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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牧會者의 使命

1. 참목자로서의 목회자의 사명

'예수님은 어린양이다' 하는 말을 우리는 배우고 있다구요. 또, 어떤 때는 '목자'라는 말도 우리는 배우고 있다구요. 순종할 줄 아는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순종시킬 수 있는 법을 알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내가 대접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대접하러 왔다'는 말도 한 것이라구요. 여러분도 그렇다는 거예요. 어떤 지도자가 있으면 그 지도자가 책임을 다하고 당당한 중심적인 자격자일 때 거기에서는 불평없이 머리를 숙이고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게 따라가는 전통을 이어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평지를 여기에서 새로이 접하는 거예요.
거짓 목자는 양을 몰고 가더라도, 몰고 가는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양의 생명을 노리고 그 자체에 피해를 주기 위해서 나타나는 거라구요. 선한 목자는 바로 그 반대입니다. 어디로 끌고 가든지 양에게 좋고 양을 위해서 끌고 간다고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는 선한 목자가 되는 것이요, 또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의 무리가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양떼 가운데서 따라가는 도중에 '야야, 우리 가지 말자' 이러는 양이 있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양이 아니라 염소가 되고 산양이 될 수밖에 없다구요.
순응과 불평을 중심삼고 볼 때에 참과 접할 수 있는 것은 불평이 아니라 순응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교만과 희생이 맞부딪치게 될 때, 여기에 교만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이 주체로 남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강제와 순종이 맞부딪치게 될 때 어느 것이 주체로 남아지느냐 하면, 강제는 물러가고 순종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게 볼 때 성경이 가르쳐 준 희생이라든가 온유겸손이라든가 순종이라든가 복종이라는 말은 쉬이 하나 만드는, 새로이 모이는 무리로 하여금 새로운 혁명을 제시하기 위한 중요한 제언이요, 중요한 신조요, 중요한 강령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내세울 수 있다구요.
(66-58, 1973.03.17)

여러분 앞에는 가라지와 참곡식이 있을 것입니다. 참목자와 거짓 목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그것을 바로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참목자는 자기가 참목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나 묵묵히 하나님의 뜻과, 모든 만상을 자신의 마음에 품고 나아갈 뿐이지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 악당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변명하치 않았음을 여러분은 돌이켜 보아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끝날의 어느 한때 어느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분별할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때를 맞이할 인간에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나서면 극심한 혼란과 혼돈이 일어나 누가 참목자인지 거짓 목자인지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조용히 밀실에 들어가 스스로 기도하여 판단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참아들은 아버지가 자랑해 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의 자리에 섰다 할지라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오리혀 스스로 낮추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보게 될 때에도, 자신은 모르지만 선생님이 그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영적인 면에서 혹은 실체적인 면에서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210, 1957.11.01)

끝날을 맞이한 여러분은 그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만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 만민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즐기며 참목자로서 기뻐할 수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어느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여러분 스스로의 숨은 정성의 선물을 아버지 앞에 바치는 양의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절도와 강도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기 것 아닌 것 가지고 자기 것으로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원리를 이용하여 자기네들 것인 양 막 써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것으로 받았으면 하늘 것으로 돌리고 자기 것으로 받았으면 자기 것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바른 인간입니다. 하늘 것을 자기 것으로 이용하는 강도 절도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아벨적인 존재로 서기 위한 어떤 조건을 가져야 합니다. 참목자의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참열매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참목자가 기뻐하고 즐길 수 있는 참열매·참곡식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3-212, 1957.11.01)

여러분이 예수님을 양치는 목자, 혹은 선한 목자로 비유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평화시기에는 목자가 양을 몰고 갈 때 선두에 서서 이끌고 가지만, 위험한 시기에는 양을 앞세워서 몰고 갑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탄세계를 뒤에 두고 싸우기 때문에 그들을 앞에 세워 몰고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는 사람은 결코 하늘 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개인이 넘어야 할 고개를 넘어야 되겠고, 가정이 넘어야 할 고개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31-14, 1970.04.08)

눈물이 없는 지도자를 만나는 교단, 민족, 세계는 망할 것입니다. 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수는 교단을 부둥켜 안고 울었으나 교단으로부터 쫓김받았습니다. 민족을 품고 울었으나 민족으로부터 배반당했습니다. 세계를 걸머지고 피땀 흘리며 울었지만 세계는 몰라주었습니다. 참목자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참친구, 참스승이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4-166, 1958.04.06)

