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종류의 책을
내 북마크

아직 북마크가 없습니다.

제4절 牧會者의 責任과 姿勢

1. 목회자란 택함받은 자다

선생님의 일생 모토는 '하나님의 대변인'이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천적인 대변인이 되어 주기를 부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역자(代役者)가 되라. 또 하나님의 대신존재가 되라.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대사자(代死者)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9-8, 1960.03.13)

전도사(인도자)는 그 지방의 제사장이다. 잠을 못 자면서도 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뭇사람을 살려 주기 위해서 제물(祭物)을 다루어야 하니 정성들이는 수고를 하여야 한다. 제사에는 실체 (인도자)와 주인(하나님) 이 하나(一體)되어야 응답이 있다. (9-80, 1960.04.12)

전도지에서는 자기의 뼈살이 녹아나는 감성을 지녀야 한다. '아버지 ! 내가 이렇게 부족합니다. 그래도 내가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니 안타깝습니다' 하는 기도와 심정으로 단(壇) 위에 나서서 설교하도록 하라. 자기를 중심삼지 말고 부모와 천지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통첩문을 들고 나선 하나님의 정병이라 생각하라. (9-80, 1960.04.12)

여러분이 민족을 대신하여 나가 싸웠고, 그 부락, 그 면, 그 군, 그 도를 위하여 책임져 나왔을진대, 그 자리는 여러분이 혼자 서러워하고 혼자 호소하는 자리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리에 있을수록 뜻과 인류를 위하여 서러워하고, 인류를 위하여 호소하고, 인류의 앞길을 위하여 하나님의 편이 되어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자리에서 하늘의 협조를 받아서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땅 위에 하나의 중심을 택하여 세우기 위해서는 거짓된 마음으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요, 골수 중의 골수의 심정을 기울여서 하나의 심정적인 중심을 택하여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이 진짜 참인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상 한 번밖에 없는 일이니 최고의 정열과 최고의 심정을 기울이지 않고는 참된 하나의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찾아오셨고, 가정적으로도 그렇게 찾아오셨고, 민족적으로도 그렇게 찾아오셨고, 국가,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런 전통적인 인연으로 말미암아 택함을 받은 자들이니, 우리들의 마음과 피와 살에는 그 사상과 전통이 심어져 있어야 됩니다.
(14-10, 1964.04.19)

여러분 자신들, 우리로 말미암아 세계가, 우주가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조상은 위에 있고 앞으로 여러분 후손은 이렇게 되어 가지고 이 선에서 여러분 조상과 후손이 돌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지금 벌어지고 있다구요. 여러분이 얼마나 엄청난 자리에서 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모른다구요. 여러분들이 축(軸) 이예요, 축. (95-101, 1977.11.01)

2. 소명을 대하는 자세

하늘은 나를 대하여 요구하고 계신다. 새 세계를 건설하라는 것이다. 이미 저끄러진 사건들을 해결하라는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 내 한 개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인류의 것이요, 세계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인 까닭이다.
부족한 민족이요, 부족한 우리들이지만 부르심을 받았다는 황공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국가, 민족을 위해서 자진해 간 사람들도 허락받지 못하였는데, 우리들을 불러서 아들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과 황공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9-343, 1960.01.30)

선생님이 스무 살 전 어린 시절에 이 엄청난 하늘의 뜻을 알고 천적인 대명을 받들고 나서는 그날부터는…. 이 엄청나고 큰 것을 하나님이 약속함과 동시에 그것을 느끼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가야 할 자신은 그 큰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그대로 그것을 삼킬 수 있는 자기 스스로가 못 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탱하기에 너무나 크고, 그것을 받들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할 자기 스스로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에 놓여진 큰 목적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그 목적에 대하여 자기 스스로 책임을 어떻게 하느냐? 그 책임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에게 맡겨진 생활과정에 있어서 내가 담당해야 할 의무와 책임감이 얼마나 지중한가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느끼는 분야가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어서 민족·국가·세계까지 뻗어 나가는 거예요.
(156-107, 1966.01.09)

여러분, 여기에 다이아몬드 광(鑛)이 있다고 합시다. 자기만 아는 그런 곳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남이 모르게 허가를 낼까요, 안 낼까요?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의 가정도 팔아야 될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자기의 부인을 팔아서 수많은 가정을 구한다면 그것이 죄가 아닙니다. 자기 자식을 팔아서 그 나라의 수많은 아들딸을 구한다면 그것 또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팔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광산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이요, 세계 만방의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길이라 할 때는 그 허가를 내기 위해서 부인과 자식을 팔았다고 해서 역사의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부인이나 자식을 파는 것은 안될 것 같지만 거기에는 오히려 세계가 찬양할 수 있는 보화의 근원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봅시다. 지금 현재 우리가 가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마지막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보람을 무한히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새로운 자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21-313, 1968.12.08)

내가 미국에 와서 싸우는 것이 누가 위협해서예요? 자원해 가지고 이 투쟁을 하는 거예요. 아무리 핍박을 하더라도 박차고 나가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돼요? 자원해서 그 이상해야 되겠어요, 강제에 의해 그 이상해야 되겠어요? 강제로라도 그 이상 못 하겠다면 망하는 거예요. 간단하다 이거예요. 이론적으로 간단하다 이거예요.
그래 여러분 자원 교회예요, 뭐예요?「자원 교회입니다」자원 아니면 여기서 다 나가서 벌어먹고 사는 게 낫다구요. 여기 나와 엎드려 있을 필요 없다구요. 밥이 그리워서, 출세가 그리워서 여기 있어요? 성공이 그리워서? 없어요. 없다구요. 여러분은 무니예요, 무니. 핍박받고 그러는 것은 소명 때문이예요, 소명. 인류를 대신하고 역사를 대신하고 하늘땅을 대신해서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불가피합니다.
소명의 책임을 못 하는 한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아무 가치가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밥을 먹고 산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거예요. 여편네를 데리고 자식들을 데리고 산다는 것이 부끄러운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걸 다 박차고 이 놀음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걸 다 부정하고. 그거 심각한 장면이예요, 아니예요? 어떤 장면이예요?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 선생님 얼굴 보러 여기 왔어요?「아니오」사명이 있기 때문에, 사명. 내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한테 무슨 아침 인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사명을 놓고 얘기한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128-46, 1983.06.01)

언제나 시대의 책임자는 자기가 잘나서 택함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선조의 공적을 통해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내가 잘나서, 내가 당당해서 대중의 것을 착취하는 게 아니라 보다 대중을 위해 갈 수 있는 주권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구요. 통일교회로 말하면 통일교회를 위주로 한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구하기 위한 통일교회예요.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통일교회가 아니고 세계를 살리기 위한 통일교회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는 언제나 하늘이 같이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러니 이 전통을 알고 여러분 책임자 된 사람들은 일을 해야 돼요. 책임자 된 사람들은 자기가 잘나서 이 자리에 올라왔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130-304, 1984.02.13)

신앙길에서는 소명을 받기도 어렵지만 그 소명을 받아 가지고 따라간다는 것도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하면, 언제나 원만하게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아야 됩니다. 공기를 팽팽히 집어넣은 고무공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둥글게 가지고 누구에게나 치우치지 않고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을 취해 나가지 않고서는 신앙길에서 반드시 모험이 벌어지고, 뒤넘이치는 노정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왕왕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언제나 우그러지지 않고 주체적인 입장에 있음과 동시에 원만한 자리에 서 있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 닦아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격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그 격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치우침을 받게 됩니다. 슬픈 자리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게 되어 자기의 본성과 맞지 않게 마음이 이지러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의 심성을 중앙에 위치하게 하면서 자기의 심성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생활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마음이 기구(氣球)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기구와 같이 높이 떠올라 있게 될 때는 모든 것이 관철됩니다. 그렇지만 이 기구가 저기압이 되면 쭉 내려오듯이 마음도 내려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 기준에서 그냥 옛날과 같은 자세를 갖고 있으면 이것은 반드시 이지러지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자리에 서게 되면 반드시 더 내려가든지, 반대로 밀고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려오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내려와야 되느냐? 밑창까지 내려와야 됩니다. 밑창까지 내려오게 되면 반작용에 의해서 다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압이 자꾸 내려가는 입장에서 어느 기준까지 내려가게 되면 도리어 반작용에 의해서 올라가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내려가는 자리를 지키든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입장에서 밀고 올라가는 작용을 하든가 해서 언제나 마음의 기준을 조정할 수 있는 신앙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40-67, 1971.01.24)

