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인(對人) 대언(對言) 대물(對物)관계
1) 대인(對人)관계
① 사람을 대하는 법
㉠ 가누어야 할 사람관계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좋고 나쁘다는 관념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내가 '좋다' 하는 것도 여러 관점에서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많이 느낄 것입니다. 특별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신령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번에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대하게 될 때에, 그 사람과는 초면이지만 척 대하면 그 사람이 좋다, 혹은 나쁘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일을 놓고 보다 양심을 중심삼고 사람을 대하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대하는 것이 처음인데 좋고 나쁘다는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을 체휼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일보다도 좋고 나쁜 것을 가장 빨리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대인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좋고 나쁜 것이 빨리 판단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대내적 관계와 대외적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내적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하면 인간과의 관계요, 대외적 관계는 세상과의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27-46, 1969.11.23)
사람에 대해서 연구를 해야 됩니다. 웃을 때도 어떤 사람은 힘없이 '으흐흐' 하고 웃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힘 있게 웃습니다. 웃는 데도 만물상이라는 것입니다. 웃을 때 '이히히' 하고 웃는 사람이 있고, '우후후' 하고 웃는 사람도 있고, '허허' 하고 웃는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터지고…. (46-289, 1971.08.17)
이런 모든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스스로 따라가면서 자기가 설 자리를 정지(整地)해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검토의 대상인 것입니다. 누구든 나에게 선하지 않으면 악한 것입니다. 나에게 플러스가 아니면 마이너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아니면 플러스가 된다는, 전부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척 듣게 되면 그 말이 플러스되는 말이냐, 아니면 마이너스되는 말이냐? 무슨 행동을 할 때에도 이것이 플러스되는 행동이냐, 마이너스되는 행동이냐 하는 것을 검토해 봐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 하늘 뜻과 신앙길 앞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것이냐 하는 문제를 검토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40-86, 1971.01.24)
㉡ 사람은 세 부류
타락한 세계를 보면 사탄세계권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탄세계권, 초심자들은 그걸 잘 모르겠지만 사탄세계권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사탄권과 하늘권의 중간권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권도 아니고 중간권도 아닌 하늘권내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체로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몸뚱이가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은 몸뚱이의 것도 아니요 영의 것도 아닙니다. 중간이라구요. 공간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육적 사람이 있고, 마음적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는 영적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사탄세계의 편에 있는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는 중간층에 있는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는 하늘편에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게 된다면 개개의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척 대하면 공연히 좋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 대하는 데도 마음이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보다도 심령 기준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선조들이 닦아 준 기준보다도 높은 기준에 있게 될 때는 자연히 무엇인지 모르게 척 대하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덕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어디서 좌우되느냐 하면 그와 관계를 맺어 내가 손해를 보느냐, 이익을 보느냐 하는 문제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나쁜 것은 다 싫어하고 좋은 것은 다 좋아하는 거라구요.
또 사람들 가운데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구요. 그다음에는 대하면 괜히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대하면 좋은 사람이 있고,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무엇인지 모르게 그냥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대가 무슨 전파와 같은 파장으로써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분석을 잘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을 척 보아 좋다는 것은, 그것은 원리적으로 보면 벌써 그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나는 대상적 입장에서 그와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삼고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완전한 상대기준을 세워 가지고 완전한 상대기대를 이루어서 완전히 주고받으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50-253, 1971.11.08)
㉢ 선대(先代)의 인연권에 있는 우리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을 대해 가지고 좋다 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은 환경에 있을지라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그에게 아니 줄래야 아니 줄 수 없고, 그로부터 아니 받을래야 아니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지남석과 철이 있으면, 철이 지남석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요? 영향을 받게 되면 반드시 철 자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작용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 둘 사이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오가는 인연이 맺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고받는 그 인연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고받는 힘에 해당하는 만큼 운동이 벌어지면 반드시 중심을 그려 가면서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주고받게 되면 운동이 벌어져요. 운동이 벌어지면 반드시 중심을 추구하면서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빨리 결정되면 그것이 오래 계속되지만 오랫 동안 중심이 결정되지 않고 주고받는 것보다 늦게 중심이 결정되면 빨리 쓰러지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주고받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임합니다. 중심이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가 원리를 배워 알고 있기 때문에, 척 대하면 벌써 거기서부터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반드시 인연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서로 처음 만났지만, 여러분은 지금 박씨라든가, 김씨라든가, 최씨라든가, 조씨라든가, 문씨라든가 각 성씨들로 헤쳐져 있지만, 여러분 선조 끼리끼리는 인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선조, 할아버지라든가 할머니를 조사해 보면, 조씨 할머니가 있었는가 하면 김씨 할머니가 있었고, 이렇게 시집왔던 할머니들을 전부 다 살펴보면, 수많은 성씨가 접근되었다가 떨어지고 또 접근되었다가 떨어졌다는 거예요. 최씨 할머니가 왔다가 돌아가고 또 김씨 할머니가 왔다가 돌아가고, 이렇게 선조들을 쭉 살펴 올라가 보면, 한 할아버지로부터 지금의 아버지 대(代)까지 내려오는 데에는 수많은 씨족 들이 붙었다 떨어졌다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세상 살다가는 가고, 또 한 세상 살다가는 가고,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내려오는데, 비례로 보면 자기의 종족이나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특정한 씨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할머니들 가운데 어떤 성씨를 가진 할머니들이 많으냐? 김씨가 많으냐, 박씨가 많으냐, 최씨가 많으냐, 조씨가 많으냐?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인연된 성씨가 있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인연된 성씨가 많은 것입니다. 그것을 1, 2, 3, 4, 5…. 이렇게 등수로 매기면 나를 중심삼고 수십 등의 등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한 몸이 이 시대에 아무개의 아들딸로 태어났지만, '나'라는 것은 이 시대에 평면적으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자체에는 수많은 선조들, 즉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한 4백조나 되는 여러분의 세포는 여러분 선조들의 세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어서 여러분이 어떠한 성씨의 소성을,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성을 많이 받고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보더라도 그 할아버지가 조씨라면 순 조씨 계통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박씨라면 그 할아버지에게는 박씨의 소성을 닮아 난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이렇게 지그재그로 섞여 가지고 전부 종합되어 가지고, 오늘의 '나'라는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을 택했는데, 박씨면 박씨를 처음 만났는데도 괜히 좋다…. 그거 왜 괜히 좋은가 하면, 자기 선조들 중에 박씨 할머니가 많았기 때문이예요. 박씨 혈통의 인연을 많이 갖게 되면 자연히 좋아진다는 거예요. 그러한 인연이 전부 다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척 대해 가지고 무엇인지 모르게 나쁘다 하는 것은, 선조들 사이에서 원수가 되어, 서로 상충이 벌어져 가지고 피해를 입힌 그런 인연의 상대적 존재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중간적 입장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내가 노력하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정성을 들이고 주체적 역할을 하면 그 사람은 끌려온다는 것입니다. 끌려와 가지고 어느 기준까지 넘어가게 되면 동화되어 가지고 자기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을 중심삼고 보게 되면, 거기에는 탕감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알겠어요?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을 전도하는 데는 그냥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대되는 거기에 해당하는 것만큼, 맞지 않는 기준에 해당하는 것만큼 내가 선한 입장에서 대가를 치러 줘야 됩니다. 갚아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눈으로 보게 된다면 평면 세계에 같이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나 하늘적으로 보게 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산과 마찬가지입니다. 산맥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가다 이렇게 가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서 저렇게 가고, 또 이렇게 해서 내려가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해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해서 딱 금을 그어 놓으면, 중앙선을 그어 놓으면 이렇게 된다는 거라구요.
