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간의 태어남
1)우리에 대한 기도
이 시간 여기에 모인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 살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는 누구와 더불어 태어났으며, 누구와 더불어 살아가며, 누구와 더불어 죽을 것입니까? 아버지와 더불어 나지 못한 인간들이었으며, 아버지와 더불어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오며, 아버지와 더불어 죽지 못할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희들에게 아버지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사오니, 그 아버지의 은사에 저희는 천만번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이 몸을 생축의 제물로 몽땅 바쳐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옵고, 아버지 앞에 내놓기에 더러운 저희의 모습들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이 몸을 아버지 앞에 바치기에 부끄러워 가리고 덮으며, 이 모습을 어떻게 감출 것인가를 염려하여 마음졸이며 나타나야 할 인간 개체 개체들이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너무나 도도했습니다. 아버지 앞에 너무나 교만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오니, 이 모습을 받아 달라고 직접 통고할 수 있는 담대한 모습을 갖고 나타난 저희들이었사옵니다. (27-208, 1969.12.14)
2)인간은 자의에 의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본래 우리 인간은 자의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 부모면 부모 자신들이 이러이러한 아들딸을 낳겠다는 계획 아래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부모의 요구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섭리를 중심삼고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우리 인간은 그 섭리의 기원과 일치되고, 그 기원을 중심삼고 움직여 나가는 역사와 관계를 맺는 중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하나의 생명체로 이땅 위에 보내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경륜과 관계를 맺고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 인간은 현실에 처해 있는 자체로 머물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20대 청년이면 20대 청년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단정할 수 있고, 이런 섭리를 대신할 수 있는 실체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느껴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에 있는 나 자신,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하나의 개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34-154, 1970.09.06)
인간은 태어날 때 자기가 태어나고 싶다 하는 의식이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의식 이전에 하나님의 힘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도 그 자체의 의식기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를 망각하는 자리, 의식 이전의 작용적인 결과가 다짐되는 거기에서 보람있고 가치있는 내 자체의 형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의식에 앞서 하나님이 여기에 먼저 존재(存在)할 수 있는 동기의 바탕이 인연됨으로써 보다 나을 수 있는 내 자체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36-102, 1970.11.22)
인간 자체가, 자기가 태어난 것이,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기원이 어디냐? 인간 자체를 주장할 수 있는 기원이 민주주의예요? 민주주의는 흘러가는 거예요. 이 대우주 원칙 앞에 인간을 주장할 수 있는 기원은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우리 인간은 태어난 결과적 존재인데, 결과적 존재가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정신 빠진 녀석들입니다. 전부 다 미치광이라구요, 미치광이, (83-187, 1976.02.08)
여러분은 어차피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살다가 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도 선포하고 태어난 것이 아니요, 사는 것도 산다고 선포하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가치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그런 생활을 하다가 저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또 그런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엄숙한 곳에서 내가 왔으니 엄숙한 곳에서 내가 살고 엄숙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인연에서 출발하여 자연적인 인연의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연스럽게 출생하였고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살고 있고 부자연스러운 곳으로 가게 됩니다. 이렇게 살다 가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12-8, 1962.07.01)
3)본래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태어난 인간
태어나기를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었고 천지만물을 왜 지었느냐 하는 문제, 그 결론은 간단합니다.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여러분은 지금 '아무것도 아닌 모양의 나 같은 존재는 있으나 없으나다' 하고 생각하지요? 그러지 말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대상이 되는 데는 부모 앞에 자식이 잘났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야 못났든 잘났든 사랑하는 거라구요. 병신자식을 둔 부모의 가슴이 더 아픈 거와 마찬가지로, 천지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은 여러분이 잘나고 못난 것을 넘어서는 거예요. 본성의 사랑의 그 바탕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왜 지음을 받았고 우주는 왜 창조되었느냐 하는 걸 알아야 돼요. 사랑의 이상을 완성시키기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30-44, 1983.12.11)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이 무엇을 중심삼고 한 말이예요? 아들이란 것은 뭐냐? 아들이 뭐예요? 아들이 뭐예요? 어떤 게 아들이예요?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찾아와야 돼요. 사랑 가운데서 시작되어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닮고 성품 전체를 닮아난 그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놀음을 해야 돼요?
태어나기를 무엇에 의해 태어났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사랑에 뿌리를 두고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치적으로 볼 때, 아무개 아들 하면 그 아무개 아들이 무엇이냐? 그 아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거예요. 그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를 사랑 가운데 태어나게 해주신 분입니다. (144-232, 1986.04.25)
하나님이 왜 천지만물을 지었고, 하나님이 나를 왜 지었어요? 나를 왜지었느냐? 사랑 때문입니다. 나는 왜 태어났느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나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가정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사회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 내 국가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더불어내 세계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97-252, 1978.03.19)
4)타락으로 잘못 태어난 인간
사람은 태어날 때 잘못 태어났습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아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짓기는 했지만 사탄으로 인해 잘못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아무리 잘났다는 사람도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지만, 핏줄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핏줄을 타고 나왔습니다. 오늘날 이런 사실을 일반 종교는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6천년 동안을 섭리해 나오신 것입니다. 선악과(과실과 같은)를 따먹은 것이 죄가 되어 6천년 동안이나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셨겠습니까?
