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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공의의 길

1) 통일교회의 주류사상과 참사랑의 길

우리 통일교회라는 무슨 뜻을 갖고 나가느냐? 하나님을 중심삼은 세계적 사상을 가지고 나갑니다. 어떤 민족적 사상이 아니예요. 대한 민국을 위주한 사상이 아니라구요. 하늘땅을 중심삼은 크나큰 이런 뜻의 사상을 갖고 나가는 거예요. 이 뜻의 사상이 주류라는 거예요.
사랑, 사랑 가운데는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할 줄 알아야 형제를 사랑하는 거예요. 또, 형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형제를 사랑하는 자녀를 더 사랑하게 마련이라구요. 이렇게 돼요. 부모를 사랑할 줄 알고, 그다음에는 형제를 사랑할 줄 알고, 그다음에는 친척을 사랑할 줄 알아야 돼요. 자기 삼촌, 사촌, 오촌, 육촌 있지요? 그 친척과 싸우지 않고 하나되어서 서로 사랑해야 돼요. 그다음에는 자기의 인근 동네 사람들을 사랑해야 돼요. 그것이 크게 되면 그다음엔 사회가 문제 되고, 그다음에는 나라가 문제 되고, 그다음엔 세계가 문제 된다구요. 그 범위를 점점 넓혀 가는데 그게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점점점 희박해 갑니다. 점점 사랑이 엷어지고, 뭐라 할까, 사랑이 점점점 없어지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가면 갈수록 사랑이 더 강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가면 갈수록 강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 나가는 길에서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랑' 하게 되면 저 먼 것은 점점점점 관계가 없고, 가까운 데 들어와 가지고 내 어머니 아버지 내 형제에 전부 다 집약되어 있었다구요. 내 남편이라든가 내 아내라든가 나를 중심삼은 가정이라는 기지에서 전부 열매맺었다는 거예요. 거기에 똘똘 말려 있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지금까지의 타락한 세상의 가정이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다른 것이 이거라구요. 통일교회는 뭐냐 하면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듯이 종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자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를 버리고라도 국가를 사랑하자는 거라구요.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나라도 버려야 되겠다구요. 또, 하늘을 사랑하기 위해 서는 세계까지 버리자 이거예요. 더 멀고 큰 것을 위해서 나의 가깝고 작은 것을 희생시키는 사랑의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 통일교회의 주류사상입니다. 간단한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데 그 사상이 어떠한 사상이냐? 그건 선생님 사상이 아니예요. 미국에서 말하는 레버런 문의 사상이 아니예요. 여기서 말하는 대로 하자면 선생님의 사상이 아니예요. 그 사상은 본래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할 때에 자기보다도 상대를 더 사랑하는 분이예요. 자기보다도 상대편을 더 사랑하여 두 사람이 하나되어 가지고 더 큰 범위의 상대편을 사랑하기 위한 운동이 하나님의 운동입니다. 하나님의 사상은 이것이 본질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까운 사람을 악한 세상에 보내 가지고 세계 인류를 위해서 희생시키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위인들, 과거에 왔다 갔던 성인 현철들은 전부 다 이 세상에 와 가지고 '인류를 사랑하자'는 타이틀을 걸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라든가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서 환영받은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배척받아 희생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시대가 점점 가까워 옴에 따라서 비로소 희생된 사람을, 그런 사상을 추앙한 사람들을 높이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분들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같은 종주들,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예수라든가 석가라든가 공자 같은 사람들이 다 그런 분들입니다. 그렇지요?
그분들의 사상이 무엇이냐? 그건 자기 가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이 우주가 한 가정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주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보다 낮은 모든 체제하에 있는 국가라든가 민족이라든가 종족이라든가 가정이라든가 개인을 희생해야 돼요. 그것이 다르다구요. 알겠어요?
(100-76, 1978.10.08)

