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청년과 때맞이
1) 지금의 때
지금의 때는 6천년 인류역사의 결실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잎사귀는 다 떨어지는 거예요. (82-140, 1976.01.04)
제일 중요한 시기, 우리가 긴박함을 일러 말하자면 '최비상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로도 대치할 수 있다고 본다구요, 이머전시 타임(EMERGENCY TIME:비상 시기). (123-75, 1982.12.12)
자, 지금 때는 어떤 때냐? 마지막 때입니다. 그러니만큼 모든 전부가 혼돈상태에 있어서 자기를 수습할 수 없는 단말마(斷末魔)적인 시대에 임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을 어떻게 다시 구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 사상개념, 자기를 위주로 한 사상을 어떻게 전체를 위주한 개념으로 돌이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사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126-112, 1983.04.12)
보라구요. 지금은 홍해를 건너는 때예요. 그때와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도 그래요. 자기 마음대로 하면 망한다는 거예요. 지금은 요단강을 건너고, 홍해를 건널 때예요. 알겠어요? 홍해를 건널 때에는 전부 다 자기 마음대로 했다가는 망한다는 거예요. (135-202, 1985.11.13)
지금의 때가 그러한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때이니, 모세가 몸단장을 하고, 야곱이 몸단장을 하고, 아브라함이 몸단장을 하고, 예수가 몸단장을 하던 것같이 우리도 몸단장을 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내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나아가 하늘을 위하여 몸단장을 해야 하겠습니다. (11-27, 1960.12.11)
2) 때맞이
① 때가 있다
때는 옵니다. 때를 기다리는 우리도 바쁘지만 때를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은 더욱 바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1-26, 1960.12.11)
사람이란 때가 있는 것입니다. 때를 잘못 놓치면 역사에 한을 남길 수 있는 이런 기원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어요. (78-90, 1975.05.04)
이 땅 위의 어떤 사람이 아무리 갖춘 지식이 많고 수완이 좋고 모든 일을 자기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배후의 조건을 완비하고 있다 할지라도, 때를 못 맞추고 환경을 못 갖추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9-253, 1960.06.05)
그렇기 때문에 흔히 말하기를 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시대를 잘 타고나지 않으면 영웅으로서 성공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때라는 것은 퍽 중요한 거예요. 때를 잘못 맞추게 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58-233, 1972.06.13)
때의 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봄에 씨를 뿌려야 하는데, 가을에 뿌린다면 겨울 동안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18-185, 1967.06.06)
② 때와 소명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어떠한 선택을 받게 되면, 그 선택받은 자리에서 참된 승리자가 되려고 하고 더 빛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욕망입니다. 그렇지만 이 욕망이 우리에게 소망을 자극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노력만 하면 누구나 다 성공할 줄로 알고 있지만, 성공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소명을 받는다는 사실도 어려운 것이지만, 소명을 받아 가지고 감당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오면 이 아침을 다같이 맞이합니다. 낮이 오면 이 낮도 다같이 맞이하고, 밤이면 밤도 다같이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심령을 중심삼고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루를 맞이하는 데 있어서 시간상으로는 아침 나절을 맞는 사람이 심령상으로는 낮을 맞는다거나, 낮을 맞는 사람이 심령상으로는 저녁을 맞는 것같이 엇갈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뜻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이 순탄한 것이 아니라 반대적인 입장에 서서 따라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뜻의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상충 역사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자기가 만일에 가을절기면 가을절기, 겨울절기면 겨울절기와 같은 때에 출발했는데 그 출발한 때가 어느 때인지를 확실하게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입춘이 찾아오게 되는데, 이 입춘이 어느 때에 자기의 생활권내에 찾아오는지 알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그와 같은 때를 맞추지 못하니까 자꾸 엇갈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때를 우리가 어떻게 포착해 가지고 맞추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신앙생활에서 깨닫게 될 때, 여러분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그 때를 어떻게 잘 조절해 가지고 맞추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맞추게 되면 하루가 엇갈리고, 일년이 엇갈리고, 십년, 혹은 수십 년이 엇갈려 가지고 하는 일에 모두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상충적인 결과만 나타나는 생애노정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될 때, 뜻을 따라 가는 우리들이 이런 때를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더욱더 깊은 신앙생활, 다시 말하면 깊은 기도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40-64, 1971.01.24)
③ 역사 속에서의 때맞이