2. 의사로서의 목회자의 사명

여러분, 지금 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되면 다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요즈음 불치의 병은 암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에 걸렸다 하게 되면 그를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합니까? 저 사람은 마지막 길을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타락에 의해서 생긴 병은 그것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그 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주사와 약이 있어 가지고 그 병을 고치는 입장에 선다면 그의 부모나 형제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시간을 다투어 그 약을 투약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원리운동이라는 것은, 죽을 사람, 그야말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하나님이 볼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와 같으나 병에 걸려 죽게 된 사람들에게 바쁘게 약을 투약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6천 년 기나긴 세월 동안 인간이 이 병에 걸렸지만 고치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약을 찾아 본 사람도 없는 불치의 병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있어서 이들을 살릴 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시겠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은 전세계 인류를 살려 주고 싶어할 것입니다. 원리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명을 받아 가지고 그런 병자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주사를 놓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원리 말씀을 받으면 주사를 맞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오고 안위가 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그 형제가 사지에서 살아나고, 형님 혹은 누나 형수가 살아난 거와 같은 입장에 섰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기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지에 있던 사람이 자기가 한 번 걸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악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상대적인 목적을 위해서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주사를 주는 데는 막 줄 수 없습니다. 생명을 다루는 것은 엄숙한 것이기 때문에 엄숙한 자세로 천명에 의하여 생사를 판결하는 그런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자각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약을 먹으면 살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슨 약이든 세상에서 만든 약은 다 먹어 봤지만 효과가 없기 때문에 약을 안 먹겠다고 할 때에, 진정 이 약을 먹으면 낫는다고 생각하는 여러분의 표정이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지금까지 일생을 통해서 만나기를 바랐던 그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는데 그 시간에 자기가 도와주면 사지에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느냐, 이 사지에 있는 사람을 구해 주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는 수십 년만에 만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제쳐 놓고 사지에 있는 이 사람을 살려 주는 것이 인생의 도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세로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모시고 생명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이런 엄숙한 심정을 가지고 나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같이할 것이며 상대는 나에 대해서 반항하지 못하는, 무엇인지 모르게 눌리는, 무엇인지 모르게 끌리는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69-158, 1973.10.31)

통일교회는 지금 전염병이 세계에 널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고쳐 주자 해서 전부 다 통일약국을 차리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놀음하고, 조그만 녀석, 중간 녀석, 큰 녀석 할것없이 전부 다 병을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에….병이란 무슨 병이냐? 약병이라구요. 무슨 앓는 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사기를 들고 주사약병을 들고 삼천리 반도에 나가, 안 맞으려고 하는 걸 붙들고 놓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 안 듣게 되면 '이렇게 해야 낫는다. 절대 손해 안 날 테니 한 번 맞아보라' 하여 놓아 주는 것입니다. 그래 한 번 맞아 보니 옛날보다 기분이 좋으니까 그다음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 놀음을 하려니 통일교인들은 삼천리를 밤낮없이 부산스럽게 그저 뛰는 것입니다.
자, 그것은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죽을 병든 사람을 고쳐 주는 날에는, 죽을때도 '아이고, 그 선생님!'하고 찾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 의사 선생님이 잘해서 죽을 병을 고쳐 주게 되면, 다시 또 죽을 병이 들어서 죽게 될 때 그 의사 선생님을 부르게 돼요. 안 부르게 돼요? 부르게 되지요? 그보다 더 독한 병이 걸려도 '아이고, 세상에는 아무 선생님밖에 없어. 다시 나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며 구주로서 부를 수 있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패들에게는 선생님이 무슨 약을 주었는지 모르겠다구요. 통일교회의 약을 먹고 좀 나은 사람들은, 죽을 병이 들게 되어도 '선생님-' 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그때 병이 다르게 되면 거기에는 다른 처방이 나오게 될 겁니다. 통일교회 처방법이 한 가지만이 아닌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삼천리 반도, 세계가 이렇기 때문에 세계로 뻗어 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63-L8L)
(63-176, 1972.10.14)

우리는 돈벌기 위한 의사가 아니라구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의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그러니 우리 패들은 험악한 병, 병 중에서도 제일 낫기 어려운 병만 점령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럴수록 명의 (名醫)가 되는 거예요, 명의가. (87-85, 1976.05.09)

여러분이 명의가 되려면 많은 문제에 부딪치며 연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을 대할 때마다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그 생명의 동향에 대해서 검토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할 때 얼마나 생명을 중요시하면서 해봤느냐 하는 것을 반성해 보자는 겁니다. 의사에게는 자기가 아프더라도 아픈 사람이 방문을 하면 그를 위해서 고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병은 나밖에 고칠 수 없다고 하게 된다면, 그리고 수술을 해야 된다면 칼을 들고 자기의 병을 잊어버리고 몇 시간이라도 그 생명을 위해서 순응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기술을 투입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가 아니냐. 그런 의사는 의사 중의 참된 의사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수술을 끝내자마자 의사가 죽었다 하더라도 그 의사는 의사로서 참다운 생애를 마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해서 그 병을 고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생 동안 그 은덕을 잊지 못할 것이고, 그러한 사실을 자기의 후손에게 유언으로까지 남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장래에 지도자가 될 때에는 진정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그와 같은 의사의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 병든 사람의 심령 상태가 저하되게 될 때에는 밤이나 낮이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밤을 새워 가면서 그 사람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면서 그 사람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 지도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살려 주기 위해서 며칠 밤을 새워 봤느냐?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바쁜 걸음을 해봤느냐? 그런 것이 앞으로 여러분들이 영계에 가게 되면 표창의 대상이 될 것이고, 하나의 인격적인 기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명의가 되고 싶어요, 그렇지 않은 의사가 되고 싶어요?「명의입니다」그러려면 연단해야 됩니다. 그것을 할수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심을 가지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이러한 운동은 많은 사람이 해야 됩니다. 아, 병원을 차렸으면 사람이 많이 와야지요. 많이 오게 만들어야지요. 여러분이 많이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병이 난 사람이 '한번 그 병원에 갔는데, 주사를 놓을 때 막 놓더라' 하게 되면 다시 갈 게 뭐예요. 지금 병이 얼마만큼 나아가는 것도 약을 잘못 쓰면 거꾸로 뒤집어 박는다 이겁니다. 원리 말씀을 하더라도 이 말을 상대가 받는지 안 받는지 봐 가지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제일 기쁜 말이 무엇이냐 하면, 의사가 '당신 이렇게 이렇게 아프지요?' 하면 제일 기뻐하는 거라구요, 말은 하지 않아도….
(69-160, 1973.10.31)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인류에게 사랑의 주사를 놓을 의사요, 간호원이예요. 사람들이 싫다고 욕을 하더라도 상관없이 해야 되는 거예요. 애들이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가 되면 소동이 벌어진다구요. (웃음) 그래도 주사를 놓아야지요. 싫다고 다들 그러지만 곧 알게 된다는 거예요.
아픈 사람에게는 주사가 필요한 거예요. 처음에는 박해를 하겠지만 후에 병이 나으면 여러분을 이해할 거예요.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반대한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과하게 되는 거예요. 나로 말미암아, 무니로 말미암아,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자, 사랑의 주사기를 꽂는 데 거꾸로 꽂아서는 안 되겠어요. '하나님의 심정!' 하고 꽂아야 돼요.
(98-79, 1978.04.16)

