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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정치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1789∼1918)

전 시기에 있어서 종교 및 사상의 투쟁은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人生觀)을 수립하였고,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이 두 형의 인생관은 각자의 방향대로 성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성숙에 따라서 가인 아벨의 두 형의 세계가 형성되어 갔으며, 사회의 구조도 이 두 인생관에 입각한 사회 형태에로 정리되어 가면서, 정치와 경제와 사상도 이상사회(理想社會)에로 전환될 수 있는 전 단계에까지 진전하였다.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과 영국의 산업혁명(産業革命)이 있은 후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第一次世界大戰)이 끝날 때까지가 바로 이러한 섭리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Ⅰ. 민주주의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본 민주주의(民主主義)에 관하여는 이미 전장(前章)에서 논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가 나오게 된 외적인 경위였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역사의 굽이침 속에서 어떠한 사상의 흐름을 타고 오늘의 민주주의가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내적인 경위를 알아야 한다.

이미 후편 제4장 제7절 Ⅱ에서 논한 바와 같이, 기독왕국시대(基督王國時代)에 있어 교황을 중심한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의 왕국이 하나되어 메시아 왕국을 위한 군주사회(君主社會)를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했더라면, 그때에 봉건시대(封建時代)는 끝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대는 연장되어 정치사와 종교사와 경제사가 서로 분립된 노정을 따라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세 봉건시대에 있어 지방 제후(諸侯)에게 분산되어 있었던 정치권력은 십자군전쟁(十字軍戰爭) 이후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宗敎改革)을 거쳐 계몽기(啓蒙期)에 이르러서는 더욱 쇠미(衰微)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제후들은 민족을 단위로 하는 통일국가를 세워 국왕 밑에 집중함으로써, 중앙집권에 의한 절대주의국가(전제주의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등의 영향으로 왕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전제군주시대(專制君主時代)였다.

이 시대가 오게 되는 원인을 사회적인 면에서 보면, 첫째로 시민계급(市民階級)이 국왕과 결합하여 봉건계급(封建階級)과 대항하기 위함이었고, 둘째로 경제적인 활동에 있어 무역경제의 지배를 위하여 봉건제도를 벗어난 강력한 국가의 배경을 필요로 하였으며, 아울러 국민의 전체적인 복리(福利)를 위하여 강력한 국가의 보호와 감독에 의한 중상주의(重商主義) 경제정책이 요망된 데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복귀섭리(復歸攝理)로 본 역사발전의 입장에서 보면, 봉건시대(封建時代) 이후에는 하늘편의 군주사회(君主社會)가 이루어져야 했던 것인데, 이 시대의 교황과 국왕이 하나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사회는 완성되지 못하고, 교황을 중심한 그 사회는 도리어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나온 노정을 따라 사탄편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로 전화되었던 것이다.

이제 가인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공산세계(共産世界)와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한 민주세계(民主世界)를 이루어 나아가고 있는 복귀섭리의 입장에서, 전제군주사회의 귀추를 고찰하기로 하자.

마치 중세 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가 히브리사상에도 헬라사상에도 한가지로 배치(背馳)되는 사회였기 때문에 이 두 사상이 함께 그것을 타파하여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에 입각한 두 형의 사회를 수립하였던 것처럼, 전제군주사회도 역시 종교개혁(宗敎改革) 이후의 기독교민주주의(基督敎民主主義)에 의한 신교(信敎)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아벨형 인생관의 목적 달성에도 배치되는 사회였었고, 또 그 사회는 그 안에 의연히 남아 있던 봉건제도(封建制度)가 무신론자(無神論者)와 유물론자(唯物論者)들이 지도하는 시민계급의 발전을 막고 있어서 가인형 인생관의 목적 달성에도 배치되는 사회였었기 때문에, 이 두 형의 인생관이 함께 이 사회를 타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드디어 가인 아벨 두 형의 민주주의에 입각한 공산(共産)과 민주(民主) 두 형의 사회를 형성한 것이다.

1. 가인형의 민주주의

가인형의 민주주의는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으로 인하여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논하기 위하여는 먼저 불란서혁명에 관한 것을 논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당시의 불란서는 가인형의 인생관으로 말미암아 무신론(無神論)과 유물론(唯物論)으로 흘러가던 계몽사상(啓蒙思想)이 팽배한 시대에 있었다. 따라서 이렇듯 계몽사상에 물들어 있던 시민계급은 절대주의(絶對主義)에 대한 모순을 자각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서 절대주의사회 안에 아직도 깊이 뿌리박고 있는 구제도(舊制度)의 잔해를 타파하려는 의식이 고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시민들이 1789년 계몽사상의 대조(大潮)에 의하여 절대주의사회의 봉건적 지배계급을 타파하는 동시에, 제3계급(시민)의 자유 평등과 해방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일어난 혁명이 곧 불란서혁명이었다.