2) 선한 사람이 가는 길

세상 사랑은 전부 다 버리고 우리 집, 우리 엄마 아빠에 결착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을 기반으로 해 가기고 점핑하는 거예요. 신구약 사상으로 말하면 큰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제물로 삼아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길을 가려면 희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희생이 뭐냐?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물이 뭐냐? 피땀을 흘리고 스스로를 포기하는 자리에 서는 것을 제물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일교회의 말로 한다면 탕감복귀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선의 기대가 닦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가정적 선의 기대가 닦아지려면 가정이 종족을 대해서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가정적 선의 기대가 안 닦아집니다. 또, 종족적 선의 기대가 닦아지려면 민족을 대해 가지고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 단계 떨어지는 거예요. 민족적 선의 기대가 닦아지려면 국가 앞에 제물 되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국가적 선의 기대가 닦아지려면 세계를 대해서 탕감복귀의 조건을 제시해야 돼요.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타락한 인류가 걸어온 길과 오늘날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나가는 길과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착한 학생, 좋은 학생을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원칙은 모르지만 착한 학생 할 때는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고 남을 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대의(大義)를 위해서 소의(小義)에 있는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시키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선의 가치 기준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면 그 선의 가치가 세계적인 가치로 드러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도 희생해야 되고, 가정도 희생해야 되고, 종족도 희생해야 되고, 민족도 희생해야 되고, 국가도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극히 어려운 희생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그 선의 대가로 나타난 가치가 비례적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길을 가더라도 선을 추구하려면 언제나 먼산을 바라보고 가야 된다 이거예요. 가슴을 내밀고 눈을 들고 미래를 향해서 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를 향한 결심에 비례되는 희생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돼요. 이런 사람이 앞으로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 요? 그래서 하나님의 사상과 오늘 인간세계의 사상과는 다른 거예요.
여러분들이 학교에서도 그래야 돼요.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까딱 잘못하다가는 역적이 되기 쉽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마구 주장하고 전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까딱 잘못하면 역적이 되기 쉽다구요. 그런 사람이 주권을 잡으면 독재자가 되어 가지고 인류역사에 큰 피해를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하늘의 선을 따라가려면 미래를 위해서 참고, 내일을 위해서 참는 사람, 오늘의 성공을 위하는 것보다도 내일의 성공을 위해 참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지도자가 되더라도 선한 지도자가 되고 내일을 위해 건설하는 것입니다. 미개지 같은 환경을 개척하여 발전적 환경으로 남기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들은 악에 가까운 것이요, 공적인 하나님의 사상을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선에 가까운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친구들이 있어도 좋은 친구 나쁜 친구를 대번에 가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말하는 사람은, 자기 변명을 짹짹짹짹 말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에 가까운 것이요, 공적인 입장에서 대의를 위해 변명하고 공적인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에 가까운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뭐든지 그렇게 좌우가 되는 거예요. 왼편, 바른편으로 갈라지는데, 눈으로 보는 것도 그렇다구요. '아이 좋다' 하는 것도 그것이 어떻게 좋으냐 이거예요. 그것은 내가 보니까 좋다는 거예요. 좋다는 것은 '우리 가정이 어떻게 보았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어떻게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 인류가 어떻게 볼 것이기 때문에 좋다 !'이렇게 보는 것하고, '아이고, 이것은 빨간 색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색이니까 좋다' 이렇게 보는 것하고 두 가지라구요. 알겠어요?
말하는 것도 두 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변명하고 싸우는 거예요. 성을 내 가지고 싸울 때에 자기 뜻을 자기대로 주장하다 가는 악으로 흘러갑니다. 자기에게 결착되어 가지고 세계와 관계맺지 않으면 악한 것이예요. 그렇지만 공의에 의해서, 어떤 동네를 지나가다가 만약에 약한 자를 강한 자가 아무런 조건 없이 구타하는 걸 봤다면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은, 공적인 어떤 의리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예요. 싸운다고 다 나쁜 게 아니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도 싸운다고 나쁜 게 아니라구요.
싸움 중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자기 야욕을, 자기 목적을,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싸움은 사탄편 싸움이요, 하나님과 세계와 이 우주에 좋을 수 있는 목적을 위해 싸우는 싸움은 선한 편 싸움이예요. 악한 싸움은 쳐서 굴복시키는 싸움이고, 선한 싸움은 양보해 가지고 그것을 포용하려는 싸움입니다. 싸움은 싸움이라구요. 그 두 가지 싸움이 일생에 있어서 하루 생활에 교차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나이 어린 두 소년이 싸우는 것을 볼 때에도 분하지만 참고, 단방에 해치우고 싶겠지만 이것을 다 포용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을 알고 양보해 주고 이래 놓으면, 하나님이라든가 혹은 옆에 사람이 있어서 누가 선하냐 판단할 때는 관용으로 용서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100-77, 1978.10.08)

