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祭司長이 가는 길
1. 목회자란 레위족속의 제사장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은 아벨적 입장에서 국가적 제단을 꾸며 놓아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국가적이예요, 국가적. 한민족을 대표한 국가적 제단을 꾸며 놓아야 된다구요.
제단을 꾸미기 위해서는 제사장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제사장 책임을 다하려면 제사장이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제사장이 없어 가지고 제단을 꾸미면 안 됩니다. 제사장이 있어야 돼요. 제사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모든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축복받은 족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레위족속이예요, 레위족속. 알겠어요? 레위족속. 제사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예요. 알겠어요? 레위족속이 아니면 안 된다구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떤 입장에 세워졌느냐? 레위족속과 같은 입장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레위족속은 어떠한 족속이냐? 그는 세상에 있어서 가진 것이 없는 족속입니다. 열두 지파들이 지파를 편성해 가지고 땅을 분배받을 때 레위족속이 분깃을 받았어요? 「못 받았습니다」 아무것도 못 받았다구요. 몸뚱이밖에는 없었습니다. 몸뚱이밖에 없었던 거예요. 자기의 소유물이란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레위족속이란 족속은 자기의 소유의 분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소유라 하면 어떤 것이냐? 성전이예요, 성전. 그들의 소유는 성전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전 가운데는 제단이 있어요, 제단. 그래서 제단이 있는 동시에 제단 위에 제물이 있어요, 제물을 제사에 바쳐 가지고 속죄적인 혜택을 백성 앞에 주고 난 후에 제물을 자기 분깃으로 취할 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현재 우리 통일교회 자체는 레위족속과 같은 입장에 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야 됩니다. 가진 것 많아요, 여러분들은? 가진 것 많아요?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무엇이냐? 그런 입장에 섰다면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되어 가지고 성전을 가져야 돼요. 그리고 성전을 가진 후에는 제단을 가져야 됩니다. 또, 제단을 예비해 놓으면 제물을 드려야 돼요. 제물을 드려야 된다 이거예요. 제물을 드리려면, 하나님이 이 땅 위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옛날에는 양과 소를 잡아서 제물을 바치게 했는데, 맨 나중에는 자기의 제일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 삼아 바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제일 사랑하는 것 제일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라 이거예요. 제일 귀한 제물이 뭐예요? 자기라는 거예요, 자기. 그러니 자기를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만일 제물을 바쳐 가지고 승리했더라면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되지 못하고 제물이 되어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대제사장이 되기 전에 무엇을 해야 되느냐? 제물을 바쳐야 돼요. 제물을 바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피를 흘려야 됩니다. 쪼개야 되고 희생해야 된다구요. 그게 원칙입니다. 희생해야 돼요.
이리하여 우리들이 어느 기준을 이루어 가지고 이 민족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세움을 받을 수 있게 될 때는, 열두 이스라엘 지파는, 유대 백성은 이 레위족속이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민족의 흥망이 좌우된다는 거예요. 제사장들이 부패하면 그 나라도 따라서 망하는 것이요, 제사장이 충성을 다하면 그 나라도 흥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가 그랬다구요. (155-275, 1965.10.31)
2. 레위족속의 제사장이 가는 길
앞으로 통일교회는 어떻게 갈 것이냐 하면 교회가 어디까지나 주류예요, 주류. 교회는 레위족속에 해당하는 거예요, 레위족속. 레위족속에게는 분깃이 없다구요. 그렇지요? 성경에 보면 말이예요. 레위족속은 지파는 지파인데 분깃이 없어요. 그 분깃은 뭐냐? 교회, 교회가 분깃이예요, 교회.
그러면 지파 중에 중심지파가 어떤 지파냐? 열두 지파 가운데 분깃 맡은 지파가 중심이냐, 분깃 안 맡은 레위족속이 중심이냐? 어떤 거예요? 「레위족속이 중심입니다」 레위족속이 중심이예요. 그거 틀림없지요? 「예」그렇기 때문에 월급받는 패들은 전부 다 방계적이요, 월급 안 받고 교회를 지키면서 활동하는 사람이 원리적 입장에 선 주류다 이겁니다. 이것이 레위족속이 가는 길입니다.
