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음과 몸의 관계
1) 본연의 마음과 몸
① 본연의 마음과 몸의 관계
우리 사람은 몸과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과는 따로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럼 이 몸도 어디에 있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과 하나돼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중심삼고 보면 몸에는 오관이 있다 이거예요. 그 오관이 어디에 있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뜻과 같이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 몸이 그러한 느낌뿐만 아니라 어디로 움직여 가야 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뜻의 방향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69-268, 1974.01.01)
마음과 몸을 보게 되면, 마음은 크지만 몸은 작습니다. 이처럼 마음과 몸은 언제나 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가 자극을 줍니다. 그래서 내가 기쁨이라든가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적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27-60, 1969.11.23)
② 인간 본연의 마음이란
㉠ 마음의 주체와 종교
우리에게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봤어요, 못 봤어요? 못 봤지만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의 주체는 누구냐, 마음의 주인을 만나 봤느냐 이겁니다. 좋아하는 데는 혼자 좋아할 수 있어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혼자 앉아 가지고 히죽히죽 웃고 있으면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하고 몸뚱이하고는 서로 싸웁니다. 서로 싸우는 것은 몸도 마음이 싫고 마음도 몸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싫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저로 좋아할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싫다는 것이 있는 걸 볼 때에 좋아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좋아할 것이 뭣이냐? 마음의 대상이 뭐냐? 마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대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인들은 그것을 추구해 나갔습니다. (41-71, 1971.02.13)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데는 몸으로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신(神)이기 때문에 무형의 신의 상대가 되기 위해서는 유형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주체로서 절대자이시고, 중심존재이십니다. 그런 분의 상대적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유형체로서는 안 됩니다. 무형의 상대적인 내용을 가진 존재라야 됩니다. 절대적이시고 무한하시며 엄청나게 크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대상적인 자리에 서려면 엄청나게 클 수 있고, 엄청나게 높을 수 있는 무형의 모습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이 뭐냐 할 때, 몸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41-64, 1971.02.13)
인간에게 있어서 이 위대한 마음이, 엄청난 이 마음이 기뻐할 수 있는 주체를 만나 가지고 그와 더불어 영원히 행복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 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한 자리는 그야말로 귀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 같은 양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有我獨尊)이라고 했습니다. 온 천지간에 나만이 귀한 존재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알고 보니 나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신(神)을 좋아합니다. 마음은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나기 전에는 좋아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몸뚱이가 좋아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무슨 향락이니 하면서, 한때밖에 없는 꽃다운 청춘시대를 그냥 보내면 되겠느냐 하면서 몸뚱이를 위주해 가지고 혈기왕성한 청춘시대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오래가지 않아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을 다 살게 되면 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향락의 길은 아무리 가 봤자 허무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바라는 세계의 기쁨이라는 것을 다 해볼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해볼 수도 없거니와 해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것이 없느냐?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참다운 사람의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그러한 마음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천주의 중심이요, 절대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그 신은 내 마음과 상대하신다' 이렇게 주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장하는 그 내용을 개인적인 것으로뿐만이 아니라 세계성을 띤 것으로 체계화시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여 인류의 새로운 소망으로 등장할 수 있는 하나의 사상적인 것으로 만들자 하는 것이, 즉신을 중심삼은 새로운 사상적인 체제를 갖추어 보자 하는 것이 인류의 마음의 욕망입니다. 그 마음이 욕망하는 세계는 지금의 사회의 조직과 같은 형태의 세계가 아닙니다.
마음이 좋아할 수 있는, 내적인 세계와 같은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는 일을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해온 것, 다시 말하면 양심을 가진 인간들이 바라는 배경, 배후의 터전을 역사시대를 통하여 남겨 나온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 종교는 어느 한 민족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종교가 한 민족 국가에서 생겨나긴 했지만, 그 민족의 종교뿐만 아니라 민족을 넘어서 세계로 연결되는 종교의 형태로 발전하는 걸 우리는 보게 됩니다. (41-73, 1971.02.13)
㉡ 본연의 마음의 움직임
옛날의 성현들이 가르쳐 준 것은 마음을 중심삼고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사상과 더불어 만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하늘과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세계 인류와 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또한 땅을 사랑할 수 있는 백 퍼센트의 요소를 갖고 있느냐? 갖고 있습니까?