3. 목회자의 자격 요건

1)목회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 요건

우리는 무슨 대신자가 되어야 하느냐? 여러분 자체는 비록 잘생기지도 못하고, 아무런 경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마음은 최고의 기준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대신자가 될 것이냐? 집안을 책임질 수 있는 대신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더 나아가서 나라의 대표자, 세계의 대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세계적인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계적인 기준을 가지려면 절대적인 기준에 가까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가정의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중심을 거쳐 나갈 수 없습니다. 또한 민족의 중심을 통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중심을 거칠 수 없으며, 국가의 중심을 거치지 않고는 세계의 중심으로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역사의 방향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고 싶어하고, 책임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먼저 가정의 문을 넘어야 되고, 종족의 문을 넘어야 하고, 민족의 고개를 넘어야 되고, 국가와 세계의 고개를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적이라는 것은 일등이라는 것입니다. 일등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4-255, 1969.08.24)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결정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의 개인 남성으로서, 하나님이 '너는 영원히 내 아들딸이다' 할 수 있어야 돼요. 아들딸이란 이름만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아들딸의 그 모든 중심적인 소성, 성품의 중심적 모든 것을 총합시킬 수 있는 사랑의 주체성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이 그걸 희망할 수 있고 내세우고 싶어할 수 있게 하는 아들이 돼야 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할 수 있어야 돼요. 아들이라고만 해서는 안 돼요. '너는 진정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럴 수 있어야 돼요. 그 말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 타락으로 역사적인 흠을 남겼던 우리 선조 역사를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은 진정한 아들이 못 돼서 타락했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너는 내 진정 사랑하는 아들이다' 할 수 있는 그것이 필요한 거예요.
그것을 공인받기에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알아요? 노력해 봤어요? 하나님이 계신 단이 있거든, 교회 단상이 있으면 거기서 눈물을 흘려서 그러한 공인을 받아야 돼요. 높은 산에 올라가서, 그 일이 가능하다면 산에 가서 밤을 지새워 가면서 기도해야 됩니다. '당신의 사랑만이 나에게 모든 필승의 방패가 되니….' 하며. 교회의 책임을 지고 뭇생명의 하나의 참된 싹이 되어 가지고 그들을 접붙여서 부활시켜 줘야 할 책임을 짊어진 것이 교역자인데,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공인을 못 받는 자리에 서서 뭇사람의 생명을 지도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121-223, 1982.10.27)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웠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예수님을 위하여 증거해야 되겠고, 예수님을 위하여 싸워야 되겠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분은 그러한 입장에 선 후에 자신을 증거해 주는 또 하나의 식구를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증거하던 사도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자신을 증거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변치않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증거할 수 있는 하나의 식구를 가져야 되겠고, 여러분을 위하여 싸워 줄 수 있는 식구를 가져야 되겠으며,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죽어줄 수 있는 식구를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3-143, 1957.10.18)

복귀는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귀의 길은 개척해 나가는 길입니다. 사탄세계의 것을 받아 가지고는 복귀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늘의 것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는 데는 무엇을 주어야 하느냐? 참다운 심정을 주어야 하는 것이요, 참다운 인격을 주어야 하는 것이요, 참다운 말씀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다운 말씀의 기준을 세워야 하고, 참다운 인격의 기준을 세워야 하고, 참다운 심정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전체적인 기준의 참된 말씀과 참된 인격과 참된 심정을 세워야 합니다. 이 범위를 넓히고 세계적인 한때를 마련하여 세계 전체의 탕감기준을 세우기 위한 책임자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심각한 역사의 배경을 중심하고 오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14-12, 1964.04.19)

자기에게 새것이 있으면 이것을 누구에게 줄까 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주위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굴복은 명령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숨겨진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통일교회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지구면 지구, 지역이면 지역을 책임진 자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바라던 천국이 세워질 수 있는 자리에 서서, 그 전문적인 권위를 영원히 그 환경에 남기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9-116, 1970.02.25)

교역자(전도자)는 무엇보다 경험이 있어야 하며, 전도자에게 충격적인 마음의 동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 가운데 지구장이면 지구장 생활을 십년 이상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십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엊그제는 지역장으로 17차까지 인계 받았다는 사람이 몇 사람 있다고 보고를 들었습니다만, 17차가 아니고 108차를 받았으면 무얼합니까? 그것보다도 거기에서 사람을 중심삼고 취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 보지 못한 사람은 안 돼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서 밤을 새워 가며 미래를 이야기하고, 또한 해를 바라보면서 시로 읊고, 혹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는 등 어떠한 문학작품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을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통해서 느껴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면서 살아야 사람으로서 사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30-148, 1970.03.21)

세상에서 무슨 큰일을 한번 하려면 큰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준비를 많이 해야 됩니다. 사람은 준비가 없어 가지고는 큰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크면 거기에 대비해서 큰 준비가 필요해요. 오랜 기간의 시련과 혹은 연단을 거치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준비가 잘못되면 성공할 수 있는 때가 와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거예요.
자고로 영웅 열사들이 이 땅 위에 많이 왔다 갔지만 그 영웅 열사들이 국가적인 일이나 혹은 세계적인 일을 성취하는 데는 반드시 그 성취될 수 있었던 환경적인 기반을 닦아야 되었다는 거예요. 환경적인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또 제아무리 환경의 기반이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때를 맞추어 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경과 이 천운, 그리고 때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때가 있다는 거예요.
(156-9, 1965.11.02)

자, 비행사 하나 되기 위해서도 몇십 년을…. 우주 비행사가 되기 위해서는 비용을 얼마나 많이 들여 준비해야 되느냐? 또, 거기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풍부해야 되느냐 이거예요. '그냥 그대로, 통일교회고 기성교회고 우리 미국 생활 그냥 그대로 하면서 가면 되지 않느냐'하는 사람은 절대 용허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죽음의 장벽을 뚫기 위해, 죽음의 장벽을 격파하기 위해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런데 졸 수 있어요?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어요?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딱 원칙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24-179, 1983.02.15)

2)목회자가 가져야 할 긍지

내가 온 것은 여러분을 망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고생시키기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예요. 여러분의 가정을, 세계를 살려 주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이 세계의 아들딸로 환영받을 수 있는 날이, 여러분이 이 고개를 다 넘거들랑 세계 만민이 눈물을 머금고 우리를 불러 환영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나 혼자 외로운 60평생을 걸어오는 동안 하늘을 믿고 하늘을 알고 나오다 보니 틀림없는 사실임을 내가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예요. 세계에 동지가 있어요. 세계를 지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갈 길을 추앙하고 잘 싸워 달라고 부탁하며 선두에 선 것을 알기 때문에 외롭지 않아요.
그런 스승을 여러분이 모시고 그의 명령 앞에서 용사의 기치를 들고 나선다는 놀라운 사실, 이것은 하늘땅 앞에 자랑할 일입니다. 역사가 꺼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승리의 자리는 꺼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눈물로 다짐하고 전진하는 데는 기필코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을 여러분은 느낄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166-179, 1987.06.05)