우리들이 '때'라는 것을 두고 볼 때 그 '때'에는 하늘의 운세의 때, 개인의 운세의 때, 나라의 운세의 때 등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라는 것은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에 예고를 하고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언제나 찾아오지만 연이어 나가기 때문에, 즉 어제의 계승이 오늘이고 오늘의 계승이 내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때의 확실한 분기점을 인식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 때가 아침이 될는지 낮이 될는지 저녁이 될는지 혹은 밤이 될는지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시점을 지나가는 그 때에 자기 스스로 상대적 기준과 생활적인 기반을 맞춘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쳐온 역사과정에는 섭리의 때가 많았습니다, 개인을 위한 때, 가정을 위한 때, 민족을 위한 때, 국가를 위한 때 등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 그런 때도 있었지만 수많은 국가의 전후좌우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가 그 배후나 전후관계에 있어서 지나가는 필요 적절한 때에 맞추어 가지고 과연 그 때가 그 민족이 맞이할 수 있는 때요, 그 때의 시점이 오늘 하늘의 운세가 찾아오는 때라는 것을 알고 그 때를 맞이한 적이 있었느냐 할 때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대부분 어느 한때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예언한 그 때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오는 것의 중심은 몇 달 며칠 동안이 아니라 하루의 어느 한 순간 바로 한때의 초점을 중심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분수령과 같은 한 시점을 넘어가는데 거기에 정확히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은 대부분 이루어졌지만, 거기에 대해서 직접적인 시대에 그 때를 알고 거기에 대비하여 상대적인 입장에서 맞이하여 이루어진 사실은 실로 적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때를 지나쳐 버리고 나서야 '아, 그때 봄이 왔었구나. 우리 나라에 좋은 운세가 왔었구나. 어느 누가 예언했던 그 때가 지나갔구나'하면서 지나간 때를 회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했던 그 때를 지나쳐 버리고서 그때를 다시 회상하는 것이 늘 우리 인간이 생활해 온 방식이요, 지금까지 엮어온 인류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 자신들의 일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일생에 있어서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점이 어느 한때를 중심삼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날을 중심삼고 그 때가 반드시 찾아와서 고개를 넘어갈 것입니다. (40-140, 1971.01.31)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예수의 수난길에 동참할 수 있는 단 몇 시간단 몇 초라는 시간은 둘도 없이 귀한 때요,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이 때를 놓침으로써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한이 아니라 만민의 한으로 연결되어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주려고 했던 전체의 복을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구렁텅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때 대표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던 사도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했었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40-152, 1971.01.31)
④ 때를 맞이하는 방법
하루를 보게 되면, 하루는 아침의 때와 점심의 때와 저녁의 때와 밤의 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것같이 보이지만 시시각각 다르게 옮겨져 가는 것입니다. 아침에서부터 낮까지의 그 중간과정에서는 아침 때인지 점심 때인지 모르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또, 점심 때에서 저녁 때로 넘어가는 때에 있어서도 그때가 점심 때인지 저녁 때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중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기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바뀌어지는 때라는 것은 우리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언제 바꿔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춘하추동을 두고 보더라도 봄절기에서 여름절기로 바꿔지는 날들이 똑딱하는 순간을 통해서 그것이 바꿔지는데 '아, 이제는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다' 하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알기 쉬운 문제인데도 누구나 알기 어렵다는 거예요. 또,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바꿔지는 것도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사람의 일생은 소년시대에서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넘어갈 때는, 소년시대가 끝나고 청년시대로 넘어가는데 이것을 누가 기억을 해 가지고 '야, 이제는 소년시대가 끝나고 청년시대로 넘어 간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경주마당에서 스타트 라인에서 가지고 달리는 것같이 그러한 심각한 자리에서 그것을 느껴 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도 그와 같이 넘어가는 때를 맞추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때라는 것을 정확히 맞춰 가지고, '그것이 이 시간이다'라고 하며 '요이 땅' 하는 순간을 가져 가지고, '나는 이때로부터 소년시대에서 새로운 청년시대를 맞는다'고 하며 기쁨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58-234, 1972.06.13)