이 혁명으로 인하여 인권선언(人權宣言)이 공표됨으로써 불란서의 민주주의는 수립되었었다. 그러나 불란서혁명으로 인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가인형의 인생관을 세우기 위하여 유물사상(唯物思想)으로 흘러간 계몽사상이 절대주의사회(絶對主義社會)를 타파하면서 출현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인형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몽사상의 주요인물들도 그러하지만, 불란서혁명의 사상가 디드로(Diderot 1713∼1784)나 달랑베르(d’Alembert 1717∼1783)등도 무신론 또는 유물론계의 학자들이었다. 이 혁명의 경위를 보아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불란서의 민주주의는 개성의 자유와 평등보다도 전체주의(全體主義)에로 전화되는 경향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와 같이 가인형의 인생관은 계몽사상(啓蒙思想)을 세워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을 일으킴으로써 가인형의 민주주의를 형성하였고, 이것이 신에게로 돌아가려는 인간 본성의 내적인 추구의 길을 완전히 막고 외적으로만 더욱 발전하여, 독일에서의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에서의 레닌주의로 체계화됨으로써 마침내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를 형성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2. 아벨형의 민주주의

영국이나 미국에서 실현된 민주주의(民主主義)는 불란서의 대혁명(大革命)으로 인하여 실현된 민주주의와 그 발단부터가 다르다. 후자는 가인형 인생관의 소산인 무신론 및 유물론의 주창자들이 절대주의 사회를 타파하는 것으로써 실현한 가인형의 민주주의였음에 반하여, 전자는 아벨형 인생관의 결실체인 열광적인 기독교 신도들이 신교(信敎)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실현한 아벨형의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그러면 영(英)·미(美)에서는 어떻게 하여 아벨형의 민주주의를 수립하였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영국에서는 찰스 1세가 전제주의(專制主義)와 국교(國敎)를 강화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청교도(淸敎徒)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내의 타국(他國) 또는 신대륙(新大陸)으로 이동하였고, 일찍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종교적인 압박을 받던 일부의 청교도들이 국민맹약(國民盟約)을 결의하고 국왕에 항거하였던 것이다(1640년).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의회의 핵심이었던 청교도들이 크롬웰(Cromwell 1599∼1658)을 중심하고 청교도혁명(淸敎徒革命)을 일으켰던 것이다(1642년). 그뿐 아니라 제임스 2세의 전제(專制)와 국교 강화가 극심하여지자, 그의 사위로서 네덜란드 총독으로 있었던 오렌지공 윌리암(William Ⅲ 1650∼1702)은 1688년에 군대를 거느리고 신교(信敎)의 자유와 민권(民權)의 옹호를 위하여 영국에 상륙하여 무혈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윌리암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의회에서 상신한 ‘권리의 선언’을 승인하여 의회의 독립적인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이것이 영국 헌법의 기본이 되었었다. 그리고 이 혁명은 무혈로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명예혁명(名譽革命)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영국에 있어서의 이 혁명은 외적으로 보면 물론 시민계급(市民階級)이 귀족 승려 등 대지주계급(大地主階級)으로부터 정치적인 자유와 해방을 얻으려고 한 데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보다 더 주요한 원인은 그러한 혁명을 통하여 내적인 신교(信敎)의 자유와 해방을 얻으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전제주의(專制主義) 왕정하에서 탄압을 받고 있던 청교도(淸敎徒)들이 신교(信敎)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아메리카의 신대륙을 찾아가서 1776년에 독립국가를 설립함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수립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영(英)· 미(美)에서 수립된 민주주의는, 아벨형의 인생관을 중심하고 신교(信敎)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사회(絶對主義社會)를 개혁하려는 혁명으로써 수립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아벨형의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되어 아벨형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세계를 형성하는 데 이르렀다.