여러분은 주목의 주인공들입니다. 보잘것 없는 여러분 자신들이지만 여러분은 주목의 주인공들입니다. '비록 내 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손길을 통해서 세계를 향할 수 있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내 모든 시선을 통해 하나님의 시선이 연결되어 있다. 내 감정을 통해서 심정의 뿌리가 연결되어 있다. 내 가는 일생의 행로를 통해서는 하늘의 섭리의 방향이 달려 돌아간다. 내 오관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각, 감성이 있다 할진대 그 감성은 전부 하늘이 주목하는 주인공으로서 느끼는 감성이다' 이런 자부심을 가져야 됩니다.
방대하고도 엄청난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신임할 수 없는 고독한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신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그 이상 바랄 것이 있느냐 이겁니다. 죽어도 좋다는 겁니다. 내 육신이 물이 되어 흘러간들 무슨 한이 있고, 가루가 되어 날아간들 무슨 한이 있느냐 이겁니다. 세상에는 개돼지처럼 죽어가는 무가치한 인생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개도 안 뜯어먹는 거라구요.
(62-136, 1972.09.17)

공직에서 일하는 것은 부모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귀한 게 아닙니다. 승공연합에서 일하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귀하다고요? 교회의 지역장 지구장, 부모의 판도를 넓혀 나갈 수 있는 전통적인 노선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44-141, 1971.05.06)

4. 목회자의 책임

1) 책임의 동기는 하나님에게 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책임을 지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생각해 볼 때, 부모는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으면 자녀는 자녀로서 그 부모 앞에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정은 사회와 국가 앞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두고 보더라도 그 나라는 세계의 정세, 세계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남겨 주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보더라도 그 세계도 하나의 우주를 지향하는 섭리 노선 앞에 어떠한 단계적인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올라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오늘날 이 땅을 대해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책임을 수행하기에 수고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게 됩니다.
책임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여러 곳이 아닙니다. 개인이 태어나서 책임하는 것도 그 책임의 동기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나라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종적인 기준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져야 할 책임의 동기도 가정에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국가 형성의 동기도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세계가 동기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동기는 전부 다 하나님께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동기의 기원을 찾아보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아니 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동기로 말미암아 천태만상으로 벌어져 우리들 앞에 부여된 그 책임도 하나님으로부터 동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책임과 일치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에게는 마음이 원하는 책임이 있고 몸이 원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원하는 책임은 무엇이냐? 이 모든 책임을 부여한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삼고 그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이러한 책임을 하라고 명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그 명령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성사하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6-212, 1969.11.02)

2)목회자의 책임

우리는 순간마다 책임 없는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책임을 져야 됩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어떤 단체의 책임을 진다 하면 그 단체의 방향을 제시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을 책임졌다 하면 반드시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책임이 벌어지는 것이지 방향도 없이 그저 함부로 하는데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관을 통해 가지고 그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책임적 내용을 지니고 나서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는 책임자로서의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지 못하게 될 때는 그 책임자에게 책임추궁이라는 것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추궁하는 것이요, 시대적으로 추궁하는 것이요, 미래적으로 추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하루의 순간이 얼마나 엄청난 순간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성공이 다른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어떠한 상대적인 물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게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삼은 시간권 내에서 좌우되고 있다 이거예요. 시간권 내에서 좌우되는데, 그때의 방향 설정 여하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천태만상의 변형이, 변한 상태가 거기에서 전개되게 마련입니다.
(68-209, 1973.08.01)

여러분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느냐? 첫째는 영계를 책임져야 되고, 둘째는 세계를 책임져야 되고, 셋째는 후손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오늘날 통일교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복귀의 길이요, 통일교회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길입니다. (24-199, 1969.08.10)

여러분은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하느냐? 참부모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도를 해서 작전을 세워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진리를 보급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보급은 어디서 받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작전은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작전법을 배워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법을 배워서 최고의 작전계획을 세우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내가 지도자의 책임을 졌으니,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단 하나의 책임자이니, 내가 선 이 자리는 참부모의 자리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합하여 작전을 하는 데 있어서 먼저 알아야 되는 것이 하늘의 법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선생님이 경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이니 그대로 실천해 보세요.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해보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금후에 여러분이 가는 곳은 발전할 것입니다.
(46-304, 1971.08.17)

일단 책임을 지면 그는 선생님의 대신자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때의 결정권은 그 책임자에게 있다. 그것을 결정하기 위한 모든 재료는 주위 사람들이 모아다 주게 된다. 그 재료를 근거로 해서 결정하는 것은 책임자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 그러한 중대한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 책임을 가진 사람은 진지한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기의 기분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일을 책임진 지금 중대한 일을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여기에서 틀림없이 하나님은 역사하실 것이지만, 상대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도 역사하신다. 책임자는 그러한 것을 종합하여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한다. (15-191, 1965.10.09)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대번에 '예수님!' 해선 안됩니다. 다리를 놓아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평면적 생활에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서 교회면 교회를 가게 될 때, 그 교회에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도자가 못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지도자에게는 중간다리를 놓아 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32-164, 1970.07.12)

여러분, 내가 통일교회 책임자이고, 여러분은 교회장이예요. 교회장이면, 그 교회 관할의 군이면 군의 저 산마을 혹은 고개 너머 두메산골 깊숙이 세상 모르고 살고 있는 농촌 집을 찾아가서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이 왔노라' 하며 붙들고 눈물 흘려 보았어요? 이놈의 자식들! 자기 발이 닳도록, 군이면 군 전체를 내 목이 터지도록, 내 눈이 안 보이도록, 내 귀가 막히도록 외쳐 보았어? 앉아서 공것이나 바라고 환장한 도깨비 모양으로 뒤척뒤척하다가 사정을 통해 달라고 하는 입장에 서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걸 통하게 하는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는 망하는 것입니다.
'내가 빠져서 슬프고, 내가 들어가서 좋고….' 선생님은 그런 것 안중에도 없다구요. 옛날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을 놓고 뭐 이러다가 다망했어요. 둘 다 다 망했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우리를 위한 나예요! 우리를 위한 나라구요. 그 우리는 통일교회에 한한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우리예요.
(71-129, 1974.04.29)

오늘 우리들이 이 통일의 이념을 앞에 놓고 험산준령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을 버스나 자동차와 같은 이런 입장으로 우리가 대신해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거기에 탄 운전수와 마찬가지예요. 구비구비 어려운 행로를 달리는, 목적을 향하여 가야 할 시간이 결정되어 있고 어차피 그 기간 내에 가야 할 복귀적인 수리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달려가는, 제한된 기간 내에 그 거리를 돌파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운전수라 하게 될 때에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그 이상, 몇 배 이상의 비장한 각오와 비상한 정신력을 거기에 투입하여 핸들을 돌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길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이 상례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알진대는 오늘날 이 국가적인 위기, 세계적인 위기, 만신창이가 되어 나온 모든 현실적인 사태를 바라보게 될 때, 이 길을 멋지게 돌리고 멋지게 꺾어 목적지까지 이끌 수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핸들맨은 어디에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해보게 될 때 이것이 염려되는 것입니다.
아까 협회장도 말했지만 우리가 아니면 이 민족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묻고 대답하면 대답할수록 우리의 두 손과 하나의 정신은 기필코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가는 데 있어서 핸들을 쥔 운전수와 같은 책임을 짊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가는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예요. 꼬부라진 험산준령, 지금까지 역사 이래에 누구도 가 보지 않았던 길, 그 길을 제한된 시간 내에 가야 할 운전수와 같은 책임을 짊어졌다 하게 될 때에 현재 이 순간에 달리고 있을지라도 이제부터 달려야 할 남아진 길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제까지의 모든 것은 지나갔지만 이제부터 가야할 험한 노정이 남아 있으니 앞으로 다가올 그 노정 앞에 내 자신을 염려하고 내 자신을 거기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 내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며 어떻게 수습하여 이 난관을 돌파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개척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예요. 개척하면서 가야 됩니다. 개척하면서 가야 할 이런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152-61, 1963.03.16)

