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들딸에 대한 해설
1)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
오늘날 청소년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윤리관을 중심 삼고 문제가 되어 있는데, 그게 왜 자꾸 세상에 전개되느냐? 참다운 부모의 사랑에 도취할 수 있는 자리, 또 서로 안 보면 못 견디겠다고 하는 형제의 사랑에 도취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그렇게 되겠어요?
그렇게 되라고 제사를 지내 보라구요, 그렇게 되는가 안 되는가? 요러한 근본적인 귀한 가치의 기준과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상대적 세계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데 안 찾아지니까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은 자녀입니다. 그다음에 부부입니다. 그다음에 부모입니다.
인간세상이 슬픔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간단한 문제입니다. 물적인 조건과 정적인 조건 이외에는 없습니다. 찾아보라구요. 물적 조건, 그다음에 정서적 조건 외에는 없습니다. '아이구, 난 속상해서 못살겠다. 아이구, 난 어려워서 못살겠다.'는 말을 하면 그것이 슬픔의 조건에 걸리는 거예요.
우리들도 그래요. 어떤 목적을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전부 다 여기에 걸린다구요. 물적 조건을 중심 삼아 가지고는 우리가 생명 이상의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유동적인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 삼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최후의 자리는 자녀의 자리, 부부의 자리, 부모의 자리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먼저 있어야 되느냐? 누가 먼저 있어야 돼요? 어머니를 중심 삼고 볼 때, 자식이 먼저 있어야 돼요, 영감이 먼저 있어야 돼요? 세상에서는 어떻게 돼 있어요?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게 되면 그 어머니 마음 가운데 먼저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냐? 자식이예요, 누구예요? 남편이예요? 이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이것을 왜 물어 보느냐 하면, 내가 물어 보고 나서 이제부터 얘기하려고 그래요.
자식이예요, 남편이예요? 대답하라구요. 「자식요.」 똑똑히 대답해요. 이 아주머니들은 자식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구만. 그런 사람은 남편한테 천대받고 구박받고 수모받고 다니는 사람일 거라구요. 누가 먼저예요? 자식 사랑하듯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느냐, 남편 사랑하듯이 자식을 사랑해야 되느냐?
여러분, 이걸 다 결정짓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대답해 봐요. 모르겠지요? 자식 사랑하듯이 남편을 사랑해야 되겠느냐, 남편 사랑하듯이 자식을 사랑해야 되겠느냐? 아주머니들, 한번 대답해 봐요. 그러면 자식이 죽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죽으면 좋겠어요? (웃음) 대답해 봐요. 그렇게 되면 남편이 죽는 게 낫지요. (웃음)
자식을 중심삼고 볼 때 내가 자식이 되어 있으면 그 위에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나를 중심삼고 얘기하게 되면 부자관계요 부부관계지만, 위를 생각하면 누가 있어요?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러면 부부가 먼저냐, 부모가 먼저냐? 「부모가 먼저입니다.」 자식은 나중입니다. 부모 이후라구요. 그러면, 부모가 먼저면 얼마만큼 먼저냐? 정서적인 기원에 있어서는 첫출발입니다. 부모가 먼저입니다. 부모가 있어 가지고 자식을 낳아 키우게 되면 그다음에 상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가진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 중에 누구를 죽음의 자리에 내놓겠느냐고 묻게 되면, 그 어머니가 진짜 자식을 사랑한다면 남편을 죽음의 자리에 내놓으면 내놓았지 자식은 안 내놓겠다고 하는 거예요. 남편들이 들으면 섭섭할는지 모르지요.
요즘 세상 같으면 '그거 뭐 자식이야 죽으면 또 낳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부가조건이고, 원칙을 따지고 들어가 순서가 어떻게 돼 있느냐 하면, 부부라는 것은 맨 나중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사랑의 역사가 그렇다구요, 사랑의 역사가. (48-208, 1971.09.19)
2) 부모의 상대적 절대자
인간세상에 있어서 사랑은 무엇에서부터 생겨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는 부부가 아니냐? 그러면 부부에서 사랑이 출발했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인간세상에 있어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인간과 인간 이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그게 부자의 관계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사랑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부자의 관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어디서부터냐? 어버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는 데는 장난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구요. 무엇으로? 이상적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 이거 어려운 말입니다.
