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인간의 위치와 특성
1) 인간의 격위
① 하나님의 형상을 쓴 분성적 실체
우리 통일교회 원리에서는 하나님은 무형의 절대적 주체로,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분성적 실체(分性的 實體)로 아담과 해와를 지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장성하게 되면 사랑을 중심 삼고 횡적으로 연결되고, 그러면 종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아담 해와가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의 남성 성품은 아담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여성 성품은 해와의 마음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갈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이성성상의 주체로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담 해와의 마음속에 임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아담의 자리에 계시고, 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자리에 있어 가지고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아담은 인류 앞에 있어서 누구냐 하면 보이지 않는 내적인 아버지를 모신 실체 아버지의 자리에 서는 것이고,
또 해와는 누구냐 하면 내적인 어머니의 신을 모신 실체의 인류세계의 어머니로 서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종적인 기준에서 횡적 기반으로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138-247, 1986.01.24)
하나님은 왜 아담 해와를 필요로 했느냐? 두 가지의 목적이 있어요. 첫째는 사랑의 이상을 성사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뭐냐? 무형의 하나님이 형상을 쓰고 나타나시기 위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하나님이 유형의 형상을 쓰고 유형세계와 관계맺을 수 있는 그 기초, 그 핵심이 아담 해와라는 거예요.
그래서 만약에 아담 해와가 완성해서 영계에 갔더라면,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몸과 같고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마음과 같은 자리에서 보좌하는 거예요. 하나의 사람, 하나의 결과로 이루어 놓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목적이예요. (92-147, 1977.04.01)
②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사람은 이 우주의 피조만물 가운데에서 걸작품입니다. 얼마나 걸작품이냐 하면 여러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멋진 걸작품입니다. 그러면 그 주체자, 즉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사람을 만들었다면 하나님 자신이 말한 것, 보는 것, 느낀 것을 사람이 모르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53-49, 1972.02.08)
하나님이 피조만물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만들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교인들이 믿듯이 말씀으로 도깨비 방망이같이, 요즘 미국의 아이들이 보는 동화 영화에서처럼 뭐 속닥속닥해서 '되라' 하면 착되는 그러한 사랑의 대상을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구요.
사랑의 대상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전체를 투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뭘하자는 것이냐? 우주에 사랑의 핵을 설정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이었습니다. (166-147, 1987.06.05)
③ 하나님의 아들딸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은 유일무이하신 분이요, 절대적인 분이요, 창조주요, 신성한 자체로서 지고(至高)한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피조 인간, 즉 피조물과 창조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피조물은 속된 것이고 창조주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랑의 개념을 중심 삼고 볼 때, 아무리 지고지선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저속한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내용이 닮아야 됩니다. 심정적 내용이 같아야 됩니다. 즉, 인격을 갖춘 사람과 성품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를 닮았느냐?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통해 닮았느냐? 핏줄을 통해서, 혈통을 통해서 닮았다는 거예요. 그 혈통을 통해서 인연되었다는 것은 사랑으로 인연되었다는 뜻입니다. (138-246, 1986.01.24)
본래 인간의 특권은 무엇이냐면 누구를 막론하고 천상왕국세계에 있어서 황태자로 태어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공주로 태어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그것이 본래 인간의 권위였습니다. (68-319, 1973.08.05)
그러면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인간의 이상이니 희망이니 하는 것이 무엇이냐? 어디에 귀결되느냐? 그것이 무엇이겠어요? 그 첫째가 뭐라구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인간의 최대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다음은 뭐라구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뭐라구요? 하나님의 모든 존재를 내가 상속받는다. 그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의 소망이 무엇이냐?「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딸이 되는 것, 하나님의 모든 존재를 상속받는 아들딸이 되는 것」 그러면 다 되었다구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명이 연결되어야 됩니다. 혈통적 연결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만약에 인간조상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이 태어나기를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났겠어요? 자연히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91-240, 1977.02.23)
④ 만물의 영장
