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학생의 본분
1. 학생의 위치와 책임
학교에 가게 되면 학교에는 교장 선생이 있고, 선생이 있고, 학생이 있어서 주체 대상 환경이 벌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반대하면 추방당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는 학생이 공부보다도 다른 생각을 갖고 간다고 하면 그 사람은 추방되는 것입니다, (118-18, 1982.04.26)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소속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들어가면 부모를 모시는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 혹은 어머니면 어머니, 아버지면 아버지의 위치를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맡겨진 바의 책임을 우리는 다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부모의 아들로서 장래를 바라보며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그에게는 학생으로서의 위치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 위치가 없다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치가 없고, 그러한 관계와 인연 가운데에서 어떠한 책임을 갖지 못한 사람은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 모든 위치가 뚜렷하고 그 위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전후 좌우 상하 관계에 있어서 그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질서 있게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될 때, 이 사람은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위치가 결정되어 있고, 그 환경이 구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관계되고 인연되어진 모든 주위의 환경이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동행하지 못하고 반대될 수 있는 엇갈린 환경이 될 때에는, 그 사람이 가는 길 앞에 어려움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행로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한 사회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41-127, 1971.02.14)
오늘날 젊은 학생들이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갑니다. 그런데 가방을 들고 어떤 목적으로 가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나는 사회로 나간다, 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 나는 국가의 중대한 책임을 지고 나간다, 세계가 있으니 세계를 이끌기 위해 나간다 하고 나가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늘이 있다면 엑스(X)가 가로놓입니다. 세상 만사가 이와 같은 곡절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5-176, 1959.01.18)
한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적관이 확실해야 돼요. 목적관이 확실 해야 됩니다. 가는 도중에 지그재그로 올라갔다내려갔다하게 되면 시간적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때에 대한 소모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공부할 때, 국민학교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가지고 학사, 박사 코스를 쭉 거쳐 나가는데 내가 무엇을 전공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자기가 처해 있는 때, 만약 국민학교면 국민학교 시대에 보다 노력하게 된다면 중학교 시대를 맞을 수 있는 자리에도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석사 코스까지 가기 위해서는 한 18년 내지 19년, 박사 코스까지는 20년 내지 21년을 공부해 나가야 되는데, 그 공부하는 연한은 정해져 있지만 시간적인 면에서 이것을 어떻게 압축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는 여기에 배가의 노력의 투입이 필요한 겁니다.
그 기간을 18년으로 줄이느냐, 10년으로 줄이느냐 하는 것이 누구에게 달려 있느냐? 때에 대한 한계가 그것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때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때에 대한 것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거 그렇지요?
일정한 어떤 목적을 중심삼고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일정한 때가 있는데 그 일정한 때에 자기의 일정한 노력의 양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일정한 시간에 자기의 일정한 노력의 양을 투입한다 해도 거기에 얼마만큼 정성을 들이느냐? 얼마만큼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서 투입되느냐 하는 거기에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정성을 들이고, 모든 정력을 다할 수 있는 그 힘을 어디서, 원동력을 어디서 가져오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타력에 의해 보조를 받느냐, 자력으로 자기가 주체성을 띠느냐 하는 두 가지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길에 있어서 어떤 길이 효과적이냐 이겁니다. 그것은 자체적인 이런 원동력을 가질 수 있어야 상대적으로, 외적으로 누가 협조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바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체적인 원동력을 갖는 데 있어서 그 자체적인 인간으로서 제일 필요한 것이 뭐냐? 그 동기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그것이 무엇이어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거기에는 심정적 문제로부터 부대껴 가지고 자기가 주체성을 지닐 수 있는 길이 장구한 정성을 들일 수 있는 터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추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고차적인 사랑의 심정이, 어디서 그런 폭발적인 원동력을 나에게 제시하겠느냐? 그건 반드시 상대적 관계, 부모와 자식간이라든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라든가, 이런 상대적 관계를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폭발적인 자극을 어디서 받느냐? 사랑에서 받습니다. 사랑인데 사랑도 그 처하는 자리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서로서로가 좋은 환경이냐, 나쁜 환경이냐 하는. 여러분은 어때요? (98-9, 1978.04.02)
여러분들이 유치원에 가고, 국민학교에 가고, 중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가는 것이 무엇 때문에 가는 거예요? 왜 가는 거예요? 「책임 때문입니다」 어차피 그 책임을 져야 할 운명에 있기 때문에, 책임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잘하기 위한 해결방법, 보다 가치있고, 보다 큰 책임을 할 수 있기 위해서 가는 겁니다. 그래요?「예」 (98-234, 1978.08.03)
2. 학생시절은 준비하는 때
학생은 뭐냐? 제반 사회의 핵, 요소를 집결시킨 거예요. 사회의 제반제도를 중심삼고 상대적 기준을 갖춘 거기에서 뿌리 될 수 있는 것을 학교에서 전부 다….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전문분야 하게 되면 경제면 경제분야 등 각 전문분야가 다 있는 거예요. 정치면 정치분야, 다 연결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훈련장소, 그것이 학교예요. 사회의 제반 제도를 핵으로 해 가지고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거예요.