수많은 인간상을 그려 보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나 나나 똑같지' 할지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똑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데 저 사람은 다른 것을 좋아하거든요. 서로 다르다는 거예요. 느낌도 다 다르다는 거에요. 이렇게 좋고 나쁘다는 느낌은 전부 역사적 배경과 인연되어 가지고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50-254, 1971.11.08)
㉣ 좋은 사람이란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악한 점을 꼬치꼬치 캐고, 악이 열만큼 있으면 열만큼 미워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악을 잊어버리고 그 악 가운데 깃들어 있을 선의 가치를 악 이상으로 평가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악한 사람을 선한 입장에서 상대하여 새로운 입장으로 인도할 수 있고, 새로운 입장에서 그에게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나를 본으로 삼고 따라올 수 있는 것이요, 나를 중심삼고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악하다고 해서 '악(惡)'그 자체를 저주하고, 악이 열만큼 있으면 그 이상으로 악하게 평가해 가지고 저주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이 땅 위에 '선(善)' 그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악한 사람도 사랑하고, 슬픈 사람을 대하면 그 슬픔을 그 사람의 것으로서 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슬픔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그 슬픈 자리에 들어가 슬픔을 탕감해 주고 자기의 기쁨을 그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평면적인 습관이나 관념을 초월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저 사람을 위해서 태어났으니 저 사람을 위해서 제물이라도 되겠다' 또 '나는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는 것도 그들을 위해서 산다는 관념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그 환경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그냥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모든 악을 제거시켜 선하게 만들 것입니다.
선하게 되기 위해서는 악을 남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아픔으로 느끼고 밤을 새워 가면서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고, 그들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악한 사람의 본성의 중심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34-129, 1970.08.30)
그럼 여기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소년도 좋아하고, 청년도 좋아하고, 장년도 좋아하고, 늙은 사람도 좋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또, 자연을 대하여 사람이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면, 그 주체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봄도 좋아하고, 여름도 좋아하고, 가을도 좋아하고, 겨울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72-99, 1974.05.26)
② 바람직한 인간관계
㉠ 사랑의 인간관계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횡적 관계에 있어서 횡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서로 존중하는 일이 적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 대해서 전부 다 귀찮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귀찮아지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데에는 우리 대한민국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인류를 전부 다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우리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인 무리라 할진대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관심을 가지고 대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겉으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아까 말한 인연 중에 최고의 인연을 결실하는 자리에설 수 있는 것이요,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최고의 관계를 맺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아서 앞으로 식구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고, 어떠한 환경에 부딪쳐 고난을 당할 때에 서로서로 자기가 당한 것과 같은 심정으로 동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앞장선다 할진대는 아무리 가을이 오고, 겨울과 같은 시련의 고비가 온다 할지라도 뚫고 나갈 수 있는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생명력은 봄을 향하여 힘차게 남아져 새로운 세계의 생명의 모체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25-289, 1969.10.05)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의 일체를 통합하여 이 생명, 또는 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데에 따라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이 생명력과 가중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 할진대 그것은 정지 하는 것이 아니면 후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2-19, 1970.06.14)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저 뭣인가 당구를 치게 되면 다마끼리 마주쳐 가지고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지요. 그것이 재미라구요, 재미. 사람 사람의 만남도 그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마주치면 잡아당겨 하나되었다가 밀어내는 그런 기분이 든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축구공을 차더라도 그 공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렇게 변화무쌍해야 좋지 않아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사랑의 하나님이 중심이라면, 그 사랑을 중심삼은 이 세계를 표준하려니…. 도대체 종교는 뭐냐? 하나님을 찾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뭘하자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까지 나가자는 거예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대번에 이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종교가 필요 없다구요. 사랑에 대해서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요? 부모의 사랑이니, 무슨 뭐 부부의 사랑이니, 이 세상의 사랑도 말이예요. 설명이 필요 없다구요. 자연히 아는 거예요, 자연히 아는 거라구요. 공기와 같이 사람과 언제나 뗄 수 없는 것이 그 사랑이라는 거예요. 자연히 알게 돼 있다구요.