Ⅱ. 삼권분립의 원리적 의의

삼권분립사상(三權分立思想)은 절대주의(絶對主義)의 정치체제로 인하여 국가의 권력이 특정한 개인이나 기관에 집중하는 것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계몽사상파(啓蒙思想派)의 중진이었던 몽테스키외(Montesquieu 1689∼1755)에 의하여 제창되었던 것인데, 그것은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 때 ‘인권선언’의 선포로써 실현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삼권분립은 하늘편에서 이루려 했던 이상사회(理想社會)의 구조로서,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전노정이 그러하듯이 이것 또한 사탄편에서 앞질러 비원리적(非原理的)인 원리형(原理型)으로 먼저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상사회의 구조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밝힌 바와 같이, 피조세계(被造世界)는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를 본(本)으로 하여 창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완성한 인간들로써 이루어지는 이상사회도 역시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와 기능을 닮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체의 모든 기관이 두뇌의 명령에 의하여 기동(起動)하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의 모든 기관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에 의하여 영위되어야 하며, 또 두뇌로부터의 모든 명령이 척수(脊髓)를 중심한 말초신경(末梢神經)을 통하여 사지백체(四肢百體)에 전달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명령은 척수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와 그를 중심한 말초신경에 해당되는 성도들을 통하여 사회 전체에 유루(遺漏) 없이 미쳐져야 한다. 그리고 인체에 있어서의 척수를 중심한 말초신경은 한 국가의 정당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상사회(理想社會)에 있어서의 정당에 해당한 역능(役能)은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이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폐장(肺臟)과 심장(心臟)과 위장(胃腸)이 말초신경(末梢神經)을 통하여 전달되는 두뇌(頭腦)의 명령을 따라 서로 상충이 없이 원만한 수수(授受)의 작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 3장기(三臟器)에 해당되는 이상사회의 입법(立法)·사법(司法)·행정(行政)의 3기관도 정당(政黨)에 해당되는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도들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서로 원리적인 수수의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사지(四肢)가 두뇌의 명령을 따라 인간의 생활목적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과 같이, 사지에 해당되는 경제기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상사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체에 있어서 간장(肝臟)이 전신(全身)을 위하여 영양을 저축하는 것과 같이, 이상사회에 있어서도 항상 전체적인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저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인간의 사지백체(四肢百體)가 두뇌와 종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체(支體)들 사이에 자동적으로 횡적인 관계가 맺어져서 불가분(不可分)의 유기체(有機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이상사회도 모든 사회인들이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횡적인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하는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회에 있어서는 남을 해치는 것이 바로 자기를 해치는 결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범죄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또 복귀섭리(復歸攝理)가 이 사회구조를 어떻게 복귀하여 왔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서구에 있어서의 역사발전의 과정을 보면, 입법(立法)·사법(司法)·행정(行政)의 3권과 정당(政黨)의 기능을 통틀어 국왕 한 사람이 전담하여 오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변천하여 국왕이 3권을 장악하고, 교황을 중심한 교회가 정당과 같은 사명을 담당하던 시대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정치제도는 다시 불란서혁명(佛蘭西革命)에 의하여 입법·사법·행정의 3권으로 분립되었고, 정당이 뚜렷한 정치적인 사명을 가지게 되어 민주주의 입헌정치체제(立憲政治體制)를 수립함으로써 이상사회 제도의 형만은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내려오면서 정치체제가 변천해온 것은, 타락된 인간사회가 복귀섭리에 의하여 완성한 인간 하나의 구조와 기능을 닮은 이상사회로 복귀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정체(民主主義政體)는 3권으로 분립되고 또 정당이 생겨남으로써 드디어 인간 하나의 구조를 닮기에 이르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귀되지 않은 타락인간(墮落人間)과 같은 것이어서 창조본연(創造本然)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곧 정당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으므로, 그것은 두뇌의 명령을 전달할 수 없게 된 척수(脊髓)와 그를 중심한 말초신경(末梢神經)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즉 헌법(憲法)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입법·사법·행정의 세 기관은 마치 신경계통이 끊어져 두뇌로부터 오는 명령에 감응할 수 없게 된 3장기와 같이 되어서, 그것들은 상호간에 질서와 조화를 잃어버리고 항상 대립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이상(再臨理想)의 목적은, 예수님이 오셔서 타락인간 하나의 구조를 닮고 있는 현재의 정치체제(政治體制)에 완전한 중추신경(中樞神經)을 이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그 본연의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도록 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Ⅲ. 산업혁명의 의의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은 단지 죄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만물을 주관하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祝福)의 말씀대로(창 1 : 28) 피조세계에 숨어 있는 원리를 찾아 과학을 발달시킴으로써 행복한 사회환경까지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전편에서 논한 바와 같이, 타락인간의 영육(靈肉) 양면의 무지에 대한 극복은 종교와 과학이 각각 담당해 가지고 이상사회(理想社會)를 복귀해 나왔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終末)에는 영적인 무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말씀이 나와야 하고, 육적인 무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도록 과학이 발달되어 이상사회를 이룰 수 있는 전 단계의 과학사회를 건설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 영국의 산업혁명(産業革命)은 어디까지나 이상사회의 생활환경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서 일어난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상사회의 경제기구(經濟機構)도 완성된 인체의 구조와 같아야 하므로,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생산과 분배와 소비는 인체에 있어서의 위장과 심장과 폐장과 같이 유기적인 수수(授受)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생산과잉(生産過剩)으로 인하여 파괴적인 판로경쟁(販路競爭)을 하거나, 편파적인 분배에 의하여 전체적인 생활 목적을 그르치는 축적이나 소비를 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過不足) 없는 분배와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어야 된다.

