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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가정생활

사랑의 법도는 상극(相克)에 침범당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상극을 지배할 수 있다.

가정에 있어서의 일상생활도 정분합(正分合) 현상을 구현한다. 아침에 나누어질 때도 기쁨으로 나누어지고, 저녁때 만날 때도 기쁨으로 만나야 한다. 또 돌아와서는 그날 되어진 일을 아내와 어린 애기들에게 이야기하고, 의논하고, 고치도록 하라.

사랑으로 연결시키고 웃음으로 전체를 연결시켜라. 그리고 부부(夫婦) 사이에 뜻에 대하여 이야기하되 ‘이 이상은 비밀(秘密)로 보장하자!’ 하면 그것은 영원히 비밀로 보장하는 , 그럴 수 있는 부부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세상 부부는 그렇지 못했다.

자식들이 ‘우리 아빠 좋아, 우리 엄마 좋아!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걸 볼 때 참 좋아!’ 하고 자랑할 수 있는 그것이 자식들의 안식의 보금자리가 된다.

아내에 대해 노(怒)했거나 자식에 대해서 채찍을 가했으면 사과하고, 그 몇 배 사랑해 주어야 한다.

축복가정(祝福家庭)이 총합(總合)하여 새로운 역사를 꾸며야 할 때가 왔다. 1960년대는 개인의 십자가를 질 때였지만, 1970년대는 가정적 십자가를 지고 나갈 때이다. 자기 자신을 중심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을 자기 종족을 중심삼고 찾아야 한다. 이제부터 가정을 이끌고 이스라엘 땅을 찾아 승리의 결정권(決定權)을 세워야 한다.

축복가정(祝福家庭)은 하늘을 모시는 생활에서 본이 되어야 한다. 주일(主日)과 초하루가 오는 것을 몸 마음 단장하고 고대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먼저는 부모 앞에 자녀로 서서 효(孝)를 해야 하고, 자라서 부부로서 열(烈)을 느껴야 한다. 이것이 내적인 정적(情的) 무대이고, 외적 기반으로 나타날 때는 충(忠)의 질서로 표현되어야 한다.

자식을 낳아 가지고 정성들이려 하지 말고, 낳기 전부터 정성들여야 한다. 자식의 손을 붙들고 부부가 새벽에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보라.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디 가고 없을 때, 그 애기들이 부모를 그리며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낮이나 밤이나 불쾌한 얼굴로 살지 말고 웃으면서 일어나 일하고, 웃으면서 잠자리에 들자.

부부 사이에 짝이 기울면 심정과 정성으로 보충(補充)해 나가는 성실성을 잊지 말라.

부모의 심정으로 생활하는 자는 거기에 잡초가 나지 않는다.

효자는 부모의 심정을 가진 자이다. 세상적인 지식과 지위가 문제가 아니고, 단 한 가지 하늘의 심정을 소유했느냐가 문제이다.

이제부터 아버지의 직접주관권에 있으니 모든 것을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은 공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고통과 행복을 무시하고라도 공적인 고통과 행복에 동참해야 한다.

제일 무난한 길은 동정받을 수 있는 입장에서 뜻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늘이 부여하는 생활수준 이하의 생활을 해야 한다.

축복받아 낳은 자식들이 고생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식에 박자를 맞추어 늦추지 말고, 하늘과 세계와 나라의 운세에 적응하여 살아가라.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의 축복가정들을 심방해 줄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보여줄 것이 있고 해줄 말이 있어야 한다. 예뱃날에는 자녀들이 부러워서 따라오고 싶도록 부부가 정답게 같이 교회에 나오라.

꽃 같은 이불 위에 만약 남편의 친구가 만취(滿醉)하여 구둣발로 뒹굴면 너는 어떤 얼굴로 그를 대하겠느냐? 너그럽게 생각하고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라. 그 친구는 남편을 그만큼 믿고 있는 것이다.

눈물 없이 사는 가정은 뜻과는 상관이 없다.

