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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유

1) 하나님의 창조적 권한을 이어받기 위해

타락하지 않은 본래의 아담 해와가 되었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결국 그 자리는 축복받는 자리입니다. 복을 받는 자리, 하나님이 복을 빌어 주는 자리다 이겁니다.
그 복 중에서 제일 귀한 복이 뭐냐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우리가 무엇을 축복받느냐? 하나님의 창조의 권한을 우리가 인계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평면적인, 횡적인 기준에 있어서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기뻐했고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소망을 가진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에게도 창조적 권한이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을 부여받는 것이 자녀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왜 사랑하느냐? 왜 사랑하느냐 이거예요. 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을 우리가 횡적인 실체권에서 이어받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하나님이 기뻐하던 그 기쁨을 우리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어받고 하나님의 창조적 권한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76-42, 1975.01.26)

2) 종적 사랑권내에 있기 때문

사람은 사랑 때문에 왔고, 사랑을 가지고 살다가 사랑의 목적으로 아버지 앞에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씨로 왔으니, 사랑의 씨로 출발을 했으니 가지를 뻗어 세계의 모든 것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사랑으로 씨를 거두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의 씨를 거두는 거예요. 그 사랑의 씨에는 아내를 사랑할 줄 알고, 부모를 사랑할 줄 알고, 자식을 사랑할 줄 알고, 하늘을 사랑할 줄 아는 모든 요소가 꽉 차 있는 거예요.
그런 씨와 같은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씨와 같은 존재로 결실을 거두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지상의 인간에게 부여한 생활인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야 하나님 앞에 거두어진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이 땅 위에서 왜 자녀를 더 사랑해야 되느냐? 부모가 왜 자식을 희생적으로 더 사랑하느냐 하면, 종적 사랑권내에 있기 때문입니다. 종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새나 동물도 전부 다 자기 새끼를 위해서는 부모가 목숨을 바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이것은 종적 사랑의 인연의 계통을 연결시키기 때문입니다.
횡적 입장인 부모가 희생되더라도 종(縱)은 세워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작용이 오늘날 피조만물세계, 동물세계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니 인간은 더더욱이나 그렇지요.
부부는 횡(橫)입니다. 이 횡이 90도가 돼야 됩니다. 이것이 45도가 되었다고 해도 종이 절대 이렇게 90도로 안 맞춰 주는 것입니다. 누가 맞춰야 되느냐 하면 인간 부부 자체가 맞춰야 돼요. 이 횡적인 사랑이 맞춰야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 남편보다 더 사랑하라는 논리가 벌어진다구요. 왜 하나님을 자기 남편보다도, 자기 아내보다도 더 사랑하라는 논리가 벌어져요? 이것을 90각도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왜? 종적이기 때문에, 종적 사랑이기 때문에. 부부의 사랑은 횡적입니다. 그것이 90도가 돼야 돼요. 90도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다구요. 그러면서 자기의 상대를 사랑하면 이것이 자연히 수평선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또, 자기 아들딸을 자기 남편보다, 아내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수직선이 연결돼요. 만약에 아들을 이렇게 사랑하고, 남편이나 아내를 더 사랑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수직선이 되는데 그럴 수는 없다 이거예요.
자, 이것이 만약에 자식보다 남편을 더 사랑하고, 아내를 더 사랑하면 이것이 찌그러지기 때문에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자기 아들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며 말씀하심) 그러면 요 부모를 중심해서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연결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중심 삼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130-163, 1984.01.08)

3) 보다 큰 목적 기준에 일치되기 위해서

하나의 인연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인연이라는 말 자체는 상대적 요건을 갖추게 될 때 성립되는 말입니다.
상대적 요건이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 가지고 관계맺을 수 있는 조건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공동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다 같이 바라는 것이 없고서는 상대적 인연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라는 데는 지금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기준 이하의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둘이 합하여 더 큰 것을 바라고 나가는 것입니다.
상대적 요건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데는 그냥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주고받는 데 손해나기 위해서 주고받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데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보다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큰 어떤 목적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그 자식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부모 앞에 귀결되는 그 무엇을 바라서라기보다도 더 고차적이고 입체적인 면에서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자기에게 되돌아올 것을 바라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목적의 기준에 일치될 수 있기를 바라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더불어 언제나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식이 자신에게만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세계 인류에게 필요한 사람, 더 나아가 그보다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에게도 필요한 사람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에게 한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되 그 사랑은 보다 차원이 높은 목적의 귀결점에 도달하기를 바라서 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49-178, 1971.10.10)

