세계에서. (150-54, 1986.12.21)
통일교회에서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 안 해요. 시시하게 안 하는 거라구요. 부모를 찾아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부모도 참부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 뜯어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뜯어고쳐야 되는 걸 전부 다 모르고 있으니까 주춧돌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떡 비뚤게 해 놓고 거기에 들어가서 살자고…. 태풍이 이쪽에서 불면 살 수 있지만 저쪽에서 불었다간 옥살박살이 난다구요. 알겠지요? 예수 믿는 양반들, 여기에 앉은 머리 햐안 아저씨, 알겠어요? 그래야 된다구요. (48-223, 1971.09.19)
지금 때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때가 아닙니다. 그런 때는 지나갔습니다. 지금 때는 이름 구원시대가 아닙니다. 실체구원시대입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모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예수님의 이름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천 개 만 개 있습니다. 그러나 실체는 하나뿐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하늘나라에는 예수님의 실체를 타고 가야지, 이름을 타고 가겠습니까? (13-60, 1963.10.16)
2) 한 단계 앞서는 기도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부모의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들의 도리 이지만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친다구요? 「부모의 도리요」 이것이 다른 겁니다. 아들과 부모 중에 누가 더 높습니까? 부모가 더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한 단계 앞서가는 것이지요.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로 계신다면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기도해야지,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까? 왜 한 분의 이름만 갖고 기도하느냐는 거예요. '부모' 하게 되면 전부 다 들어오게 되어 있는 데 기왕이면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왜 섭섭하게 한 분의 이름만을 갖고 기도하느냐구요? 여러분, 남자 여자 중에서 남자만 좋다고 떡을 주고, '아이고! 인절미 맛 기가 막힌다'고 하면 여자가 기분 좋겠어요? 성신도 삼위일체라고 하면서 기도할 때는 왜 성신은 빼놓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것입니까? 집에서도 아버지는 좋고 어머니는 있으나 없으나 한 존재입니까? 아버지 생일은 성대하게 차려 주면서 어머니 생일은 기억도 하지 않습니까? 부모라는 인연을 천지조화라는 것을 오늘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전부 다 상대적입니다. 무엇이든 합해져야 조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도 코도 귀도 입술도 모두 서로 합하는 데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어머니 아버지 둘이 합해야 세상의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암만 해봐야 안 됩니다.
숨을 들이쉬기만 해 가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들이쉬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쉬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소를 마시고 사니까 숨을 들이쉬는 것만 필요합니까? 세 번을 계속 들이쉬기만 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도리어 내쉬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숨을 내쉬어 탄산가스를 몸 밖으로 내보내야 산소가 많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만 나와 가지고는 안 됩니다. 요즘에 세상은 남자를 위주로 한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여성해방운동을 해야 됩니다. 원리적으로 볼 때 3년 이상을 남자가 여자한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개체가 복귀하는 데는 정도(正道)대로 거쳐가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아담 해와가 둘이서 떨어졌으니, 올라갈 때도 둘이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것은 재창조와 같은 것입니다. 창조할 때 아담을 먼저 만들고 해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재창조할 때도 아담을 만들어 놓고야 해와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복귀역사로 아담을 만드는 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여자 성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자 성인 봤어요? 여자 성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봤습니까? 성인의 어머니란 말은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 얘기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그분이 성인은 아닙니다.
