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참된 사람의 갈 길
1)인격자의 길
① '인격자'란
인격자는 어떤 사람이 인격자냐? 밥만 잘 먹고 밥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인격자예요, 예술이나 문학이나 시(詩)에 조예가 있어서 풍부한 감상을 하면서 산을 대해서 속삭이고 들을 대해서 속삭이고 흐르는 물을 대해서 찬양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인격자예요? 어느 쪽이 가치적인 인간에 가깝겠느냐 하게 된다면 말이예요, 밥 먹는 사람은 물에 가깝다구요, 물. 무슨 물? 동물에 가깝다구요, 동물에. 동물에 가깝고, 그다음에 자연을 즐기고 서정(抒情)의 심정이 풍부한 사람들은 뭐냐 하면 신선(神仙)에, 신선에 가까워요. 사람 가운데는 두 종류가 있나니 하나는 동물적인 인간이요, 하나는 이상적 (理想的)인 인간입니다. (85-140, 1976.03.03)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하는가? 어떤 사회의 제도 가운데에서 중심적인 위치에 설 수 있는 사람을 인격자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동네에 존경을 받는 인격자가 있다고 하면 그는 그 동네 안팎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중심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그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역시 국가의 대표자, 즉 하나의 인격자를 중심으로 국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인격자를 중심으로 국민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실체적인 조직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범위가 넓은 세계에도 역시 하나의 중심적인 인격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자라고 해도 외적으로, 즉 육체적으로 보면 보통 사람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적으로 보면 사상적인 면이라든가 정신적인 면이 보통 사람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격자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외적인 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적 분야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격을 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정신적인 분야를 넓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마음은 무한대로 접할 수 있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사람이 갖고 있는 욕망은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끝없이 작용하면서 무한한 욕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또 우리의 인격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인격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나 국가나 세계의 한계권에 한정지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절대적인 최고의 기준을 바라보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절대적인 자리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내심의 작용을 볼 때, 마음의 세계는 무한과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9-124, 1970.02.26)
어떤 사람을 인격자라고 할 때에는 그 사람의 외모나 학벌, 경력 또는 지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원리적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외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하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변함 없는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인 것입니다. (19-282, 1968.03.10)
인격에는 종적인 인격, 양심적인 인격, 그다음에는 횡적인 인격, 육체 적인 인격이 있습니다. 이 인격들을 연합해 가지고 종적인 인격은 수평선에 대해서 수직에 서야 되고, 또 육적인 인격은 수직에 대해서 완전히 90각도의 횡적인 인격에 서야만 됩니다.
그래야 모든 각도가 언제든지 90각도가 되고 구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어 그 중심 포인트만 땅 치면 거기에 관계되는 천만 가지 금을 긋더라도 그 중심을 통해 금을 긋기 때문에 여기에 작용하는 힘은 그 구(球) 전체에 작용하는 거예요. 그것만 땅 치면 그 전체가 울린다는 거예요. 전체가 안다는 것입니다, (176-138, 1988.05.09)
이렇게 볼 때에 사람 인격에도 뼈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봤어요, 인격의 뼈? '인격' 하게 되면 사람 형태, 갖추어진 사람의 모양을 말하는 데, 그 가운데는 보이는 사람, 나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나를 이렇게 보이게 할 수 있는 근본을 보게 되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숨어 있는 뼈와 같은 형성체가 있습니다. 그 형성체로 말미암아 보이는 형체가 이렇게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177-315, 1988.05.22)
② 인격의 중심-심정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후광입니다. 그물의 벼리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닻을 내려야 합니다.
인격의 중심을 무엇에 두느냐? 진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심정에 두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그 자리는 일생 동안 봄을 노래하는 자리입니다. (33-68, 1970.08.08)
여러분은 죽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인생길을 가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추구해 나오는 하나님의 인격의 중심이 무엇이냐? 진리가 아닙니다. 그 중심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의 극을 초월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면 내 죽음의 고통이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이라 해도 그 죽음의 고통을 잊고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품겨서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최후를 마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땅에 왔다 간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최고의 선물을 안고 가는 사람입니다. (33-84, 1970.08.09)
인격이 무엇이냐? 인격은 말뿐만 아니라 심정과 연관된 것이 인격의 표상이요, 이것이 영원한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심정의 하나님을 주창하기 시작한 거라구요. 이것은 최후의 하나님의 인격의 기준이예요. 하나님은 사랑이라 했기 때문에 사랑의 본바탕인 심정 기원을 중심삼고 거기에서 솟아나는 인격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인격 밑에서 천리의 대도(大道)를 밝혀 나가자는 주장을 하는 데 있어서는 오늘날 통일교회 문 아무개를 아무도 따라갈 수 없다구요. (84-120, 1976.02.22)
도의 세계에서 인격완성이란 표준이 어디에서 나올 것이냐?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인격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33-79, 1970.08.09)
③ 인격완성의 방법
「선생님께서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인격형성을 해야 된다고 하셨는데요, 그렇게 하려면 뭐가 제일 문제가 되는지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죽으라구! 죽어요! 죽은 체하라구요. 저 발바닥에 자꾸 밟히라구요. 높은데 올라가서는 몸 마음이 하나되게 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내가 알기로는. 천하에 높은 마음 가지고 올라가게 되면 하나되는 길이 없어요. 밟혀야 돼요. 선생님도 높아질까봐 하나님이 지금까지 40년을 발로 밟아 버린 거예요. 밟아 버리니 자꾸 높아지려는 것이 짓이겨져 가지고 하나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잘 알겠습니다」 삼천리반도에 돌아다니던 저 옛날의 뭣인가, 김삿갓처럼 욕을 먹고 밟히고 천대받으면서 다녀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걸 다 소화할 수 있는 그걸 다 기쁘게 소화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됩니다.