4) 자기(自己)이기 때문에

아들딸은 뭐냐? 어머니 아버지 사랑 가운데 동참한 동참자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와 한몸이예요, 한몸. 사랑을 중심 삼고. 사랑을 빼내면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 여러분의 생명이 쭉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아들딸을 위해 부모가 희생하고 아들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느냐? 그게 자기이기 때문이예요, 자기. 자기의 사랑입니다, 자기 사랑. 어머니 아버지가 결합한 사랑의 실체라구요.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을 중심 삼고 합한 실체 뒤에는 지금까지 사랑한 것은 없지만, 실체로서 나타난 증거적인 물건이 자기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 애기를 쳐다보면 하나님 같기도 하고, 자기 아내 같기도 하고, 나 같기도 하고, 그저 볼수록 신비롭다는 거예요. 신비롭다구요. 사랑이 그런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이 부모한테 불효할 수 있나 말이예요. 부모와 갈라질 수 있어요? 갈라질 수 있어요? 「없습니다.」
(106-80, 1979.12.09)

자식들은 왜 부모를 그리워해요? 거기에 사랑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왜 자식을 그리워해요? 거기에 사랑의 집이 있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완전한 사랑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137-141, 1986.01.01)

5) 존속하기 위해서

모든 만물세계를 볼 때, 식물이나 동물을 볼 때에 전부 다 상대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보게 되면 남성과 여성은 그 생긴 것이 다릅니다.
나무를 봐도 그렇습니다. 나무를 보더라도 암나무가 있고 수나무가 있습니다. 꽃 가운데에도 그런 꽃들이 있다 이거예요. 또는 포유류라든가 조류라든가 하는 동물계를 봐도 전부가 상대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상대관계를 가져야 되느냐? 왜 상대관계가 필요하냐 이거예요. 「참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입니다.」 참사랑을 주고받는 게 왜 필요하냐 이거예요.
왜 상대가 필요해요? 제일 간단한 걸 모르고 있다구요. 수수작용, 원리, 조화 등등 별의별 것을 말하지만, 제일 중요하고 간단한 것을 모르고 있다구요.
제일 간단하고 제일 중요한 걸 모르고 있어요. 심플 포인트(SIMPLE POINT;간단한 요점)가 뭐냐? 존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입니다. 역사성을 연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식물세계에 그런 관계가 없었더라면 다 없어졌을 것이고, 동물 세계에도 그런 관계가 없었더라면 다 없어졌을 것이고, 인간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없을 거예요. 다 없어요.
종자를 남겨야 됩니다. 남기는 데는 좋은 것을 남겨야 돼요. 그것이 이상입니다. 좋은 것을 남겨야 됩니다 그러면, 좋은 것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좋은 상대가 필요합니다.
좋은 씨가 필요하고 좋은 상대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구요, 굿 피앙세 (GOOD FIANCEE;좋은 상대).
그럴 때 남자보고 물어 보면 그 답변이 뭐냐? 다 같습니다, '아이 원트 굿 피앙세 (I WANT GOOD FIANCEE;나는 좋은 상대를 원합니다)'이래요. 왜? 왜는 왜예요? 좋은 종자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어째서 좋은 상대가 필요하냐? 좋은 종자, 보다 좋은 종자를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결론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거 그렇지 않아요? 사실이 아니냐 이거예요. 그 말이 틀렸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뭐 지금까지 생각 하지 않고 선생님 말 듣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볼 때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은 목적이 뭐냐?' 할 때 '아담 해와를 만들어 가지고 사랑하기 위해서지. 부부를 만들기 위해서지' 이래야 되겠나요, '좋은 종자를 남기기 위해서지' 이래야 되겠나요? 어떤 거예요?
사랑은 왜 하느냐? 사랑의 결과는 뭐예요?「해피니스(HAPPINESS) 」해피니스예요? 사랑의 결과가 뭐예요? 칠드런(CHILDREN;자녀) 이예요, 칠드런. 칠드런이 뭐예요? 칠드런이 뭐예요? 그것은 남겨야 할 것입니다. 존속하기 위한 결과적 존재다 이거예요.
그렇다면 피앙세가 왜 필요해요? 여러분들의 생각으로는 사랑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것도 맞는 말이예요. 그러나 그보다도 더 차원 높은 목적이 뭐냐? 그것이 뭐냐 하면 칠드런입니다. 자녀다 이거예요. 사랑의 결과가 자녀다 이거예요.
왜 자녀를 사랑해야 되느냐?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사랑해야 되느냐? 그가 피앙세를 사랑하는 데서 얻을 결과가 자녀이니 그 자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런 이론입니다.
(118-285, 1982.06.20)