㉠ 만물의 영장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반드시 중심에 서서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세계적인 중심이 되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 중에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또한 절대적인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과 하나되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보다 나은 가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것은 본래 우리 인간이 역사시대의 전체 가치를 대표하는 중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2-211, 1970.07.19)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울 때는 하늘땅의 모든 환경을 대표한 그 가운데의 센터로 세웠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한 부분으로 세웠겠느냐? 이게 문제예요. 「센터요」 그게 사실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우주의 중심이 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자주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건 뭐 원숭이 세계라든가 사자 세계, 호랑이 세계에는 없다구요. 사람 세계에만 있다구요. (117-35, 1982.01.31)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만물의 영장이 누구냐? 오늘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만물의 근본된 영장은 하나님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영(靈)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인간에겐 그 영이 있습니다. 인간은 그 영(靈) 중의 장(長)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직결시켜서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만으로는 될 수 없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란 상대적 결과체입니다. 피조물만 되어 가지고는 원인을 통할 수 없고 원인을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점령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과적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영장 하게 되면 장(長)은 영(靈) 가운데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암암리에 본래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된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32-136, 1970.07.05)
㉡ 동물과 인간이 다른점
동물과 인간이 다른 게 뭐예요? 먹는 것도 마찬가지요, 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옷 입고 이런 것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눈, 코의 생김새, 구조로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사람 가운데 귀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몸뚱이 가지고, 눈 코 가지고 생활하는 것을 중심 삼고 귀하다고 보는 거예요? 무엇을 가지고 귀하다고 보는 거예요. 인간을 보면 인간은 영적인 인간과 육적인 인간으로 되어 있어요. 영육이 합해 가지고 하나의 사람이 되어 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 둘이 컴바인(COMBINEː결합하다), 하나되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육적인 생활, 육을 가지고 사는 생활은 동물적인 생활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먹고 자고, 그다음엔 또 먹이를 위해서 활동하고, 딱 마찬가지예요. 동물과 뭣이 다르냐 이거예요. 동물과 뭣이 다르냐구요.
자, 인간이 동물과 무엇이 다르냐? 그것이 이 우주세계에서 다른 가치를 갖게 하는, 귀한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추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귀하다고 할 때, 그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 아니고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 편이 귀하다 하는 것은 육적 편과 다르다 이거예요. 달라야 된다 이거예요. 영적인 것이 높다면 육적인 것이 낫다 이거예요. 또는, 영적인 것이 낮다면 육적인 것이 높다 이것입니다. 둘이 다른 것이다 이겁니다. (129-307, 1983.12.01)
그러면 사람과 원숭이를 비교해 봅시다. 원숭이와 사람은 근본이 다릅니다. 원숭이는 그저 낑낑대고 먹고 자고 새끼 낳는 것이 제일입니다. 원숭이가 고향의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우나요? 원숭이가 형님을 염려해서, 혹은 부모를 위해서 죽으려고 합니까? 그러면 사람은 어때요? 그런 것을 해요, 안 해요?「합니다」 종자가 다른 거라구요. 그리고 원숭이들이 모여 앉아서 조상이 뭘 어떻게 했고, 신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의논을 할 줄 압니까?「못 합니다」 영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요? 이 우주가 평화의 세계가 되고 하나의 세계가 되고 사랑의 꽃동산이 된다는 것을 꿈이나 꿉니까? 그런 원숭이가 진화되어서 인간이 되었다는 사람들은 개나 돼지와 같은 패들입니다. 사람과는 종자가 달라요.
사람은 자기를 중심 삼는 것이 아니라 남을 중심삼고, 보다 큰 것을 중심 삼고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자기보다 낮은 것을 소망하면서 살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대로부터, 즉 인간이 생겨날 때부터 신을 숭상해 왔습니다. 신을 숭상하지 않은 종족이 없습니다. 신을 생각하고 우리 인간이 보다 나을 수 있는 우주를 생각하면서 나왔다는 겁니다. 원숭이가 그 골통으로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어요? 몇천 몇만 단계가 지나도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숭이에게 그럴 수 있는 내용의 힘이 어떻게 가중해 들어가겠습니까?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39-332, 1971.01.16)
㉢ 인간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상대
그러면 천지만물 가운데 절대자 되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존재물은 어떤 것이냐? 생각해 보세요. 곤충일 것이냐? 아니면 우리집 뒷뜰에서 콜콜 자는 예쁘장한 강아지일 것이냐? 이러한 것들이 절대적인 상대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강아지보다 더 지혜로운 원숭이들이 참소할 것입니다.
그러면 원숭이일 것이냐? 오늘날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요? 앞으로 내가 대학생들을 설득해서 교수들한테 전부 다 '원숭이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인사하라고 시켜 보면 어떨까요? '교수님은 원숭이의 머리하고 원숭이의 뼈다귀를 갖고 계시죠?' 그랬다가는 '예끼놈!' 할 것입니다.