보고드려 허락받는 생활이 아니면 명령대로 살아라.

축복가정들은 어떻게 산다는 생활기준을 정하지 말라. 지금 당장이라도 가라 하면 어떤 자리에도 갈 수 있어야 한다. 선생님이 가는 곳마다 관심을 가져라. 세계를 순회하는 선생님을 위해서 정성 못 드린 가정은 걸린다.

정적(情的)인 최고의 제물이 부부(夫婦)이다.

복귀과정의 표어(標語)가 부모와 부부와 자녀이다. 이제부터 부모의 사랑을 세울 때가 왔고, 형제를 사랑해야 할 때가 왔고, 민족을 세워 충신을 찾아 세워야 할 때가 왔다.

선생님은 잠결에도 눈만 뜨면 엎드린다. 부모의 심정을 안 자리에 있는 선생님이 편안히 잠들 수 있겠는가?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마음을 갖고 생활해 나간다면 절대로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다. 참다운 효자란 부모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상속받아 만사(萬事)에 자신을 갖고 임하는 자이다.

효자는 세밀한 면까지 의논하며 생활한다. 효성으로 모든 것을 배워 나가라.

뜻을 위해 죽을 자리에 남편이 나가는 것을 부인이 기뻐하고, 또 그러한 길에 부인이 나서는 것을 남편이 기뻐할 심정적 인연을 하늘과 맺어라.

부모 노릇 하려면 자식들이 생각 못 한 점을 생각해야 한다.

남성은 참아버지의 분신(分身)이요, 여성은 참어머니의 분신이다. 그런고로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면 참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이요, 아내가 남편을 속이면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된다.

선생님이 민족적인 책임을 할 때 여러분은 그 일에 동조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가정을 찾아 세워야 한다. 민족은 있는데 여러분의 가정이 없으면 고아의 슬픔을 맛보아야 된다.

예수님이 하늘을 대하여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 하고, 그리고 인류를 향해서 ‘나는 신랑(新郞)이요, 너희는 신부(新婦)이며 나의 형제(兄弟)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을 세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부모의 심정은 자식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고, 하나님도 인류의 부모이시기에 당신이 지은 인간이 당신보다 낫기를 바라실 것이다.

부부가 일체가 되는 것은 가정이 하나되기 위한 것, 가정이 하나되는 것은 부모와 하나가 되기 위한 것, 부모와 하나가 되는 것은 씨족(氏族)과 하나되기 위한 것, 씨족과 하나가 되는 것은 민족과 국가와 하나되기 위한 것이다.

공적(公的)인 날을 사모(思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전통을 세워 놓아야 후손(後孫)들의 생활적 전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공적인 날에는 하늘이 기뻐하는 가운데 서로 나누어 먹고 즐겁게 놀아야 한다. 이 날은 가정을 위주로 하여 하늘적인 법도(法度)를 세워 나가는 날이다.

민족이 부러워하는 가정, 세계가 부러워하는 종족(宗族)의 가정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참다운 하나님의 가정을 만들기 전에는 참다운 사랑의 세계가 오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 속에 깊이 잠겨 있는 당신의 사랑을 대할 자격이 못 된 것을 통감(痛感)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워서 가는 걸음을 재촉하여야 한다.

하늘을 빼놓고 먼저 날뛰지 말라.

최후의 단위는 가정이다. 가정을 중심한 교회, 가정을 중심삼은 국가가 되어야 한다. 축복가정은 새로 태어난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이다. 가정에서 모든 천적 규범(天的規範)을 세워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

아침에 남편과 다투었을지라도 저녁에 남편이 돌아올 때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미소(微笑)로 대하라. 가정은 하나님이 통과하시려는 관문이요, 예수와 성신이 통과하려는 관문이요, 온 인류가 통과하려는 관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관문은 평화로워야 하고 행복스러워야 한다.