여러분, 공기가 어디 방향성이 있다면, 그것 찾아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어디에 가서 찾아요? 사랑을 아는 사람은 어디에 가든지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어디 가든지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91-80, 1977.01.30)
㉡ 대인관계의 핵심적 요소
'나는 일생을 이렇게 간다' 하고 딱 정해야 돼요. 자, 내가 좋아하는 사람, 우선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 어린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사람이라는 사람 모두에게,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대하고 위하겠다 하는 것을 딱 정해 버려야 된다구요.
그러니 내가 그 사람이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하기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뭘했느냐 하는 걸 생각해 보라구요. 그게 얼마나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물로 말하면, 저쪽은 높은 물이고 나는 낮은 물이면 내가 떨어져 내려갈 수 없다는 거예요. 언제든지 내게 접근해 오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공상태가 되게 된다면 고기압권은 자동적으로 오는 거예요. 그게 원칙이예요. (131-33, 1984.03.11)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 앞에 나타나기를 주저해야 하며, 대인관계에서 말할 때에도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안팎의 사정을 살펴 가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42-297, 1971.04.01)
하나님과 일치된 사람이 돼 가지고 만물세계, 혹은 이 세계 앞에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한 자로서 전체를 대해 정서적인 기준에서 횡적 관계를 넓히고 맺어 나가는 것이 종교인들이 해야 할 생활이라고 보는 거예요. 생활에서 이것이 맺어져야 합니다. 생활에서 이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이면 개인에게 있어서 대인관계를 맺게 됩니다 (82-272, 1976.02.01)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욕심을 가지고 대해서는 안 됩니다. (33-142, 1970.08.11)
③ 우리는 신도(信徒)가 아닌 식구(食口)
㉠ 식구란 말의 성립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모인 것이 무엇이냐? 우리들은 말하기를 식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지요? 식구가 뭐냐, 식구가? 밥 먹는 입이라는 식구가 아니예요. 식구라는 것은 뭐냐? 형제의 인연을 갖춰야 되고, 부모의 심정을 같이 물고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부모를 갖고, 같은 형제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부모의 생활과 습관과 전통을 그냥 그대로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형태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만 식구가 이뤄진다는 거예요. (155-211, 1965.10.30)
여러분들에게는 식구로서 무엇이 필요하냐? 내 형을 형으로 알고, 동생을 동생으로 알고, 누나를 누나로 알고, 상하 전후 관계를 알아 자기의 위치의 환경을 확고히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싸워 나가는 시련과 이들이 부딪치고 있는 모든 시련은, 식구의 명사를 갖게 될 때에는 형님이 당하는 시련도 내 시련이요, 부모가 당하는 시련도 내 시련이요, 주위의 형제들이 당하는 모든 시련도 내 시련이요, 부부가 당하는 시련도 내 시련이요, 주위의 형제들이 당하는 모든 시련도 내 시련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의 아픔이 내 아픔이다'하는 심정으로 그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 부딪쳐 오는 반대적인 현상으로 내 몸에 반대적인 슬픔의 조건이 불어가면 불어갈수록 우리의 형제들의 고통이 불어가고, 우리의 전후 관계의 부모면 부모들의 고통이 불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원수를 대해 싸운다는 신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는 형제 중의 형제가 될 수 있고, 자녀 중의 자녀로서 그 가는 동료들 가운데에서 보호를 받고 지킴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천지이치입니다.
식구로서의 명분을 같이하여 행군하는 우리의 행로에 있어서는 우리가 가는 범위가 널어지면 넓어질수록…. 한때는 개인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왔고, 한때는 가정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왔고, 한때는 종족적인 투쟁시대를 거쳐왔고, 지금은 민족적인 투쟁시대를 거쳐 국가적인 투쟁시대를 향하여 세계적인 투쟁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준비하는 시대에 당도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것은 자기 일신이 가는 것 같지만 그 일신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모든 인류, 혹은 세계적인 수많은 종족들이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행군 명령에 보조를 맞추기에 급급할 수 있는 현상이 벌어져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식구라는 거예요.
우리의 식구라는 이 명분은 앞으로는 부모를 위함이요, 좌우로는 형제를 위함이요, 소망의 선의 나라, 선의 주권과 선의 인류, 선의 백성과 선한 지구성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런 엄숙한 과제를 앞에 놓고 투쟁의 물결과 풍랑이 있어야 할 것을 알고, 내가 들어가느냐 내가 나가느냐 하는 싸움에서 진을 치고 있고 또 나가고 있는 자들이 누구냐 하면 통일교회의 신도들인 것입니다. 통일의 식구들인 거예요. (153-18, 1963.10.18)
오늘날 우리들은 손에 손을 쥐어 잡고 모였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생소한 남남끼리 모였어요. 우리들에게는 피가 통하고 있어요. 우리들에게는 천정이 통하고 있다구요. 출발이 거룩했기 때문에 결과도 거룩해야 될 것이 아니냐 ! (67-317, 1973.07.22)
㉡ 인연이 있어 만난 우리들
여러분끼리의 유대관계, 하나님을 중심삼고 맺어진 여러분의 인연은 몇년 동안에 되어진 인연이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타락한 비운의 역사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또한 인류를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인연을 따라 서로 만나고 싶어하고,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야 돼요. (49-214, 1971.10.10)
우리가 갖고 나온 인연이 무슨 인연이냐? 입체적인 인연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상에 있었던 어떠한 사상을 기조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기조로 해서, 본성의 인격을 표준으로 해서 시작된 인연인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연의 핵심이기 때문에 절대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49-204, 1971.10.10)
우리의 인연을 생각해 보라구요. 여기에는 우리 사람끼리만 인연되어있지 않다구요. 수많은 영인들과 천사세계와 하나님까지도…. 하나님과 천사장 사이에 얼마나 곡절이 많아요? 곡절이 많은 것이, 혹이 또 붙었다 이거예요. 모양으로 말하면 지구보다도, 이 세계, 우주보다도 더 큰게 붙어 있다 이거예요. 그게 너무 커요. 너무 커서 가려면 그게 닿으니 '무니 온다. 사고난다' 하며 야단한다구요. 그게 가면서 치고 간다구요. 위험하다, 위험하다는 거예요. (95-123, 1977.11.06)
우리는 다른 인연을 따라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형제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육신의 형제들을 지배해야 합니다. 그게 다르다는 겁니다. 형제 아닌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형제를 지배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과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자기가 직접 못 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우리는 형제들에게 보다 더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49-207, 1971.10.10)
㉢ 식구끼리의 유의사항
식구를 대할 때에는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18-43, 1967.05.17)
어떤 식구들은 식구들간에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간격을 두고 그를 비판하고 심판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19-138, 1968.01.01)
선생님은 식구를 비난하고 식구를 모해하는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랑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끼리부터 해야 되는 거라구요. 동서남북에서 가려져 가지고 하나의 인연을 따라 모인 우리 끼리끼리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보지 않으면 못사는 거라구요.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이런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래도 이 악한 세상과는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49-60, 1971.10.03)
통일교회에서는 싸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곳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모인 곳입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기 위해 모인 곳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방법은 어디에서 배우느냐?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합니다. 그저 서로 보고 싶고 주고 싶은 사랑의 형제들에게 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몇 배로 돌려주시고자 하실 것입니다. 부모는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형제를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데서 열립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따라가고자 하는데, 그 마음으로 형제를 따라 같이 가려고 노력해 보세요. 이렇게 볼 때, 천국에 제일 높게, 빠르게, 좋게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도 아니요, 선생님도 아니요, 형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부모와 부부의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는 최고의 사랑의 주체자로서 상대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천국에 가기 위한 훈련은 죽기까지라도 하면서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아벨의 입장이라면 가인을 중심삼고 천국에 가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못 된 천국은 울안에 있는 천국이요, 무한히 돌 수 있는 천국이 못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종횡으로 상통할 수 있는 천국이 못 되는 것입니다.