3) 선한 생활의 실례

일상생활 전부가 그렇다구요. 공부하는 것도 그렇다구요. '내가 공부하는 것은 ○○○를 이기기 위해서 공부한다' 이러면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을 거예요. ○○○반에 공부 잘하는 여자가 언제든지 시험을 치고 난 다음에는 선생님한테 '○○○몇 점이예요?' 이럴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보는 거예요. 공부하는 것은 시험 점수가 목적이 아니예요. 내가 공부하는 데는 아무개를 이기기 위한 것보다도 대한민국의 일등이 되어야 되겠다, 이래야 됩니다. 이런 관점으로 공부를 해야 돼요. 알겠어요?
리틀엔젤스 학교에서 내가 일등 되는 것보다도 대한민국에서 일등 되어야 되겠다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왜? 통일교회의 영광을 위해서. 또 그다음에 왜? 우리 선생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거기에 가치가 있는 거예요. 자기가 백점을 맞아서 좋아하게 될 때는,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했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류가 '허허, 그러면 그렇지 ! ' 이러는 거예요. 알겠어요? 다르다구요.
잠을 잘 때도 그래요. '아이구, 고달프니 자야 되겠다' 이러며 자는데, 자는 것을 누굴 위해서 자느냐? 여러분들을 위해서 자되, '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잔다. 내가 병이 나면 큰일 난다. 대한민국이 손해나고 세계가 손해나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위해서 자고 세계를 위해서 자고 하나님을 위해서 잔다'고 하면 그 생각이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그런데 '아이구, 내가 고단하니 자지' 이런다구요. 기도할 때도 '하나님 ! 저 잡니다. 당신을 위해 내일 일해야 되겠고 당신을 위해 열심히 싸워야 되겠으니 잡니다. 자도 되지요?'그러면 하나님이 '예- 이-' 한다구요. 전부가 그렇다구요. 자는 데도 그러한 선악이 교차되어 있고 쉬는 데도 그래요.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선한 편에 수습되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물을 한 모금 먹어도 그래요. 참 목이 말라서, 몇 바가지라도 물을 한꺼번에 들이킬 수 있을 정도로 목이 마르면 쓱 가서 '하나님, 저 하나님 대신 시원하게 물을 마시겠습니다' 하면서 벌컥벌컥 마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내가 목이 말라서 먹지만 하나님 대신 먹어 주는 것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야 ! 이 녀석 괜찮은 데. 젊은놈이지만 두고두고 내가 기억을 해야 되겠구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 같은 소년 소녀들이 물을 먹을 때, '아이고, 나 물물물물….' 이러면서 서로 먹겠다고 싸우는 것보다 쓱 가서 '하나님 대신 먹어 줄 사람은 좀 기다리는 거야' 하면서 '그 대신 나 많이 먹는다' 이래 가지고 들이키면 그것은 하늘땅을 위해서 먹는 것이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노래를 불러도 그래요. 