지금 저 보통 세상에서 생각할 때, 전부 다 몸 마음이 하나되는 데는 좋은 자리에서 편안하고 잘먹고 잘살면 좋겠지 하는 거예요. 그것들은 지옥 가야 돼요. 지옥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고 했어요. 반대라구요, 이게. 역설적인 논리를 통해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거예요. 너희 집안식구가 원수라 했어요. 누구보다도 날 더 사랑하라고 했다구요. 그것은 전부 다 제일 반대의 자리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144-257, 1986.04.25)
④ 인격자의 생활 면모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아침 저녁으로 변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인격자라 할 수 없습니다. 인격자란 일생을 통해서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고, 의(義)의 수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무엇이 결정된 후에는 이렇구 저렇구 변명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기가 약속한 일에 대해서는 우주의 법칙이 변할지언정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23-98, 1969.05.14)
인격자는 누구와 약속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행하고 실천합니다. 이것은 네가 주장해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인격자가 아닙니다. 법은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법의 약속권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법을 지켜야 합니다. 약속한 사람이 그 법을 못 지킬 때에는 공동적인 법도에 의해서 제재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을 준수 해야 할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누가 주장했든지간에 세워 놓은 약속은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됩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약속한 기준, 즉 선이면 선, 점이면 점을 중심삼고 모든 것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31-13, 1970.04.08)
우주의 본원적인 하나님의 사랑, 세계주의적인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 이후 오늘날까지 살아 나오는 인간 개개인에게 찾아 들어가 절충되었다면 영원한 한날을 중심삼고 올라가도 사랑이요, 떨어져도 사랑이요, 자빠져도 사랑이다 할 수 있는 경지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경지에서는 인격의 귀함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 사람은 말을 잘해서 좋다거나 그 사람의 눈이 비둘기 눈 같아서 좋다거나 하는 것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은 전부 향수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전부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때에 하나님의 분신이요, 하나님과 인연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런 심정을 가지고 보면 전부 다 친구인 것입니다. (33-89, 1970.08.09)
2)성인의 길
① 통일교회는 '성인 되자'를 주장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위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위인 앞에는 원수가 있지만 성인 앞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위인은 자기 민족만 사랑한 사람이지만 성인은 인류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위인이 하나님 앞에 나서게 될 때 '너는 네 민족은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내가 찾는 세계인류를 사랑하지 못했지 않느냐'고 하면 나갈 수 없지만, 성인의 도리를 따라간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직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뭘하자는 거라구요? 위인 만들자는 거예요, 성인 만들자는 거예요?「성인이요」 (38-261, 1971.01.08)
② 성인의 주장과 가르침
㉠성인은 어떤 분이냐
성인이 도대체 뭐냐? 성인이 뭔지 몰라도 성인이 있어요. 성인이 무엇이냐? 성인은 성인이지. '성(聖)'자라는 것은 '귀 이(耳)'자, '입 구(口)'자에 '임금 왕(王)'자가 합한 것입니다. 귀와 입의 왕이 되는 것이 성인입니다. (147-282, 1986.10.01)
성인이 어떤 사람이냐? 성인이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성인이라는 것은 모든 세계 만인을 위해서 살고, 밤이나 낮이나 영원을 두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고,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연이라든가 모든 우주를 전부 다 위해 주고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인입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어요? 여기에서 정의를 내리더라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133-18, 1984.07.01)
성인의 기준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더 큰 것을 위하여 즉, 세계를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온 만상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갈래갈래 찢어서라도 나눠 주고 싶어하는 데서 결정됩니다. (20-180, 1968.06.09)
㉡성인은 종교와 신을 주장
성인이란 국가적이 아니라 세계적입니다. 또한 세계적인데 인간만을 중심삼은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고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없습니다. (38-261, 1971.01.08)
지금까지 역사가 흘러 나오면서 발전된 세계문화의 사상적이며 정신적인 기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면 성인의 도리로부터 시작되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종교라는 배경을 중심삼아 가지고 발전해 나왔습니다. (39-256, 1971.01.15)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륜도덕만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만을 중심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만 중심삼고는 나라를 넘지 못합니다. 나라를 넘을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천주사상을 갖지 않고는 나라를 초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명단에 들어간 사람은 전부 다 종교의 교주라는 것입니다. (38-259, 1971.01.08)
성인들이 무엇을 소개했느냐 하면 인간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신을 소개했습니다. 성인의 반열에 동참한 사람들을 보면 신을 숭상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신을 빼놓고 성인이 된 사람 있어요? (39-315, 1971.01.16)
또, 성인들은 인륜의 도리만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천륜의 도리를 겸하여 가르쳐 준 것입니다. (33-288, 1970.08.21)
㉢성인의 가르침
성인은 무엇을 가르치느냐? 반드시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34-195, 1970.09.06)
성인들이 무엇을 가르쳤느냐 하면 전부 다 하늘을 위주로 해서 가르쳤습니다. 그 목적이 인간의 도리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늘을 중심삼고 천의(天意)에 대해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즉,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인간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쳤습니다. 천의에 따라서 사랑이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 분들의 가르침이 세계적 가르침이 된 것입니다. 만국의 사람들이 추앙하고 숭상하는 전세계적, 천주사적인 사람이 됨으로 말미암아 성인이 된 것입니다. (39-255, 1971.01.15)
성인은 무엇을 가르쳐 줘야 되느냐 하면 참된 생명, 참된 인격을 가르쳐 줘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참된 사랑을 가르쳐 줘야 됩니다. 사랑만이 아니고 참된 인격의 신까지도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겁니다. (103-13, 1979.01.28)
③ 성인의 가르침에 대한 오늘의 관점
여러분들은 종교를 다 좋아해요? 성인 좋아하요, 나빠해요?「좋아합니다」 성인은 좋아하지만 성인이 닦아 놓은 터전은 싫어합니다. 성인은 종주니까, 어떠한 터를 닦아 성인이 됐느냐 하면 종교의 터를 닦아서 되었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일반 사람들은 종교의 말씀이 성인의 가르침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종교는 싫어합니다. 그게 모순이라구요.