제사장의 분깃이라는 것은 제단에 올려놨던 제물 이외에는 먹을 것이 없는 거예요. 알겠어요? 분깃이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성전을 중심삼고 지성소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다하는, 제물을 바칠 수 있는 제사장이 돼야만 분깃을 맡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주류의 노정은 교회에서 충성하는 사람들이 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그리고 그 가외의 사람은 전부 다 교회에 십일조 바쳐라 이거예요, 십일조. 바치게 돼 있지요? 「예」레위 족속이 치리하는 교회 제단 앞에 모든 열한 지파는 전부 다 십일조 바쳐야 돼요, 십일조. 앞으로 십일조 안 바치면 통일교회의 교인이 아니라구요. 원래는 십의 삼조를 바쳐야 돼요, 십의 삼조. 하나는 자기 나라를 위해서, 하나는 세계를 위해서, 하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십의 삼조를 바쳐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이 이것을 취해 가지고 현물세라는 것은 30퍼센트 이상이다 하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예」요즘 대한민국에서도 세금이 30퍼센트 이상 올라가지요? 30퍼센트가 뭐야, 80퍼센트, 90퍼센트….
통일교회가 그렇게 해 가지고 전부 다 투입하니 그런 입장을 따라오려고 저런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아이고, 살림이 어려워서 교회장 교역장 그만두겠소' 하고 월급 많이 주는 곳에 찾아가는 그런 지도자가 있고, 그런 책임자가 있거든 그것은 가짜다. 교회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자들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암만 자기가 부족하더라도 현재의 직장을 버리고 '아이고, 교회로 날 데려다 주소. 월급은 없더라도 가겠습니다' 이런 사상이 없는 사람은 통일교회 사람이 아니다 하는 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84-L62) (84-158, 1976.02.22)
지역장 지구장은 뭐냐 하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어느 족속에서 나왔느냐 하면 레위족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레위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복귀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레위족속이 분깃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여러분 대답해 봐요. 가나안 땅에 복귀한 후 12지파로 나뉘었을 때 레위지파는 분깃을 탔습니까, 못 탔습니까? 그것도 몰라요? 「못 탔습니다」 레위지파는 분깃을 타지 못했습니다. 레위족속은 제사장 족속이기 때문에…. 제사장 족속은 가인들이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을 속죄받을 사람들이 바치는 것입니다. 제물은 가인들을 속죄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인 편에서 아벨에게 제물을 드려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은 누가 먹여 살려야 된다구요? 부모가 먹여 살려야 됩니까, 가인이 먹여 살려야 됩니까? 「가인이요」가인이 아벨을 먹여 살리는 대신 아벨은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기준하는 가인과 사람을 기준하는 아벨이 여기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제사장들은 아벨의 입장이기 때문에 가인을 복귀하기 위한 수고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가인을 분깃으로 갖는 것입니다. 물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인 가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따라서 제사장 소유의 분깃이 무엇이라구요? 「가인이요」 가인인 것입니다. 물질을 나눠 준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나눠 주었다구요? 사람을 나눠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족속은 이스라엘 민족 중의 어떠한 족속보다도 귀한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인 된 사람이 귀합니까, 물질이 귀합니까? 「가인 된 사람입니다」가인 편의 사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 편 사람들은 아벨을 먹여 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 전체 앞에 아벨은 누구입니까? 「선생님입니다」 통일교회 전체 앞에 아벨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먹여 살려야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벨로서 희생을 해 가지고 가인들을 살려줘야 됩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생님이 월급을 주게 되면 천리원칙에 배반됩니까, 일치됩니까? 「배반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급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편네들은 '어디는 월급을 받는데…' 그럽니다. 그러나 그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교역자가 더 귀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구장 지역장들이 더 귀하기 때문에 제일 골수분자로서 책임을 진 그런 사람들에게는 월급을 안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월급을 주는 데 있어서 내가 월급을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은 괜찮지만, 지구장 지역장들이 요구해서 월급을 주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런 것입니다.
