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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친구관계

1. 본래 친구 중의 친구는 부모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친구 중의 가장 진실한 친구는 누가 되느냐 하면 자기의 부모입니다. 자기 부모가 친구 중의 친구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또 선생 중의 선생의 왕이 자기 부모입니다.
모든 계획의 근본은 부모요, 모든 생활의 근본도 부모요, 모든 사회활동의 중심도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모가 참부모가 아닌 거짓부모가 되었습니다.
(33-333, 1970.08.23)

2. 친구관계는 우정이 필요

친구 간에는 우정이 있습니다. 친구 간에 우정을 빼놓으면 하나되지 않습니다. (41-328, 1971.02.18)

그냥 얼굴만 알고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내는 친구의 집에 가면 자유스럽지 않습니다. 친구 사이에도 반드시 서로의 심정적 유대가 있어서 내가 친구의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고, 또 친구가 내 생활을 마음대로 침범할 수도 있어야 자유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적으로 가까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외적인 문제는 전부 다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제일 문제되는 것이 심정적인 문제입니다.
(33-132, 1970.08.11)

사람들은 눈물이 있는 친구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찔찔 짜는 그런 친구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이 있는 반면 웃음이 충만한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찡그린 얼굴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넘치는 희열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남이 울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복 받는 사람입니다. 복은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은 자리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36-108, 1970.11.22)

3. 친구관계의 형성

‘네 친구는 어떠한 사람이냐?’하고 마음에게 물어보면 이 마음은 ‘쩨쩨한 사람하고는 친구 안 한다’ 고 합니다. (153-25, 1963.10.18)

후퇴는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습니다. 후퇴하는 자는 누구도 친구가 되어 주지 않고 합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전진하는 자리에서만이 합하고자 하고 친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자체 는 정지하고 있느냐, 혹은 전진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후퇴하고 있느냐? 그 무엇보다도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32-19, 1970.06.14)

누구보다 사랑받는 친구가 되려면, 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알고 그것을 붙들고 위로해 주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의 친구가 되고 그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심정이 통하고 사랑으로 인연을 맺는다면 그 사람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나도 그 사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7-304, 1959.10.11)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중심자가 되느냐? 친구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중심자로 세울 뿐만 아니라, 자기들을 지도해 달라면서 자기들의 지도자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49-196, 1971.10.10)

4. 바람직한 친구

좋은 친구는 어떤 친구냐? 자기를 많이 생각해 주는 친구입니다. 생각해 주는 횟수가 많을수록 좋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161-131, 1987.01.18)

제일 좋은 친구는 어떤 사람이냐? 다른 친구들의 사정을 알고 위하는 사람입니다. 친구들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친구는 쫓겨납니다. (177-288, 1988.05.20)

열 명의 친구가 있다고 합시다. 한 사람이 전체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생명을 걸고 살면 다른 친구들은 그 한 사람을 위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 친척이나 아는 사람들에게까지 데려가 소개해 주고 자랑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다른 친구들에게 자기만을 위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한 사람뿐만 아니라 전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없어지니까 망하는 것이요, 반대로 많아지면 흥하는 겁니다. 위하라는 쪽은 악이 가는 길이요, 위하는 쪽은 선이 가는 길입니다.
(54-27, 1972.03.09)

참된 친구는 어떤 친구냐?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 보다 희생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친구들의 이익을 자기의 이익보다 더 존중하면서, 하루 생활로부터 1년 생활을 통해서, 청춘시대로부터 노년시대까지 친구들을 위해 일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친구 중의 참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172-145, 1988.01.10)

참다운 친구는 어떤 사람이냐? 보통 인간들이 바라는 마음과 반대의 입장에서 반겨 주고 대해 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것이라고 하는데, 좋은 것이 있으면 친구를 위하여 “이것은 네 것이다.” 할 수 있는 친구라야 참다운 친구라는 것입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내가 먹겠다.”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인데 “맛있는 것은 네가 먹어라.” 할 수 있는 사람, 세상의 보통 사람 같으면 “슬픈 것은 네 것, 좋은 것은 내 것” 이럴 것인데, “슬픈 것은 내 것, 좋 은 것은 네 것”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친구입니다.
(156-82, 1965.12.08)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어떤 친구냐? 억천만세까지라도 너와 나 사이를 끊을 수 없다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값비싼 어떤 것보다도, 자기 부인보다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친구가 좋은 친구입니다. 하루의 생활 감정에서 빚어진 말 한마디로 끊어 버릴 수 있는 그런 인연의 친구가 아니라 생명 자체를 거두어 가더라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친구라는 것입니다. (42-215, 1971.03.14)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슬플 때 자기의 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고통당할 때 “그 고통을 내가 대신 받겠다. 당신은 그 고통의 자리에 나가지 말라. 내가 대신 나가겠다.”며 생명을 버릴 각오를 하고 나설 수 있는 친구나 사랑하는 아들딸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150-277, 1961.02.15)