3. 개척자로서의 사명

역사과정을 두고 보면 역사의 흐름이 암담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역사를 창조해 가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시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시대에 있어서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내자가 될 때까지는 반드시 개척자의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어떤 목적을 향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찾아가는 데에는 고역 속에서 신앙과 목숨까지 걸어야 할 투쟁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개척자가 가는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반드시 거기에 비례해서 모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목적지를 향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타개해 가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개척자의 명분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개척자를 원하는 것은 학생이 선생과 같은 안내자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국가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도 반드시 안내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역사상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추진해 나갔던 모든 일을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새로운 목적을 추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려운 사명을 짊어진 개척자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환경적인 여건들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류를 구원하는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안내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6천년의 기나긴 역사노정을 두고 볼 때, 뜻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 섭리시대로 그 단계가 한 단계씩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거기에 비례하는 개척자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요, 안내자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아담가정에 있어서도 아벨이 그 시대의 가정을 복귀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난 후에야 안내자의 사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입장이 아닌 비정상적인 입장에 서더라도 불리하게 밀어닥치는 환경 앞에서 밀려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타개하며 자기가 주도적인 입장에 서서 새로운 행로를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치시켜야겠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개척자의 사명을 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환경적으로 닥쳐 오는 모든 어려운 여건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다각적인 면으로 극복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개척자가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의 사명을 완수한 입장에서 안내자의 길을 가야만 올바른 안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가정을 보게 되면 노아도 그가 살던 시대를 대표하여 개척자의 사명을 거친 후에 하늘의 안내역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개척자의 사명을 거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상대적인 권한을 갖추어 개인이면 개인, 사회면 사회에 대해서 하늘의 안내역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개척자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내자의 책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가는 데에는 반드시 스스로가 탐험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개척적인 내용을 실지로 겪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하늘과 땅으로 분립된 두 세계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의 세계로 귀결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척자의 사명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동반할 수 있는 모험적 과정을 거쳐서 모든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상대적 권한을 갖추지 않고는 두 세계를 통합해서 하나의 기반을 마련해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결정권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역사적이고, 세계적이고, 우주적인 안내역을 맡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내자의 자리를 완전히 갖추어 가지고 전체를 대표하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올바른 인생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지도자의 일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라는 것은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중심삼고 전체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역사적인 사정을 풀어가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지도자로서 결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30-93, 1970.03.17)

따라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선두에 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이어받아 가지고 숭상하면서 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역사가 없는 자리에서 역사를 창건해 나가는 사람이 개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간다고 하는 사람은 개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따라가는 사람이요, 본받고 가는 사람입니다.
개척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방향입니다. 자기가 그릇된 역사의 인연에 결부되게 되면 그 자신은 자연적으로 파탄되는 것이요, 방향이 잘못되어도 그 자신은 산산조각이 나서 그 생명의 밑바탕도 건질 수 없을 만큼 파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에게 신앙길이 있다면 그 신앙길은 절대적인 신앙길일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 길을 찾기 위해 검불도 구원의 줄로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역사도 없고, 무엇을 본받을 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실체이며, 자기 자체가 승패의 결정을 마련해야 할 입장이니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그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45-315, 1971.07.11)

가나안 복지를 향해 걸어가는 40년 광야노정에 있어서 나날이 지나가는 세월과 더불어 흘러가선 안 됩니다. 새로운 날을 준비해 가지고 전진하는 무리가 되지 못하면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개척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개척자는 어려운 환경을 뚫고 나가 내일을 향한 소망 앞에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1986.05.06)

역사시대에 있어서 '나는 세계를 위한 개척자다'라고 하며 나선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역사의 수난기를 도피하여 역사의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는 역사 앞에 규탄받아야 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개척자가 되고, 또 역사 앞에 새로운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수난길을 자기의 당연한 운명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팔자로 생각하고, 그것을 못 하게 될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며 그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45-303, 1971.07.11)