지금 때는 세계적인 때입니다. 백, 흑, 황인종은 삼형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이색인종이 모여서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할는지 모르나, 다투는 일이 없어요, 천국은 인종에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많이 한 업적에 따라 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면 좋지만, 사탄의 아들은 대하면 대할수록 공포와 불안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형제는 나보다 귀한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 사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는 거예요. 어디서나 환영받고 추천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를 위해서 사는 자는 중심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되겠어요.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을 재현하는 형제의 사랑을 어떻게 이루느냐 하는 것이 곧 지상천국을 이 땅에 현현시키는 비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결국 기쁘기 위해서 주고 기쁘기 위해서 맞는 이것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나보다 형제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합니다. (66-122, 1973.04.18)
④ 만민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교만은 원수입니다. 교만과 고집은 사탄의 본직이요, 사탄의 요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만 대신 겸손, 고집 대신 화합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화이유친(和而有親) 입니다. 화동하는 사람, 이 사람도 좋게 해주고 저 사람도 좋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여기에서부터 모든 일이 통하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둘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더 큰 것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화합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탄의 본질에는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도 있지만 지금은 이것만 알아두라구요. 교만과 고집은 우리에게는 용허할 수 없는 것입니다. (37-132, 1970.12.23)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 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예요. 둘째는 뭐냐 하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 이것이 둘째 계명이예요.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계명은 뭐예요? 인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 동네가 아니예요. 인류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인류. 인류가 형제요 이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의 대상권으로 바라기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딸이 하나님보다도 인류를 더 사랑한다고 해서 '야 이 녀석아, 너 틀렸다'고 안 한다는 것입니다. (136-142, 1985.12.22)
사람과 사람끼리는 왜 사랑을 해야 하느냐?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점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사랑 앞에는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34-239, 1970.09.13)
㉡ 사람을 사랑해야 할 정도(程度)
성인의 도리가, 성인이 뭐예요? 밥 잘먹는 것이 성인이예요? 싸움 잘하는 것이 성인이예요? 아니예요. 만민을 자기 부모와 같이, 자기 형제와 같이, 자기 자식과 같이 사랑해야 돼요. 가정의 자식들이 아플 때 부모가 아프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므로 성인은 세계 만민들이 살고 있는 정상을 바라볼 때 자기 아픔 대신….
그래서 만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처지를 망각해 가지고 투입하려고 하는 이런 사랑의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성인의 도리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는 역사를 넘어서, 시대를 넘어서, 세계를 넘어서 오늘날 전세계에 모든 도덕기준으로서 이어받아 내려오는 거예요. 그게 박애정신이예요. 알겠어요? (186-74, 1989.01.29)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느냐? 자신이 언제 어느 한 사람 때문에 죽어도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얼마나 사랑했느냐? 얼마나 많이 사랑했느냐? 문제는 사람을 사랑하는 비율에 따라서 심정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73-74, 1974.07.29)
여러분이 영원한 인연을 상속받아 남아질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서 열매가 맺어질 것이냐? 사람, 즉 인류 앞에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데 있어서는 어떠한 단체보다도 강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은 모임이라 할진대는 반드시 온 세계에 사랑의 열매로 남아질 겁니다. 열매로 남아진다는 겁니다.