여기 있는 지역장 부인, 혹은 지구장 부인들은 '우리는 이렇게 못사는 데 선생님은 저렇게 잘살고 있으니, 우리를 사랑하는 선생님이라면 우리에게 좀 나누어 줘야 될 텐데'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사명이 아니라구요.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부에 대해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44-142, 1971.05.06)
3. 제사장이 가져야 할 의식
우리 교회의 조직으로 보게 되면 지역장 지구장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지역장 지구장들이 뭐라구요? 「제사장이요」 전도대원들은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누가 되느냐? 레위족속이 되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중에 다른 지파들은 전부 다 분깃을 탔지만 레위족속은 분깃을 탔어요? 못 탔습니다. 왜 못 탔습니까? 제사장은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뭐라구요? 「제물입니다」 제물은 뭐냐 하면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 줄 수 있겠습니까? 피를 팔아서 먹고 사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물은 소유권이 없는 것입니다. 제물이 소유권이 있어요? '나는 아무개 아들이요. 나는 아무개집 주인의 소새끼요'라고 합니까? 제물은 공동소유입니다. 소유권이 없는 거라구요. 소유관념이 없습니다. 그저 주인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해야 됩니다. 자기라는 소유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존재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기분 나쁜데 …' 하면서 자기를 주장했다간, 존재의식을 가졌다간 하늘의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뜻을 이룬 것은 소유관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하고 생각했다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반대했을 것입니다. 또, 존재의식을 가졌다면 '나는 안 죽겠소' 하고 반항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훌륭한 것은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입니다. 불평 한마디 안 하고 꺼벅꺼벅 죽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그를 잡아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지역장 지구장들도 꺼벅꺼벅 앉아 가지고 굶어야 됩니다. (웃음) 눈이 빠끔해지고, 볼이 여위고, 기운이 없어 비틀비틀하면서 쓰러져 죽어 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더라도 불평이 없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모두가 머리를 숙인다는 거예요.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망했다면 기독교 역사,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몽땅 깨져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감옥에 들어가고 사지에 가서도 가만히 있었던 거라구요. 더 못 죽어서 한이라는 거예요. '내가 죽지 않았으니 산 책임을 해야 되는구나' 하고 꺼벅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식이 없다는 거예요. 소유의식이 없는 거라구요.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아들을 이렇게 고생시키는 법이 어디 있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구장, 지역장 부인들은 똑똑히 알라구요. 알겠어요?
레위족속에게는 분깃이 없었습니다. '월급이 2만 5천원이야, 3만원이야. 5만원이야…. 나 월급 받아야 돼' 이런 생각을 하는 목회자 그 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는 끝에 가서 사탄의 제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돈이 있어 가지고 쓰고 남는다 해도 여러분에게 월급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아버지한테 월급받게 되어 있어요, 드리게 되어 있어요? 제물이 아버지 앞에 받게 되어 있어요, 드리게 되어 있어요?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돼요. 여러분의 신랑들이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망하는 거라구요. 공장 직원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월급을 주더라도 교회 책임자에게 월급을 안 주는 것은 이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전부 다 망하더라도 천도를 따라 세 사람이라도 남아서 이것만 지키게 되면 통일교인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는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떨어져 나가더라도 안 망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본부에서 보내 주는 돈을 가지고 교회를 짓는 것도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43-215, 1971.04.30)
제사장들은 월급을 받고 하늘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월급을 받아 가지고 사는 게 아닙니다. '내 생활이 얼마나 궁핍한데…. 받아야 되겠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의 대가를 받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피 흘리는 데는 모두가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눈물을 흘리지 않고 희생을 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는 제사장은 썩은 제사장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지역장 부인들 손들어 봐요. 이런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어요. 지역장, 지구장, 단단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월급을 받게 된다면 선생님부터 월급을 주고 그다음에 받아야 되는 거예요. 순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언제 선생님에게 월급을 갖다 주어 봤어요? 여러분이 십일조를 바쳐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시점에 와 있기 때문에 지금 때는 까딱 잘못하게 되면 남자들이 바람들기 쉬운 때입니다. 남자들이 바람들기 쉬운 때라구요. 자기 멋대로 뜻을 중심삼고 생각하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남자를 굴복시켜 가지고 끌고 가겠다는 자각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43-219, 1971.04.30)
여러분, 미국을 보라구요. 미국이 오늘날 이처럼 부국이 된 원인이 뭐냐 하면, 자기들에게 돈이 생기면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입을 것을 입지 않고, 자기 살 집을 짓지 않고 먼저 교회를 짓고, 그다음에는 교육기관을 짓고, 그다음에 자기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사상을 알기에, 또 그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먼저 교회를 지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금년에 집을 사려고 눈물겹게 마련해 둔 돈도 교회를 위해서 여의도 본부 건설을 위해서 다 투입한 거라구요. 그다음에는 학교를 짓기 위해서, 미래의 후손을 위해서….현재는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민족은 망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예」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뜻을 위하는 것이요, 미래가 원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후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복귀하기 위해서 현재를 희생시키는 것이 탕감복귀섭리역사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43-217, 1971.04.30)
오늘날 우리가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책임을 짊어진 자로서 뜻만을 위하고 후대만을 위해야 됩니다. 자기가 뜻 때문에 희생하고 후대 때문에 희생하며 가는 사람은 굶지 않습니다. 밥을 안 굶는다는 거라구요. 밥 굶나 보세요. 그저 굶어 죽을 것 같은데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해서 그것을 피해간다는 거라구요. 의심 나면 여러분이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죽을 길을 가는데도 안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이렇게 내려가는 것 같은데 안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면 내려가지만 하나님을 위하면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저 꼬불꼬불하면서 올라가요. 이것이 열두 고개입니다.