보다 가치 있는 개척자는 어떤 사람이냐? 현실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현실보다도 미래에 무한한 가치를 두고 거기에 전심을 쏟고, 거기에 생명을 걸어놓고 무한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길이 있어도 그것을 응당한 일로써 받아들이기를 결의한 사람들만이 개척자로서 역사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현실기준과 더불어 미래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언제나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45-312, 1971.07.11)

오늘날의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막강한 힘이 소모될 것입니다. 전쟁을 해결하는 데도 그 이상의 힘이 필요한 것같이 온 우주를 인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힘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투입된 힘을 그 시점에서 단체에, 혹은 역사시대에 그대로 남겨 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험을 하며 투쟁하고 개척하여 이루어 나온 모든 결과는 소모시킨 힘에 비례하여 나타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비례하여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백을 소모시켰으면 반드시 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열을, 혹은 하나를, 혹은 하나의 소득도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척자의 생활은 소모전과 같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소모전으로써 개척자의 길이 타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의 한 기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모되는 시간의 연속이요, 소모되는 생활의 연속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소모시킨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는 사람은 개척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30-98, 1970.03.17)

여러분들은 심정세계의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개척자가 가는 길은 극복과 인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생활철학입니다. 그런 자리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들고 고달픈 자리예요. 기진맥진할 정도로 고달플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 하나 쓰러지는 것은 좋지만, 아버지여! 이 땅위에 저와 같은 사람이라도 없다면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제가 제1의 소망이 되지 못할 때, 제2, 제3의 소망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아들딸이 없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알게 되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라는 새로운 종교를 중심삼고 개척자의 깃발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런 개척자의 사명을 하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또 같이하셨구나' 하는 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지(死地)의 교차로를 거칠 적마다 나는 이미 버려진 몸이라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더 염려해 주시고 가누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더 염려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효도하는 길은 부모에게 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가는 그 길이 효를 증거하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31-54, 1970.04.12)

개척자는 미련하고 무식한 곰 같아야 됩니다. 곰의 사촌이 다 되어야 합니다. 곰은 나무에 올라갔다 떨어지면 아프더라도 또 올라갑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여전히 나무 밑인데도 말입니다. (웃음) 내가 곰은 못되어 봤으나 말은 들었습니다. 곰처럼 미련한 끈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미흡한 면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미흡한 사람들의 대장입니다. (28-209, 1970.01.11)

여러분은 개척정신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결의를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차분한 사람은 개척정신이 없습니다. 의분에 불타는 사람, 의분하여 자기의 생명이 아까운 줄 모르고 원수를 갚기 위해서 결의한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해 주시는 겁니다. (20-157, 1968.06.04)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개척하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떠한 길을 닦아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삼천만 민족과 30억 인류를 위한 개척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곡괭이와 쇠스랑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후손들로부터 이것은 조금 더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하는 평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러한 길을 걸었을까?' 하고 머리를 들고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닦아야 할 개척자입니다. (12-159, 1963.03.16)

4. 하늘의 밀사로서의 사명

오늘날 하늘을 위해서 가는 사람들은 사탄세계에 파송받은 밀사입니다. 개개인에 있어서 크고 작고, 넓고 좁고, 높고 낮은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각자가 처해 있는 생활 자체는 밀사의 생활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언제나 생사의 위협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한 생명 문제가 좌우되는 이런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지탱시킬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우리의 조국을 찾겠다는 관념이 그 환경보다 몇백 배 강하지 않고서는 밀사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조국의 영광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고 조국의 원한을 풀었을 때에 온 만민이 기뻐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건하여 조국광복의 한날을 맞는 그때에 자기의 공로가 드러날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입장을 무시해 버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앞서지 않고는 밀사의 사명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국광복을 위한 소망이 현실의 소망보다 천 배 만 배 강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만, 오늘의 생명을 바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밀사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책임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희생이 된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는 새로운 책임자를 다시 파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죽었을망정 그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그의 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가 모범이 되는 입장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비록 그가 희생되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의 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하나님은 그 터전 위에 대신자를 보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 죽게될 때에는 거기에서 그가 아무리 수고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29-40, 1970.02.16)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하나님은 밀사의 대왕이십니다. 조국광복을 위하여 사탄세계에 나타나는 밀사의 대왕이요, 총사령관이십니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님께서 이 땅을 대하여 '내가 하나님이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6천 년 동안에 한번이라도 주장한 때가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맑은 양심을 통해 지시하고 인연맺기 위해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바탕을 넓혀 가지고 일치화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로 끌고 나온 것이 6천 년 복귀섭리역사입니다.
이러한 것을 총책임지고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밀사의 사명을 외적 내적으로 연결시켜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외적으로 부딪치는 원수와 같은 환경의 어려움은 내적인 면에 있어서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자극적인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이 분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밀접한 내용으로 하나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 이 나타나서 축복하고, 하나님이 같이 싸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9-49, 1970.02.16)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어떠한 자세를 갖추어야 되느냐? 조국광복을 위한 신념이 무엇보다도 더 높이 가슴속에 불타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6천 년 동안 하나님이 고대하던 조국을 건설하는 기수가 되고, 선봉에 선 정예부대의 한 일원으로서 개척자가 된다는 이 엄청난 사명을 책임진 자부심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왔다 간 수많은 사람들이 갖기를 소망하였지만 가질래야 가질 수 없었던, 하나밖에 없고 이 한때밖에 없는 특권적인 사명을 짊어졌다는 엄숙한 책임감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자고 가고 오는 모든 생활 전체가 조국창건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파송받은 밀사로서 늠름하고 멋지게 이 사명을 수행하겠다고 하며 나서 주기를 하나님이 얼마나 고대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지지리도 몰리고 지지리도 쫓겨 다녔습니다. 국가의 발판을 갖추어 가지고 전체의 내용을 제시하여 한번도 펼쳐 보지 못한 하늘의 그 뜻, 조국을 세울 수 있는 그러한 뜻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 뜻을 한번도 세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조국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 조국에는 주권이 있고, 그 조국에는 국토가 있고, 그 조국에는 국민이 있습니다. 또, 거기에는 단일민족의 혈통이 인연되어 있고, 다른 민족이 가질 수 없는 역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조국을 위해서 우리는 밀사의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명을 자기 스스로 빠른 시일 내에 완수해 내면 해낼수록 조국광복의 터전이 자기로 말미암아 점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수고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조국광복의 한날을 가까이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은 살아서 밀사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세계사적인 축복과 천운을 우리의 것으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29-41, 1970.02.16)