오늘날 대학가의 소위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꺼떡꺼떡하는 패들, 돼먹지 않은 패들이 많은데 기분 나쁘겠지만 공격하는 거예요. 공격받아 기분 나빠도 들어 보라구요. 역사를 보면 오늘날 헌법 같은 것도 전부 성인의 도리를 중심삼고 만들어진 거예요. 대한민국 헌법도 마찬가지예요. 성인의 가르침을 추려 가지고 인륜도덕관에 입각해 헌법을 설정한 거라구요. 그 골자를 어디에서 취했냐 하면 성인들의 가르침에서 취했다는 겁니다. 세계의 사조는 그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려져 나가는 겁니다. 때문에 성인의 사상은 역사의 주류사상에 접근되어 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성인의 가르침권내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종교는 싫어합니다. 요즘에 와 가지고 말이예요, 목사, 스님 하면 좋아해요? 좋아해요, 싫어 해요?「싫어합니다」 그럼 통일교회 문선생 싫어해요, 좋아해요?「좋아 합니다」 금방 싫어한다고 해 놓고 그게 뭐예요? 싫어해요 좋아해요? 좋아할지 어떨지 두고 봐야 안다구요. 좋아한다고 금방 말 못 하는 거예요.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색은 고금동(人心朝夕變 山色古今同) 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한다고 했으니 지금 여러분이 암만 좋아한다고 해도 난 믿기 싫어요.
이런 것을 볼 때 아주 이상 야릇한 현실이 아니냐는 거예요. 성인의 도리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성인이 닦아 놓은 그 본 판국은 싫다고 하니, 사고 난 인간들이라는 거예요. (50-104, 1971.11.06)
④ 성인과 위인의 차이
성인은 어떤 분이냐? 성인과 위인이 어떻게 다르냐? 여러분은 성인이 되겠어요, 위인이 되겠어요?「성인이 되겠습니다」 우리 학생들, 성인이 되겠어요, 위인이 되겠어요?「성인이 되겠습니다」 여학생들은?「성인이 되겠습니다」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여리고 가냘픈 여자지만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39-254, 1971.01.15)
여러분이 세상을 보면 위인들이 많이 있지요? 세상에 위인은 많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위인이 있습니다. 누구예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국민사상을 고취시키고 민족정기를 지향시키는 하나의 중심존재로서 국민들이 추모하고 숭배하는 위인이지만 대한민국내에서뿐입니다. 일본 사람에게는 어떻게 됩니까? 「원수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놈의 이순신 잘 죽었다고 했을 것입니다. 했겠어 요, 안 했겠어요? 위인은 하나의 국경을 넘지 못합니다. 일개국을 중심삼고는 위인은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과 위인의 차이는 무엇이냐? 국가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은 애국자의 이름과 더불어 위인의 이름은 얻을 수 있지만 성인은 못됩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성인은 국경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성인은 민족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종족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국경을 초월해서 세계 인류를 위해 산 사람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만민을 위해서요, 억조창생의 모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이요 초종파적이요 초인종적인 입장에서 죽는다고 하면서, 온 세계 인류와 세계적인 입장에서 인연을 맺고 죽음길을 판가리하고 간사람들이 성인이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38-348, 1971.01.08)
⑤ 4대 성인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땅을 잃어버렸고, 인간 자신을 잃어 버렸고,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 남은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 찾기 싸움입니다. 세계 4대 성인들은 하나님을 찾는 놀음을 한 것입니다. (39-258, 1971.01.15)
4대 성인 하면 누구 누구를 말합니까?「석가,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다음에는 누구예요?「마호메트입니다」 소크라테스를 꼽는 사람도 있고, 마호메트를 꼽는 사람도 있지요? 「소크라테스가 들어가면 5대 성인이 됩니다」5대 성인이 아니라 4대 성인 하게 되면 마호메트가 들어가느냐, 소크라테스가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예요. 여러분, 소크라테스는 신을 가르쳐 주었어요? 「안 가르쳐 주었습니다」
생사문제, 생명문제에 들어가서는 지식이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식에는 생사문제와 생명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식을 중심삼고 참을 주장하는 사람은 성인 축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39-313, 1971.01.16)
공자는 막연하게 '위선자(爲善者)는 천보지이복(天報之以福) 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보지이화(天報之以禍)라'고 했습니다. '천 (天)' 이라는 것이 막연하다는 거예요.구체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천(天)을 가르쳐 주었지만 너무 두루뭉실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교는 종교인지 아닌지 모르는 중간 입장에 놓여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적극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다음에 석가는 너무나 장황합니다. 불교도 천(天)을 가르쳐 주긴 했지만 확실하게 알지 못하니까 그 내용이 너무나 어렵고 영적입니다. 하나님과 법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법이자 하나님이자, 하나님이자 법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치의 종교라는 거예요. 찾아 들어가면 나중에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입장에 들어간 다는 것입니다. 또 너무나 원시적이고 장황하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 하등의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39-259, 1971.01.15)
