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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가 갖추어야 할 기반

1) 먼저 세워야 할 신앙적 기반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탄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선 것과 마찬가지로 사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개인 레벨에서, 가정 레벨에서, 국가 레벨에서, 세계 레벨에서 이것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엄청난 구렁텅이가 여러분을 전부 다 싸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것을 대표적으로 탕감해 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알겠어요? 「예」 (136-172, 1985.12.22)

자, 통일교회는 영적 자녀라는 말을 하고 있지요. 영적 자녀라는 말을? 그런 말은 사전에 없다구요. 아마 영어 사전에도 없을 거라구요. 그 영적 자녀라는 말이 무슨 말이야 이거예요. 우리 사람들, 현재의 타락한 세계의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는 조상이 둘이 된다구요. 타락한 세계에서 찾아 준 조상, 그다음에는 자기의 직계 조상, 이렇게 두 조상이 됩니다.
지금까지 조상은 타락한 조상밖에 없었어요. 영적이 아니예요. 지금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타락했다는 거예요. 조상이라도 그건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조상이 못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기독교를 보게 되면 영적 구원을 말하는 거예요. 기독교시대는 영적 구원시대고 재림시대는 육적 구원시대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조상인데, 영적 조상과 실체 조상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적 자녀라는 것은 세상 사람 가운데서 찾는 게 아니예요. 내가 직접 낳은 자손이예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육적 자녀를 가져야 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125-109, 1983.03.14)

자, 그러면 믿음의 아들딸이 뭔지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는 세 가지가 있다구요. 첫째는 천사장 복귀의 필요성이요, 둘째는 사탄세계 전체 복귀요, 셋째는 내가 축복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예요. 그러니 믿음의 아들딸은 믿음의 부모가 직계 아들딸을 낳아 접붙여야 돼요. 누구에게 접붙여야 되느냐 하면 자기 믿음의 부모가 낳은 직계 아들딸과 더불어 접붙여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어디, 믿음의 어머니에 접붙여야 돼요, 믿음의 아버지에 접붙여야 돼요? 아들이니 아들끼리 접붙여야 돼요. (127-61, 1983.05.03)

여러분의 믿음의 아들딸들끼리도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여러분의 아들딸들을…. 시집 장가가면 복중에서 아기가 태어나거든요. 믿음의 세아들딸이 여러분들의 애기들에게 복중시절부터 순종 굴복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가인 아벨 복귀는 낳아 가지고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에 있어서는 복중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가인은 누구냐? 천사장이거든요. 아벨은 누구냐? 아담이거든요. 천사장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아담을 창조할 때부터 섬겨 나가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아기들이 복중에서 태어날 적부터, 아담을 창조할 적부터 천사장이 협조해 가지고 굴복해 나왔는데 낳아 가지고, 아담을 다 지어 가지고 꺼꾸로 쥐어박은 거거든요.
그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세 아들딸이 아기를 복중에서부터 모셔 가지고 완전히 종의 자리에, 종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영계에 있는 세 천사장이 아담 앞에 굴복하지 않으므로 완전히 복귀할 수 없다 이거예요. 원리가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이 이것을 결정하지 않고는 여러분들이 절대 사탄의 참소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느때에 그렇게 했느냐? 우리 예진 애기하고 효진 아기가 태어나던 기간이 3년간입니다. 3년간이거든요? 3년간에 여러분들은 전부 다 지방에 나가 싸웠어요. 싸우지만 여러분들이 내적인 면에서는 그 일을 한 것입니다. 내적인 면에서는 그것을 탕감복귀했다구요. 아기들이 복중에 있을 때에 그 아기가 먹고 싶은 것은 다 사다 먹이고 그저 하고 싶은 것은 전부 다 해줄 수 있게끔, 앞으로 자기의 모든 생명과 재산을 상속하겠다는 각오 밑에서 모실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 자리에 서지 않으면 영계의 3대 천사장이 아담을 모시는 기준을 탕감복귀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탕감복귀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에서의 핵심 목적 기준입니다. 여기 이 현실에서, 현실의 지상에서 사탄의 참소조건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면 천국 못 간다는 거예요.
(160-88, 1968.08.11)

2) 동양사상의 특징과 통일교회 사상

한국에서 붓글씨 쓸 때 내리긋는 것을 보면, 붓글씨 쓸 때 웃대가리가 커요, 아랫대가리가 커요?「웃대가리요」 웃대가리가 커 가지고 점점점 내려가면서 싹- 뽀족해진다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원인적 중심이 위고 결과적 중심이 아래라는 겁니다. 아래는 회전하기 위한 하나의 기점이지, 정착하기 위한 기점이 아닌 것을 알아야 돼요. 우리 가정적 사랑에 부모의 사랑이 있다는 것은 정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전하기 위한 하나의 초점입니다. 정착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식 대하는 사랑보다도 하나님을 대하는 사랑이 커야만 이 우주의 원칙적인 주류의 센터, 사랑의 센터에 일치될 수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처자는 버릴지언정 부모는 버릴 수 없다는 그 동양 사상의 가르침은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날 서양식은 어떠냐 하면 말이예요, 아래가 굵다 이거예요, 아래가. 저 꼭대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평면적인 나로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간다는 겁니다. 전부가 나 중심삼은 거라구요. 부모는 상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수없이 하나님은 동양과 서양을 갖다 붙이기 위한 운동을 했습니다.
(126-250, 1983.04.24)