상대적 절대자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을 중심 삼고 부모 앞에 상대적인 절대자로서 세워 놓은 존재가 누구냐 하면 자식이라구요. 그것은 자기 생명을 받아 가지고 나타나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투입하더라도 사랑 안 하고는 못 견디겠다.
하나님의 생명을 끊더라도 사랑한다고 하게 되면 좀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투입해서라도 사랑 안 하고는 못 배기겠다…. 그러면 하나님이 자식을 위해서 죽어야 할 자리에 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절대자가 성큼 망하면 되나요?
그 자리를 넘어설 것이냐, 그 자리에서 버티고 나갈 것이냐? 대답해 봐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사랑의 주체인 절대적인 하나님이 절대적인 아들을 보았는데 그 아들을 위하여 죽을 자리에 있게 되면 '난 싫어. 난 이리로 가야지!' 그러겠어요?
죽을 자리를 대신해서 가겠어요?「죽을 자리를 대신해서 갑니다」 그것은 무엇을 봐서? 우리 인간을 봐서.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죽는다구요. 그렇게까지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해야 되느냐? 자기의 몸 이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48-210, 1971.09.19)
자라는 아이들은 하나님입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이예요.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연결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 일을 못 한다면 참사랑을 연결할 힘이 없는 겁니다.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다구요. 어머님한테 내가 스승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고 충고와 권고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말도 태도도 달라요. 그러나 애기들이 들어오면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야 됩니다. 티 없이 맑게끔.
그 아이들한테 부모님이 싸움을 한다는 인식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없는 아이들은 늘 싸우지만, 철이 들게 되면 싸우지 않고 부모님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34-224, 1985.07.20)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걸작품을 지었는데 다시 한번 만들자 하고 내버리고 다른 데 가서 상대를 찾으려고 하겠어요?
여기 있는 아기 엄마들도 알다시피 아기들이 태어나서 몇 달만 지나게 되면 방긋방긋 웃지요? 한 석 달만 지나게 되면 웃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기가 태어나서 첫 번 웃을 때에 여자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반드시 남편한테 좋아라고 선전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보 우리 아기가 웃었어요!' 하면서 좋아합니다.
그런 얘기는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선전을 들은 남편은 좋아하겠어요, 울겠어요? 「좋아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과 해와가 보면 볼수록 귀여웠으니 어떻게 했겠어요?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좋았겠지요? 하나님이 미워할 때 목석같이 가만히 있더라도 아담 해와가 좋아보인다는 거예요?
아담 해와가 기분 나쁜 표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더 감칠맛이 난다는 거예요. 자식 정이라는 것이 그래요. 아담 해와가 울면서 싫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좋다는 것입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다 못해 얼씨구 절씨구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말을 하는 것이 기가 막히거든요. 까닥까닥하면 되받아서 같이 까닥까닥하고, 손에 무엇인가를 주면 받기도 하고,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미치도록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예술인의 조각작품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하게 되면 그 작품을 걸어 놓고 이것이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며 사람들이 모여 야단이지요?
이렇게 돌덩이를 가공하여 작품을 만들어도 떠들썩한데 만약 자기의 작품이 말을 하고 자기 소원까지 얘기한다면 이런 작품을 놔두고 어디를 갈 수 있겠어요? 놓고는 못 가는 거라구요. 그것이 얼마나 보고 싶고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여기 아주머니들, 아기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하지요? 신기해요, 안 신기해요? 신기하지 않다면 어머니 노릇 못 하는 거라구요. 아기가 잠을 자고 나서 밥 달라고 '빽' 하니 울어대면 그 어머니는 아기 우는소리를 듣고 기분 나쁘다 하며 달려가요? 아이가 보고 싶어서 달려가요? 보고 싶어서 달려가지요?
그러고는 아기를 부여안고 가슴을 헤치고 생명의 호스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아기가 그걸 잘 빨아 먹는 것을 볼 때 엄마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러한데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보고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이 아기를 키울 때 좋아했던 것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몇만 배, 몇억만 배 더 좋아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좋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내용을 알아요, 몰라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좋아했겠어요? 하나님이 한번 웃으면 천지가 다 웃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춤을 추면 천지가 다 춤을 출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할 게 아니예요? 그렇게 좋아한다고 누가 욕을 하겠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울겠어요, 따라서 좋아하겠어요? 「좋아합니다.」 그럴수록 좋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춤을 추고 해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인간은 빼놓고는 상대할 대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인간을 빼놓고는 재미를 볼래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 앞에 있어서 인간은 상대적인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41-274, 1971.02.17)
3) 자녀는 소망의 중심
아담 해와 완성이라는 것, 완성시대가 뭐냐?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될 때 완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여러분에게 이해될 거라구요.