밀사가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이냐? 자기가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밀사는 언제나 생사의 위협을 받고 있고, 죽음이 언제나 그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니 생사의 경계선에서 죽음을 밟고 넘어선 자리에 있는 하나님의 대신자인 것입니다. 삼팔선을 넘어 본 사람은 그 기분을 알는지 모르지만, 밀사는 국경선을 넘는 것과 같은 그런 모험의 세계에서 죽음의 발판을 밟아 치울 수 있는 확고한 생활태도를 취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말씀 하나만을 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먼저 인간적인 면에서 본이 되고, 생활적인 면에서 본이 되고, 행동적인 모든 면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즉, 그 동네에서 상하관계나 모든 것에 그들 앞에 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도 그들보다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 사람은 우리 동네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이다' 할 수 있고, 자신이 떠나려 할 때는 부락이 일치단결하여 그냥 그대로 살아 주기를 원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을 닦지 않고는 우리의 입장에서 목적을 성취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생활을 해봤습니까? 자기가 태어난 민족 앞에서 2년, 3년, 10년 세월을 하루같이 그런 생활을 해봤느냐는 것입니다. 밀사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으로써 책임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민족이나 국가에서 조국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한 특명을 받고 파견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명을 10년이나 20년 걸려 가지고는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자기 일대에 있어서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대신자를 세워 사명을 물려주고 가야 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마음졸이면서 그야말로 산제물과 같은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 책임을 전개시킬 수 있고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책임자가 되지 않고는 밀사로서의 목적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생활태도나 다른 모든 면에서 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부락에 있어서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 것을 당연히 자신의 책임으로 알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부락을 대신해서 맞을 일이 있으면 맞는 것이 밀사로서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제일 빠른 길입니다. 부락을 위해서 맞고 죽지 않고 나서게 될 때에 부락이 전부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29-39, 1970.02.16)

밀사는 언제나 조국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본연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여, 아버지만이 계시옵소서' 하는 생활과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입장이니 내가 죽더라도 아버지와 더불어 죽고, 몰리더라도 아버지와 더불어 몰리고, 쫓기더라도 아버지와 더불어 쫓기고, 싸우더라도 아버지와 더불어 싸운다 하는 마음이 밀사의 생활권 내에서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밀이 있으면 마음을 모아 그 주권자 앞에 보고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갖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죽음의 길을 열 고비 넘었다 할진대는 열 고비 이상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맺지 못할 때는 하나님 앞에 배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공산당들이 간첩교육을 받고 이남에 내려와서 남한의 실상을 바라보고도 왜 자수하지 못하느냐? 그 배후에는 남 모르는 밀사의 생활 가운데서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남한의 생활보다 몇백 배 더 치열한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고 넘은 것이 있기 때문에 환경적인 현실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수하지 않고 다시 북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29-49, 1970.02.16)