결국 지금까지는 재창조의 역사였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데는 둘을 한꺼번에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다시 만드는 과정, 즉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냐? 창조목적을 완성한 남성으로서 천주의 상속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시는 분입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았을 때, 즉 에덴동산에 지어 놓은 그 아담이 장가가기 전 입장을 대표한 인격자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런데 타락하지 않은, 장가가지 않은 에덴동산의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서 오시는 그 주님은 결혼식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서는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느냐 하면 여자, 즉 어머니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21-193, 1968.11.20)
3) 하나님 위주의 기도
손탁박사 질문 : 문목사님의 기도생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통일교회의 기도생활은 독특한 것으로 생각되며, 많은 신도들은 기도하는 방법을 교회 안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도는 가장 위력 있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기도를 강조하지만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기도하지 않으나 그 내용이 다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 자기의 기도가 위로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상달되도록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91-115, 1977.02.03)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고, 피를 토하며 쓰러질 때도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염려하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나는 옛날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과 다릅니다' 하며 속으로 다짐하면서 참아 나왔습니다. '하나님, 나를 구해 주십시오' 하는 시시하고 사나이답지 않은 나약한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한 기도 이외의 딴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대와 소망을 걸고 있는데 영어의 몸이 되었다고 울상을 해 가지고 살려 달라고 기도해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사나이 답지 않는 것입니다. (16-243, 1966.06.19)
3. 새벽기도
옥중에서도 선생님은 발을 펴고 앉아 있지 못했다. 또한 선생님은 사탄세계에 살을 보인 적이 없다. 형무소 내에서도 물수건을 감추어 두었다가 새벽기도를 하기 전에 몸을 닦았다. (21-71, 1968.10.03)
하나님은 또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자다 말고 기도하려면 솔직히 말해 선생님도 힘듭니다. (웃음) 언제나 새벽 4시경에 일어나 기도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계에 대한 체면이 있으니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졸린 눈을 껌벅껌벅하며…. 이렇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든 것입니다. 남들 다 자는 아닌 밤중에 기도하는 것은 죽을 놀음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해야 편하다는 것입니다. 기도 안 하면 여러분한테 이런 얘기 하기도 아주 어색하다는 겁니다. (31-253, 1970.06.04)
자기가 맡은 지역을 위하여 3년간만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면 반드시 크게 부흥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붙여 놓고 붙들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럴 수 있어야 돼요. '이 사람이 뜻 속에서 필요합니다'라고 계속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과 실체적 싸움을, 양면작전을 할 수 있다 이거예요. 세상 사람은 영적 싸움을 못 해요. 실체적 싸움도 잘 못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들이 우리 앞에 빚지면 그들이 후퇴하지 우리가 후퇴할 수 없다구요. 우리는 양면작전을 하는 거라구요. 이런 생각을 하고…. 알겠어요, 이제는? 알겠지요? 「예」
눈물을 흘려야 돼요. 심정적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여러분의 위치를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은 어떨까요? '이 도성은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도성인데도 불구하고 사탄이 지금 이 도성을 지배하고 있으니, 하나님이여, 이 도성을 당신의 자랑으로 남겨야 할 책임이 저에게 있으니 저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내 입을 열거든 홍수와 같은 생명수가 쏟아져 나오게 하고, 내가 움직이거든 바람같이 불게 하시옵소서. 사람을 대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내가 행동하거든 태풍같이 밀려가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해야 된다구요. (97-129, 1978.03.04)
우리들은 새벽에 일어나면 인류를 대신한 존재인 나의 하루 생활이 아버지 앞에 감사의 실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꽃이 피어 있는 봄동산처럼 자유스런 동산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워 섭리하실 수 있는 소망의 결실체가 되겠다고 하고, 낮이 되어 일터에 나가면 소망의 결실체가 자라나는 여름절기와 같이 자기가 한 발 더 발전하여 하나님께서 같이하실 수 있는 가치로 나타날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고 해야겠습니다. 또, 저녁이 되면 모든 전체를 집약시켜서 하나의 결심을 아버지 앞에 바칠 수 있는 가을절기와 같은 때이기 때문에 제물 될 수 있는 자리에 서겠다고 하고, 겨울절기에 해당하는 밤이면 생명력을 지녀서 하나님과 내재적 (內在的)인 부자의 기원을 맺어 모든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이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1년 365일을 승리의 날로 만들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사는 생활이 보람 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런 경험을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일생을 감사하는 생활로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죽음의 자리에 처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하루를 그렇게 살아야 하고, 1년을 그렇게 살아야 하고, 우리의 일생 동안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일생에도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의 아침 낮 저녁 밤, 일년의 춘하추동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그렇게 살고 간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인간을 창조하신 그 창조본연의 목적에 합격된 하나의 승리적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29-336, 1970.03.14)
4. 철야기도
1) 밤은 신비성이 강하다
밤, 깊은 밤은 신비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흥회를 할 때도 낮에 부흥회를 하는 것보다 밤에 부흥회 하는 것이 더 은혜롭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낮에는 우리의 모든 감정이 분산되기 때문입니다. 즉, 시청각 등 우리가 오관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이 전부 분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밤에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집중됩니다. 모든 것이 나를 포위해 가지고 나를 두드러지게 하고, 그런 권내에 내가 자동적으로 서기 때문에 밤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은혜의 역사를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역사를 잘 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에 식구들을 데리고 들에서 얘기하면 그 얘기는 신비성을 띠게 됩니다. 또, 부락부락을 왕래하면서 식구들을 집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 얘기하면 그 식구는 그것을 일생 동안 두고 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재미는 무엇으로 형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성을 느낄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발전입니다.