아담 해와 둘이 하나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면 이게(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전부 다 통한다 이거예요. 여기 가서 사랑해도 좋고, 여기 가서 사랑해도 좋고, 이 둘 사이에 있어도 좋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고, 아담이 제일 좋아하고, 해와가 제일 좋아할 수 있는 그 점이 도대체 어디겠느냐?
이 창조세계에, 창조 이상세계에 전체적 사랑을 중심삼고 결실체, 열매와 같이 한꺼번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뭐냐?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행복할 수 있어 가지고 하나되는 것이 어디냐 하면 자녀라는 거예요.
자,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자녀입니다.」 아담 해와 지요? 「아닙니다.」 뭐예요? 「자녀입니다.」 그거 왜 아들딸이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은 왜 아들딸을 사랑하느냐? 왜 아들딸을 사랑하게 되느냐 하는 문제에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 엄마 아빠끼리 싸움을 하면서도 아들을 놓고는 아주 서로 좋아해요. 서로 미운 것이 있더라도 아들을 놓고는 사랑한다구요. 왜 그래요?
부처끼리 싸움하면서도 아들을 왜 사랑하느냐 이거예요. 더러 싸우면 그 아들딸도 전부 다 미워하고 그래야 될 텐데, 왜 사랑하느냐 이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나 하나님의 소망의 중심이 있기 때문이예요.
희망봉, 희망봉이란 걸 알아야 된다구요. 무슨 희망이냐? 지상천국, 천상천국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부모와 자식이 행복한 자리라는 거예요, 전부가.
그래서 부모가 자기들을 잊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부처끼리 살면서 아무리 재미있게 사랑한다 해도 자식이 없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예요, 자식이 있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예요? 자식이 없는 것은 미완성품입니다. 미완성 부부라는 거예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 (92-219, 1977.04.17)
4) 우주에 있어서 제일 큰 상(賞)
자식을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자식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를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아들딸은 하나님께서 수천년의 역사를 소모시키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을 희생시켜 가지고 찾아진 하나의 가정을 통하여 소원의 등불과 같이 태어나게 한 귀한 아들딸인 것입니다.
사위기대의 완성이라는 거룩한 목표의 귀일점을 각 가정의 아들딸이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아들딸에 대해서도 날이 가면 갈수록 진정으로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그 아들딸들은 절대 굶어 죽지 않는 것입니다. (33-176, 1970.08.11)
사랑하는 남편과 더불어 일생 동안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또 일할 수 있는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거예요? 그런 사랑을 지니고 살면 혼자 살게 되더라도 어려운 게 없어요. 이런 사랑은 우주가 침해하지 않아요.
여기에는 우주가 공동 보조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지상세계나 천상세계나 언제나 보호하기 마련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을 중심 삼고 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현세에서나 후세에서나.
자, 우주 가운데 이러한 사랑으로 둘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상을 줘야 되는데, 그 상으로 준 것이 뭐냐? 자녀예요. 알겠어요? \
상 중에 이 우주에 있어서 제일 큰 상이 뭐냐?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예요. 학박사 되거나 무슨 노벨상을 타는 것이 아니예요.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가운데서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예요. 그 이상 큰 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아들딸은 무엇보다도 귀하다는 거예요. 나보다도 더 사랑하고 싶고, 남편보다도 더 사랑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129-56, 1983.10.01)
5) 자식은 사랑과 생명과 이상의 결실체
사랑은 무엇 때문에 한다구요? 「자녀를 위해서요.」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만 물어 보자구요. 하나님하고 아담하고 이브하고 어린애가 있는데 말이예요, 하나님이 왜 아담 해와보다도 자녀를 바랐을까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 그거 이상해. 상대가 더 좋지. 선생님은 왜 자녀를 말할까?' 이렇게 이상하게 생각하고 묻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묻는 사람이 없더라 이거예요.