사람이 원숭이와 같은 뼈다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영적 존재가 아닌 원숭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숭이의 손과 발의 모양은 사람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이 사람과 닮았기 때문에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원숭이는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원숭이 띠입니다. 그거 생각하면 내가 원숭이 띠로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내가 원숭이를 싫어한다구요.
인간과 원숭이를 해부학적으로 보면 수십 가지가 틀립니다. 그런데 진화론에서는 이 원숭이가 비약적인 발전, 즉 돌연변이에 의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논법은 그럴 듯하지만 여기에는 전부 다 무신론자들의 마술적인 요인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당을 때려잡기 위해서 통일교회가 승공이념을 들고 나와서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이런 허무맹랑한 말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원숭이를 절대적인 창조주 앞에 절대적인 상대로 세웠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판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상대가 저게 뭐야! 대변도 가리지 못하는구만. 다니는 것이 저게 뭐야. 네 발로 다니는구만' 하면서 참소할 것입니다. 네 발로 다니는 것은 아직까지 미완성한 것입니다.
인간도 아기 때에는 네 발로 다닙니다. 그래서 원숭이는 형(形)으로 보아서도 미완성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네 발로 다니지 않습니다. 사람은 두 발로 다닙니다. 그것은 벌써 원숭이보다는 입체적인 안전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은 하늘과 땅의 연락기관입니다.곡선이 아닌 직선으로 왔다갔다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와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38-159, 1971.01.03)
㉣ 사람이 서서 다니는 이유
모든 만물 가운데, 동물들은 전부 다 네 발로 다니는데, 사람은 왜 서서 다니느냐? 거 왜 그래요? 종적인 대표자이기 때문이예요. 이 모든 피조만물 가운데 사람만이 설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고, 무형세계니 뭣이니 이러한 무한히 높은 수직 세계의 곳과 무한히 낮은 수직 이하의 세계를 생각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서 다니는 동물의 권위를 상실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나무가 서 있기 때문에, 나무의 순이 태양빛을 향하기 때문에 그 나무가 선 가치가 벌어지는 거예요. 사람이 서서 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흠모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래, 여러분들은 낮은 사람이 되려고 해요? 높은 사람 되려고 해요. 높은 사람 되려고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런 욕심 있지요?「예」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96-207, 1978.01.22)
온 피조세계에서 움직이는 것 가운데 서서 다니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거 왜 인간은 서서 다니느냐? 그것은 벌써 모든 표준이 종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피조세계의 모든 것은 횡적 90도를 중심 삼고 얼마의 각도를 가졌느냐 하는 데 따라서 그 가치의 기준이 달라지는 거예요. (136-204, 1985.12.29)
2) 피조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
① 두 세계의 주관자
인간은 두 세계를 주관해야 합니다. 천상 세계의 하나님과 지상에 있는 나, 하나님과 나는 양손으로 톱을 붙들고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하여 박통 같은 세상을 쪼개자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쉽겠어요, 어렵겠어요?
톱날이 다 닳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에는 통일교회 남자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통일교회 여자가 있다고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입장에서 이 세상을 쪼갤 수 있겠어요? (34-344, 1970.09.20)
② 화동의 중심체
인간은 화동의 중심체입니다. 그런데 화동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중심기준이 결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여러 사람이 박자를 맞추려면 지휘자를 중심으로 상하관계가 잘 연결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우주의 화동의 중심체가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원리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이러한 인간은 절대적 기준과 일치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인간이 머무는 곳에 우주가 머무는 것이요, 존재 세계가 그를 중심 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용으로 말미암아 존재 세계에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29-127, 1970.02.26)
자, 이 우주에서 하나님이 웃고 싶어서 땅하고 연락하려면 사람을 통해야 되고, 땅이 웃고 싶어서 하나님께 연락하려면 사람을 통해야 된다 이거예요. 사람을 통해야 된다구요. 왜 우주도 사람이 필요하고 하나님도 사람이 필요한지를 알겠어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사람이 돌아가면 하나님도 돌아가고, 사람이 돌아가면 우주도 돌아간다는 거예요. 사람이 안 돌면 하나님도 안 돌고, 우주도 안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이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96-221, 1978.01.22)
우주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중심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즉 절대적인 실체가 중심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중심의 요소와 일치된 내용을 지닌 존재가 그 중심에 가까이 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내용에 일치되는 요소를 갖추어서, 심정적인 일치냐, 사정적인 일치냐, 소망적인 일치냐 하는 문제를 중심 삼고 거기에 전부 백 퍼센트 일치되면 그 중심에 가까운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24-219, 1969.08.17)