아리랑 고개가 몇 고개입니까? 열두 고개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낭군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갖고 '어떤 어려운 길이라도 참고 간다. 배고픔도 참고 눈물길도 참으며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죽고 없어져도 당신의 소원의 터전 위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칭찬할 수 있는 하나의 신랑 신부로 만납시다' 하며…. 아리랑 고개 열두 고개라고 하지요? 그 아리랑 고개는 복귀 고개입니다, 복귀 고개. 한국 민요를 보면, 한국 백성은 참으로 계시적인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열두 고개라는 말이 나았느냐? 복귀노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의 책임은 제물이 되는 것인데, 제물 된 자는 존재의식과 소유관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돈이 조금 생기게 되면 '이 돈으로 내게 필요한 것을 사야 되겠다. 내게 거울이 없으니 좋은 거울을 하나 사야 되겠다. 블라우스가 입고 싫다. 원피스가 입고 싶다. 저 투피스를 한번 사 입었으면 좋겠다' 하는 이런 시시한 생각을 하고 있는 여편네들은 다 반성해야 돼요. '내가 그런 것을 입기 전에 이 백성을 그렇게 입혀야 되겠다. 내가 좋기 전에 나라가 좋아야 되고 세계가 좋아야 되겠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것이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먹는 것보다 이 나라를 먹여야 되고, 내가 잘사는 것보다도 이 나라를 잘살게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이 고개를 넘어가서 이스라엘 주권을 가지면 제사장은 무엇이 되느냐? 그때까지 제사장으로서 만민을 대표해서 희생을 했고, 만민이 그 앞에 머리숙이는, 제사장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와서 새로운 주권을 갖게 될 때는 주권을 대행하는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주님이 역사를 통해서 수난길을 참고 걸어온 전통을 제사장의 입장에서 이어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길도, 배고픔의 길도, 혹은 어려운 길, 쫓기는 길도 극복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이 걸어야 할 걸음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43-217, 1971.04.30)
4. 제물의 복귀과정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구약시대는 제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제물은 대상이고 인간은 주체적 입장이기에, 대상이 하나님 앞에 공인받으면 주체도 공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나타나면 완전한 플러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플러스가 나타나면 완전한 마이너스는 자동적으로 생겨난다는 거예요. 이것은 천지가 상대 인연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두고 볼 때 인간은 제물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만일 제물과 하나되었다면 그 위에는 누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있습니다.
만물을 중심삼고 볼 때, 물건 가운데는 참된 물건과 거짓된, 가증된 물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먹지 말라고 하는 개나 뱀과 같은 것들은 모두 가증스러운 것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소나 양이나 비둘기 이런 것들은 선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만물중에 가장 선한 물건입니다. 제사상에 올려 놓는 고기로 나무 기름진 것들은 올려 놓지 말아야 합니다. 기름진 것들로 치우쳐서는 안 되는 거예요. 기름진 것이 많으면 조화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는 기름이 많고 비린내가 많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문어나 숭어처럼 바싹 마른 고기들이 제사상에 올라갑니다. 이런 사실들은 전부 다 음양의 상대적 이념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 제물시대에 있어서 선한 물건을 고르다 보니 소와 양과 비둘기를 골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먼산을 바라보며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복귀되어야 할 인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복귀될 날만을 기다리는 인간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羊) 이라는 것은 연약한 짐승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자기보다 더 작은 산짐승한테 잡혀 먹힐 수 있는 것이 양입니다. 양은 약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면서 항거하지 않습니다. 양은 주인이 잡을 때에도 항거하지 않는 짐승입니다. 옛날에 제사에 쓰려고 양을 잡을 때 항거하는 양은 제사에 쓰지 않았습니다. 반항하지 않고 '맴맴' 하면서 그저 동정을 구하듯이 처량하게 울부짖는 그런 양만을 잡아서 제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두들기고 발길로 차고 해서 잡은 양은 제물로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비둘기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비둘기 같은 눈동자라고 합니다. 비둘기 같은 부부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비둘기가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이것들은 짐승들 가운데 선한 의미에서 차원이 높은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들 중에서 뽑았습니다. 인간은 그것들과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소와 같이 충성하고, 양과 같이 희생하고, 비둘기와 같이 정서적(사랑)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의 내용을 대표한 만물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과 하나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꾸로 되어야 합니다. 종한테 굴복해야 되고 며느리한테 굴복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됩니다. 여러분이 자세를 버티고 있어서는 절대 복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박사이니 박사의 권위를 세워 주지 않으면 통일교회에 못 가오'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라는 거예요. 그런 것은 선생님이 알 바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눈에는 박사고 무엇이고 없습니다. 박씨는 알지만 박사는 몰라요. 선생님이 그런 주의입니다. 이것이 무슨 주의냐 하면 하나님 주의입니다. 하나님 앞에 박사가 있어요? 전부 다 국민학생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또 하나님 앞에 어른이 있어요? 전부 다 아이들이지요.