본심 자체를 분석해 보면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본연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 본심은 아무리 없애려고 애를 써도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본심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상세계, 즉 본향의 나라, 본향의 세계를 추구하며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심작용은 나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무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간판만을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확실히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19-282, 1968.03.10)
여러분, 통일교회 나오게 되면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아침에 눈뜨고 밥만 먹으면 학교로 가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교회에 들어온 후에는 학교에 가는 것도 할수없어서…. 그리고 가는 데도 교회를 거쳐서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 학생들, 그런 마음이 안 들어요?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또, 집에 가서 가만히 있으면,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 다 계시고, 먹을 것 다 있고, 방도 좋고, 없는 것이 없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클클하고 교회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기도 싫을 이곳 이지만 그래도 여기 교회에 오게 되면 좋다는 겁니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느껴져요, 안 느껴져요? 그런 것이 안 느껴진다면 통일교회 교인이 아닙니다. 다 허수아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을 몸뚱이가 느껴요, 마음이 느껴요? 몸뚱이로 말하면 자기 집이 더 편합니다. 집에서는 먹는 것도 좋은 것을 먹지만 여기에서는 깍두기밖에 없습니다. 김치도 있다면 형편없는 것이고, 그것도 없어서 소금에 찍어 먹거나 총각김치 하나 가지고 밥 한 그릇 먹으면서도 밥이 맛있다고 싹싹 긁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래요? 몸뚱이가 좋아서 그래요, 마음이 좋아서 그래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좋아해서 그런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주인을 만나 가지고 마음의 본향을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나라를 찾아갈 수 있고 마음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는 길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서 구덩이를 파고 농사를 짓던 사람이 자기 고향에 간다고 할 때, 산골 집을 나오는 그 마음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지금 출발하는 곳은 산골이지만 고향에 간다고 생각할 때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왜 좋으냐 하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올바른 것인 줄을 마음이 알기 때문에 마음의 안테나를 중심삼고 전파를 주고받게 되면 무리없이, 상충 없이 자꾸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나오는 겁니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라구요. (41-72, 1971.02.13)
㉢ 마음의 크기
여러분 마음이 좁아요, 넓어요? 마음의 생김새를 여러분 자신은 잘 모르지만, 마음은 무한히 큰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얼마나 좋으냐? 세계의 30억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몇백억 원씩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것이 마음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마음은 이렇게 멋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한한 사랑, 무한한 희망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무한히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27-60, 1969.11.23)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얼마나 크냐? 이건 측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크다면 무한하다는 거예요. 측정할 수 없을이만큼 크다는 거예요. 그게 왜 그리 크냐? 또 작다면 그거 형편없이 작아요. 바늘 끝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작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거예요. 크게 넓히면 무한히 넓힐 수 있고, 좁히면 무한히 좁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본질을,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왜, 마음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 그게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집으로 돼 있다는 거예요. (145-313, 1986.06.01)
마음의 대상을 만났다고 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 기쁨이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아요? 얼마나 큰가 보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 놓고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속 깊이 잠겨 있는 사랑까지도 딱 잡아넣고야 '헤헤' 하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사랑을 줄 때도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랑을 원치 않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진짜 사랑을 나에게 몽땅 주어야 '헤헤'하고 좋아합니다. (41-71, 1971.02.13)
㉣ 마음의 바탕-정·지·의
우리의 마음 바탕을 분석해 보면 지·정·의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디에 머무를 것이냐? 지·정·의 중에 무엇이 근본일 것인가 할 때, 의(意)도 아니요, 지(知)도 아닌 정(情) 입니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제일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두고 싶습니까? 자기만이 아는 곳에 두고 싶을 것입니다. 거기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관여할 수 없는, 즉 자기만이 절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겠습니까? 마음 깊은 곳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는 것입니다. 이곳 이라면 안심하겠다 할 수 있는 곳에 두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흔히 귀중품을 넣어 두는 장농 같은 곳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참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자신의 마음의 깊은 자리입니다.