개인, 가정, 종족, 국가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가정적으로 우주 주관(宇宙主管)을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출발하게 되는 것이요, 그때가 바로 ‘가정의 날’이 세워질 때이다.

예수님이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민족을 복귀해야 할 사명은 자녀의 입장에서 하실 일이었다. 우리는 자녀의 입장에서 민족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

우리는 큰집이니, 찾아오는 사람을 먹여야 할 책임이 있다. 옛날에 선생님이 밤잠을 자지 않고 식구를 대하던 일을 축복가정이 대신 책임지고 해야 한다.

원인(原因)이 있어야 결과(結果)가 있다. 우리가 본이 되고 씨가 되어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내적 생활, 외적 생활의 반영체(反映體)이다.

자손 앞에 부끄러운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매주일 하늘 앞에 경배하는 것은 앞으로 가정에서 할 일이다.

아침 경배식(敬拜式)은 하나님 앞에 생활을 보고하는 의식이다.

매 일요일은 자녀들이 가장 그리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 부부가 정한 시간에 같이 기쁜 환경 가운데서 자녀와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모시는 생활, 자녀를 키우는 생활, 뜻을 위하는 생활을 위하여 가정의 삼위기대(三位基臺)끼리 의논해 가며 생활하라.

자녀를 사랑할 때는 개인적으로 사랑하지 말라. 하늘 부모 앞에 효도(孝道)하고 이념(理念) 앞에 충성할 수 있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자녀들은 틀림없이 충신, 열녀, 효자, 효녀가 된다는 확고한 기틀을 세워 놓아야 천국생활을 할 수 있는 입장에 들어갈 수 있다.

선생님은 가정복귀(家庭復歸)를 위하여 어떻게 하였는가? 아담가정, 노아가정, 아브라함가정, 예수가정의 기준(基準)을 세워 놓고 그 기준을 통과한 자를 양자로 삼았다. 40년 제한(制限)된 기간 내에 이 모든 것을 이루어야 하니 얼마나 바쁘고 안타까웠겠는가? 이를 위하여 최고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모든 것을 수습하여 나왔다. 이렇게 이루어진 통일교회요, 이렇게 이루어진 가정이다.

네 몸은 이미 아버지의 것이니(고전 3:16) 선한 자리가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고, 선한 일이 아니면 하여서는 안 된다.

나를 세우신 하늘이 섭섭하여 눈물짓지 않기를 기도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하여 통일교회에 온 것이다.

효자 효녀의 도리를 다하는 자녀를 가지면, 사탄이 굴복하는 것이 원칙이다(효자 효녀의 도리를 다하는 아담 해와와 하나님이 하나된 자리는 사탄, 천사장이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될 자리니까).

축복받은 식구로서 자각할 때가 왔다. 이제는 사랑으로 대할 때가 아니고 법으로 대할 때가 온다.

여자는 정서생활에 빚지지 말라. 남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자가 남자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은 뜻적으로 철저하고 앞서는 길밖에 없다.

정서생활에 등한하지 말라. 남편의 표정, 의복, 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단장하고 웃는 얼굴을 가져라.

천정(天情)이 머물 수 있는 최고의 종점(終點)과 시점(始點)은 가정이다.

가정의 부모보다 국가적 부모, 그보다 세계적 부모, 그보다 천지 부모(天地父母)를 위하는 것이 더 큰 효도(孝道)이다.

세상에서 어렵게 살아도 하늘 땅의 이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가장 복된 사람이다. 세상 것은 변하지만 하늘 땅은 변치 않으니 하늘 땅의 이념을 갖고 사는 것이 가장 복이다.

여러분은 뜻 앞에 어떤 자녀를 양육(養育)해 가지고 어떻게 봉사(奉仕)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양심의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이 최고의 악이요, 자기 자신, 가정, 민족, 국가, 세계, 하나님까지 망하게 하는 것이다.

가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개체의 권위를 세우고, 개체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뜻에 대한 권위의식을 높여야 한다.