이 한국에 세워질 나라는 어떤 나라냐? 남북이 서로서로 유통하며 교류하게 될 때 공산 국가가 세워질 것이냐, 아니면 지금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그냥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둘 다 아닌 새로운 나라를 추구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때도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가누어 책임져야 할 통일의 무리라면,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얼마나 갖고 있으며, 또한 어느 정도의 희생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결의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임자네들, 자신 있어요?「예」 삼팔선 이북을 넘어가서 이북 5도의 시군을 중심삼고 우리의 기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 아니예요?
인원이 부족한 이때에 누가 저 북한 땅, 정주면 정주의 책임자가 될 것이냐? 생각해 봤어요? 정주 고을이면 정주 고을을 중심삼고 내가 교회장이 되어야 되겠다고 10년, 20년을 준비하고, 그러다 안 되면 후손 앞에 '너,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준비하여 그날을 맞거든 정주 땅에 하늘의 인연을 대신한 교회장이 되어라'고 유언하며 죽을 수 있는 정성을 들이는 여러분이 되어 보았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구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에, 젊은 놈들이 지방에 돌아가 가지고 자기 자식과 여편네나 데리고 히히덕거리며 살게 되어 있어요? 살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죽더라도 나라는 남기고 가야합니다.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나라는 남겨 주고 가야지요. 새로운 결심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저 소만(蘇滿) 접경의 한 지방에 가 가지고 공산당과 이마를 맞대고 아침 저녁 총소리를 들으면서 국경지대의 파수 역할을 하는 교회장이 되어야 하겠다. 나라가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생명을 엇바꾸더라도 그 나라를 사랑하는 충절의 마음은 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만점입니다. 세상이야 몰라주어도 괜찮다구요. 영계에 가면 다 드러나게 마련이라구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사람이 부족한 걸 알아야 된다구요. 허재비 같은 남자라도 나팔을 메게 해 가지고, 혹은 로보트를 만들어 가지고 북한 땅에 다니며 나팔을 불게 하고 싶은 것이 선생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입을 가진, 감정을 가진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것도 20세 30세의 젊은 마음과 몸뚱이를 가지고도 원리 말씀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눈알이 곪아터지도록 밤잠 안 자고라도 공부를 해야 됩니다. 배가 고파서 뼈만 남더라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뼈만 남은 앙상한 몸뚱이가 하늘의 사랑을 송두리째 받을 수 있는 몸뚱이가 될 수 있다구요. 하나님이 그 가냘픈 한 남성이면 남성에게 기대를 몽땅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원수의 땅에 들어가 책임을 하려면, 남한 땅에서 수련을 해야 합니다. 부대껴야 됩니다. 싸움도 해봐야 됩니다. 죽기를 각오하는 자리에서 불충의 도리가 아닌 충의 도리를 남기고, 쓰러져 가는 모습을 세우고도 하늘의 동정은 싫다 할 수 있는 애비가 되겠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러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그런 길을 거치지 않고는 땅 위에 정상적인 전통을 세울 수 없고 인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도 없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길을 닦아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49-112, 1971.10.09)

3)원수까지도 사랑해 주어야 한다

이 우주 가운데 제일 골칫거리가 뭐냐? 제일 어려운 문제가 뭐냐? 제일 큰 십자가가 뭐냐 이거예요. 그게 뭐예요? 사탄이예요, 사탄. 이걸 누가 책임지느냐 이거예요.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할 때, 하나님이 '오냐, 네가 책임져라' 할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거리는 없어질 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사탄을 책임지겠어요?「예」 하나님도 6천 년 동안 사탄의 모가지를 안 잘랐다구요. 6천 년 동안 참소하고 전부 다….
그래 왔으니 얼마나 밉겠어요. 얼마나 밉겠나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라구요.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고통을 당했는데 그런 걸 책임진 통일교회 교인들은 얼마나 고통을 당하겠어요. 여러분이 사탄을 책임지겠다면 사탄이 여러분의 수하에서 술술 순응할 것 같아요? 사탄이 책임지도록 내버려 둘 것 같아요? 어떨 것 같아요? 「순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누가 책임지겠느냐 이거예요. 누가 책임지겠느냐구요. 책임지려면 사탄을 방어할 수 있는 비결로 해야 합니다. 사탄이 하지 못하는 걸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파괴적 존재요, 마수적인 존재라는 것이예요. 파괴하는 존재라는 거예요. 사탄은 선한 것이 있으면 그저 뭐든지 파괴시키려고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못 하는 게 뭐 있어요? 사탄을 이기려면 반대로 악한 것을 우리가 파괴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선한 것을 파괴시키기가 쉬워요, 악한 것을 파괴시키기가 쉬워요? 어떤 거예요? 또 선한 사람이 악하게 되기가 쉬워요, 악한 사람이 선하게 되기가 쉬워요? 어떤 거예요? 「선한 사람이 악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도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들어 버린 대장입니다.
자, 그것 책임질 수 있어요? 「예」 대답이야 '예' 하지만, 그것 생각해보라구요. 생각이나 해봤어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에게 이제 공산당을 전부 다 맡기고 사탄을 전부 다 맡기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인데 받겠습니다'라고 하겠어요? 「예」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공산당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구요. 사탄의 구세주가 된다구요. 이러한 문제에까지 책임의 영역이 확대된다는 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런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모든 원칙을 찾아보게 될 때, 별것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믿어 주고 위해 주고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구요.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져야 된다구요. 그 외에는 가능한 길이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좋아해요? 「예」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 사람을 위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이것은 참 어려운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희생시키기 전에는 어렵다구요.
여러분이 사람을 믿고,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진심에서 할 수 있어요? 할수없어서 하느냐, 진심에서 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느 거예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 생각해 봤어요? 이것은 하나님도 힘든 일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무난히 진심으로 했다고 할 수 있는 실험을 통해서 증거로 세우고 싶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자리, 완전히 위할 수 없는 자리, 완전히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믿을 수 있고, 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완전한 거라구요.
그 심정을 실천한 것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여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했다는 조건의 한시련 장면이라구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러한 심각한 문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드려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책임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자가 되고 싶어요? 「예」 그 일은 힘들다구요. 만일 그 일을 책임지고 해낸다면 그 책임자는 영원히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책임을 지고 있어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책임을 대행하는 메시아가 온다면, 그 메시아는 그런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자가 안 되어 가지고는, 심판만 하는 메시아가 되어 가지고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72-312, 1974.07.14)

4) 책임수행의 마음 자세

임명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맡은 바 책임의 양이 있습니다. 직장에 있어서 과장이면 과장, 부장이면 부장으로 임명받았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맡은 직책에 따라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량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책임량을 완수하는 데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기간 동안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32-58, 1970.06.21)

책임을 지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생명과 바꾸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겠다는 엄청난 해결점이 생기게 됩니다. (19-142, 1968.01.01)

일단 책임을 지고 나면 그다음에는 전투요, 투쟁입니다. 네가 꺾이느냐, 내가 꺾이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됩니다. 그 싸움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에 적어도 반대적 입장에 있는 세 사람 이상을 자연굴복시킬 수 있는 터전을 다져야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수단이나 방법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일생 뜻 앞에 받기 위한 입장에 서서도 안 됩니다. 뜻 앞에서는 오직 주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책임자가 원수 사탄을 대하여 싸우는 것 이상 신념을 가지고 싸워야 하고, 생사의 문제를 제시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1차 2차 3차로 계속해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남한 각지에 몰려가게 될 때에 여러분의 배후에서 하나님이 주시하고 계시고, 천천만 성도와 천군 천사, 그리고 여러분의 선한 선조들이 여러분 한 개체의 움직임을 주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의 운명은 여러분의 두 어깨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운명뿐만 아니라 이 민족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이 여러분의 두 어깨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초점에 자기 자신을 세워서 하나님과 더불어 가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인류와 더불어 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이 가는 올바른 자세 앞에 하나님이 옹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님이 섭리의 중심 개인을 찾으시기 위해 그러한 희생을 하신 줄 압니다. 나를 중심삼아서 내 종족을 찾고, 내 민족을 찾을 수 있는 천적인 대신자로서 가길 원하오니, 아버님이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엄숙한 기도입니까? 이 땅 위의 수많은 지역마다 그런 사람을 세우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그런 엄숙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참되이 주자, 그리고 참자, 승리하자, 인류 앞에 피땀과 더불어 진실을 주자는 것입니다. 참이 아니면 역사에 남지 못합니다.
(14-13, 1964.04.19)