자, 구약시대는 제물시대이고, 그다음은 무슨 시대지요?. 신약시대는 무슨 시대입니까? 예수님이 완성된 제물 실체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열매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시대의 제물 실체의 결실로 와서 하나님 앞에 있어서 만물과 가인을 그냥 그대로 제물로 드렸다면 교단과 나라를 복귀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벨형 국가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세계의 만물도 결국 복귀되고, 가인편 교단도 민족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만물을 대신한 결실이요, 교단을 대신한 결실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한 결실입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입장이었기에 사탄은 민족을 놓치더라도 그 결실인 예수님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구원 받아야 할 만민들은 예수님을 제물로 삼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신약시대입니다. 알겠어요?
그다음에는 성약시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했는데, 성약시대에 오는 데는 어떻게 되어 가지고 오느냐? 제물의 결실이요, 아담의 결실이요, 그다음에 내적인 결실에 있어서도 가인의 소생적인 결실과 장성적인 결실이 되어 가지고 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가인을 굴복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영적으로 그러한 모든 것을 다 갖추어 놓고 가셨다는 거예요. 소생적인 결실과 장성적인 결실을 이루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사세계의 굴복자 양자적인 입장의 실체권을 복귀한 입장에 섰기 때문에 가인을 소생적으로 굴복시키고, 장성적으로 굴복시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자의 대표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일을 대신하다가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결국 아들 노릇은 못 했습니다. 따라서 소생적 천사장형과 장성적 양자형을 복귀해야할 중심존재로서, 또 이것을 결실로 나타내지 않고는 재림주님이 이 땅위에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생적 천사장형과 장성적 양자형 이 둘을 결합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여기에 신랑이 오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을 오게 할 수 있는 동기를 지상의 기독교가 마련해야 합니다. 해와가 아담을 유인하여 타락을 했기 때문에, 후아담인 예수님이 재림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땅 위의 기독교가 세계적인 해와권, 신부권을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랑은 특별한 기독교 국가를 중심삼고 거기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44-298, 1971.05.24)
복귀하는 데에 있어서는 먼저 제물부터 복귀해야 한다. 제물은 대신 존재다. 아브라함의 제물은 아브라함과 그의 뜻을 대신한 것이었다.