동양사상에는 가정을 희생시켜서 나라를 구해야 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나라를 희생시켜서 세계, 이 우주를 구해야 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미국에는 그런 사상이 없잖아요? (129-99, 1983.10.01)

통일교회 사상은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의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개인은 이렇게 가야 되고, 가정은 이렇게 가야 되고, 종족은 이렇게 가야 된다 하는 것이 딱 되어 있다 이거예요. 그 법도가 레버런 문의 구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늘나라의 법도의 반영체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저나라에 가서 입적이 안 된다구요.
국민학교에서부터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가지고 대학원, 박사코스로 나가는 것이 질서적 발전과정입니다. 영계에서 '자네 뭘하고 살았나?' 할 때, '나 아무개 남편 만나 가지고 아들딸 몇 낳고 살았습니다' 하고 말해야 안 통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잃어버렸어요. '이렇게 이렇게 아들딸을 낳고 살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과 살기 위해서, 그런 정신으로 우리 가정은 핍박을 받고 왔습니다' 이래야 된다구요. '우리 아버지는 거기서 살다가 굶어 죽었습니다' 하는 게 자랑이예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우리 어머니는 전도 갔다가 맞아 죽었습니다' 하는 건 자랑이지 부끄러움이 아니라구요. 준비하지 못한 패들이 사는 모습은 사망의 함정에 뛰어드는 원성의 소리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147-194, 1986.09.21)

3) 아브라함의 이삭헌제의 교훈

아브라함 할아버지도 갈대아 우르의 자기 고향 집에서 잘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끌어 내어 이방으로 데리고 다니다가 제물 드리라고 해서 제물을 드리는데, 그 제물도 아브라함이 드리겠다고 했어요? '하나님! 제가 제물 드릴 제단을 다 준비했으니 당신께서 받아 주시겠습니까, 안 받아 주시겠습니까? ' 하고 기도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바라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와서 '야 네가 그만큼 수고했으니 내가 너를 축복해 주겠다.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보다 땅 위의 모래보다 더 번창하게끔 축복해 줄 테니 3대 제물을 드려라'고 했기 때문에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또, 제사를 드리려고 제물을 쪼개는데 조그마한 비둘기 한 마리쯤이야 쪼개지 않았으면 안 쪼갠 것이지 그게 뭐 큰 문제가 되느냐는 거예요. 안 그래요? 그 조그마한 비둘기를 쪼개려니 칼이나 댈 데가 있어요? 그거 하나 안 쪼겠으면 안 쪼겠지, 뭐 그렇게 노발대발이예요? 축복해 주겠다는 하나님이 비둘기 한 마리 안 쪼겠다고 '너의 후손이 4백 년 동안 종노릇을 하게 되리라! '고 하셨으니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았겠어요? '이거 사탄이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훌륭한 점이 무엇이냐? 그것을 무엇보다도 두렵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벌을 내리시게 될 때, 그것을 자기가 죽는 것보다도 더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수를 저질러 놓고 무엇보다도 큰 충격을 받은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받드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 아들을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 자기 아들을 잡아 죽여 가지고 충격받았던 그것이 해소될 수 있다면 당장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결심을 하기까지 내적으로 하나님이 분부한 말씀을 얼마나 신중히 생각했겠느냐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 세에 독자로 얻어진, 그것도 하나님이 축복해서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을 잡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는 주더니 이제는 또 잡아 제사드리라구요? 그것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부가 모순입니다. 전부 다 인간의 머리로 사람끼리 하는 일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아버지도 그렇게 복을 빌어 주고 그랬으면 그렇게 안 할것인데, 하물며 하나님이 왜 그런 일을 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곡절이 있더라 이거예요. 대개 인간은 자기 이상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이상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자기를 빼 놓고는 사랑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자기를 플러스 시켜 가지고 사랑하려고 합니다. 자기를 부정해 가지고는 무엇이든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서 사랑의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무슨 사랑을 찾으려 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의 씨족을 부정하고 자기의 친족을 부정하고, 무슨 가정과 무슨 씨족을 찾았느냐? 세상이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가정과,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씨족을 그려 나왔던 대표자가 아브라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자식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즐거워할 수 있는 하나의 씨족을, 하나의 나라를 그는 마음속 깊이 바랐던 것입니다. 그 바람이 어떠한 어려운 환경보다도 컸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숱한 집시의 행로도 무난히 돌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컸기 때문에, 또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강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신이 확실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을 다 제쳐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이 지시한 길만을 따라갈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57-288, 1972.06.05)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동기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기 아들을 번제의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가 제사를 드린 것은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제사를 드리게 된 동기인 것입니다. 미래의 후손을 위하여 자기 자식을 잡아 제사드리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비장했겠는가?
현재보다 미래의 세계를 위하여 자기 아들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 제사드릴 수 있는 사람은 미래의 승리의 기반을 현재에 끌어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들을 미래의 세계를 위해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하기를 그 시대의 무엇보다도 미래의 어떠한 무엇보다도 사랑하지만, 만민을 그 아들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기 자식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32-221, 1970.07.19)