하늘을 찬양하고 자연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을 찬양한다는 이런 생각을 하고 노래하면 그 노래소리에 삼천리 반도가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삼천리 반도가 귀를 귀울인다는 거예요. 어째서 삼천리 반도가 귀를 기울일까요? 이 우주에 전파로, 말로 꽉찼다구요. 이 우주에 말이 꽉찼지요? 그렇지요? 전파로 꽉차 있다구요. 말이 꽉차 있다구요. 라디오를 한번 들어 봐요. 사람이 벗어날 수 없을이만큼 겹겹이 말로써 에워싸여 있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 산울림 알지요? 산울림이 '우- 후 우우후 우우후' 하고 울지요? 아주 멋진 산울림이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쓱 할 때, 그것 다 듣고 말하는 거라구요. 산울림이 왜 생겼을까요? 그것은 간단한 이치예요. 공기 파동에 의해 가지고 가던 방향에서 갈 길이 없어 막히게 되니 반사되어 되돌아오면서 뭔가 들리는 거예요. 그 들리는 게 뭐예요? 그건 물리적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그 내적인 의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봐요. 산과 속삭이고 자연이 속삭이고 바위가 속삭인다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신비로운 거예요?
또 보라구요. 여러분들 풀벌레들이 말이예요, 매미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라구요. '쌕쌕쌕쌕 쌔액 쌕' 그래요. 음률이 높았다가 낮았다가 아주 조화를 이룬다구요. 바람이 불 때 들어 보라구요. 바람이 '획-' 하고 불 때는 낮게 들리고 말이예요, 그러더라 이거예요. 그런 생각 안 해봤지요? 귀뚜라미 우는 것도 그렇다구요. 환한 낮에 우는 것하고 밤에 우는 것하고 저녁에 우는 것이 다 다르다구요. 들어 보라구요. 전부 다 조화를 맞출 줄 안다구요. 우주는 그러한 조화의 음률 가운데서 놀아나고 있고, 살고 있다 이거예요.
그 가운데에서 왕초가 누구냐 하면 인간이예요. 알겠어요? 여자들이 노래를 한번 싹 부르게 되면 저기 두꺼비 새끼도 노래를 듣기 위해서 쓱 이렇게 나오고 말이예요, 올빼미 새끼도 노래를 듣기 위해서 나오고, 개구리 새끼, 잔고기, 물 속에 있는 고기도 들으려고 다 나온다구요.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음악연습을 할 때 그러한 생각을 갖고 해야 돼요. '아이구, 내 노래소리가 저 산 중턱을 넘어갔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거예요. 저 산너머까지 넘어가야 될 텐데, 좀더 크게 해보자 해서 '야- 아-' 소리쳐 봐요.
먼 산을 바라보며 저 산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할 때 '친구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보다도 저기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마음이 집중되어 영계와 통하여 영육이 합해져서 그것이 보인다는 거예요, 영계까지 동원되어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와 관계를 맺고 선의 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모든 것이 협조하게 마련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100-80, 1978.10.08)