사회와 학교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XY관계예요. 마찬가지예요. 이것도 이렇게 연결되는 거예요. 공부 잘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도 활동을 잘하느냐 하면 그냥 그대로 통하지 않아요. 공부 잘한 것 이상 사회에 나가서 활동해야 되는 거예요. 앉아서 먹겠다면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같이 커 가야 합니다. 공부 잘했으면, 이것이 이만큼 컸으면 말이예요, 그 큰 만큼 상대적인 조건을 세워야 된다구요.
아무리 공부 잘했다 하더라도 앉아 가지고 사회에서 출세할 수 없어요. 공부 잘해 가지고 아무리 취직을 잘했다 하더라도 10년, 20년 그냥 지내게 되면, 그대로면 다른 사람에게 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같이 뻗어 나가야 된다구요. (180-130, 1988.08.22)
여러분들을 보면 다 젊은 사람들이지만, 한 사람이 성공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어느 한때에 결정돼요. 한때가 중요해요. (91-27, 1977.01.02)
학교 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는 전부 다 내 선생님이요, 내 제자요, 전부 다 같지마는 일년 지나고 나면 낙제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때는 선생님이 '너를 늘 사랑했지만 할 수 없다. 너는 떨어져야 되고 이들은 올라가야 되고 나는 이들을 따라가야 한다. 넌 못 따라온다'고 딱 할 때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낙제하고서 선생님이 나쁘고 친구들이 나쁘다고 암만 해봐야 통하지 않는다구요. (123-204, 1983.01.01)
학생은 학생시대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또, 여러분은 개척시대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 모든 일에 전부 다 그것을 다짐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대인관계에서도 무엇을 남길 것이냐? 완전히 그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96-315, 1978.02.13)
3. 참된 학생
① 참된 학생
오늘날 인간들 가운데에 참된 사람이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여러분은 금을 좋아하지요? 여러분은 순금을 원합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섞인 것을 원합니까? 「순금을 원합니다」 다른 것을 합해 놓고 그것이 진짜 순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싫어할 것입니다. 순금은 순도가 99퍼센트가 아닌 백 퍼센트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금과 순금이 합하면 그것은 무슨 금이 되겠어요? 순금끼리 합하면 순금이 되지만 그 순금에 조금이라도 가짜를 합하면 가짜금이 됩니다. 그러므로 순금에는 순금을 얼마든지 가해도 좋지만, 거기에 조금 이라도 가짜를 가하면 본판의 순금까지 여지없이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과연 참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느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기 학생들이 있는데 흔히 '참된 학생이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참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나은 사람을 말할 때 하는 말입니다. 그 동네를 중심삼고 볼 때, 동네 학생들 가운데 조금 나아 보이니까 '참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동네에서 말하는 참되다는 그 말은 절대적인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41-168, 1971.02.15)
어떠한 학교의 학생들이 있다면 그 학생들 가운데서 제일 참된 학생이 누구라고 했을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학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학교를 두고 볼 때 거기에는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학교에서 현재 가장 참되다고 하는 학생이 과거도 대표할 수 있느냐? 현재의 수많은 학교의 학생들 가운데 으뜸 가는 중심이 될 수 있겠느냐?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수많은 학생들 앞에 있어서 중심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자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참된 사람이라고 공인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과연 그 사람이 과거를 대표할 수 있느냐, 현재를 대표할 수 있느냐, 미래를 대표할 수 있느냐 하는 등등의 문제가 연결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40-303, 1971.02.11)
'참된 학생' 할 때에 그 참된 학생은 무엇을 잊어버려야 하나요? 도서관에 열 사람의 친구가 들어가서 공부를 한다고 할 때, 공부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공부하는 사람, 힘든 줄도 모르고 낮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고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공부하는, 그렇게 잊어버리기를 잘해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이 참된 학생입니다.
