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인간의 목적과 가치관
1) 인간의 목적
① 본연의 목적
선생님은 온 생애를 바쳐 수도의 길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의 근본과 하나님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놓고 누구보다도 고민한 사람입니다. 피눈물 나는 수도의 과정을 통하여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존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그 살아 계신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체험까지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근본이신 하나님과의 평화를 얻지 아니하고 이 지구상에서 참평화를 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제1 원인이시며 삼라만상의 창조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 목적은 바로 사랑의 구현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근원이시지만, 아무리 전능한 하나님이실지라도 혼자서는 결코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이 필요하며 그 대상으로부터 자발적인 사랑을 돌려받기를 원하십니다. 그 대상으로서 최고의 피조물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성숙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참사랑의 관계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근본원리인 것입니다. (166-131, 1987.06.01)
우리 개인은 물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 중에서 선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의 방향도 선을 지향하여 나왔으며, 교육자들이나 신앙자들도 선의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며 싸워 나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도 선을 위하여 태어나야 되겠고, 사는 것도 선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고, 죽은 것도 선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인생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엮어 온 역사의 목적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4-13, 1969.06.22)
자기들이 잘사는 것도 중요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는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효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충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하늘 부모 앞에 성인 이상의 도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태어난 본래의 목적입니다. 또, 그러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58-227, 1972.06.11)
인생이 참되게 갈 길이 어디냐? 인간이 어디서 태어났느냐? 사랑에서 태어났고, 인생이 어떤 길을 가야 되느냐? 사랑의 길을 가야 되고, 어떻게 죽어야 되느냐?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냐? 대우주가 환영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소우주가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공인하고, 천사세계가 공인하고, 만물이 공인하고, 모든 사람이 공인하고, 우리 부모가 공인할 수 있는 대우주 가운데서 태어나고,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고, 그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이라고 보는 거예요. (83-160, 1976.02.08)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즉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나는 아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12-102, 1962.12.16)
② 인생 최고의 목적
인생의 최고 목적은 무엇이냐?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소원은 무엇이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 : 13)’는 이 말씀은 참으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16-133, 1966.01.02)
인간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되느냐? 개인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가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국가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늘땅을 목적으로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나님과 인간이 합한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목적이 최후에 남을 것인가? 개인을 위주하는 것은 흘러 가는 것이요, 가정을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자기 단체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나라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이요, 세계를 위주하는 것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맨 나중까지 남을 수 있는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신(神)과 인(人) 이 합동해서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그런 목적만이 인간 역사의 최후에까지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41-320, 1971.02.18)
여러분의 마음이 최후에 안착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냐? 하나님을 찾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해도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은 안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의 최후의 종착점은 어디냐?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만사가 허사입니다. 인생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냐? 여기서는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하늘의 중심이 되는 그분과 만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과 같이 사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분과 만나는데 어떤 자리에서 만나느냐, 사는데 어떤 자리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분과는 중심의 자리에서 만나고 중심의 자리에서 살자는 것인데 그 중심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양심이 지향하는 최고의 목표는 천운을 따라가서 하나님과 일치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내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결론은 그것입니다. (24-17, 1969.06.22)
인간이 최후에 도달하고 싶은 것은 뭐냐? 최고 되시는 분의 사랑의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분이 누구냐 하면 우리 아버지인 동시에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65-44, 1972.11.13)
③ 이중목적
우리 인간은 이중구조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 이 두 세계의 매개체로서의 공명체로 생겨난, 그런 입장에 선 자아의 자체입니다. (127-154, 1983.05.07)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몸과 마음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종적으로 되어 있고, 몸은 횡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종횡의 기원을 통하지 않고는 좌정할 수 없고 위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틀렸다, 찌그러졌다, 바르다, 옳다 할 수 있는 기준은 종횡의 기준이 없이는 설정될 수 없습니다. 위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동쪽이라든가 서쪽이라는 위치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172-264, 1988.01.24)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개체목적과 전체목적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타당한 논리적 기반에서 주장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캐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개체목적은 뭐냐 하면 개체완성을 위한 것이요, 전체목적은 뭐냐 하면 전체완성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체목적을 완성하지 않고는 전체목적에 접할 수 없다, 출발할 수 없다 하는 것은 맞는 말이라구요. (108-162, 1980.09.28)
사람은 몸의 목적과 마음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큰 목적이요, 어느 것을 더 빨리 이루어야 하겠습니까? 마음의 목적을 먼저 이루어야 됩니다. 개인의 작은 목적과 큰 목적이 있을 때 작은 것을 버리고 보다 큰 목적을 추구하면, 여기에는 플러스 요인이 발생하여 작은 목적에도 이익이 되고 보다 큰 목적 또한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도 목적세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목적세계에서 목적세계로 바뀌는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파괴적인 투쟁의 역사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론은 언젠가는 뒤집어지게 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가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전체를 위한 목적과 개체를 위한 목적, 즉 이중목적의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19-296, 1968.03.10)
2) 인간의 가치결정
① 몰락된 세상 가치관과 그 대안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최후에 바라는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잘 사는 것입니다. 다 같이 잘 사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이냐? 뿌리도 확실하지 않고 순의 목적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중심 삼은 평화, 자기 중심 삼은 행복, 자기 중심 삼은 만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향락의 구렁에 추락하기 마련이다 이겁니다.