양자가 되려면 제물의 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천주를 위한 제물이다. 완성한 아담은 그 자체가 제물이다. 제물, 제사장, 양자, 선생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탄세계의 것을 빼앗아 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제단이 따로 없다. 우리가 눕고 자는 곳이 바로 제단이다. 이곳을 더럽혀서는 아니 된다.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제물로 바쳐 줄 수 있는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선생님을 제단으로 하여 속죄의 과정을 거치게 하여 여러분을 제사장의 자리에 세우려 하신다. 그런 후에 양자가 되게 하신다. 양자는 대신 권한을 갖는 자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직계가 된다. (11-159, 1961.06.24)
5. 통일교회 목회자의 사명
본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역사과정이 입증하듯이 제물의 길을 이어 가는 길입니다. 제물의 길을 이어 가지고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제물이 민족을 연결시키고 하늘 앞에 그 결실을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물의 사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의 구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구원 외에 전체의 구원이 되도록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물로 내세워 준 주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면 하나님의 목적을 해원해 드려야 할, 풀어드려야 할 그런 탕감적인 입장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런 중간 입장이 무엇이냐 하면 제물 된 우리입니다. 우리가 중간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물은 반드시 사람 앞에 놓여지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이 제물이 잘 드려지게 될 때는 그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그 제물을 대하는 하나님의 소원, 혹은 하나님의 한이 풀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제물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개인적인 제물시대를 거쳐 가지고 가정적인 제물시대를 거쳐야 되고, 그런 다음 종족, 민족, 국가적인 제물시대로 넘어 가야 할 이런 차원에 머물러야 할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는 나 자신이 영적으로 제물적 입장에 서 가지고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혹은 세계를 대표해서 나왔지만 이제 우리는 실체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영적인 민족을 붙안고 책임하면 그것으로 족했지만, 영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의 뜻 앞에 알맞을 수 있는 책임을 하면 그것으로 족했지만 이제부터는 거기에 더하여 실체시대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옛날의 우리들과 오늘날의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의 차원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에 서있느냐? 영적인 기준의 시대에 있어서는 이 육적인 기준은 뒤에 서 있었지만 지금의 때는 그것이 아닙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영적인 면이나 육적인 면에서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중심적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물 자체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 자체가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제물로 받을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라 오고 준비된 그 제물 자체가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정성어린 제물이냐 하는 것이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자체가 이 민족 앞에 등장하여 하나의 제물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면, 그 제물의 자리에 서 있는 통일교회로서, 지금까지 지내 온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내용을 남기고 왔느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제물로서 그런 내용을 남기지 못했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제물로서의 오점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 그 어딘가에 흠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깨끗이 씻어 버리든가 맑혀야 할 분야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이것을 누가 할 것이냐? 이런 문제가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제단에 올라가서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제단에 올라가기 전에 내적인 준비와 외적인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이 봐서 합당한 제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제물적인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 지내는 제사장은 누구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될 것이냐? 이 땅 위의 누구여야 되느냐?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영적인 분야를 책임져 나온 선생님이 이제부터 제물을 드리는 제관(祭官)이 돼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깨끗한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제사를 드려야 할 그 주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그 장본인이 그 제물을 가꾸기에 정성을 다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이 아직까지 깨끗하지 못했다면 그 제물 자체에게도 물론 책임이 있겠지만 제물을 준비해 나오던 제사장 입장에 서 있는 그분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지금까지 생각해 나왔습니다. (76-12, 1975.01.19)
우리 통일교회가 가는 복귀섭리의 길에 있어서 그 골수사상은 무엇이냐? 제물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이걸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물은 어떤 것이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는 것은 무엇이냐? 모가지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결론은 간단 합니다. 모가지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을 사랑 하라는 겁니다.
생명을 내놓는 데는 싫어하며 억지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미칠듯이 좋아하면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을 바에는 울면서 내놓은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겠어요, 아니면 정신 없이 좋아서 미칠 것 같고, 죽을지 살지 모르고, 죽어도 좋다고 그저 춤을 추면서 내놓은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어떤 거예요? (48-111, 1971.09.05)
제사장이 되려면 성전이 있어야 되고 제단이 있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제단은 백성 때문에 있는 것이고, 제물과 제사장은 하늘 땅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제 제사장의 자리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동네를 찾아 다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제단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제사장이 되려면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동네에 가면 축을 쌓아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그다음엔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제단이 무엇입니까? 그 마을의 눈물의 성지입니다.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필요한 제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11-212, 1961.07.17)