정(情)은 혼자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입니다. 상대적 관념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좋은 부부가 있다 하더라도 자식이 없으면 허전하고 심심합니다. 젊었을 때는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처끼리 다니면 허전하고 심심합니다. 그 앞에 아들이 있어서 그 아들이 부모를 모시고 가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자식은 소망입니다. 그 자식이 없으면 소망도 없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그 자체는 영원한 소망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소망이 아닌 영원한 소망으로 뻗어 나갑니다. 또 심정적인 것도 영원한 소망과 함께 영원히 같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情)을 중심삼고 볼 때, 아무리 잘난 여자나 남자라 할지라도 혼자서는 상대적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24-316, 1969.09.14)
2) 타락으로 인한 마음과 몸
① 마음과 몸의 싸움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서로 싸우는 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본래 하나님이 싸우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배반할 수 있는 요소를 지닌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원래 하나님과 인간 앞에 마음이 플러스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몸뚱이가 플러스가 되려 합니다. 그러기에 두 개의 플러스가 대립되어 서로 상충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19-193, 1968.01.07)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이 갈라졌습니다. 몸과 마음이 갈라짐과 동시에 몸이 가는 길과 마음이 가는 길도 갈라졌습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하나 만드는 데는 무엇이 하나 만드느냐? 이것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타락한 동기를 알아야 됩니다. 타락한 동기를 알아야 되고, 타락하지 않았을 때 가야 했던 그 본래의 길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140-13, 1986.02.01)
② 마음의 원과 몸의 원
여러분 마음과 몸이 갈라졌지요? 마음과 몸이 싸움하지요? 역사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마는 마음과 몸의 싸움을 해결했다는 사람, 통일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바울 같은 사람도 그랬잖아요? '내게는 두 법이, 선과 악 둘이 싸운다'는 거예요. 언제나 인간은 선의 법을 따라가기를 원치 않고 악의 법을 따라 간다구요.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했다구요. 바울 같은 사람도 그렇게 얘기했다구요. '누가 이 죄의 법에서 해방할 것이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랬다구요. (187-41, 1989.01.06)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성인현철들이 이 땅에 와서 수고하여 찾으려 한 내용은 하나같이 몸의 사람을 굴복시켜 가지고 마음의 사람이 추구하는, 인간이 가야 할 완전하고 참된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생애를 바쳐 연구하고 생명을 걸고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문제를 과학이나 수학처럼 어떤 공식을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물으면 이런 답이 나온다는 식으로 명확히 풀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 가운데에서 오늘날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 가지고 이런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놓여진 문제, 즉 인생의 갈 길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인간들의 갈 길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이라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마음도 할수없이 따라가므로 마음이 변하는 것처럼 생각될 뿐입니다.마음은 언제나 선한 편에 서 있는데, 변하는 사람을 따라 행동하다 보니 마음도 악하고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고 말한 것은 잘못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원하는 길과 몸이 원하는 길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마음이 원하는 곳을 향해 가는 길을 보장해 주고 마음이 원하는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몸이 원하는 곳을 향해 가도록 유인할 수 있는 여건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선한 세상이 아니라 악한 세상이 틀림없습니다. 무슨 세상이라구요? 「악한 세상입니다」
악의 구렁이가 여러분의 꽁무니에다가 닻을 꽂아 길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여러분이 가는 길을 틀어막고 있는 원수가 있다면 용서할 수 있어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가다가는 말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 인생의 갈 길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인생과 관계없는 금수(禽獸)와 같은 처량한 운명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생행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든지 악의 침범을 받지 않고,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주의하고 조심하면서 경계선을 밟고 넘어가야 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륜도덕이니 무슨 종교니 하는 것들이 나왔지만, 그것들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런 길을 완벽하고 틀림없이 가도록 하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8-308, 1971.01.08)
3) 육신복귀
① 타락된 결과의 육신과 영인체
㉠ 육신
육신은 사탄이 활동하는 터전. 육신은 악의 바탕이요, 악의 뿌리.몸뚱이는 사탄나라의 왕궁.피와 살이 원수 사탄의 요소.몸은 생활을 조절하여 나오며 일생을 동반. (52-304, 1972.02.03)
㉡ 영인체
심령은 하나님에 속한 것을 지향.양심은 하늘나라의 초소.원수의 피가 몸에 있어서 마음 기준이 사탄에 깔려 있다.마음은 생애를 조절하여 나오며 영원을 동반. (52-304, 1972.02.03)
② 타락된 육신의 성향
육적인 면이 항상 영의 길을 기꺼이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몸뚱이는 우리로 하여금 육적 요구를 추구하게 하기 위해 자극하고 자기를 위하라고 합니다. 또한 몸뚱이는 자꾸 올라가려고 하고 교만하려고 합니다. 먹여 주면 자꾸 더 먹으려고 하고 쉬게 해주면 자꾸 더 쉬려고 합니다. 그리고 몸은 울뚝불뚝한 것은 싫어하고 포동포동하고 매끈매끈하고 푹신푹신한 것을 좋아합니다. 또, 머리숙이는 것을 싫어하고 희생봉 사를 싫어합니다. (52-304, 1972.02.03)