회회교는 종합적인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구약성서를 따르면서도 코오란 경전을 들고 나옵니다. 여기에는 성경의 내용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종교는 천사장격 종교입니다. 종교적인 술어로 천사장격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회교는 공산당과 야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종교는 앞으로 변해 가는 세계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예언적인 종교가 될 것입니다. 물론 간단한 내용이 있지만 그건 전부 구약을 중심하고 나온 것입니다. 남의 것을 중심해 가지고 나온 것은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39-42, 1971.01.09)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것을 들고 나왔느냐? 여러분은 내가 예수님 믿는 기독교를 신봉한다 해서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본래부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좋아한 사람이 아닙니다. 천지 이치가 그래야 되겠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가진 도주가 누구냐, 그런 성인이 누구냐 하는 것을 분석해 보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내용을 가진 종교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종교를 통하여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끝날의 사명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명실공히 기독교 문화권이 오늘날의 민주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가르쳤느냐?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딴 것은 구체적으로 말했다고 할 수 없지만 이것만은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누구보다도 먼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잘했습니다. 인정을 중심삼고 천정과 천륜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렇게 말한 사람은 예수님이 처음입니다.
그다음 예수님은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다'라고 말했습니다. 상대가 전부 다 신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세상에 있어서 신랑 신부 이상 가까운 것이 없습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너희들과 형제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상 더 가까운 관계가 있어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신을 중심한, 신의에 의한 가정과 인의에 의한 가정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정서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모든 것을 종합해 가지고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기독교에서만 말해 왔습니다. (39-259, 1971.01.15)
⑥ 성인 중의 성인
한마디 더 하고 넘어갈까요? 성인 중의 성인이 누구일 것이냐? 이것 한마디 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천도에는 천륜과 천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륜과 인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정과 인륜, 천정과 천륜이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 즉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이 기뻐하는 것이며, 또 신이 기뻐야 인간이 기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신이 행복해야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아버지가 행복해야 아들딸도 행복해지는 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부모가 기뻐해야 그 집안이 편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행복해야 인간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이 기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세계에도 기쁨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성인 중의 성인은 누구냐? 신과 인간은 인정과 천정, 인륜과 천륜이 하나될 수 있는 자리에서 부자의 관계를 맺어야 됩니다. 성인 중의 성인은 사람으로서 이러한 심정적이고 정서적인 내면을 갖춘 가르침을 남기고 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인 중에서도 으뜸가는 성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은 틀림없는 이론이며 또한 그 이론의 결과이기도 한 것입니다. (39-41, 1971.01.09)
성인 중의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하나님을 위해서 산 사람이 성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나 마호메트나 예수는 성인인데 전부다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신을 위주해서 산 사람들이예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인류를 위해 살았다는 거예요,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성인. 그거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면서 왜 원수를 위해 기도했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원수까지 사랑해야 되겠으니, 예수는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 이상 그들을 사랑하고 하늘나라의 품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성인이예요, 최고의 성인. (95-183, 1977.11.13)
⑦ 성인-당대엔 푸대접
성인은 그 시대에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인간들이 가야 할 참된 길을 가르쳤습니다. 성인은 그 시대의 백성들을 위해서 앞으로 올 세계를 가르쳤지만, 무지한 백성들은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 너무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시대의 주권자들은 성인을 잡아죽이고 핍박하고 몰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성인이 나라를 팔아먹고 나라를 망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혼란 가운데서 건져 내어 미래에 소망의 나라로 만들거나, 어느 나라보다도 고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생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알지 못하고, 받들지 못하고 쫓아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인은 만민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도리를 갖췄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은 그 도리를 점점 받아들여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나온 것입니다. (39-254, 1971.01.15)