여러분도 12시가 넘어 첫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말씀을 전해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비스러운가. 조용하고 고요한 밤에 동네의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말씀을 전해 보라는 것입니다. 마치 광명한 햇빛을 찾아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타개하고 가는 것과 같고, 등대 빛을 찾아 새로이 항해하는 선장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는 거예요. 주위가 온통 신비로 꽉찬 세계를 혼자 가는 듯한 용감한 모습, 씩씩한 모습, 장엄한 모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유대를 가지려면 밤 시간을 중심삼고 지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나 새벽에 이러한 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유부녀들일 경우에는 반드시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것을 잘 이해시켜서 밤 시간을 존중시하게 만들어 가지고 밤이라도 자기의 환경을 떨치고 나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적인 원동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여러분이 지시하는 대로 따를 수 있게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은 먼저 말씀으로써 그렇게 만들어야 되고, 그다음에는 행동으로써 그렇게 말들어야 되고, 심정으로써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그 사람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전도를 시켜 보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있는 정도까지 길러 놓아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전도한 사람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29-194, 1970.02.28)
2) 철야기도의 의의
여러분들이 철야기도 같은 것 하지요? 정신을 하늘로 전부 다 올리고, 세상물정을 다 잊어버리고,…. 그 경기가 뭐냐 하면 자는 경지에 들어가자 그 말이라구요. 그런 경지 이상의 자리에 들어가자 그거예요. 이 육신의 찌꺼기가 전부 다 침체되면 맑은 물이 떠오르는 거와 마찬가지로 잠은 우리가 정신수양 해 가지고 정신을 올리고 나쁜 의식을 전부 다 내리자는 거예요. 자는 경지,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여러분이 고단하고 그러면 잘락말락 잘락말락 하지요? 그런 때는 다 듣는다구요. 다 보인다구요. 듣기는 듣지만 확실히 듣지 않고, 보기는 보지만 확실히 보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무엇이 벌어지느냐? 꿈과 같은 현상이 벌어져요. 그때 뭘 가르쳐 준다구요. 알겠어요? 그거 전부 다 이론에 맞아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래서 철야기도를 하고 모든 육(肉)을 단절시키고 정신을 통일해 가지고 자꾸 올림으로 말미암아 장래에 자기의 갈 길이라든가 이런 것이 보여지고, 그다음에 그것이 습관화되게 되면, 전체를 조종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기도만 하면 눈 뜨고도 볼 수 있고 다 들을 수 있는 경지까지 들어갑니다. 두 가지를 보고, 두 가지를 듣는다구요. 그런 자리에 올라가려면 상당한 수련, 수양이 필요하다구요. (91-272, 1977.02.27)
우리 인간이 타락함으로 사탄의 혈통을 받았다는 겁니다. 사탄의 피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움직이게 될 때는 이 피가, 악한 피가 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거 알아요? 저 유리관 같은 데 넣어 보면 뿌연 물과 같아요. 흙탕물과 같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잠을 자면 이 모든 육신이 쉬기 때문에 가라앉는다는 거예요. 무거운 것은 자라앉고 맑은 물이 뜨는 거와 같아요. 본래의 맑은 그 마음은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상징적이라든가, 형상적으로 앞으로 갈 수 있는 것을 꿈 가운데 하늘이 가르쳐 준다는 거예요. (91-270, 1977.02.27)
하나님만을 위주로 하여 자신이 새로운 것을 자극할 수 있는 생활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을 느끼면서 활동을 하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번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에는 새싹이 나오는 거예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생명력이 약동하는 거예요. 반면 뿌리 없는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감정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생사를 걸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철야기도를 해서라도 정성을 쌓아 나가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일부러 그 시간을 빼앗아 가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망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깜깜한 궁지에 들어갈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따라다니는 사탄까지도 내 편으로 굴복시켜서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더욱 강하게 싸울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30-133, 1970.03.21)
3) 교회마다 철야기도를 해야 한다
낮에도 일해야 되지만 종교 일은 밤에 해야 돼요. 밤이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밤에 가르쳐야 효과적이다 이거예요. 그리고 새벽에 가르쳐 줘도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한번 왔던 사람이 그저 안 올 수 없어 가지고 집에서 도망을 해올 수 있게끔 만들어야 된다구요. 여러분들 자신이 그렇게 돼야 됩니다. 동기가 없는데 결과가 있어요? 여러분들, 지금까지 안 되었으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잘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연구해서라도 하라는 거예요. (97-186, 1978.03.15)