어떤 교회장이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입장에 있다면, 그 제사장과 제물은 하나되어야 됩니다. 제사장 앞에 제물이 절대 순응해야 됩니다. 언제까지 그래야 되느냐? 피를 흘릴 때까지 순응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이 되어 가지고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순응하고, 1차, 2차, 3차까지 생사를 넘어설 수 있는 결의가 되어 있는 터전만 되면 하나님은 거기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도할 때, 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그 사람을 절대 한 사람으로 알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절대 한 사람으로 알지 말고, 부락이면 부락을 대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또, 자기 자신은 제사장인데 어떠한 입장에서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인가 하는 것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군(郡) 이면 군을 대표한 제사장이라는 신념을 가지라는 겁니다.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마을에 들어갔을 때에 그 교회장 앞에 나타난 사람이 마을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단 한사람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가 신념을 갖고 제사장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대상의 입장에서 일치되어 자기의 명령을 따라 제물적 행동, 즉 희생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게 될 때 그 탕감 범위는 개인적인 일대일이 아니라 군을 대표한 탕감 범위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군을 대표할 수 있는 탕감 범위가 자기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고해서 되느냐? 이 땅위에 자기 자신들이 설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군이면 군을 중심삼고 싸워 가지고 제물된 과정에서 승리하여 부활된 실체적 기준을 갖지 못하면 제사장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런 자리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그런 조건을 평면적으로 공히 세계화시켜 가지고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사상입니다. 알겠어요?「예」
재림주를 왜 보내야 되느냐? 각각 개인이 모두 재림주와 같은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군이면 군에서 제사장 노릇만 하면 되지 않느냐 할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생각 가지고 군책임자로서 제사장의 기준을 역사적으로, 하늘적으로, 영적으로, 시대적으로 탕감한 승리적 자리에 서 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두고 볼 때, 예수는 4천 년의 결실체로서 예수에게는 개인도 들어 있는 것이요, 4천 년 동안 이루어 놓은 가정도 들어가 있는 것이요, 4천 년 동안 이루어진 종족도 들어가 있는 것이요, 4천 년 동안 이루어진 교회도 들어가 있는 것이요, 4천 년 동안 이루어진 이스라엘 나라도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와 4천 년 동안 갖추어 온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비교해 볼 때, 오히려 예수가 내적인 가치가 더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통틀어 가지고 결실적 존재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를 믿고 세계를 위해서 제물을 바쳤더라면 세계는 이미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전체 사방을 대신한 중심적 가치기준을 가지고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고, 세계를 넘을 수 있는 중심적인 가치의 노정을 가게 하기 위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보내 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에 있어서 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재림주님은 반드시 와야 됩니다. (47-291, 1971.08.30)
종교가 나오기 전에는 반드시 선지자를 보내게 되는데 그 선지자는 그 시대에 있어서 종교의 책임자로서 사명을 다함과 동시에, 죽을 때에는 반드시 내 후계자는 누구라고 전부 다 선포하고 죽는 것입니다.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고 가게 되면 선지자의 사명이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 같은 사람도 후계자를 세웠던 것입니다.
제사장 사상을 중심삼고 통일교회를 볼 때,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어떤 사명을 해야 되느냐? 개인적 사명, 가정적 사명, 종족적 사명, 민족적 사명, 국가적 사명, 세계적 사명, 천주적 사명을 해야 되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몸의 사명까지 해야 됩니다. 이것을 전부다 완결 지은 총체, 전피조세계를 대표한 총체적 가치의 내용을 지니고 내적 가치의 기준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만 전세계를 봉헌해 드리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상대와 하나가 되는 날에는 새로운 부활의 생명권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권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부활된 개인과 부활된 가정과 부활된 종족과 부활된 민족과 부활된 국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47-293, 1971.08.30)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라셨고 선생님이 바랐던 것이 뭐냐? 축복받은 여러분의 가정 뒤에 민족이 달려 있고, 국가가 달려 있고, 세계가 달려 있기를 바랐습니다. 민주세계 전체가 달려 있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재탕감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 재탕감역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탕감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물질을 가지고 탕감을 했고, 그다음에는 아들딸을 가지고 탕감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을 가지고 탕감을 해야 되느냐? 아내와 남편을 중심삼고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탕감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은 아들딸을 중심삼고 탕감하는 시대가 아니라구요. 과거에는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한 줄로 서서 전후관계를 결정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횡적인 관계를 결정하는 때입니다. 때가 다르다는 거라구요. 왜 그래야 되느냐? 완성시대라는 것은 부모를 대표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가정이 아벨가정이면 완전한 그 가정과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여러분 축복받은 가정이 완전히 하나되기 위해서는 부부가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을 중심삼고 축복가정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알겠어요?「예」 (46-318, 1971.08.17)
주책임자들 일어서라구요. 주책임자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몇백만명의 생명을 책임진 제사장이예요, 제사장. 제사장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의 주(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축수(祝手)해 줄, 기도해 줄 책임을 여러분이 졌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24시간에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의 주에서 죽어 가는지 알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놀고 있을 때, 여러분이 자고 있을 때 죽어가게 되면 그 영들이 참소한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리고 여러분의 주에서 범죄를 하여 옥중에 잡혀 들어가 가지고 법정에 불려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 주의 모든 생명을 하나님 앞에 데려올 책임을 졌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을 보는 모든 자연은, 선생님이 말한 거와 같이 '너희 주에서 사람이 희생되어 가고, 이런 젊은이들이 옥중에 들어가고, 이런 사람들이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데 너는 뭘하고 있느냐?'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을 보는 만물이 참소하고, 천지의 모든 동물들도 참소한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또 자기가 갖고 있는 그 땅이 참소한다구요. 하루바삐 내 손길이 가고, 내 말이 전해져야 되고, 마을을 넘고 산꼭대기에까지, 온 만물에까지 내 정성이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느껴야 된다구요.