나무들이 무성하게 동산을 덮었을 때에는 어느 것이 소나무이고, 어느 것이 사철나무인지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드러납니다. 겨울에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이 보이는 가운데 푸른 나무가 보인다면 그것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 사망의 세계에 찔림을 당하더라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인류를 대하여 사랑할 때에 그는 하늘을 대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젊은이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데에는 나이 많은 사람부터 어린 사람까지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야 됩니다. 요즈음 청년들을 보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고, 젊은 사람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고 공경해야 할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입니다. 젊은 사람은 만나기만 해도 되겠지만, 활동하기도 부자유스럽고 힘도 부족해 제삼자의 신세를 져야 할 노인들에게는 사랑도 해주어야 하고 동정도 해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풍조를 이 사회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25-286, 1969.10.05)
2) 대언(對言)관계
① 말의 중요성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입니다, 말. 우리는 말로써 의사를 표시하고, 말로써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혹은 절망도 주고, 혹은 흥분도 시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91-71, 1977.01.30)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은 그 사람 대신입니다. 그 사람의 실천을 대신 증거할 수 있는 것이 말입니다. 믿음이라는 글자가 재미있잖아요? '사람 인(人)' 변에 '말씀 언(言)'입니다. (152-47, 1963.03.15)
우리가 말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말하는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말하는 상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하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66-237, 1973.05.15)
② 사랑이 담긴 말
사랑을 중심삼고 하는 말은 아무리 욕을 해도,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것은 흥할 뿐이요, 발전할 뿐이요, 전부가, 우주가 좋아할 뿐이라는 거예요. (91-89, 1977.01.30)
③ 말과 행동
생각이 문제예요. 모든 인간의 행동은, 언행의 모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돼요. 말을 해도 그 생각을 통해서 말을 해요. 그 생각, 그 전통적 사상에 자기를 개재시킬 수 없다 이거예요. 여기에는 우주가 개재해 있고 하나님이 개재해 있는 거예요. 우주를 대표하고 인류를 대표해서 말하는 거예요, (126-20, 1983.04.10)
여러분, 가끔 일반인들이 말하기를 '그 사람 말 잘한다'고 하지요? 말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만 잘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말을 잘함과 동시에 행동까지 갖춘 사람은 모든 생활에 있어서 합격자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말이 많은 것이 좋으냐,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문제가 우리 생활에 있어서 또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하는 가치가 결정납니다.
말을 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말해야 되느냐? 행동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행동해야 하느냐? 말은 말만으로, 행동은 행동만으로 하면 안 된다구요.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 위(位)에 세워져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동해야 된다, 하나님의 딸로서 말하고 하나님의 딸로서 행동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91-71, 1977.01.30)
여러분들이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는, 모든 것이 하늘에 속할 수 있고, 하늘에 보충될 수 있는 이런 행동을 이제부터 해야 되겠다구요. 여러분이 친구들끼리나 형제, 식구들끼리 얘기할 때도 마음이 움직여야 돼요. (91-93, 1977.01.30)
④ 말 한마디의 피해
신앙자들은, 진실한 사람들은, 참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말 한마디 잘못하게 되면 안다는 거예요. (45-245, 1971.07.04)
여러분이 말은 순식간에 하지만 그 한마디를 잘못하게 되면 그것이 1년까지 갑니다. 한 순간 잘못 말한 것을 1년 동안 청산시키는 놀음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43-108, 1971.04.25)
여러분들은 심정에 없는 말을 하지 말라구요. 절대로 하지 말라구요. 걸린다구요. 천법에 걸린다는 거예요. (91-95, 1977.01.30)
⑤ 말 듣는 자세
누가 척 말을 했다고 하면 말을 하는 사람과 하나님과 나 사이는 삼각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이 삼각관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위기대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그 사람과의 삼각관계는 3점인데, 그 3점이 목적하는 바를 하나님이 보시고 내가 보고 그 사람이 보았을 때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맞으면 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틀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아무리 정성을 열렬히 들이더라도 뜻에 합당치 않으면 기운이 쏙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기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도록 여러분이 습관을 길러 나가야 됩니다. 첫번 느끼는 인상을 중심삼고 감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말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기뻐하시지 않게 되면 여기에는 반드시 상충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속이 상해서 생각지도 않았는데 벼락같이 욕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단계까지 나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조정을 해 놓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언제나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비판적인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느낌을 주느냐, 즉 말하지 않더라도 척 대했을 때 나에게 어떠한 느낌을 주느냐, 저 사람이 말하는 첫번째 어음(語音)과 더불어 내 마음이 어떻게 동하느냐 하는 것을 검토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그것이 나에게 맞느냐 안 맞느냐, 그 감각 각도를 조정해 가지고 나의 위치가 어떤 위치냐, 하나님께서 추구하시는 선을 그어 거기에 플러스되는 것이냐, 마이너스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플러스되는 것이다 하게 될 때는 거기에 맞게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40-79, 1971.01.24)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을 듣는 자기의 처음 인상, 처음 감정, 그 느끼는 감각이 어떠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언제든지 스스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말을 하게 될 때에는 그 말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 하기 전에 그 말을 들을 때에 먼저 나 자신의 마음과 몸이 어떠한 느낌을 갖느냐 하는 문제를 언제나 스스로 검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어떤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처음 대하게 되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자기에게 마이너스가 될지 플러스가 될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66, 1971.01.24)
여러분은 이제 옛날 아담 해와가 옆에서 들려오는 말을 분별하지 못하여 타락하였음을 깨닫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인격의 완성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아담 해와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에 의해 가지고 천사장의 말을 분별할 수 있었던들 그들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162, 1957.10.20)
3) 대물(對物)관계
① 일상생활에 있어서 대물관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대하고 있는 것이 대개 어떻게 구분이 되느냐? 첫째 물건을 대하는 일, 둘째 사람을 대하는 일, 셋째 말을 대하는 일, 다시 말하면 물건을 대하는 대물관계, 다음에 사람을 대하는 대인관계, 다음에는 대인관계에서의 말을 하는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말은 간접적인 목적, 즉 제3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물건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천법, 혹은 하나님 앞에 걸리지 말라! 사람을 대하는 관계에 있어서도 걸리지 말라!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대하는 대물관계, 사람을 대하는 대인관계, 그리고 말하는 데 있어서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말은 반드시 행동을 촉구합니다. 이것이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관계인 것입니다. (40-278, 1971.02.07)
우리가 대하는 모든 만물은 교재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영적인 세계의 직접적인 감응이 아니면 간접적인 감응을 일으킬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 창조물은 하나님의 성상을 닮아난 것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는 간접적이나마 그 성상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가운데에는 우리가 반드시 관계맺을 수 있는 선의 요소, 내적인 성품이 있기 때문에 그 성품을 따라 움직여서 연결시키기 위한 생활을 넓혀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어떠한 일도 지장이 없고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40-289, 1971.02.07)
② 물건의 참주인
만물도 '나는 아무개네 물건이었는데 그 집의 제 1 조상은 나를 이렇게 이렇게 사랑했고, 제 2 조상은 거기에 플러스해 가지고 나를 더욱 사랑했고, 제 3 조상은 거기에 더 플러스해 가지고 나를 사랑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걸 바라겠어요, 안 바라겠어요? 「바랍니다」 참주인이 되려면 만물을 하나님 대신 관리해 주고, 사랑해 주고, 또 자기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후손을 자기보다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가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참주인입니다.