지성소, 성소가 없어져야 한다. 앞으로 영력이 많아지게 되고 영이 밝아지게 된다. 거기에 오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공적인 입장을 떠나 생활해서는 안 된다. 교회를 지키는 데 있어서는 축복받은 자끼리 삼위기대를 편성하여 지켜야 하며, 잠을 자서는 안 된다. 사탄이 주관하는 밤까지 주관하기 위하여 철야하며 지켜야 한다. 교회를 비워서는 안 된다. 사방으로 휘저어도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 그래야 한다. 그러니 암호 훈련을 해야 한다. 전국에 있는 식구들은 3일에서 7일 이내에 서로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 암호는 사탄이 몰라야 한다. 이것으로 사탄을 심판해야 한다. 식구가 70명, 120명이 되는 곳에서는 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졸아도 안 된다. 절대로 밤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집회는 밤에 많이 할 것이다. 어둠의 세계를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선 간절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공적인 일을 책임지고 나서는 것이 그 얼마나 귀한 일인가! (11-245, 1961.11.01)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할 수 있느냐? 내가 전체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체 앞에 지장이 있다 할 때에는 그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알고 몸둘 바를 모르며 밤을 새워 가면서라도 기도하고 불철주야 있는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몸은 땅에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영광과 소망이 머물며 강한 힘이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니 생명력이 깃드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랑의 마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째 도수가 뭐냐? '나는 전체를 위해서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면 밤, 낮이면 낮, 때를 막론하고 24시간 그들을 위해서 있다' 하는 사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사탄세계에서 망하지 않습니다. (44-11, 1971.05.04)
매일같이 그리워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누구를 그리워하든 항상 그리움에 사무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밤 12시만 되면 '야아! 자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사람입니다. 천국은 밤과 낮이 없습니다. 심정의 인연을 안고 나올 땐 밤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291, 1967.02.15)
이젠 3분의 2는 넘어왔습니다. 그러니 3분의 1밖에 안 남았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그런 건 걱정도 안 합니다. 그런 문제는 기도도 안 해요. 지금까지 경제문제로는 기도를 절대 안 한 거예요. 돈 달라고, 난 그런 기도 못 해요. 기도는 원칙적인 기도를 해야지 함부로 했다가는 탕감받습니다. 화를 받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욕심을 가지고 절대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 그렇게 알고, 돈이 없거나 물건이 없을 때에는 철야기도를 하기 바랍니다.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 한탄의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북한 땅에 살고 있는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고, 소련을 중심으로 공산권 내에서 지금 신음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저 시베리아 벌판에서 죽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북한을 해방하고, 그곳까지 가서 해방할 수 있는 길을 닦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늘이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166-193, 1987.06.05)
토요일 밤엔 교회에서 철야를 해야 한다. (17-344, 1967.05.11)
여러분, 철야기도해요? 철야기도해야 합니다. 강의할 사람은 반드시 밥 한끼 금식하고 하라 이거예요. 정성들이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다 흘러갑니다. 붙들고 호소하라 이거예요. 애절한 호소를 하라구요.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호소하는 이상, 스승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호소하는 이상,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에 대해서 호소하는 이상 호소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늘이 같이하지 않습니다. (166-181, 1987.06.05)
4) 아버님의 철야생활
책임자는 30일 가운데 열흘 동안은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밖에 나가서 자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구요. 밤을 새워가면서, 밤을 새워가면서 얘기해 주는 거예요. 그렇게 하라고 하면 여러분들 다 도망갈 거라구요. 어때요? 도망 안 갈래요? 「예」
선생님이 그랬다구요. 1957년도에 한국에서 식구 만들 때에는 잠도 자지 않았다구요. 일대일 작전을 했다구요, 일대일 작전. 남는 것은 일대일 작전이라구요. 한 사람을 놓고 강의할 때 백 사람 천 사람 놓고 강의하는 거와 같은 생각으로 했다구요. 그 한 사람에게 수천, 수만 명이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구요. 내가 무슨 명령을 해도 들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그만큼 정성들여 가지고 그럴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주어야 됩니다.