하늘이 작전을 세우고 전개해 나오는 데 있어서의 고충이 되는 환경을 극복하여 자기의 발판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된다면, 조국의 운명을 가름하는 크나큰 책임을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을 위한 크나큰 사명을 바라볼 적마다 밀사의 사명을 띤 자기 개인의 태도와 행동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지금 북괴가 간첩들을 남한에 내려보내고 있습니다. 이 간첩들이 남파되기 위해서는 먼저 간첩 생활을 하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훈련을 받을 때에 무엇을 먼저 습득해야 되느냐? 남한의 모든 풍습을 습득해야 됩니다. 말도 남한의 말을 해야 되고, 생활도 역시 남한의 생활방식을 익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한의 생활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생사 문제가 좌우되는 그런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환경으로부터 모든 전문적인 분야에까지 흡수될 수 있는 자신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간첩훈련의 원리로 되어 있습니다. 말이나 생활적인 습관에 있어서 지금까지 남한에서 살아온 사람들 앞에 조금이라도 어색하거나 이상해 보이는 면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환경을 그냥 그대로 자신의 생활 가운데서 표현화시키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북에는 이북 사람들의 풍습이 있고, 이북 사람들의 생활습관이 있고, 이북 자체의 사회적인 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자기도 모르게 어느 환경에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리고 다른 나라의 사람 또는 다른 지방의 사람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2중 3중의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행동을 한 번 하는 데 있어서나, 혹은 말 한마디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두번 세 번 생각하고 주의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간첩들의 입장인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행동이나 말투가 남보다 조금 다르다든가, 생활습관이 조금 다르다 할 때는 그것이 자기 정체가 탄로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가 살아왔던 생활 환경과는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첩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하려면 내심적인 면에 있어서 얼마나 고충이 크겠는가? 또, 그런 생활에 젖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 되겠는가? 이런 생활을 우리들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방에 있는 우리 통일교회의 책임자는 지금은 조금 나은 입장에 있지만, 옛날 초창기에는 그야말로 첩자와 같고, 특명을 받은 밀사와 같은 입장에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자기 주장을 내세워 가지고 그것을 그 지방의 전체에 적용시키려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책임자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과거지사를 헤아려 보게 될 때에, 이런 생활을 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지방에 가자마자 자기의 소신대로 내심에 있는 것을 전부다 드러내 놓고 주위의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자기만이 독주하는 입장에서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이 우리의 활동에 크나큰 지장을 초래한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회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늘의 밀사로서의 사명을 짊어졌던가? 그렇지 않으면 특사의 사명을 짊어졌던가? 원수의 세계라는 것을 망각해 버리고 그 나라 전체를 대신한 특사의 임무를 책임지듯이 지금까지 우리들이 마음대로 행동해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할 수 없는 희생의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29-33, 1970.02.16)

여러분이 이제 뜻을 중심삼고 새로이 각오해야 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밀사의 특명을 받고 있는 내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행동 하나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환경에 미쳐지는 영향은 자기 하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이라는 광대하고 엄청난 내용에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9-36, 1970.02.16)

이제 여러분들은 새로운 밀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명령을 받아서 새로운 세계 앞에 나선 여러분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심각해져야 합니다. 위신 가지고 마을 사람들을 대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생사문제가 걸려 있고, 지금까지의 세계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운명과 더불어 내 기반을 닦으며 밀사의 소임을 다해야 합니다. 사탄세계에 무너질 수 없는 기반을 닦기 위해 자기 처신을 잘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옛날 그대로의 습관을 지니고 새로운 명령이야 했건말건 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새 옷과 헌 옷은 다릅니다. 새로운 명령과 옛날 명령은 다른 것입니다. 새로운 현재의 시점과 과거의 시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단계와 현재의 단계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발전적인 단계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기분과 새로운 결의를 가지고, 새로운 환경의 기반을 갖추지 않고는 새로운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단계도 1단계 2단계 3단계 이렇게 단계적으로 올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차기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 스스로 실천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실천한 것이 환경에 적응되게 될 때, 이것을 어떻게 열매로 거둘 수 있는 개체가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1년 전에 들어올 때의 그 마음이나 현재의 마음이나 선생님을 대하고 하나님을 대하는 데 있어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마음이 그때의 마음보다 못하게 되면 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복귀해 나오시는 과정에는 하늘의 질서라든가 예의 예법이라든가 하는 모든 것이 가중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가중된 이런 시대권에 자신이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옛날에 철부지하던 그때의 마음보다 더 못한 마음을 가져서야 되겠습니까? 부락에서의 밀사의 사명과 도에서의 밀사의 사명은 다릅니다. 사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또, 한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밀사의 책임을 할 때에도 다른 것입니다. 과거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명령과 새로운 지시가 있게 될 때는, 그 명령에 따라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투입하여 재출발을 해야 됩니다. 과거에 했던 그 기반 가지고는 안됩니다. 재투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29-46, 1970.02.16)

여러분은 조국을 세우고, 조국을 빛내고, 조국과 더불어 살고, 조국 안에서 죽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늘 앞에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했고, 한때에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이 엄숙한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한 번 듣고 열 가지를 생각하고, 한 번 들은 것을 가지고 열 가지 이상과 비교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하늘의 운세를 여기에 나타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천 번을 망신당한다 해도 그것을 개의치 않고, 또는 백 번의 죽음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개의치 않고 가겠다는 신념을 갖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길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지금까지 걸어나온 생활 속에서 그런 때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던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여러분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광복을 위한 하나의 주체적 인 사명자로서 자기가 맡은 한 도면 도, 일개 부락이면 부락에서 이 책임을 수행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배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천명에 부합될 수 있는 책임을 하지 못해서도 안됩니다. 책임의 뒤안길에 있어 가지고는 이 길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잠을 못자고 해야 되고, 먹지 못해도 해야 되고, 쫓기면서도 해야 되고, 죽더라도 결정을 내리고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결정적인 사명을 수행하겠다고 새로이 결심하고 나서게 될 때, 여러분의 갈 길은 당연히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될 때는 선생님이 여러분을 내세워서 믿고 바라본 희망의 세계, 광명의 세계가 도리어 어둠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문제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이 시간 남겨 주고자 하는 것이 '밀사와 조국'이라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찾아오신 그 목적을 달성해 놓고 온 민족이 거국적으로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면서 영광의 한날을 만세에 자랑할 수 있는 그때가 언제일 것이냐? 이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것을 찾는 것이 내 생애의 목적이라고 다짐하면서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될 때에 여러분의 앞날에 조국광복의 희망의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여러분 앞에 수난의 길이 있게 됩니다. 또한 여러분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가 삼천만 민족 앞에 넘겨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밀사는 그 모습이 잘나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능력이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밀사의 사명은 하나님과 심정이 일치된 입장에 서서 그 나라의 풍속을 바로 세우는 동시에 절대적으로 충성하여 그 환경을 수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하는 날에는 하늘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은 대행자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책임 안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밀사의 책임을 지게 된다면 그 일은 반드시 성사된다는 것을 선생님은 다년간의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행동을 해 나가기를 바라기에 오늘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29-50, 1970.02.16)