여러분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내가 가치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은 나의 대상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원칙입니다. 주체 앞에 대상으로 나타났을 때는 주체와 대상은 서로 주고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대상도 주체와 동등의 가치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에게 소속되어 있는 물건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속한 물건을 사랑해야 돼요. 종이 한 장으로부터 살림살이 일체를 자기에게 속한 것은 다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절약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걸 집어들게 되면 그것은 나의 대상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귀한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사람이 사용했던 모든 물건은 그 나라의 귀한 골동품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누더기같이 되었더라도 그 나라의 보물, 보화로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 물건이 그 나라 전체를 대신한 가치적 중심존재의 상대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전국민이 그 물건을 숭배하게 되고 그의 전통적 사상과 일치하는 그 물건이 전국 민의 정서적인 면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합해져서 세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주인은 하나님의 대역자이기 때문에 참된 만물, 참된 물질의 주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46-276, 1971.08.17)
그러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통일교회 소유물의 주인이요 여러분이 통일교회 사람으로서 앞으로 주인의 아들이 될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주인의 계대를 받기 위해서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속해 있는 물건을 선생님이 사랑한 거기에 여러분의 특성적인 개성의 사랑까지 플러스해 가지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46-277, 1971.08.17)
③ 대물관계의 기본자세
그러면, 대물관계에 있어서 어떻게 하늘화시키느냐? 즉, 그 일을 타락한 나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대했다는 입장을 어떻게 세우느냐?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나 자체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대하느냐? 또, 말을 하더라도 나 혼자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늘의 말을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말한 것은 말만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동을 동반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권내에서 관계되어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물건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직장생활이 벌어질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인륜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덕 관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하는 관계에 있어서는 행동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활권내에서 관계맺고 있는 여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대하는 데 있어서 원칙적인 법도에 어긋나지 말라!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도 법도에 어긋나지 말라! 말을 하고 행하는 데 있어서도 법도에 어긋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대하나 사람을 대하나…. 물론 사람을 중심삼고 대물관계가 성립되지만, 이러한 입장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신앙자로서 물건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해야 되느냐? 어디까지나 공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공적으로 대하는데 그 물건이 열만한 가치가 있다면 열만한 가치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천만한 가치로 보느냐, 이 가치를 어떻게 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물건의 가치가 미미하다 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개재해 있다고 생각하면 그 가치를 천만의 비중으로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물건 가운데 하나님이 관계되어 있다고 할 때 이 물건의 가치는 무한한 비중을 갖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물건을 대하게 되면 그 물건이 참 반갑습니다.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나 여러분의 마음의 세계에서 느낌 가운데 그러한 감응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자기 혼자 바라보던 것보다도 더 입체적인 가치의 내용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의 일이나 물건을 대했던 것이 나에게 환경적으로 큰 가치의 결과를 느끼게 해줬다는 그 사실은 뭐냐 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적인 내적 가치를 보다 높은 의미에서 차지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자신이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일을 하고 나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내가 하고 있는 수고보다도 몇백 배, 몇천 배의 가치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하늘적으로 그러한 가치를 느끼면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려운 그 일이 오히려 감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대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저 물건은 나에게 플러스가 아니면 마이너스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나에게 있어서 복이 되든가 아니면 화가 되든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열의 자리에서 내가 저 물건을 대하면 열 하나의 가치가 되느냐 아홉의 가치가 되느냐, 즉 마이너스를 가져오느냐 플러스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여기에서 마이너스되는 자리를 피하고 플러스될 수 있는 입장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찾아 나가게 되면 무슨 일을 대하든 벌써 마음이 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나 물건을 대하게 될 때,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네 마음과 뜻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데 있어서 일체가 되어야만 3점이 되어서 본래의 동기, 즉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일치되는 사위기대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하여 그 물건이 나와 주체와 대상의 결과에 부합되는 가치를 발견 하게 될 때,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결과가 거두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대상의 물건으로서 선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선의 결과를 내 주위에 많이 놔두면 놔둘수록 나 자체에 있어 서는 재창조 과정의 자리가 점점 넓어지는 것이요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면 설수록, 그런 생활을 하면 어떤 물건을 대해도 벌써 그 물건 자체에서 나에게 파장이 옵니다. 