성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국가적인 인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물입니다. 성인치고 그 나라에서 핍박 안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인도의 석가는 그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인생은 고해라 하며 진리의 길을 찾기 위해 왕자의 자리도 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불교가 인도에서 나왔지만 인도에는 불교인이 많지 않습니다. 성인치고 그 나라로부터 대접을 받은 성인은 없습니다. 성인을 대접해 준 나라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핍박을 했습니다. (39-254, 1971.01.15)
역사시대에 성인들이 그 시대에는 푸대접을 받았지만 역사 후에 탕감해서, 다시 말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어 그 시대 실적 기반이 높아지기 때문에 모든 성인들은 역사가 지난 후에 우대를 받는 거예요. 선악의 전법에 있어서 악은 치고 잃어버리고, 선은 맞고 찾아오는 거예요. (140-263, 1986.02.12)
⑧ 성인은 추앙의 대상
어찌하여 위인이나 성인을 후손들은 추모해야 되느냐?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들인 역사적인 모든 사연이 얽혀 있고, 선의 사연과 곡절이 그 속에 엉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러한 터전을 통하여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향하는 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비록 타락의 후손들일망정 인심은 천심과 통하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인을 추모하고 성인이 걸었던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요, 자연적인 겁니다. (17-266, 1967.02.15)
역사에 남아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개인을 중심삼고 죽어간 사람이 그 시대의 인간들 앞에 추앙의 대상이 되고 역사과정에 남아질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개인보다도 가정을 위하여 죽어간 사람이 수많은 개인의 추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보다도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을 위하여 죽어간 사람들은 모든 가정들의 추앙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세계를 위하여 죽어간 사람은 그 종교를 추구하는 민족 앞에 추앙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27-172, 1969.12.14)
모든 성인들이 그 시대 역사노정 가운데 환영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죽고 나서 백년 천년 역사를 지내고 난 뒤에, 무덤의 뼛골도 다 썩어지고 재가 된 이후에 역사상의 추모의 대상으로 남아진 겁니다. 그게 지금까지 성인들의 길이었다는 겁니다. (127-32, 1983.05.01)
3)성자의 길
① 성자의 의미
우리 역사상에는 성인이 있습니다. 그 성인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성인이라는 분들을 역사상에서 찾아보면 이들은 전부 다 종교의 종주가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성인 위의 사람을 통일교회에서는 말하기를 성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자가 있습니다. 그 성자란 도대체 무엇이냐? 성인 하는데 성인 자체들도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해요. 하나님이 인격적 신이고 우리 생활의 이상의 표상이 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구요.
그다음에 성자란 분은 어떤 분이냐 이거예요. 만유의 존재요, 만군의 여호와의 그 모든 주권자의 총수의 자리에서 하나의 중심존재로서 그가 계시는 곳에는 국법이 있는 동시에 그가 거느리는 왕궁의 궁법이 있다는 거예요, 궁법. 그렇지 않아요?
성자는 그 궁법을 중심삼고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이행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왕궁법에 있어서, 왕을 모시고 사는 생활에 있어서 거기에 위배되는 생활을 거쳐 가지고는 왕자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는 왕궁의 법을 중심삼고 넘어서는 자리에서 왕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왕이 그 아들이 없으면 안 되고 아들도 그의 아버지인 왕이 없으면 안 되는, 영원히 같이 살자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이 있다면, 그를 보고 우리는 성자라고 하는 겁니다. (148-259, 1986.10.11)
성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요? 성자는 성인과 다릅니다. '성인' 하면 4대 성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자는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성자는 하늘나라의 왕궁법까지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왕궁에 사는 왕이십니다. 그 왕의 아들이 되려면 왕궁법을 알아야 돼요. 그 나라의 법만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뭘 알고 싶어요? 여러분 마음은 무얼 알고 싶어요? 천자가 되는 길을 알고 싶어요, 성자가 되는 길을 알고 싶어요, 충신이 되는 길을 알고 싶어요, 효자가 되는 길을 알고 싶어요?「천자(天子)가 되는 길이요」 욕심들은 많지. (웃음) 하늘 천(天) 따 지(地)의 천자(天字)가 아니라구요.
그러면 예수님의 독생자라는 말이 뭐냐? 하나님의 법 가운데 제일 귀한 법이 사랑의 법인데 그 사랑의 법의 치리에 있어서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대표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독생자입니다. 단 하나의 아들이다 그 말이라구요. (147-282, 1986.10.01)
인간세계의 나라법뿐만이 아니라, 하늘 궁전법까지 지킬 줄 아는 사람을 성자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아들 자(子)'자를 쓰는 거예요. '놈 자(者)'자가 아닙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효자의 길과 직통할 수 있는 길이 충신의 길이요, 충신의 길과 직통할 수 있는 것이 성인의 길이요, 성인의 길과 직통할 수 있는 길이 성자의 길입니다. 그건 굵고 둘레가 크지만 그 핵의 흐름은 수직선입니다.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직이예요, 수직. (175-213, 1988.04.17)
② '성자'라는 말-지극히 복된 말
성인 하면 거룩한 사람이라고 보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인 가운데서도 성자(聖子)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아들딸이 있어야 됩니다. 성인 이상의 사람이 성자입니다. 성경에도 성자라는 말은 있지만 성녀라는 말은 없지요?