자, 나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고,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되면 미국은 산다구요. 그렇게 될 때, 3단계의 인연이 맺어지는 거예요. 나하고 여러분들하고 하나되고, 여러분하고 지방에 있는 식구하고 하나되는 거예요. 이것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하고 지방에 있는 식구하고 하나되는 거예요. 이것이 돼야 합니다. 그게 왜 그래야 돼요? 왜 3단계로 되어 있느냐? 하나님과 아담하고 하나되고, 아담하고 아담 아들하고 하나된 거와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 그게 원리라구요. 3단계 완성 못 하면 사위기대 완성권이 나오지 않는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래,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같은 사람을 만들어 놓을 수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 같은 사람을 개인적으로…. 문제가 그것이라구요. (96-272, 1978.02.13)
지금 선생님이 가는 길에 있어서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통일교회에 와서는 어떠한 큰 힘이 여러분을 몰아내고 있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고생하고 욕을 먹어야 오히려 힘이 날 것입니다. 선생님도 어떤 때는 다리가 붓고 움직이지 않더라도 '이놈의 다리야, 너 하나님을 위해서 가야 돼!' 하면서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 시작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시간관념 없이 말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하고,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밤새워 말씀 듣고 말씀하는 것이 일쑤였습니다. (97-209, 1978.03.15)
박보희도 언제나 자기가 기도를 잘 안 하거든, 선생님을 대신 붙들고 나서라 이거예요. '선생님은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할 것이다' 하는 심정적 자리에 들어가 설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박보희가 지금까지 잘한 게 그거라구요. 선생님께 보고를 하게 되면 될 수 있는 대로 전부 세밀히 보고하려고 그럽니다. 그건 왜? 선생님이 보고를 듣고 참으로 기뻐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밤 열두 시가 넘더라도 선생님의 눈이 총알처럼 되어 가지고 기쁘게 보고받을 수 있게 하려고 재료를 수습해 옵니다. 그게 귀한 것입니다. 그러려면 나가서 이전보다도 더할 수 있는 재료, 더 노력한 재료, 더 성과를 올린 재료를 갖다가 선생님께 보여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정성들이지 않으면 안 돼요. 나가서 함부로 그냥 강연하지 않는다구요. 원고를 써 가지고 나갑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전보다 더 확실하게 발전하는 겁니다. (166-182, 1987.06.05)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들일 때에는 함부로 들이지 말고 불쌍한 사람을 놓고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을 놓고 정성을 들일 때, 그 사람이 밥을 굶고 헐벗고 있다고 생각되면 추울 때에도 옷을 벗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기준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 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다 주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죄가 되겠습니까? 주고 싶은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욕심을 갖게 될 때에는 하나님도 찬양하시는 겁니다. 자기만 먹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좋게 하기 위해서, 현재에는 고통스럽더라도 미래에 잘살게 해주기 위해 욕심을 내는 것은 좋은 겁니다.
의사가 수술을 하려고 메스를 들었는데 밤 12시가 되었다고 해서 졸겠어요? 그런 의사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심각해야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을 보게 되면 전부 다 흘러가 버릴 사람들 같습니다. (42-164, 1971.03.04)
5) 예수님과 철야기도
예수님도 밤을 새워 기도했고, 과거에 하늘의 일을 한 사람들도 기도하지 않고는 큰일을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하는 자세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어느때에 이루어질지 모르고, 자기가 기도하면 이루어질지 모르더라도 기다리는 마음이 돼야 되는 거예요. (104-111, 1979.04.15)
예수님 같은 분도 철야기도를 많이 한 거라구요. 금식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람 다 저버리고 혼자 고독한 자리에서…. 그걸 말하는 거예요. 선생님도 어머니하고 같이 살지만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이거 예요. 그렇지 않으면 찌그러지는 기분이 든다구요, 언제나. (94-152, 1977.09.01)
이제, 하늘의 뜻을 중심삼은 하나의 기수가 되어 가지고 안간힘을 다해서 외칠 때, 그 외침이 땅뿐만이 아니라 하늘에 미칠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 시대보다 나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워 가며 기도했지만 그 세 번의 기도에도 반응이 없었던 것입니다. 민족은 물론이요, 유대교회도 반응이 없었지만 지금 우리 때는 그와 다릅니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게 되면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무리가 국가를 넘어서 세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룻밤을 지새우는 데도 우리 식구를 위해서 지새워야 되겠습니다. 나를 위해 밤을 지새우는 사람은 베드로가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서 밤을 지새웠던 것이 예수님의 입장이 아니었더냐? 죽음이 앞을 가려 오는 그런 운명길에서도 그가 염려했던 것은 자기의 죽음이 아니라 제자들을 염려했고 민족을 염려했기 때문에 하늘의 동정이 임하였던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게 된 것이 아니냐.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바로 그런 때가 지금입니다.
이제야말로 우리 통일교회 교단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워 기도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기도할 때가 왔습니다. 밤을 지새워 기도하는데 나를 위해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세계인류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을 위해 밤을 지새우고 그것을 위해 같이 우는 무리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길도 같이 가기를 결의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 고빗길이 부활을 약속할 수 있는 최후의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나를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망하게 할 것 같지만 부활을 촉구시킬 수 있는 생명의 동기를 부여해 줄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60-28, 197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