원만한 마음으로, 사심을 떠나서 공명할 수 있는 음차와 같은 마음으로 그 물건을 심각하게 대하게 되면, 그것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감정이 우러납니다.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되느냐, 아니면 마이너스가 되느냐…. 이렇게 언제나 타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파장이 오지 않으면, 공적인 입장에서 사심을 떠나 가지고 마음을 둥근 다이얼과 같이 해 가지고 일이면 일, 물건이면 물건을 척 대했을 때 첫인상이나 처음 들어오는 감정을 통해, 이것은 틀림없이 플러스된다 하는 느낌을 가지고 그 일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무의미한 자리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으로 진실된 입장에서 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보면 좋고 나쁜 결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내가 감정한 것이 몇 퍼센트나 적중하느냐 하는 것을 생활 가운데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생활 가운데서 플러스된다고 느꼈던 첫감정이 몇 퍼센트나 적중하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주시해야 됩니다. 그러한 생활태도를 점점 습관화시키면 열 가지 일 가운데서 다섯 가지, 여섯 가지 이렇게 점점 그 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걸 키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도가 높아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나쁘다 하는 것을, 좋지 않다 하는 것을 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게 될 때는 그것은 뜻이 같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을 대할 때에는 무의미하게 대하지 말고, 반드시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대해야 합니다. 사위기대 형태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체휼적인 감정을 어떻게 계발하느냐 하는 문제가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직장생활에서 물건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 회사의 일원으로서 회사의 물건은 공적인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소홀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 마이너스되는 사람입니다. 그 물건은 나라의 물건이요, 하나님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종이 한 장도 그렇게 허술하게 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술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그 대가를 추구하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심정적인 체휼의 도를 넓히기 위한 조건물로서 찾기 위해 노력하고 생활적인 감정을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 하게 되면, 생활권내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하면 대할수록 내가 대하는 그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같이했다는 것을 실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은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손해를 보고, 그 손해가 현재의 입장보다 막중하게 될 때는 거기에서 타격을 받아 가지고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휼신앙의 계발을 위해서는 여러분이 언제나 물건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신앙길 전체가 걸려 넘어갈 수 있는 조건도 거기에서 성립된다는 거예요. (40-278, 1971.02.07)
④ 선생님의 만물 사랑의 경지(境地)
여러분이 물질에 대한 관…. 여기 미국에 와서 보니까 너무 물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요. 그것을 느꼈다구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 면서 대할 줄 알아야 된다구요. 물질은 참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자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말이예요. 여러분이 타고 다니는 차는 여러분의 옷과 마찬가지예요. 옷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몸과 하나된 거라구요. 여기 뉴욕 같은 데 나가 보면 기분 나쁜 것이, 차를 소제하고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거예요. 그저 전부 다 쭈그러진 걸 그냥 몰고 다닌다구요. 이거 안 된다구요. 여자들은 아침에 화장을 하고, 남자들은 면도를 하고 뭐 자기를 가꾸고 뭐 체경을 보고 이래 가지고 싹 빼고 나서서 차를 타는데, 차도 그렇게 만들고 타야지요. 차도 상대적 가치의 기준만큼 만들어 주고 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 패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 만약에 어디 부딪쳐 가지고 쭈그러지면 그것을 붙들고 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 그 말이라구요. 그와 같이 차를 사랑하지 못하고 물건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그저 이혼도 잘하는 것입니다. 아들딸도 사랑하지 않고 이혼도 잘하고…. 그것이 다 직결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사과 하나를 붙들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알아요? 그런 적이 있었다구요. 공산권내의 감옥에 있을 때의 일이예요. 일년에 두 번, 5월 1일과 정월 초하루에 과일을 줍니다. 사과 한 알, 사과를 배급해 주는데 자기가 좋은 것을 고르는 게 아니라 순서대로 나누어 주는 거라구요. 나눠 줄 때는 벌거지가 먹었든 어떻든 그저 배급해 주는 걸 받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 사과를 나눠 주면 보통 사람들은 주자마자 와작와작 그저 일 분도 못 돼서 다 먹어 버린다구요.
그러나 선생님은 '이 빛이 얼마나 고우냐. 이 빛을 먹자!' 이렇게 생각했다구요. '빛을 먹고 그다음에 맛을 먹자' 그런 생각을 했다구요. 그러다 보니 입을 벌리고 먹을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먹지 않고 두고 봐야 눈요기도 되고 냄새도 맡고….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신이 못 되는 것을 느껴 봤다구요.
그렇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다니게 못 돼 있었다구요. 그래서 먹기는 먹는데, 먹을 때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서, 혼자말로 '사과를 먹는데 있어서는 내가 세계에서 첫째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먹는다'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먹은 때가 있었다구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그사과 한 알도 그런데….
여러분 미국 사람들, 차를 사랑해요? 사랑해 봤어요, 사랑하겠어요? 자 그럼 지금부턴 사랑할래요? 그러면 차가 고장이 안 난다구요. 차를 사랑해 가지고 하나되어 가지고 가게 되면 아무리 속력을 내더라도 부딪칠 차가 오다가도 도망간다는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게 믿으라구요. 원리적으로 완전히 하나된 것은 사탄이 침범하게 안 되어 있다구요. 하나님이 그것을 보호해 주고 사탄은 못 오게 되어 있다구요. 원리가 그렇지요?
여러분이 옷을 척 입고 거울에 얼굴을 쓱 한번 들여다보고 이래 가지고 나가는 것처럼 차를 타는 데도 먼저 차를 쓱 돌아다보면서 기름은 있느냐, 물은 있느냐, 그다음에 기어를 넣고 밟아서 소리를 내 보면서 어디에 고장은 나지 않았느냐, 어제와 지금이 다르지는 않느냐 하고 전부다 소리를 들어보고 타야 합니다. 이래 가지고 가는 데는, 어디를 가든지 못해도 100미터쯤 가다가 브레이크를 밟아 보고 고장이 없는지를 확인해 보고 가는 거예요. 자기 몸을 단정히 하는 것과 같이…. 그래 가지고 떠나면 사고 나라고 해도 안 난다구요. 소리도 들어 보고 말이예요. 소리 듣는 게 필요하다구요.