사탄에게 내주어도 사탄이 손댈 수 없다고, 당신이 말하던 효자가 틀림없다고 사탄이 하나님에게 말할 수 있어야 참효자이다.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가인 아벨 복귀의 실천생활을 해야 한다.

자식들이 ‘이 면(面)을 중심삼고는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다,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다’ 할 수 있는 것을 가져야 된다.

부부는 늙어도 옛날의 인연을 기준으로 일생 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부부 사이에서 자식이 생기는 것도 심정적인 일치점에서 생리적 일치점을 겸한 자리에서 태어나면 최고이다.

가정을 가지고는 전보다 세 배 이상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자식은 말없이 부모를 지도하는 스승이다.

자식은 부모의 심정을 더듬어 자기 중심에서 일하는 자이다.

부모가 아들 딸을 놓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면, 이것은 최고의 가르침이다.

종교의 최고 목적은 참된 가정 건설이다.

가정은 3대가 전통을 세워야 한다.

가정은 천국의 모체이며, 이상은 사랑에 있다.

아내는 남편을 자기 아버지 이상 사랑해야 한다.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를 사랑하는 것보다 못하면 안 된다. 어떤 효자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라. 아들이 엄마를 좋아하는 것 이상 그 아내를 사랑하라. 또, 자녀들이 아빠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자기의 남편을 사랑하라. 그것이 이상적인 가정이다.

가정 식구 삼위기대는 한 달 중 3주일을 넘기지 말고 연락하라. 세 가정을 중심삼고 생활해야 한다.

복귀된 가정의 중심은 하나님이다. 통일 식구의 소원은 복귀의 가정이다.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가정을 찾기 위해 섭리해 나왔다. 이 가정과 어떻게 관계 맺겠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이다.

본래 아담가정은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정으로 지은 것이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도록 지은 것이 아니다. 습관적인, 세속적인 가정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이렇지만, 훗날에는 잘될 것이다’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완전한 가정이라야 한다.

남자는 주체이다. 주체는 중심에 서야 한다.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중앙에 서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대신 위치이다. 가정이 불화하면 남자가 책임져야 한다.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 역사에 전통을 남겨야 된다면 천주 앞에 일치할 수 있는 가정의 기준과 전통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충신은 백성을 울릴 수 있어야 충신이다. 선왕은 만백성이 고맙게 여겨야 선왕이다. 하늘의 소원, 선조의 소원, 자신들의 소원에 합당한 가정이 돼야 한다.

축복가정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의 표적이다. 그러나 축복을 받아 놓고서 그 부과된 책임을 못 하면 낙방이다.

자기 부부는 가더라도 천도(天道)는 남기고 가야 한다.

영통인들이 가정을 공격하는 것은 분한 일이다. 여러분이 기반을 닦아야 선생님이 영계에 가서 가정 편성을 할 수 있다. 영계를 지상에 동원할 수 있는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다.

삼위기대는 생활도 같이 하고 생활감정도 같아야 한다.

삼위기대의 원칙은 한 가정이 다른 두 가정도 책임지고 두 가정은 나가서 일해야 한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최후의 기점은 가정이다. 원수 중 최고의 원수는 사랑의 원수다.

하나님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자리는 맏아들의 자리이다.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가정’을 중심삼고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평상시의 개인, 가정의 생활과정이 최후 승리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기쁨과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되는 자리밖에 없다. 즉, 아버지의 기쁨은 아들에게로부터 있고 아들의 기쁨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집은 모든 인연의 시작과 끝을 종결지을 수 있는 곳이다.

부모의 사정과 자기의 사정이 겹쳤을 때 부모의 사정이 먼저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효자이다.

개인은 객차와 같고 가정은 기관차와 같다. 개인으로 실수할 때 복귀하는 건 간단하다. 가정으로 실수하면 파탄이다.

우리는 가정의 출발이다. 숨구멍 같은 것이 가정이다.

효자는 웃더라도 부모의 얼굴을 보아 가면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