4) 사람은 솔직해야 발전해

악한 것은 자기를 주장하는 거예요. 세계고 하나님이고 뭣이고 전부 다 자기에게 귀일시키려고 하고 밟아 치우려고 하는 것이 악한 거예요. 이게 사탄이예요. 선한 것은 내 자신이 이 우주를 전부 다 해방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우주를 밟아 치우려는 게 아니예요. 우주를 해방시켜 가지고 최고로 좋게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게 쉬운게 아니예요. 악한 것과 반대예요. 반대라구요.
여러분들 싸움을 해봤어요? 여러분들 중에 싸움을 해본 사람은 손들어 봐요.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남을 볼 게 뭐야? 자기의 양심에게 물어 보면 되지. 갸웃갸웃하는 그 여자들, 아주 독특한 성격이예요. 싸움을 해봤어요, 안 해봤어요? 「해봤어요」 그렇지요. 해봤지요. 요렇게 한마디 듣고야 '해봤어요' 이래요? 물어 볼 때, '해봤어요 (약하게)'싹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사탄편적 악한 편의 대답이고, '해봤어요 (크게)'하고 대답하면 그건 선한 편의 대답이예요. 여러분들은 악한 편의 대답을 했어요, 선한 편의 대답을 했어요? 「선한편 …」 어때요? 남자들이 대답해 보라구요. 악한 편의 대답을 했어요, 선한 편의 대답을 했어요?「악한 편의 대답을…」 악한 편이지요. 자기 중심삼고 이러고 불리하니까 '우- ' 하는 것은 악한 편이예요.
사람은 솔직해야 돼요. 솔직한 것은 모든 세상에 통하는 거예요. 솔직한 것은 어떤 것에도 통한다는 거예요. 자기가 잘못했다면 잘못했다고 솔직하게 말할 때는 발전합니다. 선도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어요. 언제나 사람이 잘할 수 있어요? 사람이 잘못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발전할 수 있는 거라구요. 왜? 발전하는 데는 내가 잘못했다 해 가지고 거기서 솔직히 고백하고 후회함으로 말미암아 결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잘못한 것이 나쁜 게 아니예요. 잘못했으면 여기에 새로운 자극을 받아 가지고 점핑할 수 있어요. 자극을 받아 가지고 선하게 비약할 수 있으면 잘못하는 것도 좋다구요. 공부를 못해서 낙제를 했더라도, 내가 한번 낙제됨으로 말미암아 우등생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아, 뭘하다가 낙제를 하여 동료들 가운데 최고가 못되고 이렇게 형편없이 됐어' 하는데 낙제를 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자극이 되고 충격이 되어 가지고 '삥' 다른 쪽으로 날면 낙제한 것이 도리어 선한 길로 인도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가는 데에 직선으로 가기는 힘들어요. 이렇게 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솔직해야 돼요. 우물우물하고 숨기려고 하는 사람은 발전을 못 합니다. 그러나 솔직한 사람은 발전을 합니다. 이 우주가 밀어 주기 때문에 발전합니다. 어디 가든지 우주가 밀어 준다구요. 그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막론하고 솔직한 사람은 전부 다 친구가 되는 거예요. 숨기고 우물우물 왜 그러는 거예요? 자기를 변명하려고 하고 말이예요,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게 되면 발전을 못하고 친구도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솔직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벌써 한 발짝을 척 내디디면 선과 악이 결정되는 거예요. 나쁘고 좋은 것이 결정된다구요. 열 발짝을 가면 선의 담이 겹겹으로 열겹을 채우는 거예요. 두겹으로 세겹으로 채워 놔 가지고 거기에 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거예요. 영영 흘러가 버리고 만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길을 가는 데에는 지도하는 선생이 필요한 거예요. '이놈, 안 돼' 하면서 기합도 주는 거예요. 기합받는 것이 나쁜 게 아니예요.
기합을 받고 '에이, 이놈의 선생! 두고 보자. 오늘 밤에 골목에서 만나면 국물도 없다' 이러는 사람은 망할 자식이고, '선생님! 한번 봅시다. 십년 후에 봅시다. 오늘 맞았지만 십년 후엔 내가 선생님을 가르칠 것이요, 선생님이 나한테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는 기합받은 것이 황금패를 받은 것보다 더 좋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공부를 못한다고 기합을 주고 사람같이 취급도 않고 억울하게 만들 때 거기서 분한 마음을 선한 데에 돌리게 되면 한번 선생님한테 기합을 받은 것이 황금패, 황금 메달 받은 것보다 더 고귀한 기념패가 된다구요. 이렇게 보는 마음이 여러분들에게는 지극히 필요하다는 거예요. (L00-87)
(100-83, 1978.10.08)

5) 훌륭하다는 기준의 단계와 그 길

학생의 본분은 뭐예요?「공부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해야 되는 거예요. 그럼 공부하는 목적이 뭐예요?「훌륭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훌륭하다는 기준이 어떤 거예요? 첫째는 자기 가정이요, 둘째는 나라요, 세째는 세계요, 네째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3단계가 반드시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길을 필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들이 부모 앞에 효도하는 것이 아들 딸로서의 책임이라는 거예요. 왜 효도해야 되느냐? 효도하는 길은 나라에 대한 충신의 길과 연결된다는 거예요. 대나무와 같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충신, 나라에 충성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세계에 대해 성인의 길을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그것이 한 직선이 되어야 된다구요. 이렇게 볼 때 효도는 못 하더라도 나라에 충신이 된다면 그 부모가 '아, 너, 나한테 효도를 안 했다'고 못 하는 거예요. '너, 참 잘했다' 하는 거예요. 부모를 버리고 집을 떠나서 불효를 했더라도 나라의 충신이 될 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죽어서 영계에 갔더라도 '야, 너 참 잘했다'고 칭찬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100-149, 1978.10.09)