5. 목회자의 일반적인 사명

여러분은 무엇을 복귀해야 될 것인가? 탄식권 내에 있는 만물을 복귀 해야 되겠고, 인류 전체를 복귀해야 되겠고, 지옥에 있는 영인들까지도 복귀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복귀해야 될 것인가? 하나님의 슬픈 심정을 기쁨의 심정으로 복귀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4-128, 1958.03.23)

여러분은(1)혈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2)진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3)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하고,(4)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인 것을 증거할 수 있는,이 하나의 기준을 찾아세워야만 합니다. 그 하나의 기준을 찾아 세우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하는 것은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40, 1957.09.15)

공적인 것은 역사가 보장하고, 시대가 보장하고, 미래가 보장해 줍니다. 즉, 역사성과 시대성과 미래성을 띤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공적 사명을 완수한 자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공적 사명자'라는 신념을 갖고 싸워 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내가 공적인 사명자'로 서게 된 것은 내 스스로 공적인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멀고도 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공적인 이익과 우리의 조상과 현실의 여러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그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11-268, 1961.12.17)

사명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역사적이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세계적이어야 하고, 다음에는 미래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3시대의 사명을 우리는 지는 것입니다. (46-152, 1971.08.13)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추수의 날이라고 했고 자녀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타락한 우리 후손들은 많은 추수의 날을 가져 보았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그것이 한여름에 자라 가지고 가을을 맞이하여 결실된 그 결실을 자기의 것으로 추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추수한 그 결실을 또다시 심을 수 있는 날을 가져 보았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추수하는 기쁨과 뿌리는 기쁨을 가져 보았지만 하나님은 아직까지 추수의 기쁨을 가져 못하였다는 겁니다. 또다시 추수하여 새로운 씨를 거두어 가지고 다시 뿌릴 수 있는 기쁨을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뿌려 놓고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 뿌린 싹에서 다시 천 배, 혹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이상의 추수를 하는 소망의 날을 하나님은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이때는 늦은 가을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거두어 들인 곡식단을, 추수의 열매를 대할 적마다 추수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통일신도들에게 있어서는 과거에 추수하던 사람의 입장에서 추수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내 손으로 거두어 들인 한 포기의 곡식, 하나의 씨는 이 천지만물을 지어 놓은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의 심정의 동산 가운데 사랑하는 자녀들의 손길을 거치어 뿌려지기를 바라실 것이니 그 바라시는 소원을 나를 통하여 실천할 수 있는, 대신자의 입장에 서서 거두어 뿌릴 줄 아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이제부터 거둘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며, 이제부터 뿌릴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51-108, 1962.10.28)

큰 사랑은 온전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통일교회가 유명해지고 통일교회 때가 오게 되면 여러분이 꽃피게 됩니다. 꽃이 피게 되면 여러분들의 꽃의 색깔이 달라져야 되고, 그다음에는 향기가 풍겨야 됩니다. 색깔이 달라져야 돼요. 응?「예」 성숙기에 들어가서 꽃이 피게 될 때는 색깔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꽃이 나와야 되고 향기가 나와야 돼요. 여러분이 향기를 풍겨야 됩니다.
통일교회 진수의, 숨은 사랑의 꽃을 피우고 숨은 사랑의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이런 사랑의 분(꽃가루) 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향기로 세상을 정화작업 하는 거예요. 그거 어때요? 세상을 정화하자, 대학가에도 농촌에도 도시에도 학계에도…. 이 향기가 진동하게 될 때에, 그 세계에서는 탄식할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자기 스스로 유아독존이라고 하고 자기 자체를 중심삼고 만년 주체가 되겠다고 주장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이치입니다. 올라가서는 내려가야 되고, 내려가서는 올라가는 그걸 아는 거예요. 지금 자기가 '나는 한 때를 맞았으니 지금은 내려가야 된다' 그걸 아는 거예요. 전부 다 그렇기 때문에 만년역사를 주파수와 같이 살자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공평하다는 거예요. 공평합니다.
(163-122, 1987.04.19)