인간은 죽으면 그만이고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들이 세워 놓은 이상적 환경에서 죽기 전에 누구보다도 잘 살아 보고 싶은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세계적인 환경에서 행동을 해보고, 한번 관계를 맺어 보고 싶다 이거예요. 그러다 보니 향락에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윤리, 도덕 같은 모든 것이 다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상실이라는 것도 유만부동이지, 뭐 역사적 전통까지도 거부하고, 가정의 부모와 형제, 부부라는 가정제도까지 전부 다 파탄시켜 놓았습니다. 전부 다 개인적 향락을 위해 모든 상대적 여건을 제거시키고 있어요. (172-15, 1988.01.03)
그래서 가치관의 몰락이라느니, 그다음에 탈이데올로기시대라느니 하면서 지금 야단들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주체적인 사상을 가지고 나와 가지고 세계를 인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요구하는 시대에 놓여 있다구요.
경제적 문제가 문제가 아니요, 정치적 문제가 문제가 아니요, 과학적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참된 하나의 보물적인 인간이 나와 가지고 새로운 혁명을 제시해, 인생의 이상경(理想境)을 그릴 수 있는 참다운 가치의 개인으로부터 가치적 가정을 거쳐 가지고 가치적인 세계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러한 주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생각하는 사람들의 고민입니다. (85-97, 1976.03.02)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는 확실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는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그 가치관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장은 세계로 돌아가자, 이상세계로 돌아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세계도 없는 것이요, 행복의 세계도 없는 것이요, 영원한 세계도 없는 것이요, 사랑의 세계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 모든 행복의 요인,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요건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리워하고, 이것을 찾아 나온 것이 인류 역사상에 나타난 종교라는 기관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타락한 인간은 어떠한 관을 가져야 되느냐? 무한한 가치관을 가져야 됩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투쟁을 하고 있지만 맨 마지막엔 다 지칩니다. 우리 인간끼리 할 수 없다고 지칠 때가 점점 가까워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세계를 요리하게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지치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고맙게도,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제시하고 있느냐? 우리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제시함과 더불어 참부모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절대적인 가치의 그 기준이 어디냐? 어디가 종착점이냐? 참부모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닐 수 있고 영원한 사랑을 지닐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담 해와가 타락하게 될 때, 하나님이 허락한 자리에서 상대이상을 묶은 것이 아니거든요. 자기들 멋대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서 관계를 갖고 출발할 수 있는 것은 부자의 인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깨졌으니, 몰락되었으니 그것을 표준하여 다시 꿰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건 불가피한 것입니다. (68-133, 1973.07.29)
② 인간의 가치결정
심정을 통하게 되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문화의 배경이나 역사적인 환경, 혹은 시대의 위치 여하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떠한 것들로도 인간의 가치를 결정할 수 없는 겁니다. 인간이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하늘의 목적과 땅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을 아는 데에 있어서만이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겁니다. (15-83, 1965.09.29)
가치는 목적관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또 왜 죽느냐? 그것은 어떠한 남편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요, 어떠한 아내의 남편이 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13-269, 1964.04.12)
보다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냐?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이 원칙적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주체적인 자아를 확립해서 그 길을 개척하고 상대적인 권한을 흡수해서 나가는 데서만이 보다 가치있는 길이 성립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걸 추려서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제1이요, 하나님의 뜻은 제2이요, 제3은 나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제4인 상대적 권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 길에서만이 보다 가치있는 길이 생긴다는 관념을 딱 정리 해야 되겠다구요.
이 길을 통하는 데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거 하나돼 가지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것을 언제나 제2목적, 제2출발의 동기로 삼아 가지고 반복하는 데서만이 그 가치는 귀결되는 거예요. (66-267, 1973.05.15)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해서 그것을 중심 삼아야 됩니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이념에 대한 새로운 가치 혹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 가치관이 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출발하게 될 때, 그 가치관은 인간을 중심 삼은 가치관과는 모체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을 중심 삼고 세워져 있는 가치관과 다른 것입니다.