그거 왜 그러냐? 이런 모든 역사적 배경은 영계를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의 섭리를 몰라 가지고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아무리 지식이 많아 무불능통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천하의 일당백이라 하는 지식의 대왕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몰라 가지고는 자기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사랑의 길을 따라 나가는 데 있어서 성인이 된 후에 차지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성인은 하나님의 사람이예요, 거룩한 사람. 하나님 앞에 대할 수 있는 사람인데, 하나님 앞에 대할 수 있는 무리가 많아진 후에는 성자 성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돼요. 성자 성녀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성자라는 말, 하나님을 중심삼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말, 이 말은 타락한 인간세계의 역사에 있어서 지극히 복된 소리입니다.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136-206, 1985.12.29)
그렇기 때문에 효자, 그다음엔? 충신, 그다음엔? 성인. 성인 다음에는 뭐예요? 성인이라고 해서 성자가 못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아들이 못 되는 거예요. 성자가 돼야 됩니다, 성자가. 아무리 나랏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했더라도 성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나라의 왕궁법을 알아야 됩니다. 왕궁법에 치리를 받아 가지고 거기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다른 하나의 법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147-282, 1986.10.01)
③ 여러분도 성자가 되라
성인은 세계적입니다. 애국자는 국가적 한계를 못 넘지만 성인은 세계적입니다. 세계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이 세계가 잘돼야 되고, 세계가 선해야 되고, 세계가 모든 면에 좋아야 된다는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나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가 책임지고 전부 다 해결하여 좋게 만들어야 되겠다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생활에서 희생을 치르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이 성인이 아니겠느냐.
자, 이렇게 볼 때에, 어떤 효자가 있고 애국자가 있고 성인이 있다 한다면, 이들은 전부 다 세계를 중심삼은 생각을 했다 이겁니다. 이 지상을 중심삼은 생각을 했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 우주의 중심된 하나님을 중심삼으면, 그렇게 되면 하늘과 땅을 사랑으로 품으려고 하고, 이 모든 우주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그런 입장에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계의 일을 염려하고 역사를 초월하는 거예요. 시공을 초월하여 영계의 일을 염려하고, 지상 일을 염려하고, 하나님을 염려할 수 있는 사람, 사랑으로 염려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그런 유(類) 의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런 사람에게 우리 통일교회는 성자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엇이 되고 싶으냐? 효자가 될 거예요, 애국자가 될 거예요, 성인이 될 거예요?「성인요」 이건 뭐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오색인종 전부 다 성인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 성자가 되고 성녀 (聖女)가 되고 싶다는 사람 한번 손들어 보라구. 그게 쉬운 거예요, 어려운 거예요?「어려운 겁니다」 (161-133, 1987.01.18)
가정에서 부모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뭐라고 그러나요?「효자요」나라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애국자요」 그러면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성인요」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 뭐예요? 하나님과 세계와 우주를 사랑하는 성자가 되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것이 될 거예요? 성자가 될 거예요, 효자 효녀가 될 거예요. 「성자요」 그러려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마음에 가져야 됩니다. (129-99, 1983.10.01)
성자 성녀가 되는데 말이예요, 성자 성녀가 되려면 우리가 무엇을 먼저 알아야 되느냐? 성자가 되는 데 있어서 그 주제가 누구여야 돼요? 그 기도의 주제는 하나님이다 이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해야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소원하는 대로 해야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주제는 하나님이고, 그다음에 목적은 뭐예요? 목적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대로 해야 됩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이 생각하는 대로 해야 됩니다. 그것이 목적이예요. 알겠어요? 주제가 있어야 되고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거예요. (161-141, 1987.01.18)
4)효자가 되는 길
① 효자가 뭐냐
효자가 뭐냐, 효자?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중심삼고 늘쌍 생각하면서, 그 일을 행동으로 이루어 가지고 상대역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 그런 자리에 선 사람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결론이예요. 그런 아들에게 있어서는….
또, 오관이 있으면, 눈으로 보고 뭘 느낄 때 부모님이 더 좋아하시는 것을, 말씀을 듣게 될 때도 '아, 이런 말 좋아하겠느냐, 어떻겠느냐?' 하는 것을 느낄 때도 그렇고, 모든 오관의 감정이 부모님을 중심삼고 사랑화할 수 있는 심정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효자가 아니겠느냐 이겁니다. 나쁜 것이 있어서는 안 되고 좋은 것만이 있기를 바라고, 더 좋은 것으로 발전하고 더 훌륭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61-132, 1987.01.18)
② 효도를 중요시하는 이유
세상에는 효자를 중요시합니다, 효자. 이것은 소생이예요. 알겠어요? 효자는 뭐냐?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섬길 줄 알아야 효자라구요. 이걸 알아야 돼요. 3대를 거쳐야 된다구요. 그다음에 충신은 뭐냐? 충신도 마찬가지예요. 충신은 아들의 자리에 있어서 왕을 중심삼고 부모로 모시고,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모시는 거예요. 하나님을 할아버지로 모시는 거예요. (96-29, 1978.01.01)
효자 효녀가 되라는 말은 좋은 말이예요. 오늘날 시대 차이가 있다고 말을 하는데, 어머니 시대하고 젊은 시대하고 차이가 있다고 말을 하는데, 천만에요. 어머니 시대하고 젊은 시대하고 사랑에도 차이가 있어요? (141-299, 1986.03.02)
여러분, 가정에서 '효도해라' 하는데, 왜 효도하라고 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부모를 중심삼고 부모가 가야 할 사랑의 길에 동참자가 되라는 거예요. 그 부모님의 참다운 사랑의 길에는 천륜이 따라가는 거예요. 부모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종적인 천륜이 여기에 인연되어 가지고 가기 때문에 부모와 하나되라 하는 것은 천륜의 역사, 보이지 않는 종적인 역사와 횡적인 역사의 양면의 심정권을 이어서 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 앞에 효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걸 몰랐다는 거예요. 요즘에는 '부모 앞에 효도할 게 뭐야?' 하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부모들이 우리를 낳을 때 우리를 생각하고 낳았어?'라고 한다구요.