③ 마음과 몸의 힘의 비율
지금까지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과 몸이 싸워 나오는데그 비율이 서로 비등비등했습니다. 그 비율이 10대 8정도였습니다. 몸이 대하고 있는 환경은 세계 전체와 접해져 있지만 마음이 대해야 할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타락한 세계를 대하는 인간의 몸은 시시각각으로 환경에 점령되어 버렸지만 마음은 한 길을 따라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세계는 나타나는 결과를 단속해 나오는 것입니다.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마음에 공포가 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일을 행하게 되면 이제까지 쌓아 온 것이 무너집니다. 이것을 볼 때 마음은 육신의 행동을 맨 처음부터, 초반부터 간섭하지만 종반에 가서는 육신에게 지배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비율로 보면 10대 8정도이지만 환경 때문에 마음이 몸에 언제나 밀려 나오는 것입니다. (18-66, 1967.05.21)
오늘날 이 선악의 세계는 개인에게 뿌려진 것이 점점 확대되어 가지고 세계로 열매맺혀진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나 하나를 전개시켜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회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울타리권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여기에서의 내 범위가 얼마나 크냐가 문제입니다. 혹자는 이렇게도 가고, 혹자는 이와 반대로 가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자신의 선조들이 엮어 온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쪽으로 가는 것은 몸을 따라 가는 것이요, 선쪽으로 가는 것은 마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개인이 출발해 가는 데 있어 100을 기준으로 할 때 마음을 중심한 선이 50을 넘어 60만큼에 해당하게 되면 그 종족을 통해서 세계는 지배될 것입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뭘해 나왔느냐? 이 세상에서 정복해야 할 일이 단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가정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요, 민족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요,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나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나를 정복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 자신은 선악의 경계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서 출발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각자가 지향하는 양이 100이라 할 때,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50대 50이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중간 영계에 머물게 됩니다. 완충지대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만일 몸이 60이면 틀림없이 지옥에 갑니다. 지옥은 어떤 곳이냐? 그늘진 곳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빛나는 곳입니다. 그렇게 알면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반드시 그늘진 곳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곳은 내려가면 갈수록 캄캄해집니다. (37-121, 1970.12.23)
④ 육신복귀
㉠ 육신복귀를 위한 자세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절대 해서는 안 되고 악한 데는 가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인정과 인도(人道)는 사탄과 악을 중심삼고 출발시키기 쉽기 때문에 이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38-270, 1971.01.08)
여러분은 수리공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수리공장에 들어가면 빨리 분해작업을 해야 합니다. 뜯어내야 한다는 거예요. 분해작업을 하는 데는 옛날에 가졌던 사상, 권력, 관념, 직위 등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리가 안 됩니다. 몸뚱이를 옭아매라, 희생하라, 온유겸손하라,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식욕, 정욕, 물욕을 전부 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금식과 고난과 고통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열심히 활동해야 합니다. 일편단심으로 온갖 정성을 들이게 되면 당연히 마음의 힘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수양이니 도덕이니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됩니다. 종교가 우리들의 육신적인 욕구를 누르고 승리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39-353, 1971.01.16)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생 동안 도의 길을 나서 가지고 표어로 세웠던 것이 뭐냐 하면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주주관 완성보다 더 어려운 게 자아주관 완성이예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 (101-34, 1978.10.28)
㉡ 육신주관의 방법
자! 이 몸을 어떻게 때려잡아야 되느냐? 이것을 구워 삶든가 어떻게 하든가 해서 하나 만들어야 되는데 그 방법이 뭐냐 이거예요.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구요. (70-65, 1974.02.08)
첫번째 방법은 뭐라구요? 몸뚱이를 강제로 정복하는 것입니다. 즉 이 몸을 옥살박살내서 점령하는 방법입니다. 강제적으로 육신의 욕구를 끊으며 육정을 제거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정성들이면 몸뚱이가 기운이 쭉 빠져서 움직이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몸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희생봉사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전부 육신이 싫어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는 육신과의 모든 관계를 부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모든 종교의 경서를 보십시오. 잘먹고 잘살라는 내용이 있는 경서가 있습니까? 그런 경서는 하나도 없습니다. 종교는 죽으면서도 남을 위해 복을 빌어 주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뚱이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육체를 때려잡는 놀음이라는 거예요.