6) 인간 최고의 완성의 표어

그러면 인류가 가는 길 중에서 제일 빠른 길은 어떤 길이이냐? 일생이라는 것은 짧다구요. 여러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요? 아까, ○○인가? 누구더라? 「○○입니다」 '아이구 ! 내가 열일곱 살 되었으니 많이 살았다'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이라구요. 살기야 많이 살았지요. 열일곱 살하게 되면 17일보다 많은 거지요. 1년 7개월보다 많지요.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라구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짧은 인생길에 있어서 우리가 엄청난 과제를 행하고 가야 할 표어가 있다구요. 그런 과제가 남아 있다고 보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 사람을 사랑한다면 과제 가운데 이 과제를 무엇보다 뚜렷하게 제시해야 된다는 결과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들에 대해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는 거예요.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자연적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종교를 믿는 길은 자기 부모를 버리고, 그다음엔 가정을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세계를 다 버리고 하나님 앞에 사랑을 붙들고 나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 같지만, 그것이 전부를 한꺼번에 완성할 수 있는 길이 됨으로 말미암아, 역사도 그러한 길을 옹호해 나오기 마련이고, 세계도 그렇게 승리한 사람을 찬양하게 마련이고, 나라도 그런 사람을 찬양하게 마련이고, 가정도 그런 사람을 찬양하게 마련이라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하고 사랑하라'는 그 말은 무엇보다 최고의 완성의 표어라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알겠어요?
그래서 종교에서는 하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도 말하기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짊어진 아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 아들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아들과 하나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인이나 애비나 처자나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못하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는 예수님의 말도 그런 뜻이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짧은 생애를 살다 가는 인간 앞에 제일 좋은 표어, 제일 좋은 과제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제일 좋은 과제로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을 표어로 내세웠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누구도 되지 못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날에는 성인완성은 물론이요, 충신완성도 물론이요, 효자완성도 물론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완성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가정에서도 승리한 자리에 서는 것이요, 국가적 기반에서도 승리한 자가 되는 것이요, 세계적 기반에서도 승리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100-151, 1978.10.09)

7) 참된 효자·충신·성인·성자의 길

여러분이 어떻게 돼야 하느냐? 충신이 돼야 돼요. 여러분이 충신이 되어야 돼요. 충신이라는 것이 뭐냐? 나랏님 대해서 정성들이는 것이 충신이냐? 아니예요. 백성을 나랏님같이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충신인걸 알아야 돼요. 효자가 뭐냐? 부모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이 아니예요. 부모를 위하듯이 형제를 위해 정성들이는 사람이 효자라는 걸 알아야 돼요. 다르다구요.
그다음에 성인은 뭐냐? 성인은 세계 인류를 위해서 지금까지 희생하고 간 사람이예요. 성자는 뭐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로 가자 이거예요. 세계 사람을 하나님같이 위해 가는 사람이 성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다르다구요. 역사적인 성인은 지금까지 세계 사람을 위해서 죽어 간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 성자는 뭐냐? 하나님에게도 충성을 하지만 하나님같이 만민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게 뭐라구요? 성자입니다. 성자는 성인과 달라요. 성자는 성인과 다르다구요.
참된 효자가 뭐라구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위하듯이 형제를 위해 가는 것이 효자예요. 또, 참된 충신이 뭐냐? 군왕을 위하듯이 백성을 위해 가는 사람이 충신이예요. 참된 성자, 하나님의 아들딸이 누구냐? 하나님을 위하듯이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전부를 위해 가려고 하는 사람이 성자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자의 길을 가겠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하나님도 사랑하지만 인류도 사랑하는 거예요. 원수인 미국까지도 사랑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야 하나님이 볼 때 '내 아들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개 나라의 아들이 아니예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사람이 아니예요. 대한민국의 아들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내 아들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듯이 인류를 위하는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 거예요. 자기를 잊고 인류를 위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기를 잊고 이 인류를 위하니 효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정의를 정확히 알아야 돼요. 우리는 효자의 길에서부터 충신의 길로부터 성자의 길을 찾아가는 거예요. 성인의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니예요. 확실히 알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가정 가운데에서 나라의 충신 자리에 나갔다 하게 되면, 군왕이 충신이라고 지명하게 되면 그 양반은 어떤 사람이냐? 본래 군왕도 위했지만 전체 국민을 위한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되면 간신 같은 것은 모가지라구요. 간신, 이놈의 자식들은 벌써 전통이 다르다구요. 자기를 위하면 간신이예요. 역적이예요. 환경이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아요.
그러한 내용을 중심삼은 효자의 도리를 통해서, 충신의 도리를 통해서 성자의 도리를 이루어 놓으면 그 나라가 무슨 나라라구요? 지상천국이예요. 이렇게 산 나라는 그냥 그대로 천국가는 거예요. 그렇게 옮겨지게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었다 이거예요.
(133-242, 198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