그런데 하루하루 지내면서 그저 그날도 그날이요, 금년도 작년과 마찬가지요, 섭리의 때가 발전한다고 하지만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 사람은 떨어지는 낙엽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의 인연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을이 되기 전에 떨어지기 쉬운 낙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에 대해서 더 생각해야 합니다. 아침이면 밥을 먹는 때가 있습니다. 밥을 먹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기 시작한 때, 한창 밥을 먹는 때, 밥을 먹는 것이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때를 매일매일 갖춘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때도 우리의 생활과정을 통해서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번번이 놓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무턱대고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어느 때일 것인가를 알고 그 때에 맞춰 목표를 정해 놓고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세계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들여야 됩니다. 지구상에 수십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때 그 순간, 그 초점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집중해서 정성들임으로써 그 정성의 도수가 수십억 인류 앞에 으뜸이 되게될 때, 하나님은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통일교회에 다님으로 해서 통일교회 자체내에서 내적으로 뒤넘이쳐 나가 하나님이 주시하고, 세계가 주시하고, 영계가 총동원하여 주시하는 그때에 진실로 자기 자신이 보조를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정성을 들이고, 또 '하나님이시여, 지금까지 이때를 바라고 나오시던 당신의 그 뜻을 우리 교단과 더불어 오늘 이 땅 위에 이루소서' 하며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의 섭리권내에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정확히 그 때를 중심삼아 가지고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정성을 들인다면, 그 때의 사명을 짊어지고 책임 다하는 그 중심존재와 더불어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1차 2차 3차 회수를 거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때의 혜택을 받으므로 하나님이 그 일대의 기반으로써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복의 줄이라고 할까, 하늘의 운세의 줄이라고 할까 하는 줄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줄을 중심 존재와 내가 서로 잡아 당겨 줄이 늦추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복스러운 자리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과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시간을 그 때에 박자와 도수를 맞추기 위해서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은 통일교회의 운세와 더불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들도 가다가 지쳐서 쓰러질지 모르지만, 그 중에서도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 때에 맞추기 위해 정성을 들인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하루아침에 다 쓰러져 버린다 할지라도 그 사람만은 남아질 것입니다.
섭리의 도상에 있어서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 때를 알고 정성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려면 때를 맞춰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무턱대고 정성을 들여서는 안됩니다. 정성을 들일 때는 그 때가 어느 때인가를 알고 그 때에 맞춰서 온갖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때에 대한 적확도(的確度)를 알아 가지고, 그 때에 맞추어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는 것은 지극히 귀한 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40-150, 1971.01.31)
때를 놓치지 말고, 때를 잃지 말고, 일을 빼앗기지 말라 이거예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이제 선생님이 말한 두 가지밖에 없다구요. 역겨운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그 두 가지만 하면 그걸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구요. 그것만 패스하면 되는 거예요. 그것밖에 없다구요. 내가 알아보니 그것밖에 없더라구요. (94-138, 1977.07.30)
3) 이때의 엄청난 가치
개인적으로 소원성취할 때는 어떤 때냐? 이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의 일가가, 일족이 혹은 국민이 아무리 많더라도 개인적으로 성사할 수 있는 때는 이때가 아니면 역사상에서 다른 때에는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르쳐 준 도리가 사실이라면 요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전무후무한 때입니다.
예를 들면, 태평양 가운데에 던진 모래 한 알을, 한번 곤두박질해 들어가 그것을 손가락으로 집기보다 더 힘든 일이 여러분의 눈앞에 벌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바늘 끝을 서로 맞대는 데 있어서 한 번, 두 번 대 보지 않고 단번에 딱 맞대어 그 끝이 들어맞게 하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 일이 쉬운 일이냐 이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것은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일입니다. 여기서 맺혀진 심정이라는 것은 새로운 이상시대의 역사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화세계의 창조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행복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에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맞아 형제와 더불어 나라를 찾고 세계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최대의 행복점입니다. 알겠어요? 그때가 행복의 극치입니다. 부모를 잃고 친족을 잃고 종족을 잃고서는, 아무리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못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와 더불어,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사랑하는 자식과 더불어, 사랑하는 백성과 더불어, 사랑하는 인류와 더불어, 사랑하는 하늘과 더불어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아니냐. 