그것은 이 원칙을 모르는 거예요. 모든 역사는 종적인 기준이 서야 횡적인 기준이 서게 됩니다. 여러분이 빌딩을 짓더라도 먼저 전부 다 수직선을 맞춰야 서는 거예요. 그다음에 수평선을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고층 건물이라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세상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벌써 종적 기준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136-203, 1985.12.29)
③ 효자는 어떻게 해서 되느냐
㉠부모 마음 방향과 일치되어야 한다
효자 효녀가 되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내적인 기준과 외적인 실체 기준이 부합되어야 합니다. (12-173, 1963.03.25)
효자가 귀할 것은 뭐냐 하면 변할 수 없는 사랑으로, 어릴 때나 장성할 때나 노년시대나 변치 않는 사랑을 지녀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을 효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168-163, 1987.09.20)
효자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하면, 언제나 부모의 마음 방향과 일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효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부모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동으로 가면 동으로 가야 되는 것이고, 부모가 서로 가면 서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다가, 가는 목적을 제시했다가 한꺼번에 뒤로 돌아서라면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열 번 갔다가 열 번 돌아서라 하더라도또 돌아서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 ! 무슨 부모가 그래? 열 번 가다가 열 번 돌아서고, 열 번 이랬다 저랬다한다. 아 ! 아버지 어머니, 나 이거 마음에 맞지 않습니다'하고 반항했다가는 끝까지 효자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미친 놀음을 하면 자식도 미친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명령이라면 미친 놀음이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친 놀음 하는 그 자체는 안됐지만, 부모가 모르고 하면 모르지만 알고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왜 부모가 미친 놀음을 하느냐 이거예요. 효자 가운데서 최고의 효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백 명의 효자가 있다면, 그 백 명 가운데 으뜸될 수 있는 효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부모는 미친 놀음을 할 것입니다. 백 번 가다가 돌아서고, 백 번 변덕을 부릴 것입니다. 천 번 변덕을 부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변덕을 사실로 알고 생명을 바쳐 가지고 그 부모의 명령 앞에 절대 순응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효자의 왕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효자 가운데 효자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다 이거예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게 될 때는 그런 미친 놀음을 천직으로 알고 할 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아! 이건 내 사리에 맞지 않으니, 그건 난 모르겠소'하면 여기에서 효자의 도리는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효자의 길은 끊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어느 한 고비를 뚫고 넘어갈 수 있는 세계적인 효의 길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럴 것이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은 인류의 부모도 되는 분이요, 하나님은 인류의 왕 중의 왕도 되는 분이요, 모든 것의 중심도 되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일대일의 입장에서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효자인데 그 효자는 세계적인 효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안 그래요? (62-30, 1972.09.10)
㉡부모의 심정과 사정이 체휼되어야
우리는 효자의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효자의 길을 가야 되겠다구요. 하나님이 세계정세를 앞에 놓고 심각하면 그 심각한 이상 밤을 새워 가면서, 혹은 자기 일신을 망각해 가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체휼적인 경지에서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하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62-33, 1972.09.10)
효자가 뭐냐? 효자는 부모의 슬픔을 대신 책임지기 위해 어려운 자리를 찾아가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부모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열만큼 일을 하는데 자식은 열 다섯만큼 노력하였다면 부모는 다섯에 해당하는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분야를 어떻게 보충하여 부모를 위해 드릴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효자인 것입니다. (24-260, 1969.08.24)
여러분 동네에서도 그렇잖아요? 나라면 나라에서 효자라고 해서 효자 상을 준다면, 박사학위를 가졌기 때문에 효자가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조건에 들어가요? 많이 배우고, 어느 학교 나왔다고 효자된다는 조건에 들어가느냐 말이예요. 안 들어간다구요. 얼마만큼 자기의 몸과 마음을 투신해 가지고 부모님을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느때든지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그 부모를 절대시하고 나라 대신, 하나님 대신 그 부모를 절대시하는 사람들이 효자 효녀라는 거예요. (147-231, 1986.09.28)
㉢부모의 어려움을 감당해야
효자의 길, 효자가 가야 할 길, 그 효자가 가야 할 길은…. 부모가 바라는 일이 열 가지가 있다면, 그 열 가지 일 가운데 제일 중요한 일을 책임을 지고 해결하는 자식이 효자가 아니냐. 아들이 열 명 있다면 열 명가운데서 누가 제일 효자냐? 부모의 열 가지 일 가운데 제일 어려운 일을 놓고 '이건 내가 책임지겠다. 내가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가지고 부모를 사랑하겠다'고 나서는 아들이 어떠한 아들보다도 그 부모 앞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이 아니냐. 그런 아들일수록 효자의 자리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게 될 때, 쉬운 자리에서 쉬운 일을 하며 효의 도리를 하겠다는 사람보다도 지극히 어려운 자리에서 효의 도리를 감당하고자 하는 책임자, 그런 자리에 선 사람, 그런 자리에 선 아들딸이 효자가 가는 길에 들어선 사람이 아니냐.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62-21, 1972.09.10)