자, 제사장으로서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지내는데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그건 제사장의 책임입니다. 내가 대신 울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치고 이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된다구요. 내가 죄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민족을 위해서, 주(州)를 위해서 자기 죄를 회개해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기도하는 장소가 마루면, 그 마루가 마르지 않고 24시간 눈물에 젖어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전도할 사람을 보여 주고…. 하나님이 동정해야 된다구요. 주를 대표해서 '오냐, 나는 네 편이다' 하는 통고를 받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리고 여러분 앞에 찾아오는 사람은 왕과 같이 모셔야 됩니다. 그 나라의 왕과 같이 모실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종이 되어 모셔야 된다구요. 죄인이 죄를 벗으려니 할 수 없다구요. 왕과 같이 모시면 모실수록 여러분들의 탕감이 빨라진다는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내가 밑에 내려가 가지고 죄 있는 사람을 하늘같이 모셨으니 그 사이에 탕감조건이 많이 세워진다구요.
그래서 한 사람에서 열 사람, 열 사람에서 백 사람, 백 사람만 넘겨라 이거예요. 그러는 날에는 자동적으로, 자동적으로 퍼져 나간다 이거예요. 그래 여러분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지금까지의 생각을 다 뒤집어라 이거예요. 뭐 내가 아벨이고 뭣이고…. 아벨이면 제사장 노릇을 해야지요. 백성도 없이, 죄진 그 백성 가지고는 제사장은 절대 못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면 사람들은 친구가 안되지만, 하나님이 친구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봄바람을 몰아다 주는 거예요. 선생님은 워싱턴 대회같이 불가능한 것에서 승리를 가져왔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마음을 갖고, 흑인이든 황인종이든 왕같이, 하나님같이 높였다 이거예요. 그런 기도를 하고, 그런 눈물을 흘렸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89-287, 1976.12.04)
여러분은 선생님 대신자입니다. 선생님 같으면 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내가 지고 좋은 복을 버리고, 나쁜 복은 많이 지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제사장의 책임을 할래요?「예」 그러려면 여러분이 높은 산에 올라가면 그 주의 사람들이 어서어서 구해 달라고 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영계의 선조들이 어서어서 구해 달라고 하는 감을 느껴야 됩니다. 그 가운데 책임을 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제사장이예요. 제사장의 자격증을 갖고 자기 책임을 해야 되겠다구요. 아무리 머리가 아파도 아프다고 못 하고, 아무리 고단해도 고단하다고 얘기 못 하는 것이 제사장이예요. 하나님이 쉬라는 명령을 해야 쉬는 거예요. 책임 못 하게 되면 도리어 탕감을 받게 되어 병이 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길을 피해 가기 위해서 자체 내에서 핍박받는 길을 만들어서 가는 그런 놀음을 하는 거예요. 제사장은 맨 아래서부터, 아래서 먹는 그 밥을 먹고 쭉 올라가야 됩니다. 입고 사는 것도 저 밑창에서부터…. 전부 다 복귀해 가는 거예요. 그런 생활을 해야 된다구요. 그래서 나라와 하나되고 백성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올라가는 거예요. 비참한 거예요, 비참한 거.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이 핍박받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구요. 내 가정이 하고 우리 교회가 할 탕감을 외부에서 이렇게 떠들고 함으로써 외적 탕감으로 전부 다 소모시키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고생하라 이거예요. 고생하는 것은 탕감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됩니다. 잠을 안 자고 기도하고, 정성들이고, 그저 쉬지 않고 노력하고 해서 외적 탕감을 해줌으로 말미암아….
제사장은 그러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책임 못 하고는 큰소리를 할 수 없습니다. 한눈을 팔 수 없어요. 내가 마음으로 누가 어떻다고 평을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내가 죄인인데, 제사장인 내가 책임을 못 했는데 어떻게 평을 하나요? 알겠지요?「예」 (89-289, 1976.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