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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의 참뜻

여러분은 아들딸을 어떻게 길러야 되느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짓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딸을 곱고 훌륭하게 하나님과 같이 길러야 됩니다. 이것이 교육의 표준입니다.
그럼 하나님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같이 얼굴이 크고 생명력이 있는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그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할 줄 알면 됩니다. 하나님을 닮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닮으려면 하나님과 같이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뭐냐? 그것을 분석하면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이에요.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 세 가지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요, 부부끼리 하나되는 것이요,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3단계, 이 3대가 하나돼야 합니다.
(76-283, 1975.03.07)

학교에 가서 공부하더라도 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자연의 묘미를 내가 깊이 알아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을 앎으로써 더 깊은 사랑을 하고, 더 높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내게 엄격한 교육을 하더라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늘의 사랑과 자연의 사랑을 흡수하게 하고, 나를 중심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사랑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것도, 그 모진 바람이 불고 해도 사랑을 펴기 위해서, 사랑의 진가를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06-139, 1979.12.24)

실력은 잠깐 동안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부대껴 봄으로 말미암아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목적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실천한 모든 경험을 그냥 그대로 인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그냥 그대로 인수하기 위한 것이 학교 교육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좋은 실적을 인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전부 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결국 알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72-298, 1974.07.14)

어느 누구나 배움의 길, 혹은 교육의 길을 따라가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냐? 보다 선한 세계로 전진하기 위해서입니다.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지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다 높은 차원의 전진을 다짐하는 것은 보다 가치적인 중심과 일치하기 위한 것입니다. 간접적이나마 그러한 목적 추구의 길을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09-264, 1980.11.02)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사인하여 추천하는 것이 아니고는 나라와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부모가 “우리 아들딸 좋소!” 하고 추천하더라도 안 통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사회의 사랑의 공약의 법도를 통하지 않고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에 나가는 데 있어 첫 관문이 학교라는 것입니다.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사랑받는 것이 이 나라와 이 세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130-210, 1984.01.22)

인간을 구원하는 데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인간 조상이 무지한 가운데서 타락했습니다. 원리결과주관권에서 직접주관권까지 가야 할 단계에 있던 아담 해와는 무지했습니다. 소년시대에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자라 나가는 가운데서 하나님 섭리의 전반적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이 뭐냐? 아는 자리에서 타락하지 않았어요.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했습니다. 우리 조상이 가야 할 본연의 길을 알지 못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한 이후의 인간들은 우리 조상이 알지 못하였던 그 기준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무지한 인간을 교육해 나가야 합니다. (136-198, 1985.12.29)

교육 강화는 언제든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까지 반대를 받으면서도, 아무리 무슨 어려움이 있더라도 교육을 했습니다. 돈이 있다 하면 그것을 딴 데 쓰려고 하지 않고 교육하는 데 쓰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승공연합 활동을 중심삼아서 대중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사상을 투입시켜서 교육하는 거지요. 강화하는 것입니다. 강화하는 것은 현재보다도 한 차원 높은 데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거쳐가는 데는 반드시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됩니다. 내가 왔다 갔던, 내가 어디 어디 거쳐가는 데는 지금 현재보다 일보라도 전진은 있을 수 있지만 후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후퇴했다 하면 교육 강화라는 그런 논리가 성립 안 됩니다.
일상 사회생활에서나 대인관계의 활동에서나 혹은 교섭하는 모든 분야에서 그 사람들을 격려해 주고 그 사람들에게 힘을 가해 주어 매일 매일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영향을 주어서 좋은 결의와 더불어 내일의 희망의 결과를 좋게 할 수 있는 그런 동기를 제시하는 거기에서 교육이 강화됩니다.
책을 가지고 단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라 말 한마디 하는 것, 행동 하나가 다 교육입니다. 여자들 옷차림도 다 그렇습니다. 통일교회는 여자가 옷 입는 것도 교육입니다. 그건 잘 입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잘 입지 않았지만 옷차림을 보게 되면 자기들의 몸과 마음에 반영이 되어서, 몸뚱이는 반드시 마음의 반영체이니만큼 옷차림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에서 우리 일상생활의 전부가 교육하는 생활권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그 생활권 자체가 모든 사람 앞에 자극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교육 강화의 실효성을 우리 생활을 통해서 연결시켜 나가면 거기서부터 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져 갑니다. 세계의 새로운 희망이 그 자리에서부터 벌어집니다.
(144-178, 1986.04.24)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앞으로는 돈도 문제가 아니고 권력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문제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교육하느냐, 사람을 누가 잘 기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에 따라 그 국가를 살릴 수 있는 단체가 될 수 있고, 국민이 될 수 있습니다. (147-13, 1986.08.20)

원래 교육은 어려운 과학이나 전부를 가르쳐 주는 게 아닙니다. 그것도 가르쳐 주어야지요.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람을 만들어 줘야 됩니다. “네 어미 아비가 이랬으니 너도 어미 아비 따라 이렇게 해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어미 아비가 자식 대해서 가르치는데 “가서 도둑질해 오너라” 하는 게 아닙니다. “네가 남을 위해서, 하늘땅을 위해서, 수많은 인류를 위해서 이렇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천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151-272, 1963.01.06)

학교는 유아시대에서부터 자라는 동안, 성년이 되어서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교육을 하는 거예요. 대학은 학사·석사·박사 코스,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교육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사회에 나간 사람들을 교육하는 건 언론기관입니다. 이게 파탄시키고 있습니다. 언론기관이 세상에서 지금 자기들을 중심삼아 돈 벌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사회적인 도의의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섰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270-288, 199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