우리는 배달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배달이란 무슨 뜻이냐? 배달민족은 배달부 민족입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멀리 떠나간 님을 기다릴 때 그 님의 소식이 누구한테서 옵니까?「배달부요」 편지로 오지요? 그 편지는 배달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그 편지를 받으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배달부를 대접해 본 사람이 있어요? 눈이 빠지도록 편지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배달부가 편지를 전해 주면 좋다고 받아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있지만, 점심 때가 되었으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배달부를 대접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배달부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한 소식을 전해 주지만, 월급을 타서 배달부에게 세금 바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번이라도 배달부를 공손히 대접한 아주머니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불쌍한 사람을 한번도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에게 배달부의 사명을 하도록 했는데 집집마다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는 배달부가 되었어요? 배달부가 편지를 가져다 주면서 '오늘 날씨가 참 복지경이구나. 땀이 왜 이리도 나노' 하면서 대청 마루에 올라와서 시원한 물 한 그릇 갖다 달라고 주인에게 말하는 배달부가 있습니까? 배달부는 천시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배달민족이란 배달부 민족입니다. 이것은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배달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세계에 배달하는 배달부 민족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거 얼마나 근사합니까? 무슨 민족이라구요? 배달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또, 백의민족이란 무슨 말입니까?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백의를 입지 않아요?(웃음) 백의는 표지(表紙)로 사용됩니다. 백의는 무엇에 쓴다구요? 표지로 쓰이는 것입니다. 새까만 밤중에 새빨간 것이 표지가 될 수 있겠어요? 샛노란 것이 될 수 있겠어요? 새하얀 색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흑암 천지에 있어서 표지가 될 수 있는 것은 흰색이라는 것입니다. 사망이 가득 찬 암흑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백의만이 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이 일을 해 나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4-353, 1970.09.20)

이제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이 무엇이뇨? 하나님이 찾고 있는 참다운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를 중심삼은, 본연의 종을 위주로 한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으로 하여금 천지만물을 주관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알았을진대, 오늘날 여러분들의 모든 생각과 여러분들의 모든 생활의 중심과 여러분들의 모든 활동이나 모든 행동 전체의 내용은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지고,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근심을 하고,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해서 싸우는…. 그런 신념을 가지겠다는 확고부동한 자신이 돼야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는 한 아버지의 뜻과는 영원을 두고 하나될 수 없다는 거예요. (152-186, 1963.05.10)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 번 '전통을 세워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여러분은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전통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전통을 못 세우면 망하는 거예요. 전통이란 그 나라의 애국사상을 연결시켜서 세우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사상적 전통을 세울 시기는 이 시대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아내와 더불어 이 시대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세계가 통일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예요. 세계 통일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느 시대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이니만큼 거기에는 슬픔과 기쁨이 엇갈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슬픔과 기쁨을 다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통일신도, 특히 지방교회를 책임진 여러분들의 사명인 것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장 시절에 하늘나라의 전통적 노정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만민에게 보여 주고 틀림없는 길,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깔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천년 만년 그들의 피 속에, 살 속에, 정신 속에 살아 남을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기쁜 일이 있어도 비석이 서 있는 여러분의 무덤을 바라볼 것이고, 여러분이 넘나들던 산이 있으면 그 산을 넘나들면서 역사를 읊으며 '이 기쁨을 당신이 받으소서' 하고 찬양으로 여러분에게 기쁨을 돌려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조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보람 있는 인생입니다. 알겠어요?「예」
일생 동안 대로에서 진탕 먹고 웃고 춤추며 살다가 무덤에 가면 복이 될 게 뭐 있어요? '그런 사람의 무덤에는 풀이 날 뿐이겠지만,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그 나라가 살아 있는 한 꽃이 필 것입니다.
(46-351, 1971.08.17)

6.사명에 대한 자각

만민을 자기가 책임지고 나선 자리, 백성의 생명을 책임지고 나선 자리, 혹은 자기가 처해 있는 군이면 군, 면이면 면에 있는 뭇 생명들을 책임지고 나선 자리는 홀로 아버님과 상관을 맺어야 할 제물의 자리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진정 아버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자기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를 확정지어 가지고, 당신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요 완전한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 앞에 바쳐지는 하나의 제물도 완전한 것으로 바쳐지기를 바라는 마음 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들이고, 온갖 충성의 마음을 갖고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 생활과 생애노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47-276, 1971.08.30)

여러분들, '실버 스트리트'라는 영화 봤어요? 그 영화 본 사람 손들어 봐요. 어! 참많구만. 딱 그와 마찬가지예요. 지금 인간 생명이 지옥으로 그와 같이 달리고 있는 거예요. 운전수 없이 지금 막 달리고 있는데, 그 안에서 춤을 추고 '아이구, 좋다' 하고, 지금 담벽에 부딪히겠는데 '하하하하' 웃고 그러고 있다 이거예요.
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아는 사람은 모험을 해야지요, 모험을. 알고 있다면 가만 있겠나 말이예요. 하나님이 보실 때, 거기에 자기 아들딸들이 수두룩하게 타고 있는데 '잘하누만. 좋구만' 이러시겠어요? '아이고, 저래도 싸다' 그러시겠어요?「아닙니다」그것을 알고 자기 생명을 각오하고 나가게 되면 그 사람은 아무리 지옥갈 사람이라도 천국에 데려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희생당하면 천국에 데려갈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나라가 망하고 세계가 망하는, 세계가 지금 지옥으로 달리는 이런 상황인데 거기에서 모험을 하다가 내가 죽는다 하게 되면 지옥가겠나 말이예요. 최고의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그런 생각을 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게 나쁜 거예요?「아닙니다」그래, 불평 없어요?「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