③ 대우주의 축소체
사람은 뭐냐? 대우주의 축소체입니다. 여러분이 소우주입니다, 소우주. 대우주는 뭐냐? 대우주는 피조 세계인 것입니다. 대우주의 원천은 힘의 원천입니다. 작용의, 힘의 원천이 뭐냐? 하나님입니다. 나는 대우주 앞에 선 하나의 소우주로서, 대우주의 끊임없는 힘의 원천이 되는 그 힘이 내 마음에 들어옴으로써 이 대우주와 상응적인 상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뭐냐 하면 우주의 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의 나무로 비유하게 되면, 대우주라는 큰 묘목이 있는데, 그 묘목 가운데 인간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은 하나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수꽃, 암꽃이 있는데 원칙적 조화의 작용이 벌어져 씨앗을 만드는 거와 마찬가지로, 남자 여자가 우주의 꽃으로 피어 가지고 향기를 풍기는 때가 사춘기 시절입니다. (121-190, 1982.10.27)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예요. 사람이란 어떤 존재냐? 사람이라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구요. 우주의 공동적인 인연을 종합해 가지고 결실체로 나타난 것이 인간이 아니예요? 이런 인간에게는 만물의 종합상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요, 우리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수많은 선조들의 모든 소성들이 전부 다 투입된 거라구요.
김 아무개 하면 그 아무개 하나가 아니라고요. 얼굴은 지금 자기 얼굴같이 느끼고 있지만 그 얼굴이 있기까지는 수만년의 역사를 거쳐 왔다구요. 수만년에 걸쳐서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아 가지고 그렇게 생겨난 거라구요. 그것은 기적적인 실체라구요.
그뿐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하늘의 인연이 따라왔기 때문에 그가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인연을 두고 볼 때 무한한 곡절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오늘날의 자기를 이루어 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58-297, 1972.06.25)
3) 인간의 형(型)
① 사람의 구분
육적 인간은 동물적 인간이고, 영적 인간은 정신적 인간입니다.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면 동물적 인간, 정신적 인간이예요. 동물적 인간은 무가치한 것이고 정신적 인간은 유가치한 겁니다. 질(質)로 보면 무엇이 다른 것이냐 이거예요. 동물적 인간은 자기 위주해서 사는 사람이요, 정신적 인간은 전체를 위하는 사람입니다. (129-309, 1983.12.01)
이 땅 위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사는 사람, 마음이 하자는 대로 사는 사람-마음도 변하는 거예요- 그다음엔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몸이 하나돼 있는 그 부분에 몸 마음이 일치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이 이 땅 위에 살고 있습니다. (70-59, 1974.02.08)
신념이 강한 사람, 이지적인 사람, 정적인 사람 등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중심삼고 역사적인 인물이 생깁니다. 이것이 12형으로 갈라지고 다시 이것이 3단계가 되면 36형이 됩니다. 또 이것이 양성(兩性)으로 벌어 지면 72형이 됩니다. (18-94, 1967.05.24)
② 사람의 여러 가지 형(型)
통일교인을 보면, 다 같은 통일교인이지만 천태만상입니다. 백이면 백사람 다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동쪽에 선형, 서쪽에 선 형, 남쪽에 선 형, 북쪽에 선 형 등 그 타입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동쪽 형의 사람, 서쪽 형의 사람, 남쪽 형의 사람, 북쪽 형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혹은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 겨울 절기의 사람이 다 있습니다. 얼음처럼 냉정하게 꽁꽁 얼어붙은 형이 있는가 하면,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형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늠름하고 언제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형은 여름 절기의 형입니다. 후딱 올라갔다가 후딱 내려오는 형은 가을 절기 형입니다. (33-40, 1970.08.02)
여러분 각자는 지금 어느 절기에 해당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자기의 기질을 생각해 보면 자기가 봄 절기에 해당되는지, 여름 절기에 해당되는지, 가을 절기에 해당되는지, 겨울 절기에 해당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참 아름답고 정적인 면에서 아주 포근하여 무엇이든 잘 흡수하는 사람은 봄 절기에 해당합니다. 또 아주 정이 많고 눈물이 많은 사람은 여름 절기에 해당하고, 쌀쌀하고 깨끗이 생기고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은 가을 절기에 해당합니다. 그다음 겨울 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꽝꽝 달라붙어 뗄래야 뗄 수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이 어느 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인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을 절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상대적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즉, 봄 절기의 사람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름 절기의 사람은 겨울 절기의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너무 뜨거워 걱정이 되는 사람은 차가운 사람을 만나서 식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눈을 보면 알 수 있고 또 그 생김새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1-214, 1970.05.31)
기도생활을 하게 되면, 사람을 대할 때 척 보면 벌써 설명하기 전에 그사람이 A, B, C형 중 어느 형인가를 분석한다는 거예요. 그런 무엇이 있어요. 선생님은 그런 것이 빠르다는 거예요. 그런 체휼이 벌어져야…. 영들도 무수해요. 사람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별의별 영이 다 있다구요. 사람 가운데도 별의별 녀석이 다 있지요? 마찬가지로 영들도 그래요.