여러분은 책임을 앞에 놓고는 세상에 최고의 불쌍한 사람이 되고, 또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을 다하려고 해야 합니다. '내 할 일을 다해 가지고 패자가 되게 될 때는 나는 그 잔을 달게 마시겠다. 그 이상 능력이 없으니 망해도 좋고, 내가 통일교회의 지도자가 안 돼도 좋고…'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사람을 절대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절대 망하게 하지 않아요. 그건 내가 역사적인 체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압니다. 절대 망하지 않아요. '네가 못 했거들랑 내가 한다. 내가 책임지마' 이러면 벌써 하나님이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갖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날까지 그런 심성을 갖고 일관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런 아들이 낙망하고 절망하게는 절대 안 하십니다. 이것을 내가 체험을 해서 알아요. 비상한 일을 하는 데서 비상한 기적이 벌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람의 마음이나 부모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마음은 마찬가지입니다. 같다는 겁니다. (81-307, 1975.12.29)

자기가 책임 맡았던 부락을 떠나게 될 때, 그 부락에 올 때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한 것을 책임 못 하고 가면, '다시 오겠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고 싶었던 것을 다 못 하고 가니 다시 오겠다'고 하며 눈물 흘리면서 돌아서야 그 사람의 길이 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이구, 이 부락이 악하니까 나 여기서 옮겨 딴 데로 인사이동해 주소' 이것은 잘못이라구요. (웃음) 자기가 좋은 곳으로 찾아가려고 하면 그곳은 누가 책임지겠느냐는 거예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와서 책임질 수 있어요? 자기 보다 잘난 사람이 와서 책임지라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은 더 좋은 곳에 가야 할 텐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부서에서 돌아서게 될 때 자기가 책임을 못 했으면 '아버지여 제가 이제 떠나겠습니다' 하고 자기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이 앞을 가릴 수 있는 마음의 주인공이 되어야 됩니다. 떠나서 오게 될 때는 '하늘이여,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일체의 모든 마음, 지극한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할 수 있는 자리, 하늘이 봐도 그 이상 할 수 없다고 하는 자리에서 떠나게 되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을 다 못 했더라도 자기가 일한 가치 이상을 하늘은 보답해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56-31, 1972.05.10)

묵묵히 우리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책임을 다했더라도 부족함을 느끼고, 좋으면 좋은 것으로서 하늘이 좋아하기 전에 내가 좋아할 수 없고, 나쁘면 나쁜 것으로서 내가 나쁘기 전에 하늘이 나쁠까봐 염려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망각하고 전체를 위해서 충성할 수 있는 실적 기준을 갖고 나가야 된다구요. 그래야만 그것이 하늘을 따라가는 자녀의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5-243, 1965.10.31)

5) 창조본연의 책임을 지는 승리의 용사

앞으로 여러분이 뜻을 대신해서 지방이나 어떠한 장소로 보내지게 될 때,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책임 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명을 맡길 수 없습니다. 자기를 책임질 수 있는 자라야만 다른 책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자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난 다음에야 이 이념을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이념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직까지 나를 책임질 수 있다고 하는 자를 하늘땅 가운데서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을 책임지고 나서면 그것이 출발의 기점이 됩니다. 민족도 세계의 사조도 모두 책임소재의 권내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밥도, 입는 옷도 우리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책임지지 못하면 만물을 대할 면목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전체 앞에 뜻을 책임질 수 있는 자가 되어 주기 바랍니다. 그런 자리에 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대하여 창조주요, 아버지요,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하면서부터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참다운 부모 앞에 참다운 자녀가 되지 못했고, 참다운 주인 앞에 참다운 주인의 것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에 대해서는 절대자요, 인간에 대하여서는 부모요, 천지에 대해서는 참주인이십니다. 여러분은 출발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참아버지요, 참주인이시니, 우리는 이것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주인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절대자에 대하여는 생명을, 참부모에 대하여는 사랑을, 참주인에 대하여는 충성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의 참다운 생명과 참부모의 참다운 사랑과 참주인의 참다운 도리와 인연을 맺지 못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면 모든 이웃과 인연을 맺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스스로 통일의 사도임을 자부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주체에 대한 대상의 가치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불변한 가치의 존재로 공인됩니다. 여러분이 각 지방으로 가게 될 때에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창조주의 입장, 부모의 입장, 주인의 입장을 대신해서 가야 합니다. 만물은 하나님이 없어서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대신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탄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책임져야 합니다. 책임져야 할 곳이 있으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절대자로서, 참아버지로서, 참주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책임을 지지 않으신다면 복귀니 천국이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배반당하고 쫓김을 받더라도 절대자의 입장은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자로서, 아버지로서, 참주인으로서 책임을 지십니다. 여러분도 절대자의 책임, 아버지의 책임, 주인의 책임을 대신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격이 안 된다고 거부하지 말고 아버지로서의 책임,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면을 책임지고 나가시는데 여러분은 한 면이라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지고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만물은 여러분이 어떠한 가치를 지닌 존재인가를 압니다. 환경이 증거해 줍니다. 어떠한 증거를 하는가? 당신은 우리의 생명을 구해 주실 분이요, 아버지의 화신이요, 우리 지방의 주인이라고 증거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맡기고 바치고 싶은 마음이 움직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창조주로서, 아버지로서, 참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대신 진다면 어디 가든지 하늘땅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자의 책임, 아버지의 책임, 주인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을 책임지고 나가면 절대로 배척받지 않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행동과 자기의 생명과 자기의 심정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가 이상사회입니다. 책임을 지고 생명을 각오하고 나가면 동지가 많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의 지역에 나가게 될 때, 생명을 지으신 창조주로서의 책임, 부모로서의 책임, 주인으로서의 책임, 이 세 가지의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절대자의 대신자, 참부모의 대신자, 참주인의 대신자가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이것마저도 못 하면 존재세계에서 추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책임을 못 지겠으면 절대 복종으로 모시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를 책임질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절대자를 대신하고, 참부모를 대신하고, 참주인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는 승리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그러한 존재들을 고대하고 계십니다.
(11-135, 1961.04.07)

5. 임명받은 자의 사명을 대하는 자세

임명받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맡은 바 책임의 양이 있습니다. 직장에 있어서 과장이면 과장, 부장이면 부장으로 임명받았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맡은 직책에 따라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량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책임량을 완수하는 데는 한계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기간 동안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간과 그 양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일생을 70년, 80년, 혹은 100년으로 잡을 때, 이 1세기권 내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다른 사람과 같이 충성을 한다고 할 때, 그와 같이 충성의 양을 채우기 위해서는 남이 열 시간 하면 나도 열 시간 하고, 남이 10년 하게 되면 나도 10년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같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보다 빨리 하려면 열시간 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에 가중된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가령 시간은 열 시간밖에 없는데, 남보다 빨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중된 노력과 정성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촌각을 아끼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촌각이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하루는 빛나는 하루가 될 것이며, 그 하루는 영원한 가치의 세계와 통할 수 있는 것으로 영원한 세계의 인연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임명을 받고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는 반드시 기간이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도 어떻게 지을 것인지, 또 언제까지 지을 것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설계를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어떤 설계 밑에서 착수해야 되는 것처럼, 우리도 일정한 설계 밑에서 임명을 받아 일을 착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일단 착수했으면 주어진 기간 내에 완수해야 됩니다. 주어진 기간 내에 완수하는 데 있어서 그 설계 이상의 완벽을 기해 가지고 기간 내에 완성하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표창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주어진 기간 내에 설계보다도 더욱 완전하게 했다 할 때는, 그것은 정상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비정상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노력과 정성이 가해졌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설계대로 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설계 이상의 완벽을 기하면서도 설계자가 계획한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다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날 임명을 받은 자로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특권이라는 것은 고정된 양, 지정된 기간에 완수해야 하는 특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명받은 자의 특권은 누가 간섭할 수 없는 것, 설계자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절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열시간 동안 같이 일하고 같이 자고 했더라도 그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고, 또 그 일에 고생하고 정성들인 것이 다른 사람의 배가 될 때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결과를 이 우주는 최대로 표창할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갖춘 사람이 남아지는 한, 세계는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이상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운동 경기에 있어서 한번 세운 기록을 깨기 전에는 그 기록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 기록을 두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방향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임명을 받은 자로서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지시받은 양을 주어진 시간에 하게 되면 메달을 탈 수 있으며, 표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사명입니다. 직접적인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못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할 수 없다고 해서 둘이 해서는 안 됩니다. 상을 받을 때 둘이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명령받은 사람은 책임을 자신을 중심삼고 수행하고 싶어합니다. 누가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엄숙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32-58, 1970.06.21)