그렇게 되어야 행복의 극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는 요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고 난 후에는 영영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적인 기원과 더불어 영원세세토록 그 사회의 기원이 될 수 있고, 인류 생활의 모토가 될 수 있고, 생애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원이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길이 빛났던 것은 인류역사에 인격적인 표상으로 등장하는 것이요, 여기의 공신은 인류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공신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건 꿈같은 이야기라구요. 사실이 아닌 꿈같은 얘기 같지요? 수많은 수증기가 합하여 구름이 되어 떠돌아 다니는데 그 구름 가운데 한 수증기와 같은, 한 수소 분자와 같은 분자가 나와 더불어 딱 마주친 거라구요.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조화시켜야 살 수 있는 최고의 희망봉이 여기서부터 결정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라구요. 대학이 문제예요? 세상의 그 무엇도 문제가 아니라구요. 희망봉이 결정될 수 있는 순간이 여기서부터입니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찬란한 문화의 기원이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공신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된다면 청사에 길이길이 빛날 것입니다. (51-252, 1971.11.28)
여러분은 엄청나다면 엄청난 시대에 태어났고, 단 한번밖에 없는 인연 가운데에 부름을 받았고,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단 한번밖에 없는 역사의 흐름길의 쌍곡선이 우리 시대에, 내 일대의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교차되는 그 정상에 불리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의 인류역사상에 있어서 타락의 역사가 제아무리 슬펐고 제아무리 곡절이 많았다 하더라도 오늘날 이 엉클어진 인류 만민을 점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이념 가운데에서 역사적인 부활이 남아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한과 하나님의 서러움이 여기에서 해원성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만국의 만사를 해결지을 수 있는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이러한 시기에 태어난 것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얼굴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신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러분의 선조들이 선의 공적과 터전을 얼마나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은 천추만대에 빛나는 선조들의 공적의 인연을 따라 하늘이 찾아와 도와주는, 역사상에 단 한번밖에 없는, 여러분의 선조들이 받고 싶었던 은사를 전체를 대신해서 대표적으로 받는 자신들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43-329, 1971.05.02)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만난 사람들은 인류역사, 인간세계 역사노정에 처음으로 사랑의 봄빛을 호흡할 수 있는 시대권을 맞았어요. (140-306, 1986.02.14)
인류의 부모가 한번 나타나는 것이 역사의 소원이요, 국가의 소원이요, 사상의 소원이요, 섭리의 소원이기 때문에 그 부모가 나타나는 때는 전무후무한 때요, 역사상에 한번밖에 없는, 뭐라고 할까? 꼭대기라구요. 좁다면 얼마나 좁을까요? 영원한 세계를 두고 보면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숨 한 번 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렇지요?
여러분이 재수가 있어 그런 건지 복이 있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 이 시대에 생을 지녀 가지고 이 한때를 만나 통일교회에 들어 왔어요? 통일교회에 어떻게 들어왔어요. 여러분을 이 자리에 들어오게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선조들이 정성을 들이고 또 들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망하고 선이 밟히는 자리에서 죽어갔지만, 그 천 사람 만 사람의 인연을 거쳐서 돌고 돌아 그 인연이 하늘에 이어져 가지고 해가 떠오르는 높은 산과 같은 입장에 섰기 때문에, 거기에서 햇빛을 바라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여러분인 것입니다.
이때는 인류역사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인연이 나온다면, 그건 처음 나오는 때라구요. 그러므로 생명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때가 있다면 이때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세계의 주권을 보다 가치있는 내용으로 긍정시킬 수 있는 때도 이때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때는 역사의 기원이요, 희망의 초점이요, 만복의 출발이요, 영원한 생명의 발원지라구요. 그럴 수 있는 때입니다. (51-348, 1971.12.05)
4) 현재와 하루
① 현재가 중요하다
오늘 우리들이 서 있는 자리는 한 시대가 아닙니다. 3시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과거시대를 대표한 자리요, 미래를 연결하는 자리입니다. 오늘이라는 이 자리는 과거를 대표하고 현재에는 이 세계가 들어가 있습니다. 현재는 인류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것은 과거의 세계 인류 전체를 대표한 자리요, 이 세계를 대표한 중심점입니다. (68-220, 1973.08.01)