6) 사랑이 개재되어 있기에

우리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인류역사를 두고 생각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며 ,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은 자기를 중심 삼고 제일 좋았으면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또, 자기 가정을 중심 삼고 제일 좋았으면, 더 나아가서는 자기 나라를 중심 삼고 자기 나라가 제일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자기가 사는 이 세계가 제일 좋은 세계가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을 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주체 되는, 자기를 중심 삼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인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가정에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여기에서 결론지어 말한다면 부모가 제일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 돈도 좋고 지식도 좋고 권력도 좋겠지만, 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이, 가장 귀한 것이 부모가 아니겠느냐?
또 묻기를 그다음은 무엇이냐 하면 사랑하는 아내요,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겠느냐? 또 묻기를 그다음은 무엇이냐 할 때에, 사랑하는 자녀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부모가 좋은 것이며, 남편 아내가 좋은 것이며, 자녀가 좋은 것이냐? 거기에는 사랑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 그것은 자식에게 있어서 절대 필요한 사랑입니다. 부부간의 참된 사랑, 그것은 남편과 아내에게 있어서는 절대 필요한 사랑입니다. 형제지애(兄弟之愛) 라든가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성의 마음이 가장 귀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112-290, 1981.04.25)

지남석으로 말하면 지남석 성분이 없는 쇠보다도 지남석 성분이 있는 쇠는 당기는 힘이 더 강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인연의 강도에 따라서 천태만상으로 느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족끼리 사랑하고 싶은 것은 엮어진 역사적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 어머니가 왜 자식을 사랑하느냐? 아들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 어머니의 성품을 전부 다 빼낸다면 그 아들의 성품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혹은 딸이 있으면 그 딸이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났지 아버지 어머니가 없는 데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성품을 바탕으로 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거두어들인다 하게 되면 그 딸은 아무 성품도, 아무 인연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50-258, 1971.11.08)

7) 사랑의 증거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왜 태어났느냐? 왜 태어났어요? 내가 왜 인간으로 태어났어요? 남자로 왜 태어나고, 여자로 왜 태어났어요? 밥을 먹기 위해서 태어났지요? 밥, 밥, 밥? 「아니요.」 그게 얼마나 처량한 말이예요? 얼마나 처량한 말이예요?
그다음에 '나 학교 공부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할 때에 그게 얼마나 머리 아픈 놀음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사랑 때문에 태어났다.' 하면 이것은 당연히 '하-' 하고 감동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태어난 사람이냐 이거예요. 사랑에 동참하는 자리에서 사랑의 동참자로 태어났다구요. 사랑의 동기로 말미암아 태어났다구요. 사랑의 동기로부터 사랑의 결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태어나 가지고는 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왜 사랑하느냐? 나를 왜 사랑하느냐 이거예요. 생각해 봤어요?
왜 한낱 새 새끼나 모든 동물들도 왜 자기 새끼를 사랑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사랑의 증거자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증거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또 그리고 사랑의 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예요.
근본과 결과를 무시하는 것은 천하를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인간이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사랑을 존중시해야 할 운명에 있으므로 아들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것은 사랑을 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모두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사랑에 취해서 살면 좋은 거예요. 좋은 거라구요.
부모의 사랑에 취해 사는 아이들은 좋은 아이들이예요. 좋은 아이들이라구요. 여러분 미국 아이들은 어때요? 어머니 아버지가 다 쓸데 없다. 쓸데없다. 그런다구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자기들이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사랑의 근거지가 가정인데, 그 사랑의 근거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104-19, 1979.03.25)

여러분이 왜 아들딸을 중요시하는지 알아요? 자기의 정력을 다 기울이고 죽음의 길을 넘으면서도 왜 그토록 사랑하고 싶은지 알아요? 그만큼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땅을 대신하여 나타난 존재이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볼 때 과연 하늘이 살고 싶어하시는 곳, 하늘이 그리워하시는 곳은 어디겠습니까? 하늘은 바로 이러한 아들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가정을 그리워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8-107, 1959.11.22)

8) 하나님 때문에

인륜은 부모를 사랑하고 부부끼리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가 생각해 봤어요? 누구 때문에 부부끼리 사랑해야 하며, 누구 때문에 자녀를 사랑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사랑하는 것을 책임져 주시는 주인공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워하는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사랑합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 죽어 보십시오, 어디로 가는지.
(8-105, 1959.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