그러니 영을 감정하기 위해서는 그런 내 스스로의 척도, 마음의 영점을 중심 삼아 가지고 이것이 왼쪽으로 가느냐 바른쪽으로 가느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것을 가릴 수 없다는 거예요. 선한 신이냐 악한 신이냐 하는 것도 그런 느낌을 통해서 대번에 분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체휼적인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76-141, 1975.02.02)
③ 개성진리체로서의 인간의 특성
여러분, 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냄새가 다르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냄새를 맡으면 다르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개들은 전부 벌써 냄새를 맡고 찾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한 2백 명이 모였다고 할 때, 2백 명의 냄새를 전부 맡는다면 전부 다 다르다는 거예요. (98-266, 1978.08.06)
우리 교회에서 말하는 개성진리체라는 말은 특수한 용어입니다. 개성 진리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영어로 인디비쥬얼 트루스 바디(INDIVIDAUL TRUTH BODYː개성진리체)라고 하는 거예요. 이상한 말이지만 할 수 없다 이거예요. (133-14, 1984.07.01)
개개인이 가진 특성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개개인의 됨됨이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41-133, 1971.02.14)
우리 원리 가운데서 인간이라는 것은 개성진리체입니다. 개성진리체.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어머니 아버지와 다르다는 거예요. 만약에 그 본성이 다르지 않으면, 특성을 갖지 않으면 그건 뭐 필요 없을 거라구요.
하나님이 다양한 개성진리체를 이 땅 위에 두고 싶었는데 그러한 분립체로서 태어난 것이 우리 개체 개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우리 개체 개체를 상대함으로 말미암아 큰 하나님의 전체 기쁨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작지만 평등적 자유, 평등적 가치를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이 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얼굴이 똑같으면 얼마나 재미 없겠어요? 거 질색할 거라구요. 얼굴이 길고 넓적하고 코가 다르고 전부다 다양하기 때문에 보면 볼수록 관심을 갖게 되는 거예요. 이것도 재미 있고 이것도 재미있고 전부 재미있는 거라구요.
자, 여러분이 옷을 입는 데도 남자 여자 다 같이 춘하추동 같은 절기에 살지만, 옷 입는 것을 보면 전부 다 달라요. 또 그다음에 걷는 것도 그래요. 걷는 것도 다 다르다구요. 전부가 다 달라요. 이거 손 놀리는 것도 간단한데 전부 다르다구요. 또 웃는 것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모두가 달라요. 그래 가지고 개성진리체의 특성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게 귀한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 얼굴을 가만히 보면 눈하고 코하고 귀하고 입하고 이 네 가지가 있는데 세계 40억 인류를 갖다 맞춰도 하나도 같지 않아요. 이게 신비로운 거예요. 그 자체가 신비로운 것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렇게 볼 때, 개성진리체가 즐거워할 수 있는 천국이라 하면, 천국 가운데는 남자 여자를 중심삼고 개성적인 인간들이 들어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인간들이 조화된 그 자체가 전부 다 이상형으로 나타나는 곳입니다. (129-279, 1983.11.20)
4) 인간의 특성
① 사람은 귀하다
우리가 모든 만물의 세계를 보더라도 반드시 기원이 있습니다. 기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원에 있어서 사람이 중심이었느냐 하는 문제,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광물 세계와 식물 세계와 동물 세계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냐 하는 문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唯人最貴)라고 하였는데, 그런 사람이 가장 귀하다면 그 귀한 것을 누가 귀하다고 했느냐? 만물 중에 오직 사람만이 귀하다는 결정을 누가 했느냐? 그러면 식물계를 두고 볼 때 식물 자체들은 귀하지 않다는 말이냐? 물론 귀하지만 그 가운데 최고의 가치의 내용을 가진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귀하다는 것이 인간의 일평생을 두고 한 말이냐? 