자, 이 형태도 보게 되면 이것(부모와 자녀)은 종적이고 이것(부부)은 횡적인데, 이게 (자녀)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왜 그럴까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제는 알았다구요, 이제는. 이거 (부부) 둘이 사랑을 통해서 만나는데 무엇 때문에 만난다구요? 「어린애 때문에요.」
여기서 남자 여자가 가까이 가면 여기에서 소망의 아들딸이 나온다. 또 이때는 하나님의 소원성취가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게 (자녀) 목적이고, 아담 해와도 이게(자녀) 목적이고, 다 이게(자녀) 목적입니다. (118-299, 1982.06.20)
그러면 우리 엄마 아빠의 예를 들어서 한번 얘기해 봅시다.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 태어나려면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움터야 된다구요. 서로서로 상대적 관계가 성립돼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랑의 환경에서 생명의 일치점에서 생명이 연결돼야 된다구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싫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이상적이어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부부가 사랑을 맺고 하나되어야 부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은 내 사랑이요, 남편의 생명은 내 생명이요, 남편의 이상은 내 이상이 되는 거라구요.
반대로 아내의 사랑, 생명, 이상도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게 하나된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이, 거기서 발생하는 것이, 그러한 통일적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이 자식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식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실현체요 투입체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체입니다.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이상의 구현체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식을 낳아서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알거예요. 그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서 '이는 내 사랑의 실체요, 생명의 연장체요, 이상의 구현체다. 제2의 나다.'라고 하는 거예요.
출발서부터 사랑과 생명과 이상적 기반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는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보면 볼수록 생명이 약동하고,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상대로 등장되는 것입니다. (69-75, 1973.10.20)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과 나와는 하나님을 중심 삼은 부자관계, 즉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부자의 심정이 필요 합니다.
부자관계의 자리는 우주에 있어서 최고의 비밀의 자리입니다. 최고의 비밀의 자리예요. 부모의 사랑이 연결될 수 있는 첫출발의 기지가 자식이예요.
부모의 생명이 처음으로 연결되는 것이 자식이라구요. 즉, 부모의 이상이 첫출발의 열매를 맺고 나오는 것이 자식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사랑과 생명과 이상의 결실체요, 부모와 직결되는 제2의 대상체라는 것입니다. 부자관계 외에는 부부도 안 되는 것이요, 형제도 안 되는 것이요, 어떠한 친구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이것 하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종적으로 맨 골수, 맨 핵심적인 내용을 딱 파헤쳐 가지고 끌어낸 것이 하나님과 우리, 부자관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이다 이거예요. 그것이 만약에 실천되는 날에는 우주는 문제가 없다구요. 우주는 문제가 없어요. 그걸 알라구요. (69-181, 1973.11.12)
6) 자녀는 부모의 기쁨의 대상
본래 우리의 인간시조는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심정의 목적을 완결짓기 위해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심정의 대상인 천지만물을 사랑하는 아들딸한테 사랑을 중심 삼고 상속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담 해와를 위해서였기 때문에, 기쁨 또한 하나님 자신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부모들도 자식을 보고 기뻐하잖아요? 기쁨이란 대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15-244, 1965.10.17)
하나님이 제일 기쁠 때가 언제일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오늘날 이세계를 복귀해 가지고 복귀완성을 할 때가 제일 기쁠 것입니다.
여기 처녀 총각들은, 결혼해서 애기를 낳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지만, 부모가 돼 본 사람은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거예요.
대개 부모들이 첫 애기를 가지면 온갖 정성을 다해 가지고 사랑하게 된다 이거예요. 애기를 안고 있는 기쁨이라는 것은 부모가 돼 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 애기에 대해 자랑하고 싶을까요, 안 싶을까요?
자, 이렇게 볼 때에, 이 우주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무엇이 가장 귀한 것이겠느냐? 「자녀들입니다.」 응, 그렇다는 거예요.