여러분이 한 생애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어진 사명의 양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일생을 걸어 놓고 책임을 수행하는 입장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양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나는 별수없어. 그러니 노력할 필요도 없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 이 민족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또 세계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하늘땅 앞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이런 마음이 안 돼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은 임명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알기 위해 철학이니 종교니 하는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또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현재의 위치와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방 전후 좌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임명받은 주체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 자체는 간섭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간섭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나타나면 간섭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라, 영원히 사랑하라' 하는 것은 말로만 끝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입장에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해야 됩니다. 거기서 상대적으로 보답되면, 그것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관받기를 싫어하는 것은 완전한 상대, 곧 절대적인 상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자리에서 주장하는 것은 완전한 상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상대가 나타나게 될 때는 전부 다 네 것이요 내 것으로 화하는 것이 인연의 세계입니다. 아무리 잘난 남자나 여자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절대시할 수 있는 완전한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생애를 두고 임명받아 나왔습니다. 그것은 어느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 없습니다. 과거·현재·미래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그 누구도 절대 간섭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기준 앞에 절대적인 상대적 기준이 돼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개인·종족·민족·국가·세계로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 가지고 임명받은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임명받은 양이 크면 클수록,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거기에 대한 기간도 십 년 백 년 천 년의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십 년 백 년 천 년 들여야 할 정성, 또는 수십 대를 거쳐서 이루어야 할 정성의 도수를 일대에 들여야 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런 천년사의 정성을 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32-61, 1970.06.21)

6. 목회자가 가져야 할 내적 자세

1) 맨 밑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 전통적 사상을 세우기 위해 출발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요. 오늘 이 자리에 몇 명이 참석했어요? 「55명입니다」 이 55명도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 각자가 어느 지역이면 지역을 책임지고 나가야 합니다. 지역장이라는 자리에서부터 출발할 것이 아니라 맨 밑에서부터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지역장이 되기 전에 충성된 교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교인이 되면 자기가 지역장이 되기를 원하지 않아도 지역장이 되는 거예요. 금맥이 아무리 땅속에 박혀 있더라도 필요한 사람에 의해 캐져서 제 가치를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존재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우기나 이 통일교회는 영계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깊이 박혀 있어도 쉽게 뽑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내가 이렇게 하면 구역장에서 지역장이 되겠지'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주위로부터 영원히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만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100년이면 100년을 교회를 위해서 한번 살아 보자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는 갑이라는 사람, 을이라는 사람 등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들을 잃어서 불쌍한 사람, 남편을 잃어서 불쌍한 사람, 혹은 먹을 것이 없어서 불쌍한 사람, 입을 것이 없어서 불쌍한 사람 등 천태만상의 불쌍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 누구보다도 가까운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계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34-28, 1970.08.29)

오래 참고 오래 싸우면서 전체를 위할 수 있는 자기의 모습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면 하늘이 자연히 세워 주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가 이렇게 섰다고 자랑해도 안 돼요. 자기가 세워 놓았댔자 넘어진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세워 주지 않더라도 하늘이 세워 주면 반드시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지도자라도 지도자 그 자체가 자기를 세우는 그런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자기를 그 자리에 세우지 않더라도 그 환경이 세워 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됩니다. 그럴 때 거기에 서야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주장해 가지고는 안 돼요. 자기 주장해 가지고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딸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55-242, 1965.10.31)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오면서 그 동안 입고 있었던 그 누더기들을 왜 가지고 나왔느냐? 그것은 팔아 보아야 일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엿장수한테 주어도 엿 반가락도 안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 명주 바지저고리는 전부 다 남을 주어 버리고 왜 그 수의(囚依)만 입고 살아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지면 문적문적 솜과 같이 풀려 나가는 누더기가 무엇 때문에 필요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10년, 1세기, 혹은 수십 세기가 지난 후에는 억천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할 보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예수가 쓰던 젓가락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설사 영국을 준다고 해도 못 살 것이고 미국을 준다고 해도 못 살 것입니다. 이런 말을 오늘날 피끓는 젊은이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천금 만금보다도 더 귀하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까지 그것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겐 양단 치마 저고리 한벌의 가치보다 못한 것이고, 자기 지갑에 있는 동전 한푼의 가치 보다 못한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남겨 놓은 귀한 보물을 통일교회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그 보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자신이 그런 것을 남기기 위해서 이러느냐? 아니예요.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간다면 하나님이 남겨 주기를 바라고, 이후에 후손들이 남겨 주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고 미래의 후손들의 마음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고 후손들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생활관이요, 공직에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치관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내가 고문을 당하여 피를 토하며 쓰러지더라도 '하늘이여, 이 피를 보고 나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마시옵소서. 이것은 부끄러운 피가 될 것이고, 탄식에 젖은 원한의 눈물이 될 것이어늘 여기에 하늘이 동정하는 것을 원치 않사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더라도 기도를 안 하는 것입니다. 심정세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6-20, 1969.10.14)

2) 신념을 갖고 나가야 한다

신념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던 이념에서 나옵니다. 그 이념은 개인만이 아니라 세계를 중심삼고 포괄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즉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을 갖춘 사상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상적인 이념에서 신념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념을 가졌다든가 사상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은 신념이 있어야 됩니다.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신념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40-227, 1971.02.06)

새로운 통일이념, 통일사상을 지니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의 일원으로서 통일사상을 중심삼은 새로운 우주관과 새로운 인생관과 새로운 생활관을 놓고 '이것이 최고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확고하고 강력한 신념에 차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40-227, 1971.02.06)

여러분은 우선 이론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되고, 그다음엔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의 생각이 미치지 않고, 자기의 신념이 미치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남에게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실천을 해서 다져진 기반은, 뿌리를 단단히 박고 이룬 터전은 그 이상의 힘을 가하고, 그 이상의 신념을 가하기 전에는 절대 빼앗을 수 없습니다. (19-39, 1967.12.24)

여러분은 다방면에 그런 자신을 가져야 된다구요. 우선 신념이 앞서야 돼요, 신념! 여러분이 모든 것을 많이 해봐 가지고 '내가 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 가지 사건을 주입하고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자체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디든지 적응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훈련은 손해 같지만 그것은 차후에 자기의 소유를 결정하는 하나의 부(富)의 기원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일식주의(一食主義)로 한 4년 동안 훈련시켰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다구요. '밥 한끼 먹고도 산다. 4년이 아니라 10년이라도 산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게 되면 밥 한끼 먹어도 안 죽는다구요.
(65-301, 1973.03.04)

어떤 일을 하든지 신념이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임지에 나가서 고생을 하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신념 가운데서 생활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아슬아슬한 장면을 좋아합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일을 할 때에도 그런 아슬아슬한 고비를 잘 넘겨 승리하기를 하늘과 땅과 온 만물은 바라고 있습니다.
투망으로 고기를 잡을 때, 추가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야 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추와 같은 입장이니 사탄권 내에 있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늘편으로 이끌어오고 싶은 마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12-17, 1962.07.04)