인간은 본래 하나님이 지었고 하나님과 인연맺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탄의 불륜한 사랑으로 인해 잘못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의 사랑으로 낳지 않았다는, 사탄이 침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리의 골자는 부활 (復活) 입니다. 즉, 부활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곧 중생(重生)의 도리입니다. 인간은 잘못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완성된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잘못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제아무리 잘나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잘못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선하고 조금 더 악한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은 근소한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볼 때에는 근소한 차이라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잘못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꿀잡이로 복귀해야 됩니다. 이렇게 거꾸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아담으로부터 4천년 후에, 타락하지 않은 아담을 대신한 입장에서 예수님이 오셨던 것입니다. 즉, 사탄의 참소권을 벗어난 자리,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자리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담가정에서부터 역사해 오셨습니다. (19-189, 1968.01.07)
5)태어난 이유
나라는 것은 부모에게서 무엇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느냐? 생명의 연결 체로서 태어났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는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생명력의 가치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력은 무엇에 의해서? 사랑에 의해서. 그 생명력과 사랑은 무엇 때문에? 우주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렇게 되는 거예요.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났다는 거예요.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로서의 어떤 목적, 대우주목적의 협조체로서의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생명력을 중심삼은 결합에 의해 가지고 태어났다구요. (110-72, 1980.11.09)
왜 태어났어요, 인간은? 내가 무슨 사장이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나 비참한 거예요. '문 아무개는 왜 태어났어?' 할 때에 통일교회 선생이 돼 가지고 큰소리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이거 나는 싫어요. 왜 이렇게 떠들고 야단법석하는 거예요? 세계를 전부 다 누더기판 만들어 놓고 싫다고 하는데 왜들 이렇게 야단하는 거예요? 그렇게 야단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121-101, 1982.10.24)
우리가 태어나길 왜 태어났다구요? 무엇 때문에 태어났다구요? 「사랑」 무슨 사랑이예요, 무슨 사랑?「하나님의 사랑」 음, 하나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구요. 여기서 '쾅!' 하면 하나님의 머리에 '띵!' 통할 수 있는 그 사랑이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무엇을 가지고 못에다 '빵! '던지면 파문이 못가에로 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우주 가운데 사랑을 '팡!' 던지면 온 우주에 파문이 일 것이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이 모래알을 던지느냐, 큰파문을 일으키느냐 하는 게 문제라구요. (103-246, 1979.03.04)
6) 태어난 목적
여러분, 인간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근본적인 것이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서 문제되어 왔습니다. 왜 태어났느냐? 어떤 사람은 자기 나라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자기 부모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83-150, 1976.02.08)
여러분들이 왜 태어났느냐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구요. 나를 위해서 태어났어요?「아니요」 자기가 동기가 돼서 태어났어요?「아니요」 또, 그 목적이 나를 위한 목적이예요? 상대 없이 목적을 달성…. 상대적인 목적이라구요. 나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구요, 서로를 위한 목적이지. 그런데 나를 세우려고 한다구요. 동기와 목적, 주체와 상대적 관계를 일치시키는 데서는 나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지마는 그렇지 않은 데서 나를 세우면 그건 원수입니다. 원수다 이거예요. (66-258, 1973.05.15)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에서는 세계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이 가정과 통하고, 나라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이 가정과 통하고, 사회와 통할 수 있는 사랑이 가정과 통하고, 가정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이 나와 통한다구요. 모든 것이 거꿀잡이예요. 또 하늘도 내가 가는 목적과 통하고, 또 나라도 내가 가는 목적과 통하고, 다 통한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니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돼야 되느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가정에서 합격 자가 되고, 나라에서 합격자가 되고, 세계에서 합격자가 되고, 하늘나라에 가서 합격자가 되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합격자가 되겠다. 그것이 인류가 이 땅 위에 태어난 본분이요 사람이 태어난 목적이다' 이래야 된다구요. 그 이상은 없다구요. 그것밖에 없다구요. 내가 지금 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사는 것이다 이거예요. (95-56, 1977.10.23)
그러면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세계를 위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더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세계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앞에 세계를 봉헌해야 할 제사장으로서 '당신이 찾고 있는 세계를 받으시옵소서'라고 해야 할 사명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명을 짊어지고 멋지게 가야 할 사나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시시하게 돈에 팔려 가서 목을 메는 졸장부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2-264, 1970.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