거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현실과 분립된 자리에 있을 것이 아니라 악한 현실권내에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악한 세계의 어떠한 행복보다도 우월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이념을 발견하지 않고는 거기에서 인내와 극복, 곧 참고 견딜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관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선상에서 지금 세계는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존철학도 그런 관점에서 생긴 것입니다. 현실을 극복하려면 현실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 내적인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내적인 가치 관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현대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가치관은 인간으로 말미암아서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했댔자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이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초월적인 가치,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입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막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과거에 이렇게 된 것같이 미래에도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겁니다. 현실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생활 감정을 중심 삼고 환경의 여건을 극복하고 타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춘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44-222, 1971.05.23)
③ 인간의 가치기준
여러분들이 사람을 대해서 '이 사람은 좋아. 저 사람은 나빠' 하고 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좋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해서 평한 말이냐? 어떠한 위치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 한 말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기준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그와 같이 막연한 기준을 갖고 사는 사람들로 꽉차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아침에도 헤헤, 저녁에도 헤헤 하면서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그 좋다는 것이 일관된 목적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면 잠깐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쁨을 그려 간들 그 인생의 끝에 남을 것이 무엇일 것이냐? 허황된 결과밖에 가져올 수 없는 처량한 인생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41-134, 1971.02.14)
우리가 사람의 가치를 논하게 될 때에 그 외적인 모양이 잘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가치를 평하게 될 때에는 무엇을 중심 삼고 평하느냐?
그가 갖고 있는 사상과 양심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사상과 양심기준에 심정문제가 어느 정도까지 개재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을 논하는 것입니다. (6-303, 1959.06.14)
우리 인간의 가치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가치기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가치기준도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51-161, 1971.11.21)
④ 가치의 형성
사람이란 자기 혼자 잘났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세계와 관계를 맺어서 상대적 환경을 갖추어야만 거기서 자기 인격적 가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 그만큼의 가치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27-128, 1969.11.30)
하나님이 아무리 훌륭한 분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혼자서 찾을 수 없어요. 레버런 문이 여기 서 있지만 레버런 문에게도 사랑이 있지요. 사랑이 많이 있어요. 사랑하는 데 있어서 혼자서 아무리 '내 사랑아!' 해 보라구요.
미친 녀석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조그만 뭐라 할까요? 일전짜리를 보고 입을 맞추더라도 그건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치의 무한성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136-111, 1985.12.22)
하나님은 절대적인 창조의 관을 소유한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대상 가치의 존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 위의 피조만물,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치로 보면, 상대적 존재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상대적 가치'란 말이 좀 어려운 말이지만 말이예요. 상대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라는 말을 중심 삼고 그 대상의 가치라는 것은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줘 봐야 하나님 혼자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으로 남아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고 하나님 자신의 힘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입니다. 소모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상의 가치적 존재로 지은 것이 인간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적인 가치의 존재가 인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런 관을 두고 가치적인 존재로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짓는 데 있어서 막연하게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막연하지 않아요. 거기에는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하나님 자신의 신념이 개재돼 있는 것입니다. (68-131, 1973.07.29)
⑤ 인간의 가치는 위대하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크냐? 하나님이 지팡이를 집고 천년 만년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만히 보니까 요것이 우주의 근본이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안팎관계가 됐으니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상하관계와 좌우관계가 되니까 종횡의 사랑의 세계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의 깊은 골짜기의 자리에 하나로써 단단히 묶어 줄 수 있는 자리가 무엇이냐 하면 그 자리는 종횡의 중심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요걸 묶어 놓지 않으면 종횡의 기준이 사랑의 이상형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이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횡적인 것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렇게 안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넣겠다는 것이 불경죄예요, 정당한 거예요?「정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겠으면 얼마만큼 집어넣겠어요? 모셔 놓겠다는 것보다 요즈음처럼 싸우는 세상에 집어넣아야지 모셔 놓게 되어 있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48-219, 1971.09.19)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이냐? 하나님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위대한 무기를 내가 갖고 있다 이거예요. 세상에 말이예요, 인간을 갖다가 저장하는 박물관이 있다면, 그 박물관에 표본을 만드는데 미인 표본이 많겠어요, 박색 표본이 많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어떤 게 더 뮤지엄(MUSEUMː박물관)에 많으냐 이거예요. 좋은 여자가 있다면, 거기에 상대 되는 못난 여자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맞는 거예요. 하나님이 볼 때 그렇다구요. (161-139, 1987.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