아담 해와 부부에게 있어서 제일 귀한 게 무엇이냐 하면 돈도 아니요, 그 무엇도 아니라는 거예요. 아들딸이예요. 사랑하는 아들딸이라는 거예요. (92-217, 1977.04.17)
오늘날 타락한 인간 세계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보게 되면, 자식 사랑하는 것이 뭐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말이예요, 보기에는 기왓골에 올려놓은 호박통 같은 그런 애를 턱 업고 앉아 가지고는 둥둥둥둥 하면서 '이렇게 생겼으니 더 구수한 맛이 있다구!' 하며 자랑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거든요. 여기 애기를 가진 부모들도 잘 알거라. 얼굴은 그저 독수리와 싸우다가 긁힌 것 같은 상판대기를 한 부모요, 그 아들은 부모보다 더 험하게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는 그 아들을 껴안고 '어화 둥둥 내 사랑아!'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으로 말하면 귀한 것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 뭐예요? 세상으로 보면, 뭐 하나님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제쳐놓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뭐예요? 제일 귀한 게 뭔지 찾아보라구요? 「자녑니다.」 자녀.
그다음에는? 자기 신랑 자기 신부지요. 상대 아니예요? 그다음에는 뭐예요? 부모. 그 이상 귀한 게 없다구요.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것입니다. (48-208, 1971.09.19)
7) 자녀는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귀하다고 하는 것이 사랑인데, 그 사랑이 변해서야 되겠어요? 변할 수 없다 이겁니다. 영원이요, 절대적이요, 불변이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왜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느냐? 그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명이 공동체로서 생명을 공인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그러냐? 보라구요. 우리의 아들딸들은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들딸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부모의 사랑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존재세계에서 아들딸들은 부모의 사랑이 하나되는 거기에 동참해 가지고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나’의 출발이 어디냐, 내가 어디서부터 태어났느냐 할 때에, 나는 부모의 사랑이 지극히 꽃피는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꽃이 피는 데는 아름답게 피고, 아름답게 필 뿐만이 아니라 향기가 풍기고, 그 향기는 어머니 아버지도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하고 만우주도 좋아하는, 이상적인 꽃으로 필 수 있는 그런 가운데에서 내가 태어났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합한 남자요, 여자로서 태어난 그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의 꽃을 피우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기쁨의 자리에서 하나의 씨로서 심어진 것이 누구라구요? 자녀인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 많은 할아버지라도 그 어머니 아버지의, 우주를 대표한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의 꽃이 피는 향기 속에 심어진 생명력이라는 것입니다.
그거 위대해요, 위대하지 않아요? 「위대합니다.」 그러한 생명의 꽃 가운데 하나의 우주의 결실로서, 사랑의 결실로서 심어지는 그 자리는 우주가 전부 다 엄숙히 바라보고 있는 곳이 아니겠느냐, 이런 논리가 성립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 인생이라는 거예요. 또, 부모님의 사랑이 있다면 부모님의 사랑, 부부의 사랑이 있다면 부부의 사랑의 최고의 동참자의 권위를 갖고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공통적인 내용의 인연을 가진, 불변과 통일적인 내용의 속성을 가진 사랑을 중심 삼고 출발한 인간으로 심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의 인연은 끊을래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는 겁니다. 끊을 수 있어요?
내 사랑과 내 생명의 주체성을 가진 것이 자녀이기 때문에, 이걸 끊으면 나를 부정하고 내 생명을 부정하는 자리에 서게 되므로, 사랑의 결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생명을 버릴 수 있다. 이런 논리를 찾을 수 있는 거예요. 거 이해가 돼요? 「예.」 (83-158, 1976.02.08)
여러분들에게는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그건 뭐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게 사랑이예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생명의 가치가 있다는 게 뭐냐? 부모의 사랑에 동참한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치있다는 것입니다. 가치가 거기에 있다구요. 동참자, 사랑의 동참자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의 생명이라는 것은 부모의 사랑의 동참자라는 거예요. 그걸 여러분들의 힘으로 가를 수 있어요?「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권내의 생명을 지닌 자랑의 존재가 아들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105-75, 1979.09.23)
자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면, 이 우주 공약의 접착제인 사랑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내가 전부 다 압니다' 이거예요. 아버지 사랑의 근원에 내가 있고 어머니 사랑의 근원에 내가 있으니, 내 가는 길에 어머니 아버지를 끌어올 권한이 있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게 아들딸이예요. 여러분들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딸이 어떻게 되면 엄마 아빠는 '어디 갔나?' 이러고, 아들이 어디 갔으면 '어디 갔나?' 한다구요. 왜? 이러한 천리원칙의 접착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떨어지지 않는다구요, 늘어날 뿐이지. 이걸 끊을 자가 없다구요. (83-212, 197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