여러분들이 뜻을 대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 이상 충성을 하겠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면 모든 것이 순순히 풀려 나간다 이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만일, 선생님이 지금까지 10미터 깊이로 들어갔는데 여러분들은 5미터밖에 못 들어갔다 할 때는 사탄이 치는 거예요. 알겠어요? 평면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10미터 지하로 들어간 기반을 상속받았으면 여러분들은 11미터에 들어갔다가 올라와 가지고 10미터에 머문다면 괜찮다 이거예요. 미치지 못하고 머무를 때는 이게 수평이 아니라, 평면이 아니라 각(사선) 이 벌어진다 이겁니다. 똑똑히 알아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이 닦아 놓은 그 기반 위에 수평이 되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사상과 전통 그리고 실천력, 이것을 올바로 교육받아야 돼요. 실천력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114-53, 1981.05.15)

3)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미욱해야 된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미욱해야 됩니다. 충신들은 어떻게 보면 미욱한 사람들입니다. 조금은 미련해 보입니다. 곰 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팔을 잘리고도 '아이구, 여기 덜 잘랐다. 더 잘라라' (웃음) 하는, 그와 같은 미욱한 점이 있어야 합니다. 곰이나 멧돼지는 총에 맞아서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입으로 잘라 버리고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걸리적거리는 것을 잘라 버립니다. 그런 미욱한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충신 열사는 미욱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조금은 어리석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같은 사람도 세상적으로 보면 바보가 아닙니까? 나이 30도 못된 젊은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돌팔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했습니까?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처량합니까? 가만히 계실 일이지 뭘하려고 돌아다니면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야단하다가 나중에 그렇게 죽어가느냐 말입니다. 가만히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잘난 충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잘난 충신은 기회주의 충신입니다. 맹목적인 충신은 무지하고 미욱하며 곰 사촌 같은 사람입니다. 미남자 충신은 많지 않습니다. 미인 열녀도 많지 않습니다. 열녀 문의 주인공을 보게 되면 대개 중간 이하의 얼굴을 가진 사람입니다. 잘생긴 사람들은 냄새를 풍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사람들은 모두 못난 사람들입니다. (웃음) 그러므로 나같이 마음대로 생긴 존재야 쓰레기로 사라진다 해도 좋다는 그런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골짜기를 메우는 매축공사를 하실 때, 맨 첫 삽에 떠져서 부어지는 그 흙이 되게 해 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디에 묻히겠습니까? 맨 밑창에 묻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축하는 데 쓰여진 흙 가운데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면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웃음)
(26-142, 1969.10.19)

여러분에게는 단 한 번밖에 없는 7, 80년 생애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수고의 노정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영원에 비하면 숨 한 번 쉬는 시간도 안 되는 똑딱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영원은 얼마나 길고 깁니까? '여-ㅇ'해 가지고 '워- ㄴ'할 때까지 영원히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웃음) 그럴 수 있을 만큼 길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권 내에서는 내가 호흡하는 회수도 다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에 몇번 쉬고, 하루에 몇 번 쉬고, 일년에 몇 번 쉬고, 십 년에 몇 번 쉬고, 일생동안 몇 번 쉰다는 것을 계산해 낼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짧은 기간에 헐떡거리고 탄식하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순간입니다. 매를 맞을 때 '쳐라, 한번 쳐 보아라'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매를 맞을 때 이를 악물고 그 고비를 넘어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뜻을 위해 이를 악물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길다면 길겠지만 그것은 한때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무자비하게 채찍질하여 어려운 자리를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참고 나갈 수 있는 자신이 되기 위해 그런 일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려울 때 인연을 잘 맺어 놓으면 기쁠 때는 맺지 말라고 해도 맺어지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쁠 때 인연을 맺으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한 인연은 순간적인 인연으로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서로 생사를 결해 가지고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지경에서도 서로 내가 죽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리, 즉 생명을 엇바꿀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길을 동반하며 어려움을 같이 겪은 사람들은 기쁠 때에 인연을 맺을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울 때에 맺은 인연과 기쁠 때에 맺은 인연은 그 맛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26-140, 1969.10.19)

4)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참았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여러분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하고, 입이 주먹만하게 나오고…. 그럴 때 하나님은 얼마나 참았겠어요? 그와 같이 우리도 참아야 돼요. 천년 만년을 참아가야 돼요.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니예요. 둘 다 좋게 될 때는 싸우는 거예요. 하나가 망할 때는 싸워서는 안 된다구요. 싸우더라도 내 편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싸워야지, 원수되기 위해서 싸워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이 얼마나 참아 나왔느냐? 이 눈으로 보기 싫은 것을 얼마나 봐 가면서 참아왔느냐? 듣기 싫은 것을, 말하기 싫은 것을….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세계 사람들이 다 욕을 해도 참는다는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그 참음을 내가 배울 것이다 할 수 있는 결심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어째서 참아야 되느냐? 전부 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과 같은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참음을 배워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하나님의 참음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다 이거예요. 역사 이래에 인내의 왕이 돼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이래에 인내의 왕이기 때문에 나도 인내의 왕이 되어야 됩니다.
보라구요. 하나님 이 얼마나 참았겠느냐? 자기의 아들딸을 죽이고 이 세계의 왕을 죽이고, 하나님의 이상을 다 깨뜨린 원수는 원수 중의 원수예요. 그런 원수를 대해 참아 나온 하나님이예요. 여러분들도 그걸 원해요? 「예」 그래 참는 것을 원해요, 사랑을 원해요?「사랑요」(웃음) 사랑만 원해 가지고는 안 돼요. 참는 것을 원치 않고는 위대한 사랑이 있을 수 없어요. 이제는 알았지요? 「예」
(104-33, 1979.03.25)

나는 참는 거예요. 이놈의 귀야, 잊어버려라! 이놈의 눈아, 잊어버려라! 이놈의 속아, 잊어버려라! 마음이 아파도 참아라! 누구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내가 슬프더라도 슬픈 내 자신이 하나님에게 위로받을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을 위로해야 될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이 일을 하지 않고는 기도 할 수가 없다구요. 기도가 안 나와요. 그렇게 걸어온 길이 통일교회가 걸어올 길이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걸어온 길임을 알아야 된다구요. 왜 그래야 돼요? 다른 길은 없다구요. 알아 보니 그것이 최단거리이기 때문이예요. (94-231, 1977.10.01)

자, 그런 점에서 보면, 종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선을, 최고도의 선을 표준함과 동시에 세계적인 넓은 판도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주장해 나왔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남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구요. 어떤 것이라도, 어떠한 환경이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 말이라구요.
그건 신앙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종교의 위대성이더라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발전한다는 이런 이름이 남아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구요. 자, 반대하고 압력을 가하면 현재의 위치에서 들어가 가지고 이제 그냥 스톱(STOP)되면 그만이지만, 들어갔다가도 또 나온다 이거예요. 들어갔다가도 또 나온다 이겁니다.
이것은 종교만이 아니라 일반 우리 생활에도 마찬가지라구요. 강한 사람이, 질기고 강한 사람이, 또 인내력이 강한 사람이 남아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열 번 쓰러지더라도 열 번 일어설 수 있다, 그래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렇지 않으냐구요? 「예」
여러분이 생각해 봐요. 기독교가 얼마나 질겼느냐 이거예요. 4백 년동안 로마박해시대에 저 지하에 들어가 가지고 고생을 하면서도 그걸 뚫고 나가려고 투쟁했다구요, 계속적으로 그런 것을 선생님이 생각하면,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세상에 살아 남아 있느냐,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환영하는 곳에서 남아지는 것은 그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를 반대하고 원수시하는 그곳에서 어떻게 남아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제아무리 압력을 가하더라도, 눌리면 눌릴수록 옆으로 퍼지든가, 눌리면 눌릴수록 안으로 들어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눌리면 눌릴수록 자기가 축소되든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옛날에 생각했다구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30년 동안 핍박을 받고 나왔지만 잘 뚫고 나왔다는 거예요. 한 번 때린다고 해서 위축돼 가지고 아이쿠…. 그건 작전상 위축이지요. 또 작전장 뚫고 들어가지요. 때나 환경만 되면 그 이상 올라가겠다는 그런 내적 마음이 언제나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자, 그러니까 여러분이 나무 씨, 열매 씨를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여기 한대지방에서는 열대지방에서 자란 소나무의 씨가 자라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그걸 열대지방에 심었다가 한대지방에 심었다가 이렇게 옮겨 가면서 키우게 된다면 어디서든지 자란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어떤 나무든지 어떤 씨든지 그 환경에 대해, 자기가 갖춘 그런 환경에서만 자라서는 안 돼요. 그것이 환경을 옮기더라도 어디서든지 자라려면 그 모든 환경의 요건을 전부 다 흡수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제압하든가 하는 두 가지의 힘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76-310, 1975.03.12)