5. 친구관계의 유의점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어떤 타입의 사람인가, 그 사람이 내 친구 누구와 같은 타입인가 하는 것을 비교∙연구해야 됩니다. 그래서 서너 타입의 사람을 골라서 테스트를 해보는 겁니다. 온유한 사람이냐 교만한 사람이냐, 강렬한 사람이냐 우물쭈물하는 사람이냐? (54-174, 1972.03.24)

좋은 친구는 뭐냐? 내가 그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할 때 그 친구도 나를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어야 좋은 친구입니다. 그렇지 않고 “아이구, 저 녀석은 곤란해” 하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고비를 넘겨야 됩니다. 개척해야 됩니다. 개척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땀을 흘려야 됩니다. 수고를 해야 됩니다. 개척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비례하는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됩니다. 그러니 땀이 나는 것이고,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33-314, 1970.08.23)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이냐? 자기만을 위주하고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회에서는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요, 가정에서는 나쁜 자식이 되는 것이요, 친구 사이에서는 나쁜 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사람은 자기를 주장하면서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이란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가 백 명, 천 명이 있다고 해도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아무리 친구가 많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 주장만 했다가는 다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떨어지지 말라고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 니다. “이 자식아, 너 이거 해” 이런 꼴을 세 번만 당하게 되면 다 도망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자멸하게 되는 동기입니다.
(36-179, 1970.11.29)

친구를 사귀려 할 때에는 발전할 수 있는 친구냐,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는 친구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소망이 없는 친구는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자기에게 점점 무가치한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나은 친구와 관계를 맺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32-14, 1970.06.14)

신앙생활에서 어떠한 문제를 대하든가 어떠한 사건을 당하게 될 때, 이것이 자기에게 환영하는 입장으로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나타나느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은 언제나 마음의 선 혹은 마음의 기준을 중심 삼고 비교∙검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어떤 친구가 신앙길에서 문제되는 것을 중심 삼고 말하면 그의 말을 처음 듣는 자리에서 그 말에 내 본심이 화동하고, 내 본심이 순탄하게 화합하느냐 하는 것을 언제든지 분석하고 비판해야 됩니다.
(40-66, 1971.01.24)

우리 일생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그렇지만 앞으로 살아 나가는 데서도 말 한마디가 일생을 좌우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기가 말 한마디 안 했으면 불행한 사건을 당하지 않을텐데 한마디를 잘못 함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그렇습니다. 한마디, 한번 잘못 들음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행동에서도 그렇습니다. 한번 잘못 가면 역시 일생을 망치게 된다 이겁니다. 또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도 친구 한 사람을 잘못 사귐으로 말미암아 일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인생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자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조심하고, 듣는 걸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하고, 친구를 조심하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공식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불리하고 자기가 어려울 때에는 남을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공식적입니다. 공통적입니다. 그때 자기의 어려움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친구도 이용할 수 있고, 환경도 이용할 수 있고, 말도 달리할 수 있고, 행동도 달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세상에서 누구를 믿겠느냐?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올바른 길을 가기가 어려운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라고 믿고 있었는데도 나중에는 그가 나를 밟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수 있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누구를 친구로 삼느냐, 누구와 좋은 관계를 갖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91-27, 1977.01.02)

친구를 사귈 때 그저 오늘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친구는 건성 친구입니다. 그 이상 소망이 없는 친구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길을 가고 수난길을 가더라도 오늘 만날 때보다 다음에 만날 때 그 무엇인지 모르게 자극을 받고, 그 무엇인지 모르게 충격을 받고, 그 무엇인지 모르게 좋은 결심을 하게 하는 내용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아무리 어렵고 외로운 자리를 거쳐가더라도 그 친구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2-191, 1971.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