4) 나라 기준 이상을 갖고 아들딸을 사랑해야

내 아들딸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아들딸의 문제보다도 전체 목적을 두고 볼 때 막연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숨을 쉬는 것도 그렇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기도를 하는 것도 그렇고, 모든 면을 전체적인 목적과 일치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천운을 따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이 기준만 인식하면 됩니다.
가정에서 할 것 다하고, 욕심 낼 것 다 내고, 자기 할 것 다 하고, 뜻이니 뭐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철두철미한 자리에서 국가적인, 세계적인 일을 해 나가야 앞으로 천국이 복귀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란 여러분의 생활 터전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18-215, 1967.06.08)

여러분들이 아들딸 낳아서 자랑한다고 어떤 때에는…. 내가 축복해 준 아들딸들이지만 서양에서도 그렇다구요. '선생님, 우리 아들딸 이름 지어 주소' 만국에서 전화하누만. 이름 지어 달라고 부사스럽게 하는 거예요. 하고 또 하고 10분 후에 또 하고 닐니리동동…. 이놈의 자식들, 네새끼들 이름 짓기에 바빠! 그거 안 된다구요. 여러분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자격을 갖추고 나서 아들딸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서 아들딸을 사랑하게 돼 있지요? 그 하나님은 만국의 하나님이요, 천주의 중심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고 나면 하늘땅도 사랑했다는 자격을 얻는 거예요. 나라도 사랑했고, 민족도 사랑했고, 씨족도 사랑했고, 가정도 사랑했고, 개인도 사랑했다는 그런 자격을 얻는 거예요. 큰 것을 사랑해서 자격을 따면…. 알겠어요? 대학교에 가서 석사학위를 따면 고등학교 졸업 안 해도 괜찮아요. 어떻게 땄든지간에 그건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125-253, 1983.03.27)

그래, 갓난아이를 낳아 가지고 뭐 예쁘다고 입술을 대고 뽀뽀하는 그 아버지를 바라볼 때, 그 입술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공인을 받아 가지고 하는 거예요? 남성으로서 아내를 붙들고 키스도 하고 무슨 뭐 어떻게 사랑할 때 하나님의사랑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사랑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섬뜩하다구요. 이놈의 손이, 이놈의 입이 가다가 브레이크에 걸린다는 거예요. 스톱! 급브레이크가 끽! 자기가 놀라 자빠지면서 '악!' 소리를 지를 수있는 그런 브레이크에 걸릴 때가 있었느냐 이것입니다. (125-254, 1983.03.27)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책임이고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확실하지요?「예」 여러분들이 '선생님이 왜 저러나?' 생각할 때 '세계를 소화시키기 위한 것이 선생님의 책임인데 아직은 맨 끝까지 안 갔구나'하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 같은 걸 보면 이도 잡아 먹는다구요. (웃음) 어머니 아버지는 침팬지 이상 해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들은 그 이상 해야 된다 이겁니다. (129-151, 1983.10.09)

5) 무엇보다 뜻을 중요시해야

오늘날 우리는 뜻을 위해 살고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기에 후손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45-227, 1971.07.01)

여러분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그렇게 되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아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뜻 앞에, 물질 앞에 내가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식 앞에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물질 보다도 뜻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자식보다도 뜻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자기 남편보다 자기 아내보다 뜻을 더 중요시하지 않으면 걸리는 것입니다. (41-86, 1971.02.13)

자녀들은 자기들의 부모가 나쁜지 좋은지를 바로 안다. 뜻을 위해 움직이는 태도를 꾸준히 밀고 나가면 그 환경에서 알아줄 날이 있다.
부부는 죽더라도 천도는 남기고 가야 한다. 그 가정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자기 자녀를 위해서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에는 자기 자녀를 위하는 길인 것이다. 그래야만 자녀들이 하나님의 운과 세계의 운과 함께 하고 나라의 운과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축복받아 낳은 귀한 자녀들이 고생을 하더라도 그 자녀들에게 박자를 맞추지 말고 하나님과 세계와 나라의 운세에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
(21-86, 1968.11.03)

역사를 인계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후대 사람들이 인계받는데 무엇을 위해 일한 사람이냐? 세계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영계를 위해 산 사람입니다. 이 두 세계를 보다 위한 사람들이 인계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거 알겠어요? (97-229, 1978.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