그렇지 않으면 내가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혈족을 통해 가지고 이어 나오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인데, 우리 조상 들도 다 그런 것이 아니냐. 또 앞으로 태어날 후손도 그럴 것이 아니냐. 그것을 누가 정했느냐 이겁니다. 누가 정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정한 자체를 진정 믿을 수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귀하다'라고, '저 사람은 귀한 사람이다'라고 할 때, 그걸 누가 결정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 자신이 그렇게 결정했다는 것보다도 동기가 될 수 있고 근원이 될 수 있는 그런 중심자, 어떤 주인이 있어 가지고 그 주인이 결정했다면 그것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결정했다고, 우리들이 결정했다고 생각 한다면 우리들이라는 자체가 오늘의 내 생활을 중심 삼고 가야 할 방향도 모르는 사람이고, 지금 세상에 사는 사람도 그렇잖아요? 단지 동물과 같이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다. 이런 입장의 인간으로서 자기 스스로가 만물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라고 결정했다면 그 자체를 믿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이런 입장에 서있는 자신을 중심 삼고 그 자신이 자기가 귀한 자리에 있다고 하는 결정을 했댔자 그것이 만우주에 공인된 사실로써 보편화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러면 누가 정해야 되느냐? 이 모든 것을 있게 한 어떤 원인적인 존재가…. 광물 세계면 광물 세계를 보면 무한한 원소들이 서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그 광물 세계의 신비스러운 모든 구조와 형태라는 것이 맹목적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어떤 방향성을 중심 삼아 가지고 그 목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이렇게 있게 한 주인이 계시다면, 그 주인으로부터 '너는 내가 지은 만물 가운데서 제일 귀하다'라고 하면 그것은 전체가 공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내 자신이 귀하다고 공인할 수 있는 어떠한 근원적인 존재와 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귀하다고 할 때 현재의 입장을 가지고 귀하다고 하느냐, 내가 태어나 가지고 살아가면서 인생이 목적을 완성시켜 나가는 내용 전체를 중심 삼고 귀하다고 하느냐? 이렇게 볼 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입장, 생활권 자체를 중심 삼고 귀하다고 볼 수 없는 거예요. 인간이 지닌 바의 책임과 목적 완성의 내용을 중심 삼은 여기에 귀한 가치를 부여했다 하는 것을 은연 중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무엇이냐? 내가 무엇이냐 이거예요. 인간들이 귀하기를 바라는 내가 무엇이냐? 그 귀하기를 바라는 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중심 삼고 그것이 어떠한 근원이 되어 가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목적지까지 가는 그 비준을 맞추고 난 후에야 그것이 귀하다고 하는 가치의 결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과정에서 내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 그 자리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 완성해야 된다'라고 하지요? (138-71, 1986.01.19)
사람이 뭐가 귀한 거예요? 서서 다녀서? 곰새끼도 서서 걸을 수 있다구요. 나은 게 뭐예요? 사람이 나은 게 뭐예요? 사람이 나은 것은 하나님과 사랑을 하자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127-23, 1983.05.01)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뭐냐 하면, 인간이 가장 절대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근원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자기 부모를 확실히 알고, 자기 남편을 확실히 알고, 자기 자식을 확실히 알고, 자기 형제를 확실히 알면 돼요. 그 다음에 형제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국가를 확실히 알면 다 끝나는 거예요. 제일이 그거예요.