오늘 여기에 여러분들이 장식을 했는데, 이것을 하면서 '아, 잘해야 되겠다' 그랬을 거라구요. 그렇게 할 때는 잘하는 것도 좋지만, 이것을 걷을 때도, '아, 이걸 걷었으면 좋겠다' 이러면서 거둬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는 겁니다. 또 자기가 입던 옷을 갈아 입을 때에는 '아, 미안하다'고 그래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삼고 물질에 대한 그러한 심정적 연관성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체 이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걸 알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물건을 아껴라' 이러지 않아도 아끼게 된다는 거예요. 누가 본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보지 않는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건 그렇게 하게 돼 있다구요. (67-149, 1973.06.01)
4) 일(使命)을 대하는 법
① 일을 대하는 기본자세
하루의 생활을 통해 대하는 일을 무심코 대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것은 전부 다 하늘이 실제 생활을 중심삼아 천국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재료로써 나에게 접근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그것을 좋은 결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자아를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데 노력해야 됩니다.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감, 그 첫번 느낌을 아버지 앞에 언제나 의논하고 공명체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지 하늘을 대할 수 있는 그런 기준만 되면 반드시 영파(靈波)가 온다는 것입니다. (40-293, 1971.02.07)
일을 할 때도 마음과 몸이 중심과 하나되어 일체를 이루어 가지고 붙들지 못하면 이것은 악입니다. 마음과 몸이 진정하게 붙들면 그것이 사위기대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위기대가 목적입니다. 내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그 일과 일체되지 않으면 사위기대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감독이 있다고 해서, 누가 본다고 해서 일을 합니까? 천국과 지옥은 공중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활권내에서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삼대상 목적권을 중심삼고 창조원리 법도에 의해서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40-297, 1971.02.07)
일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바느질을 한다 할 때, 거기에는 자기 남편을 위한 바느질이라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바느질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원치 않는 사람을 위한 바느질도 있을 텐데 한결같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혹은 삯바느질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받기 위해서,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저 아무렇게나 가짓수나 늘려 일하게 되면 반드시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 일도 내일과 같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옷과 같이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 옷을 입는 사람이 옷을 대할 때 '이것은 선한 물건이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체휼신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성을 들였는지 안 들였는지 대번에 감정해 낸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을 그렇게 관찰해야 합니다. (40-282, 1971.02.07)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서도 거기에서 감사하고, 그 일을 하면서 구도의 세계를 발전시키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을 느껴야 돼요. 그런 생활을 폭넓게 하면 할수록 자연히 크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아이구, 나는 싫다' 이건 원수라구요. '난 이거 못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거예요. (73-75, 1974.07.29)
여러분 부처끼리 사랑해요? 축복받은 부처끼리 사랑해요? 그런 사람들이 일을 하러 나가게 되면, 자기 일터는 제 2의 아내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외적인 여편네의 옷과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직장에 나갈 때는 '아유, 직장에 빨리 가고 싶다' 이래야 되는 거예요. 빨리 가 가지고는 '아이고, 일을 끝내고 또 어서 집에 가면 좋겠다'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집에 가면 직장에 가고 싶고, 직장에 가면 또 집에 가고 싶고, 이렇게 왔다갔다해 보라는 거에요. 그런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구요. 틀림없이 흥하게 돼 있다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런 심정을 가지고 수택리 공장을 왔다갔다한 거예요. 하나님이 축복해 주면 그건 흥하게 돼 있다구요.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밤에도 직장에 가 보고 싶고 그래야 됩니다. 또 갔으면 집에 오고 싶고….
여기 있는 패들은 우리 수택리 공장에 가 봤겠지만 선생님은 수택리 공장에 하루에 세 번까지 갈 때가 있었다구요. 그러면 사람들은 '아이구, 선생님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뭐 어저께도 오시고, 조금 전에도 오셨었는데 또 뭘하러 오셨어! '라고 말한다구요. 그런 심정을 쌓아 나가면 그 물질에 해당하는 상대적 물질을 축복해 주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67-151, 1973.06.01)
② 선생님의 일 대하는 자세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지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때요? 일년쯤 가다가 지쳐요? 이태쯤 가다가 지쳐요? 10년 가 가지고 지쳐요? 20년 가 가지고 지쳐요? 몇 년쯤 가다가 지쳐 버릴래요?「결코 지치지 않겠습니다」 결코? 정말이예요?「예」 나는 여러분을 믿을 수 없어요. 조금만 뭐 하게 되면 어떻고 어떻고….
그걸 재미로 알아야 돼요. '나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이게 팔자야, 팔자! 이걸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하고 생각하면 된다구요. 이것이 재미있는 일이라고, 여기서 재미를 발견하고, 여기서 행복을 발견하고, 여기에서 신나는 것을 발견해야 된다 이겁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구요. 여기 여러분을 보면 대체로 30대인데…. 나는 많은 일을 해왔다구요. 그때보다도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할 일이 더 많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예요. 자랑할 일이 있으면 내일의 싸움에 그것을 어떻게 투입하느냐를 생각합니다. 갈 길이 바쁘다구요. 선생님을 보니까 지친 것 같아요? 안 지쳤다구요, 아직까지. 가면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더 힘있고, 더 멋지게 돼 있다구요. 그런 것을 느끼려고 하지, 뭐 지치고 뭣하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생명을, 모가지를 내놓고 한다구요. 그렇게 하다 보면 성공하게 마련입니다. 하다 보면 원치 않아도 성공하게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더더욱 사랑하는 사람은 '저 녀석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빨리 성공시켜 주어야겠다'라고 하나님도 동정한다구요. 만일 그것 못 해주었는데 죽어 영계에 오게 되면, 하나님이 미안할 거 아니예요? 부모가 그렇다구요. 사랑하는 자식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다 못해 주면 부모가 한이 돼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나는 아들인데 말이예요, 죽을 일, 얼토당토 않은 일을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하면 안 될 것인데도 생명을 내놓고 '나는 어머니 아버지, 부모를 위해서 이것 한다' 하며, 자기 죽을 것을 모르고 한다면 부모가 있는 힘을 다해 도와주고 싶지 않겠어요? 마찬가지라구요.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가서 이걸 다 책임해 주게 되어 있다는 거라구요. 그럴 게 아니냐 이거예요. 자기를 위해서 그러면 안 되지만 부모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밤잠을 못 자고 그걸 해주게 돼 있다구요. 하나님을 위한다는, 아버지를 위한다는, 부모를 위한다는 그 조건이 있기 때문에…. 부모는 사랑에 약한 것입니다. 자식을 대하는 사랑은…. 부모는 자식 앞에선 강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돼요.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무얼하기 시작했다 하면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거기에 취하는 거예요. 어떻게 도취해 버리는지 그것만 생각하고, 밤낮 일하고 그런다구요. 그러다 보면 하나님도 …. 만일 선생님이 죽으면 어떡하겠어요? 하나님도 계산이 다 있다구요. 여기에 협조해 주게 돼 있다구요. (66-312, 1973.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