그런데 산업혁명에 의한 다량생산은 영국으로 하여금 상품시장과 원료 공급지로서의 광대한 식민지를 급속도로 개척케 하였었다. 그리하여 산업혁명은 이상사회를 위한 외적인 환경 복귀뿐만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한 광범한 판도를 조성함으로써 내적인 복귀섭리(復歸攝理)의 사명도 하게 하였던 것이다.

Ⅳ. 열국의 강화와 식민지 분활

문예부흥(文藝復興) 이후 가인 아벨의 두 형으로 갈라져 성숙하여 온 인생관은 각각 두 형의 정치혁명(政治革命)을 일으키어 두 형의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수립하였고, 이 두 형의 민주주의는 다 같이 영국의 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강화되어 민주(民主)와 공산(共産) 두 계열의 세계를 형성해 가게 되었다.

산업혁명에 뒤이어 비약적인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일어난 공업의 발달은 생산과잉(生産過剩)의 경제사회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과잉한 생산품의 판로와 공업원료의 획득을 위한 신지역(新地域)의 개척을 요하게 되어, 급기야 세계 열강은 식민지 쟁탈전을 계속하면서 급속도로 강화되어 갔다. 이와 같이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의 흐름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은 정치적으로 이 세계를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분립케 하였다.

V. 문예부흥에 따르는 종교 정치 및 산업의 혁명

가인형인 헬라사상의 반중세적 복고운동(反中世的 復古運動)은 인본주의(Humanism)를 낳아 문예부흥(Renaissance)을 일으켰고, 이것이 더 사탄편으로 발전하여 제2의 문예부흥사조(文藝復興思潮)라고 볼 수 있는 계몽사상(啓蒙思想)을 낳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 계몽사상이 더욱 사탄편으로 성숙하여 제3의 문예부흥사조라고 볼 수 있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낳아 공산주의사상(共産主義思想)을 성숙케 하였다.

이와 같이 사탄편에서 하늘의 섭리를 앞질러 먼저 이루어 나아감에 따라 종교(宗敎), 정치(政治), 산업(産業) 각 방면에 있어서도 3차의 혁명이 따라오게 된다. 즉 제1차 문예부흥(文藝復興)에 뒤이어 루터를 중심한 제1차 종교개혁(宗敎改革)이 있었으며, 제2차 문예부흥에 뒤이어 종교계에서는 웨슬레, 폭스, 스웨덴보리 등을 중심한 새로운 영적 운동이 말할 수 없는 박해 가운데서 일어났던 것이니, 이것이 제2차 종교개혁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제3차 문예부흥에 뒤이어서 제3차 종교개혁이 있게 될 것은 역사발전 과정으로 보아 필지(必至)의 사실이라 하겠다. 사실상 오늘의 기독교(基督敎)의 현실은 그 개혁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도 3단계의 변혁과정이 있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즉 제1차 문예부흥과 제1차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중세 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가 붕괴되었고, 제2차 문예부흥과 제2차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전제군주사회(專制君主社會)가 붕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3차 문예부흥에 의한 정치혁명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사회(共産主義社會)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장차 올 제3차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하늘편의 민주세계가 이념적으로 사탄편의 공산세계를 굴복시킴으로써, 이 두 세계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중심한 하나의 지상천국(地上天國)으로 통일될 것이다.

한편 우리는 종교와 정치의 변혁에 따르는 경제개혁도 3단계의 과정을 거치어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증기(蒸氣)에 의한 공업발달로 제1차 산업혁명(産業革命)이 영국에서 일어났고, 이어서 전기와 가솔린에 의한 제2차 산업혁명이 선진 제국(先進諸國)에서 일어났었다. 이제는 원자력(原子力)에 의한 제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상세계의 행복된 사회환경이 세계적으로 건설될 것이다. 이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再降臨準備時代)에 있어서의 3차의 문예부흥에 따르는 종교 정치 및 산업 등 3분야에 걸친 3차 혁명은 3단계의 발전법칙에 의한 이상사회(理想社會) 구현에의 필연적 과정인 것이다.