요즈음에 뭐 전문학과 대학을 나와 가지고 석사, 박사 하는데 석사, 박사가 뭐예요? 어머니 주고 바꿀 수 있고, 아내 주고 바꿀 수 있고, 형제 주고 바꿀 수 있어요? 부모 주고 바꿀 수 있어요? 가장 귀한 것을 갖고 있으면서 귀한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을 뭐라고 하나요? 무식한 사람이요 패망할 사람이라고 합니다. 망할 사람이예요. (147-231, 1986.09.28)
② 인간의 본성
인간의 본성은 무엇을 찾고 있느냐? 귀한 것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귀한 것은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변하는 데서는 귀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변하는 것은 귀한 것과 상관이 없어요. 그러므로 귀한 것은 변하지 않는 곳에 있는 것, 변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우리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변하지 않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소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소성이 바라는 대로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오늘보다도 내일 더 가치있는 것, 더 좋은 것, 모레는 더 좋은 것이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삽니다. '젊었을 때는 고생했지만 중년에 가 가지고는 틀림없이 행복할 거야'라는 희망을 지녀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야 살맛을 억지라도 만들 수 있지, 그거나마 없다면 그것이 뭐예요? 그거 안 되게 돼 있습니다. (141-132, 1986.02.20)
하나님은 작가로, 인간은 작품으로 한번 비유해 봅시다. 자기가 무엇을 정성을 다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한 대로 안 되었을 때는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들고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을 보고 '야, 이녀석아 생각한 대로 안 되고 왜 더 잘되었어?라고 하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게 잘 만들어진 것은 잠을 잘 때도, 혹은 전쟁이 나 가지고 피난을 갈 때도 품에 넣어 가지고 다니고, 어디 가든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53-224, 1972.02.28)
③ 인간의 정신력
사람의 정신력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아이고, 피곤해. 뭐 여덟 시간 안 자면 피곤해…' 하는 그런 생각 누가 집어 넣었어요? 빼 버라는 거예요. 사람이 스물 네 시간 일해도 피곤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밥을 누가 하루 세 끼 먹는다고 정했어요? 그것을 누가 정했어요? 내가 안 정했다는 거라구요. 하루 한 끼 먹어도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 끼씩 먹여 가지고 한 4백 일을 수련시키면, 한 끼 먹고도 넉넉히 보통 사람의 배를 일하고도 끄떡없는 사람, 도리어 더 건강한 사람을 만들 수 있다구요. 그것이 그럴 것 같은가, 안 그럴 것 같은가?
사람이 결심을 해야 강한 행동이 나오는 게 아니예요? 올바른 사상적 골자만 집어 넣으면 몸뚱이는 달려가는 거라구요. (65-302, 1973.03.04)
④ 인간의 추구와 원(願)
지금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보면 그 무엇인가 더 높은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고,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넘고 넘어서 더 큰 범위의 환경 가운데서 가치있는 존재로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38-73, 1986.01.19)
현시점을 중심 삼고 보게 될 때, 인간이나 하나님이 바라고 고대하는 그 자체는 무엇인가?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면, 현실보다 더 낫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까지 보다도 차후에 찾아오는 그 시간이 더 낫기를 바라고, 지금의 입장보다도 앞으로의 입장이 더 낫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앙이라는 문제가 등장되는 겁니다. (27-93, 1969.11.30)
사람이 갓태어났을 때는 젖만 알다가 성장하면서 부모를 알게 되고, 그 다음엔 자기를 알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최고의 기준까지 올라 가려고 합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 이상은 필요 없다'라고 할 것인가? (13-84, 1963.10.21)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더 좋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요, 더 좋은 것을 찾는 것도 결국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기쁨입니다. (13-93, 1963.10.23)
인간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중심, 즉 절대자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절대와 상대라는 명사를 추구해 가는 데 있어서 인간은 상대적 기준을 넘어 절대자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하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상하관계의 자리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29-126, 1970.02.26)
인간들은 어디에 가고 싶어하느냐 하면 좋은 데 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학생들이라면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요? 왜 학교에 가려고 하느냐? 높아지려고 그러는 거예요. 높아져서 뭘하려고 하느냐? 좋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좋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즉, 자꾸 넓어지고 자꾸 높아지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인간세계를 넘어 가지고 저 하늘 꼭대기 하나님 계신 곳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꾸 올라가면 좋지요? 사람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 목적지가 어디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갖고 싶고, 자꾸자꾸 올라가고 싶고, 좋은 것은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계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41-265, 1971.02.17)
인간은 누구나 존경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 중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의 결과가 되고 싶어하고, 혹은 자신이 동기가 되어 상대적 세계에 결과를 나타내고 싶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심적인 입장에서 지도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누구나 다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24-289, 1969.08.31)
⑤ 사람이 좋아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느냐, 보고도 모를 수 있는 것을 좋아하느냐? 사람은 신비로운 것을 좋아해요. 여러분, 그런 거 원치 않아요? 신비로운 것은 드러나지 않아요.