통일교회는 찌들어 마르고 꼬부라질 수 있는 끄트머리에 가더라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큰 것을 위해서 일한다. 세계를 위해서 일한다' 라고 해야 합니다. 죽더라도 그렇게 죽어야 됩니다. 그렇게 죽은 단체가 어디 있어요?
지금 우리 통일단체가 전세계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참고 견디면 별수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참고 견디면 복받는다'고 하지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알기는 아는군요. 그것을 알기는 아는데 그렇게 못 하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망하지는 않습니다.
참고 견디는 데 있어서 100점의 표준이 어디에 있느냐? 그 기준은 목을 내놓는 것입니다. 목을 내놓고 죽는다면 어머니 아버지는 엉엉 울면서 '조금 더 살지 왜 그래?' 하고, 동생들은 '아이고 형님 누나, 왜 지금 죽어요?' 하며 온 식구가 야단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리보다도 고독단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고독단신이라도 자기가 나가 놀다 죽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때려죽이려고 하는 자리, 때려죽이려고 하는 패가 열 사람보다도 더 큰, 나라가 움직이고 세계가 움직여서 때려 죽이려고 하는 자리,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 자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44-22, 1971.05.04)

세상에 있는 지도자로부터 '여러분이라면 틀림없다' 이런 말을 듣게 될 때가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로서 길리워지는 그 입장으로서 나라를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아 참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참고 견디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결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런 형제와 만나고 헤어질 때는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배웅하기 위하여 고개까지 올라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심정적인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을 봤을 때에는 두번째에 가선 서로 껴안고 눈물로 시작한다. 이런 심정을 중심으로 한 눈물의 장소는 거룩한 성지의 기준으로 됨에 틀림없다. 거기를 그 정도의 느낌이 없이 밟는 자는 떠나라! (15-142, 1965.10.03)

제1차에 10이라는 힘과 재력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여 실패했다면, 2차에는 100의 힘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만일 이때에도 실패하면 다시 배전(倍前)의 힘을 가지고 제3차, 제4차, 계속해서 시도해 나가라. 열 번하는 동안 기필코 한 번은 성공할 때가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1차, 2차, 3차의 시도에 실패하면 후퇴하여 버리지만,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몇 차례의 실패가 있더라도 또다시 출발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산돼지 사냥을 해보면 재미있다. 처음에 사람들이 산등성이를 향해 떠날 때는 모두 다투어서 앞장서려고 있는 힘을 다하지만, 몇 고개를 넘고 나면 지쳐서 '뒤떨어지지 않고 가기만 하면 되겠지' 한다. 그러나 더 숨이 차고 힘들면 '좀 쉬어 가면 어떨까?' 하다가 조금 더 가면 '이제 그만 갔으면….' 하는 표정을 짓게 된다. 산돼지는 바로 이때에 도망쳐 버리는 것이다.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을 때에도 처음에는 온 바다 고기를 다 잡을 듯하지만, 온 정신과 힘을 들여 몇 차례 그물을 던지고 나면 처음의 기개(氣槪)는 사라지고 지루해 한다.
처음부터 좋은 일을 바라는 사람은 큰 사람이 못 된다. 좋은 일이 더러 나타나서 남들이 좋아할 때에,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찾아 일을 하게 되면 마침내 큰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3, 4년 동안에 이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7년 아니면 70년이 연장 되더라도 꾸준히 가겠다고 하는 기백이 필요하다.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범위를 더 넓혀 나가야 하는 것이다.
(14-73, 1964.05.23)

5) 하늘의 위신을 지켜 나가야

선생님이 산악지대라든가 혹은 평야라든가 삼천리 반도를 편답하고 다니면서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가고 오는 그 걸음걸이를 그날에 있어서의 그것으로 그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연속적인 것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행동하는 그 분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땀을 흘려도 한 방울 더 흘리고 싶고, 노력을 해도 한 걸음 더 노력하고 싶다 이거예요. 만일에 거기에 힘이 모자라거든 마음으로라도, 마음으로라도 더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싸워왔다는 것입니다. 연속적인 싸움을 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것이 부족하거든 이것으로 보충하여 그 앞에 악의 세계의 악인들이 평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어떠한 자리에 가더라도 필요한 것이 하늘의 위신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위신, 통일신도의 위신,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움직여 왔던 우리 성도들의 위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교육을 받고 사탄세계와 대결하여 승리의 깃발을 모방하고 나선 우리의 위신, 이 위신은 세상 어떠한 장병들이 갖춘 위신이 아니예요. 현재에 있어서 선진국으로서 자랑하고 있는 미국의 어떠한 군대의 위신이 문제가 아니예요. 절대적인 위신, 이 위신을 위하여….
이 위신 가운데에는 역사적인 반응이 살아 있고, 내재된 반응이 살아 있습니다. 그 위신을 기반으로 하고서만이 이 세계사적인 새로운 길이 영원을 향하여 직코스로 개척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마음에 잊어버려서는 안 돼요. 그러면서 이것은 계속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못 가게 될 때에는 반드시 후계자를 여기에 대체시켜 놓고 가야 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이런 정신과 이런 사상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분들 앞에 부탁해 놓는 것입니다.
(152-66, 1963.03.16)

6) 반드시 결과를 동기에 연결시켜야 한다

뜻은 어떤 개체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목적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무를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이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보면 잎이 있기 전에 가지가 있었고, 가지가 있기 전에 줄기가 있었으며, 줄기가 있기 전에 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뿌리도 필요 없고, 줄기도 필요 없고, 가지도 필요 없는 잎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 자체도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나무로 완성을 하려면 각각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일생을 거쳐 나오면서 어떠한 영광을 얻게 되면 그것을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하늘이니 결과를 하늘에 연결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하루 생활에서 책임완수라는 목적을 중심삼고 볼 때에, 반드시 결과를 동기에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동기와 결과를 일치하게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회 환경을 보면 이것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180도 다르니만큼 탕감을 위한 조건을 세워 가지고 어떠한 기간 동안 그 환경을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도의 길에서 정성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영적인 섭리 가운데서 자기 나름대로 무엇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영적으로 그런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인 것이기 때문에 근본이 되는 원인을 추구해야 됩니다. 그 원인을 추구하는 데는 자기를 중심삼고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그 계시는 하나님과 심정일치가 되고 인류의 참부모와 심정이 일치된 것이 모체가 되어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원인은 알지 못하고 결과만을 붙드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뭇가지와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결국 비참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책임완수를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삼자 일치점을 찾아야 됩니다. 삼자가 완전히 일치되지 않고는 책임을 완수했다 하더라도 완수한 그 책임의 결과는 하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든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혹은 골고다 산정에서 죽음길을 가면서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의 남자로서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셨으니,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절대적인 심정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심정으로 복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었느냐? 그것은 인류의 부모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엄숙한 과제를 놓고 소망하면서 거기에 마음을 일치시켜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원리적인 복귀노정에 예수님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시대를 거칠 수 있는 섭리의 손길을 펴실 수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동기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고는 책임을 수행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부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있는 것이요, 부모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자녀의 입장에 있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24-135, 1969.07.20)

오늘날 우리들은 지금까지의 자기의 관념과 의식 전체를 초월하여 가지고 하나의 기준 앞에 수습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각자가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이켜 보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평을 하고 어떤 사람은 본부에 대해서 별의별 말을 다 하는데,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24-135, 1969.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