우리가 하루하루 생활하는 데 있어서, 이 순간을 두고 보더라도 그 순간은 현재로서만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현재라고 할 때, 요 현재를 잘라 보면 반드시 과거가 현재의 첨단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 순간, 여기에는 반드시 과거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 이 순간에는 미래,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미래가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정한 현재의 기점이 어디냐? 이때 우리는 한 선으로 표시할 수 있는 것과 선으로 표시할 수 없는 관념적인 경지까지의 현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재, 없다면 없고 있다면 있는 것과 같은 현재의 한 점이, 현재의 한 선이 오늘 우리 일상생활의 방향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은 두렵고도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를 두고 보면 거기에는 어젯날이 있고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한달을 중심삼고 보면 지난달이 있고 내달이 올 것입니다. 일년을 중심삼고 보면 지난해가 있고 내년이 오는 것입니다. 청년시대를 두고 보면 소년시대가 있고 미래의 장년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시대를 중심삼고 보면 과거시대가 있음과 동시에 미래의 시대가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이날, 현재의 위치라는 것은 지나가는 과정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동시에 앞으로 생각지 않은 미래를 맞는 순간점에 있다고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것은 한 점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현재는 과거를 부정하는 현재가 될 수 없고, 미래를 부정하는 현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68-200, 1973.08.01)
② 그날 하루가 중요하다
세계 인류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도 어떤 방향을…. 여러 분들이 하루의 생활을 하는 데는 요런 방향입니다. 요런 방향을 연결해 가지고…. 그렇지 않아요? 1년 생활은 요런 방향으로써….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게 되면 '오늘은 이렇게 가야 되겠다. 방향을 잘 맞추고 금을 그어 놓고 가야 되겠다. 하루의 선을 그어 놓고 가야 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혹은 한 달을 생활하게 될 때 반드시 '요렇게 가야 되겠다'고 하며 금을 그어 놓고 살아야 됩니다. 그 금이 철저하고 틀림없고 완전한 금일수록 그 순간순간을 연결하는 하루 가운데 한 순간순간을 완전하게 그어 나가지 않고는 완전한 하루와 한달을 남길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완전한 한달을 남기지 못하면 거기에서 완전한 일년이 허사가 되는 것이요, 완전한 일년이 허사가 되는 날에는 영원한 이념도 허사로 귀결되고 마는 것입니다. (68-208, 1973.08.01)
그러므로 신앙인은 언제나 그 경지를 바라보고 가야 합니다. 아침에 나설 때, 자기의 마음과 하루의 목표는 어디를 향할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고 나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출발하는 아침보다도 저녁에 돌아올 때, 혹은 하루를 지내고 나서 잠자리에 들게 될 때 '나는 오늘 좋았다. 오늘은 다 행했다. 뜻 앞에 내 면목을 세울 수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이 한달을 대신할 수 있고 이 한해를 대신해서 자랑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치열한 투쟁이 없이는 그런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27-97, 1969.11.30)
과거가 귀중하냐, 오늘이 귀중하더냐, 미래가 귀중할 것이냐? 과거가 귀중한 것이 아니요, 미래가 귀중한 것도 아니요, 오늘이 귀중한 것입니다. (45-22, 1971.06.06)
③ 순간을 지켜라
문제는 오늘입니다. 일순간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니 일순간을 연장 하고 확대하여 하루하루를 자기 쪽으로 바로잡아 둡시다. 그 하루하루를 쌓아서 한 달을 자기 쪽으로 세웁시다. 그 한 달을 쌓으면서 하루하루를 자신이 승리했다는 기준으로 보내야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순간을 지켜라, 지금을 지켜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맞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엉원히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금 승리의 하나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승리는 영원히 먼 것입니다.
지금이 문제입니다. 지금을 무시하는 사람은 영원한 승리의 하나님의 세계를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을 판결하는 지점인 것입니다. 그러한 매일의 순간이 계속되어지고 있는 인생 행로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 절실하게 살게 됩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실로 생명을 건 것이 된다는 겁니다. (65-241, 1972.11.22)
지금 여러분은 젊은 시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지켜진 청춘의 기대 위에 이 청년시대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 이때 만약 승리의 기대를 이루어 놓게 된다면 그것은 몇십 배 효의 길, 충의 길이 될 것입니다. 지금을 지키십시오! 지금이라고 하는 때를 못 지킴으로 말미암아 자기 개개인이 빚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하는 일에 대해서 싫다거나 괴롭다고 생각해서는 하나님께 면목이 안 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불쌍하신 분입니다.
일순간이라도 하나님께 승리의 기대를, 세계복귀의 기초를 세워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우리들의 입장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길을 가게 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동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순간을 지키십시오. 지금을 지키십시오.
특히 한 생애 가운데서 빛나는 역사를 창조할 청년시대에 있어 오늘을 가치있는 하루로 지키십시오. 오늘 하루를 충효로써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생애의 절정을 넘는 것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잘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그러한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 있어서 지금의 시간을 지키십시오. 신을 신는 시간에도, 노는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잠자리에 든 시간에도 그 일순간을 지키십시오.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합니까? 얼마나 귀한 순간입니까? (65-246, 197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