꽁꽁 감추어지고 감추어진 그 맨 본궁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들어앉은 그 방까지도 자물쇠로 찰까닥 채운 그 안에 있는 보물, 그런 것이 있으면 더 신비로운 거예요. 사람은 더 신비로운 것을 원합니다. 외적으로는 더 큰 것을 원하는 반면 내적으로는 더 신비로운 것을 원해요. (138-157, 1986.01.21)
그러면 여기에서 높은 것이 중심이냐, 낮은 것이 중심이냐? 사람은 높은 걸 좋아하지요? 깊은 곳이 있어 가지고 높은 곳이 시작이 됐나요, 높은 곳이 있어 가지고 깊은 곳, 낮은 곳이 시작됐나요? 사람들이 깊은 골짜기를 좋아해요, 높은 산꼭대기를 좋아해요? 어느 것을 더 좋아합니까? 「높은 것이요」
왜 깊은 곳은 싫어해요? 어째서? 높은 곳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다양한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모든 것이 눈에 다 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상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 가면 많던 것이 점점점점 없어진다 이거예요. 여러분, 알겠어요?
상대했던게 점점점 잘려 버려지게 된다 이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높은 곳을 왜 좋아하느냐? 높은 곳에서는 다양한 세계와 나와 관계를 맺어 내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전체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곳에서는 그 반대다 이거예요.
사람은 왜 높은 걸 좋아하느냐? 다양한 것과 인연맺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왜 낮은 걸 싫어하느냐? 단순해진다 이거예요.
다양한 관계에서 멀어진다 이거예요. 사람에 있어서 가장 귀한 사람은 높은 이상, 높은 관, 높은 것과 관계를 맺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하는 개념을 여기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정신적 자세가 높은 자리에 가 있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몸뚱이는 마찬가지지만 정신적 자세가 낮은 사람이 천한 사람입니다. 영적인 기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고 육적인 기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낮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나눌 수 있다구요. (129-308, 1983.12.01)
여러분들 저 나무를 볼 때, '우리는 푸른 게 좋지만 그 나무 자체가 푸른 빛을 매일같이 가지니 얼마나 지루할까!' 그거 생각해 봤어요? 노란 빛을, 빨간 빛을 한번 갖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살아가는 자체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자연을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그러면 푸른 빛은 왜 푸른 빛을 가져야 되느냐? 자, 여러분 이렇게 더울 때 말이예요, 푸른 빛이 아니고 빨간 빛이 돼 보라구요. 얼마나…. 또, 그것이 제멋대로 알록달록하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얼마나 자극을 주고, 얼마나 귀찮겠어요.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풀도 푸르고 다 푸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거 질식할 게 아니냐. 그럼 내가 좋아하는 옐로우(YELLEWː노랑)라고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또 딴 색을 갖다 놔도 그건 얼마 안 가서 싫증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린(GREENː푸른색) 이라는 것은 위로의 색이라는 거예요, 위로의 색. 이건 언제나 푸른 거예요.
그럼 사람은 왜 그린을 좋아하느냐? 이 존재세계는 그린과 더불어 하모나이즈(HARMONIZEː조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흙에는 그린 칼라가 많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흙은 주로 그린 칼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흙으로 지은 내 자신은 그린 칼라를 좋아한다, 그게 이론적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구요. 하나님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공중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전부 다 사람을 중심 삼고 이 그린 칼라와 하모나이즈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119-169, 1982.07.18)
⑥ 사람의 특성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생각해 봐서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안 합니다. 가만히 비교해 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익이 되면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아요? (19-34, 1967.12.24)
여러분,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럼 못 되기를 바라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런 사람은 벼락을 맞을 거예요. 아무리 얌전한 아가씨들에게도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 되는 길을 몰라서 그렇지 잘 되는 길이 있다면 손뿐만 아니라 발까지도 들고 싶을 거예요. 어느 누구도 망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전부 다 잘난 남자 되고 싶지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잘 되고 싶으냐? 내 친구들 사이에서부터 잘 되면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32-257, 1970.07.19)
사람은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은 미래에 대한 꿈을 지녀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꿈이란 높고 또 높고 또 높은 것이고, 좋고 또 좋고 또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꿈이라는 거예요.
꿈을 가졌다고 할 때, 내일에 대해서 혹은 미래에 대해서 나쁘고 또 나쁜 꿈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건 꿈이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할 때 꿈이라는 것은 좋고 또 좋고, 기쁘고 또 기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발전을 말하고 흥하는 것을 말합니다. (171-41, 1987.12.06)
사람을 가만히 보면 참으로 이상한 존재입니다. 한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나빠지고, 한번 좋아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극에서 극으로 연락할 수 있고, 극에서 극으로 뒤넘이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8-316, 1967.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