부모가 슬퍼하는 내용을 깊이 알고 있는 자식일수록 그 부모의 슬픔이 해소되기를 일구월심으로 바라고, 자기가 일하고 있는 환경을 넘어서 그 근심된 사실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것이 자식의 소원이 아니냐. 자기에게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슬픔보다도 부모의 슬픔이 더 빨리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효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도 근심거리가 있고 자신에게 근심거리가 있는데, '부모가 내 근심거리를 생각해 줘야지' 하며 부모의 근심거리보다도 자기의 근심거리를 더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부모와 하나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효(孝)의 원칙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입장을 망각한 사람은 부모와 긴요한 자리에서 하나의 인연을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요구하거나 부모의 슬픔은 제쳐 두고 자기의 슬픔만을 책임져 달라고 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는 효자가 못 되고 불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 주변에서 혹은 가정생활에서 수시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또, 효자로서의 가치는 뭐냐? 자기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부모의 어려움을 더 염려하면서 자기의 어려움을 문제시하고 않고, 자기의 어려움 위에 부모의 염려를 더하여 염려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이것을 당연한 일로 소화시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효의 길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자식이 부모의 어려움을 등한시하고 멀리하게 될 때, 여기서 결렬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효의 길이 아닌 불효의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자기 어려움보다 더 중요시하지 않게 될 때 형제지간의 관계는 소원(疎遠)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62-183, 1972.09.25)
㉣'효자'라는 말은 비참을 수반
참다운 효자가 갈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효니 충이니 하는 그 말은 비참한 말입니다.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효자가 되려면 어떤 자리에 서야 되느냐? 죽음길, 제일 수난길을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62-34, 1972.09.10)
효자의 본은 어디에서 설정되느냐? 보다 비참한 자리에서…. 보다 비참한 자리라는 것은 죽는 자리입니다. 죽는 자리에서도 제일 비참하게 죽는 자리에서 본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자, 효자가 있다고 합시다. 효자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시대시대마다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일등 효자를 뽑는다면 어떤 사람을 일등 효자의 표본으로 뽑을 것이냐? 늙어서 효자 노릇을 하다 죽는 것보다도 젊어서 늙은 사람 이상의 효자 노릇을 했다면 더 귀한 것입니다. 효자도 천태만상입니다.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막일하는 사람, 빌어먹는 사람, 별의별 계급이 있지만 효자는 다 있어요.
참된 효자가 되려거든…. 살아 있는 사람은 참된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아직까지 남기고 있는 사람은 효자 축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효도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죽지 않은 사람이 효자 표창을 받았다가는 효도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들한테 참소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참된 효자는 죽은 후에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 가운데에서도 효도하기 위해 길을 가다 죽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병이 났기 때문에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효자도 있을 것입니다. 약을 구하러 가는 데는 자기 돈을 가지고 구하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빚을 얻어 가지고 구하러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가치가 커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자기 돈을 갖고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사람과 돈을 빌리기 위해 석달 열흘을 수고해서 돈을 빌려 가지고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효자의 본이 되는 자리에 올라가겠습니까? 「후자입니다」 후자지요. 그것은 다 아누만. 그것을 다 알기 때문에 복귀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그 내용이 복잡하고 어렵고 비참할수록, 지독할수록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약을 구하러 가다가 죽은 것하고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죽은 것하고 어떤 게 나아요? 약을 달여 바치다가 죽은 것이 못해요 나아요? 낫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어려운 내용을 갖추면 갖출수록 효자 반열에 있어서 그 등급이 높아지는 것은 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의 없지요? (49-276, 1971.10.17)
가정에 있어서의 효자는 효자 자체로 보면 비참한 것입니다. 왜 비참한 것이냐? 먹을 것이 있어도 마음대로 못 먹는 거라구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야 된다구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칠십 팔십이 다 되었는데, 그분들이 이 땅에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는가, 잡수시면 얼마나 잡수시겠는가, 밥상을 몇 번이나 받으시겠는가, 돌아가실 날이 나의 몇 분의 일밖에 안 남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래 살지 못할 부모를 자기 생애를 기울여 정성을 다해 가지고 봉양해야 됩니다.
효자는 먹을 것도 먹지 못하고 목이 메어 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다가 혼자 흐느껴 울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거라구요. 어떻게 보면 미친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먹지, 얼마나 먹고 싶은 음식이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러고 있어! 저것' 할 거라구요. 거 얼마나 비참한 것이예요? 그 울고불고 하는 꼴을 누가 좋아 하겠어요? 그렇지만 효자는 생활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경치, 좋은 산야를 바라보게 되면 우리 어버이와 더불어…. 좋은 계절이 찾아와서 그 계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에 서면 나 혼자가 아니라 어버이와 더불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그것이 그리움으로 표상되고 눈물로 드러난 그 자리는 비참한 자리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자리, 그 자체를 보게 되면 괴로운 자리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가 불행한 자리냐 하면, 행복이 깃드는 자리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눈물 흘리는 생활이 나쁜 생활이 아니라구요.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어도 나라와 공적인 것을 염려하면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고생하는 무리가 있다면, 보기에는 비참하겠지만 거기에는 영원한 위로의 눈물이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찬양의 송영과 노래가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희망의 천국이 선물로써 마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불쌍합니까? 불쌍한 것 같지만, 비참한 것 같지만 승리의 권한을 얻은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인 것입니다. (51-319, 1971.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