그다음에 몸을 주관할 수 있는 두번째 방안이 무엇이냐? 마음과 몸이 비슷비슷하니까 싸움을 한다는 거예요. 결국 서로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번째 방안은 마음에다 힘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마음에 힘을 불어넣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려면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을 쌓아 올리면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그 마음문이 열리기만 하면 아주 강력한 힘이 나오기 때문에 몸뚱이 같은 건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그걸 모를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비슷비슷한데 마음의 힘이 몸의 3배만 되어도 몸뚱이는 문제가 안 됩니다. 몸을 그냥 그대로 두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힘을 압축시켜 가지고 몸을 일시에 끌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세계에서는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38-270, 1971.01.08)
여러분 도통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도를 통하게 되면 마음에서 강력한 힘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마음은 허풍선같이 한번도 몸과 대등하게 싸워 보지 못하고 번번이 져 왔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에다 주사를 놔서 힘을 한 2-3배쯤 늘린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면 몸을 끌고 가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열심히 잡아끌면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튜브에다 공기를 강하게 불어넣으면 크게 부풀어오르는 것과 같이 마음에도 힘을 강하게 집어 넣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이 강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몸뚱이가 하자고 하는 것을 생각만 해도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도를 통한 사람은 마음에 강력한 힘이 옴으로 말미암아 그냥 그대로 놓아두더라도 몸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힘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주고받아서 생기는 폭발적인 힘을 하나님께서 연결만 시키면 그것은 몇배, 몇백배, 몇천배도 통일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 만민이 고대하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동시에 천국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통일을 향해서 올라가는 승강기이며,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비결인 것입니다. (18-327, 1967.08.13)
이렇게 해서 마음에 사랑의 힘을 다시 복귀시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 취하게 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친 사람이 혼자 웃지요? 미친 사람도 웃는데, 하나님과 사랑에 미치면 얼마나 웃겠느냐 말입니다. 웃어도 웃어도 자꾸 웃음이 나와서 입이 말려들어갈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기분이 좋고 눈을 떠도 기분이 좋고 천년 만년 살아도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 여러분에게 그런 사랑의 힘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대번에 세포 전체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한꺼번에 그 사랑에 귀결되어 가지고 그 품에 품겨 거기에서 춤이라도 추게 될 것입니다. 그 춤을 자기 혼자 추는 것 같지만, 세계가 거기에 박자를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힘을 보강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정성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본향, 즉 타락의 한계선 이상 올라가서 완전히 마이너스가 되면 여기에 완전한 플러스가 오게 됩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자동적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35-58, 1970.10.03)
이와 같은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몸뚱이를 조정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몸의 지배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러한 작전을 펴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38-271, 1971.01.08)
몸과 마음의 싸움을 정지시켜야 비로소 천국이 벌어지기 때문에 몸뚱이를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비율이 5대 5가 되니 피장파장이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몸을 제재하기 위해 마음을 10배 정도 펌프질해서 고압으로 압축을 넣어 강하게 불어 넣어 몸과 마음의 비율을 5대 50정도로 정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몸이 마음 앞에 꼼짝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른 몸에 어린이가 달렸더라도 끌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레슬링 챔피언 앞에 국민학교 학생과 딱 마찬가지로….
또, 개구리에 전기가 통하게 되면 개구리가 사지를 벌리는 것처럼 그 힘만 얻게 되면 가만히 있을지라도 세포가 터져 나가는 것과 같은 힘이 생겨나는 거예요. (47-267, 1971.08.29)
자그마치 '3년 동안 몸과 마음이 하나될 수 있다' 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 앞에 나타나 가지고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알게 나타나고 다 꼼짝못하게 인도한다는 거예요.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69-274, 1974.01.01)
⑤ 육신을 주관하면 하나님이 임재
여러분의 육신이 사탄을 따르지 않는 습성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며 새 사람이 되어서 하늘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은 역사하시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성령에서 거대한 힘이 솟아오름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을 뭐라 할까? 우주력이라고 할까? 전체를 규합시키고 주관할 수 있는 자제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생기게 되면, 힘으로 볼 때에는 상대가 없습니다.
이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 자리에 이르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만일 여러분이 나쁜 냄새를 맡게 되면 먼저 골치가 아파옵니다. 또 어디 가려고 하면 다리가 천근만근이 됩니다. 벌써 몸이 먼저 아는 것입니다. 이 몸이 곧 성전입니다. 본래 인간은 땅만 주관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영계까지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원리에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말이 그래서 성립되는 거라구요. (52-305, 1972.02.03)
우리는 그릇된 자신임을 다시 한번 깨닫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하나의 목적에 귀결될 수 있는 절대자의 아들딸이 되고 상대가 되어 영원무궁토록 행복한 세계에서 길이 살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이것이 인생이 가야 할 참다운 길입니다. (39-355, 197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