어디 가서도 참사랑만 하자 이겁니다. 형님한테 매를 맞고 차이고도 잊어버리고 말이예요, 여기 이 구석에서 맞았으면 저 구석에 가 가지고 '아, 형님 어디 가요? ' 하면서, 매맞고 나서 아직 아픈 것도 다 낫지 않았는데 따라 나서는 그런 사람이 참된 동생입니다. (174-281, 1988.03.06)
② 좋은 학생
학교의 학생은 말이예요,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는 학생은 좋은 학생이요, 거기에 위배되는 학생은 나쁜 학생이다, 이게 이론적이예요. 집에서도 그렇습니다, 집에서도 어머니 아버지의 생각대로 따라가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요, 거기에 반대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회사 사장의 생각대로 하는 사원은 좋은 사원이고, 틀리게 하는 사원은 나쁜 사원이다 하면, 틀렸어요, 맞았어요? 「맞았습니다」 통일교회의 무니들 가운데 레버런 문 생각대로 하는 패는 좋은 무니이고, 그 반대 패는 나쁜 무니다, 이거 맞아요?「예」 그럼 여러분은 어느 편이예요? 「좋은 무니요」 뭐가 좋은 무니예요? 레버런 문과 생각이 같고? 「행동이 같은 사람요」 알긴 아누만. 여러분들이 나보다 좋은 생각을 가졌어요?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원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요?「예」 이러한 논법으로 볼 때, 하나님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없다? 어떤 거예요? 「있다」 (104-206, 1979.05.06)
굿 보이(GOOD BOY;좋은 학생)는 뭐냐? 배드 보이(BAD BOY;나쁜 학생)를 소화할 수 있고, 그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표준을 가져야 굿 보이 라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굿 보이는 언제나 배드 보이의 영향을 받지 않고, 배드 보이가 굿 보이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배드 보이도 되고 굿 보이도 되는 건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굿 보이가 아니고 배드 보이가 되는 거예요, 배드 보이. 두 세계를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116-194, 1982.01.01)
여러분 자신들이 생각하기를 여러분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 다시 한번 물어 보자구요. 「좋은 사람이예요」 여러분이 얼마나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하고 사랑해 봤느냐? 그러니 나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 형제를 얼마만큼 진정히 좋아해 봤느냐 이거예요. 그래 봤어요?「예」 그걸 못 해본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예요. 여러분 친구를 얼마나 좋아해 봤느냐? 여러분 선생을 얼마나 좋아해 보았느냐? 이 세계의 성현을 얼마나 좋아해 봤느냐? 제일 좋아해야 할 하나님을 얼마나 좋아해 봤느냐? 이런 문제에 들어가서 내가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묻게 될 때, 여러분은 어때요? 그렇게 묻게 되면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입니다」 지금 좋은 사람이예요?(웃음) 여러분이 언제든지 그걸 생각해야 돼요. (76-269, 1975.03.05)
내가 어제 수택리 들어가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 앞에 신세를 졌다면 그것이 좋은 게 아니니 그 이상 갚아야 된다고 했어요. 부모의 사랑의 씨가 크거들랑 열매 한 알이라도 보탤 수 있는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됩니다. 스승을 존경해야 하고, 사회와 나라 앞에 충성을 해야 됩니다. 부모 앞에 빛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68-167, 1973.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